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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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피플>은 전형적인 하루키 소설이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등장인물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 '환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루키는 단단하게만 보이는 우리 세계가 실제로는 얼마나 놀라운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메타포를 이용하여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우리 지구는 초속 30km로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는데 약간의 덜컹거림은커녕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한다. 초속 30km라니. 총알의 속도가 초속 300m니까, 이보다 100배 빠른 공 위에 올라 우주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멈춰 서서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인식의 성긴 그물망을 촘촘히 당겨 당연하게 흘러나가던 것들을 잡아채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이야기로 바꿔낸다. 알쏭달쏭한 메타포를 입혀서. 그럴듯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때로는 공포스럽게. 때로는 미궁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TV피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 등장한다. 가구를 재배치한 뒤 들고 온 TV를 설치한다. TV피플은 나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TV피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본다. 바라만 볼 뿐이다. 텔레비전은 말끔한 신품이었다. 취급설명서와 보증서까지 비닐 주머니에 담겨 TV옆에 셀로판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TV피플이 벽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스위치를 눌렀다. 지글지글한 하얀 화면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TV를 점검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하나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내 위치에 앉아, 텔레비전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했다.


이윽고 일을 마친 아내가 집에 돌아온다. 나는 아내가 새  TV의 출현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 아내는 예민한 여자다. 장식장에 쌓아놓은 잡지의 순서를 기억할 정도로. 가구의 배치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그 TV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TV를 켜고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지글지글한 흰 화면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TV피플>은 여러 개의 단편을 엮어 만든 책이다. 맨 마지막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단편인 <잠>도 수록되어 있다. 나는 이 <잠>을 단행본으로도 갖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 아래 자리 잡은 불안을 절제된 문장으로 포착하는 절묘한 소설이다. 평탄하다 못해 밋밋하기까지 한 전개 뒤에 갑작스러운 균열이 나타나 빨아들일 때, 추락할 때 맞닥뜨리는 그 느낌, 안전벨트가 나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막을 수 없는, 순수한 공포가 몸속에 스며든다.


그 밖에는 뭐, 그냥 하루키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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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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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 살고 있는 아랍계 청년 아모르가 있다. 클럽에서 밤새 놀고 다음 날 깼더니 전화와 메시지가 수십 통 와 있었다.


"너 봤어? 자동차 폭탄이 있었대. 다이너마이트로 꽉 차 있었대"


스톡홀름 시내 한 복판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졌다. 용의자는 작고 긴 머리에 턱수염이 있는 아랍계 남자였다.


"너 어젯밤에 뭐 했어?"


"기억이 안 나.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토를 좀 했지"


"아모르? 아모르?"


아모르에게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절친 샤비에게서, 사촌에게서, 카롤리나에게서. 카롤리나의 동물권익보호 단체에서 일하는 여자였다. 카롤리나는 아모르에게 정기 기부를 권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모르는 카롤리나라는 이름이 가짜라는 걸 알았다. 아모르가 카롤리나에게 물었다.


"진짜 이름이 뭐예요?"


카롤리나는 아모르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놀랐다.


"내 이름은, 골바리..."


거봐, 당신은 거짓말했어. 아모르는 의기양양해진다. 그러다가 곧 난관에 봉착한다. 골바리가 아모르의 목소리를 기억해 낸 것이다.


"아모르, 당신 마리아 학교를 다닌 거 맞죠? 샤비라는 사람을 알죠?"


"이런. 완전히 조용해졌네? 아모르, 거기 있어? 나는 널 기억해. 네가 같은 반 여자애를 스토킹 했던 것 기억나, 그 여자애가..."

(p. 116)


아모르는 전화를 끊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놓친 통화가 2개 있었다. 모두 샤비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모르 전화 좀 줘."


아모르는 샤비가 아니라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떻게 지내세요?"


"안 좋아."


"왜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 못했니?"


오랜만에 전화를 한 외할머니는 자꾸 딴 소리를 한다. 아모르는 외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될 뿐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외할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묻는다.


"아모르? 거기 있니?"


길을 걷던 아모르의 앞에 경찰차가 한 대 선다.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건다.


"알았어. 알았어."


"뭐가?"


"그러니까 그거..."


