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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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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할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줄거리 정도는 가능할 지도.

세상에 종말이 왔다. 나무와 들이 불타고 강과 바다가 썩었다. 온 땅과 온 건물과 온 사람의 위로 회색의 재가 켜켜히 쌓여 있다. 태양은 눈이 멀었다. 건물은 구조를 잃었고 남아있는 목재는 장작으로 타올라 잿빛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불길은 어두컴컴한 하늘에 한 줄기의 빛도 보태지 못했다.  

대낮에 하얀 입김이 서렸다. 추위로 몸을 떨었다. 차가운 대기 위로 얼음같은 눈과 비가 내렸다. 인간이 인간을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잿빛 세계의 음침한 얼굴이 매일 매일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죽음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걸었다.  

권총에 두 발의 총알이 있었는데 한 발이 약탈자의 두개골 속으로 파고 들었다. 맹렬한 회전을 멈추고 총알이 영원한 안식을 얻었을 때 약탈자의 머리통이 폭파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그 대가로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잃었고, 잃었으면 좋았을 생명을 되찾아 왔다.

식량과 생존 용품은 죽지 않을 만큼만, 죽기 직전에만 아주 조금씩 발견되었다. 그것을 행운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전의 세상에선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새시대는 구시대의 가치를 모조리 전복시켰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미 죽어버린 시체들을 부러워 했다. 새시대에서 행운이란 거대한 낫을 들고 부유하는 사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닷가에 도착하면 상황이 나아질지 몰라, 두 사람은 계속 걸었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것으로 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신은 존재하는 걸까? 죽음이라는 나무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꽃이 만개하는 날, 신은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약탈자에게 발각되어 사지가, 몸의 일부가 식량으로 사용되는 것일까? 마침내 희망을 잃고 자살을 감행하는 미래일까? 그들은 죽음을 피해 맹렬히 도망치는 순간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이 타오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살면서 가장 큰 용기를 내본 적이 언제였냐고 묻는 말에 아버지가 답한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었어."

마침내 두 사람은 바닷가에 도착한다. 쓰러져 있는 유조선과 범선을 발견했다. 먹을 것과 담요를 많이 구했다. 한 눈을 판 새에 도둑이 식량과 담요가 든 카트를 훔쳐갔고 두 사람은 추격을 통해 도둑을 잡았다. 도둑의 옷을 모조리 벗겨 복수했다. 마지막 남은 선이 악에 잡아 먹혔다.

잿빛 오후의 머리 위로 어둑 어둑한 땅거미가 내리자 아들과 아버지는 도둑의 신발과 옷을 길 위에 개켜놓고 소리 질러 도둑을 불렀다. 이 곳에 당신의 신발과 옷을 남겨 두었다고. 어딘가에서 노리고 있을 약탈자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위험을 무릎 쓴채 두 사람은 바다 너머 다른 세상에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들이 심한 열병에서 회복된지 몇일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아 남을 자격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날 남자가 죽었다. 남자는 죽음에 패배했고 고통에 승리했다.  

 

 

 

홀로 남은 아이는 권총을 말아쥐고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따라 남은 길을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 아버지가 죽어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낯선 남자를 만났다. 산탄총을 거꾸로 메고 손으로 화약을 재워 넣은 탄알이 무수히 꽂혀 있는 탄띠를 맨 남자였다. 얼굴에는 큰 상처가 있었다. 온 몸에서 많은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소년은 남자에게 권총을 겨눴다. 그러나 남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 남은 '선한 사람' 이었다.

남자는 소년의 아버지가 죽었는지, 담요와 다른 물건들은 어디있는지 물어보았다. 소년은 아버지를 그대로 놔둬선 안된다고 주장했고 남자는 담요를 덮어 두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소년이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고 와도 되는지 물었다. 남자는 그러라고 했다. 소년이 다가갔을 때 아버지는 담요에 곱게 쌓여 있었다. 남자가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소년은 아버지의 주검 옆에서 길게 울었다.  

