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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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유년시절 기록을 읽는 것은 작품을 읽는 만큼이나 재밌었다. 나에게 아멜리 노통브의 유년을 망라하는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렇게 다가왔다. 2010년 2월, 노통브의 책에 옴팡지게 빠져 버린 나는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그녀의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물론, 신간이나 잘 나가는 책들은 예상대로 관외 대출 중이었고 서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골라 집은 책이 바로 <배고픔의 자서전>이었다.

갑자기 생뚱맞게 웬 바누아투, 예전에는 뉴헤브리디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남태평양의 천국에서 그녀는 배고픔이라고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책을 읽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식량부족으로 아사자가 수없이 발생하는 지구별에 바누아투라는 지명만큼이나 낯선 공간은 풍요 그 자체다. 어떠한 부족함 없이 사는 바누아투 사람들에 비해, 작가는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의 부족으로 끊임없는 공복을 느낀다.

벨기에 출신 외교관 아버지를 둔 아멜리 노통브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미얀마 그리고 라오스에서 살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모 니쇼 상 밑에서 자란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자유를 꿈꾸던 노통브는 설탕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을 꿈꾸는 외국인 소녀였다. 작가라는 미래의 직업을 의식해서였을까? 획일화된 교육과 체제에 체질적인 반항심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예절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5년간의 일본에서의 생활이 비해, 문화혁명의 격동기를 겪고 있던 베이징은 그녀에게 천국보다 낯설었으리라. 달달한 먹거리 사냥을 위해 베이징의 외국인 게토 산리툰의 곳곳을 서슴지 않고 털고, 그때 획득한 전리품이었던 스페퀼로라는 벨기에 단 과자 하나에 쾌락과 관능을 동시에 느끼는 조숙한 소녀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술 맛을 들인 그녀는 조금씩 유아 알코올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노통브의 베이징 생활은 그녀에게 평생의 지긋지긋한 반려자가 된 천식이라는 병을 제공하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에 이은 미국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자본주의 향연을 노통브 가족에게 선사해 주었다. 언니 쥘리에트와 아멜리 노통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즐거운 8살, 9살 그리고 10살의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동남아시아의 빈국 방글라데시로 가게 되면서 체험 극과 극의 현장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의 물질적 풍요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빈곤은 정말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할 게 없었던 방글라데시에서 그녀는 훗날 자신의 글쓰기의 자양분이 될 엄청난 양의 독서를 개시한다.

열일곱 살에 비로소 조국 벨기에에 돌아와 대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21살에 되던 해에 ‘내 나라’ 일본에 돌아가 사랑을 경험하고 본격적인 글쓰기에 돌입하게 된다. 그녀 자신의 유년기를 마감하면서, 추출작업이었던 글쓰기가 어느 순간 짜릿한 쾌락의 원천이 되어 버렸노라고 고백하면서 이 자서전을 마무리한다.

