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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올 한해 동안 100여편의 글을 쓰면서, 상당부분 책에 대한 얘기를 해왔고, 몇몇 책에 대해선 과도한 찬양을 일삼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책을 찬양하는데 있어선 일말의 망설임이나 의심의 눈초리를 남겨 두고 싶지 않다.
무라카미 류의 Sixty Nine이다.
벌써 세 번째 이 책을 읽는다. 무라카미 류의 Sixty Nine은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데 있어선 러시아의 도박광 도스토옙스키의 귀싸대기를 올려 붙이고, 삶의 희비극을 묘사하고 조소하는데 있어선 안톤 체홉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정도지만, 무엇보다 평등과 자유를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우스 풍의 서사시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문학과 사상 그리고 전 인류의 해방과 평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뭐 그냥 철 없는 고교생들의 떠들썩한 난동기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겐은 17세이며 동시에 동정인 고교생이다. 17세에 동시에 동정이라는 사실은 그 삶에 무수히 많은 고뇌와 레퍼토리가 함축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평범한 많은 고교생들이 더 나중을 위해, 그러니까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 '불특정 다수의 암컷들'을 차지 하기 위한 고급 라이센스를 획득하는 고문 과정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면 겐은 좀 더 분명하게 현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천사 마츠이 카즈코의 눈에 띄기 위해 종업식날 바리케이트 봉쇄 작전을 펼치는가 하면 페스티발때 공연할 둘 만의 연극 극본에 키스씬을 적어 넣기도 한다. 겐에게 욕망은 현실이고 현실은 즐겨야 하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다마는 17세이며 동시에 동정인 고교생이다. 그의 삶은 동정과 17세의 고교생이 이뤄내는 복잡 다단한 화학 작용의 피해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는 의학부를 지망하는 초우량 모범생이었다. 재수없게 겐과 한 반이 되었다. 어느날 겐이 아다마를 꼬셔 동물원으로 놀러간 날 그에게 랭보의 시를 보여준 것이 화근이었다. 시는 고교생의 마음에 풍랑을 일으켰다.
뒤 늦게 알아버린 또 다른 나. 나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낯설고 거친 에너지. 지난날의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거부해버리고 마는 난폭한 페이소스. 결혼 할 남자와 혼수 문제로 헤어졌다 속수무책 혼자가 되버린 45살의 노처녀 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뒤늦은 사춘기다. 아다마에게 사춘기가 찾아 왔다.
종업식 바리케이트 봉쇄 작전을 통해 겐은 사세보 지역 대학의 스카우트 제의와 8만엔의 현금, 진정한 참회와 눈물이 어린 학교 선생들의 사과, 그리고 좌파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천사 마츠이 카즈코의 마음과, 나아가 몸을 차지할 수 있었다 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아다마와 함께 118일간의 정학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정학은 겐에게 휴식과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피해를 보는 건 언제나 진지하고 성실한 인간들이다. 아다마는 정당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자신에게 내려진 폭압적이고 부당한 처사에 분노했다. 매일 매일 먼 길을 찾아온 선생에게 대들며 난폭한 말을 쏟아 냈다.
언제나 침착했고 무엇보다 부드러웠던 아다마는 어디로 가버린거니.
어머니는 아다마를 혼란에 빠뜨린 친구 겐을 찾아와 눈물을 흘려 보지만, 어머니, 아들은 알지 않아도 될걸 알아 버렸어요.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답니다.
두 사람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Morning Election Festival! 아침에 서는 축제!
언제나 말만 앞서는 겐에겐 행동파 아다마가 있었다. 공연장을 섭외하고 대학에 다니는 형에게 부탁해 티켓을 인쇄하고 공고, 상고, 여고, 여상에 티켓을 판매했다. 겐은 준와의 여신 나가야마 미에에게 속이 비치는 네글리제를 입혀 오프닝 무대에 올려 보냈다. 나가야마 미에가 *사토 에이사쿠와 린든 존슨, 도쿄 대학의 정문이 그려진 나무 판자를 도끼로 찍어 버렸다. 축제는 대성공 이었다.
축제의 여운이 겨울 바람과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불어갈 쯔음 겐과 마츠이 카즈코는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덜컹 거리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갔다. 허름한 극장에서 온 가족을 처참히 살해한 뒤 전기 의자에서 최후를 맞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냉혈'을 봤다. 두 시간 반 동안의 고문을 마치고 두 사람은 바닷가로 나갔다. 마츠이 카즈코가 샌드위치와 후라이드 치킨이 담긴 도시락을 열었다. 겨울 바다의 세찬 바람 앞에서 때때로 불어오는 모래 먼지를 손으로 가리며 두 사람은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마츠이 카즈코는 상냥하고, 예쁘고, 머리 좋고,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다. <냉혈>에서 묘사된 세계가 평화로운 생활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잠복해 있다고 해도, 또 그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천사가 한 말, "난 브라이언 존스의 챔발로 소리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싶어"라는 것이다.
샌드위치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우리는 겨울 바다를 뒤로했다.
키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여 1969년은 지나갔다.
1969년의 17세 고교생 무라카미 류는 지금은 소설가가 되었다. 데뷔작이 히트를 치고 방송에도 자주 나갔다. 고급 호텔에 묵으며 다음 스케쥴을 확인했다.
준와의 여신 나가야마 미에는 미용사가 되었다. 아다마, 겐과 함께 삼총사였던 이와세는 이케부쿠로의 캬바레에서 음유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종업식 바리케이드 봉쇄 작전이 결행됐을 때 겐의 멱살을 잡으며 학교를 위해 울었던 학생 회장은 대학 진학 후 적군파에 가담하여 싱가폴에서 검거 되었다.
의대생 남자 친구가 생겨 일방적인 이별을 선고했던 마츠이 카즈코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이언 존스의 챔발로 소리 같은 느낌으로 살아갈 것이다.
아다마는, 의사가 되지는 못했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