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평생의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말하자면 본인이 밥 벌어먹고 있는 공장(물론 굴뚝에서 연기나는 진짜 공장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 직장을 그냥 공장이라고 부른다)에서는 <전직원 책읽기 운동>이라는 정말 괜찮은 건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전직원이 한달 동안 같은 책을 읽고 나중에 저자를 직접 초청해서 특강을 듣거나 아니면 직원중 몇명이  대표로 독후감을 발표하거나 하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 저자 초청 특강으로 대세가 흘렀다. 자신이 읽은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 지근거리에서 숨결을 느낄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이 운동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황우석(나의 생명이야기), 한비야(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안병수(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정재환(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 등이 다녀갔다. 황우석 교수는 2005년 초에 왔었는데, 당시 본인은 출장중이어서 특강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당시 황우석교수는 그 유명세가 절정에 달해 있는 거의 초특급 VIP였을 것인데 어떻게 지방도시까지, 그것도 별 시답잖은 공공기관에 특강을 하러 오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생각여하에 따라 해석이 극을 달릴 수 있겠다. 한비야는 역시 정열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한비야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월드비젼이나 뭐 그런 구호단체에 조금이라도 성금을 내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반성하고 있다.

작년 12월의 선정도서는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었고, 특강은 오늘 오전에 있었다. 보통 키에 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목소리는 차분한 편이었고, 경상도가 고향이고 대구에서 대학을 나왔음에도 사투리는 별로 쓰지 않았다. 1시간 가량의 특강중 대부분이 복벽없이 태어난 아기의 이야기에 할애되었다. 근근히 한달을 버티다가 쓸쓸히 홀로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간 아기의 손을 잡아주고 동행이 되어주기 위해 결국 아기의 뒤를 따라가고야 말았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생명의 신기함이랄까 모성의 애절함이랄까 그런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복벽없는 태어난 아기 이야기외에 두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난 남자이야기(목욕탕에서 만났단다. 씨익 웃더란다.), 치매로 손자를 솥에 삶은 할머니의 이야기(이 할머니 역시 목을 매어 자살했단다), 혹은 신기하고, 혹은 안타깝고 혹은 너무나도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눈물이 날 듯 말 듯 했다. 몇몇 여직원들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바르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어느 볕 따스한 봄날 고등학교 때 수업 땡땡이치고 학교 뒷동산에 나자빠져 니체를 읽다가 선생님한테 대따 혼난 이야기, 사모님(부부 의사라고 한다.)이 작년엔가 41살의 만연한 나이로 늦둥이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개인적으로 가슴아픈 가족사와 관련된 공개하기에 좀 거시기한 이야기도 들었다.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고난의 시절을 견디어왔거나 어려운 시험을 거쳐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하늘이 그 사람을 크게 쓰려고 할진대 먼저 그 뼈와 살을 고달프게 한다고 했느니, 질곡의 세월속에서 신음하고 허덕이는 인사들은 한번 음미해 볼 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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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나의 노년의 기록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이종철 옮김 / 지훈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슨 우유상표에도 아인슈타인이 나오고, 일전에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아인슈타인 얼굴에 로봇 몸통을 가진 알버트 휴보라는 로봇을 개발한 적도 있다. 게다가 백발에 혓바닥을 쏙 내민 익살스런 표정의 아인슈타인 얼굴이 인쇄된 컵, 쟁반, 티셔츠, 광고물 등등은 이리저리 오다가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아인슈타인 만큼 친숙한 과학자도 아마 없을 것이다. 동네 할아버지같은 느낌이다. 쥐 파먹은 백발머리에 혀를 쏙 내밀고 있는 표정은 위대한 과학자로서는 다소 경망스럽고 점잔하지 못한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왠지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가지고 있는 천진함,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그 자유분방함이 결국 창의적 사고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빛나는 과학적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리라.

