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지는 실험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오류의 여지를 두지 않으려고 만전을 기했다. 쥐의 뇌에서 도파민을 모두 제거하는수술을 진행했다. 신경전달물질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쥐들은 설탕을 먹고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2007년에 《정신약물학회지》를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베리지는 쥐가 웃은것은 도파민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 뇌에서 분비되는 한 개 이상의 다른 천연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런 화학물질들은 도파민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정보를 뉴런에 전달하며 각각 특화된 기능을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호르몬이라 부르는 것도 있는데, 위험을 보면 도망치게 만드는 부신피질자극 호르몬이나 신뢰와 연민의 감정을 고양하고 사회적 유대를 촉진하여 ‘사랑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이 여기에 속한다. - P89

어떻게 조금 전까지 맛있게 먹던 음식이 몸서리치게 싫은 음식이 될 수 있을까? 변한 것은 초콜릿이 아니다. 초콜릿의 달콤함과 부드러움, 카카오의 쌉쌀한 맛의 조화로운 풍미는 변한 게 없다. 변하는 것은 우리 머릿속이다. 인간의 인식은 인식하는 대상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인식은 추동하는 뇌와 억제하는 뇌 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주도권 다툼의 전리품이다.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뇌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갈망을 혐오감으로, 열망을 두려움으로 바꿀 수도 있다. - P98

속도는 모든 것을 압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속도는 중독성이18강하다. 중독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과 생리학자들은 이 사실을수십 년 동안 입증해 왔다. 어떤 물질이 뇌를 흥분시켜 행동을 유발하고 결국 그 행동을 상습적으로 하게 만드는 능력은 대개 그 물질이 뇌에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더 빨리 도달할수록 영향력도 강해진다.
속도는 담배를 헤로인만큼 중독성 있게 하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중독의 위험성은 흡입하는 물질만큼이나 물질이 전달되는 방법과도 큰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담배 한 모금을 빨면 연기가 10초만에 입속의 니코틴을 폐의 혈액으로, 다시 뇌로 전달한다. 담배를피우고 싶은 감정(도파민의 효과)을 느낀 순간부터 담배 한 모금이주는 충만한 만족감(뇌가 생성하는 오피오이드의 효과)을 느끼는 데 단10초면 충분하다. - P100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의 노라 볼코는 뇌를 빨리 자극할수록뇌의 반응도 크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 중 하나다. 이런 현상의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속도로 인해뇌가 다음번에 얻는 보상의 강도를 높이기 때문에 해당 물질을 더많이 섭취하게 된다는 주장을 편다. 2004년에 미시간 대학교의 정신의학과 연구팀은 다른 이론을 제기하면서 속도가 뇌의 신경 작용을 변화시켜 중독성 있는 물질을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에 따르기 전에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속도와 섭식 장애의 연관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가 중독될 수 있는 모든 물질 가운데 뇌를 자극하는 데 음식보다 빠른 것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특정 종류의 음식이 그렇다.
가공식품이 거둔 경이로운 성공은 모든 면에서 드러나는 빠른속도가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101

무엇보다 가공식품은 소비자 손에 들어오고 나서도 속도가 두드러진다. 가공식품은 빨리 개봉할 수 있고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빨리 데울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입안에 들어가면 뇌도 빨리 자극한다.
담배 연기가 뇌를 자극하는 데 10초가 걸리는 데 반해 혀 속에들어온 설탕은 뇌를 활성화하는 데 1초의 절반이 조금 넘는 시간, 정확히는 0.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담배보다 거의 스무 배나 빠른속도다. - P103

