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4가 발표됐다. 한국엔 7월에 발매한단다. iPad 3G와 iPhone4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iPhone4가 먼저 인 것 같다.

지금 업계는 완전히 스마트폰 열풍이다. 전형적 공기업의 대명사였던 KT는 아이폰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더니 지금은 거의 애플과 자신들을 동일시 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눈꼴 신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KT 사장 이석채님은 iPhone을 자기가 기획한 Device인 양 칭찬 일색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은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한국의 Vendor를(특히 삼성)들에게 진지한 얼굴로 충고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고마워요 KT, 당신들의 절박함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iPhone은 없었을거야.

한편 삼성은 iPhone4 발표와 동일한 날짜에 안드로이드 플랫폼 기반의 갤럭시S를 출시했다. 선주문이 100만대를 넘었다는 등 말이 많지만 언론 플레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업계의 개발자들까지 '갤럭시S가 더 좋은거 아냐?'라고 묻는 걸 보면 마케팅을 잘하는 것 만큼은 정말 이 기업을 인정해 줘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아직도 반응 속도 정도를 Unique Selling Point로 활용하는 그들의 전략을 볼 때 '우리 이정도 따라왔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볼게요'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할뿐 Paradigm을 뒤바꾸는 메가 쇼킹 Device로서의 임팩트는 부족해 보인다.

가끔 보면 이제 안드로이드가 대세라는 말도 나오곤 하는데 확실히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은 급성장을 보이는건 맞다. 하지만 그건 삼성이나 LG,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같은 주요 휴대폰 Vendor에게 안드로이드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Apple은 App Store를 Launching 하면서 통신사가 주도하던 기존의 시장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했다. 그동안 초특급 '갑'을 유지해오며 불멸의 왕으로 군림하던 통신사들의 위기가 얼마나 컸던가?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연대를 벌이며 Anti Apple 전략을 가동했고 안드로이드는 이런 분위기의 1등 수혜자였다. 그러니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 폭발은 당연할 수 밖에.

물론 시장 점유율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위대했던 베타맥스가 VHS에 밀린 예를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특히 Market Share 확보는 App 시장의 규모를 형성하고 수 많은 개발자들을 참여하게 만들며 당연히 High Quality App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안드로이드의 최대 약점이 App Market인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얼마나 긍정적인 현상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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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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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는 것을 정말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이를테면 당신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MB에 대한 분노가 순수하게 당신의 마음 속에서부터 발현된 감정이냔 말이다. 그저 옆에서 나쁜 놈이라고 떠드니까 덩달아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장담할 수 있겠지 그는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니까.

질문이 어리석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것은 미술인가? 백이면 백 미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시 동안의 침묵. 르네상스라는 단어라도 떠 올린다면 다행이다.  

그러고 나선 더듬더듬 '천재로 불린 화가의 작품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실 나도 어릴 때는 모나리자가 예쁜걸 몰랐는데 사람들이 최고의 미소라고 하니까 어쩐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그 유명한 비평가들보다 잘났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 하는 감탄이 들기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이제 편히 쉬자.

그런데 당신이 '모나리자'를 미술로 판단하는 근거는 결코 미학적 관점에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장인 정신,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어느 화가의 천재적 '기술'에 대한 경의에 가깝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슈퍼 컴퓨터가 묘사 대상을 초정밀 스캔하여 Photoshop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초고해상도 프린터로 출력한다면 그것을 미술로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슈퍼 컴퓨터의 작품을 미술로 부르지 않겠다면 동시에 '모나리자'도 미술로 취급해선 안된다. 당신이 제시한 모나리자의 예술성도 단순히 묘사 기술의 우수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문제인가? 좋다. 백번 양보해서 모나리자를 미술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술에 대한 당신의 감상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 대한 감상은 당신이 '모나리자'라는 미술 작품을 직접보고 그것과의 교감을 통해 이뤄낸 감성적 체험이 아니다.  