 

 

 

남자를 따라간 곳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개도 한 마리 있었다. 무리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소년을 꼭 안아 주었다. 새시대의 냉기 속을 헤맨 이후로 처음 맞는 따뜻함 이었다. 이 가족이 침략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 당했는지, 결국에는 먹을 것이 떨어져 비참하게 굶어 죽었는지, 아니면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개와 나아가 사람을 잡아 먹는 괴물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뒤의 이야기는 이 소설엔 나와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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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드디어 첫 앱이 나왔습니다! 

상세리뷰는 우측 주소를 클릭 클릭!(http://wiredhusky.tistory.com/entry/Group-SMS-iPhone-App-%EB%A6%AC%EB%B7%B0)

 

   

<앱주소: http://itunes.apple.com/us/app/group-sms/id398189559?mt=8>

 

한국 App Store에서는 '단체 문자' 미국 App Store에서는 Group SMS!라고 검색하시면 바로 볼 수 있어요. 우엉우엉~ 승리의 코끼리 소리~ 

아직은 매우 간단한 어플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계속 좋아질 거고요 다음 프로젝트는 더더욱 멋진 앱이 될 것 같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고화질 이미지를 보시려면 huskycode.com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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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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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생명은 언제나 타인의 삶에 적대적이다. 몇 가지 예. 탁란으로 부화한 뻐꾸기가 둥지 밖으로 작은 새의 알을 필사적으로 밀어 내는 모습. 짐승의 세계에선 원래 그렇다고? 또 다른 짐승의 예. 중세 시대의 십자군 전쟁은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을까? 하나님과 알라는 같은 신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민족에게 서로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걸로 수 백년 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창 끝에 피를 흘려야 했다. 승자가 얻은 것은 고작 이백년 남짓, 코딱지만한 예루살렘 땅을 차지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비교적 이성적이었다. 그들의 신은 서로 달랐으니까. 아테네가 보기에 아폴론이 심히 역겹다면 부하들을 시켜 침을 뱉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유일신, 이 정신분열증을 앓는 절대자가 나타나자 양상이 바뀌었다. 이제 전쟁은 형제들끼리 죽고 죽여야 하는 친족살해 현장이 되었다. 그들은 신이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증명하고자 잔인하게 형제들을 살해했다. 시간이 지나자 형제라는 생각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신을 죽였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죽이며 사악해지는 신. 이어지는 두 번의 세계 대전.

인간은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세계 대전은 한 번으로 끝났어야 했다. 실수가 두 번이면 더 이상 실수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은 필연인가? 되풀이되는 역사는 인간의 숙명? 참새가 대답한다.

짹짹?

빌리 필그림은 일리엄 검안 학교를 한 학기 마친 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몇 살이었는지는 모른다. 어렸다. 처음에는 전투병으로 배치됐다. 몸이 괴상했다. 길죽한데다 허약했다. 오르간을 켤 줄 알았다. 곧 군종병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그러나 전쟁은 빌리 필그림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전선에서 낙오했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작은 환풍창으로 빵과 물이 들어오고 똥싼 양동이가 나가는 화물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으로 이송됐다. 그 곳에서 비타민 시럽 공장 일을 하며 가끔 시럽을 훔쳐 먹었다.

시간은 어느 날 밤 그렇게 다가왔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곧 상영될 연극의 무대와 같다. 조명이 켜지고 등장인물이 들어서면 이야기는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인간은 제발로 다음 무대를 향해 가고 그 곳에서 똑같은 연기가 되풀이 된다.

무대는 드레스덴의 지하, 식료품 저장 창고 였다. 공습 경보가 울리자 이 백명의 포로들이 땅 밑으로 숨어 들었다. 그 위로 수 십만개의 폭탄이 춤을 추며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고급 슈트를 차려 입고 커프스 단추를 맨 사교계의 점잖은 신사처럼 내려와 발정난 개새끼처럼 도시를 유린했다. 공습은 이틀 동안 계속 됐다.