"그게 뭐?"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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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비용 - LGBT 경제학
리 배짓 지음, 김소희 옮김, 이호림 감수 / 글항아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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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Q가 대체 뭐가 문제인가? LGBTQ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그리고 이들 모두를 통칭하는 퀴어를 의미한다. 아직도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 문화 탓에 대놓고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 주변엔 상당히 많은 LGBTQ가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일하고, 먹고, 웃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LGBTQ임을 알았다고 같이 일하고, 먹고 웃었던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비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와 잘 지냈던 직장 동료가 사실은 강간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땐? LGBTQ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저 성적취향이 다른 사람일 뿐이다.


당신이 남자고, 당신과 아주 친밀하게 지냈던 남자동료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자.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가? 회식 장소에서 그가 당신을 덮칠까 봐? 이런 두려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단 하나의 가정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당신은 매 회식 때마다 이성애자 여성 동료를 강간하고 싶은가? 언젠가는 반드시 그 일을 실행하고 말건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게이 동료도 마찬가지다.


LGBTQ 차별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리보다 앞서는 무엇인가다. 당신이 눈, 코, 입을 갖고 태어난 게 당신의 권리가 아니듯이, LGBTQ는 사회적으로 차별을 금지하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물학, 혹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오해와 편견은 두텁다. 그래서 인권이니, 경제적 손실이니 하는 걸 끌어다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에 집중한다. '차별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 차별로 발생하는 금전적 손실은 기업의 이익에서부터 사회의 공격이 LGBTQ에 유발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따른 의료 비용까지 광범위하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은 수많은 통계를 제시한다. 그래서 책 자체는 굉장히 지루하다. 게다가 '비용'에 대한 지적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사람들은 결국 이 비용이 LGBTQ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LGBTQ 때문에 내 인센티브가 줄어들 수 있다고? 그럼 다 없애버려야지!!


저자도 차별의 경제적 논의가 결코 인권에 대한 논의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한다. 세상에는 여러 이해당사자가 있고, 설득할 수 있는 요소들이 다르니, 이런저런 방법을 합치고 응용해 차별을 막자는 것이다. '차별 비용'은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일리가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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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양장) -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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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는 유라시아의 구세계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이유를 탐구하는 책이다. 놀라운 두께에 질려버릴 수도 있지만 내용은 명쾌하다. 주장을 전개하고 예상되는 반박에 재반박하는 구조를 가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내용이 있고, 자연스럽게 두꺼워졌을 뿐이다. 어려운 내용은 정말 하나도 없다.


유라시아가 타 대륙보다 더 발전한 문명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잉여농산물의 생산이었다. 잉여생산물은 필연적으로 분배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복잡한 사회시스템 예컨대 법, 정치, 행정, 군사, 종교, 문자 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조직을 운영해 본 사람은 3명만 모여도 엄청난 갈등이 생긴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수 만, 수십 만 명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두기 위해선 정교한 사회 시스템과 특히 이 구성원들을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고유의 '신념 체계'가 필요하다. 신화와 종교는 대부분 이러한 필요에 따라 '발명'되었을 것이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 순서가 반대라고 주장한다) 잉여생산물은 생산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오직 이러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 발전시키는 일에만 전념하는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었다. 이로써 사회의 발전과 생산물의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자, 인간이 모여있으니 이제 '균'이 등장할 차례다. 수렵, 채집 시기 인구는 적었고 그나마 띄엄띄엄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전염병의 입장에선 아주 척박한 시대였다. 그런데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키고 꽉꽉 모여 살아준 덕분에 최고의 환경이 마련됐다. 전염병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대규모 사상자를 만들어냈지만 반대로 이 역병의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은 자신의 튼튼한 면역체계를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다. 이 균들은 결국 신대륙 침략시기 '쇠'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총과 칼보다, 그들이 들여온 균에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이 죽었다.


이 강력한 균들은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옮아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은 삶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물소와 소 같은 농경 도구, 양, 돼지, 염소 같은 단백질원, 심지어 말 같은 전쟁 도구까지 다양한 야생 동물을 가축화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듯, 이 가축들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몇몇 균들을 선물했다.


