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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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실패를 규정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나의 성공과 실패가 판정된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행복도? 질문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점이 너무 슬펐다. 내가 느끼는 사소한 감정들조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런 점이 말이다.

 

딸 홍유나(31세)가 죽었다. 십 수 년 전부터 이미 깨져 버린 가정의 가장인 정근은 전라도 출신의 공군 기무부대 예비역 대령이다. 정근과 그의 처 지숙은 황망한 가운데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받는다. 그 중에 딸 유나의 절친 윤철용과 강주한이 눈에 띈다. 우락부락한 영어샘 철용은 전혀 조문객답지 않은 복장으로 정근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반면 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주한은 차분하게 장례식 절차를 돕는다. 유나는 차를 몰고 그대로 저수지로 들어갔고, 사인은 익사라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에 앞서 우리는 왜 젊디젊은 유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죽기 전 아빠에게 남긴 메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고향을 떠나 사회에 만연한 지역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동향 출신을 비난하던 홍 대령은 방산 비리로 불명예제대를 했고, 경비로 나머지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교대 출신 유나는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대신 항공사 승무원으로 변신해서 사회인으로 출발했다. 홍 대령은 자신이 모르던 딸의 삶의 흔적들을 그녀가 죽은 뒤에 하나씩 찾아 가기 시작한다. 학생 시절, 자기 때문에 동료 윤 대령이 죽었다는 딸을 모질게 폭행하고 그 과정을 지켜 보던 지숙이 기절하는 과정 등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슈퍼리얼리티였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홍 대령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승무원 5년차 유나는 자신을 밀고한 동료에게 환멸을 느낀다. 예의 밀고는 부기장 김영훈(그는 예전에 홍 대령의 운전병이었다)과 불륜이라는 모함이었던가. 반성문과 따귀는 정말 모욕적인 처사가 아닌가. 어쩌면 그 모든 출발은 노조간부로 활동하던 영훈과의 친분이 발단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훈네와 유나네는 서로 얽히고설킨 악연이 있었던 것 같다. 영훈의 아내 혜진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지난 2년간 코마 상태에 빠져 있다. 아마 소설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에 나오는 어떤 장면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소설 속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그 어떤 희미한 이미지들 정도.

 

소설에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등장하는데, 왠지 모르게 따로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나가 승무원으로 근무한 항공사의 천태만상 비리는 최근 언론지면을 통해 접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피고용인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어느덧 오너리스크의 상징이 되어 버린 갑질은 이제 일상이지 않은가. 우리들이 아무 생각이 없이 비행기 안에서 구매하는 면세품 팔기가 승무원들의 실적으로 둔갑하는 불편한 상황은 또 어떤가. 심지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자신이 강제로 구매해야 한다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버린 일들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감정이 놀랄 지경이다.

 

방산비리의 일각과 군부대 내 계급의 고하로 무시로 동원되는 사모들의 노동력 착취는 또 어떤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책임을 외면하는 풍토에 대한 고발도 심상하게 다가온다. 홍 대령의 운전병이었던 영훈이 항공대를 졸업하고 부기장이 되어 승무원이 된 유나와 만나는 장면은 참 어색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런 빽도 금전적 여유도 없는 영훈이 부기장의 자리에 올라, 노조활동을 하다가 회사에게 찍혀 정직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좀 무리지 싶다.

 

사실 소설은 유나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한 아버지 홍 대령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런 구체적 진실보다 유나의 지난 십년의 삶에 더 방점이 찍혔다고나 할까. 요지경 한국사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나열도 좋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왜 유나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를 밝혀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반성문과 따귀, 불륜 의혹 정도로 승무원 5년차 베테랑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주변에 철용이나 주한 같이 좋은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과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점도 한국사회가 얼마나 각박하게 탈바꿈하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고발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슬프다.

 

책을 읽는 동안 몰입도는 상당했지만, 결론에 가서는 허무해졌다. 어쩌면 이것도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이려나. 도보순례에 나선 유나와 친구들의 명랑쾌활한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나의 친구들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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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기자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 - 세계화가 만들어낸 멋진 신세계 탐험
귄터 발라프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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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의 유명한 저가형 할인매장 리들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지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리들이라는 회사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봤다. 최근 유통업계의 화두가 된 PB브랜드로 무장하고, 동종 업계에서 최저가격으로 승부를 거는 그런 업체였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리들이 어떻게 그런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은 부재했다. 얼마나 깊이가 없는 기사인지 바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한국의 기자들은 하나의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참으로 노력을 하지 않는구나 싶기도 했다.