작가의 유년기를 통해, 나중에 그녀 작품의 모티브가 된 소재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적의 화장법>에서 텍스토르 텍셀이 자신의 첫 살인으로 고백했던 어느 동료 학생의 죽음은 놀랍게도 그녀의 실제 체험이었다! 사랑도 자신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노라는 선언은 조금은 뒤틀린 방식으로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살인자의 건강법>과 <적의 화장법>에 등장을 한다. 아직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다 읽어 보지 못해서 그 나머지 부분들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분명히 노통브의 유년시절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전작주의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좋은 점은 우선 그녀의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이 많다는 점과 아직도 한창 나이인지라 계속해서 그녀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 행복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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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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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비켜라! 스페인의 대찬 기사 돈키호테가 있다면 독일에는 허풍과 ‘구라’라면 전 세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뮌히하우젠 남작이 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은 항상 자기 입으로 내뱉는 이야기가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며, 순도 100%의 진실이라고까지 한다. 당당한 그의 뻥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릴 지경이다. 그런데 되새겨 보면, 그가 한창 신나게 뻥을 치던 시기가 21세기가 아니라 300년 전인 18세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의 허풍이 먹힐 만도 하지 않았을까?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의 저자 고트프리트 아우그스트 뷔르거는 이야기꾼보다는 발라드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실존 인물인 칼 프리드리히 폰 뮌히하우젠 남작(1720~1797)을 모델로 해서 유쾌한 허풍으로 가득 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그의 조국인 독일에서보다 영국에서 먼저 유명세를 탔고, 자신이 주력했던 시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진짜 뮌히하우젠 남작이 러시아군에 복무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터키와의 전쟁에 참여했던 체험담은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에 생생하게 실려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소설에서 뮌히하우젠이 말하는 게 모두가 다 허풍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적 체험에 기초해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양념으로 적당하게 요리한 글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동토의 땅 러시아는 여전히 유럽 세계로 편입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는 시각을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폭설이 내린 날 말을 매어 두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말이 교회 첨탑에 매달려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귀족들의 스포츠인 사냥을 즐기다가 오리 떼를 베이컨 한 조각으로 모두 잡았고, 자신을 공격하는 늑대의 아가리에 주먹을 내질러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정말 귀족들의 파티에서 아마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그의 뻥이 타인에게 악의적인 해를 끼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터키와의 전쟁에서는 날아다니는 포탄을 바꿔 타며 적 진영을 정찰하고, 터키 술탄의 포로가 되어서는 새끼줄을 꼬아 달에도 갔다는 황당한 설정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바다 모험은 한층 더 스케일이 커진 뮌히하우젠의 허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그 길이가 800미터나 되는 고래 이야기에, 두 번째 달나라 여행 그리고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너끈하게 집어삼킨 바다 괴물 이야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뮌히하우젠의 허풍으로 가득한 여행 중에서 역시 최고의 이야기는 다섯 명의 용사들과 함께 터키의 술탄에게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공주의 토카이산 포도주를 대접한 이야기다. 우선 남작은 우연한 기회에 재주 많은 다섯 명의 용사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허풍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이 용사들이 가진 특출한 재주를 이용해서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완수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아무리 허풍이 센 뮌히하우젠이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어려운 내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사이드킥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암흑의 시대였던 중세를 벗어나, 비로소 이성에 근거한 계몽시대로 접어들던 시기에 살던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고 뷔르거는 이런 황당무계한 소설을 쓸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달나라에 대한 상상이나 혹은 그 달에 사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창조적(혹은 타인의 것을 차용했을)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발하기만 하다. 물론, 새끼줄을 꼬아 달에 도달한다는 그의 서술은 황당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달에 가게 되었다는 본질을 비추어 볼 때 고트프리트 뷔르거의 상상력이 전혀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1989년에 <바론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로도 발표됐었다. 과연 뷔르거의 소설적 상상력이 20세기 영화에서는 어떤 비주얼로 구현됐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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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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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에는 나는 그만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 꽂혀 버렸다. 불과 며칠 사이에 3권의 책을 읽었고, 가장 인기 있다는 <적의 화장법>이 대기 중에 있으며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배고픔의 자서전>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 <제비 일기>와 <오후 네 시>를 반납하러 갔다가 또 다른 수작 <살인자의 건강법>이라는 책을 빌려다 다 읽어 버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앞에 읽었는지 책이 그야말로 걸레처럼 헤져 있었다. 껍질이 헤졌다고 해서, 그 내용도 헤지진 않았더라.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 누워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83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22권의 소설을 펴낸 프레텍스타 타슈가 죽을병에 걸렸다. 연골 조직이 파괴된다는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이라는 정말 희귀한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괴팍하기 짝이 없는 언행에, 음식에 대한 탐욕으로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타슈에게 유일한 낙은 먹는 것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문호의 죽음을 앞두고, 그가 죽기 전에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욕심에 수많은 신문 기자들이 타슈와 인터뷰를 갈망한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이렇게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서게 되는 타슈의 5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말 특이한 논리와 화려한 언변으로 무장한 대문호의 현란한 언어유희에 기자들은 차례로 나가떨어진다. 기세 좋게 덤비는 기자들의 열정도 열정이지만, 노회한 작가의 방어 기제의 발현은 사실 통쾌하기까지 하다. 22권이나 되는 그의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죽어가는 대작가를 분석하겠다고 달려드는 얼치기 글쟁이들에게 타슈는 타이슨의 주먹 같은 KO 펀치를 날린다!