(이건 여담이지만, 우리의 위대한 학자인 퇴계나 율곡에게서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민스러운 일일 것이다. 과거 우리의 선비들은 신독이라 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것을 학문하는 자들의 기본 자세로 보았으니 다소 경직된 그런 분위기가 과학적 성취에는 걸림돌이 되었겠지만 지조와 신념의 꼬장한 선비정신을 강화하는 데는 영양가있는 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고 민족성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모두가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하며 마치 그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백발의 친근하고 온화한 그 얼굴과 빛나는 명성뿐일 것인데, 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본 책에 등재된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논문들은 역시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내 머리로는 무리였다. 서력기원이 예수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기원전, 기원후로 나누어지고, 역사가 문자발생 이전과 이후로 갈라지듯이, 오다가다 주워 듣기에 과학사라는 것은 아마도 뉴톤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어 지는 듯하다. 가히 뉴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단한 뉴톤을 훌쩍 뛰어넘은 사람이 바로 유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이다. 정녕코 놀랍고 위대할진져!!.

어린 시절에는 조금 멍청했다는 다소 희망적인 전언과 원폭개발에 관여했다는 이야기, 그후 평화운동에 기여하였으며, 이스라엘 대통령직 제의를 거절했다는 에피소드 등은 너무도 유명하다. 알베르트에게는 천재요절, 미인박명이라는 말도 허사여서 76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이 천재 과학자의 노년의 기록들이 본 책 한권에 담겨있다. 1934년부터 1950년에 이르는 약 15년간의 기록으로 연설문, 논문, 서한, 단상, 인물평 등 여러 방면의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만 유대민족에 대한 그의 감상에 대해서는 당시의 유대민족이 처했던 비참했던 형편과 작금의 득의하고 득세한 상황을 비교해 보자면 자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생유전이라 했던가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니 반복 윤회하는 것이 어찌 인생뿐이겠는가 이 말이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찬사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대중으로부터 인간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인슈타인을 보면서 금번 황우석 사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황우석 교수가 아직까지 원천기술 운운하고 있지만, 이른바 원천기술이라는 것이 있든 없든, 그 과학적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이제 황우석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과 사랑은 모두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다. 그를 그르친 것이 자신의 과도한 욕심이든 주위의 부추김이든 아니면 국민대중이 암묵중에 동의한 황우석 신화의 우상화 작업의 결과이든 뭐든 여하튼간에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인간 황우석은 이제 죽었다. 애도를 표한다. 생명윤리문제에서 출발하여 연구성과자체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일파만파로 무슨 바람타고 산불 번지듯 퍼지면서 이전투구 양상으로 확대 재생산된 그 복마전 같고 미로속 같은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결국은 우리 모두가 자폭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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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10 - 제2부 승자와 패자 - 키요스 회의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월
구판절판


그의 눈에 비친 히데요시는 불세출의 큰 별이었다. 세심함과 호탕함, 거짓과 진실, 자기 선전과 진정이 이처럼 혼연일체가 되고, 그러면서도 전혀 악의를 느끼게 하지 않는 인물을 아직 그는 보지 못했다. 때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풍을 떠는가 하면 다음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분골쇄신했다.

히데요시의 헛소리는 헛소리가 아니었으며, 자기 선전은 자기 선전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전신에서는 치기와 허세, 빈말과 정감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게 하나로 용해되어 그를 대하는 자마다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이런 의미에서 히데요시는 그야말로 마성을 지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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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06-02-05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부나가는 늑대, 히데요시는 원숭이, 도쿠가와는 너구리..히히히
 
