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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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 스웨덴의 수도다. 예전에는 뉴욕, 런던 혹은 파리 같은 대도시를 다룬 여행 수필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변방의 나라들인 볼리비아, 쿠바 심지어 마다가스카르까지 그 수필 목록에 오르고 있다. 박수영 작가의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역시 후발 주자로서 천국보다 낯선 이름으로 들리는 스웨덴 중세 도시 웁살라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작가는 어느 날, 삶의 ‘깊이’를 쫓아 북구의 나라 스웨덴행을 결심한다. 조금 어깃장을 놓자면, 그 깊이는 꼭 북구의 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걸까.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카피 문구에 심술이 났나 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생활은 마치 이십 대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데 도대체 책의 중간까지 읽기 전에는 작가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우파 독재정권 아래서, 이십 대를 보냈다고 기술했는데 일단 적은 나이는 아닌 듯. 어쨌든 스웨덴의 명문 웁살라대학으로 역사학을 전공하러 홀연히 떠났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전형적인 유목민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고등교육을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개인 부담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국가들과는 달리 근 1세기가량 사회민주주의와 복지 천국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받아온 스웨덴에서는 대학교육이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차별하지 않고 무상이라고 한다. 깊이도 깊이지만, 아마 작가가 스웨덴 그중에서도 영어 커리큘럼이 훌륭한 웁살라를 택한 현실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솔직히 말해서 책을 펴면서, 스톡홀름(왜 웁살라가 아니라 스톡홀름을 제목으로 정했을까! 리뷰를 쓰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혹은 스웨덴의 평생 가보지 못할 대부분의 독자를 위한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했지만, 그런 나의 독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박수영 작가 이야기의 중심은 이국적인 풍물이나 색다른 경험담이 아닌 웁살라 대학 역사학과에 둥지를 튼 7명의 보헤미안들과의 소통이었다. 그녀가 스웨덴에 체류하는 내내 그렇게 충돌했던 호앙과 같은 남성들이라면 도저히 잡아낼 수 없었을 그런 미묘한 감정의 기술과 관계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들은 사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아니 웁살라가 아니더라도 지구 상의 어디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세계화 시대의 유니버설리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007 패러디 영화로 유명한 <오스틴 파워즈>에서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섹스에 미친 사람들로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서구인들에게 널리 퍼진 그릇된 믿음 중의 하나인 스웨덴은 정말 자유연애의 천국인가라는 나의 착각은 박수영 작가의 양성평등 모범을 보여주는 그네들의 삶을 통해 완전하게 박살이 나 버렸다. 진정한 양성 간의 평등은 다른 성에 의존하지 않고, 무거운 캐리어를 스스로 끌고 금발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스웨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곧이 이해가 되지 시작했다. 솔직한 사랑에서 비롯된 자유연애 역시, 그릇된 시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그녀의 주장에도 공감이 갔다.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지만, 여전히 민족 국가라는 개념으로 다문화 국가로의 진화에서 뒤처져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적에 스웨덴에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야모”(평등기회 옴부즈맨)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석학 미셸 푸코가 한 때, 웁살라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자신의 박사 논문으로 <광기의 역사>를 제출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유럽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에서도, 나치 독일 시대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담론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참 놀라웠다. 우리의 이웃나라에서 전쟁과 제국주의 식민과거를 후손들에게 아예 알려 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참혹한 역사를 꾸준하게 후손들에게 알리고 함께 고민하려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대조적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박수영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7명의 보헤미안들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면서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을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타인의 사적인 담론들인데 말이다. 두 번째 의문은, 보헤미안 친구들과의 대화들에 대한 적확한 기술이다. 작가는 참 기억력이 좋은가 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두세 시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가 한 말도 다 잊어버릴 텐데, 아 놀라운 기억력이여!

어느 책에선가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앞으로 국가 모델을 정하자는 담론이 공론화되었을 대, 사민주의에 입각한 스웨덴과 신자유주의 미국을 놓고 고민하다가 후자 쪽으로 전환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스웨덴 역시 우경화되고 있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지난해 경영진의 부도덕성과 신자유주의 경제의 허구가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시카고 보이’들이 주도했던 자유방임에 가까운 신자유주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지난 십 년의 유산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정치 경제적 평등을 좌우명으로 하는 스웨덴식 모델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지향점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을 통해 북구의 먼 나라 스웨덴을 재발견하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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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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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의 십 년에 걸쳐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로 시작된 나의 로마사에 대한 관심은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로마사를 전공한 로널드 사임의 역작 <로마혁명사>에도 도전하게 해주었다. 공화정 로마에서 제정으로의 역사적 이행기는 카이사르를 필두로 해서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토 그리고 키케로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들을 그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스티븐 세일러의 작가가 1991년부터 내놓고 있는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는 바로 이 시기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인 <로마인의 피>는 기원전 80년, 평민파 마리우스와의 치열한 내전 끝에 독재관의 자리에 올라 로마의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치세에 일어난 존속살해 사건으로 시작한다. 아메리아 출신의 농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가 동명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고대 시대에 살부죄는 극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대의 변론가 키케로가 이 사건의 변호를 맡는다.

