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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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들이 '예수'에 집중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 예수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유산계급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인물이 존재했던가? 이 질문의 답을 잠시 미뤄둔다 하더라도 이토록 상쾌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관심가져 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솔직함이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히 다가오는 오늘날에 말이다.  

김규항은 우리 사회의 혁명 실패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영성의 개발이 없는 혁명이다. 그리고 둘째는 영성의 개발에만 몰두하는 혁명이다. 전자는 냄비에 끓이는 밥과 같다. 밑바닥은 다 타서 늘러 붙는대도 윗 부분은 설익어 먹을 수 없다. 반면 후자는 증기를 내뿜지 않는 압력 밥솥이다. 안으로 꽁꽁 싸매고 들어가 아무리 힘을 줘도 뚜껑은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해답은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땐 그냥 '중간'에 두고 에둘러 말해 버리면 의외로 위대한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공자도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으며 칸트 또한마찬가지였다. 김규항이도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사회 변혁과 내 안의 변혁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때 탄생한다'. 고로 좌파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김규항이 이번에 '예수'라는 담론을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올리기로 한 것은 그 자신에게는 혁명의 초석이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예수전'은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쫓는다. 김규항에 따르면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견해'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복음서로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였고 종교적 첨가가 가장 적은 복음서이다. 

김규항이 마르코 복음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굳이 좌파 기독교도라는 말을 만들어야 할만큼 보수화해버린 오늘날의 교회와 말씀은 김규항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 예수', 진보의 탈을 쓰고 인민을 호도한 짭퉁 지도자들에(바리새인) 대항하고 성전 앞 상인들의 좌판을 뒤 엎으며 분노했고 언제나 빈자와 약자를 대변했던 이 위대한 '아웃사이더'를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예수전'을 통해 김규항이 말하고자하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정말 무식하고 편협하다고 생각한다(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슬람교 심지어 가톨릭까지 싸잡아 사이비 종교쯤으로 말하는걸 보고 있으면 그 무식에 정신이 아연해지기까지 한다.이것은 한국의 종교 교육이 몰이해와 배타성으로 점철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에게 왜 몰이해와 배타성이 필요한 것인가? 그건 이미 거대한 주식회사로 변해버린 한국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모토는 단 하나. 

남보다 더 많이 고객을(신도) 유치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남의 종교, 심지어 다른 교파 마저도 찢어 발겨야 한다. 몰이해와 배타성은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신도가 돈으로 보이는 교회에서 어떻게 빈자와 약자를 대변했던 예수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예수가 재림하여 부와 권력에 맛들인 목사들을 향해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놓고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누가 과연 예수를 따를 것인가? 그들은 또 한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당신이 꼬박꼬박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헌납하며 좋은 배우자와 직장, 높은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한 기도를 올리기 전에 진짜 예수의 말씀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자. 그리하여 내 안의 진정한 변혁부터 이뤄내자. 그럼 총력전도주일에 가짜 신도의 이름을 적어내지 않아도, 전철역 앞에서 싸구려 커피믹스를 타주지 않아도 복음은 제발로 땅끝까지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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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미닛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포미닛의 춤을 춰 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춰 봤다. 그것도 현아의 춤을. 내가 소녀시대도 카라도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걸그룹도 제쳐놓고 오로지 포미닛만 찬양하는데는 내가 그 위대함을 춤으로 경험한 몇 안되는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아의 춤은 대단하다. 그를 둘러싼 지저분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현아의 춤은 현아를 특별하게 만든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현아라는 이름만으로 그녀를 부르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에 어제부터 현아를 '현아신'으로 부르기로 했다. 현아는 댄스의 신이다.  


용산역 청음매장에 들러 수 시간의 청음 테스트 끝에 무려 5년 동안 보류해왔던 헤드폰 구매를 결정하게 한 것이 현아의 솔로곡 'Change'였다. FC700과 Audio Technica의 art 시리즈, AKG의 오픈형 헤드폰들을 테스트해본 결과 그 중 현아의 'Change'를 가장 높은 해상도로 출력해주는 것은 Shure사의 SRH-240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박한 디자인에 엄청 커다란 헤드폰이지만 이 헤드폰으로 'Change'를 처음 들었을 때의 울림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포미닛의 대표곡은 'Hot Issue'지만 춤을 추거나 몸 속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기에는 'Musik'이 낫다. 안무도 'Musik'이 훨씬 힘있고 섹시하다. 특히 하이라이트 부분의 안무에서 현아가 표현해내는 감정은 왜 현아를 댄스의 신으로 불러야 하는지 설명이 된다.  