드레스덴은 거대한 묘지로 변해버렸다. 화염 폭풍이 시체들을 화장했고 무너져내린 건물이 그대로 무덤이 됐다. 묘비는 없었다. 승자의 명예 속에는 패자들이 보여줬던 광기, 600만의 유대인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무의미한 악의가 그대로 담겨 있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겨왔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빌리는 검안사가 되었다. 검안 학교의 소유주 딸과 결혼을 했고 큰 돈을 벌었다. 딸과 아들을 낳았다. 딸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트랄파마도어의 외계인들에게 납치 되었다. 빌리는 그곳에서 4차원적 시간관을 배워 돌아왔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긴 어딥니까?"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또 다른 호박 덩이에 갇혀 있는 거요. 필그림 선생. 우리는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소. 지구에서 500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오. (중략)"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내가 여기 온 겁니까?"  

"설명을 하자면 지구인이 하나 더 있어야 할 거요. 지구인들은 대단한 설명가들이니까. 이 사건이 왜 이렇게 구성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저 사건은 또 어떻게 실현되거나 회피될 수 있는지를 말해 주지. 나는 트랄파마도어 인이라 모든 시간을 당신네가 로키 산맥 전체를 한눈에 보듯이 봐요. 모든 시간은 모든 시간일 뿐이오. 그것은 변하지 않지. 그것은 경고나 설명의 대상이 아니오. 시간은 그저 존재할 뿐이니까. 각각의 순간을 떼어놓고 보면, 우리는 모두, 내 이미 말했듯이, 호박 속의 벌레가 되는 거요."

트랄파마도어인에 의하면 우주는 트랄파마도어인 조종사가 우주선의 시동을 거는 순간 연료가 폭발하여 완전히 박살난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회피할 방법도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빌리는 묻자 트랄파마도어인이 대답한다.

"그는 이제까지 늘 버튼을 눌렀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우리는 늘 그에게 그렇게 하게 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그 순간은 그런 식으로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리하여 언젠가 우주선의 시동 구멍에 열쇠가 꽂히고 엔진이 으르렁 대는 순간 우주는 영원히 묵사발이 된다. 그렇게 가는 거지. 

 

 

 

제 5도살장은 쉽게 읽히지만 단지 읽는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난해한 책이다. 외계인과 우주선이 등장하지만 SF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 흔한 전쟁 에세이도 아니다. 단순하고 순진하게,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어 전쟁은 나빠.' 하고 말하지 않는다. 소설은 과거, 현재, 미래, 드레스덴, 뉴욕, 트랄파마도어, 모든 시공간을 미친년 널 뛰듯 넘나들며 전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은유한다.

살아 돌아온 빌리 필그림이 정신분열증과 함께 철저한 허무와 무기력증을 앓아야 했던 이유는 그 어떤 인간의 선택과 행동도 전쟁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손과 보통의 얼굴을 하고 보통의 다른 사람을 죽이는 평범한 잔혹극이다. 그 안에는 선악도 시비도 없다. 사람들은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을 했고,

그렇게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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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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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이것이 첫 문장. 그러고 난 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에 대한 모든 감상은 이 두 문장에서 나온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시마무라는 한량이다.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라 불리는 온천 마을에 들렀을 때 고마코를 만났다. 고마코는 게이샤. 처음 볼 때 부터 웬지 시마무라의 마음에 와 닿았다. 그건 고마코도 마찬가지.

하지만 알고 있겠지? 여행자와의 사랑이란 예정된 이별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는 기관차 같다는 것을. 요란하게 기적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달려보지만 절벽 위의 철교는 언제나 중간에서 끊겨 있지. 남아 있는 것은 추락 뿐이야.

잔인한 건 이 사실을 남자는 알고 여자는 모른다는 것. 시마무라의 마음 속은 커다랗게 비어 있는 공동이라 고마코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아. 고마코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순진한 대사를 내뱉는다.  

"내년에도 또 온다고 약속해 주세요."

