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그대, 꿈꾸며 살고 있습니까,
춤추듯 가슴 뜨겁게 살고 있습니까?

꿈도 자라납니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성장하고
진화합니다. 죽거나 병들어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닫혀 있고 미워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칭기스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유목민이 그
자리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한 말입니다. 꿈은
영혼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나이를 잊고 계속 춤을 추십시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십시오.

 
  - 고도원의《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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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눈으로 보면


하늘은, 자연은,
누구의 편을 드는 경우가 없어요.
자연은 그냥 자연의 일을 할 뿐 사람의 역성을
드는 건 아니구나, 참 공평하구나, 이런 깨달음은
농사짓고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우리에게 절실하게 소중한 일도,
하늘의 큰 눈으로 보면 사소할 뿐,
욕심으로 자연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이철수의《웃는 마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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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신부의 편지'를 보고, 그 다음 시간대의 이 영화도 나간 김에 보았다. '야곱신부의 편지'가 주는 감정의 소요가 가시기도 전에 본 이 영화는, 13세 소년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활기차고 바쁘고 볼 것이 많아 또한 묘한 즐거움을 주었던 것 같다. 20분의 텀으로 인해 빵과 커피로 점심을 해결해야했지만.

 

-프란체스코와 교황-

 

 이 영화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리고 베네딕토16세 교황이 주연으로 실제 나온다.

 시스티나합창단의 소년이 솔로이스트로 교황과 만나게 되는 실화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다큐멘터리영화이다.

 시스티나성당은 교황 식스토 4세가 성모마리아에게 바친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당으로 우리에겐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아담의 탄생,천지창조,최후의 심판)와 벽화로 잘 알려진 성당이다.

 

 로마의'포르엔투엔스'에서 엄마와 쌍둥이형들과 함께 사는 초등학교 3학년인 프란체스코는 일요일이면 미사에 합창단으로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으로 간다. 일요일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축구도 하고 형제들과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프란체스코.

 

 그러던 어느날 프란체스코는 솔로이스트로 발탁된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프란체스코지만 존경하는 교황님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지만 긴장때문에 실수를 할까봐 "다른 아이가 뽑혔어야 했다."며 불안감에 시달린다.

 교황과 주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기까지의 기대감과 순수함을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가운데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순수함과 성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바티칸의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으며, 그렇듯 매우 사실적이고 자연스런 접근으로 관객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전세계를 방문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카메룬 야운데에 방문후 콘돔사용을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기도 했던 장면이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방문해 유대교와의 화해와 공존을 설파하는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담는다. 그렇게 다시 바티칸으로 돌아온 교황과 프란체스코의 첫번째 독창무대에서 드디어 만나는 순간이 진정한 감동으로 느껴진다.

 

 가만히 극장의자에 앉아서 전세계의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또한 현실속의 사람들이야기와 한 소년의 순수한 도정이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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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스 해로 監督. 카리나 하자드, 헤이키 노우시아이넨 主演의 '야곱신부의 편지'를 CGV대학로에서 보았다.

 

 헬싱키 교도소에서 살인죄로 종신형을 살던 레일라는 어느날, 누군가의 탄원으로 사면을 받고 출소한다. 교도소장의 조건부 권유로 내키지 않지만, 강과 호수 곁의 야곱신부의 사제관으로 간다.

 

 레일라가 노란 버스에서 내려 찾아간 사제관에는 눈 먼 신부가 있고 빗물이 새고 커피와 호밀빵만의 검소한 식탁이 있었다. 식탁의 옆자리를 권해준 신부의 말을 무시하고 레일라는 먼 자리에앉아 신부를 관찰하며 식사를 한다.

 

 눈 먼 야곱신부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의 답장을 보내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차갑고 무의미하고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거칠고 무뚝뚝하고 투박한 레일라는 신부의 그런 일을 의미 없는 일로 여긴다.

 

 "야곱신부님! 편지가 왔습니다." 외치는 우편배달부의 소리가 나면 야곱신부는 달려 나가 편지를 받아 들고, 레일라와 함께 마당의 테이블로 나가 편지의 내용을 듣고, 성경문구를 인용한 답장을 보낸다든지, 주소가 없는 편지에 대해서는 기도를 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는데, 레일라가 웃긴다는 식으로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는 거죠?" 그녀의 질문에 야곱신부는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라고, 이 세상 누구도 쓸모없거나 잊혀지지 않았음을 사람들이 알고 느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답한다.  그리고 제게는 " 처음 오는 편지와 계속 오는 편지가 있습니다."