사실 59살에 절필을 선언하고, 그전에 미리 써둔 원고를 까먹던 그에게 삶이란 단조롭기 그지없는 시간에 불과했던 걸까?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불나방같이 기세 좋게 덤비는 기자들을 차례로 녹다운시킨다. 걸프전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진행되던 인터뷰는 기자와 노작가 사이의 공격과 방어를 연상시킨다.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감추지 않는 타슈의 타고난 뻔뻔스러움에 그만 질려 버렸다.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경험한 노회한 작가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런 타슈에게도 드디어 호적수가 등장하는데, 바로 30살 난 니나라는 이름의 여성 기자였다. 그녀는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22권에 달하는 타슈의 모든 저작을 꿰고, 인터뷰에 임한다. 수년간의 저작생활에 닳고 닳은 타슈도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니나의 파상공세에 결국 끝까지 자신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던 비밀을 간파당하고,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 구성과 소재의 선택이 참으로 참신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아멜리 노통브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작가로서의 노통브의 페르소나는 대문호 타슈와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혹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신문 기자 니나의 그것과 혼재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로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손이고, 자위적인 쾌락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도 손이라는 그의 궤변에는 정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아울러 니나 전의 네 명의 인터뷰 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타슈의 오만하면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캐릭터를 조금씩 설명해 나간다.

조금씩 공고하게 굳어진 대작가라는 권위와 가식의 틀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인간 타슈에게 접근해 가는 노통브의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렇게 혐오하고 모욕감을 안겨준 ‘여성’에게 무장해제를 당하고 자신이 고이 간직해온 비밀마저 들통이 나 버리는 과정이 아주 통쾌했다. 어쩌면 그는 글쓰기를 포기한 지난 사반세기 동안 자신을 끝장내줄 니나 같은 인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노벨상 수상작가인 자신을 치켜세워줬지만, 그는 자신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조롱하며 자신의 살인충동과 분노 그리고 황홀경을 이어갈 아바타를 기다려 왔다는 것이다. 마침내 적합한 자신의 화신을 만난 그가 더 바랄 게 있었을까?

이렇게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정말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법적 주술을 아멜리 노통브는 소환한다. 문학을 둘러싼 허위와 위선을 분쇄하고, 개인적 감정에 충실하라는 그녀의 주문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문득 그녀의 작품을 카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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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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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지난 2003년에 작고한 로베르토 볼라뇨의 책들을 전집으로 출간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대를 많이 했다. 게다가 버즈북이란 기발한 방법으로 우리에게는 생소한 로베르토 볼라뇨에 대한 마케팅을 하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은 증폭됐다. 적어도 나한테는 출판사의 홍보 전략이 먹혀든 것 같다. 게다가 1월 말에 출간예정이라고 했던 전집의 제 1탄 <칠레의 밤>의 출간이 늦어지면서 기다림의 증세는 도를 더해 갔다.

결국, 지난 명절 전에 가까스로 <칠레의 밤>을 입수하게 됐다. 결론부터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생전에 문학 테러리스트라는 악명을 떨치면 칠레 출신의 망명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짧은 장편 <칠레의 밤>을 읽고 난 소감은 ‘혼란’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걸작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죽음을 앞둔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 신부의 고백으로 <칠레의 밤>은 시작된다. 문학 비평가를 꿈꾸던 십 대 소년 우루티아가 어떻게 해서 사제의 길을 걷게 되고, 문학 비평가를 꿈꾸던 신학생 시절 자신의 정신적 스승 페어웰과 많은 문인을 만났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 후, 우루티아는 가톨릭 대학에서 일하며 일단의 시를 발표하고 이바카체 신부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바카체 신부는 오데임과 오이도라는 사업가들과의 교제를 통해 성당 보존 연구를 위해 유럽으로 떠나 좀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성당 보전에 치명적인 비둘기의 소탕을 위해 매를 이용해 유혈이 낭자한 사냥을 하는 유럽 신부들의 모습은 후에 기술된 피노체트 독재의 그것을 위한 예고편이다.

