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만화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한다면 '아다치 미츠루'라고 답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만화를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슬램덩크'라고 말하겠습니다.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간 연재된 전설적인 농구 만화 입니다. 당시에 소년 주간 만화 잡지로는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가 있었는데 점프의 간판 만화가 '드래곤볼'이었고 챔프의 대항마가 바로 '슬램덩크'였습니다.  

그 당시로만 따지면 슬램덩크는 드래곤볼의 아성을 꺽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슬램덩크의 수준이 그 만큼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소년 만화라는게 그렇지 않습니까? 복잡한게 필요 없습니다. 나쁘고 강한놈을 착하고 약했던 놈이 물리치면 흥미진진 땀이 흠뻑, 용솟음 치는 혈기에 소년의 주먹은 불끈 쥐어졌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 당시 유아들의 로망이 샤이어인으로 태어나는 것이었으니 슬램덩크가 드래곤볼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었습니다. 



 

하지만 Teen Ager도 어느새 후반.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이 될 때쯤엔 쌉싸름한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됩니다. 사는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열심히만 해선 사회의 사랑을 받지 못 한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람이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으로 구분된다는 것도 점점 또렷히 느끼기 시작합니다. 슬램덩크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 입니다.  

드래곤볼의 뒤에 꽂혀 있던 먼지 쌓인 책을 꺼내들고 두번, 세번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고서야 비로소, 정대만이 '담배는 피지 않았는데...'라며 울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채치수가 어떻게 '덩치만 큰 센터'라는 모욕을 참았는지 왜 왼손은 그저 거들기만 해야되는지 이해되기 시작 하는 것 입니다.  

세상엔 때가 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타케히코 이노우에가 그려낸 이 불후의 명작도 바로 그런 것 이었습니다.

슬램덩크는 단행본으로 31권(완전판 24권), 연재 기간은 7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극중 시간은 고작 4개월 정도 입니다. 매니저로 나오는 한나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백호가 부상으로 쓰러 졌을 때, '빠르게 익힌 만큼 빠르게 잊혀질지 몰라. 이 4개월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이라고. 한나의 대사처럼 풋내기 강백호는 4개월 만에 북산의 미라클로 급성장 합니다.  


타케히코 이노우에는 강백호의 동물적 운동 능력을 나타내 그의 비현실적 성장을 변호하지만 여기에는 강백호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인간이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있다면 그건 만화적 재미를 더하기 위한 요소일 뿐 입니다.  

역사의 주인공들도 알에서 태어나거나 바다를 가르는 능력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물며 만화의 주인공인데 이 정도의 Speciality가 없어서야 체면이 서겠습니까? 따라서 강백호의 성장과 성공에는 뭔가 다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다음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날 옛적에 진'시황'(始皇)이라 불리운 사내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최초의 황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자신감이었지만 한편으론 '그럴만도 했겠군'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느 구석이 있습니다.  

진시황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온갖 영웅과 사건이 범람했던 난세를 쓸어내고 '진(秦)' 나라라는 통일 왕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을 소유한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이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너무나 많은 것을 바랐기 때문일까요? 불로는 커녕 장생도 못했습니다.  

황제가 장생을 못하자 나라의 수명도 길지 못했습니다. 15년 남짓, 통일 왕국의 대업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진나라가 망하면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 바로 '항우와 유방'입니다. '패왕', '사면초가', '배수진' 따위의 핫 키워드들이 바로 이 시대의 특산품 입니다. 알다시피 이 싸움의 승리자는 유방이었습니다. 유방은 '패왕 항우'를 덕과 지혜로 맞섰고 결국 한(漢) 나라 400년 역사의 주춧돌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한지'의 이야기 입니다.

'무릇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나누어지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400년 동안 이어져온  한(漢) 나라의 배가 터지면서 숨죽이고 있던 수 많은 영웅들이 뛰쳐 나왔습니다.