 

 레일라에겐 이 모든 일이 여전히 의미가 없는 짓이라 생각됐고, 심지어 우편배달부에게 받아 든 편지의 일부를 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 진짜로 야곱신부에게 오는 편지가 없기 시작한다.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자 야곱은 실의에 빠지고, 성당으로 달려가 있지도 않은 혼배미사를 준비 한다던가, 비정상적인 실의에 빠진다. 비가 퍼붓는 날, 레일라는 성당에서 절망에 빠진 신부를 버려두고 사제관으로 와 떠나려 택시를 부르지만 결국 떠나지 못한다. 레일라에겐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상들리에를 떼어내고 목을 매던 그 순간, 야곱신부가 돌아온다. "아, 레일라. 아직 이곳에 있군요." 야곱신부는 레일라에게 "나는 하느님을 위해 이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였죠. 눈 멀고 늙은 나같은 신부를 누가 필요로 하겠어요. 오히려 나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이 일을 했던거에요.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말한다.

 그날 이후, 야곱신부는 사제복을 벗고 내복과 맨발로 방안에 은폐해 있는다.

 

 레일라에게도 그 일이 신부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었는가를 깨닫고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데, 정작 편지는 오지 않고.

 어느날 레일라는 우편배달부와 짜고 편지가 온 척하고, 신부와 마당의 테이블로 나가 잡지책을 찢으며 편지인척, 독백으로.. 읽는다.

 " 저는 어렸을때 엄마에게 맨날 맞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엄마는 날 매일 때렸습니다. 그런 저를 보호해주고 대신 고스란히 매를 맞은 사람은 언니였습니다. 언니는 "제발 아기는 때리지마!" 외치며. 그렇게 저 대신 매를 맞고 산 언니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한 언니의 집으로 갔는데 형부가 언니를 매일 때리는 거예요. 그놈은 잠시 쉬고 언니를 또 때리고 또 잠시 쉬고 언니를 또 때리고 잠시 쉰 후 또 언니를 때리는 거예요. 저는 숨어서 그 장면을 보다가 형부를 찔러 죽였습니다. 저는 언니를 위해서 그 일을 했지만 결국 언니의 인생은 저 때문에 망가져 버렸습니다." 편지를 대신해 말하는 레일라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그때 야곱신부가 묻습니다. "주소가 있습니까?" 대답이 없는 레일라에게 신부는 말합니다. "레일라 스텐 아닙니까?" 그러더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보여줄게 있어요." 하더니 진창길을 맨발로 허둥지둥 걸어가 한 뭉치의 편지들을 꺼내온 후 레일라에게 준다.  그리고 "이 편지는 계속 오는 편지입니다. 천천히 읽어요. 나는 들어가서 커피를 준비할께요."

 야곱신부에게 건네받은 편지를 읽던 레일라는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편지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신부님. 저는 동생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저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저의 고통을 유일하게 본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이제 동생뿐이 없습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리사 스텐."

 레일라가 사제관으로 들어가 신부를 찾는데, 야곱신부는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처럼 죽어있었다.

 경찰과 장의차가 야곱신부의 시신을 실고 떠나는 날 우체부는 모자를 벗고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레일라도 언니에게 떠난다.

 

 영화는 종교를 떠나서라도 인간의 연약함과 소통을 통해 우리에게 크나 큰 위로와 메세지를 준다. 편지와 기도로 반복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외로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이해, 위로와 격려에 대한 의미를 보여 준다.

 

 클라우스 해로 감독은 "이 영화는 소통을 갈구하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우정을 형성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필요로 하지 않았던 바로 옆의 사람이 친구가 되는 것을 다룬 작품이다." 말한다.

 

 그리고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기도 한 레일라역의 카리나 하자드와 헤이키 노우시아이넨. 두 배우의 최고 수준의 연기력을 통해 7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핀란드의 청정한 풍경과 아날로그의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많은 여운과  생각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아직도 제대로의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마치 '천국의 열쇠'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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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가 날아드는 이유


(내가 정원사로 일하는) 부차트 가든에
벌새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꽃 속에 든 꿀을 주식으로 삼는 이들에게 우리 정원은
그야말로 잘 차려진 식탁이다. 2~3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벌새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샐비어꽃 덕분이다. 우리에게
'사루비아'라는 이름이 오히려 더
익숙하고 친근한 그 꽃이다.


 

- 박상현의《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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