설탕이나 소금과 같은 가공식품의 기본 성분이 뇌에 도달하는속도에서 담배나 마약을 능가할 수 있는 이유는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다. 소금, 설탕, 지방은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 즉 인간이 음식에끌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용한다. 마약과 담배가 뇌로 이동하기위해서는 혈액에 흡수되어야 하는데, 음식은 뇌로 이동하는 속도를최대로 증가시키는 특별한 통로가 있다. 그 시작점은 바로 미뢰다.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으면 아이스크림에 함유된 설탕을 감지하는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미뢰가 설탕을 감지하여 전자신호로 변환한뒤 뇌로 재빨리 전달하는데, 그 효력은 실제 설탕과 같되 전달 속도는 훨씬 빠르다. 소금도 마찬가지다. 지방은 전달 속도는 같지만 뇌로 이동하는 경로가 다르다. 인간의 입은 삼차신경눈, 위턱, 아래턱으로 뻗어 안면 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신경을 통해 지방을 감지하고 신호로 변환하여순식간에 뇌로 전달한다. 삼차신경을 통하는 미뢰를 통하는 효과는동일하다. 전달된 신호는 뇌를 깨워 먹을 준비를 하고 먹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자극한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핥는 순간부터 한입 더먹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는 데까지는 고작 0.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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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못 듣고 못 읽어서가 아니다. 듣고 읽어도 각각의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조직하는 데 예전보다 시간이 걸리는, 분류와 추론, 인식과 수행이 원활하지 않은 나이가 됐을 뿐이다. 뜻밖의 시기에 삶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모두에게 언젠가는 찾아오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단지 바지락칼국수가먹고 싶을 뿐이고, 그런데 칼국수까지 도달하기 위해 터치해야 하는 과정이 있고, 자신들이 찾는 것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사이드 바의 화살표를 터치하면 옆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못하고, 실은 부등호 비슷한 표시(>)가 다음으로 화면을 옮겨줄 화살표라는 사실부터 알아채지 못하고, 여러 번거로운 절차 없이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칼국수 둘이요,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모든것이 해결되었던 시절을 떠올리고, 결국 그들은 누구 도와줄 사람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키오스크 옆에 따로 직원은없다. 사람을 한 명이라도 줄이려고 키오스크를 들여온 거니까 당연하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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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의료 사고로 의사 자격증을 잃은 괴팅겐 내과 의사 카리오(Cario)의 개인 빌라에서 묵게 되었다. 한때 부유했던 카리오 가족은 이제 재산이라고는 괴팅겐 중심부에 넓은 정원이 딸린 화강암 빌라한 채만 남은 상태였다. 독일의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전 재산을 잃게 된카리오는 하숙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어가 유창했던 오펜하이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허약한 정치 분위기를 재빨리 알아챘다. 그는나중에 카리오가 "나치스 운동의 근간이 된 당시 독일인 특유의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해 가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그는 모든 사람들이 "독일을 성공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썼다. "사람들은 신경과민으로 날카로워져있어. 유태인, 프러시아 인, 그리고 프랑스 인들에 대한 경계심 역시 심해진 것 같아."
오펜하이머는 그 시기가 대부분의 독일인들에게 힘든 시기였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비록 (대학) 사회는 매우 부유하고, 따뜻하며, 나에게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무언가 대단히 비참한 독일의 분위기라는 것이있기는 해." 그는 많은 독일인들이 "음울하고 분노에 가득 차 있으며, 곧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충만해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어." 그의 독일인 친구들 중 단 한명만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부유한 울슈타인(Ullstein) 출판사 집안 출신이었다. 그와 오펜하이머는 시골로 드라이브를 다니고는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친구가 "운전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눈에 띄면 위험할 수 있다며 자동차를 괴팅겐 외곽의 헛간에 주차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P103

 그 논문을 읽고 나서 아인슈타인은 폴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1880~1933년)에게 "하이젠베르크는 거대한 양자 달걀을 낳았다. 괴팅겐에서는 그것을 믿는다(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은 "소년의 물리학"이 불완전하며 심지어 근본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고 끝까지 믿게 된다. 게다가 하이젠베르크가 1927년 양자 세계에서 불확실성이 가지는 중심 역할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자 아인슈타인의 의구심은 극에 달했다.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한 시점에 물질의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현상의 모든부분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보른은 이에 동의했고, 어떤 양자 실험의 결과도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927년에 아인슈타인은 보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던 야곱(Jacob)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깝게 갈 수 있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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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햄버거와 사랑에 빠진 소녀

재즐린 브래들리의 삶에 맥도날드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 뉴욕 브루클린의 붉은 벽돌로 만든 연립 주택으로 이사를 간 후였다. 집에서 한 블록 반 정도만 가면 맥도날드 매장이 있어서 쉽게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재즐린은 늘 해피밀을 주문했다. 황금색 둥근 손잡이가 달린 상자 안에는 군침을 돋우는 햄버거에 감자튀김, 쿠키, 거기다 장난감까지 들어 있었다. 가끔은 재즐린의 아버지가 퇴근길에 맥도날드 제품들을 한 아름 사서돌아오기도 했는데, 식구가 늘 때마다 아버지 손에 들려 오는 맥도날드 상자와 봉지도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맥도날드 음식으로 잔치라도 벌이는 날이면 재즐린과 동생들(재즐린은 10남매 중 둘째였다.)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고 마지막 남은 감자튀김을 차지하려고싸우기 일쑤였다. - P9

