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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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단편은 돈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팔리는 작가들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기도 하죠. 장편을 쓰세요. 단편은 팔리지 않아요.


단편은 후킹이 있어야 합니다. 독자의 시선을 확 끌어 당기는 어떤 것. 그러다보니 소설가가 좀 장사꾼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케터처럼 보이기도 하고. 뭐 이런 생각때문에 순수 문학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록 단편을 평가절하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 예전부터 단편이 좋았어요. 러시아 문학하면 대개 도스토옙스키를 꼽지만 전 체홉이 더 좋더라고요. 모파상도 장편 '여자의 일생'보단 단편 '비계덩어리'가 진짜 죽였어요. 보르헤스는 거론할 필요도 없죠!


단편집을 손에 들고 있으면 두근두근 기대와 설렘이 부풀어 오릅니다. 짧은 호흡, 기막힌 아이디어, 알싸한 여운. 과연 다음 장에선 어떤 작가가 또 어떤 문장으로 나를 미치게 해줄까. 뷔페는 막상 먹을게 없고 잡탕은 그냥 잡탕으로 그치고 말지만, 문학은 예외입니다. 섞어놓을수록, 더 찐해져요. 







왜 이상 문학상을 집어 들었나? 그건 현재 소설가라고 불리는, 그러니까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글쟁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떤 글을 쓰나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황석영이나 김훈 같은 선생님들은, 깊고 깊은 심해에 살거나 저 높은 산꼭대기에 머무는 분들 아니겠습니까.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분들이시죠. 


손을 쭉 뻗으면 닿을 수도 있는 거리. 바로 그 앞에 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건방이라는걸 곧 깨달았지만, 어쨌든 이 책을 선택할 당시에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구매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답니다. 


37회 이상 문학상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자선 대표작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포함해 총 10편의 소설이 담겨 있어요. 여기서 이 모든 소설을 일일이 거론할수는 없으니 대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전반적인 감상을 말하려 합니다. 


'침묵의 미래'는 '언어'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언어'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후두암에 걸린 어느 노인의 언어입니다. 이 노인은 소수민족 출신이에요. 중앙 정부는 사라져가는 '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수언어박물관'을 짓고 그 안에 소수민족들을 잡아다 전시물로 박제해 버립니다. 그들은 뜨문뜨문 찾는 방문객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팔며 평생 외롭게 살다 죽습니다. 사멸 직전의 언어를 가진 민족이기에 자기 말을 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거에요. 


어느날 주인공은 박물관을 탈출해 고향을 찾습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곳에 고향은 없었어요. 황폐화된 땅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죠. 주인공은 도망칠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산더미처럼 쌓인 외로움을 헤아리다 죽음을 맞습니다. 


주최측은 '침묵의 미래'를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생성과 그 사멸의 과정을 인간 자신의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는 <침묵의 미래>는 서사를 극단적으로 절제하면서 내면적인 사유의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 위로 끌어올려놓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언어 자체가 스스로 그 존재와 가치를 되묻고 그 운명에 대해 질문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사멸이라는 현상이 현대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p.337)


전 이 소설을 보면서, 이것이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본질적 문제를 드러내는 우화라기 보다는, 이 시대에 죽어가는 '문학'의 운명을 쓸쓸히 그려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문학상은 '침묵의 미래'에 나오는 소수언어박물관과 다름아닙니다. 문학상이라도 없다면 과연 '문학'이 우리 사회의 관심을 받는 날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문학상은 팔리지 않는 단편을 싣고 고독한 소설가들을 응원하면서, 그렇게 사멸해가는 문학의 끝을 간신히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밖에 재미있게 본 소설은 '그리네스'라는 자살 유발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별볼일 없는 남자와 그 별볼일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더 별볼일 없는 여자의 삶을 포르보 배우가 된 노인의 삶과 뒤섞어 놓은 '배우가 된 노인'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네스의 경우 사회의 부도덕을 드러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뻔한 면도 있지만, 그 적나라한 표현이 오히려 보는 이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배우가 된 노인'은 자극적인 소재와 다르게 굉장히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였던 소설입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 탓에 보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던 작품입니다. 

이 밖에 등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염승숙의 '습',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우리의 처참한 자화상을 그려낸 김이설의 '흉몽',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독자를 몽롱한 안개 속으로 끌어들이는 편혜영의 '밤의 마침'도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책을 사들었을 땐, '아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하는 패기로 가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모두 읽고, 키보드 앞에 앉아,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은 망망한 컴퓨터 화면을  봤을 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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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1
아베 쓰카사 지음, 안병수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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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유명 과자 회사 연구원이 폭로한 과자의 비밀을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본인이 과자 회사의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이한테는 절대로 과자를 먹이지 않는다고 했죠. 사실 과자가 몸에 나쁘다는 인식은 하루 이틀된게 아닙니다. 어릴때 부터 엄마가 주구장창 얘기해왔잖아요. 그런거 사먹지 말라고. 몰라서 안 먹는건 아니죠. 