시마무라는 일년 뒤 다시 이곳을 찾는다. 못됐다. 죽어가는 모닥불에 장작을 밀어 넣으며 오래가지 않을 희망의 불씨를 살려 놓는다. 그러나 그 불씨가 활활 타오를 때면 찬물을 끼얹고 도망가 버릴거잖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책임한 남자. 그런데 그 허무가 그 고독이 고마코가 전해오는 애절한 사랑과 맞물려 너울너울 처마 위에 내려 앉는다. 하얗게 쏟아졌다 어느새 사라지고 마는 눈처럼.  


 

인간과 인간의 거리는 무한히 0으로 수렴하지만 결코 0은 될 수 없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난리쳐봐야 우린 결국 남이다. 남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는 '지옥'이라고 했다.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무도 모르게 숨겨진 우물이 있는데 뚜껑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고독이란 것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어둠을 본 사람들은 다시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 이들에게 타인은 지옥까지는 아닐지언정 대단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된다.  

"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중략)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언저리 저 멀리, 방울 소리만큼 종종걸음치며 다가오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출처: Flickr.com, pihe>

요코는 누구인가? 고마코의 병든 약혼자를 돌봐주는 새로운 정인(情人)이랄까? 복잡하다. 그런데 함박눈이 쌓인 마을, 눈옷을 입고 뛰어다니며 '고마코~ 고마코~' 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요코의 마음엔 주름이 없다. 이 얼음같이 차가운 순수함이 기둥처럼 쌓인 눈을 딛고서 병든 남자를 안아 준다. 시릴 정도로 눈부신 천진함에 시마무라는 가슴을 찔린다. 공연히 요코의 안부를 묻고, 그녀의 얘기를 꺼내고, 매일 찾아오는 고마코에게, 미안함도 없이.

고마코는 또 다시 헛수고를 하는걸까?

순수함이란 무엇인가, 더하고 빼지 않는 것이다. 어떤 대가를 받을지 생각치 않고 오로지 마음의 소리만을 따라 온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에는 헛수고가 없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대는 결코 헛수고를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잘난척하지 마라. 너도 결국엔 죽는다. 결국엔 죽는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거대한 헛수고다. 그 안에 순수하게 살았던 한 조각의 시간도 없다면 그거야 말로 슬퍼할 일이지.

그러니 고마코의 마음이 시마무라의 우물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탓하지 마라. 강물이 힘차게 바다로 흐른다고,

나무라지 마라.   

 <출처: Flickr, Bahman Farzad>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일본 서정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남녀의 사랑, 자연의 풍경이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눈처럼 황홀하게 다가왔다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감쪽같이 녹아 없어져 버린다. 특기할만한 내러티브도 별다른 갈등도 없이 진행되는 이 소설이 책에서 손을 뗀 뒤에도 마음 속 깊이 뿌리를 내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허무의 미학에 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만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 없어져 버릴 것이기에 더 아쉬운 그 무엇. 이게 바로 설국의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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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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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사람들은 글을 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노통의 신간 '겨울 여행'은 프랑스 전력 공사에 다니는 남자 조일이 자폐증을 앓고 있으나 천재적인 소설가인 알리에노르를 보살피는 천사 아스트로라브와 겪는 영혼의 쇼크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요약하면, 사랑 이야기.