한편, 인민연합의 대선후보로 대통령이 된 살바도르 아옌데 박사의 승리에 보수주의자인 이바카체 신부는 심기가 불편하기만 하다. 수년간의 혼란 끝에 결국, 미국의 사주를 받는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의 합법정부는 붕괴하고, 피노체트를 수장으로 한 군사 평의회가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폭압적인 군사독재를 시작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바카체 신부는 군부로부터 ‘칠레의 적’들이 도대체 얼마나 나아갈지를 알기 원하는 장군들을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는다. 이에 절대 비밀은 전제조건으로 이바카체 신부는 9번의 비밀 강연회를 갖는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놀랍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설화한 이야기로, 작가를 꿈꾸는 마리아 카날레스라는 여성이 자신이 소유한 교외의 화려한 저택을 문인들에게 소통의 장으로 제공한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던 시절에 그런 공간은 예술가들의 해방구였다. 하지만, 그녀가 파티를 벌이던 빌라는 칠레의 반체제 지식인들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고문하던 장소였다. 그 빌라를 드나들던 지식인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노라는 충격적인 고백이 이어진다.

사실 조금은 장황한 전반부의 구성에 비해, 피노체트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했다는 어느 사제의 고백과 문인들이 파티를 벌이던 장소가 반체제 인사들의 고문장소였다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그 밀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유럽 성당의 신부들이 매를 이용해서 성당 보존에 치명적인 비둘기들을 사냥한다는 설정은, 피노체트 일당이 칠레의 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사형집행인’을 하수인으로 내세운다는 것과 너무나 유사했다. 과연 볼라뇨가 글을 쓰면서 그런 비교를 예상했는진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가 그 둘 사이의 연관성이 보였을 때의 충격이란!

그 무엇보다 진리와 정의를 구하는 지식인으로서 이바카체 신부의 작태는 유감 그 자체였다. 그는 절차를 중요시하는 민주주의를 무시한 채,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던 군사독재 시절 권력에 영합해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적들로부터(심지어 존재하기는 했었던가!) 조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권력자들에게 봉사했다. 야만적인 독재에 신음하는 조국의 현실을 외면한 채, 이바카체 신부는 그리스 작가들이 쓴 고전을 읽는다. 그 가운데 자신은 조용한 평화를 간구한다. 바로 이런 지식인의 역설을 볼라뇨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도대체 그 시절의 지식인들은 양심이란 걸 가지고는 있었던가?

자신의 문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인으로 시작한 볼라뇨는 멕시코의 거장 옥타비오 파스와 조국 칠레의 대문호 파블로 네루다를 가차없이 비판한 <인프라레알리스모> 활동으로 문학 테러리스트로서의 악명을 날렸다. 주술적 리얼리즘을 특징으로 하는 라틴아메리카 <붐> 문학에 대해서도 지나친 상업성과 반복에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공격적인 볼라뇨의 날 선 비판이 조금은 거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서 자신의 블랙유머를 만개했다면, <칠레의 밤>에서는 피할 수 없는 과거사와의 대면을 로베르토 볼라뇨는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출간될 11권의 대장정이 어떻게 귀결이 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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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 2010-02-2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책 질문 좀 드릴게요. 이거 양장본이 예전 하드커버인가요? 아니면 최근에 열린책들 세계문학 판 같은 책등이 네모난 양장본인가요?
 
안나 카레니나 3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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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 읽었다. <부활>, <전쟁과 평화>와 더불어 톨스토이 3대 걸작으로 불리는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소설 이상이라고 말했던 <전쟁과 평화>보다도 진정한 소설로 간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러시아통보>에 1873년부터 1877년까지 장장 5년여에 걸쳐 연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출신의 유명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큰딸 마리아 가르퉁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소설의 후반에 해당하는 3권에서 이제 막 결혼해서 시골에 정착한 레빈과 키티네 집으로 돌리네 식구들이 여름을 보내러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레빈의 노총각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아쉬운 로맨스와 쉬체르바쓰키 식솔들의 침입으로 레빈이 꿈꾸던 평화로운 전원생활은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랴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그러한 것을!