농경 사회로의 전환은 기술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했다. 때로는 기술이 먼저, 때로는 농업이 먼저 앞서며 각종 도구와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문명 발전의 최전선에 비로소 '쇠'가 등장하는 것이다. 호주에는 지구 최대의 철광석 광산이 있지만 그곳의 원주민들은 야금술을 발명하지 못했다. 그들이 결코 열등해서가 아니었다. 호주 대륙은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이 적었기 때문에 집약적 농경이 발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방으로 고립된 환경은 외부로부터 씨앗과 기술이 전파될 경로까지 차단해 버렸다. 반면 한 덩어리로 묶인 유라시아에서는 기술의 이동 속도가 훨씬 빨랐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에서 기술의 격차는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 사이에서는 좋은 기술을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훔치기까지 해서라도 발전하려는 압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쟁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당연히, 가속화한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들 것이다. 농업은 유라시아 대륙 국가들만의 전매특허였던가? 인간이 시작됐다고 알려진 아프리카에서는 오직 수렵, 채집만 할 뿐 농사를 짓지는 않았던 걸까? 아메리카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일으켰던, 잉카와 마야는 잉여생산물 없이 세워진 제국이었는가? 총, 균, 쇠의 관점에서만 보면 결국 유라시아와 타 대륙의 발전 속도의 차이가 인종간 우열에 근거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생각에 단호히 '망상'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애초에 그 총, 균, 쇠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른바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낸 궁극 원인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단순한 지리적 요인, 그러니까 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종이라도 땅을 바꾸지는 못한다. 운하를 만들고, 터널을 뚫어 지리를 바꾼다고? 그렇다면 애초에 운하 또는 터널을 만들게 했던 요인은 무엇인가? 사하라 사막의 원주민들에게는 운하를 만드는 기술보다는 사막에서 수분을 보존하고 보충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지역이 산으로 둘러싸여 어떻게 해서든 교통의 편의를 만들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터널을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압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몽고인들에게는? 그들에게 터널 제작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압력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궁극 원인은 얼추 3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 땅에는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이 충분했는가. 둘째, 그 땅에는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충분했는가. 셋째, 대륙의 형태가 동서로 뻗어있는가, 남북으로 이어지는가. 특히 이 세 번째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서 밝히는 가장 탁월한 통찰이 아닐까 싶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총, 균, 쇠>를 독파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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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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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얼핏 심리학 도서로도 보인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니,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효능감을 강화하는 주제를 다룰 것만 같다.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다. 또, 양자역학이다.


카를로 로벨리 책 중에선 독해가 가장 쉬웠지만 그렇다고 내용까지 쉬운 건 아니었다. 로벨리는 이 책에서 기존의 양자역학이 이 세계의 실재에 대해 서술한 것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예컨대 이 세상을 물질의 파동으로 본 슈뢰딩거의 생각이나 관찰이 갖는 의미, 파동 붕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구하다 덧붙인 평행우주 같은 관점들이다.


저자는 이 모든 생각들이 양자 세계의 기이함을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기 위해 끼워 맞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세계의 실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은 양자역학이 갖는 확률적 속성 탓에 단순히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끊임없이 내리쬐는 빛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불연속적인 양자의 집합이다. 마치 수많은 0과 1의 집합인 디지털 세계처럼.


로벨리는 양자이론이 관찰 가능한 것만 설명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생각과 양자이론은 사건이 발생할 확률만을 기술한다는 보른의 주장, 그리고 양자 세계가 근본적으로 입자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이론을 시작한다. 차이는 양자역학이 단순한 확률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을 '관계'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통합한다.


로벨리의 '관계'는 이 세상을 촘촘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으로 정의한다. 어떤 대상의 고유한 속성은 오직 관계에서만 드러난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가진 고유한 속성으로 이뤄진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다. 나의 속성은 오직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나는 분명 회사 사람을 대할 때와 가족을 대할 때 다르다. 나의 성격은 확실히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성이 애초에 나라는 존재에 내재된 게 아니라는 주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그런 속성을 드러냈다는 건 애초에 나에게 '그런 면'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환경과 상호작용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그렇다고 해도, 그 모습 또한 내가 가지고 있었기에 드러나는 게 아닌가?


로벨리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것이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말이 돈이라는 실체가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냥 의미적으로 그렇다는 건지, 아니면 쓰지 않는 돈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거라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전우주의 모든 입자가 더 이상 달과 상호작용하지 않기로 다짐하면, 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로벨리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주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존재는 그 연결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거니까.


정말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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