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1 대교북스캔 클래식 20
찰스 디킨스 지음, 이순주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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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기네스 펠트로와 에단 호크가 출연한 영화 위대한 유산과는 좀 다르다. 물론 영화 위대한 유산이 소설 위대한 유산을 원작으로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영화에선 시대가 바뀌었고 결말 또한 소설보다는 장밋빛 해피엔딩에 가까웠다.

영화가 소설과 다른 점을 더 꼽으라면, 분위기다. 찰스 디킨스의 원작 소설은 세태를 꼬집는 은근한 풍자, 그리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반면 영화는 미스테리와 멜로가 뒤엉켜 전체적으로 알쏭달쏭 신비스러운 매력을 풍기는 작품이다. 따라서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나중에 보고 하는 등의 고민은 이 위대한 유산에는 통하지 않는다. 둘 중에 무엇을 먼저 보더라도 각각의 감상에 방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 핍은 포악한 누나 밑에서 '손수' 길러진 아이다.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의었다.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읜 대다수의 소년들이 그렇듯 핍은 천덕꾸러기로 자라났다. 핍을 칭찬하거나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핍의 누나 가저리 부인은, 핍같은 말썽 꾸러기를 '손수' 기르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핍 자신은 그것에 대해 얼마나 깊이 감사해야 하는지를 아낌없는 매와 구박으로 알려주는 것을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핍이 그나마 크게 비뚤어지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대장장이 조 가저리 덕분이었다. 조 가저리는 누나의 남편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던 핍의 인생에도 일대 전환기가 찾아온다. 상류 계급에 속하는 미스 해비샴과 에스텔라를(영화에선 기네스 팰트로) 만나게 된 것이다.

미스 해비샴은 결혼식 날 남자에게 버림 받은 후 오랜 시간 세상을 등진채 살아온 늙은 여자였다. 남자를 향한 끝모를 복수심은 평생동안 그녀의 삶을 이끌어온 유일한 에너지였다. 미스 해비샴은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을 향해 복수를 꿈꿨다. 그리고 그녀의 양녀 에스텔라는 이 복수극의 주인공이었다.

에스텔라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러나 미스 해비샴은 그녀의 가슴에서 뜨거운 사랑을 꺼내 차가운 심장과 바꿔치기 했다. 핍은 에스텔라를 보는 순간 평생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을 하지만 에스텔라에겐 사랑이 없었다. 그녀의 눈은 오만했고 하층민으로 자란 소년의 태생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핍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경험한다. 그는 자신의 집과 대장간, 안개에 싸인 고향 마을과 마을 사람들, 심지어 언제나 자신의 친구가 되어 줬던 매형 조 가저리마저 싫어졌다. 핍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의 태생을 저주하고 원망했다.








이후로도 핍은 몇번 미스 해비샴의 저택을 방문해 그녀 앞에서 에스텔라와 카드 놀이를 하고 그녀에게 무시당하고 그녀가 마당 위에 내어 주는 음식을 먹었지만, 에스텔라가 외국으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후에 핍도 정체 모를 은인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아 런던으로 떠나게 된다. 그는 지긋지긋한 대장간의 일상과 안개낀 늪지대와 자신을 괴롭히던 마을 사람들로 부터 떠난다는 생각에 행복해 했다. 
그러나 에스텔라와의 추억, 그 아련하고 가슴시린 기억은 끝내 앙금으로 남아 가슴에 쌓여 있었다.

400쪽이 넘는 양장본 2권으로 이뤄진 소설 '위대한 유산'은 바로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신사 수업을 위해 런던으로 건너간 핍은 그곳에서 상류 계급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출신과 처지를 완전히 잊고 지낸다. 그는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가 되어줬던 매형 조가 자신의 런던 집을 찾아오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핍은 식탁 위에서 보여준 조의 매너가 창피했고 그의 촌스러운 정장을 싫어했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조의 도제로서 하루 종일 망치질을 했던 대장장이 소년은, 이제 배은망덕한 속물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핍만이 아니었다. 핍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았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마을로 퍼졌다. 핍은 더이상 마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수 있도록 알아서 길을 비켜 주었고 핍에게 어울리지 않는 존칭을 썼다. 심지어 핍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해쳐 놓곤 하던 펌블추크 마저 완전히 태도를 바꿔 자신이 핍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성공을 위해 아낌없는 희생을 보여준 위대한 후원자로서 행세하기 시작했다. 핍은, 고향이 싫어졌다.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ju8230&logNo=10106439011>