 

전통적 그리고 기본적 우리의 삶을 모조리 파괴하는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힘은 상상도 국경도 초월한다. 1960년대부터 그런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들에 대한 진실을 캐기 위해,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암행취재라는 방식을 선보인 귄터 발라프가 이번에는 모두 7개의 종목에 도전한다. 처음에는 문명과 민주주의라는 꽃장식을 단 선진국 중의 선진국 독일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이 직접 흑인으로 분장하고 차별의 최전선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피부를 검게 만드는 약을 복용하고 취재를 하다가 죽기까지 했다고 하던가. 발라프 아저씨, 제발 건강까지 해쳐 가면서 취재는 하지 말아 주세요, 걱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점잖은 독일 신사들이 발라프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람선에서 당연히 맥주 서비스를 하는 웨이터로 판단하는 장면은 정말 불편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사회 곳곳에서 아예 대놓고 인종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독자는 생생하게 목격한다. 애견동호회에서도 그저 등산을 즐기기 위해 참여한 모임에서도, 바비큐를 즐기기 위해 참여한 캠핑장에서도 ‘흑인’ 발라프는 환영받지 못한다. 소위 문명세계에 산다는 1세계 사람들의 위선을 그대로 까발리는 대머리 아저씨의 한 방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의 두 번째 미션은 노숙자 체험이었다. 답답하고 꽉 막힌 독일식 관료주의는 엄동설한에 일단 사람부터 살리자는 발라프의 충언에 귀를 막고 눈감아 버린다. 어쩌면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심지어 멀쩡한 사람이 마약중독자 행세를 해서, 마약중독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수용시설에 입장해야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역시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사람들이 갱생할 수 없는 시스템은 독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자유주의 정글자본주의 시대에 그 누구도 바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예 무시하려는 태도가 사실은 개인적으로 더 무서웠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렇게 칭송해 마지 않는 하르츠4 개혁에 대해서도 독일 사람들마저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귄터 발라프의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됐다.

 

다음 타겟은 신자유주의 시대 그야말로 노다지 같은 자본의 광산인 텔레마케팅 시장 잠입이었다. 콜드 콜(cold call)이라고 해서,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무차별 전화 테러에 가까운 방식으로 콜센터에 채용된 직원들은 자신의 양심까지 팔아 가면서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린다. 문제는 그게 전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우리도 당장에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보험판매 전화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 그전에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개인정보 판매를 허용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주지의 사실이다. 마트 할인카드, 카드포인트 그리고 이벤트 응모 등등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누출된 나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콜센서 전사들은 영업에 나선다.

 