현아 개인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으나 원더걸스에서 제외된 것은 본인에게 확실히 더 나은 결과였다. 현아의 넘치는 퍼포먼스를 원더걸스의 시덥잖은 춤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원더걸스의 현아보다는 포미닛의 현아가 정확히 2487.7배 더 파워풀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포미닛이 'Huh'로 활동을 재개했을 때 시큰둥 할 수 밖에 없었다.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Musik이나 심지어 Hot Issue보다 후퇴한 것처럼 보였고 노래 자체도 그닥 좋지 않았다.  

잘 만든 댄스곡은 운동중에 확실히 알 수 있는데,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자전거의 속도가 40km를 돌파하거나 나도 모르게 런닝 머신의 속도업 버튼을 누르고 있다면 그건 훌륭한 댄스곡이다. 그런데 'Huh'는 그렇지 않았다. 분위기가 올라온다 싶으면 웬지모르게 막혀버리는 흥에 해소되지 않는 갈증만 남겼다.  


그런데 어제 'I, My, Me, Mine'을 들었다. 정확히 457번을 쉬지 않고 들었다. 농담이다. 하지만 그 만큼 많이 들었다. I! My! Me! Mine!이 무한의 선율을 그리며 귓가에 맴돌정도로.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이 노래는 현존하는 최고의 댄스곡 이라고. 

밝혀두는데 나는 오덕이라던가 씹덕이라던가 아무튼 그런 부류는 아니다. 나는 포미닛의 춤을 춰 봤기에 그 위대함을 알고 있는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포미닛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비록 소녀시대나 카라 또 뭐냐 거시기 어쨌든 그런 걸그룹만큼 매끈한 팀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어설픔이 나에겐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정말, 현아는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늘 높이 높이 솟아 올라 자신을 멸시하고 박대했던 사람들 위에서 오만하게 내려볼 수 있기를. 표정에는 여전히 뇌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같은 청결함을 드러낸 채로.  

  

*댄스 음악을 더 화끈하게 듣고 싶으면 속도를 10~20% 정도 빠르게 들어보라. 폭발하는 열기를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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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도넛은 My Favorite 도넛이다. 우선 이 도넛은 던킨이라던가 크리스피 따위 곤충을 유혹하듯 달달한 맛만으로 승부하려는 트랜스지방 500만% 고칼로리 저영양 간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럼 무엇이 차원을 달리 하느냐, 그건 바로 쫄깃함이다. 미스터 도넛의 쫄깃함은 스페셜하다. 먹는 순간 쫄깃하고 씹는 도중에도 쫄깃하며 먹고 난 다음에도 입안이 쫄깃 거린다. 두 개만 먹으면 질려 버리는 오리지날 글레이즈드 따위완 비교가 안된다.  

한 때는 이 쫄깃함의 비밀을 알기 위해 미스터 도넛의 도넛 마스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는 걸 곧 깨달았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난 그저 가게에 들러 '폰데스트로베리' 하나요 라고 외치는 걸로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미스터 도넛의 모든 도넛이 쫄깃한 것은 아니다. 쫄깃한 도넛을 골라야 한다. 방법은 쉽다. 무조건 '폰데'가 들어간 것을 고르면 된다. 생김새에 이끌려 프렌치크롤러 라든가 올드패션, 프리미엄도넛 등을 골랐다간 쫄깃함의 신비를 절대 맛 볼 수 없다.   

그런 맛은 근처에 널린 던킨이나 크리스피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미스터 도넛에선 무조건 '폰데'를 고르라. '폰데스트로베리'(Best), '폰데링', '폰데블랙슈가', '폰데더블쇼콜라', '폰데스트로베리밀크'... 쫄깃함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폰데링들이 맛만 있는것이냐. 그렇지 않다. 이 폰데링은 사실 미스터 도넛의 마스코트인 '폰데라이언'의 갈기다. 무슨 말이냐고?  

폰데라이언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사자의 갈기대신 도넛을 머리에 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도넛은 폰데라이언이 고개를 숙일 때 마다 땅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이 때 주위에 있던 친구들은 다 함께 이 도넛 갈기를 먹어 치운다.   