맥도날드 재판에서 스위트 판사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맥도날드 제품들을 중독성 있게 만든 요소는 무엇인가? 설탕과 지방의 특정한 조합인가? 아니면 "담배의 니코틴처럼 작용하여 중독을야기하는 다른 첨가물이 있는가? 맥도날드 제품에 중독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을 먹어야 하는가? 중독은 즉시 시작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가? 아이들이 성인보다 취약한가? 기업은 이것을 의도했는가? 스위트 판사는 "맥도날드가 고의적으로 이러한중독성 있는 제품을 제조한 것인지에 대한 혐의는 제기된 바 없다."라고 했다.
스위트 판사는 중독성에 관한 주장을 검토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부분적으로는 허슈가 제기한 다른 주장들이 형편없이 허술한 탓도 있었다. 법리적 관점에서 다른 소인들은 아주 높은 장해물에 맞닥뜨렸다. 스위트 판사는 패스트푸드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맥도날드고객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음식을 과도하게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의 경우라면 그 부모가 패스트푸드의 위험을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 기업을 비난할 수 있을까?
반면에 중독성이 있다는 주장은 그런 현실을 교묘히 피해 갈 가능성이 있다는 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중독성 있는 제품을 판다는것은 소비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허슈의 의뢰인들은 자신이 예상치 못한 힘에 사로잡혔다고 주장하는 데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터였다. 스위트 판사는 패스트푸드에 들어간 엄청난 양의 설탕과 지방과는 달리 중독성 있는 음식이 지닌 "위험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아서 맥도날드의 고객들이 그 점을 알았을 것이라 예상할 수 없다."라고썼다. - P22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요소도 작용한다. 나쁜 식단이 야기하는 건강이상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발생하지만,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가난한 유색 인종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음식 앞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먹는 것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먹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식욕이 우리에게 유익하기는커녕 해롭다고 걱정하거나 먹고 싶은 것과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가공식품의 편의성과 여러 매력에 완전히홀리면서 과거에 느꼈던 음식의 매력이나 감흥, 식사 예절과 관습도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 P24

우선 인간이 어떤 것에 중독되는 데 약물에서나 발견되는 독한 화합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에는 강박적 행동을유발하도록 정교하게 조직된 자체적인 화학물질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파민이다. 실제로 이런 물질들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할정도로 강력해서 약물은 뇌가 자체적으로 지닌 이런 물질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진다. 사실 신경 자극으로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도리토스 잭Doritos Jacked으로는 코카인이 야기하는 정도의 갈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중독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물질이 뇌를 자극하는 속도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패스트푸드라는 용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1000분의 1초를 기준으로 중독의 세기를 측정할 때 뇌를 자극하는 데 가공식품보다 빠른 것은 없다. - P28

중독은 기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음식에 관해 생성해내는 기억은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물질보다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음식에 관한 어릴 적 기억은 평생 동안의 식습관에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요리사이자 음식 전문 작가였던 사람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기 시작하자 음식에 대한 감각이 퇴화하고 음식을 향한 열정도 사그라진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중독을 부르는 식습관을 형성하는데 음식 그 자체만큼이나 강력한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코부터 장, 체지방에 이르기까지 몸 전체가 단순히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음식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선사시대의 인류 화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놀랍게도 달고 열량이 높은 음식만이 아니라 편리하고 다양하며 생산하는데 비용(노력)이 적게 드는 음식을 찾아 나서도록 진화되었다. 언젠가 나는 어느 가공식품 업계 임원으로부터 인간은 값싼(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에 중독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중독의 이러한 측면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상 노력이 적게 든다는 것은그만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P29

 결국 세계보건기구는 중독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고 대신 의존성 dependency 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촉발된 것은 사람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마약과 기타 약물에 대한 이해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약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큼 효과가 강력하지 않았다. 더구나그 강도가 모두 동일하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코카인은 대개 사용을 그만두었을 때 육체적 고통이 유발되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견디기힘든 식욕과 같은 심리적 고통이 심할 수 있지만, 신경안정제 금단현상과 같은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은 없다. 하지만 코카인은 내성을 유발해서 일부 사용자들은 같은 효과를 보려고 점점 더 많은 양을복용한다. 반면 대마는 내성을 크게 유발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경우 사용을 중지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초조함을 느낀다.
약물이 고통은 사용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중독 개념에 혼란을 초래한 이유는 또 있다. 니코틴과 마찬가지로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처음 사용했을 때, 오랫동안 사용했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같은 약물에도 어떤 사람은 자제력을잃는 반면, 다른 사람은 아주 가벼운 영향만 받는다. 두 사람이 함께 술자리에 간 경우를 생각해 보라.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한 사람은 탁자 위에서 춤을 추고 다른 한 사람은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보지 않는가. 약물의 효과에는 성, 민족, 체중, 신체 조건이 모두 동시에 작용한다. 이는 전문가들을 당황스럽게 할 뿐 아니라 온전히 물질 그 자체를 탓할 수 없게 한다. 중독되는 약물addictive drug 이라는 용어가 중독성이 있는 약물drug with addictive qualities로 바뀐 것도 그래서다. - P50

