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수학자를 위한 무한 이야기 - 보통 사람들에게 수학을! 복잡한 세상을 푸는 수학적 사고법 보통사람들을 위한 수학 시리즈
릴리언 R. 리버 지음, 휴 그레이 리버 그림, 김소정 옮김 / 궁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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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무한'이 순수한 추상의 영역으로 생각됐다. 실생활에선 관측하거나 경험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무한히 많은 것처럼 보이는 백사장의 모래알에도 정확한 개수가 있다. 깊디깊은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물 분자의 개수도, 심지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개수에도, 그것이 어마어마하게 큰 수이긴 하지만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수학이라는 영역 전체가 추상의 집합이다. 유리수니 무리수니 실수니 세상에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 사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혹자는 원주율을 거론하며 우리의 일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원형 물체를 생각해 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3.141592653589...로 끝없이 펼쳐지는 원주율도 사실 원의 지름과 둘레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나온 부수적 개념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원주율을 몰라도 얼마든지 원의 둘레를 잴 수 있다. 복잡한 무한의 도움 없이도 원은 늘 항상 그렇게 원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바꾼건 몇 년 전 어떤 수학책에서 발견한 간단한 증명 덕분이다. 여기에 잠시 그 증명을 소개한다.


0.999...처럼 9가 무한히 계속되는 수를 x라고 하자. 이때 우리는 x가 정확히 1이라는 사실을 몇 번의 계산으로 증명할 수 있다.


x = 0.999... 일때,

10x - x = 9.999... - 0.999...이고,

9x = 9 이므로,

x = 1이다.


놀랍지 않은가? 내가 그동안 무한에 관심을 갖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수학계에서 이룬 일종의 합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갖는 게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을 떠올려보자. 많은 사람들이 극한값의 계산 방법을 그저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물론 위 증명은 극한값 계산과는 다르다). 극한값 계산 방식에 따르면 n이 무한대일 때 1/n은 0으로 수렴하므로 1/n은 그냥 0이다. 도대체 왜? n이 무한대로 클 때 1/n이 한없이 0에 가까이 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0은 아닐 텐데 왜 0으로 계산해야 하는 거지? 원리를 밝히는 심오한 작업은 너무 어려우니 나중에 커서 하고 일단은 문제를 풀라는 의미였을까?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 채 다짜고짜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인생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부질없는 위로는 '인생은 원래 그렇다'는 말이다.


<길 위의 수학자를 위한 무한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수학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열어줄 책이다. 아주 아주 쉽게 쓸려고 노력한 데다 무한의 특성을 기하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 직관적이다. 서로 길이가 다른 두 개의 선분을 구성하는 점들의 개수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이 삼각형 하나와 그 내부에 그어진 3개의 직선으로 설명되는 걸 보고 있으면 경이감이 들 정도다. 다 된 걸 보고 난 뒤에야 이게 뭐? 싶겠지만 이걸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그리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모두 선생님을 해야 한다. 그것도 초등학교 선생님을. 대학 철학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졸업 후 의무적으로 교직 생활을 해야 하는 프랑스의 정책이 공감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마냥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기하학에서 집합으로 넘어가는 영역이 그렇다. 무한을 설명하는데 집합만 한 게 없고, 그래도 수식보다는 낫잖아?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막상 닥치고 나면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해하기 위해선 상당한 논리력이 필요하다. 한 줄에 결코 20자를 넘기지 않는 책이지만 그 20자를 읽고 읽고 또 읽어야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출퇴근 길에 후루룩 읽어치우기보단 퇴근 후 운동을 마친 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차를 한잔 마시며 하루에 딱 10페이지씩 차분히 읽을 것을 권한다. 출판사의 이름처럼 '궁리'가 필요하다. 그 궁리의 시간이 결코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딱 10페이지씩, 속는 셈 치고 한번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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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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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고기를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TV를 잘 보지 않지만 물고기가 나온다면 얘기가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제작된 물고기 관련 다큐멘터리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그런데 책을 꽤 많이 읽었음에도 물고기와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은 거의 없다. 물고기에 대한 내 애정을 시험하기 위해 나는 서점에서 관련 책이 보일 때마다 집으로 들고 온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에 내가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좋아하는 물고기가 37가지나 나온다니, 바다 생물들과 영혼이 연결된 내가 어떻게 기대를 감출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 책에는 청어, 대구 달랑 두 가지의 생선만 나온다. 37가지 이야기라는 건 이 두 생선과 관련된 이야기가 37가지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물고기 따위가 세계사를 37번이나 바꿨겠는가, 정도껏 바라야지, 하며 나의 부주의로 잘못을 돌리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사기를 맞은 것 같은 억울함이 몰려온다. 게다가 청어와 대구라니. 과메기에 미쳐있긴 하지만 요새 청어로 과메기를 만드는 곳은 거의 없고 오마카세를 가야 겨우 한 점을 만날 수 있는 생선이다. 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 물고기들은 내 일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방점을 '세계사'로 옮겨야 한다. 나는 물고기만큼 역사를 좋아하니까, 생선을 사이드 디시로 놓고 메인으로 세계사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수십 주 동안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러 치고는 너무 산만하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물고기를 중심으로 한 상업의 역사인지,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양 패권 다툼의 역사인지, 말린 생선이 가능케 한 장거리 항해의 역사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럽에 폭발적인 생선 수요를 일으킨 기독교의 역사인지 뚜렷하지 않다. 한자동맹, 네덜란드 독립사, 셰익스피어, 바이킹, 피시 데이, 신교, 구교의 역사를 300페이지에 욱여넣다 보니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겠다.