로스키우스 집안의 파트로누스(후원자)를 맡은 메텔루스 집안의 카이킬리아의 의뢰로 사건을 맡은 키케로는, ‘더듬이’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사설탐정 고르디아누스에게 협력을 구한다. 이미 기성의 유명 변호사인 호르텐시우스도 거절한 사건을 덥석 문 키케로와 고르디아누스는 억울하게 아버지 살해의 누명을 쓰게 된 로스키우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전력을 질주한다. 물론, 앞으로 그들의 앞에 닥쳐올 위험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사실 5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 조금은 위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 로마 시내에 대한 오랜 연구 덕분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천년도시 로마의 수부라, 에스퀼리노 언덕 그리고 포룸 같은 장소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일품이었다. 아울러 키케로나 술라 같은 실재 인물은 물론이고 고르디아누스라는 사건 해결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건네주는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멋진 캐릭터의 창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평민과 귀족의 대결이라는 로마 건국 이래, 갈등의 원인이었던 문제는 물론이고 고대 도시국가 로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노예제도에 대한 현대적 접근 역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로마 서브 로사 1:로마인의 피>에서 가장 독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지적 역사추리소설이라는 말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치밀한 구성과 사건 전개에 있어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스티븐 세일러의 탁월한 집필 능력이었다. 더 놀라운 건, 계속되는 시리즈를 위해 후속편에 주인공으로 나서게 될 크라수스를 등장시킨 방법이었다.

술라가 반대파를 숙청하면서 국가의 적으로 몰려 재산몰수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 재산을 헐값에 사들여 부를 축적하면서 중앙 정계의 총아로 떠오르게 된 훗날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더불어 삼두정치의 한 축을 맡았던 크라수스에 대한 소개는 정말 멋졌다. 아마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이보다 멋지게 소개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역시 추리소설답게 의문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사건의 배후를 쫓는 명탐정 고르디아누스의 활약에 더불어 그의 사이드킥으로 등장하는 베테스다, 티로, 루푸스 그리고 그에게 복수의 칼을 쥐여준 소년 에코에 이르기까지 쉴새 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즐겁다. 물론,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하는 악당들 역시 이야기의 극적 요소들을 한껏 고무해준다. 아무 문제 없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그것도 심심하지 않을까. 로스키우스의 무죄 판결을 위한 고르디아누스의 이전투구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이 계속되는 음모와 반전은 정말 시대적 상황만 고대 로마일 뿐, 현대판 추리극에 전혀 뒤지지 않은 재미를 제공해 준다. 실제 역사상의 주인공들을 등장하는 팩션 장르가 가질 수 있는 리얼리티의 진수라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옥의 티라고나 할까, 등장인물 이름에 대한 오기가 정말 눈에 거슬렸다. 처음에는 틀린 부분들을 체크해 가면서 읽다가 나중에 가서는 너무 많아서 포기해 버렸다. 다음 달에 후속편으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다룬 <네메시스의 팔>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출판사 측에서 좀 더 신경을 써서 그런 오류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로마 공화정 말기를 관통하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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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싸부님 2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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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2편에서도 이외수 작가의 하얀 올챙이 우화는 계속된다. 조물주의 처지에서 본다면 파란만장해 보이는 우리네 삶 역시 부처님 손바닥 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재물을 쌓고, 잘 먹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얀 올챙이와 까만 올챙이의 바다를 향한 여행은 어느 순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주의 극한을 보여 주기도 한다.

강원도 웅덩이를 떠나 저수지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난 올챙이 사제(師弟)는 다시 바다로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간이 빚어내는 오염 그리고 부질없어 보이는 인간만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제는 인공호수에서 접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는 불변의 진리와 먹고 먹히는 동물계의 먹이사슬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스승인 하얀 올챙이의 시점에서 벗어나 제자인 까만 올챙이의 일기 형식을 빌어 구도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도 한다. 인간연구 세미나에서는 ‘고독’이라는 주제로 물고기들이 토론을 벌인다. 홀로 있기에 고독하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전혀 고독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독은 여전히 그 휘황찬란한 아우라( aura)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스승 하얀 올챙이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큰 고독 속으로 뛰어들라고 했던가.

