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좋아해서 지키고 싶었던 거리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나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는데, 어쩌면 더 좋은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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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극도로 정교하게 얽혀 있는 복잡성을 염두에 두고, 그것이 용불용의 원리를 통해 구축될수 있었는지 자문해 보라. 나는 그 답이 분명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렌즈는 투명하고, 구면 왜곡이나 색수차(色收差, 빛의 파장이나 초점 거리의 차이로 상의 가장자리가 채색되어 나타나는 현상  옮긴이)를 교정한다. 이런 정교한 구조가 단순히 자주 사용한 결과 구축될 수 있는가? 렌즈가 그것을 통과하는 많은 양의 광자(光子)로 씻겨져 투명하게 될 수 있올까? 자주 사용되거나 빛이 투과했다고 해서 더 우수한 렌즈가 될 수있을까? 물론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단순히 다른 색깔의 빛이 쏟아진다고 해서 망막의 세포가 색을느끼는 세 종류의 서로 다른 시세포로 분리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초점을 맞추는 근육이 존재한다면, 자주 사용할수록 근육은 커지거나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저절로 시각상의 초점이 적당하게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용불용의 원리로는 가장 조잡하고 불완전한 적응밖에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반면 다윈 선택은 모든 미세한 부분까지 남김없이 설명할 수 있다. 좋은 시력, 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예리한 시력은 동물에게는 생사가 달린 중요한 문제이다. 제비처럼 빠른 속도로나는 새는 렌즈의 초점이 잘 맞아서 색수차가 보정되는지의 여부가 벌레를 잡느냐 아니면 절벽에 충돌하느냐의 양 극단을 판가름해 준다. 해가 뜨자마자 곧바로 조리개를 닫아 홍채를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포식자를 발견해도 여유 있게 도망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눈이 부셔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정교하고 내부 조직 깊숙이 묻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눈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선은 동물의 생존과 번식의 성공에 공헌하고, 나아가 그 개선을 낳은 유전자의 증식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 선택은 개선을 초래하는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 다윈주의는 생존에 성공적인 장치의 진화를 그 성공의 직접적인 귀결로 설명하고 있다. 설명과 설명이 되는 대상 사이의 연결 관계는 극히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이다. - P489

변이와 선택이 공동 작업을 한 결과 진화가 일어난다. 다윈주의자의 주장에 따르면 변이의 방향은 개선을 향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의미에서 무작위적이다. 진화에서 개선을 향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선택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진화라는 교의를 한쪽 극단에 다윈주의자가 있고 다른 한쪽 극단에 돌연변이론자가 있는 식의 일종의 연속체로 가정할 수 있다. 극단적인 돌연변이론자는 자연선택이 진화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진화의 방향은 돌연변이의 방향에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수백만 년 동안 우리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일어난 뇌 용적의 증가라는 현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다윈주의자라면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연변이에 따라 자연선택의 대상으로 제공된 변이 속에는 작은 뇌를 가진 개체도 있지만 큰 뇌를 가진 개체도 있었다. 그리고 자연선택을 통해 후자가 유리하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돌연변이론자에 따르면 돌연변이가 제공하는 변이는 이미 큰 뇌 쪽으로 방향이 기울어 있다. 변이가 제공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자연선택도 없었다.(또는 자연선택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뇌는 돌연변이에 따른 변화가 뇌를 크게 만드는 방향으로 편향된 이상, 계속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논점을 정리해 보자. 진화에 큰 뇌를 향한 편향이 있었다. 이 편향은 자연선택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든지 (다윈주의자의 관점), 또는 오직 돌연변이를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을 것(돌연변이론자의 관점)이다. 이 두 가지 관점 사이에 어떤 연속체를 상정할 수 있다. 우리는 진화적편향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는 두 가지 원천이 거의 평형을 이루는 상태를 상상할 수 있다. 중립적인 관점에 따르면, 뇌의 거대화를 향한 돌연변이 쪽으로 ‘약간‘의 편향이 있었고 살아남은 개체군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 그 편향을 더 강화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 P496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지 않았을 것임을 알려 주는 다섯 번째 측면이 있다. 동물의 생활에 대한 적응성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만 체계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돌연변이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러한 편향이 어떤 수단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지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정한 다윈주의자가 돌연변이란 무작위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 다섯 번째 측면, 즉 ‘돌연변이론자‘의 관점에 대해서뿐이다. 돌연변이는 적응적 개선의 방향으로 체계적으로 편향되어 있지 않으며, 이 다섯 번째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지않은 방향으로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어떤 메커니즘도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돌연변이는 다른 모든 측면에 대해서는 무작위적이지 않지만 적응적 유리함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만 무작위적인 셈이다. 진화를 유리함이라는 측면에서 무작위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은 선택, 오직 자연선택뿐이다. 사실 돌연변이설은 틀렸을 뿐 아니라 결코 옳을 수도 없다. 그 이론은 근본적인 원리에서 진화가 가져오는 개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연변이설은 어떤 의미에서도 다윈주의를 반증한 경쟁 이론이 아니며, 경쟁 이론이 될 자격조차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돌연변이설은 라마르크주의와 같은 선에놓을 수 있다. - P503