나라면 왜 청어와 대구였는지를, 아니 왜 청어와 대구이어야만 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 같다. 두 생선은 왜 유럽 역사의 중심이 됐을까? 맛이 있어서? 잡기 쉬운 데다 많이 잡히니까? 그 필연성에 대한 설명이 없다 보니 저 사람들이 왜 청어와 대구에 목숨을 거는지 공감이 잘 안된다. 이야기는 그냥 처음부터 그들이 청어를 절여먹는데서 시작한다. 솔직히 이 생선은 잔가시와 기름이 너무 많아 그렇게 맛있는 생선은 아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데다 그 '떼의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건 알기에 짐작은 가지만, 흠... 이 필연성 부재의 문제는 청어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등장한다. 대구는 깊은 바다에 사는 생선이라 잡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는 유럽인들의 마음에 불씨를 댕겼다. 그 동력은 더 좋은 맛을 향한 인간의 미식 욕망이었을까?(청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다) 대어에 대한(대구는 최대 신장이 1미터가 넘는다) 뱃사람의 로망이었을까?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흥미로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영국의 어업육성정책에서 프로테스탄트 혁명, 미국의 식민지 건설 역사, 각종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지루한 물고기 이야기를 두서없이 횡보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물고기가 아니다. 역사도 아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은 교보문고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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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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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유럽 쪽은 더더욱 관심이 없다. 그들이 가진 성이나 유적, 문화에 어떤 매력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평생 유럽을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게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누릴 충분한 여유가 있다면, 내 머리 속엔 딱 하나의 계획이 떠오른다. 바로 '누들로드'를 탐험하는 것.


유럽의 누들로드를 얘기하려면 이탈리아가 빠질 수 없다. 우선 카르타고의 한니발처럼 알프스를 넘어 밀라노에 도착한다. 그런 다음 베네치아, 피렌체, 피사를 거쳐 남부 도시 나폴리를 여행한 뒤 장화의 코끝으로 이동해 종착지 시칠리아로 떠난다. 유럽의 누들로드에 이탈리아가 빠질 수 없다면 이탈리아의 누들로드에선 절대로 시칠리아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바로 이 시칠리아에 대한 얘기다.


시칠리아는 오랜 시간 로마인들에게 밀을 제공해온 섬이다. 로마인들은 지배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평등하게 대우하는 지배 전략을 펼쳤는데, 유독 시칠리아만큼은 오랜 시간 속주로 남겨 지배했다. 그 이유는 역시 식량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칠리아가 조금만 삐딱하게 나와도 팍스 로마나의 대업은 쉽게 흔들렸을 것이다.