도쿠가와 이에야스 9 - 제1부 대망 - 혼노사의 변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총3부 32권중 이제 9권이 끝났다. 일본 전국시대 3영웅중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대망 제1부의 막이 내려졌다. 여기쯤에서 서평 비슷한 걸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적은 혼노사에 있다." 라는 말은 내부의 적을 가리키는 일본 속담이라고 한다. 천하포무(天下布武 : 강력한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말이다.)의 깃발을 기세좋게 펄럭이며 일본 전국 통일을 바로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가신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혼노사에서 원통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름하여 혼노사의 변이라고 한다. 변이라고 해서 무슨 구린내 나는 똥떵거리를 떠올린다면 조금 곤란하겠다. '혼노'는 '본능(本能)'의 일본어 표기이므로 '사(寺)'의 일본어 표기인 '지'를 붙여 '혼노지의 변' 또는 한자음을 그대로 읽어 '본능사의 변'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입에 익어서 그런지 '혼노사'의 변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1582년, 노부나가 49세 ,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의 일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3인에 대한 인물평으로는 울지않는 두견새에 관한 이바구가 인구에 길게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3인에 대한 인물평으로는 정평으로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인물평이 정녕 정확 예리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혹 모르시는 분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주워 섬겨보자면 내용은 이렇다. 오다씨의 경우는 울지않는 새는 새가 아니므로 필요없다 그러니 죽여없애야 한다는 것이고, 도요토미씨로 말하자면 새의 떵구멍을 간질간질 해서라도 어떻게든 울려야겠다는 것이고, 도쿠가와씨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새가 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했던가 역시 오다는 오다답고, 도요토미는 도요토미답고 이에야스는 이에야스 답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2년전인가 처음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었을 때는 허례허식과 온갖 구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윗통 벗어재낀 거칠 것 없는 오다 노부나가가 가장 멋있는 사나이로 다가왔지만, 두 번째로 이책을 읽어 보니 3인에 대한 호오의 감상이 약간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원수로 너무나도 유명한 히데요시가 가장 매력적인 인사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니 지략에 있어서도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고, 자신감과 추진력도 대단하지만 노부나가에게는 없는 주변인물들과의 친화력과 유머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노부나가에게 있어 거칠 것 없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소위 천하포무의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그 박력넘치는 행동 뒤에 숨은 안하무인의 태도가 결국은 노부나가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되었던 것이다. 책을 보면 도요토미는 완전히 오다에게 심취하고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도요토미가 모반을 조장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쓰히데 모반이후 순식간에 권력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광석화와 같은 행적으로 미루어 보건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읽어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역시 별 매력없는 인물이다. 세사람 중에서 말이다. 비록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향후 300년간의 에도막부 평화시대를 연 것이 도쿠가와였으나 이 장수만세 이에야스는 너무 응큼한 것 같아 재미가 없고 또 매력이 없다. 만약에 본인이 늙어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도쿠가와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다는 황야의 외로운 늑대, 히데요시는 재간동이 원숭이, 이에야스는 음흉한 너구리.....누구나 늙으면 너구리처럼 조금은 응큼음흉해 지는 법이니까.....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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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으로 말하자면 젊은이에게는 약이 되겠지만 늙은이에게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 늙은 독자의 주의를 요한다. 도전과 모험은 젊은이의 몫이요 소심과 신중은 늙은이의 차지인 까닭이다. 일과 놀이가 정녕 합방을 할 수 있을까. 땀흘려 일하고 나서야 노는 맛이 나지 주야장창 계속 놀아서야 재미가 있을라나 모르겠다. 월화수목금 오일 일하고 이틀 놀아야 노는 재미가 있지, 오일 놀고나서 또 이틀을 더 놀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놀라고 하면 그건 고역이 될 것이다. 진짜 그럴라나. 혹자는 그 괴로움을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그 즐거움을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호구의 책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정녕 복된 사람이다. 그 복이라는 것이 나무 아래 앉아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저절로 떨어지기도 하는 홍시같은 뭐 그런 것은 아니다. 인생이란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어떤 이룸이든 그 성취 뒤에는 항상 나름의 피눈물 자국이 혹은 피똥 자국 묻어 있는 것이다. 