핍이 조 가저리의 대장간을 다시 찾은건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 마을의 호텔 블루 보어에 도착했다. 그가 빈털터리가 됐다는 소문은 그보다 먼저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블루 보어의 
주인은 더 이상 핍에게 좋은 방을 내주지 않았다. 핍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번화가를 가로 질러 고향집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진 빚, 결코 적지 않은 액수를 조 가저리가 갚아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변하던 시절에도 조건없는 사랑을 전해줬던 조. 무식하고 촌스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우정을 보여줬던 진정한 친구. 핍은 오랜 시간을 헤맨 끝에,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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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8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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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를 이해하는 사람의 경우, 프로이트는 어렵다. 그의 언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언어가 어려운 이유는 그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탐구된 적이 없는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전인미답의 정글을 헤쳐나가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무수하게 만들어 냈다. 재차 말하자면, 프로이트의 어려움은 그가 만들어낸 언어의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어만 이해하는 사람의 경우, 프로이트는 어렵다. 그의 언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언어가 어려운 이유는 그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탐구된 적이 없는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전인미답의 정글을 헤쳐나가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무수히 만들어냈는데, 젠장 그건 모두 독일어였다. 다시 말하면, 프로이트의 어려움은 그가 만들어낸 언어의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번역의 어려움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무관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당신이 결국 내 리뷰를 통해 프로이트에 도전하든 그것을 비하하든 그건 나와 완전히 무관한 일이라는 걸 밝혀두고 싶다. 

 

 

 

<꿈을 꾸는 이유>

꿈을 꾸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면을 방해하는 신체적 자극을 꿈으로 제거함으로써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꿈을 꾸는데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바로 소망 충족의 욕구였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꿈 속에서라도 이루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런 강렬한 욕망은 곧 꿈으로 나타나 잠자는 동안 만이라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문제는 이 꿈이 우리가 상상한대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꿈의 재료>

꿈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재료를 수집한다. 꿈에서 묘사하는 사건은 어렸을 때의 추억을, 어제 본 영화를, 낮 시간에 겪은 회사일을 배경으로 한다. 심지어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꿈에서는 싱싱한 재료가 되곤 한다. 꿈에서 생경한 장소나 인물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꿈이 당신의 잊혀진 기억으로부터 재료를 택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이 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중간 정리>

앞서 말했듯이 꿈은 현실 세계와 욕망을 반영한다. 물론 이 반영 과정이 언제나 온전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꿈은 우리가 겪는 수 많은 일들은 과장하거나 생략하고 때로는 뒤죽박죽 섞어 버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꿈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왜곡된 꿈의 내용을 두드려 펴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꿈의 사고와 내용>

말을 할 때를 가정해 보자. '나는 배고프다'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나? '나는 배고프다'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여기서 '나는 배고프다'라는 말은 표현이고 '나는 배고프다'라는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이다.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표현을 할 수 없다. 표현은 생각에서 나온다.

꿈에도 '생각의 세계'가 있고 '표현의 세계'가 있다. 우리가 꾸는 꿈이 '표현의 세계'라면 '생각의 세계'는 그 꿈을 꾸게 만든 원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표현의 세계'는 꿈 자체를, '생각의 세계'는 무의식적 욕망, 무의식적 기억, 일상의 경험 등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꿈은, '생각의 세계'를 떠난 씨앗이 '표현의 세계'에서 발화하는 일종의 성장기인 셈이다. 

 

 

 

그러나 생각의 세계를 떠난 장미 씨앗이 표현의 세계에서 개나리로 피어나는 게 바로 꿈의 세계다. 씨앗은 다양한 도시를 경유하며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한다. 그 때마다 씨앗은 강도 높은 검열을 당한다. 사상이 불순하거나 욕망이 저열하면 씨앗은 어김없이 체포당한다. 따라서 씨앗은 얼굴을 바꾸고 옷을 갈아 입는다. 씨앗은 말투를 바꾸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고 싶은 말을 반대로 하는가 하면 완전히 딴소리를 하기도 하고 종종 고차원의 비유를 활용하기도 한다. 