호빵맨 이후로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자학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신체의 일부를 먹어 치웠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폰데라이언이 꼬리에 힘을 한번 주면 도넛은 다시 자라나니까. 다시 자라난 도넛을 공중에 던져 머리에 쓰고 나면 폰데라이언은 언제나 도넛의 왕 사자로 되돌아 온다.

이 밖에도 미스터 도넛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폰데라이언의 여자친구는 메~ 하는 '양'인데 이름은 '프렌치우라'로 눈치챘겠지만 프렌치크롤러의 모습이 이 프렌치우라의 목덜미 털을
형상화 한 것이다. '에리마키패션'은 올드패션을 다람쥐 '허니시포'는 프리미엄도넛을 그리고 '초코링곰'은 초코도넛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내가 미스터 도넛에 반한 이유는 폰데라이언 때문이었다. 캐릭터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폰데라이언처럼 신비하고 귀엽고 오묘한 캐릭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도넛과 사자의 만남. 

이종간의 결합을 통해 창의적 생산물이 탄생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었던 만큼 그 생각을 증명하는 폰데라이언의 존재는 이 캐릭터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나는 일본 출장 중에 폰데라이언의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도큐핸즈, 로프트 등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져봐도 폰데라이언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급기야 미스터 도넛 매장으로 뛰쳐 들어가 돈을 줄테니 사은품으로 주는 핸드폰 줄을 팔라고 행패를 부렸다.  

하지만 30분간의 실랑이에도 반드시 도넛을 사서 마일리지를 쌓아야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일본에서는 참 만나기도 힘든 영어가 유창한 희귀한 직원을 만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 위대한 미스터 도넛이 크리스피나 던킨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슬픈 일이었다. 폰데라이언이 뭔지 쫄깃함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대하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정도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내 스스로가 폰데라이언 전도사가 되는 길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제는 미스터 도넛 16개를 사들고 회사 동료들을 먹였다. 이 도넛을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나의 살이니...  

폰데라이언 전도사의 첫 번째 홍보 활동으로 아래 동영상을 소개한다. 이것 말고도 3개의 동영상이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다음 주소로 들어가 더 많은 영상을 감상하기 바란다.  

 

<이 동영상의 백미는 10초 쯤에 나오는 폰데라이언의 표정이다. 여자친구를 건네주기 위해 도넛을 벗었구만 그걸 먹어치우는 프렌치우라! 그리고 그녀를 쳐다보는 폰데라이언!>

www.gsretail.com/misterdonut/MisterDonut/characters_movie.asp

위 사이트에는 동영상 말고도 폰데라이언 스크린 세이버, 배경 화면 등을 제공하고 있으니 반드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해 볼 수 있도록.  

 

그럼 지금과 같이 폰데라이언과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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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온 한국단편문학선 2편엔 김동리의 '황토기', 황순원의 '비바리', 이호철의 '나상', 장용학의 '비인탄생', 박경리의 '불신시대' 등 저마다 시대를 아우르고 가슴을 아리는 작품들이 즐비하지만, 대학 때 읽은 이 책을 다시금 손에 들게 만든 것은 뭐니뭐니해도 정한숙의 '전황당인보기' 때문이었다. 

정한숙과 '전황당인보기'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다. 안에서보다 밖에서 모든 우수함을 찾으려 했던 근대화의 폭격은 문학에도 예외 없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황당인보기'를 말하려는 이 순간 소설의 줄거리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하인 강명진과 석운 이경수는 오래전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다. 특히 석운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힘들어 하던 시절 수하인 강명진은 그의 벗이자 지필묵, 문방사우의 우아한 취미를 함께 논하던 품격 높은 스승이었다. 그러던 석운이 정부의 고위 관료로 임명되자 수하인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수하인은 석운에게 기념이 될만한 정표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시장바닥에서 우연히 전황석을 발견한다. 전황석이란 같은 무게면 금 값의 10배가 한다는 귀하디 귀한 돌이다. 그는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르곤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석재를 거저나 다름 없는 가격에 구했다는 것 보다는 친구 석운에게 비로소 어울리는 선물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줄곧 수하인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뛰어난 인장 예술인이었던 수하인은 그 돌로 석운의 도장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고 혼신을 다해 작업을 시작한다. 드디어 전황석 인장 한방이 완성되자 수하인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작품중 실로 최고였던 것이다. 인장 한방을 곱게 싸들고 나서는 수하인의 가슴에 새로운 싹이 돋아오는 것 같았다.

