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는 의료 사고로 의사 자격증을 잃은 괴팅겐 내과 의사 카리오(Cario)의 개인 빌라에서 묵게 되었다. 한때 부유했던 카리오 가족은 이제 재산이라고는 괴팅겐 중심부에 넓은 정원이 딸린 화강암 빌라한 채만 남은 상태였다. 독일의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전 재산을 잃게 된카리오는 하숙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어가 유창했던 오펜하이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허약한 정치 분위기를 재빨리 알아챘다. 그는나중에 카리오가 "나치스 운동의 근간이 된 당시 독일인 특유의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해 가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그는 모든 사람들이 "독일을 성공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썼다. "사람들은 신경과민으로 날카로워져있어. 유태인, 프러시아 인, 그리고 프랑스 인들에 대한 경계심 역시 심해진 것 같아."
오펜하이머는 그 시기가 대부분의 독일인들에게 힘든 시기였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비록 (대학) 사회는 매우 부유하고, 따뜻하며, 나에게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무언가 대단히 비참한 독일의 분위기라는 것이있기는 해." 그는 많은 독일인들이 "음울하고 분노에 가득 차 있으며, 곧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충만해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어." 그의 독일인 친구들 중 단 한명만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부유한 울슈타인(Ullstein) 출판사 집안 출신이었다. 그와 오펜하이머는 시골로 드라이브를 다니고는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친구가 "운전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눈에 띄면 위험할 수 있다며 자동차를 괴팅겐 외곽의 헛간에 주차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P103

 그 논문을 읽고 나서 아인슈타인은 폴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1880~1933년)에게 "하이젠베르크는 거대한 양자 달걀을 낳았다. 괴팅겐에서는 그것을 믿는다(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은 "소년의 물리학"이 불완전하며 심지어 근본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고 끝까지 믿게 된다. 게다가 하이젠베르크가 1927년 양자 세계에서 불확실성이 가지는 중심 역할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자 아인슈타인의 의구심은 극에 달했다.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한 시점에 물질의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현상의 모든부분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보른은 이에 동의했고, 어떤 양자 실험의 결과도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927년에 아인슈타인은 보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던 야곱(Jacob)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깝게 갈 수 있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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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햄버거와 사랑에 빠진 소녀

재즐린 브래들리의 삶에 맥도날드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 뉴욕 브루클린의 붉은 벽돌로 만든 연립 주택으로 이사를 간 후였다. 집에서 한 블록 반 정도만 가면 맥도날드 매장이 있어서 쉽게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재즐린은 늘 해피밀을 주문했다. 황금색 둥근 손잡이가 달린 상자 안에는 군침을 돋우는 햄버거에 감자튀김, 쿠키, 거기다 장난감까지 들어 있었다. 가끔은 재즐린의 아버지가 퇴근길에 맥도날드 제품들을 한 아름 사서돌아오기도 했는데, 식구가 늘 때마다 아버지 손에 들려 오는 맥도날드 상자와 봉지도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맥도날드 음식으로 잔치라도 벌이는 날이면 재즐린과 동생들(재즐린은 10남매 중 둘째였다.)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고 마지막 남은 감자튀김을 차지하려고싸우기 일쑤였다. - P9