처음 배를 가른 것은 동탁과 여포 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그 문 앞까지만 인도하는 가이드였을 뿐 입니다. 주인공은 조조, 유비, 손권. 천하는 위, 촉, 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새로운 진(晉) 나라에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삼국지'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초한지와 삼국지를 읽는 것은 한(漢) 나라의 시작과 끝을 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보는 것이며 인간사 흥망성쇠를 두루 깨닫는 것입니다. 벚꽃이 만발했다 덧 없이 낙화하는 봄날. 깜깜한 역사의 터널 속에서 명멸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이 보다 더 어울리는 일이 있겠습니까? 

 

사족:

초한지는 만화와 소설이 있습니다. 선택이야 본인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지만 저는 소설을 먼저 만화를 나중에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만화는 허구와 사실을 가르는 경계선이 가장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역사의 진위에 대한 논쟁은 그것이 설령 정사라 하더라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물며 소설은 어떻겠습니까? 따라서 이 말은 소설이 으뜸, 만화가 둘째라는 가치 판단이 아닙니다.  

단감을 먹고 나면 사과의 맛은 밍밍해진다는 얘기였습니다.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 떠오르는 태양
이문열 원작, 형민우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09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0년 04월 26일에 저장

형민우의 장점은 디테일 하면서도 시원시원한 그림체 입니다. 만화적 각색도 훌륭하게 되어있습니다. 태왕북벌기를 아시는 분이라면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연령대가 낮다는 것은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초한지 세트 - 전8권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56,000원 → 50,400원(10%할인) / 마일리지 2,800원(5% 적립)
2010년 04월 26일에 저장
절판
반면 고우영의 초한지에는 네임 밸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만큼 독특하고 오래된 책이라는 얘깁니다.

형민우와 고우영은 신구 만화계를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만화의 컷 구성과 화려한 그림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형민우를, 예전 만화의 향수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고우영을 추천합니다.
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88,000원 → 79,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0원(5% 적립)
2010년 04월 26일에 저장
구판절판
이문열이란 이름은 그 자체가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이 사람의 소설은 대부분 재미있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소설을 쓰지 않는 작가를 믿어줘선 안된다'라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자꾸 그의 '평역소설'을 사준다면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소설을 쓰지 않을 것 입니다.
초한지 1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07년 5월
8,900원 → 8,01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10년 04월 26일에 저장
절판

대안으로 꼽은 것이 바로 김홍신의 초한지 입니다. 이문열의 대안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홍신씨를 좋아합니다)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aroon 5는 4인조 밴드 Kara's Flower가 기타리스트 James Valentine을 추가로 영입하면서 만든 미국의 Rock Band 입니다. 이들의 Naming Sense는 기 막힙니다. Maroon 5 라니요 지구를 지켜줄 것 같은 포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의 2000년대 음악 세계를 굳건히 지켜주고 있습니다.

Maroon 5 1집 앨범은 'Song about Jane'입니다. 보컬 Adam Levine이 헤어진 여친에 대한 감정을 12곡에 추려 넣었다고 전해 집니다. 곡 구성은 예술입니다.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1번 Harder to breath 부터 12번 Sweetest goodbye가 마치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래 하나하나의 면면은 부드럽고 달콤하며 애절하지만 구성적인면으로 봤을 땐 신인 밴드 답지 않은 -물론 Kara's Flower 시절이 있긴 했지만- 탄탄함이 느껴집니다.

Song about Jane 앨범에서 명곡을 꼽으라면 어떤 노래를 고를 수 있을까요? 라디오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주로 흘러나오던 노래는 'This love'고 그것이 대중적 인기를 반영하겠지만 사실 진짜 명곡은 8번 Sunday morning과 12번 Sweetest goodbye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unday morning은 이별 후 홀로 맞이하는 비오는 일요일을 담담하면서도 진실되게 표현하고 있는 명곡입니다. Adam은 아직도 Jane의 숨결을 호흡하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는 듯 합니다. 그것은 Jane에 대한 트라우마이고 위험해 질 수 감정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지 못했던 이발사는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Adam이 비오는 일요일 오후 사무치는 그리움을 Sunday morning이라는 곡으로 말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이발사의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Sweetest goodbye는 앨범 수록곡 보다는 영화 Love actually의 삽입곡으로 더 알려진 듯 합니다. 당시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으로 This love를 올리는 사람들은 그저 시류를 따르는 사람들이었지만 Sweetest goodbye를 틀어주는 사람들은 Maroon 5의 확실한 팬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Love actually 이후로 너도나도 그 노래를 알게 됐고 저는 마치 제 노래를 빼앗긴 것 같은 상실감으로 Sweetest goodbye와 Sweetest goodbye 했습니다.