석운은 때마침 출타 중이었다. 그런데 석운의 부인은 수하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석운이 벼슬을 한 뒤로 여기저기 부탁을 하러 온 사람들이 잦은 탓도 있었지만 특히 수하인은 궁핍함을 면치 못하는 초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석운의 처가 보기에 수하인이란 그저 아쉬운 부탁을 하러 온 사람 이상의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니 돌아서는 수하인이, 가슴 속에서 곱게 싼 선물을 내밀었을때 그녀의 마음속에 적잖이 미안한 마음이 들은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미안한 마음은 이내 싹 가셨다. 선물이라고 펼쳐보니 쓰잘데 없는 돌조각이요 가지런히 찍어 놓은 붉은 도장은 무슨 부적인 듯 불길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석운에게조차 그 선물은 눈에 들지 않았다.  

시장의 도장방 주인이 전황석 인장 한방을 수하인의 눈 앞에 내놓았을 때 수하인의 가슴은 와르르 무너졌다. 이유인즉 전황석의 가치를 알바 없는 석운이 그것의 처분을 친구 오준에게 맡긴 것이오 역시나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오준이 도장방 주인에게 고작 상아 도장 하나를 받고 팔아 넘긴 것이다.  

그날 밤 서울에는 눈이 내렸다. 뻥 뚫린 수하인의 가슴 위로 사박사박 차가운 눈이 쌓였다.

이튿 날 수하인은 눈길을 뚫고 참지 한 권을 사와 자신의 작업실 앞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는 참지를 접어 한 권의 책을 맨 뒤 하나 하나 자신이 만들어온 인장을 찍어 나갔다. 물론 전황석 한방도 맨 나중에다 찍어 놓았다. '그와 더불어 살아온 인보(印譜)를 보는 순간, 그는 처음 자기가 살아온 보람을 느꼈다.' 수하인은 황모필 가는 붓으로 '전황당인보기'라 표지를 쓴 뒤 책을 덮었다.

전황당인보기의 문장 하나하나는 사박사박 내려 쌓이는 눈 같은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세속적인 어떠한 것도 침범할 수 없는 순백의 고결함이요 동시에 이 작품이 뿜어내는 고고한 향취이기도 하다.  

전황석 인장 한방이 저자거리의 도장방 주인의 손에 들려 왔을 때 수하인은 마음은 어땠을까? 이 가슴 아린 비극 앞에서 수하인은 더 이상 칼을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의 앞에서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가치들은 언제나 아스라히 사라져 간다. 우정, 믿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 이런것들을 소리 높여 논하는 사람들을 철 없는 낭만주의자라 부르며 비웃은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수하인 강명진은 효율과 속도가 판을 치는 이 사회에 쓸데 없는 멋을 지닌 고루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쓸데 없는 멋 때문에 수하인은 품격 높은 예술인이요, 사랑넘치는 친구요 그리고 진정한 '인간'일 수 있었다.  

깊어가는 이 밤 수하인이 도장을 새기듯 '전황당인보기'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곱씹고 있는 이유는 그것을 즐기거나 그것에서 배울게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오늘 밤 그저 인간이 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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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학생 2011-09-0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학 수행으로 이번에 읽게된 책인데. 도무지 무슨 내용인가 했어요. 이 글 읽고 나니 이해가 되네요.리뷰 잘 읽고갑니다^^

한깨짱 2011-09-06 22:09   좋아요 0 | URL
줄거리를 띄엄띄엄 써놔서 읽기 힘드셨을텐데 이해가 잘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지나가던학생2 2013-02-1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설 조사중이었는데 우연히 좋은글보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한깨짱 2013-02-13 17:19   좋아요 0 | URL
학생분들에게 무슨 숙제가 나온 모양이군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더 감사하네요.
 

'김성모'는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독특한 작가다. 우선 작품수가 무척 많다. 엄청 많다. 놀랄 정도로 많다. 

김성모는 한 달에 적어도 5권 이상의 단행본을(서로 다른 만화) 찍어 내면서 동시에 스포츠 일간지에 만화를 연재한다. 그에게 창작의 고통이란 다른 우주의 언어처럼 보인다. 나는 그의 작업 방식에 틀림없이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었다.