그런데 우리 몸에 나쁜게 과연 과자 뿐일까요? 아이스크림은? 거대 비지니스의 은혜를 입어 말끔한 인테리어로 재탄생한 떡볶이 집은요? 소시지는? 단무지는? 심지어 김치는? 밥을 밖에서 먹는 사람이든 집에서 먹는 사람이든 오늘날 식품첨가물과 화학조미료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엄마가 만든 김치와 된장찌개는 괜찮다고요? 김치에 들어간 젓갈은 어떻습니까? 찌개에 들어간 된장은요? 당신이 직접 재배해 먹는게 아니라면 식품첨가물을 피해갈 수 없어요. 깨끗하게 진공포장된 야채조차 맹독성 세척제와 방부제로 처리되는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나쁜 것들이 승승장구 슈퍼마켓의 매대를 장식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자연산 재료들만 골라 정성껏 손질해 조미료도 안넣고 요리를해 보지만, 싱겁고 감칠맛이 안나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맛이 있죠. 여기에 조미료 한 스푼을 넣으면 확 달라집니다. 세상이 사악해져서 음식에까지 장난을 친다구요? 아니요, 문제는 우리에요. 우리의 입맛이 길들여진 겁니다


냉장고에 한 가득 콜라를 채워 넣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색 소시지를 한통을 책상 위에 놓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어요. 소시지나 햄은 거의 100% 사료용 고기로 만듭니다. 폐기 직전의 고기에다 비계와 물을 넣어 양을 불리고 연육제를 넣어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어줘요. 여기에 고기향과 맛을 내는 '화학 첨가물'이 들어갑니다. 중국 사람들이 머리카락으로 계란을 만들고 젓가락으로 죽순을 만든다고 탓할 일이 아니라니까요. 





사악한 음식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걸 끊임없이 먹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맛있는걸 어떻게 합니까. 따지고 따지다 보면 요즘 세상에 순수한 음식이란게 어딨어요. 그냥 포기하고 사는거지. 먹을 때 마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보면 참 밥 맛없어.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사나 싶기도 하고. 이거 좀 먹는다고 죽는것도 아닌데. 그렇게 따지지만 결국엔 자기도 먹잖아요. 


문제는 이런 경멸과 안이함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침묵 속에 가둬 버린다는 거에요. 아는 사람들이 입을 닫고 있으니 세상은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죠.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니 사회는 더더욱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게 됩니다. 악순환이죠. 노스트라 다무스는 '무지한 자는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렴!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사라져갑니다. 진짜 맛이 뭔지 아는 사람들. 좋은 먹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고객. 어쩌면 비용이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진정한 가치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생각해보니 비용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없는 세상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는것 자체가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입니다. 


진짜 비극은 이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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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목마르다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3
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지혜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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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프랑스의 팬이라면 번역서가 나오는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나톨 프랑스,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을 책과 함께 살았고, 한때는 탐미주의로, 한 때는 깊은 회의주의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수 놓았던 소설가. 노벨상까지 수상한 작가임에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 남자의 작품에는 인간이 가진 본성적 결함을 조롱하는 깊은 회의주의가 뿌리 박혀 있어요. 아마도 이 회의주의가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사시는 분들의 눈에 거슬렸던건지도 모릅니다. 





후세 사람들 중에는 프랑스 혁명을 실패한 혁명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가 '공화국'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건 모두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에요. 공화국이란 쉽게 말해 '왕이 없는 나라'를 뜻합니다. 국민이 그 나라의 주인인거죠. 지금이야 이게 당연한 거지만 1700년대 말까지만해도, 참 내! 택도 없는 얘기였죠.

이 택도 없는 얘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일어난 국가가 바로 프랑스입니다. 선구자들은 자유, 인권, 박애를 부르짖었고 바스티유 감옥은 습격당했고 '고기가 없으면 건초(말 사료로 쓰는)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던 풀롱의 머리는 장대 끝에 매달려 거리를 행진했죠. 혁명이 발발한 겁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주변 국가들은 공포에 떨었어요. 자기 나라의 국민들도 자유, 인권, 박애의 가치를 알게 될까봐 겁났던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군대를 모아 프랑스를 침공합니다. 프랑스는 안 팎으로 열세에 몰렸습니다. 전선은 무너졌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기근이 몰아닥쳤어요. 프랑스 국민은 불안에 떨었고 '자유, 인권, 박애'는 개나 줘버릴 것들로 몰락해 버렸죠. 책방을 장식하던 역사, 정치, 철학 서적들은 가요집과 소설책에 밀려 더 이상 팔리지 않았어요. 베스트셀러는 '속옷 바람의 수녀'였습니다. 