인간의 탐욕을 형상화한 물고기라고 지칭하는 금붕어 이야기 또한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금붕어를 창조해 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는 미모지상주의에 대한 이외수 작가의 일침으로 다가온다. 1급수에나 산다는 꺽지는 평화롭게 살던 어느 날, 인간으로부터 돌땅과 전기 찜질이라는 흉악한 행동을 당하는 바람에 가족을 모조리 잃고 자신의 기억마저 상실한 채, ‘ㄱ’을 발음하지 못해 “내 아조을 돌려다오“를 외치고 다닌다고 한다. 조금 더 거창하게 접근을 하자면, 우리 이웃 동물들과 평화롭게 사는 환경친화적 삶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물고기 세계에도 지식으로 무장한 녀석들이 난척하는 모습은 우리네 인간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가 보다. 불과 얼마 전, 아륀지 발언으로 세상이 시끌시끌했었는데 물속에 사는 이 녀석들도 우리말보다는 영어 혹은 한자로 떠들어 대는 모양새가 어째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황(魚皇)을 자처하며, 뭍 물고기들에게 혹세무민한 사이비 종교틱한 썰을 풀면서, 자신을 따르는 물고기들을 천당으로 보내는 모습에 절로 혀를 차게 됐다.

한 때 천주교에서 설파했던 “내 탓이오”라는 말처럼, 모든 문제의 근원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아보는 노력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찾는 진리가 정말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진리의 축복 속에 살면서도 참 진리의 도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얀 올챙이 스승은 우선 내 안을 비우라는 말을 날린다. 나를 비우면,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가 있을까?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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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싸부님 1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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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이외수 작가에 대한 기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사실 작가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서 만날 수가 있었다. 얼마 전 <하악하악>이라는 책이 그렇게 대박이 났어도 난 끝까지 그 책을 안 읽고 버텼다.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대한 혐오라고 해야 할까. 아, 베스트셀러를 읽는 방법이 한 가지 생각났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에 읽는 거다. 쩝,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구먼 그래.

어쨌든 난 이번에 책 표지에 우화상자라는 말이 찍혀 있는 <사부님 싸부님>을 통해 이외수 작가를 만나게 됐다.  이 책은 이미 지난 1983년에 나왔던 책인데 이번에 해냄 출판사에서 컬러링과 재편집을 통해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아쉽게도 26년 전에 나온 책을 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가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외수 작가가 직접 책에 나오는 일러스트들을 그렸을까 하는 게 가장 궁금했다. 무형질에 까만 핵(?)으로 구성된 개구리알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 두메산골의 어느 웅덩이라고 했던가. 마치 어느 조용한 시골 암자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득도한 선사와 선문답을 나누는 듯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던가, 아니 내 속에 그 이야기가 들어와 있었나. 그게 무어가 중요한가 말이다.

<사부님 싸부님>의 주인공은 개구리알에서 부화한 하얀 올챙이다. 탄생과 소멸이라는 순환계에서 등장한 이 작은 녀석이 어느 날 도(道)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게 되면서 파란만장한 모험의 길에 나서게 된다.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고대 사유하는 이들로부터 시작된 예의 질문에 하얀 올챙이 역시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바다”라는 이상향은 거대한 도전이다. 도대체 바다는 무엇이고, 그 존재의 실체에 대해 하얀 올챙이는 사유하기 시작한다. 아 거창하다, 거창해!

바다를 향해 떠난 하얀 올챙이는 자신이 속해 살던 웅덩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저수지로 서식처를 옮긴다. 그 속에서 만나는 잉어, 붕어, 블루길, 가물치, 연어 등은 모두 그의 스승이다. 그의 끊임없는 사유와 회의는 마치 근대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데카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적대적인 가물치에게까지 하얀 올챙이는 구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처럼 아랫사람에게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계시처럼 다가온다. 하얀 올챙이도 하물며 이런 배움의 자세를 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어떠한지, 반성할 일이다.

사부님은 상대적으로 제자를 가지고 있어야 들을 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하얀 올챙이는 저수지에서 자신을 따르는 까만 올챙이(거의 점에 가깝다!)와 운명적인 만나게 된다. 이외수 작가는 이 하얀 올챙이와 까만 올챙이의 우주의 진리와 구도를 위한 험난한 여정 그리고 전두환 철권통치가 자행되고 있던 억압의 시대 가운데, 삼라만상에 대한 조심스러운 패러디를 들려준다. 마치 우리네 인간사의 면면을 보는 듯한 현란하기 그지없는 비유와 때로는 통쾌한 블랙유머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과연 하얀 올챙이와 까만 올챙이의 바다를 향한 여정은 어떻게 될지 2부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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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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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만났을 때. 온전한 깨달음으로 법열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연초에 만났던 유시민 선생의 <후불제 민주주의>가 그랬고 올해가 다 저물어 가는 세밑에 있는 한홍구 교수의 <특강>이 그랬다. 지난 4월에 책을 사두고서도 이제야 읽게 됐다. 그것도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서야 비로소 ‘아,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작정을 했으니.

