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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2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라. 당신과 눈을 마주치는 젖소의 두 눈이 순진무구해 보인다 해서 이 젖소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 젖소는 쿠키다. 만든 사람이 있다.
모든 창작물에는 의도가 있다.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른 걸 만들었을 뿐이에요"라고 하는 사람의 작품조차 의도를 갖는다. 단지 의식 하지 못할 뿐이다.
이 경우 젖소의 두 눈은 책을 사달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저 눈은 순진무구한 게 아니라 뭔가를 들켜 깜짝 놀란듯 동그랗게 치켜 뜬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숨겨야 할 의도를 들켰을 때 만큼 바보 같은 게 없다. 그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쿠키나 마찬가지다.
이 책은 전세계 10개 국으로 번역되어 저자 뮈리엘 바르베리에게 그럭저럭 명성을 안겨줬다고 한다. 이후 그녀가 출간한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113주 연속 프랑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줬다. 그러나 한국에는 113주 연속 프랑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무시무시한 책 대신 전세계 10개 국으로 번역되어 그럭저럭 명성을 안겨준 <맛>만이 번역되어 있다.
나는 꿩대신 닭을 먹으며 닭에서 난 맛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소설이다. 뿡야!
소설의 제목을 단 한 단어로 지을 수 있는 작가는 비범하다. 주저하지 않는다. 망설임이 없다. 자기 작품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작품에 확신을 갖는 작가의 문장이 온갖 장황한 수사로 채워지는 건 이상한 일이다. <맛>의 화려한 문장은 풍부함일 수도 있고 빈약한 알맹이를 감추려는 위장일 수도 있다. 아니면 프랑스인 고유의 종특(인종 특성)이거나.
프랑스 요리는 화려하다. 성게, 어린 토끼의 등심과 콩팥과 간, 메밀, 대구, 아그리아(감자의 한 품종), 남프랑스 산 보라색 마코, 굴, 거위의 간, 고등어, 파, 푸른 오이, 코미스 배, 육두구, 비둘기, 건과, 통카 콩을 재료로 사용하는가 하면 이를 산초로 양념하고, 으깨서 굽고, 향료를 넣어 삶고, 늘어붙은 즙을 버터, 크림, 술, 물, 식초 등으로 녹여 소스를 만들고, 베샤멜 소스와 달걀 노른자 또는 래디시, 마들렌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는 까다롭다. 알리오 올리오라거나 고르곤졸라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저 장사꾼들의 거리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넘쳐나도 프랑스 요리 전문점은 없는 이유를 알겠는가.
프랑스 요리는 모두 허세다.
난 허세를 사랑한다.
<맛>은 텍스트로 '맛'을 전달하려는 불가능한 과제를 완벽한 전략으로 농락한다.
고소하니 달콤하니 짭쪼름하니 부드러우니 쫀득하니, 맛 자체를 묘사하는 건 유치하고 멍청하고 비효율적이다. 익숙한 요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맛을 전달할 수 있다. 소스를 자작하게 끓여 바싹 튀긴 탕수육,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과 생마늘, 기름장에 찍어 깻잎쌈 위에 올린 차돌박이, 초고추장과 골뱅이를 넣고 비빈 국수, 크게크게 문어를 썰어 넣어 부친 파전, 양파와 청양 고추에 초간장을 넣고 절인 장아찌, 얼음 송송 시원한 동치미를 말은 막국수. 내 말이 맞지?
완성된 요리의 외형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사과 타르트. 얇고 바삭거리는 타르트 판과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수정 같은 설탕 캐러멜이 살짝 얹힌 도도한 과일'(p.86).
