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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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은 임씨 성을 가진 계장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공기업을 정년퇴직한 뒤 임계장으로 살아야 했던 60대 남자의 근무일지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이었지만 38년을 근무한 뒤에도 손에 남은 건 거의 없었다. 퇴직금은 오래전에 중간 정산해 집을 마련하는데 썼고 딸의 결혼 자금으로 저축한 돈 대부분이 들어갔다. 연금은 아직 '젊은' 탓에 미리 수령할 경우 금액의 손해가 컸다. 남아있는 주택담보대출과 *자녀들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저자는 임계장의 삶을 시작한다.


임계장의 삶은 고속터미널 배차원에서 시작해 아파트, 빌딩, 터미널 경비를 전전하다 과로사의 위기를 맞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는 중병을 얻고 나서야 그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데, 서글픈 건 몸이 좀 괜찮아지자마자 스스로 그 지옥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임계장은 '치열하게 살다 보면 병도 나를 이해해 줄 것이다 믿'으며(p.51) 다시 생계 전선에 뛰어든다.


임계장의 육체를 무너뜨리는 게 열악한 근무 환경과 격무라면 정신을 무너뜨리는 건 부당 해고와 인격 모독이었다. 고속터미널 배차원에서 짤린 건 근무상 재해를 당해 '병가'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을 할 땐 꽃밭에 물을 주라는 자치회장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게 문제였다. 임계장은 호스가 고장 나 양동이로 물을 퍼 날랐는데, 그 모습이 자치회장의 눈에 반항과 태업으로 보였던 것이다. 빌딩 경비 시절엔 입주 회사 본부장의 사모에게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교육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의 수준이 크게 다를 것 없는 동일 계층 안에서도 신분의 고하를 나누려는 독특한 잔임함을 보인다. 주민들이 엉터리로 해놓은 분리수거를 딸을 흘리며 다시 하는 임계장의 옆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는 주민이 '공부 안 하면 너도 커서 저렇게 된다'는 말을 꽂는다. 문 앞에 매일 쓰레기 더미를 쌓아놓는 주민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니 '그런 건 경비가 알아서 치우라며 종량제 봉투 값을 눈 앞에 뿌리'고 사라진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위안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암으로 죽는 그 순간에도 우리 몸에는 암세포보다 정상 세포가 절대적으로 많다. 세상을 망가뜨리는 건 늘 소수의 악마들이다. 저자 조정진 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 책에 실린 경험담은 대다수의 경비원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만을 선별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끔찍한 일을 겪은 적도 많지만 그건 자신만이 경험한 '특수한 사례'라고 선을 그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의 수 많은 노인들이 임계장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임계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용주들은 임계장이 임계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열악한 근무 환경에 격무와 박봉, 인권 유린과 모독을 버무려 바퀴벌레도 물고 가지 않을 일자리를 만든다. 노인이란 세상의 하이라이트에서 벗어난 존재라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삶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간혹 이런 노인들의 비극이 미디어의 관심을 받지만 우리가 보이는 감정은 '공감'이 아니라 '연민'이다. '남의 일'을 구경하면서 비롯되는 감정인 것이다.


임계장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공기업에서 38년이나 근무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임계장이 됐다. 그가 임계장이 된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이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우리도 언젠가 임계장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임계장을 법률로 보호해야 하며 이를 위해 아파트 관리비와 세금이 오르는 걸 아까워 해선 안된다. 사실상 그건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전 직장에서는 아들과 딸, 두 자녀의 대학 학자금 대출금을 갚으라며 그러지 못하면 집을 압류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애초 학자금 지원은 감독관청을 의식해서 형식상 '대출'이라 했지만 그 실질은 회사 복지 기금에서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감사 과정에서 대학 학자금 무상 지원은 공기업의 과도한 복지에 해당해 부당하므로 모두 회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었다(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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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의 양자 공부 - 완전히 새로운 현대 물리학 입문
김상욱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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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모두 원자로 구성되고, 원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양자 역학이므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양자 역학을 알아야 한다.