혁명의 불길이 꺼진 프랑스는 재만 남은, 스산한 폐허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이 잿더미 속에서 '로베스 피에르'가 태어납니다. 그는 수 많은 연방주의자, 왕정복고를 노리는 음모자들, 기타 정적 등등 공화국의 적이 될 만한 자들을 단두대로 보내 버립니다. 강력한 공포 정치로 수렁에 빠진 공화국을 지키려 한 자. 소설 '신들은 목마르다'는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



주인공 에바리스트 가믈랭, 그는 어머니에게 줄 빵 한조각을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빵 가게에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또한 그는 철저한 공화주의자였고 혁명의 가치를 신앙으로 삼은 사람이었죠. 올바르고 굳세지만 가난한, 한마디로 정의로운 시민의 전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굳은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는 언제나 광신의 함정이 기다리는 법입니다. 에바리스트는 중산층 화상의 딸 엘로디를 만나 사랑에 빠져요. 그녀는 힘있는 자에게 부탁해 에바리스트를 혁명재판소의 배심원으로 만들어 줍니다. 광신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거지요.


정의로운 시민 가믈랭과 혁명재판소는 애국이 아니라 분노를 잣대로 심판의 망치를 내렸습니다. 단두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과 옛 귀족들의 모가지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배를 불렸습니다. 대중들은 누가 죽든 상관없이 광장에서 벌어지는 공개처형에 열광을 했죠. 


에바리스트는, 심지어 한 망명 귀족을 여자 친구의 옛 애인으로 오해해 단두대로 끌고갑니다. 에바리스트가 혁명재판소 배심원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시민을 죽인겁니다. 파렴치한 질투는 애국이라는 광신에 가려 양심을 찌를 수 없었습니다. 혁명은 빛을 잃었어요. 이제 남은건 독재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또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는 실각하고 에바리스트는 투옥됐습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로베스 피에르와 그의 추종자들을 각별히 보살폈습니다. 그들은 아주 건강한 상태로 단두대에 올리기 위해서였죠. 


가믈랭이 처형장으로 향하는 날 그는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대중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믈랭과 그의 동료들이 단두대로 보낸 음모자와 귀족을 모욕했던 바로 그 사람들(p.301)이었죠. 가믈랭은 자신의 나약함을, 적의 피를 아꼈던 혁명재판소의 관대함을 한탄했습니다. 그 때 엘로디의 창문이 열리면서 꽃 한송이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가믈랭의 갈증을 풀어주곤 했던 엘로디의 붉은 입술의 상징(p.302)이자 곧 다가올 피의 축제를 말해주는 붉은 카네이션이었어요. 두 손이 묶인 가믈랭은 그 꽃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천천히 입을 벌리고 있는 짐승같은 단두대의 칼날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난 뒤, 과연 우리가 다른 대통령을 뽑았다고 한들 과연 희망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두려운건 보수주의나 독재, 1%만을 위한 정치 아니라 무지한 대중이 만드는 오해와 욕심 아닐까요? 


대중은 혁명이 더 많은 빵과 술 볼거리를 제공해 줄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그런게 아니었어요. 열기는 금방 시들었고 남은건 '속옷을 입은 수녀' 뿐이었습니다. 


이기심과 천박함은 인간이 가진 근본적 결함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수 없이 비극을 되풀이 하면서도 예외없이 그 멍청한 과거를 재연하는 걸까요? 아나톨 프랑스는 이런 회의에 빠져 깊고 깊은 문학의 숲으로 도피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인간의 맨얼굴을 폭로하고 대중의 천박함을 풍자했죠. 저는 아나톨 프랑스의 회의주의가 인간성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아요. 아나톨 프랑스는 그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그렸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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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 대산세계문학총서 65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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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보다는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 제목이 더 유명한 모옌의 장편 소설 '홍까오량 가족'입니다. 사실 '붉은 수수밭'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 영화의 원작이 '홍까오량 가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이모의 탓도 있죠. 지금이야 관(官)에 딱 붙어 올림픽 개막식 같이 돈을 쏟아 부은 대규모 퍼포먼스나 '영웅', '황후화'같이 알맹이는 없고 겉만 화려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만, 이 사람 87년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 상을 수상한 세계적 감독입니다. 모옌이 노벨상을 탓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붉은 수수밭'은 영원히 장예모의 작품으로 기억됐겠죠.