간밤에 꾼 당신의 꿈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어젯밤 꿈 속에서 당신은 어린 조카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그 조카는 당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당신은 전혀 울지 않았다. 대신 당신은 장례식장을 찾아온 한 남자를 보게된다. 당신은 그를 보고 보고 또 봤다. 이제 당신은 그 남자를 보느라 조카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꿈의 목적은 당신과 그 남자의 재회에 있다. 당신은 현실세계에서 남몰래 그를 흠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당신의 소망은 불륜의 암초에 부딪힌다. 이 때 꿈은 당신과 그의 밀회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정숙한 여자라고 생각했으며 불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이렇게 강력한 이성의 힘이 욕망을 억압할 때 꿈은 스르륵 모습을 바꾼다. 당신은 그 남자와 만나기 위해 조카의 죽음을 이용한다. 

 

 

 

프로이트가 난해함을 넘어서 불쾌하기까지 한 이유는 그가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불륜의 환상을 충족하기 위해 조카의 죽음을 이용하는 꿈이 사이코패스의 정신 상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욕망을 이 같은 매커니즘 속에서 이해하는 프로이트를 결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말한다. 이게 바로 인간이라고.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악마의 모습은,

그저 당신의 옆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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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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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탐정 김전일이라고 들어 봤는가? 평범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그가 가는 곳엔 언제나 피와 살육이 넘쳐 흐른다. 그가 서있는 곳은 언제나 밀실로 변하고 바로 그 곳에서 김전일 소년과 그의 여자친구 미유키, 그리고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해 당한다. 소년 탐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지만 실상은 가는 곳마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인간. 언제나 모든 사람이 죽고 난 뒤에야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외치는 소년. 그런데 이 소년이 도저히 풀기 힘든 트릭을 만날 때 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말 한 마디가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것. 도대체 할아버지가 누구길래? 당시에는 이 만화의 숨막히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이런 의문을 가질 여력도 없었다. 짐작하겠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얘기는 소년 탐정 김전일(원제: 킨다이치 소년의 사건 수첩)이 아니다. 바로 그의 할아버지 킨다이치 코스케에 대한 얘기다. 

 

 

킨다이치 코스케는 1948년, 일본의 추리 소설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가 탄생시킨 가상의 탐정으로 신장은 다섯 자 네 치(163.3cm 정도), 체중은 십 사관(52.5kg)이라고 한다. 외모는 평범 중에 평범, 차림새는 주로 더벅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기성복 하카마에 게다를 신은 모습이다. 흥분하면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못생긴 외모에 지저분한 습관까지, 그리 인상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추리 능력 만큼은 보통이 아니다. 1948년 '혼징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 그 후로 '옥문도', '팔묘촌'을 거쳐 '이누가미 일족'에 이르러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이 글은 '이누가미 일족'에 대한 리뷰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일본 제 일의 재벌, 생사왕 이누가미 사헤이가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이누가미 일족의 대저택에 팽팽한 긴장감이 조여들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유산이었다. 

이누가미 사헤이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어머니가 모두 달랐다. 그래서인지 자매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다. 자매들은 각기 아들을 한 명 씩 두고 있었는데, 징집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장손 스케키요를 비롯해 둘째 딸의 아들 스케타케, 셋째의 자식 스케토모가 그들이었다. 짐작하다시피 이들의 사이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된다. 사이가 나쁜 어머니들 밑에서 자랐으니 가족의 끈끈한 정 같은걸 배웠을리 만무하다. 이들은 명목만 가족이었을 뿐 실제로는 남남과 다름없었다.  

더욱이 이들은 일본 최고 재벌가의 손자들 아닌가. 아무리 유산이 많더라도 세 명이 나눠 갖는다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러니 그들에게 형제란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누가미 사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리 없는 이 비밀스러운 남자는 마지막까지 요상한 유서를 남겨 일족을 질투와 욕망의 화산 밑으로 던져 넣는다. 

 

 

이누가미 일족에게는 식객이 한명 있었다. 다마요. 절세의 미녀였다. 다마요는 이누가미 사헤이가 빈털털이 고아일 때 그를 거둬 들인 나스 신사의 신주 노노미야 다이니의 손녀였다. 노노미야 다이니는 이누가미 사헤이를 먹이고 입혔을 뿐 아니라 그가 사업을 시작할 무렵 결정적인 자본을 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일본 제 일의 부자가 된 뒤에도 그 은혜를 잊지 않았는지 이누가미 사헤이는 노노미야 가문의 식구들을 극진이 보살폈다고 한다. 다마요의 어머니 노리코 그러니까 노노미야 다이니의 외동딸이 죽고 나자 다마요는 이누가미 일족에 들어와 식객이 된다. 그러나 이누가미 사헤이의 유서가 공개되자 이 식객은 열 두칸 다다미 방을 가득 채운 긴장과 기대감이 순간 질투와 시기, 경멸과 증오로 변해 자신을 찔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누가미 사헤이가 자신의 모든 유산을 다마요에게 물려줬던 것이다.   