맥도날드 재판에서 스위트 판사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맥도날드 제품들을 중독성 있게 만든 요소는 무엇인가? 설탕과 지방의 특정한 조합인가? 아니면 "담배의 니코틴처럼 작용하여 중독을야기하는 다른 첨가물이 있는가? 맥도날드 제품에 중독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을 먹어야 하는가? 중독은 즉시 시작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가? 아이들이 성인보다 취약한가? 기업은 이것을 의도했는가? 스위트 판사는 "맥도날드가 고의적으로 이러한중독성 있는 제품을 제조한 것인지에 대한 혐의는 제기된 바 없다."라고 했다.
스위트 판사는 중독성에 관한 주장을 검토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부분적으로는 허슈가 제기한 다른 주장들이 형편없이 허술한 탓도 있었다. 법리적 관점에서 다른 소인들은 아주 높은 장해물에 맞닥뜨렸다. 스위트 판사는 패스트푸드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맥도날드고객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음식을 과도하게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의 경우라면 그 부모가 패스트푸드의 위험을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 기업을 비난할 수 있을까?
반면에 중독성이 있다는 주장은 그런 현실을 교묘히 피해 갈 가능성이 있다는 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중독성 있는 제품을 판다는것은 소비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허슈의 의뢰인들은 자신이 예상치 못한 힘에 사로잡혔다고 주장하는 데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터였다. 스위트 판사는 패스트푸드에 들어간 엄청난 양의 설탕과 지방과는 달리 중독성 있는 음식이 지닌 "위험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아서 맥도날드의 고객들이 그 점을 알았을 것이라 예상할 수 없다."라고썼다. - P22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요소도 작용한다. 나쁜 식단이 야기하는 건강이상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발생하지만,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가난한 유색 인종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음식 앞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먹는 것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먹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식욕이 우리에게 유익하기는커녕 해롭다고 걱정하거나 먹고 싶은 것과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가공식품의 편의성과 여러 매력에 완전히홀리면서 과거에 느꼈던 음식의 매력이나 감흥, 식사 예절과 관습도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 P24

우선 인간이 어떤 것에 중독되는 데 약물에서나 발견되는 독한 화합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에는 강박적 행동을유발하도록 정교하게 조직된 자체적인 화학물질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파민이다. 실제로 이런 물질들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할정도로 강력해서 약물은 뇌가 자체적으로 지닌 이런 물질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진다. 사실 신경 자극으로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도리토스 잭Doritos Jacked으로는 코카인이 야기하는 정도의 갈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중독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물질이 뇌를 자극하는 속도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패스트푸드라는 용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1000분의 1초를 기준으로 중독의 세기를 측정할 때 뇌를 자극하는 데 가공식품보다 빠른 것은 없다. - P28

중독은 기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음식에 관해 생성해내는 기억은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물질보다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음식에 관한 어릴 적 기억은 평생 동안의 식습관에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요리사이자 음식 전문 작가였던 사람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기 시작하자 음식에 대한 감각이 퇴화하고 음식을 향한 열정도 사그라진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중독을 부르는 식습관을 형성하는데 음식 그 자체만큼이나 강력한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코부터 장, 체지방에 이르기까지 몸 전체가 단순히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음식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선사시대의 인류 화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놀랍게도 달고 열량이 높은 음식만이 아니라 편리하고 다양하며 생산하는데 비용(노력)이 적게 드는 음식을 찾아 나서도록 진화되었다. 언젠가 나는 어느 가공식품 업계 임원으로부터 인간은 값싼(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에 중독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중독의 이러한 측면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상 노력이 적게 든다는 것은그만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P29

 결국 세계보건기구는 중독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고 대신 의존성 dependency 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촉발된 것은 사람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마약과 기타 약물에 대한 이해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약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큼 효과가 강력하지 않았다. 더구나그 강도가 모두 동일하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코카인은 대개 사용을 그만두었을 때 육체적 고통이 유발되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견디기힘든 식욕과 같은 심리적 고통이 심할 수 있지만, 신경안정제 금단현상과 같은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은 없다. 하지만 코카인은 내성을 유발해서 일부 사용자들은 같은 효과를 보려고 점점 더 많은 양을복용한다. 반면 대마는 내성을 크게 유발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경우 사용을 중지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초조함을 느낀다.
약물이 고통은 사용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중독 개념에 혼란을 초래한 이유는 또 있다. 니코틴과 마찬가지로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처음 사용했을 때, 오랫동안 사용했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같은 약물에도 어떤 사람은 자제력을잃는 반면, 다른 사람은 아주 가벼운 영향만 받는다. 두 사람이 함께 술자리에 간 경우를 생각해 보라.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한 사람은 탁자 위에서 춤을 추고 다른 한 사람은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보지 않는가. 약물의 효과에는 성, 민족, 체중, 신체 조건이 모두 동시에 작용한다. 이는 전문가들을 당황스럽게 할 뿐 아니라 온전히 물질 그 자체를 탓할 수 없게 한다. 중독되는 약물addictive drug 이라는 용어가 중독성이 있는 약물drug with addictive qualities로 바뀐 것도 그래서다. - P50