젊어서 이런 책을 읽게 된다면, 그들의 생각과 내 꿈을 비교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겠지만 나이들어서 이런 책을 읽게 되면 속이 상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를 못하다.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하고 사무실에서는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해가 떨어져도... 홈, 마이 홈, 스윗홈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짜장만 시켜 먹으며 야근을 해야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조금 한심해 지기도 하고,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인가 잘못되긴 잘못되었는데 지금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거리의 낙엽을 쓸어야하고, 또 누군가는 자동차의 생산라인에서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볼트를 조이기도 해야하는 것이다. 부모님 봉양하고 자식새끼들 거두어 먹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아니꼬운 일도 참아야 하고, 그런거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원석을 갈아 목걸이를 만들거나 뜨개질을 하고 앉았거나 점토인형을 만들어서는 호구를 책임질 수 없다. 그러다가는 정녕 호구(糊口)가 호구(虎口)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시절 꿈이 아직도 이 털난 가슴속에서 벌렁거린다고 하더라도, 무작장 다니던 직장을 때려접고 사진기 하나 들고 훌쩍 세계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그렇고, 그런데..., 아~ 진정정녕 한번쯤은 그리 해보고 싶은 거이다. 한 일이년 마누라 손잡고 세계여행을 다녀보고 싶은 거이다. 그런 것인데, 그럴려면 직장을 때려쳐야 하고, 갔다 와서는 또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깡통소리 딸그락 거리며 낙엽처럼 거리를 뒹글게 되지는 않을까 무섭다. 아!! 풍소소해여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 소시민의 소심함이여......물론 세상살이가 그리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 일이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구성요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피아 구분없는 피똥 싸흘리는 무한 경쟁시대라고 하지만 직장동료들 중에서도 마음맞는 친구나 선후배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자는 핑계라고도 할 것이다. 맞다. 핑계다. 어쩌면 내 가슴속에 간직한 꿈이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하고 나아가 더 절절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앓는 소리 죽는 시늉 하지만 그래도 봉급 받아 먹고 마누라하고 아새끼들 주무르며 꾸려가는 삶이 그럭저럭 만족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펑크는 35세이고 미혼이고 디자인도 하고 만화도 그리고 꿈이 많다. 메이저리그와 관련한 뭔가 괜찮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세계여행 다녀와서 사진 찍어 파는 좌린과 비니는 부부다. 30대 초반이고 아직 아이는 없는 것 같다. 미미루는 원석 아티스트다 미혼이고 30대 초반인 것 같다. 다방 아가씨처럼 스쿠터를 몰고 다닌다. 빨강고양이는 뜨개질로 고양이나 원숭이 모양의 모자를 만들어 판다. 30대 중반은 된 듯한데 아줌마인 것 같다. 날개를 좋아하는 라라는 날개달린 가방을 만들어 판다. 미혼이고 20대 후반인 것 같다. 점토인형 만들어 파는 똥잼에게는 취학전 애가 둘이다. 남편이 강원도에서 요리사해서 돈 번다. 나무가 되기를 바라는 세피로트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든다. 30대초반에 미혼인 것 같다. 환하게 살기 위해 쓰레기장을 뒤지는 환생은 이름에 값하는 재활용 예술가다. 역시 30대 초반에 미혼인 듯. 


책에 등장하는 그들의 면면은 젊다 그리고 대체로 혼자다. 젊다는 것의 기준이 나이만은 아니다. 그들은 생각이 젊다. 혼자라서 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생각이 자유롭다. 그들은 모두 어떤 길위에 서있고 아직 그들의 여정은 멀다. 그 용기와 도전정신과 모험심과 삶에 대한 애정에 찬사를 보낸다. 하늘은 잊지 않고 또 그들에게 재능과 열정도 주었나 보다. 앞으로도 정진하여 일가를 이루고 간직한 꿈을 완성해내기를 바란다. 비참참담한 처지에서 출발해 어마어마한 부귀와 명성을 획득한 예술가들의 예가 수다하거니와 이들이 지금은 인디고 언더고 하지만 대중으로부터 갈채와 찬사를 받아 돈과 명성을 얻게 되면 어느날 문득 문화 권력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진실로 바라건대, 일단사 일표음으로 누항에 기거하면서도 그 즐거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 날들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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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7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