이누가미 일족의 번영에 있어 노노미야 다이니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누가미 사헤이 보은은 어딘가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친 것도 사실이다. 아니, 단순히 지나치다고 평하고 그칠일은 아닌게 이 유서가 공개된 이후로 이누가미 가문은 누가 누구를 죽여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증오와 욕망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고아로 태어났음에도 일본 재계를 제패할 정도로 신묘한 남자였던 이누가미 사헤이, 그러나 그도 죽음을 앞에 두고서는 역시 냉철한 판단력을 잃고 말았던 걸까? 한가지 다행인건 다마요가 이누가미 사헤이의 세 손자중 한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일족의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었다는 거다. 그러나 이 '다행'이란 과연 누구에게 해당하는 말일까? 다마요의 마음만 얻으면 일족의 모든걸 차지할 수 있는 세 손자들인가? 아니면 그들만 사라지고 나면 부와 권력을 독식할 수 있는 다마요인가? 

 

  

 

나는 지난 수 개월 동안 제대로 읽을만한 장르 소설을 찾아 방황했지만 수확은 신통치 않았다. 베스트셀러 목록의 단골 손님이라는 일본 현대 작가들의 소설은 대개가 왜 읽는지 모를만큼 절망적이었다. 앞으로도 일본 현대 문학은 무라카미 류의 'Sixty Nine'을 능가하는 소설을 내놓진 못할 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간만에 읽는 즐거움을 만끽한 장르 소설이었다. 연쇄 살인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한 소설의 분위기 탓에 끔찍한 사건의 긴장감이 약화된다는 점, 그리고 뻔한 트릭과 지나친 우연이 겹쳐 추리의 밀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바로 장르 문학의 멋과 맛인 것을.  

 

<요코미조 세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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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포로 아크파크 2 : 사...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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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기원'에서 작가가 마지막 페이지를 태워 버린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크파크와 그의 세계는 완전히 산산조각나 우주로 우주로 뻗어 나갔다. 마치 태초의 빅뱅처럼.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세계는 다시 한 곳으로 수렴하여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곳은 '기원'의 마지막 페이지를 태우고 있는 작가의 작업실이다. 타들어가는 페이지, 늘어 놓은 종이와 잉크, 지우개와 붓통, 그리고 커피가 가득 담긴 찻잔. 아크파크는 중력에 이끌려 작가 옆에 놓인 커피잔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주의 기원은 깜깜한 커피?  







 

탕! 탕! 탕!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아크파크는 잠에서 깬다. 역시 꿈이었다. 아크파크를 찾아온 사람들은 '생활 공간 검사관'. 아크파크의 아파트를 철저히 측량해 그가 공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검사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측량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아크파크가 열어 놓은 장롱 서랍이 문제였다. 이것은 아크파크가 열어 놓은 서랍의 크기만큼 공간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걸 명백히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다급해진 아크파크는 검사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장롱 서랍을 닫으려 하지만 이게 바로 검사관들의 함정. 아크파크는 '측량도구훼손죄'에 '잘 닫히지 않은 서랍 은닉죄'를 저지른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된다. 세상에!




 


 

재판부는 아크파크에게 따귀 두 대를 선고했다. 형은 예정대로 집행됐고 아크파크는 성 밖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추방된다. 그 곳을 지키던 문지기는 아크파크가 남쪽에 보이는 역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누군가 
아크파크의 인생을 갖고 심한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 역시 짜여진 각본일까?

이 만화는 언제나 꿈과 꿈 사이에 중요한 사건들이 배치되므로 도대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 부터 현실인지 알길이 없다. 이런 와중에 아크파크는 또 한 번 꿈 속으로 빠져든다. 그 곳에서 아크파크는 자신이 연극 '미션'의 주연 배우로 선정됐음을 통보 받는다.