"중독은 매우 복잡한 행위로 한 가지 요소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글레이저가 내게 말했다. "약물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체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그 사람이 속한 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처한 경제적 현실로 인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독은 이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 P55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이런 음식은 피험자들이 아주 좋아하는것이어서 실제로 먹을 필요도 없었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냄새를 맡고, 혀로 조금 맛보는 것만으로도 쾌락과 관련 있다고 밝혀진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음식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생성된 이미지들은 다른 측면에서도 아주 놀라웠다. 코카인을투여한 뇌의 사진과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뇌의 같은 부분에서 선명한 빨간색과 노란색 불이 켜졌다. 먹고 있는것이 각성제인지 치즈버거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두 경우 모두 뇌는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고 더 많이 달라는같은 반응을 보였다. - P69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에 있는 약물남용연구소에서 만난 볼코는이런 약물들이 뇌를 아주 강력하게 자극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약물은 남용하면 굉장히 위험하다는 내면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뇌를 극도로 흥분시킬 필요가 있다. 약물을 불법적으로 입수하여 체포당할 위험 또는 너무 강하게 농축되었거나 오염된 것을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적지 않은 위험을 극복하려면, 약물은 초기 단계에서 느끼는 갈망을극대화하고 사용에 따른 보상으로 엄청나게 큰 쾌락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공식품은 열광하기에 아주 쉬운 물질이다. 가공식품은 값싸고 빠르며 구매하기 쉽고, 적어도 건강이나 사회적 안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대체로 안전하다. 우리는 가공식품의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음식을 먹게 하는 데는 뇌에 충격을 가할 필요도 없다. 적당한 순간에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음식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반복의 힘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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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도 규모도 알 수 없는 노커들이 염병처럼 그 수를 늘려가며 창궐하는 동안, 오랜 방어와 긴장에 피로를 호소하다 더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 또한 생겨나기 마련이기에, 폭행 시비를 가리려다가 말을 잃는 증상을 보이게 된 피해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일자리를 잃고 사업체들도 인력난에 시달린다. 산업의 유지 근간이 흔들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말이 언제 소통의 도구이긴 했던가?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없으며 말은 이해보다는 오히려 오해의 도구가 아니었나? 아무에게 돌을 던지거나 아무의 목을 매달아 까마귀밥으로 걸어놓는 무기의 일종이며, 특히 현란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입속의 혀처럼 부리다 그 가치와 흥미를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즉시 도륙내기를 일삼던 독재자들의 필수 재능 아닌가? 이제 와서 소박하게 소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같은 자막을 내보내며 구독자에게 흥분한 모습을 보인 유튜버는 그 이후 신규 콘텐츠를 올리지않았고, 동영상에 댓글을 남긴 여러 명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역시 문 닫기 직전의 감성포차에서 술값 결제 도중 노커에게 당했다고 한다. 그는 술에 약간 취해 있었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자를 참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 P88

진짜 노커와 가짜 노커의 구별이 무의미해진다. 어차피 모두가 노커가 되어버리거나 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거라면, 인내심과 포용력 따위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람들사이로 퍼져나간다. 그와 함께 서로를 지칭할 수 있고 서로를 잇는 명사, 대명사, 돈독한 관계나 적절한 거리와 위치를 규정할 수있는 조사, 행동을 그나마 규정하고 제어할 수 있던 형용사와 동사들의 체계가 무너진다. - P90

 손님은 즉흥적인 기분으로 몇 자 끼적일 수 있다 치고, 키퍼는 업무 지침상 답장을 해선 안 될 터다. 객실 바닥에 흔적을 남기지 않음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지우도록 요구받는 이들. 누구나 그들이 보이지만 안 보이는 척하며, 그들은 거울에 튄 한 점의 물때나 타일에 떨어진 한 올의 머리카락과 다르지 않은 범주로 취급된다. 심지어 청소 카트를 밀고 있지 않을 때에도 화물용 엘리베이터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고객과 밀착 접촉하지 않더라도 그의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세균이고객에게 전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을, 그런 규정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영혼을 걸고 완벽하게 오염을 제거하는 행위의 반복도 모자라 그 스스로의 기척까지 감추어야 하는 이가, 객실 화장대에 자필 메모 같은 큰 흔적을 남겨둔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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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야영을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먹을 것이 떨어졌고, 누군가가 허기를 없애기 위해 파이프를 피워 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이때부터 평생 파이프와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 P76