장예모가 '붉은 수수밭'을 공개했을 때 세계인들은 '중국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중국은 억압, 감시, 학살의 상징이자 인류의 적, 공포의 대마왕이었죠. 그런데 장예모의 영화가 나타납니다. 스크린에는 붉은 수수가 홍수처럼 넘실댔고 그 밑에 단단히 뿌리내린 민중의 삶이 있었죠. 흙냄새가 물씬 풍겼고 그건 바로 인간의 냄새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인이 중국이라는 땅을, 새롭게 발견한 겁니다.


뭔가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선 그 안에 고유한 색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농촌을 배경으로, 땅을 주인공으로, 그 위에서 생장하는 식물과, 그것을 먹고 자라는 민중을 그려왔던 모옌의 소설에는 토속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었죠. '붉은 수수밭'이 중국을 새롭게 발견해냈다는 말은 결국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렸다는 말 이상이 아닌 것입니다.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향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작고 귀여운 발까지 가진 꽃처녀 따오펑리옌은, 고작 검은 노새 한 마리를 받고 단씨 가문에 팔려갑니다. 문제는 단씨가 문둥병 환자였다는 거에요. 거래를 성사시킨건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였죠. 단씨와의 첫날밤,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손이 어두컴컴한 베일 뒤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따오펑리옌은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가위를 집어 들었죠. 그날 밤 따오펑리옌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따오펑리옌이 시집을 가는 날 그 가마를 들었던 사람 중에 위잔아오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위잔아오는 건장하고 패기넘치는 젊은이였고, 악당이 될 기질이 충분했죠. 그는 따오펑리옌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손의 아내가 된다는걸 납득할 수 없었어요. 이날 둘 사이에는 찌릿한 전기가 흘렀습니다. 모종의 계약이 성립했죠. 둥베이향에는 시집갔던 처녀가 친정으로 돌아가 사흘동안 지내고 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따오펑리옌이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 위잔아오는 그녀를 납치합니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붉은 수수의 바다에 누워,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눴어요. 따오펑리옌이 시댁으로 돌아오는날 마을의 연못은 단씨 부자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따오펑리옌은 단씨 가문의 양조장을 물려 받았고 후에 위잔아오가 찾아와 일꾼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안방을 차지하게 되죠.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아이가 또우꽌, 그의 아들이 바로 '나', 이 '나'가 화자가 되어 삼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를 쳘치는것이 바로 소설 '홍까오량 가족'입니다.



붉은 수수밭에서 따오펑리옌 역을 맡은 공리. 이 작품의 그녀의 데뷔작



수수밭 위에서 펼쳐지는 끈적끈적한 남녀상열지사, 이것이 '홍까오량 가족'의 전부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 무대는 1930년대. 바야흐로 일제의 침략이 거세던 시기였죠. 칠점매화총 - 탁자 위에 매화 모양으로 일곱개의 동전을 쌓아둔 뒤 탁자에는 흠집하나 없이 동전만을 쏴 맞추는 기술 -, 총쏘기의 달인이자 까오미현의 악당인 위잔아오는 항일 민병대의 사령관이 됩니다.


대악당 위잔아오는 벙어리, 머저리, 멍청이, 겁쟁이 등을 데리고 일본군 트럭부대를 습격, 장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하지만 민병대는 위잔아오와 아들 또우꽌을 남기고 전멸해요. 부대를 먹이기 위해 밥을 싸들고 오던 따오펑리옌조차 일본군의 기관총에 가슴이 뚫려 숨을 거둡니다. 두 부자가 거머쥔 승리에는 상실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향,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나의 집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불타 버리죠.


민병대의 전멸은 연합 전투를 벌이기로 했으나 배신한 국민당 부대(우익)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뒤늦게 나타나 전리품들을 가로챕니다. 위잔아오는 국민당 부대 사령관을 죽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어요. 잔아오에게 남은 부하는 아들 또우꽌이 전부였으니까요. 코흘리개에 넝마를 걸친 거지 부대 팔로군(좌익)은 숲 뒤에 숨어 전투를 지켜보다 얼마 남지 않은 전리품이나마 구걸하고자 뻔뻔한 얼굴을 들이밉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식에도 두 개가 있는 셈이죠. 이념을 내세운 자들은 결코 협력하는 법이 없습니다. 단씨 부자를 죽이고 여자를 가로챈, 파렴치하고 잔인한 위잔아오지만, 진짜 악당은 이념의 혓바닥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이런 자들이 아닐까요? 위잔아오는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나라를 구하는데 자기 몸을 바치는걸 아까워 하지 않았습니다. 허기진 역사는 이렇듯 뒤를 돌아보지 않는 민중의 시체를 먹고 전진하는 법이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겹겹이 쌓인 상실을 즈려 밟고 꾸역꾸역 살아 나갑니다. 무엇을 위해서? 거창한 이유는 절대 아니죠. 그들은 땅에서 태어났고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받아 들입니다. 그 누런 땅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채,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내뱉고 웃고 떠들고 개고기를 씹어 먹으면서.