2007년 쯤인가에 나온 2집 또한 대단합니다. Makes me wonder라든지 Wake Up Call,Nothing lasts forever 기타 등등. 놓칠게 거의 없는 앨범이었죠. 하지만 앨범의 완성도, 각각의 노래에 대한 수준 및 표현력을 따져 봤을 때 Song about Jane을 넘어 설 수는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07년 이후로 Maroon 5의 앨범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009년 초에 Call and Response라는 Remix 앨범이 나왔지만 듣기 힘들 정도 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2009년 여름 쯤 Jazz Single이 나왔더군요. 아직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꼭 좋았으면 합니다. 

벌써 활동 10년째를 맞이하는 Maroon 5. 요즘 행보에는 의심이 가지만 이대로 어물쩡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누구의 음악을 들으며 살아가란 말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키에게 상실의 시대가 있다면 류에게는 Sixty Nine이 있습니다.

'69'는 문학사적으로 몽테뉴, 볼테르, 아나톨 프랑스의 지적 회의주의를, 철학사적으로 니체의 초인사상과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을 계승하여 사회적 권위와 부조리에 투항하는 카뮈적 고교생의 실존적 성장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공부를 싫어하고 이제 갓 성에 눈 뜬 멍청한 고교생의 난동기 입니다.  
 
이런 얘기라면 세상에 차고 넘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네시로 카즈키'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레볼루션 넘버3 라던지 Go같은. 하지만 Sixty Nine은 이런 책들과 비교해 업수이 여길 수 있는 소설이 아닙니다. 이 책에는 확실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1952년생, 59세의 남자가 평생을 걸고 지켜온 삶에 대한 '단호한 결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확실히 '류'는 단 한번도 사회에 적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18살 때 심각한 왕따였는데 스스로는 결코 왕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반아이 44명을 전부 따돌리고 있었으니까요. '류'에게서도 이런 것이 느껴 집니다. 전 세계를 따돌리고 유아독존 홀로 우뚝 서 있는 사나이의 모습. 모두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때 반대 방향으로 전력질주하는 스프린터.  

사실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더이상 사회로부터 혼나고 싶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류'처럼 살아가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적당한 각오로는 되지도 않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만 둘러봐도 확실합니다.  
 
의지가 매우 강했던 친구들이었지만 글쎄요, Dream Theater를 즐겨 들었으며 학적부 장래 희망칸에 '세계적인 Rock 밴드를 따라다니는 음향 기술자'라고 당당하게 썼던 친구는 현재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의 초일류 사원이 되어있습니다. 또 공군이 되어 비행기를 탈취하고 콩고의 정글로 들어가 'Welcome to the Jungle'을 외치겠다던 친구는 지금 한국 유일의 전력회사에 다니며 가을이 되면 뒷 동산의 밤을 따러 다닌다는군요. 그것도 근무 시간에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확실히 '단호한 결의'가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때 우리가 진정으로 즐거운 일을 하면서 히히덕 거리고 있으면 사회의 숙련된 조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 꿈같은 얘기만 쫓다간 어떤 사회 생활도 견뎌낼 수 없을 거야. 너희가 어떻게 살아갈지 참 한심스럽고 걱정돼.'

우리는 확실히 이 말에 쫄았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할 까봐. 그들 말대로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할까봐. 좋은 차와 좋은 아파트를 얻지 못할까봐.  
 
그래서 우리는 꿈을 버리고 - 그것을 젊을 때의 치기라고 생각하고 평범한 삶을 택했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배고픔과 무시와 추위로부터 구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류'는 말했습니다.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 않고 평생 동안 '하하하' 나의 웃음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저는 이 코믹한 소설을 눈물이 날 정도로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Sixty Nine은 문제아 고교생의 난동 Episode를 다룬 책이 아닙니다. 꿈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멸망하여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겨야 한다면 결단코 Sixty Nine을 가슴에 품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비웃고 경멸하며 나를 묶어 용암 속으로 빠뜨린다 하더라도 끝까지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있겠습니다. 인류사에 길이길이 남을, 이 미치도록 즐거운 책을 향해서 말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의 소설가라고 하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취향으로만 본다면 약간 멀게는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가 있을 것이고 그 보다 가깝게는 '인간 실격'의 다자이 오사무가 있겠습니다. 