<김상욱의 양자 공부>가 여타 다른 책과 비교해 돋보이는 점은 단연 난이도다. 어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 학문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다. 역사는 그 자체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라 복잡한 이론이 등장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만 아는 걸로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는 참 좋지만 그 분야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곁가지만 만졌다는 기분이 들면서 갈증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양자 역학의 역사와 핵심 이론을 잘 섞어 놨다. 내용은 크게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양자 역학의 태동에서부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사이를 훑으며 양자 중첩, 도약, 얽힘 등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과학자들, 그들이 진행한 실험, 그리고 자기들끼리 벌인 유명한 논쟁들을 풀어놓는다. 2부는 현대 양자 역학에서 흥미롭게 다뤄지는 상세 분야들, 예컨대 양자 역학과 카오스 이론, 양자 컴퓨터, 양자 다중 우주, 마지막으로 생명체의 양자적 해석 같은 개념들을 소개한다. 이중 생명체의 양자적 해석은 다른 차원의 일로만 느껴지는 양자의 세계를 삶의 코앞까지 끌어당김으로써 어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양자 역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개별 원자와 그 집합체의 행동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 원리는 우리가 음식을 먹고, 숨을 쉬고 에너지를 대사 하는 과정을 설명할 시동을 걸고 있다.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우리의 과학 교과서는 송두리째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짜임새로만 본다면 1부가 압도적이긴 하다. 사실 1부와 2부는 양자 도약 수준의 괴리를 보여준다. 1부가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 이야기를 만든다면 2부는 한번 도약한 양자가 지속적으로 점프하며 각 장을 넘어다니는 느낌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고, 현대 양자 역학의 이슈를 가장 흥미로운 순으로 나열한 것 같다. 1부가 본격적인 양자 역학 공부를 위한 수련 과정이라면 2부는 심화 학습을 위한 양자 역학 카탈로그랄까? 1부에서 핵심 개념을 모두 이해한 사람이라면 이제 2부의 주제 중 하나를 골라 퀀텀 점프를 하면 된다.


1, 2부가 모두 1부와 같은 짜임새를 갖췄다면 더 좋은 개론서가 될 수 있었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짧은 책 한권에 녹여내려는 취지는 이해가 된다. 후기를 보니 책은 다양한 지면에 소개한 칼럼들을 편집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하니, 애초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쉽고 재밌다. 어쩌면 한국 과학자가 한국말로 쓴 양자 역학 교양서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환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번역서가 아닌 양자 역학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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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노트
김규항 지음 / 알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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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처럼 빨갱이 공포증이 심한 나라에서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치를 떨며 종북주의자들을 심판하려 하지만 마르크스라는 이름 앞에서는 물음표를 떠올린다. 어디선가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지? 적어도 한국에서 오독의 대상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공산주의다.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무능하고 잔인한 독재자의 지배 아래 노동과 생산, 개인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꿈꾼 건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모든 개인이 제 개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사회였다(p.18)'. 혁명을 하려면 공산주의라는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2) 공산주의의 영어 단어 communism은 '공동체', '공유', '공공'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비롯했다. 번역하면 '공동체 주의' 정도가 적당했겠지만 대한민국의 근현대 학문이 다 그렇듯 어느 일본 사람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공산주의'가 됐다. 공동생산. 끔찍한 기숙사식 공장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사실을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이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살펴보자.


(4) '이윤은 유통 과정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원가 1만원짜리 상품을 시장에서 1.5만 원에 팔았을 때 생산자는 '5천 원의 이윤이 났다'라고 말한다(p.32)'. 바꿔 말하면 이 말은 소비자가 5천 원을 손해 봤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법은 지금부터다. 우리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기 때문에 이득과 손해가 무한정 반복되며 사회 전체의 이득은 0으로 수렴한다. 이런 사회는 지속이 불가하다.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생산과 소비 활동이 늘 일대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의 총 이득은 0이 됐다가도 곧바로 다시 늘어난다는 가정은 가능하다. 예컨대 노트북을 한대 샀다고 하자. 구매 가격은 생산원가의 1.5배인 150만 원. 프리랜서인 나는 이제 노트북을 구매한 회사의 일을 하청 받는다. 비용은 실제 노동 가치의 1.5배인 150만 원. 하지만 이 비용이 지급되기 전까지 사회의 총 이득은 0이 아니다. 비용이 입금되는 순간 0이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새로운 일을 맡게 돼 나는 영상 편집용 노트북을 한대 추가 구매한다. 이처럼 총 이득은 0으로 수렴했다가도 곧바로 늘어난다. 이 가정이 맞다면 부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부는 늘 특정 집단에 집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으로 미루어보아 이윤은 유통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5) '이윤이 유통과정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생산과정'에서 나온다는 뜻이다(p.34)'. 생산자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원료, 기계 설비, 토지, 사무실 같은 것들이고 또 하나는 노동력이다. 전자는 그 가치가 정해져 있어 스스로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감소한다. 간혹 지대나 건물(사무실)의 가치가 상승해 이득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통상적 영업 행위는 아니다. 실제로 그런 가치 상승만으로 경영을 지속하는 회사는 없다. 그렇다면 경영 지속을 위한 잉여가치는 노동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마르크스가 밝혀낸 비밀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이 노동자가 노동으로 만들어낸 가치보다 작다'는 데 있다(p.35).'