오펜하이머가 케임브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Laboratory)에 도착한 것은 전 세계 물리학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1920년대초, 닐스 보어와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년) 등 유럽의 몇몇 물리학자들이 양자 물리(또는 양자 역학)라는 이론을 만들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양자 물리는 분자와 원자 크기의 매우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적용되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양자 이론은 곧 수소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 같은, 원자보다 작은 규모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고전 물리학을 대체하게 될 것이었다. 5유럽에서 물리학 분야의 거대하고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오펜하이머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미국 물리학자들은 이를 깨닫지못하고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나는 그저 학생에 불과했습니다. 나는 유럽에 도착하기 전까지 양자 역학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유럽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전자 스핀에 대해 배웠어요. 1925년 봄무렵이면 미국에는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미국에 있을 때 나는 전혀 무지한 상태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 P78

친구들과 가족들이 우려하는 가운데, 오펜하이머의 심리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그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뚱한 모습을 보이는일이 잦아졌다. 특히 그는 자신의 지도 교수 블래킷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22 오펜하이머는 블래킷을 좋아했고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블래킷은 실험 물리학자였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며 오펜하이머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블래킷은 별 생각 없이 그랬을지 모르지만, 불안한 심리 상태에놓여 있던 오펜하이머에게는 이것이 근심의 원천이 되었다.
1925년 늦가을에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나머지 너무나 멍청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블래킷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불만이 쌓이자, 그것은 곧 강한 질투심으로 이어졌다. 오펜하이머는 실험실에서 구한 화학 약품을 이용해 만든 "독"을 사과에 발라 블래킷의 책상에 올려 두었다. 와이먼은 나중에 "그것이 상상의 사과였든 진짜 사과였든, 그의 행동은 질투심의 발로였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블래킷은 사과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당국이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펜하이머가 두 달 후 퍼거슨에게 고백했듯이, 그는 자신이 지도 교수에게 독을 먹이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리고 그는 실제로 청산가리를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교수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오펜하이머가 발랐다는 "독"이 치명적인 것이었다면, 그의 행동은 살인 미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사태 전개를 보면, 그 정도로 심각했던것 같지는 않다. 오펜하이머는 아마도 구토를 나게 하는 정도의 물질을 사과에 발랐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는 퇴학을 각오해야 할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오펜하이머의 부모는 아직 케임브리지에 머물고 있었고, 대학 당국은 즉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렸다. 율리우스 오펜하이머는 형사 처벌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대학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기나긴 협상 끝에, 오펜하이머를 기소유예 상태에서 런던에서 유명한 할리 가(Harley Street)의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게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에티컬 컬처 스쿨 시절 오펜하이머의 스승이었던 스미스가 말했듯이 "그는 정신과 의사와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조건으로 케임브리지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 P84

그 책은 오펜하이머의 고뇌하는 영혼에 답을 주었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년)의 신비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e)』였다. 오펜하이머가 나중에 버클리 시절의 친구 슈발리에에게 말했듯이, 그가 이 책을코르시카를 헤매고 다니던 어느 날 밤 손전등 밑에서 읽었던 것은 그의인생에서 가장 멋진 경험들 중 하나였다. 프루스트의 작업은 자기 성찰에 관한 고전 소설이고, 그것은 오펜하이머에게 깊고 항구적인 인상을남겼다. 오펜하이머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처음 읽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잔인함을 논하는 구절을 외워 슈발리에를 놀라게 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이 남에게 주는 고통에 무관심할 수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악함이 그토록 드물고, 비정상적이며, 소외된 상태가 아니고 심지어 그 안에서 편히 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와 같은 무관심을 지칭하는 단어는 여럿 있지만, 결국은 끔찍하고 영구적인 형태의 잔인함이라고 할 수 있다.

