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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유명한 <아웃라이어>를 지금에서야 봤다. 물론 그 내용은 풍문으로 들었고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은 "재능이란 기나긴 인내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20대의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잘 할 자신은 눈꼽 만큼도 없었는데 그 일을 끝까지 해낼 자신은 누구보다 충만했다. 이후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꾸준히 시간을 적립하고 있다. 땡큐 모파상.
그래서 이 책의 주제는 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 내 삶의 방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웃라이어>는 성공이 타고난 재능에서 오는 게 아니라 1만 시간의 노력과 엄청난 운의 조합으로 탄생한다고 말한다. 설득력 있는 사례와 통계가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데, 이를 읽고 있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지기도, 때로는 "와 진짜 성공은 그냥 걸려드는 거에 불과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 주장은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상의 파격은 상당 부분 과대 포장된 케이블 광고 상품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만 시간의 법칙을 생각해보자.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조사해 봤더니 대부분 1만 시간의 연습이 끝난 시점부터 두각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재능이란 일정한 시간의 노력이란 공식이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조사 방법을 바꾸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러니까 1만 시간의 노력을 달성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공했는지 조사해보자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1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면 1만 시간을 노력하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통계의 함정이다. 캐나다 아이스 하키 팀의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대부분 1월 생이라는 통계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들 중에 1월 생이 많은 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캐나다의 1월 생 남자들이 모두 하키 선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말콤 글래드웰은 재능이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시아 청소년들의 수학 성적을 거론한다. 아시아 청소년들이 수학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유는 언어 체계(동양은 11을 십+일로 인지하지만 서양은 그냥 eleven. Ten으로 부터 eleven을 추론할 근거가 없다는 한계가 수에 대한 이해를 느리게 한다)에 있기도 하지만 쌀 농사를 지으면서 몸에 밴 인내와 성실의 결과라는 것이다(물론 인내가 수학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선 제시된다).
일단 인과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서양인 특유의 태도에 주먹을 날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는 것도 나는 거지만 근거 자체도 터무니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수학을 잘하는 국가는 싱가포르, 한국, 대만, 홍콩 그리고 일본이다. 이것이 과연 쌀 농사의 영향일까? 이들 국가는 대부분 최근에 비약적 산업 발전을 이룬 나라들이다. 가난한 국민들이 좋은 직장을 얻어 중산층이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지옥과도 같은 학구열이 형성됐다. 그래도 아직 쌀농사의 영향을 믿고 싶다면 똑같이 쌀 농사를 짓는 베트남,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마다가스카르, 이집트, 브라질은 왜 순위에 없냐고 묻고 싶다. 한가지 더, 말콤 글래드웰의 말이 맞다면 아시아 청소년들은 대학에 간 뒤 모두 자신의 수학적 DNA를 논 밑에 파묻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위대한 수학 연구가 대부분 미국에서 나오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성공이 때마친 조성된 시대의 흐름 때문이라는 주장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토록 오랜 세월 최고의 전문직으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 혁명의 여파로 수 많은 기업이 탄생하고 공업 노동자가 급증하고 이로 인해 대도시가 형성됨으로써 아주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변호사가 만든 건 아니잖아. 이같은 생각은 분배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시대의 혜택을 입었던 건 아니다. 역사를 보면 분명 시대 자체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들이 있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스티브 잡스가 때마침 형성된 실리콘 벨리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하이테크 제조업 회사를 창업하는데 유리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리콘 벨리는 저절로 생긴걸까? HP가 처음으로 그곳에 발을 디디지 않았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캘리포니아에 실리콘 벨리가 생겼을까? 스마트폰 혁명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은 시대의 요구가 아니었다. 시대는 그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는 건 오히려 우리를 시대의 수동적 대응자로 만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시대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의 멱살을 잡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성공을 보장하는 게 1만 시간이아니라 개인의 특출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1만 시간을 노력했어도 그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온다면 성공의 진짜 조건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그런데 왜 우리 중 일부 만이 그 시간을 뭔가를 열심히 연습하는 데 사용하는 걸까? 진정 1만 시간의 법칙이 맞는 말이라면 국가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가둬 놓고 하루에 3시간 씩 딱 10년 만 교육하자. 그러면 최초로 천재를 대량생산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가? 당신의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교육 제도를 가진 나라를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바로 우리가 나고 자란 국가다.
이쯤에서 솔직해지자. 1만 시간 동안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 젊음이란 종잣돈을 쥐고 나왔지만 먹고 마시고 노는 새에 그 돈은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그 돈을 모두 어디에 썼니?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거 하나 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노력을 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노력하는 것 사이엔, 어마어마한 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