귄터 발라프는 이번에도 멋지게 변장을 하고서, 콜센터 사기 판매의 세계에 뛰어든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취재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던 복권 판매였는데 저자는 무엇보다도 콜온 같은 전화판매 회사도 문제지만,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콜온 같은 대기업의 구조를 갖춘 회사들은 쾰른투름(한국으로 치자면 코엑스 정도 비즈니스 센터) 같이 휘황찬란한 장소를 많은 비용을 들여 임대해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심는 작전을 구사한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연방 및 지방정부에서는 그런 전화 판매회사들의 구직을 장려한다. 사실 복권 판매로 단위 정부에 재정이 증대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대머리 아저씨는 기술한다. 바로 앞에서 실적을 강조하는 상사의 감시 아래, 정확한 정보 제공도 없이 거의 위협적이거나 혹은 유혹적인 온갖 방식을 동원해서 소비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다. 콜센터 직원들 역시 양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의 소비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계약에 따른 실적 보너스를 받기 위해 내 양심을 지키는 대신 사기를 치는 것이란다. 그놈의 돈이 항상 말썽이지. 그런 독일의 모습과 우리네 그것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서두에서 언급한 리들에 독일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바게뜨 같은 브뢰첸 빵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라인란트 팔츠 지역 훈스브뤼크에 소재한 바인츠하이머 형제 제빵 주식 회사의 추악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언급할 차례다. 일단 유통 공룡인 리들은 최저가 경쟁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빵 하청업체인 바인츠하이머를 악랄하게 쥐어짠다.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에서 뜨거운 철판에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말거나 리들의 관심을 오로지 저가로 제조한 브뢰첸 뿐이다. 자본의 세례를 듬뿍 받은 금수저 사장 바인츠하이머의 베스터호르스트만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자사의 노동자들을 엄중하게 감시하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바인츠하이머 같은 회사들은 독일 헌법이 규정하는 노동자 보호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무자비한 생산속도와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리들과의 계약 위반으로 물게 될 위약금이 그리고 노후화된 시설을 교체할 비용이 아까워서 일자리가 궁한 노동자들을 사납게 몰아붙인다. 아니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브뢰첸이 목으로 넘어갈까 싶다. 이런 악질 기업은 망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현장에서의 상황이 이럴진대, 누가 도대체 반기업정서를 부추기고 있는지 그 잘난 입으로 떠들어 대는 국회의원에게 묻고 싶다. 리들에 대한 다른 기사에서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서 최저가 경쟁신화를 이루어냈다고 기자가 쓰고 있는데, 리들 같은 유통공룡 기업들이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생산과 유통에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비용마저도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대머리 아저씨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바로 스타벅스다. 그런데 이번부터 나머지 세 꼭지는 자신이 직접 암행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내부 식민지인들’의 내부고발, 제보와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고객친화적인 업체라는 모토를 가지고 고객을 응대하는 스타벅스는 커피/에스프레소를 파는 곳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고급화된 커피전문점이라는 이미지를 파는 곳으로 변신했다. 시애틀에서 출발해서 세계 커피 제국으로 성장한 스타벅스는 공정무역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제국의 수장 슐츠 회장과 주주들의 수익을 위해 일하는 일개미들을 원할 분이다. 하워드 슐츠 제국은 세분화된 다양한 직군으로, 부유한 도심 주변에 잇달아 같은 스타벅스 매장을 내면서 무시무시한 카니벌리제이션(자기시장잠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교육시간에는 당연히 임금이나 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노동착취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은 이제 기본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커피재배 농민들과 브랜드 전쟁을 한 것은 철저하게 숨기고, 달랑 5% 가량 공정무역 거래를 하면서 양심적인 기업이라는 선전에 나서는 게 바로 스타벅스의 오늘이다. 이래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겠는가.

 

독일철도주식회사(DB)의 민영화 과정에서 드러는 천태만상에서는 지난 MB정부 시절 보고 들은 한국의 철도민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기도 했다. 정부의 핵심기간 산업이기도 한 철도사업을 오로지 민영화했다가 낭패를 본 나라들이 어디 한 둘인가. 특히나 수익이 나는 구간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곳에 지원해야 하는 게 철도사업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KTX 사업을 민영화하는데 그토록 공을 들인 지난 정권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였다. 일시적으로 가격이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철도운영에 있어 중요한 안정을 위한 기본 정비도 무시하면서까지 비용절감에 의한 수익추구가 어떤 결과를 불러 올지 진정 몰랐단 말인가. 대형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열악한 상황으로 치달은 독일철도에 대한 기사들이 등장한다.

 


6번째 이야기까지 독일 국내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노동착취에 대한 리포트라고 한다면 마지막 장은 탐욕스러운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연대를 구축한 노조 혹은 경영협의회를 파괴하는데 고용주의 입장에서 부역한 유능한 변호사들에 대한 고발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헬무트 나우요크스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기업의 노조파괴 전문가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인사로, 자신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기업경영에 눈엣가시 같은 인사들을(그들을 기생충이나 쥐로 부른다) 모빙(직장 내 따돌림)으로 솎아내는 최신 기술을 천유로씩이나 받는 유료 세미나(부가세는 별도다)를 통해 고객들에게 전파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인사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으며, 오로지 6자리 숫자의 성공보수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절대 해고할 수 없는 이들을 해고하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어때 듣기만 해도 솔깃하지 않은가.

 

일단의 변호사들은 경영협의회의 리더들을 타겟으로 해서 갖자기 공작과 음해를 마다하지 않는다. 감시의 상시화는 물론이고, 해당 직원 동물 포르노그래피를 업무 시간에 중에 보았는 소문을 퍼뜨려 평판을 떨어뜨리는 작업시작해서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사찰까지도 감행한다. 그들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도 나우요크스 같은 변호사 무리를 고용해서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사실 이런 송사들의 목적은 금전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신적 쇼크와 육체적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사들의 공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귄터 발라프는 이 책에서 정말 가감 없이 그대로 고발한다.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를 읽다가 자주 만나게 되는 하르츠4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롤모델로 항상 입버릇처럼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독일의 위대한 노사정 대타협이라며 선전하던 하르츠4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정부와 자본(기업)은 항상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요구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독일식 하르츠4 개혁에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폐기하고, 해당 개혁을 주도했던 사민당(SPD) 내부에서도 50만원 남짓한 실업급여가 아닌 15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우리의 헤르메스님이 주창한 기본소득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선구자는 역시 다르구만 그래.