게다가 스티바와 함께 온 베슬로프스키의 등장으로 레빈의 심기는 불편하기만 하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전형적인 질투로 고뇌하는 레빈의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한편, 부근의 브론스키 영지에 머물던 안나를 찾아간 돌리는 여전히 호사스러운 귀족생활을 하며, 브론스키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소유욕에 시달리는 안나의 모습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온다. 지방귀족단장 선거를 위해 잠시 곁을 떠난 브론스키의 부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안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대 파란을 예고한다.

키티의 출산이 임박하면서, 장소는 모스크바로 옮겨 전원생활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된 레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선 금전적으로 대도시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은 한적한 시골생활에 비해 그 비용이 많이 소용되고, 그전부터 가뜩이나 마땅치 않게 생각해오던 위선과 허위로 가득한 상류생활에 레빈은 염증을 느낀다. 스티바와 브론스키는 레빈에게 안나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안나를 처음으로 본 레빈은 브론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 안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물론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처럼 파국으로 치닫진 않지만, 그만큼 팜므 파탈로서의 안나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다.

간절하게 이혼을 소망하는 안나의 요청을 알렉세이 안드로비치는 거절하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 안나의 운명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안나의 절망적 질투는 브론스키를 옥죄고, 자신의 소멸을 통해 구원을 꿈꾸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와 열애 중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을 존속시켜주던 열정과 브론스키에 대한 신뢰가 급속하게 흔들리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자신을 내던진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커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개인의 사랑과 결혼, 사회, 진보, 신앙, 열정, 질투, 시기 그리고 위선에 이르는 그야말로 인간사의 모든 이야기가 이 소설에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안나 카레니나>의 두 주인공은 바로 안나와 레빈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자가 철저하게 개인의 행복에 근거한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후자는 만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가 있다. 톨스토이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페르소나로서, 작가는 레빈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키티와의 결혼에 앞서 자신의 무신론과 순결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은 자신의 실제 부인이었던 소피야 베르스에게 했던 고백과 유사하다.

다음으로 <안나 카레니나>가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꼽히는 세 가지 특징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나 카레니나>는 사실주의 문학에서 모더니즘 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중세를 풍미했던 종교적인 색채를 대신해서 등장했던 사실주의 문학과 동시에, 근대적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문명과 비인간화의 과정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한 모더니즘 문학의 태동을 이 작품을 통해 엿볼 수가 있다. 변혁을 갈망하는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레빈이라는 이성적 존재에 대한 화두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둘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의심의 흐름” 기법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안나의 사고를 통해 선보여 주었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각 부마다 주연으로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신속한 전환을 하면서 엄청난 분량에도 다양성을 담보한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커다란 줄기 속에서 서로 다른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연애소설, 사회소설 그리고 정치소설이라는 다채로운 변주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열정적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안나가 조금씩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 대한 톨스토이의 탁월한 심리분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세 번째 특징으로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 실재했던 러시아 농노해방, 제도개혁 그리고 세르비아 전쟁 같은 사건들을 차용하면서 리얼리즘에 극대화를 유도한다. 이런 개별적 사건들을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러시아 사회변혁에 대한 토론 그리고 개인의 사랑과 열정에 대한 감정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 접목시키는 그의 매끄러운 테크닉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소설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8부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은 브론스키가 의용대를 조직해서 과연 살아 돌아올지 모르는 세르비아 전쟁에 출병하는 장면은 이 ‘넓고 자유로운 대하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 위에 세워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와 세료쥐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안겨준 안나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없었던 건 미리 예견된 숙명이었을까?

2010년 나의 고전 읽기 목록에 이 ‘완전무결’한 작품을 올리게 돼서 뿌듯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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