우선 문하생 중 하나가 원고에 배경을 그려 넣는다. 배경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복사해둔 건물 그림이나 자연 풍광을 붙여 뚝딱 만들어 낸다. 그럼 인터넷 서핑을 하며 새로운 만화 소재를 찾던 김성모가 천천히 일어나 그의 도장들을 꺼낸다.   

 

<현란한 배경>

이 도장에는 캐릭터의 표정이 새겨져 있다. 김성모 만화의 주인공은 모두 '강건마'라는 이름으로 생김새가 똑같고 표현해내는 감정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압축된다. 대략 10-15개 정도의 도장만 있으면 자신이 연재하는 모든 만화 캐릭터들의 표정을 소화해낼 수 있다.   

 

 

<다양한 표정>

자 이제 김성모가 만화에서 보여주듯 현란한 손놀림을 보이며 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도장이 찍힌 원고를 받아든 다른 문하생은 자와 펜을 들고 몇개의 직선을 그어 캐릭터의 몸체를 완성한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가 생산되듯 김성모의 작업실에서는 밤새 만화가 생산된다.

어느 사회든 공산품은 수공예품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물론 예전같지야 않겠지만 몇년 전만해도 전국적으로 2만여개의 만화 대여소가 성업 중이었다. 이 시절 수백 권이 넘는 만화를 전국에 보급하면서 김성모는 미국 금괴 보관소 '포트 낙스'를 능가하는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그를 만화가보다 뛰어난 비지니스맨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만화도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특히 '럭키 짱' 원, 투, 쓰리, 포는 학기말 자습 시간에 요긴하게 소비되던 주요 컨텐츠였다.

'럭키 짱'은 무협 만화의 무공, 비기 등을 학원물에 이식한 만화로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한가지 씩의 필살기를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필살기가 시전될 때 김성모가 동작 모두를 한 페이지씩 구성했다는 것인데 이런 연출의 원조인 '붉은 매'가 '한국 무협 만화의 계보' 1편에서 밝힌대로 갑론을박의 논쟁 거리를 제공했다면 '럭키 짱'의 경우 지면 낭비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는 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40계단 108콤보'같은 필살기를 시전하고 나면 만화의 반 이상이 대사 없는 그림으로 채워졌다. 필살기를 온 몸으로 맞아준 주인공은 '너의 공격 패턴을 알아냈다. 그것은 강 약 약 강 강 강 약 강 중 약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대사를 하고 난 뒤 정확히 그 다음 권의 반을 자신의 필살기로 수 놓았다. 한달 단행본 5권의 신화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드디어 콤보 시작> 

학원물 하면 또 조운학의 '니나 잘해'가 떠오른다. '니나 잘해'는 학원 주먹계를 정파와 사파로 나누고 그들끼리 연맹을 구성하는 등 무협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정통성 대결, 정치, 음모 등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각각의 '류파'를 형성하며 개성있는 싸움을 벌였고 마치 강호를 연상케 하는 패싸움, 1:1 대결, 납치, 암살(실제 죽이는건 아님) 등이 판을 치는 다소 황당한 학원계를 만들어 냈다.  

 

<니나 잘해의 장보고와 반토막>

물론 말도 안된다. 이런 일들은 학생 수준에서 벌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야 말로 '니나 잘해'를 만화 답게 만든다. 동시대의 만화 '짱'이 보다 현실적인 폭력을 그리는데 비중을 뒀지만 오히려 '니나 잘해'에 비해 흥미가 덜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협이 현대로 배경을 옮긴 만화는 이 밖에도 '무림수사대'같은 웹툰을 꼽을 수 있다. 웹툰에 대해선 아마 나중에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무슨 만화가 남았을까? 나는 지금까지 여덟 편의 만화를 소개했지만 사실 우리 손을 거친 만화는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협 만화와는 궤를 좀 달리했지만 '팔용신전설', '나우', '천랑열전'의 박성우가 생각나기도 하고 학원 폭력물의 원조라 볼 수 있는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저녁'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만화들은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작품들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흉하게 각진 구형 '그랜저'를 보시면서 '그랜져가 못나진건지 내 눈이 각박해진건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드랬다. 하지만 내가 서글퍼지는 이유는 예전에 그렇게 재밌게 보던 만화책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기억할 만화에 한국 무협, 아니 한국 만화 조차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의 옛 만화를 추억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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