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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유시민에게 항상 두 개의 감정을 갖는다. 그는 1959년에 태어나 스무살 때 독재자의 죽음을 경험했고 뒤이어 나타난 독재자와 싸우는데 그 이십대 전부를 할애했다. 민주화는 *1989년에 성공했지만 그의 승리는 **2003년이 되서야 찾아온다. 나는 그와 함께 승리를 만끽했다.
유시민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중요 내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한미 FTA 체결에 핵심 역할을 한다. 물론 그 때의 FTA는 지금의 FTA처럼 독소 조항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FTA(신자유주의)같은 보수적 가치를 왜 진보 정권이 앞장서 체결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훗날 유시민은 ***어차피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기에 그 흐름 속에서 최대한 이득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당시의 FTA라고 변명한 바 있다. 나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죽을 힘을 다해 손에 쥔 민주화, 독재의 후계자들과 변절자들의 협잡을 이겨내고 세운 진보 정권이라면, 또 한 번 죽을 힘을 다해 막아내야 했던 게 바로 FTA라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이후 유시민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일련의 정치적 시련을 겪은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그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2014년 7월 유시민은 <나의 한국 현대사>를 들고 돌아왔다. 작가이자 한 명의 평범한 시민으로. 이 책의 첫 장은 '같은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온 모든 벗에게'라고 시작한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이 책이 그의 벗 뿐만 아니라 그의 적들마저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잠시후 나는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그가 말한 '모든 벗'에는 이미 그의 적들이 포함되 있었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역사가가 무엇을 기술하고 무엇을 기술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총합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역사는 사실의 폐부를 꾹, 찌르고 들어가는 날카로운 창이다. 그 창날에 꽂힌 일련의 사실들이 역사를 만든다. 그러므로 이 책이 객관적이냐 아니냐 묻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다. '객관'대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단어는 '균형'이다.
이 책에서 그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p.11)라고 썼다. 거짓말이다. 그는 번민하되 냉정을 잃지 않았고 자부하되 흥분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를 절대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바보 같은 정치인처럼 박정희 대통령을 자근자근 다진 뒤 물에 헹궈 다카키 마사오와 여성 편력으로 차려내지 않았다. 물론 그는 박정희가 아니라 전두환과 싸워온 사람이기에 상대적으로 그에게 관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진보 세력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준 무조건적인 증오와 비난을 생각해 볼 때 박통에 대한 그의 인식은 충분히 성숙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는 보통 사람 노태우를 칭찬하고 영원한 박쥐 이인제 마저 재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 뿐만 아니라 양극화와 고용 불안이(비록 김영삼 정권이 일으킨 IMF 탓이 크지만) 진보 정권 10년 동안 급격히 진행됐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악한 사람의 선한 면, 선한 사람의 악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번민을 낳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번민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 책이 반짝반짝 빛나는 또 한가지 이유는 '무림'이니 '부림'이니, 민혁당이니, 너무나 많고 복잡한,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군사 독재 시절의 끔찍한 시민 탄압을 잘 정리해놨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그는 균형을 잃지 않고 일명 진보라 자칭해온 불온 세력의 뿌리도 밝혀낸다. 학생 운동이 왜 NL계와 PD계로 나뉘어졌는지, NL과 PD는 도대체 무엇이며, 현재 그를 잇는 것이 누구인지를 가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유시민은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사실 이런 균형은 똑똑한 진보주의자들이 보여온 전형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가 정치인이었던 시절엔 그런 '이성적 태도'로는 승리할 수 없다며 그를 질타하는 사람도 많았다. 맞는 말이다. 옳게 살아가려는 의지, 흥분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힘만으로는 결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현실 정치는 똥통이며 이기기 위해선 온 몸에 똥이 묻는 걸 개의치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잊지 않으셨겠지? 유시민에겐 "더 이상 승리해야 할 선거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이 달려온 격동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역사를 거꾸로 돌린 어리석은 국민에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들고 왔던 불꽃을 앞서가는 세대에 전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고보면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언제나 고군분투의 행진이었다. 유시민은 이제 묵묵히 자기 페이스를 지키며 그 대열의 끝에서 걷는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 "숨가쁘게 달려온" 그의 등을, 아무 말 없이 밀어주고 싶다.
*군사 독재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해. 드디어 군사 독재가 끝나나 싶었지만 어이없게도 전두환 정권의 2인자였던 보통 사람 노태우 씨가 당선된다. 국민이, 자기를 탄압했던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뽑아준 것이다.
**1998년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진보 정권이 탄생한 해였다.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투신한 김영삼은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전두환, 노태우, 김종필 등 군사 독재자들과 합당을 추진해 오늘날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한다. 1993년, 그는 대통령이 당선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IMF 사태를 일으켰다.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를 일으켰으나 그 위기를 일으킨 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씨의 지지는 여전히 높았다. 이회창 씨는 조순 등과 결합해 거대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을 발족시켜 당시 김종필과 손 잡은 김대중 씨를 박빙의 차로 추격하지만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씨에게 패배한다.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진보 정권이 탄생한다. 그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미 경제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FTA 체결 압박을 견뎌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차피 체결하게 될 FTA. 그렇다면 보수 정권의 주도로 끔찍한 독소 조항을 포함하기 보다는 그래도 진보 정권이 나서서 최대한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협약을 맺고자 한 것이 당시 노무현 정부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