연극을 주재하는 사람들은 주연 배우가 모든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길 원하지만 아크파크는 '도대체 왜 접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기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 그리고 회의. 하지만 정해진 궤도를 달려가는 기차에게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은 덜컹거리는 바퀴일 뿐이다. 주재자들은 당장에 이 바퀴를 뽑아 버리려 하지만 때마침 울린 자명종이 아크파크를 꿈의 세계에서 건져낸다. 눈을 뜬 아크파크의 앞에는 역이 도착해 있었다. 



 




역에는 수 많은 코인로커가 닭장처럼 세워져 있었다. 코인로커는 아크파크처럼 독립된 공간을 할당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거 공간이었다. 플랫폼으로 나가보니 상황은 더 심했다. 개미떼처럼 모여든 사람들은 플랫폼 바닥에 선을 긋고 저마다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이 진짜 자기 집인것처럼 행동했지만 가구와 창문은 땅바닥에 네모를 그린 뒤 '침대', '창문'이라고 써 놓은게 다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인간은 신과 마찬가지로 존재에 목적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인간은 편안하게 잠들기'위해', 그리고 비바람을 피하기'위해' 침대와 창문의 존재를 창조한다. 즉 침대와 집은 존재보다 목적이 앞선 즉자물인 것이다. 그러나 플랫폼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침대와 창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빈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어쩌면 이 곳은 제대로된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들, 즉 위대한 창조의 힘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 도착한 일종의 유배지가 아닐까? 열차가 도착했을 때 아크파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열차를 탈 수 없었다. 창조의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겐 세상의 비밀을 목격할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열차는 아무것도 아닌 곳을 지나, 이 세상의 지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줄곧 흑백으로만 그려졌던 만화는 아크파크가 세상의 지붕에 도착해 비밀스런 뚜껑을 열자 곧 컬러로 변해 버린다. 이 순간 예외없이 아크파크는 꿈에서 깨어난다. 정확히 '사도인쇄'로 칠해진 세상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당신,

혹시 컬러로 된 꿈을 꿔 본적은 없는가?  

 

 

 

 

 

 

이야기는 3권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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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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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금껏 내가 봐온 글쓰기 지침서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그리고 이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 세 권이 전부다. 

'유혹하는 글쓰기'가 창작법 강의를 가장한 스티븐 킹의 성장기라면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교과서 중의 교과서라 부를 만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있다. 그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근원적 욕망과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비교를 위해 세 책의 목차를 살펴보자. 서문 등을 제외하면 뼛속의 첫째 장이라 부를만한 것은 '초심자의 마음, 종이와 연필'이라는 챕터다. '글쓰기 만보'의 첫째 장은 '단어에서 단락까지'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이력서'라는 챕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막을 올린다.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글쓰기 만보'는 교과서 중의 교과서다. 그러다 보니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내용으로 시작한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든 장편 수십권을 출간한 베테랑 작가든 그들이 다루는 것은 결국 백지 위에 줄줄이 늘어선 단어다. 그리고 그 단어가 모여 단락을 이룬다. 그러니 선생님 안정효가 처음으로 가르쳐야 할 게 '단어와 단락'말고 무엇이겠는가.

반면 '뼛속'은 초심자의 '마음'으로 시작한다. 이게 바로 두 책의 큰 차이다. 오랜기간 선(禪)수련과 명상을 해왔던 작가 답게 그의 시작은 '마음'이다. 마음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좋은 단어를 고르고 올바른 문장을 만드는 법? 그건 글을 쓰려는 마음만 확실하면 결국 갖춰지게 되있다. 문제는 역시 글쓰기의 고통을 견디고 그 욕망을 평생토록 유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써보라거나 이야기 모임을 만들어 보라거나 '그냥 꽃이 아니라 그꽃의 이름을 불러 주라'는 등 실천적 글쓰기로서의 충고도 다수 등장하지만 역시 '부사를 빼라'(스티븐 킹)거나 '있을 수 있는 것을 삭제하라'(안정효)는 말 보다는 덜 구체적인 것이 사실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뼛 속'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오랜시간 동안 글쓰기와 씨름해온 작가의 소소한 고백이 담백하게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소설가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대단한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우리에겐 큰 공감이 된다. 그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오늘도 어김없이 글쓰기의 고통과 욕망을 통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가 해낼 수 있었다면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 책이 왜 좋은지 하나만 더 말해보라면, 나는 이 책이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 밑에 '왜 쓰는가'에 대한 대답을 깔아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은 이미 'How'에 대한 지침서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어떤 일에 목숨을 걸고 정진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내 마음을 다부잡는, 그런 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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