설령 당신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봤다 하더라도 그 작품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만약 당신이 가짜 작품을 보고 이런 체험을 얻었다면 과연 진품과 짭퉁,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한 가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상에 따라 정해지고 루브르의 가짜 모나리자를 본 당신의 감상을 진짜라고 인정한다면 내 책상 앞에 붙여둔 컬러프린트판 '모나리자'와 진품 '모나리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올레! 우리도 지금 당장 부자가 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모두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물은 주문자의 집이나 성당에 걸리는 인테리어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장인의 공예'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술관과 미술 비평 그리고 경매장으로 요약되는 근대 문화의 발명품들이 그것을 미술로 만든 것이다.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해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것은 미술인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가 이 책이 주장하는 주요 내용이다. 책의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 이집트의 피라미드,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인도의 시바상 이 모든 것들이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Matrix를 파괴하는 Neo와 같은 책이다. 오랜 시간동안 켜켜이 쌓인 미술에 개념, 그 고착된 체제를 뚫고 보여주는 싱싱한 관점은 미술과 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새 지평을 열어 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정되는 사물의 가치에 대한 통찰은 이 책을 한 권의 미술서를 뛰어넘어 위대한 철학서로서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대한 점은 이 책이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씌여졌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이렇게 쉽게 씌여졌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훌륭해 질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와 그리고 번역가는 정말 기막힌 작업을 해냈다. 판타스틱한 경험이나 볼거리를 제공했을 때 현대 사회의 속어는 그것을 '예술이다'라고 표현하던가? 그럼 다음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은 예술인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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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죽음은 결국 야당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이 힘을 얻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어쨌든 이 땅에 신자유주의를 이식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의 정권이었고 지금의 민주당은 이 두 사람의 후광으로 버티고 있는 정당이니까.  

한나라당이 노골적으로 부자와 힘 있는 자를 위한 정치를 펼쳤다면 민주당은 저항과 진보의 이미지로 보수 성향을 감춘 사기 정치를 펼쳤달까? 그러니 아무리 현 정권이 심판을 받아도 그 주역이 민주당이라면 대다수의 서민들을 위한 정치는 아직도 요원한 셈이다.

이번만큼 공약이 부재하고 선전만이 판을 친 선거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으로 출마한 어느 여자 후보는 현수막의 선전 구호가 '전교조는 안됩니다' 달랑 하나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진보, 노동이라고 하면 '북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강남의 빨갱이 공포증으로부터 표를 얻을 수작이었겠지만 선거 결과를 보니 그럴듯한 경쟁도 못 펼친 듯 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경제에서의 불평등보다 교육에서의 불평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사교육이 무너지고 공교육이 정상화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명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호가 여전하고 공교육 정상화라는 것이 결국 명문대 진학에 대한 욕망에 근거한 것이라면 진보든 보수든, 전교조든 아니든 우리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한편 절대군주 오세훈에게 대항하는 한명숙조차 사람특별시라는 노골적인 노무현표 슬로건만으로 무장했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 좌, 우익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없어 보인다. 사실상 이명박, 노무현 대결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러니 공약이 존재할리 없다. 한명숙은 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이용하려 했지만 결과는 안타까웠다.  

경기도와 서울에서의 패배는 부자들과 엘리트, 기득권자들의 벽이 여전히 높고 강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동시에 현재의 야당이 양극화와 갈등을 고조시키는 엉망 진창 보수 정당조차 대체할 수 없는, 사실상 대안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전국 곳곳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이유도 진보 혹은 복지사회 건설에 대한 꿈 보다는 단순히 '이명박이 싫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어떤 오해를 했든 야당은 성공했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권력 투쟁이 불과한 것이었다면 권력은 언제나 승리하고 국민은 언제나 패배하는 지긋지긋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 아무쪼록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얻은 행운을 이 사회의 약자와 빈자를 위해 좀 더 소중히 사용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서 좀 더 성실히 그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라는 것은 정치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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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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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라고 하면 100분 토론에 나오는 말 많고 신경 거슬리는 사람쯤으로 알겠지만 사실 그의 직업은 미학자다.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미학'을 강의하는 곳이 서울대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중권이 다니던 당시에는 그랬다. 서울대에서 미학을 공부, 동대학원 석사 그리고 미학을 위해 독일에서 10년간 유학. 전공은 발터벤야민. 그러니 진중권은 한국에 몇 안되는 진짜 미학 전공자인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을 썼다. 못 들어본 사람이 많거나 제목은 들어봤으나 안 읽어본 사람이 많거나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일텐데 이 책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팔려 진중권에게 '자가용 비행기'를 안겨준 유명한 책이다. 현재까지 1, 2, 3권이 나와 있고 앞으로 더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4, 5, 6권이 나온다면 나로서는 더 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2년째 보관함에만 담겨져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테지.
 