1987년 '붉은 수수밭'을 보고 느꼈을 서양인들의 충격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이 상상했던 중국인은 누런 옷을 똑같이 맞춰 입고 회색빛 얼굴을 한 채 맥없이 걸어가는 좀비었을 거에요. 그런데 붉은 스크린 위로 또렷한 개성을 지닌 인간들이 뛰쳐나올 듯 꿈틀대고 있었던 거에요. 그들은 중국을 다시 봤죠. 그 안에서 인간을 발견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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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3-01-0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수수밭을 보고싶어 집니다. 책까지도... 소설류의 책을 손놓은지가 꽤 되는데 과연 읽을 수 있을지..내 자신을 지켜봐야할 듯...

한깨짱 2013-01-08 23:03   좋아요 0 | URL
소설 읽어보세요! 문학은 정말 위대한 것 같아요. 특히 모옌의 소설은 표현의 다채로움에 감탄하게 되네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주호.황조윤 지음 / 걷는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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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써야 팔리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펴든 책 '광해 왕이 된 남자'. 천만 관객이 든 영화라면, 과정이야 어떻든 그 이야기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렇게 수준 낮은 드라마에는 잘도 열광 하면서 왜 영화에만큼은 그토록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내기 때문인가요?


광해는 대체로 좋은 평을 받기는 했지만 일부에선 '억지로 울리려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억지로라도 독자를 울릴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광해가 재미있는 이유요? 우선 술술 읽힙니다. 260페이지 짜리 장르 소설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근엄한척 해봐야 남는거 하나 없습니다. 날카로운 정치적 견해나 치밀한 역사 연구에 감탄하기 위해 광해를 산 사람이 있겠습니까? 장르 소설은 우선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쭉쭉쭉 진도가 나가야 되요. 쭉쭉 진도가 나간다는건 뒷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다는 얘깁니다. 


광해는 그런 소설이에요. 구중궁궐 은밀한 왕궁 안에서 질퍽한 음모가 벌어집니다. 왕을 시해하려는 자가 있고 그걸 막으려는 자가 있어요. 첨예한 갈등이 불꽃을 튀면서 가슴을 졸이게 만듭니다. 책장이 훨훨 날아 다녀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하선은(주인공) 결국 죽을까? 그럼 광해는?


소재가 광해였다는 것도 좋았어요. 솔직히 광해가 누군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 나라 관객들 잘 모르잖아요. 바꿀 수 없는 사실. 정해진 결말. 역사를 영화화할 때 가장 큰 걱정거리 하나가 없어진 거에요. 사람들이 모르니까, 이야기의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겁니다.


둘째로 도승지 허균. 저는 허균이야 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조선의 역사를 잘 모르는건 다행인데, 그렇다고 너무 모르는것도 문제에요. 그걸 허균이 해결해 줍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허균이에요. 홍길동의 아버지. 


같은 아비의 자식이라도 어느 뱃속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신분이 구별되던 조선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서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웅 활극을 그린 남자. 그렇게 진보적이었던 남자가 한 나라의 도승지(현대로 따지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합니다)입니다. 그리고 정사에 있어서까지 파격을 일삼았죠. 통쾌합니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라면 대국을 앞에 두고도 당당할 수 있는 패기와 기개가 있어야죠. 우리가 바라던 정치인이 바로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이 소설 웃깁니다. 그게 영화화된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나라 관객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감상평이 '남는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관객들에게 적당히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커다란 웃음을 안겨주면 대체로 이런 얘기는 사라집니다. 진지한 주제 속에서 활짝 핀 웃음. 이게 바로 팔리는 글의 조건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전 이 소설이 별로였어요. 역사가 너무 파괴됐습니다. 멸종했어요. 우리에게 역사는 그저 이야기거리에 불과한가?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비참한 현대사를 쓰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건 역시, 지금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지도자. 국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권력을 돈 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는 지도자. 국가를 위해선 그 높은 자리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면서. 우리 모두 19일날 투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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