(6) 8시간 노동 중 4시간은 우리 자신을 위한 '필요노동'이고 나머지 4시간은 자본가의 잉여 가치를 만들어내는 '잉여노동'이다. 이것이 착취처럼 보인다면 심각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이것은 착취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착취 그 자체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착취가 절대적으로 '합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발적인 계약을 통해 피착취자가 된다. 올해 연봉계약서에 동의를한 건 누구였지?


<김규항의 혁명노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와 해독, 그리고 재해석을 광범위하게 다루지만 생각의 편린들을 위에서처럼 짧은 호흡으로 쏟아낸다. 기승전결을 갖춘 긴 글을 원한 사람들은 실망할 수 있다.


김규항은 늘 혁명을 꿈꾸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혁명을 실천해 온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달려 나가는 속도를 보면 그 꿈이 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말 자본주의가 문제일까? 나는 '계층'이라는 단어를 꺼냄으로써 쏟아질 오해가 두렵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현실이므로 솔직하게 말해보려 한다. 하루하루가 치명적인 빈곤계층에게 내 말은 배부른 돼지의 역겨운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계층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돌릴 핑계인 경우가 많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자아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대개 실현해야 할 자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다.


숨 막히는 경쟁 사회의 안개를 걷고 나면 우리는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찾아온 여유를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엔 오랜 연습과 습관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가치가 없는 일을 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덜 쓰고 덜 입고 덜 마시고 덜 가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쓰고 더 입고 더 마시고 더 가지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거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욕망이 만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욕망이 자본주의를 만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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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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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오래전 이긴 하지만 <한자와 나오키>를 처음 봤을 때 그 몰입감은 대단했다. 금융회사에서 벌어지는 부정과 모략, 음모와 배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혈혈단신으로 돌파해 나가는 한자와 나오키. 등장인물들 간의 수싸움에 깊이가 있었고 클라이맥스의 쾌감은 소년 만화처럼 폭발적이었다. 시청률은 고공행진이었으나 제작비가 너무 커져 차기 시즌 제작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멀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에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 한국에 출간된 것이다. 옛 기억에 다시 한번 정주를 마음먹었으나 권수가 많아 포기. 그 옆에 동일한 작가가 쓴 이 책 <일곱개의 회의>를 집어 들었다.


저자 이케이도 준은 은행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이후 작가로 전업했다. 경험을 살려 주로 은행, 대기업 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며 그곳에서 벌어지는 추잡한 일들을 이야기의 원료로 삼는다. <일곱개의 회의>는 그 전형에 속하는 소설로 대기업과 그 계열사 그리고 협력업체 간의 비리를 다룬다.


<한자와 나오키>와는 달리 이 소설엔 주인공이라 할만한 인물이 없다. 제목이 암시하듯 몇 개의 이야기가 마치 연작 소설처럼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몰입감은 기대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솔직한 평이다. 500페이지 짜리 단권으로 엮기엔 이야기가 너무 산만하다. 구성의 약점은 등장인물의 평면적 묘사로 이어지고, 안 그래도 주동자가 없어 이입할 대상을 찾기 힘든 소설을 더 가볍게 만든다. 깊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이야기는 얇디얇다. 이런 걸 바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 부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궁금하다는 점이다. 이제부터인가? 하는 기대감은 오래지 않아 정말 여기까지인거야? 하는 대답 없는 외침으로 끝나지만 기대와 실망의 밀당을 반복하며 탈독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텐션은 유지한다. 끝나고 나면 '역시 이 사람은 아니었어', 하는 연애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기대가 지나친 탓이라고 한다면 글쎄, 이미 <한자와 나오키>를 봐버린 걸 어쩌란 말입니까?