이런 섬에선 어떤 기운이 느껴질까? 김영하에 따르면 시칠리아의 태양은 작살처럼 내리 꽂힌다. 작살에 맞아 검게 그을린 피부를 생각하면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삶이 자동으로 떠오르지만 김영하가 여행한 시칠리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섬엔 항상 여유가 넘치고 계획이 없다. 기차 시간표는 한 번도 제대로 맞은 적이 없고 그나마 취소가 되기 일쑤였다. 지천에는 언제든지 잡아올릴 수 있는 해산물이 즐비하고 구멍가게에선 어디나 질 좋은 파스타와 올리브유를 판다. 아랍인이 선물하고 간 오렌지는 빛이 바래 누렇게 뜬 바위섬에 황금빛 포인트를 더한다. 아침 일찍 깨어난 섬은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다 해가 지면 다시 일을 시작해 끝내고 싶을 때 끝낸다. 작살같은 태양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요리조리 피하고 숨어다니는 것이다.


시칠리아로 떠나기 전 김영하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고 한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출간한 소설들이 꾸준히 팔렸고 국립대학의 교수였으며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였다. 서울에는 본인 명의의 아파트가 있었고 영감의 원천인 아내가 함께했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칠리아로 떠나 계획하지 않는 삶을 배워온다. 시간에 맞춰 뭔가를 해내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다음 것을 계획하고, 그렇게 해야만 삶이라는 숙제를 덜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흐르는 듯 사는 시칠리아 사람들을 보고 나니 삶이란 게 꼭 그런 식으로만 동작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숙제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열심히 해도 늘 불안이 남는다. 해답은 숙제를 해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없애는 데 있었다. 지중해의 타오르는 섬은 그에게 태양을 피하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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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의 유산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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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7세가 된 존 르 카레가 자신의 24번째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놨다. 냉전시대에 태어난 이 스파이는 21세기도 5분의 1이나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필드에서 암약 중이다. 50년 전 그의 적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었고,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해부터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누가 그의 적이 돼야 할까? 오사마 빈 라덴은 CIA가 암살한 지 오래고 기세를 떨치던 IS는 궤멸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부활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 여왕 폐하의 쇠락한 정보부는 칼끝을 잃고 방황한다.


<스파이의 유산>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속편이고 그 말은 우리의 스마일리와 피터 길럼과 짐 프리도와 코니 삭스와 리머스와 그리고 더러운 두더쥐 빌 헤이든이 다시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했던 피터 길럼은 이제 보청기에 지팡이를 짚는 노인이 됐다. 그는 평화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다 런던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정보부 요원은 은퇴한 뒤에도 정보부가 원하면 어느 때든지 정보부를 위해 복무할 의무가 있다. 피터 길럼은 반역자가 아니었고 정보부의 부름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연금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존 르 카레가 위대한 점은 그가 전직 스파이였기 때문도, 진짜같은 스파이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도 아니다. 존 르 카레를 위대한 소설가로 만드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갖는 특유의 리듬이다. 그의 문장은 천천히 걸으면서도 뚜렷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풀숲에 몸을 웅크린 채 숨죽여 먹이를 노려보는 사자처럼, 존 르 카레의 침묵은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과 언어가 된다.


런던에서 편지를 받은 뒤 피터 길럼은 과수원을 뛰노는 아내와 딸, 그리고 염소, 귀가 먹은 일꾼을 좇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안식의 장면과는 달리 머리 속은 이미 전쟁을 시작한다. 노련한 스파이는 런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한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오랫동안 진실을 덮어뒀던 검은 장막을 들춰낼 것 같다. 그 안에서 조지 스마일리와 피터 길럼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숨겨둔 과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보부는 과거를 부정할 것이고 구더기가 들끓는 진실을 오롯이 피터 길럼의 손 위에 올려둘 것이다. 늙은 피터의 영혼과 육체를 적의 먹이로 내어주고, 정보부는 유유히 어둠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때는 피터에게도 그런 희생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대의를 위해 죽어나간 동료들이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하지만 사라지는 동료의 수만큼 커져가는 회의가 그를 괴롭힌다. 그 어떤 대의도 그토록 수많은 희생을 정당화할 자격은 없다. 아니, 그들이 믿었던 대의는 사실 단 한 명의 목숨도 감당하기 어려운 껍데기에 불과했다. 존 르 카레는 늙은 스파이들을 소환함으로써 그 대의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거래는 등가교환. 보청기 없이는 듣는 것도 어려운 노인을 건네준 대가로 지킬 수 있는 가치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는가?