 무(無)에서 눈을 진화시키는 데에는 1,000 단계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즉 아무것도 없는 피부의 일부분이 눈으로 바뀌기까지는 연속된 1,000 단계의 유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정이 논의의 편의를 위해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이오모프 나라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피부에 아무것도 없는 동물에서 눈을 가진 동물이 탄생하기까지 1,000걸음의 유전적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1,000 단계를 제대로 거치면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눈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연선택에 따른 설명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축약시켜 이야기하자면, 1,000 단계 하나하나에 대해 돌연변이가 몇 가지 대체물을 제공했고, 그중 오직 하나만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 진화의 1,000단계는 1,000개의 일련의 선택점을 나타내고 있고 그 각각의 선택점에서 대부분의 대체물은 폐기되고 만다. 현재의 눈이 가지고 있는 적응적 복잡성은 1,000회에 걸친 무의식의 ‘선택‘ 과정에서 성공을 거둔 최종 산물인 것이다. 종은 어느 특정한 길을 따라가면서 무수한 가능성이라는 미로를 헤쳐 나왔다. 이 길을 따라 1,000개의 분지점이 늘어서 있고, 각각의 점의 생존자는 우연히 시력의 향상으로 통하는 모퉁이로 접어든개체였다. 그 길을 따라 숱하게 늘어선 1,000개나 되는 각각의 선택점의 잘못된 모퉁이에는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한 개체들의 시체가 즐비한 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눈은 연속된 1,000회에 걸친 자연선택적인 ‘길찾기‘에 성공을 거둔 최종 산물인 것이다. - P504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지 않은 첫 번째 측면은 다음과 같다. 돌연변이는 분명 물리적 사건에 따라 야기된다. 다시 말해서 저절로 일어나는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돌연변이는 이른바 ‘돌연변이원‘ (간혹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위험하다.) 때문에 유발된다. 예를 들어 X선이나 우주선,
방사성 물질, 그 밖에 여러 가지 화학 물질, 더욱이 ‘돌연변이 유전자라 불리는 다른 유전자 등이 돌연변이원이 된다. 두 번째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모든 생물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염색체 내의모든 유전자 자리는 저마다 특정한 ‘돌연변이율‘을 가지고 있다. 예를들자면 중년기 초기의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헌팅턴무도병의 유전자를 만들어 낼 돌연변이율은 약 20만분의 1이다. 연골발육부전증(우리에게는 난쟁이증후군으로 알려져 있고, 팔다리가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바셋 사냥견이나 닥스훈트가 가진 특징이다.)이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은 그보다 10배나 높다. 이러한 비율은 통상적인 조건에서 측정된 것이다. 만약 X선과 같은 돌연변이원이 존재한다면, 일반적인 돌연변이율은 급증하게 된다. 염색체의 어느 부분은 높은 유전자 전환율을 가진 소위 ‘핫스폿‘이어서 국부적으로 극히 높은 돌연변이율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 염색체상의 각 유전자 자리에서는, 그곳이 핫 스폿이든 아니든 간에, 특정 방향의 돌연변이가 그 역방향의 돌연변이에 비해 쉽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동시적인 현상을 일으키거나 혹은 인도된 진화라는 형태에서 이 장에서 고려되었던 다른 이론들에 돌연변이설이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 P513