1987년 이래 사회 전반에서 진행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역주행의 시대를 맞아 한홍구 교수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8차례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을 통해 얼마 전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에 나오는 민생단 사건이 바로 한홍구 교수의 전공분야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역사학자로서는 국내에서 한국현대사에 처음으로 도전한 한홍구 교수는 역시 <특강>의 총론 격에 해당하는 첫 번째 이야기로 과감하게 친일파와 관련된 건국절 논란으로 타이틀을 뽑는다.

이제는 더 왜 우리나라의 과거사가 청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친일파와 관련된 사안은 역사적 당위성을 담보로 한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친일파야말로 이후에 벌어진 개발독재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참으로 희한한 말로 포장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이었다. 해방정국에서 살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친일파들이 권력의 주체로 등장하기까지에 대한 한홍구 교수의 설명은 참으로 명쾌하다. 동시에, 왜 그때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서 반세기가 지날 때까지 우리 후손들이 그 멍에를 쓰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울분이 터졌다.

이웃 중국의 왕조 교체기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있는 권력의 ‘소프트랜딩’을 연달아 성공해 온 우리나라 보수 엘리트계층의 끈질긴 생명력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기만 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나와 있는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건국절이라는 희한한 발상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 태생적 한계 탓에, 대한민국에서 민족을 내세울 수 없는 친일파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 집단이라는 것이 한홍구 교수의 시각이다. 정통성의 부재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민족 대신 외세에 대한 의존할 수 없는 그네들의 실상을 적확하게 집어낸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정권 보위용 간첩 조작사건들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어렸을 적에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생긴 손과 얼굴이 털이 숭숭 나고, 거의 늑대 수준으로 묘사된 만화와 반공포스터를 보면서 자란 세대의 비애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석훈 교수가 경고해온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모습은 나중에 소개되는 사교육과 그 짝을 이뤄 누구도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정치가 판을 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철하게 그려낸다.

한편, 현 정권에서 명운을 걸고 진행 중인 4대강 정비사업과 더불어 시대정신으로 포장된 민영화 사업에 대한 허실을 한홍구 교수는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예단한다. 좌파나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보수 우파가 입안한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한홍구 교수가 적시한 대로 그렇게 지금 들어도 놀랄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넘쳐 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것이야말로 글의 초반에 기술했던 법열의 순간이었다.

어느덧 <특강>은 중반 레이스로 치달으면서, 2008년 초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 논란의 중심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사문화된 유언비어 유포죄로 체포하고, 인터넷 담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지배층에 대항해서 루머와 괴담이라는 형식을 빌려 정보 소통과 언로가 막히고, 억압적인 조건을 타파하려고 한 계급성에 한홍구 교수는 날카로운 필치를 놀린다.

<특강>은 국민의 안녕과 공공질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정권 보위를 위한 조직으로 전락해 버린 경찰 폭력과 과잉진압에 대해 역사적 입장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보다도 먼저 창설된 경찰은, 일제 치하의 순사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민족경찰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린 채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신하게 된다. 평소에는 누구인지도 모를 경찰청장의 이름이 2008년 여름 내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명박산성’을 쌓아 소통의 단절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기가 막힌 퍼포먼스로 시각화한 경찰에게 중립화와 시민에 대한 서비스라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올 것을 주문한다.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버려서,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 떠올랐다. 근대민족국가 태동기에, 학교(교육), 군대(징병제) 그리고 공장(자본주의) 삼위일체라는 자본주의의 시대적 필요에 따라 근대적 인간형으로 개량을 위해 공교육이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간답게 살려는 방법이 아닌 오로지 사회적 신분상승 혹은 지배계층의 공고화라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학부모들에게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그리고 학습의 주체인 학생들로부터 창조적 학습의지와 능력을 거세시켜 버리는 과외와 사교육이야말로 작금에 현장에서 벌어지는 공교육 붕괴의 주범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특강>에는 한홍구 교수가 풀어내는 야담 같은 한국현대사의 이야기들이 한가득 들어 있다. 한홍구 교수의 글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던 아주 중요한 사실들, 혹은 지배계층이 알리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치부들과 접할 수가 있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 Carr)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문명 역주행의 시대에 왜 역사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엿볼 수가 있었다. 물론 한홍구 교수가 저술한 우리 역사 이야기 속에는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역동성을 읽는 기가 막힌 재미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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