이야기가 단순해 중간 중간 몇십 페이지를 건너뛰어도 읽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500페이지의 빵빵한 체구는 대부분 물살이다. 읽는 게 느린 사람도 며칠이면 충분할 것이다. 집 밖에 나서기가 무서운 요즘 읽기에 취미를 들이고 싶은 직장인이라면 이런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케이도 준의 <일곱개의 회의>. 첫 만남은 비록 아쉬움의 연속이었지만, 영 안 보고 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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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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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몬교라는 종교가 있다.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를 부활시킨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종교는 몇몇 독특한 생활 신념을 강조한다. 1800년대 후반까지 일부다처제를 고집했다. 비록 정식 교리에서 배제되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많은 아이를 낳아 대가족을 이루고 산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일체의 문명을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은 죄악. 콜라를 마시는 것도 죄악. 발목 위로 살이 드러나는 치마를 입은 여자는 바빌론의 창녀로 간주한다. 공교육은 이교자들이 타락한 지식을 전파하는 뱀의 소굴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살았다.


우리가 이 근본주의자의 행동이 단단히 잘못됐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우리의 머리 속에 이미 다른 세계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세계는 언제 어떻게 내 머리에 들어왔을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며 하나의 사고 틀을 형성해 간다. 이 틀은 지극히 배타적이라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들은 최선을 다해 노출을 피하거나 인지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년 시절의 다양한 경험은 아주 중요하다. 서로 다른 경험들은 내 머릿속의 세계와 다른 세계의 충돌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자주 일어날수록 점점 균열이 생겨 두 세계가 합쳐진 새로운 사고 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폐쇄된 가정에서 폐쇄된 지식만을 주입받은 사람들은 그래서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사고 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것을 거대한 음모 또는 이단자의 공격으로 치부하거나 신이 내린 시험으로 받아들인다.


저자의 가족들은 절대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데 그건 천사와 하나님이 그들 가족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가족은 한 차례 큰 차사고를 겪는다. 가족 모두가 죽을 뻔했고 엄마는 심각한 두뇌 손상을 입었다. 당연히 병원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살아났다. 가족은 몇 년 뒤 다시 한번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안전벨트는 여전히 매지 않은 채였다. 밖에는 산악 지방의 차가운 돌풍이 불고 있었다. 도로가 얼음으로 뒤덮였다. 작은 눈송이가 차창으로 달려와 부딪혔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속력을 높였다. "좀 더 천천히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가 물었다. 아버지는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천사들이 날아서 따라오지 못할만큼 빨리 달리는 건 아니야."(p. 154)


아버지의 신앙은 점점 더 피해망상과 편집증으로 변해갔지만 자식들 모두가 그런건 아니었다. 죽음의 위기가 믿음에 균열을 냈고 그들을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처음엔 오빠가, 그리고 그녀가. 타라 웨스트오버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배움의 발견>은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탈출한 경험을 눈물로 쏟아내는 간증도, 분노에 차 폭로하는 비판서도 아니다. 타라 웨스트오버는 판단을 배제한 채 자신의 인생을 담담히 써 내려간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고, 언제나 미화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녀의 슬프고도 아픈 기억들은 어딘가 모르게 숭고함이 느껴진다. 이런 책에 자기계발서 같은 제목을 붙인 출판사는 반성을 해야 한다.


인디애나의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초기 미대륙 개척민들의 수난기나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인간들의 고군분투를 보는 것 같다. 폐차장에서 고물을 모으고, 약초로 오일을 만들고, 아프면 해가 들지 않는 지하실로 내려가 소파에 눕는다. 문장은 차분히 가라앉아 그녀의 기억을 소설처럼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야이기들은 모두 소설이 아니다. <배움의 발견>은 진짜 같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 같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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