누적적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한, 조직화된 복잡성의 존재를 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인 것이다. 비록 증거상으로는 다윈주의가 불리하더라도, 그 증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상의 이론은 ‘역시‘ 다윈주의이다. 사실 증거는 다윈주의의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면 문제 전체의 결론에 귀를 기울이자. 생명의 본질은 거대한 척도에서 볼 때 통계적인 불가능성에 있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모든 설명은 우연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설명은 분명 우연에 대한 반명제(反命題)를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대로이해한다면 우연에 대한 반명제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은 우연의 반명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우연이 될 것이다. 이러한 양극을 연결하는, 즉 1단계 선택에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이르는 연속체가 있다. 1단계 선택이란 순수한 우연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 내가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라는 것이다. 느리고 점진적인 ‘누적적인 자연선택‘ 이야말로 생명이 가지는 복잡한 설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으며, 더욱이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들 중에서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설명이다. - P514

우연을 ‘길들인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을 그보다는 가능성이 덜 희박한 작은 구성 요소로 잘게 나누어 잘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X가 단 하나의 단계를 거쳐 Y에서 발생하기는불가능하더라도 둘 사이를 무한소(無限小)로 분할할 수 있는 연속된 중간물을 통해 X와 Y를 연결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대규모적인 변화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작은 변화는 그것보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충분히 세분된 연속적인 중간형으로 이루어진 충분히 큰 계열을 전제한다면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피해 어떤 것에서 다른 무엇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중간형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방향에 따라 매 단계를 인도하는 메커니즘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 단계의 계열은 폭주를 시작하고 끝없는 무작위적인 방황을 계속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단서를 모두 만족시키는 느리고 점진적인 누적적 자연선택이야말로 우리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라는 것이 다윈주의에 토대를 둔 세계관의 주장이다. 느린 속도의 점진설을 부정하고 자연선택의 중심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진화론의 이설(異說)이 있다면 그런변종들은 특정한 경우에는 사실일 수 있지만, 결코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이설들이 진화론의 핵심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의 힘은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해소하고 믿을 수 없고 기적처럼보이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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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늘 기분 좋게 건조한 사람."
"그건 너무 단순한 설명인데요."
"그런데 잘 없어요.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사람에대한 기준을 각자 세우게 되잖아요? 제 기준은 단순해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마음의 마개가 잘 닫혀 있느냐 덜컥거리며 쏟아지느냐. 상대방을 고려 않고 감정을 폭주시키는 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많아요. 선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 드물고 귀해요."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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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의 소련 공산당 제22차 대회가 1980년까지 "••• 전국민에게 남아돌아갈 만큼의 재화가 보장되는 •••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시킨다는 야심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였던 것을 상기해보면, 오늘에 와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소련 사회의 위기징후로서 "경제성장의 둔화, 생산의 정체, 품질의 저하, 과학기술의 낙후, 주택·식료품·교통·보건의료·교육 등 점증하는 생활수요 해결의 실패" 등등을 열거하면서 "사태가 더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 것은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라고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주된 원인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의 결여‘에 있다는 사실, 즉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의 필연적인 귀결인 관료적 부패와 비능률의 폐해에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이 개혁 (주로 경제개혁)과 더불어 개방 (주로정치적 민주화)이 함께 주창되고 있는 이유다. 필자는 달포 전에 소련을 다녀온 일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이 스딸린 이래의 자의적인 공권력행사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면서 이른바 ‘사회주의적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제도의 확립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 P246

그러나 기존체제의 상층부로부터 추진되는 ‘개혁 개방‘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밑으로부터의 점증하는 요구와 관련하여 체제동요의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게 된다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소련의 경우에도 예컨대 완전한 자유경선이나 복수정당제의 실현과 같은 것은 아직 일정에 올라 있지않다. 복수정당제로의 첫발걸음을 내디딘 폴란드의 이번 선거결과가 공산당의 참패로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통용되어온 ‘공산당=무산계급의 의지를 대변하는 전위당‘이라는 등식과 이 등식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정당화 논리를 여지없이 뒤흔들고 있다. 바로 이같은 체제위기사태에대한 우려가 아직까지 중국의 최고권력층에 남아 있는 ‘혁명 1세대‘의 원로들로하여금 ‘개혁‘은 추진하면서도 ‘개방‘만은 한사코 저지하려고 드는 역설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대혁명 당시 주자파(走資派)로 낙인찍혔던 등소평 (鄧小平)이 오늘날 자유와 민주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를 향하여 ‘체제를 전복하고 부르조아공화국을 수립하려는 폭도들" 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은 역사의 희롱치고도 너무 짓궂다. - P247