<스파이의 유산>은 존 르 카레가 그의 신도들에게 내려주는 마지막 축복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스파이들에게 최후를 고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늙은 스파이가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이 엮은 세계에 매듭을 짓는다. 다시는 이들을 못 본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이 책을 곱씹고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나갔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추운 나라로 돌아갈 수 있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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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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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소설은 시간을 거스를수록 단맛이 강하다. <덧니가 보고 싶어>는 2019년에 재간한 것으로 실제론 그녀가 스물여섯에서 일곱 언저리에 쓴 소설이다. 무려 10년 전 이야기. 전설의 다케이코 이노우에도 슬램덩크 1권과 26권에선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느 정도 감안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쓰고 뭔가 묘한 불안감이 들어 다시 책을 펴보니 내가 <덧니가 보고 싶어>를 <지구에서 한아뿐>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위의 문장들은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유효하다는 게 놀랍다. 그녀의 10년 전 장편 소설 두 개는 이제 막 마법의 가루를 쓰기 시작한 초보 요리사처럼 같은 맛이 난다. 제육볶음과 뚝불을 먹었는데도 두 맛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정세랑은 <지구에서 한아뿐>의 지면을 빌려 '이렇게 다디단 이야기'(p.224)를 다시는 쓸 수 없겠다고 말했지만 그건 이제서야 그렇다는 얘기고 당시에는 이런 걸 엄청나게 많이 쓴 게 분명하다. 정세랑은 현재의 인기 덕에 과거가 발굴되는 소설가다. 같은 시기에 쓴 두 개의 장편이 이토록 비슷한 걸 보면 당시 그녀의 인생을 솜사탕 같은 연애감정이 사로잡은 게 분명하다. 정세랑은 누구보다도 자기 생활을 소설에 눌러 넣는 걸 잘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런 연애를 해서라기 보다는, 현실에선 전혀 이루지 못한 연애의 환상들이 단맛으로 응축되어 이야기에 발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현재로 소환된 과거는 늘 이런 위험에 처해 있다. 내 친구 중에도 25세 이전의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한 놈이 하나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는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처럼 정세랑의 시간을 거스르고 있는 사람들에겐 눈 앞에 펼쳐지는 과거의 민망함에 표연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녀의 소설을 고를 땐 반드시 '시간'을 따져봐야 한다.


<덧니가 보고 싶어>는 정세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여자 주인공 재화와 그녀의 전남친 용기가 운명적 재결합을 하는 소설인데, 작중 소설가이기도 한 그녀의 문장들이 용기의 몸 구석구석에 나타나는 게 계기가 된다. 주인공은 모든 소설에 용기의 일부를 반영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반드시 그 인물을 죽인다. 지금껏 아홉 번이나. 딱히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자기도 모르게 소설만 쓰면 그런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재화는 세상의 남자를 딱 두 종류로 구분하는데,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남자와, 평생을 함께할 엄두는 나지 않지만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를 함께하고 싶은 남자다. 재화에게 용기는 후자에 속한다. 한편 용기는 재화를 정말 이상했던 여친으로 기억한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고, 손을 잡아도 잡은 것 같지 않은 여친.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그녀의 '덧니'가 떠오른다. '안개 같은 얼굴을 뚫고 단단하게 올라오는, 보석 같은 덧니(p.50)'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인터넷에서 정세랑의 사진을 모조리 검색해 그녀에게 덧니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실패했다.


둘 모두 헤어짐이 대단치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켠엔 빠지지 않은 조각 하나가 남아있었다는, 그래서 우리는 사실 다시 만날 운명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세상에 운명 같은 사랑 얘기가 많은 이유는 사실은 그런 게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달달한 게 땡길 때도 있고 먹는 게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 걸 먹을 땐 언제나 이빨이 썩는 걸 조심해야 한다.


추신. 이런 혹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체로 정세랑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나는 '작가의 말'에 담긴 그녀의 생각을 존경한다.

'여전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간절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가벼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하며,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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