미학이라는 건 철학의 한 분야다. 고대 철학들은 선악의 기준과 미추의 기준이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미학=철학 이었고 미학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와 동일했다. 그래서 세상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모두들 미학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미학이라는 말에서 난해함과 함께 딱딱한 건조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들 덕분 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미학은 바움가르텐이라는 새 아버지를 맞이하게 된다. 바움가르텐은 미학을 논리와 이성으로 논증해야만 하는 철학의 금고에서 꺼내 감성의 영역으로 되돌려 주었다. 이제 미추는 감성과 직관에 의해 누구나 논할 수 있는 친숙한 개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학은 오해에 둘러 싸여 있다. 지난 5년간 정말 줄기차게 미학 오디세이를 권했지만 지인 중 그 누구도 쉽사리 이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심지어 몇 권씩이나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 그 책들이 잘 살아 있는지 시원한 봄 햇살은 커녕 형광등 불 빛이나마 본 적 있는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지식을 대중화하는데는 우리 나라에서 진중권만한 사람이 없다. 이건 사실이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이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지만 내가 볼 때 진짜 지식 소매상은 진중권이다. 정치적 내공은 딸릴 수 있으나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엉킨 실타래 처럼 복잡한 이야기를 술술 푸는 재주는 저 '항소이유서'의 유시민도 진중권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진짜 강추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움베르토 에코의 두꺼운 미학서들을 생각하면 안된다. 그네들의 책이 무시무시한 학술서라면 미학 오디세이는 영화 잡지 씨네21쯤 되는 책이니까.

*미학 오디세이 1, 2, 3권은 고대에서 근대에까지 이르는 미학의 발전사를 개괄하고 있다.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오히려 흥미진진 신나는 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사람도 역시나 쓰기 보단 말하기에 능한 사람 같은데 읽기 쉬운 글은 결코 사상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달변의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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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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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입니다. 재미라고 하면 감동, 웃음, 스릴, 공포 따위를 말하는 것일 텐데 당연히도 히말라야 도서관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여지껏 읽은 에세이 중에서는 첫번째로, 모든 책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저로 꼽습니다.

책의 저자 존우드는 한때 자본의 화신이었습니다. 돈으로 만든 배를 타고 지옥으로 항해하는 자본의 왕국 아메리카 출신이며 그 배의 선장이라 할 수 있는 Microsoft의 마케팅 이사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관두기 직전에는 아시아 지역 마케팅 책임자로 승진해 베이징으로 발령이 났는데 바로 중국 인민들의 배속에 정품 Windows를 쳐넣어 돈을 쥐어짜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존 우드를 악인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단지 Microsoft라는 거대한 조직의 구성원에 불과했으니까요. 인간이 단체에 속하게 되면 사회 현실과 밀고 당기는 윤리적 긴장감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일명 '어쩔 수 없었다'라고나 할까?  

영화 '더 리더'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성당에 갇힌 포로들을 끝까지 지켜 모두를 불타 죽게 만든 것도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그저 포로들을 감시하는 책임자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던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느슨했던 긴장이 팽팽해지고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이 다시금 눈뜨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부인할 수도, 숨길 수도 없는 압도적인 현실을 목격하고 난 뒤 부터 입니다. 존 우드가 네팔 여행에서 경험한 것이 바로 이런 것 이었습니다.

존 우드는 네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직장을 때려 칩니다. 그리고 Room to Read라는 근사한 단체를 결성합니다. 가난한 네팔 아이들에게 읽을 책을 보내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존 우드는 MS에서 배운대로 '더 많이 더 빨리 더 열심히'를 외치며 Room to Read를 키워 나갑니다.  
폭넓은 인맥을 활용하여 기부자를 포섭하고 여러 단체, 기관들과 공격적으로 관계를 맺어 자금을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조그만 눈 한줌에 불과했던 Room to Read는 몇년 새에 수 많은 사람들이 후원하는 주요한 사회적 기구로 거듭나게 됩니다.

Room to Read가 대단한 것은 빵이 아닌 책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 이 사업은 나중에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으로 확장되는데 이것은 Room to Read가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에는 돈, 정치, 기술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이 세계를 뿌리부터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교육이 유일합니다. 

정치와 기술이 진보해 온 세상이 골고루 혜택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온다하더라도, 보다 더 갖겠다는 욕망이 당연시되고 나눔을 거부하며 자기만 살면 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지만 교육이라면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나 기술은 이 세상의 겉모습을 바꾸지만 교육은 인간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게다가 그것이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은 실로 엄청난 가능성을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도서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았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돈이 없어서, 학교가 없어서, 책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정상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요? 꿈이 있는 어린이들이 생계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야만 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을 인간의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강남과 강북의 사교육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 한권, 비를 피할 지붕 한 점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책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그렇게 누워있는데 문득 회사를 다니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웃는 것도  

모두 모두 모두, 사실은 이 한 가지를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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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2010-05-2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한깨짱 2010-05-27 13:06   좋아요 0 | URL
핫~ 실망하시면 어쩌죠?

pola 2010-05-3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강추합니다~ 너무 감명 깊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