"중독은 매우 복잡한 행위로 한 가지 요소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글레이저가 내게 말했다. "약물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체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그 사람이 속한 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처한 경제적 현실로 인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독은 이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 P55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이런 음식은 피험자들이 아주 좋아하는것이어서 실제로 먹을 필요도 없었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냄새를 맡고, 혀로 조금 맛보는 것만으로도 쾌락과 관련 있다고 밝혀진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음식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생성된 이미지들은 다른 측면에서도 아주 놀라웠다. 코카인을투여한 뇌의 사진과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뇌의 같은 부분에서 선명한 빨간색과 노란색 불이 켜졌다. 먹고 있는것이 각성제인지 치즈버거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두 경우 모두 뇌는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고 더 많이 달라는같은 반응을 보였다. - P69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에 있는 약물남용연구소에서 만난 볼코는이런 약물들이 뇌를 아주 강력하게 자극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약물은 남용하면 굉장히 위험하다는 내면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뇌를 극도로 흥분시킬 필요가 있다. 약물을 불법적으로 입수하여 체포당할 위험 또는 너무 강하게 농축되었거나 오염된 것을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적지 않은 위험을 극복하려면, 약물은 초기 단계에서 느끼는 갈망을극대화하고 사용에 따른 보상으로 엄청나게 큰 쾌락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공식품은 열광하기에 아주 쉬운 물질이다. 가공식품은 값싸고 빠르며 구매하기 쉽고, 적어도 건강이나 사회적 안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대체로 안전하다. 우리는 가공식품의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음식을 먹게 하는 데는 뇌에 충격을 가할 필요도 없다. 적당한 순간에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음식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반복의 힘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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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도 규모도 알 수 없는 노커들이 염병처럼 그 수를 늘려가며 창궐하는 동안, 오랜 방어와 긴장에 피로를 호소하다 더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 또한 생겨나기 마련이기에, 폭행 시비를 가리려다가 말을 잃는 증상을 보이게 된 피해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일자리를 잃고 사업체들도 인력난에 시달린다. 산업의 유지 근간이 흔들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말이 언제 소통의 도구이긴 했던가?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없으며 말은 이해보다는 오히려 오해의 도구가 아니었나? 아무에게 돌을 던지거나 아무의 목을 매달아 까마귀밥으로 걸어놓는 무기의 일종이며, 특히 현란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입속의 혀처럼 부리다 그 가치와 흥미를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즉시 도륙내기를 일삼던 독재자들의 필수 재능 아닌가? 이제 와서 소박하게 소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같은 자막을 내보내며 구독자에게 흥분한 모습을 보인 유튜버는 그 이후 신규 콘텐츠를 올리지않았고, 동영상에 댓글을 남긴 여러 명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역시 문 닫기 직전의 감성포차에서 술값 결제 도중 노커에게 당했다고 한다. 그는 술에 약간 취해 있었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자를 참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 P88

진짜 노커와 가짜 노커의 구별이 무의미해진다. 어차피 모두가 노커가 되어버리거나 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거라면, 인내심과 포용력 따위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람들사이로 퍼져나간다. 그와 함께 서로를 지칭할 수 있고 서로를 잇는 명사, 대명사, 돈독한 관계나 적절한 거리와 위치를 규정할 수있는 조사, 행동을 그나마 규정하고 제어할 수 있던 형용사와 동사들의 체계가 무너진다. - P90

 손님은 즉흥적인 기분으로 몇 자 끼적일 수 있다 치고, 키퍼는 업무 지침상 답장을 해선 안 될 터다. 객실 바닥에 흔적을 남기지 않음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지우도록 요구받는 이들. 누구나 그들이 보이지만 안 보이는 척하며, 그들은 거울에 튄 한 점의 물때나 타일에 떨어진 한 올의 머리카락과 다르지 않은 범주로 취급된다. 심지어 청소 카트를 밀고 있지 않을 때에도 화물용 엘리베이터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고객과 밀착 접촉하지 않더라도 그의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세균이고객에게 전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을, 그런 규정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영혼을 걸고 완벽하게 오염을 제거하는 행위의 반복도 모자라 그 스스로의 기척까지 감추어야 하는 이가, 객실 화장대에 자필 메모 같은 큰 흔적을 남겨둔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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