조일은 직업상의 이유로 이제 막 이사를 마친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아스트로라브를 만났다. 한 눈에 반했다. 한눈에 반했다는 것, 그래 이거야 말로 인간사 그 캐캐묵은 문제 덩어리의 발상지임을 나는 이 순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조일과 아스트로라브의 사랑은 괜찮았다. 문제는 알리에노르였다. 아스트로라브는 한 시도 알리에노르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알리에노르는 자페증을 앓고 있었고 아스트로라브의 보살핌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알리에노르에 대한 아스트로라브의 애정은 강박적이었다. 그런데 키스를 나눌 때, 흥분한 남자가 이성의 고삐를 풀고 그 보다 더한 상태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꿈틀 거릴 때, 그럴때마저 이 강박적 애정이 발휘되어 알리에노르가 옆에 있어야 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심각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조일은 뭔가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정신적 거세법. 아스트로라브와 알리에노르를 떨어 뜨릴 방법은 없었기에 조일은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더러운 욕망이 관계를 파탄내지는 않도록 그는 아주 조금씩 욕망을 전진 시켰다. 그래서 평일에는 퇴근 후, 주말에는 조금 일찍부터 그녀의 집을 찾아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제한했다. 상으로 키스를 얻었다.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정신적 거세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은 심심하지만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형태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욕망이란 놈은, 더군다나 정욕이란 놈은 그 욕망의 주인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행동하며 깜빡한 순간 내 몸의 이성을 탄핵한다. 결정적 사건은 세 사람이 과테말라산 환각 버섯을 삼켰을 때 벌어졌다.  


 

 

<과테말라산 환각 버섯이 이 모양은 아닐거야. 출처: Flickr.com, kathrynivy.com> 

 

환각에 빠진 알리에노르는 바닥에 깔아둔 담요 위에서 깊이 잠들었다. 오예! Just the two of us! 아스트로라브와 조일은 환각 위에 떠오른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공유하며 서로의 뱃속에서 나는 욕망의 소리를 들었다. 하나 둘 씩 옷을 벗기고 기타 등등. 그런데 웬걸 아스트라로브의 몸은 돌이었다.

"당신이 석상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해줬어야지, 그녀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 몸은 원래 이렇지 않아, 온몸이 이러네, 그래, 당신 몸 전체가 돌이야, 그녀가 웃는다, 난 하나도 웃기지 않아. (중략)

그녀가 또 묻는다, 돌하고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냐고, 그럴 것 같긴 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실체를 알게 되다니, 너무해, 나는 그녀의 몸이 다시 살이 되기를 바라며 그녀를 애무했지만, 아스트로라브의 몸은 더욱더 단단해진다."

이 소설을 스티븐 킹 류의 괴기 소설로 오해할까봐 말해 두는데 아스트라로브의 몸이 실제로 돌이었다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은 환각에 빠졌고 그 환각에 의해 살아있는 살갗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신의 계획은 완전히 망했네, 불쌍한 나의 조일."

조일의 결심이 선 것은 그때였다. 조일은 자신의 사랑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항공기 납치를 계획했고 면세점에 들러 테러를 위한 도구를 구매했다. 잠시 후면 비행기는 이륙할 것이다. 조일은 그 비행기를 몰고 미의 상징, 사랑의 총화, 파리를 굽어보는 거대한 에펠탑으로 돌진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좁은 방 안에서 채우지 못한 그녀에 대한 욕망''낮은 고도로 도시 위를 날며' 활활 불타 오를 것이다.
 

 

 


변태같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노통의 소설은 확실히 문장의 촌철에서 힘을 얻는 편이다.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오후 네시. 잘 알려진 그녀의 소설들이 독특한 내러티브로 이름을 얻다 보니 아멜리 노통을 무슨 M.나이트 샤말란 따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여자의 힘은 역시 문장이다.

아멜리 노통이 몇 살 인지 아나? 67년생, 마흔 네 살이다. 믿을 수가 없겠지. 나도 그렇다. 그런데도 그녀는 매년 8월이 되면 소설을 출간한다. 이 여자가 50세나 60세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도 여전할까? 누군가는 '변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 충고하지만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겨울 여행', 대작 이라고 보기엔 한참 멀어 보이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좀 혼란스럽다. 전자의 충고를 믿는 게 좋을까 아니면 후자의 진실을? 나는 후자를 기다려 보지만, 일단 내년 8월 부터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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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ge 2011-02-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다작가 :D 지요 ㅎㅎ ㅎ

한깨짱 2011-02-11 21:27   좋아요 0 | URL
정말 대학시절에는 이 여자에 푹 빠져 있었죠. 두려움과 떨림,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을 읽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