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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의 연쇄살인 추적기
권일용.고나무 지음 / 알마 / 2018년 9월
평점 :
넷플릭스에서 <마인드헌터>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열광했다. 내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해의 난도가 높을수록 그 대상은 나를 더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최근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형 연쇄살인마들의 범죄 동기를 이해하는 건 사실상 불가하다. 그들에겐 아무런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살인을 트리거링하는 자극이 있을 뿐이고, 마치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졸음이 와 잠을 자고, 배고파 밥을 먹는 것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최초의 연쇄살인마들이 대대적 수색과 수사에도 쉽게 잡히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동기' 때문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비과학적 수사 방식과 낡은 경찰 조직의 경직성에 그 원인을 돌리곤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연쇄살인은 말 그대로 전례가 없던 사건이었다. 특히 한국처럼 폭발적 경제 성장으로 전통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가 문지방 넘듯 전환된 나라에서는 더더욱 급작스러운 사회 현상이었다.
이전까지 살인에 대한 수사는 모두 '동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이유가 무엇인가. 금전인가, 치정인가, 원한인가? 범주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단순했고 피해자의 금전 거래와 사생활을 탐문하면 용의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순간 네 살 난 여자 아이가 토막 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돈 문제, 치정, 원한이 얽혀있어야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일은 일면식도 없는 범인에 의해 저질러졌다. 수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황무지에서도 늘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미국에선 존 더글라스가, 한국에선 윤외출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골방에서 소규모 팀으로 일하며 때로는 무시와, 때로는 질시를 견디며 묵묵히 그 일을 해나갔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윤외출과 권일용이 시작한 한국 프로파일링의 역사를 다룬다. 위에선 윤외출을 존 더글라스와 나란히 두었지만 실제 범죄 현장에서 발로 뛰며 체계를 잡은 건 권일용이었다. 집이 너무 가난했던 청년. 고등학교 졸업 후 막일을 하다 영장을 받아 그동안 번 돈을 어머니의 약값으로 모두 보내고 입대한 남자. 권일용은 한때 신부를 꿈꿨다. 가진 게 없어도 남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순경 공채에 합격하여 조폭을 때려잡는 기동대에서 근무하다 윤외출의 눈에 들어 프로파일러가 된다. 이후 권일용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한국 프로파일링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이 책은 내가 여태껏 읽어온 프로파일링 책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책이다. 이론서가 아니라 사례분석집(Case Study)이다. 수사 과정을 동일하게 밟아가며 범죄자의 심리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용했는지 상세히 배울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를 읽으며 재미있었다고 말하기가 좀 멋쩍지만, 책장을 넘기는 동안엔 시간을 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