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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평점 :
2016년의 책을 한 권 고르라면 나는 <밤의 파수꾼>을 선택할 것이다. 아일리쉬 하드보일드 누아르로 소개되는 켄 브루언의 대표작. 아이슬란드가 아니라 아일랜드다. 대영제국을 구성하는 4개국 중 하나인 북아일랜드와도 구분해야 한다. 아일랜드는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으로 부터 독립했다. 약소 민족이자(켈트족) 수탈의 대상으로 수백 년을 살아왔지만 불굴의 근성으로 번영을 이뤄낸 국가. 어딘가 한국의 근대화를 소개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지는 묘한 친밀감. 이런 변방에서 나고 자란 아웃사이더들은 시니컬함과 자기 파괴적 유머에 있어서 신적 능력을 부여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르다(아일랜드 공화국 경찰)에서 잘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정말 잘리고 싶다면 제대로 노력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대망신을 당하지만 않으면 그들은 거의 모든 잘못을 눈감아 준다.
(p.7)
가르다에서 잘리기 위해 잭은 과속하는 벤츠 한 대를 쫓아간다. 관용차였다. 끈질긴 추적 끝에 뒷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재무부 소속의 고위 간부였다.
"선생의 기사가 미치광이처럼 차를 몰았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그럼요, 간호사들과 놀아났던 그 얼간이 자식 아니십니까."
"꽉 막힌 친구로구먼. 자넬 당장 잘라버리라고 하겠어. 앞으로 자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안 되지?"
나는 말했다. "앞으로 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곤 그의 입에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p.10~11)
아일랜드인은 대부분이 알콜중독자다. 알콜중독자들의 대부분은 가르다가 된다. 아일랜드에는 사설 탐정이 없다. 잭은 알콜중독자 사설탐정이 된다. 꽤 유능하다는 명성을 얻지. 수임료가 쌌기 때문에.
<몰타의 매> 같은 걸 상상하면 안 된다. <밤의 파수꾼>에 비하면 <몰타의 매>는 전형적인 헐리웃 스타일의 클리셰 소설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고 거기에 기대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걸 알기라도 하듯 <밤의 파수꾼>의 사설 탐정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을 거듭한다. 펍에 앉아 술을 마시다 사건을 수임한 뒤 집에 돌아와 술을 마신다. 가르다에 정보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용의자의 집에 무단 침입한다. 냉장고에서 스테이크를 꺼내 구워 먹던 잭은 용의자가 들어오자 실수로 그를 죽여 버린다. 다시 쏟아지는 술폭탄. 쓰러져 정신 병원에 갇히고, 알콜중독자의 나라답게 세심히 짜여진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퇴원해 다시 술을 마신다. 사건의 극적 해결? 무슨 말을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 없이 많은 버스와 기차와 비행기를 놓쳤지만 결국엔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사건은 수 많은 실수와 바보같은 조사를 거치지만 결국 해결된다.
탐정 소설에 어울리는 정교한 플롯 따위를 운운하며 폄하하기엔 이 책이 뿜어대는 매력이 너무나 황홀하다. 잭은 내 독서 인생을 전부 건다 해도 찾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 인물이다. 잭은 수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 자신이 복수해야 할 놈을 부두 밖으로 던져버리는 인간이다. 잭은 알콜이 자신을 파괴한다는 걸 정확히 알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그는 인생이라는 공을 몰고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스트라이커다. 진짜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거.
알콜중독자와 독서광, 거기에 아일랜드를 더하면 지독한 유머가 탄생한다. 잭은 사건을 수임한 뒤 옛 끈을 이용해 가르다에 정보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감자튀김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르다로 추정되는 두 남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다.
"남의 일에 함부로 참견하는 거 아니야."
나는 울고 싶었다. "가즈에 신고해."
그들이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감자튀김이 먹고 싶으면 너희 돈으로 사먹어!' 하지만 피로 가득찬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p.54)
영화 <콘스탄틴>에서 콘스탄틴은 극적인 구원 이후에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를 끊고 껌을 씹는다. 어느날 잠에서 깬 잭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한 숙취에 시달린다. 잭은 콘스탄틴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게는 해장술이 필요했다.
나는 이 책을 감히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 옆에 꽂을 것이다. <밤의 파수꾼>을 읽어라. 종이가 닳을 때까지.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