요리 과정을 설명할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태국산 쌀을 조심스레 헹구고 작은 은빛 체로 물을 뺐다. 냄비에 넣고 소금 탄 물을 한 배 반 부은 다음 뚜껑을 덮고 끓게 놓아두었다. 세심하게 새우 껍질을 벗겼다. 주철 프라이팬을 불 위에 얹고 올리브유를 한 가닥 부은 다음 달구어진 팬에 벌거벗은 새우들을 흩뿌려 던졌다. 그다음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카레. 이 관능적인 가루가 이국적인 황금빛으로 갑각류들의 분홍 구릿빛을 장식했다. 소금, 후추를 치고 프라이팬 위에서 고수 한 줄기를 가위로 잘게 잘랐다'(p.66).
프랑스 대혁명 시절 플롱 드 두에는 굶주린 민중을 향해 "빵이 없으면 건초를 먹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봐, 프랑스 요리가 아무리 위대해도 동물의 건초를 맛있는 음식으로 요리해낼 정도는 아니잖아. 프랑스 시민은 플롱 드 두에의 머리를 잘라 장대에 꽂았다. 그의 입에는 건초가 물려 있었다. 그런데 건초를 입에 물리고 머리를 잘랐을까, 머리를 자르고 건초를 물렸을까?
뿡야!
줄거리 얘기를 좀 해주면, '나'는 위대한 요리 비평가다. 말 한 마디로 유명한 레스토랑을 망하게도 별 볼이 없는 음식점을 세계 최고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온갖 좋은 음식만 다 먹고 다녔음에도 70세도 되지 않아 심장에 이상이 생겨 죽게 된다. 남은 건 48시간이다. 이 48시간 안에 그 동안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최고를 찾고자 한다.
"범인은 심은하다"라거나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라거나 혹은 "절름발이를 믿지마"라고 외치는 사악한 스포일러가 되 온갖 비난과 경멸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말하고자 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항상 동일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 그 패턴은 성경의 '돌아온 탕자'와 비슷해 보이지만 가장 흡사한 이야기는 역시 '파랑새를 찾아서'일 것이다. 새 한 마리를 찾아 별의 별 고초를 겪으며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사실은 우리 집 앞에 앉아 있었다는 식의 더럽게 허무한 이야기. 나는 이런 식의 결말을 오늘부터 '파랑새 증후군'이라 부를 것이다.
특히 '맛'의 세계에서 '파랑새 증후군'은 맹위를 떨쳐왔다. 칼, 냉장고, 솥, 냄비 등 8가지 전설의 요리 도구를 찾아 떠나는 '요리왕 비룡' 1편에서 주인공은 사천 지방의 화려한 음식 대신 엄마가 해주던 계란 볶음밥으로 대결 상대를 꺽었고 '심야식당' 시즌1 5화는 일본 최고의 미식가가 결국 공산품 버터를 넣고 비빈 간장밥에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그린 바 있다.
죽기 직전 '나'가 찾은 최고의 음식은 슈케트 였다. 그것은 최고급 제과점에서 반죽하고 굽고 크림을 채워 넣은 딱딱하지도 물렁하지도 쫀득하지도 탄력이 없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완벽한 슈케트가 아니라 봉지면에 눅눅하게 설탕이 늘어붙은 슈퍼마켓 슈케트였다.
'나'는 커녕 심지어 저자 조차 모르는 것 같길래 말해주면, '나'는 심장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나'는 굴과 푸아그라와 콩과 오이와 파와 고등어와 식초와 물과 양배추와 밀가루와 카다멈과 고수와 호로파와 온갖 종류의 생선, 고기, 와인의 저주를 받아 죽는 것이다. 평생을 질펀한 식도락에 빠져 흥청망청 살아온 네가 무자비한 어금니 사이에서 온 몸이 으깨지고 날카로운 송곳니에 잘리고 음탕한 혀에 농락당한 음식들을 제쳐놓고 슈퍼마켓 슈케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 주다니. 너는 은혜를 모르는 놈이다. 죽어 마땅한 놈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는 저주를 받아 죽는 것이다. 그 중 팔할은 나의 저주라 해도 부인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