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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소년 탐정단 ㅣ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2월
평점 :
말로만 듣던 히가시노 게이고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과연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 소설의 거장, 출간하는 족족 드라마, 영화로 옮겨가는 역벙급 전이력이 이해가 된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글쎄... 지금 나는 출판사와 작가, 그의 팬들에게 몰매를 맞을 각오로 이 글을 쓴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은 진심으로 별로야.
일일 드라마에서나 박수를 쳐줄 법한 깊이 없는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활보한다. 마치 종이 인형과도 같아 책을 든 독자의 입김만으로도 모조리 쓸려가버릴 것 같다. 문제는 깊이의 부재가 그대로 진부함과 결합한다는 점.
캐릭터는 '정의(definition)'나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년들은 악동이었다"라는 문장은 소년들을 결코 악동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얼핏 작가는 자기 이야기의 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빛이 있으라"하면 빛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상당한 분량의 심리 묘사와 행동, 사건에 대한 반응 등을 통해 총체적으로 인간을 구성해야 한다. 그런게 없으면 캐릭터는 얇은 책장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해진다.
여자 주인공 시노부는 전형적인 안티 요조숙녀다. 청순가련형의 순종적 여성의 반대급부로 태어난 이 캐릭터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결코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의지를 지닌다. 성격은 99.9% 왈가닥이지만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여성미를 발휘해 완전체로 거듭난다. 대개는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능력한 남자와 함께 하는데 이 책에서 그 역할을 맡은 건 신도 형사다. 그에 대한 인물평은 할 가치도 없다.
시노부는 또 하나의 전형을 지닌다. 바로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 '평범함'에 대한 지나친 경탄과 찬양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의 대중은 확실히 '평범함이 위대하다'는 생각에 깊이 조응한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사회가 정확히 둘로 나뉘자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강한 반발심이 생긴다. "너희들이 그렇게 잘났어?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진짜 능력이 있는 건 우리들이지."
사건 해결의 주인공은 언제나 경찰이 아니라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 시노부다. 강력 범죄를 해결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범하지 않다는 걸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오로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같은 사람이 사견을 해결했다.' 우리의 가슴 속에 차오르는 자부심은 이 심각한 오해에서 출발한다.
평범함을 예찬하려면 시노부의 직업을 이용했어야 한다. 초등학교 선생을 몇 년 하다보면 누구나 사람에 대한 직관력이 생긴다. 용의자의 눈만 봐도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지. 뭐 이런 식의 전개가 됐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걸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이 캐릭터들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그에겐 고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전달할 캐릭터가 필요했고 마트에서 기성품 몇 개를 사왔을 뿐이다.
언젠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대단한 글쓰기 광이라고 한다. 머리 속에 수 없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싶어 사람도 만나지 않고 파티도 안 가고 인터뷰도 사절한다. 서점의 신간 코너엔 언제나 그의 책이 있는데, 이 정도 생산 속도를 유지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자잘한' 고민 따위, 정말 바람처럼 날려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대인배의 풍모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기 소설을 읽어볼까? 자기가 쓴 조잡한 문장에 철렁 가슴이 내려 앉아 본 적이 있을까? 이런 글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 놀랍다. 그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걸 모르기 때문에 내가 요 모양 요 꼴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