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베이의 데뷔작 '나쁜 녀석들'(Bad boys, 1995)이 한국 비디오 대여점의 선반 한구석을 차지했을 때, 사람들은 '대박인 비디오가 하나 나왔다'며 포스터를 지나칠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참나, 그게 벌써 16년 전이다.
내 기억에 '나쁜 녀석들'은 저예산 영화였다. 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가 무슨 저예산이냐고 하겠지만 1995년 당시 윌 스미스는 저예산 영화에 어울리는 싸구려 배우였다. 사실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영화는 나쁜 녀석들 보다 일년 늦게 개봉한 '인디펜던스 데이'(1996)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 감독이 롤랜드 에머리히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보충 설명. 이 사람은 블록버스터만을 고집하면서도 주연 배우만큼은 절대 블록버스터하지 않은 배우를 쓰는걸로 유명하다. 소시적의 제이크 질렌할도(투머로우에 출연) 여기에 속한다.
어쨌든,
잘나가는 연예인들도 한때 어려운 시절이 있었듯 현존하는 최강의 블록버스터 감독 마이클 베이도 처음에는 저예산 영화로 시작했다. 하지만 스타일리쉬한 액션 연출과 유머에 대한 감각, 성공하는 대중 영화의 절대 방정식 두 개를 공학 계산기도 없이 암산으로 풀어 버리는 듯한 마이클 베이를 나쁜 녀석들의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는 한 눈에 알아봤다.
<CSI의 아버지 제리>
이 둘이 의기투합한 결과가 1996년 더 락(The Rock)! 1997년 콘 에어(Con Air)! 1998년 아마겟돈(Amargedon)!이다. 오늘날 제리 브룩하이머가 CSI로 침좀 뱉고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어깨뽕을 넣어 입을 수 있는 이유는 사실상 이 3년동안 내리 쌓은 성공이 진토되고 넋이 되어 자금적, 기술적으로 튼튼한 토대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진주만(Pearl Harbor, 2001)이었다. 전작 3편의 과도한 흥행으로 한껏 고무된 마이클 베이는 장장 300km의 필름을 소모하며 어지간히 미친짓을 해댔다. 흥행 성적 자체는 그리 나쁜게 아니었으나, 마이클 베이는 그 해 최악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줄거리가 개판인 탓이었다.
그런데 그게 뭐?
마이클 베이의 영화치고 줄거리가 탄탄한 영화는 더 락 외에 전무하다. 브루스 윌리스 대신 살아 돌아온 벤 애플렉을 함박 웃음으로 맞이하는 리브 타일러의 모습에서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케이트 베킨세일을 그리는건 어렵지 않은 일 아닌가? 만약 마이클 베이가 꽉 짜인 스토리 구성 능력까지 갖췄다면 그건 거의 스티븐 스필버그 급이다. 그런데 스티븐 스필버그가 베이만큼 액션을 잘 찍나?
마이클 베이가 스무쓰한 스토리 텔링에 젬병이라고 욕하지만, 그의 영화에선 액션, 근래에 들어서는 CG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스토리 텔링이다.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트랜스 포머(Transformer, 2007)'다.
트랜스 포머의 줄거리는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I'm Optimus Prime!
그리고는 옵티 머스 프라임의 주먹이 날라간다. 대사도 필요없다. 액션의 도입부에서 묘사하는 상세한 변신 장면은 일종의 세레모니다. 전투전에 행해지는 마우리 족의 군무처럼 이것은 스펙타클을 기대하는 관객의 마음속을 한껏 고양시킨다. - 나는 변신 장면에서 눈물이 주륵주륵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전히 줄거리가 개판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선 부단히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할 때 마다 창자가 비틀어지고 머리가 어질해진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선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진지하게 충고하지만,
다 개똥같은 얘기들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평생 장점만 갈고 닦아도 그것이 꽃필지 시들어 버릴지 알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런데도 어떻게 단점 따위에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일 시간이 있겠는가?
마이클 베이는 마이클 베이다. 못하는건 하지 않는다. 당신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되든 마이클 베이가 되든 그건 내가 알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베이의 길이 우습다고 깔봐선 안된다.
그건 사자의 목이 기린의 목보다 짧다며 비웃는 것과 같다.
<뒷 이야기>
마이클 베이는 2003년 '나쁜 녀석들 2(Bad Boys 2)'를 마지막으로 제리 브룩하이머와 결별했다. 제작비가 폭증한 것에 비해 벌이가 시원찮았던 탓이리라. 결별의 사유가 제리에게 있었는지 마이클에게 있었는지 알바 아니지만, 마이클이 제리를 떠나 만든 첫 영화가 아일랜드(2005)라는 사실을 볼 때, 마이클의 선택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Dream Works를 만났고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갑옷과(제작자) 샤이아 라보프라는 검까지(주연 배우) 얻게 됐다. 스티븐은 다행히 마이클의 장점과 가능성을 존중해주는 관대한 제작자인 것 같다.
믿음은 언제나 위대함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