더더욱 가깝게는 요시모토 바나나 라던지 기타 등등 그런 저런 소설가가 있겠지만 이 사람들은 너무 트렌디해 밤하늘의 별처럼 명멸하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지만 여기 애매하게 끼인 작가가 한 사람 있습니다. 90년대 내내 트렌디한 소설로 대중을 열광시키다 돌연 작가로 전향.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이후 가장 기대되는 노벨상 후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노르웨이의 숲'의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나왔을 때 하루키의 신드롬은 대단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국'은 몰랐지만 일본 청춘 남녀의 연애 소설 '상실의 시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당시에 라디오를 도배하던 '상실의 시대' 광고 탓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때 출판계는 진정 '상실의 도가니'였습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 중에는 '상실의 시대'를 보고 하루키를 숭배하게 된 자가 적지 않았고 심지어 소설가가 되겠다며 젊음을 투신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부 직장인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끼친 '하루키'의 영향력은 막대 했습니다. 마치 Radio head의 Creep이 영국 청년들의 감수성을 폭발시켜 준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Radio head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Radio head는 Creep으로 울트라 빅 히트를 쳤으나 4집 Kid A로 돌연 예술가가 됩니다. 하루키는 어떤가요 '상실의 시대'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상실의 이미지를 멜랑콜리한 상징들로 포장하더니 급기야 '해변의 카프카'로 작가 선언을 해버립니다.  

'해변의 카프카'에 대해 좀 더 말해 볼까요?
이 책의 처음 50페이지는 실로 대작가를 지향하는 이 소설가의 힘찬 의지가 느껴지는 듯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KFC의 샌더스 대령이 등장하고 부터 솔직히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은 항해는 위태위태 끝모를 안개 속을 헤쳐가고 있었는데 그만 모자간의 근친상간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고 맙니다.  

류 끝에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는 마법과 환상이 판을 치는 판타지 세계가 펼쳐져 있더군요. 이러다가 주인공이 '절대 반지를 가지고 있으니 사우론의 화산으로 동행하지 않겠나?'라고 물어보는건 아닐까 조마조마 했습니다. 이 책은 확실히 '해변의 카프카' 보다는 '해리포터와 아주까만여죄수'가 더 어울릴 법한 이상 야릇한 소설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해변의 카프카를 만나고나서 하루키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더군요. 그는 예술가가 됐고 신화가 됐으며 매우 열성적인 팬들을 거느리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 근친상간과 판타지로 흥한 작품이 그리스의 냄새나는 이야기 '오이디푸스'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해리포터의 근친상간으로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이코,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게 아닙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어쩐지 심기가 뒤틀리고 반항심을 갖게 되는 변태적 감성의 소유자인지라  

뭐랄까, 하루키만 쳐주는 세상이 야속하달까?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자 구구절절 하루키를 씹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결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또 한명의 '무라카미'를 완전히 잊은 듯 보입니다만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뼈에 새기고 가슴으로 읽었으니까요. 이 사람이 저에게 끼친 영향은 하루키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눈치 채셨습니까? 오늘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류' 입니다. 

계속...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amahun 2010-05-1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게 동감. ... 카프카 이후론 삐딱하게 바라보는중...

무라카미 류에 대한의견도 전적으로 동감. 겉에 노란표지있던 예전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책중 하나. 단호안 결의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지만... 아 사족으로 기존의 류에 대한 책으로 봤을때 '69'라는 제목에서 야릇한 상상을..ㅎㅎ 근디 이 분도 반도에서 나가라 이후 삐딱...


한깨짱 2010-05-11 23:56   좋아요 0 | URL
그 69라는 제목에서 오는 야릇함과 그것과 어울리는 류, 그리고 69년을 실제 고등학생으로 보낸 류가 하나가 되는 정말 완벽한 소설이죠.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