그런데도 ‘불고지죄‘라는 이름의 서슬 푸른 ‘실정법‘은 우리에게 이 ‘차마 할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실정법에 위배된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담화는 우리를 참으로 착잡하게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 고백에 대하여 처벌이두려워 밀고를 할 수는 없었다"고 하는 그분의 술회를 듣고 그르다고 탓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더러 말하라고 한다면, 거꾸로 추기경이 신도를 밀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라의 바탕을 뒤흔드는 큰 변고라고 하고 싶다. 아무도 그르다고 생각지 않는 일이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그 ‘실정법‘이 잘못되었거나 최소한 그 해석. 적용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P249

어떤 경우에라도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더이상 좋을 수가 없겠다.
만약 친절히 해서 일이 안 된다는 것을 내가 마침내 승인하게 되는 일이 만의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심대한 패배가 될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면, 혹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인간성에 거는 우리의 모든 신뢰와 희망은 대체 어떻게될 것인가. - P267

정상적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좀 고생한 편‘이라는 조변호사는 "찍소리도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세상에서" 노동자나 징역 사는 사람 등 고통겪는 사람들 근처에 가서 시대적 고통에 대해서 냄새라도 맡은 것이 다행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끝냈다.
"일종의 허영심일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 지금도 계속되는데 아주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덤벙덤벙하며 살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 위안을 느낍니다."
3명의 변호사와 함께 쓰는 그의 사무소 입구에는 ‘시민공익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명함에는 그 이름이 빠져 있다. 그 간판에 대해서, 돈 없이오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부담 없이 오라고 붙여놓았다고 밝히는  - P312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법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의구심을 주고, 사람들이 법에 가까이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정법은 일제 때에 들어오게됐는데 그때에 법이 국민에 봉사하는 도구로 비친 것이 아니고 통치하고 억압하고 길들이는 도구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조문을 비롯하여 법과관계된 글들이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도록 씌어 있는 것도 사람들이 법을 멀리하고 싶어하고 두려운 존재로 여기도록 하는 이유입니다."
예컨대 판결문에다가 "오른손 주먹으로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왼쪽 발로 한번 걷어차서 땅에 넘어지게 했다"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어렵게 "우수로 면상을 일회 가격한 후 좌족으로 일축하여 지상에 전도케 했다"는 식으로썼고 지금도 종종 그렇게 쓰고 있음이 그의 말을 증명한다. 문자의 권위주의와문자의 특권의식이 아직 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다듬어서 많은 사람들을 법에 가까이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조영래씨는 하고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느꼈던 가장 절실한 문제로 ‘법의 생활화‘를 든다. 말하자면 전문가가 독점하고 있는 법률에 관한 지식이좀더 보편화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길을 가는 데 지도가 필요한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데서도 법이 뭐라는것은 대충 알고 있어야지요. 그런 인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준법‘만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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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함부로 말할 사람이 아니야. 너보다 훨씬 열심히살고 어른스럽고 생각이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야."
"뭐라고?"
왈칵 울 줄 알았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조금 웃고 말았다. 아니, 친엄마도 아니고 새엄마에게 희한한 능력을물려받았나? 비실,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을 때 영린은 깜짝 놀랐다. 비웃음은 어쨌든 확실히 전달되었다. 이번엔 나도 한번 비웃어보자. 영린은 더 이야기하지 않고 일어서서 돌아왔다.
오늘만큼은 시원하게 울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눈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영린은 울려는 노력을 포기하고일어서서 거실로 나왔다. 턴테이블은 굉장히 낯선 물건이었다. 부모님이 그걸 사왔을 때는 살짝 의아했지만 어떻게 다루는지 배우고 나니 깨끗하지 않은 소리가 오히려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박스 가득 사온 판을 넘기다가 그 노래를 발견했다. 그 노래. 남자친구가 깎아내렸던 노래.
하지만 원래의 록 버전이 아니라 달콤한 목소리의 여자 보컬이 편곡해서 부른 보사노바 버전이었다.
판을 걸고 부엌으로 갔다. 비빔면, 비빔면을 먹을까. 딱맞는 조그만 편수냄비를 찾아서, 마치 그 손잡이가 연인의 손인 것처럼 멀리 보냈다가 가까이 당겼다. 장난스럽게 부엌에서 거실까지 춤을 췄다. 어두운 거실 유리가 거울처럼 영린을 비추었다.
괜찮아, 예뻐.
스스로 말해본 건 처음이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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