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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ㅣ 한국 현대사 산책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평점 :
해방 이후 현대사를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친일파들이 그대로 살아 남아 나라의 권력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그 때 살아남은 친일파들은 오늘날 유력 정치인, 기업인, 교육인이 되어 잘 먹고 잘 산다.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이들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치엔 돈이 필요하다.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김구까지 친일파 제거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정치 자금을 대줄 수 있는 게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식민지 하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독립 투사들? 상해를 거쳐 중경으로 쫓겨난 임시정부 요인들? 택도 없는 소리다. 당시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은 대개 친일파의 자금을 받았고 이 돈으로 정당을 운영하거나 각종 청년단을 만들어 정적 제거, 좌익 테러에 앞장 섰고 때로는 타 정당을 지지하는 민간인을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약탈하거나 강간했다. 그 중 최악의 청년 단체였던 '서북청년회'가 얼마전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재건위원회의 모습으로 나타나 세월호 추모 리본을 회수한 사건은 우리의 과거 청산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친일파와 극우 테러 집단은 유명 정치인에게 빌 붙어 돈과 폭력을 제공함으로써 생존을 보장받았다. 생존을 마친 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자체를 두 손에 넣고 주무른다.
둘째, 반탁은 애국이다. "1945년 12월 28일에 발표된 모스크바 결정은 먼저 임시 정부를 수립하게 되어 있었고 신탁통치의 방안은 결정하지 않았다. 임시 정부가 강력히 반대하면 신탁 통치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p145)." 그런데 동아일보(친일 지주들이 설립한 한민당의 기관지)가 일련의 오보를 내보냄으로써(소련은 친탁, 미국은 반탁) 대한민국은 반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동아일보가 왜 이런 오보를 냈을까? 태생적으로 친일파라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겐 그 과오를 가려줄 타이틀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반탁=애국'이라는 프레임이었다. 겨우 독립을 했는데 다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니? 이런 감정의 폭발은 신탁통치에 대한 이성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메세지는 단순할 수록 강하다. '반탁=애국'이라는 공식은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았고 친일파와 그들의 정당은 애국자로서 완벽한 세탁에 성공한다. 이는 또한 소련과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좌익 계열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프레임이기도 했다. 친일 경력으로 인해 대중적 지지가 전무했던 이들에겐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던 좌익 계열 정당을 두려워했다. '소련=친탁=좌익=매국노'. 오늘날 보수 정당이 위기의 순간마다 말도 안 되는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이때 거둔 승리의 유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셋째, 멍청한 양키놈들이다. 이미 일본 점령으로 원하는 바를 이룬 미국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관심이 없었다. 주둔 이후 그들이 벌인 첫 번째 만행은 독립 후 겁을 먹고 도망친 친일 조선인 경찰을 다시 경찰직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왜? 경찰질을 하려면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을 데려다 장기간 교육시켜 경찰을 만들겠다고? 미국의 머리 속엔 민중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저 행정의 효율화만이 있었던 것이다. 일반 행정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은 당연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선호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건 유학생, 유학을 가는 건 친일파. 물론 당시의 '통역 정치'가 비단 친일파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떠돌아 다니며 주워 배운 몇 마디 영어로 미군에게 붙어 적산(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산)을 차지한 사람도 많았고 이를 본 많은 지식인들이 통역관 자리를 얻어 미군정에 빌붙게 된다. 그 유명한 '사바사바'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사바사바로 자기 목구멍을 채운 인간들이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을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이로인해 대한민국 행정부는 친일파 또는 그들의 득세를 방조하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다.
먹고 살기 힘든 요즘을 곰곰히 들여다보면 언뜻 그 시대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법이야 뭐가 됐든 잘 먹고 잘 사는게 최고인 세상아닌가. 도덕과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을 '씹선비'로 매도하는 세상. 취업이 확정 됐는데 사주가 친일파였다는 이유로 입사를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친일 언론과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통역 정치' 시대의 사바사바인들과 매끈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결백을 자신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현대 한국인들의 특성인 극단적 이기주의, 보신주의, 한탕주의 등의 습성은 세상이 자본화됨에 따라 생긴 새로운 부작용이 아니라 해방 이후부터 줄곧 간직해온 오래된 전통이 아닌가 한다. 돌연변이 같은 현재는 없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일 뿐이다.
시작부터 얽힌 실타래는 70년 동안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됐다. 어느 쪽으로 당겨야 할까? 마음이 무겁다. 고민을 거듭할 수록 더더욱 복잡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