코르시카에서 오펜하이머는 이 글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으면서자신이 남에게 끼치는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통찰이었다.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대해 추측만 할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죄의식에 가득 찬 어두운 생각들이 활자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며 자신의 심리적 부담을 덜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 생각이 인간 조건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서는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혐오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랑할 수있었다. 그리고 지식인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 없이 독서를 통해서 우울증이라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기 위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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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3.9.7.6. 이 숫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자. 이제 20초 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며 방금 외운 숫자를 기억해내 다시 큰소리로 말해보자. 영어권에 사는 사람들이일곱 개의 숫자를 완벽하게 외워서 다시 말할 가능성은 5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중국인이라면 거의 확실하게 이 숫자를 다시 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인간의 기억이 작동하는 최소단위는 2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초 안에 말하거나 읽을 수 있는 것은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영어와 달리 중국어에서는 앞서 말한 숫자, 즉 4, 8, 5, 3, 9, 7, 6을 언제나 2초 안에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곱 개 숫자를 20초 동안 기억해낼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타니슬라스 데하네(Stanislas Dehaene)의 저서 《넘버 센스(The Number Sense)》에서 가져온 예시이다. 데하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숫자를 읽을 때 쓰는 중국어의 단어는 매우 짧다. 대부분의 숫자 표현이 0.25초 안에 발음될 수 있을 정도다(가령 4는 ‘쓰이고 7은 ‘치‘이다). 같은 의미를 지니는 영어 단어 four‘와 ‘seven‘은 훨씬 길다. 이것을 발음하려면 0.33초 정도 걸린다. 영어와 중국어의 숫자 기억력차이는 전적으로 발음 길이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 P263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율성이다. 유럽의 농노는 귀족적인 지주 밑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예와 비슷했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결정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는 그런 강압적인 봉건제도가 단 한 번도 발전한 적이 없는데, 이는 봉건주의가 벼농사와 어울리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농부를 아침마다 들판으로 내몰아 일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 아래서는 쌀농사처럼 복잡한 형태의 농업을 구현해낼 수 없다. 14~15세기 무렵, 중국의 중부 및 남부 지주들은 자신의 땅을 아예 농부에게 맡•겨버리고 일정 금액의 소작료만 받으며 농부들이 알아서 농사를 짓도록 내버려두었다. 역사학자 케네스 포머란츠(Kenneth Pomerantz)는 그시스템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논에 물을 대서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노동량이 많은 동시에 그일을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관리를 잘해야하죠. 물을 대기 전에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땅이 평평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물의 수위를 조절하기가 어렵지요. 물의 양은 수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모내기를 고르게 하는 것과 삐뚤삐뚤하는것도 엄청난 수확량 차이로 이어집니다. 3월 중순에 옥수수 씨를 뿌리고 그달 말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해도 괜찮은 것과는 다르죠. 쌀농사에서는 모든 투입요소를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즉, 많은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주는 그 노동에 실질적인 보상이 돌아갈 만한 제도를 만들어 수확량이 많은 만큼 농부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보장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정 소작료가 생겼죠. 지주가 ‘나는 20섬을 가져갈 테니, 나머지는 자네들이 갖게. 소출이 더 나오면 그건 자네들 몫이야‘라고 선언하는 겁니다. 벼는 노예나 일당벌이 일꾼들의 손으로는 키울 수 없어요. 몇 초만 늦게 물꼬를 막아도 논에 필요 이상으로 물이 들어가고 그러면 곧바로 수확량이 떨어질 만큼 예민한 작물입니다." - P272

우리의 문화적 배경을 솔직히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어머니로서는 자신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수성가를 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조셉 플롬의 경우도 그를 "위대한 변호사로 부르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빌 게이츠도 자신이 "천재"라고 불리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가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가 창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그는 운이 좋았다. 레이크사이드의 학부모회는 1968년에 그에게 컴퓨터를 사주지 않았는가.
하키선수, 빌 조이,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리고 그밖에 다른 어떤 부류의 아웃라이어라고 하더라도 드높은 횃대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진심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냈다"라고 말할 수없다. 슈퍼스타 변호사와 수학 천재, 소프트웨어 기업가는 얼핏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벗어난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다. 그들의 성공은 예외적인 것도 신비로운 것도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물려받거나, 자신들이 성취했거나 혹은 순전히 운이 좋아 손에 넣게 된 장점 및 유산의 거미줄 위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성공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아웃라이어는 결국, 아웃라이어가 아닌 것이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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