 

하르츠4를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정작 하르츠개혁의 본질을 모른 채, 규제완화와 저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해내고 실질적 복지축소를 가져온 피상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하르츠개혁으로 만성적 실업율을 획기적으로 축소시킨 건 사실이지만, 반대급부로 고용안정과 복지확대가 역진하고 있는 부정적 현상이 발생했다. 당시 생산된 다수의 미니잡이 안정적 일자리가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기업가와 정치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닌가 말이다. 독일 경제회생의 비밀은 유로통합으로 유럽경제를 사실 좌지우지하게 된 독일의 통화 가치 절하였다. 경쟁국들에 비해 고품질의 기술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독일의 강소기업들이 유럽경제를 제패하게 되었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내 보수언론들에게는 하르츠개혁의 실체보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발생한 노동 유연성이 쓸모없는 일자리를 늘렸다는 가시적인 수치와 구호만이 중요하니 말이다.

 

책의 뒷꼭지에 실린 강수돌 교수의 글은 이미 책을 읽다가 독일 내 이주노동자 문제와 하르츠개혁에 대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만났던 글들인지라 반가웠다. 인권선진국이라는 독일에서도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이럴진대 한국의 경우는 어떤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그의 주장대로 한국에서도 노동전문법원이 생겨서, 항상 강자가 이기는 진부한 장면 대신 연대한 다수의 약자들이 부당한 대우과 편견을 깨고 이기는 장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아울러 발라프 같은 책임감 있고 용감한 저널리스트의 등장도 기대해 본다. 그가 지난 40년 동안 신념을 가지고 보여준 그동안의 노고에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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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29 20:08   좋아요 1 | URL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한국에도 기자학교가 있어서 저널리즘
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에 대해
교육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풍선인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찬호께이.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다. 홍콩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추리소설 작가로 변신해서 작가 활동 중이라는 프로필 소개를 읽는다. 찬호께이의 한자 이름을 읽어보니 진호기로구나. 진호기 씨의 <풍선인간>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진 킬러다. 딱히 그를 지칭하는 이름은 없다, 세간에 알려진 코드명 풍선인간 뿐.

 

탁월한 실적을 자랑하는 킬러 풍선인간은 어떤 점에서 보면 안티히어로다. 아니, 갑자기 덱스터 생각이 나는 거지. 악당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덱스터를 악당의 범주에 넣어야 했던가. 선과 악의 구분조차 헷갈리는 21세기 문학판에 풍선인간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일단 이 킬러는 접촉만으로도 상대방을 심근경색으로 죽일 수 있다. 어쩔 땐 그야말로 산산조각을 내기도 한다. 영화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장면처럼 피해자의 목을 360도 회전시켜 죽이기도 한다. 더 놀라운 건, 죽는 시간도 타이머처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흠, 정말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로군.

 

평소에 보면 보통 이하의 체력을 가진 남자지만, 풍선인간은 이런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을 이용해서 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의 서식지는 교외의 외딴 단독주택이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는 재택근무를 한다는 말로 적당이 둘러친다. 문제는 이웃에 동업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바로 경계모드에 돌입한 풍선인간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솜씨를 총기를 사용하는 이웃을 가볍게 제압한다.

 

아, 그전에 원래 풍선인간의 탄생을 다룬 작품도 마땅히 이 책에 실렸어야 했지만 그놈의 저작권 문제 때문에 싣지 못했다고 한다. 그건 마치 마블 태생의 스파이더맨이 소니 픽처스에 영화 판권이 팔려 그동안 어벤저스에 합류하지 못하다, 소니의 양해를 얻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두 번째 이야기는 비몽사몽 간에 졸면서 읽어서 무슨 내용이었더라 싶다. 이래서 모름지기 책은 맑은 정신에 읽어야 하는 법인데. 거싱이 형사와 대결하는 장면이었는데 좀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패스!

 

3번과 4번 소설에서 진호기 씨는 자신이 가진 단편소설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이 작가는 무수한 떡밥을 사전에 깔아둔다. 장편도 제법 쓰는 모양인데,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정확하게 타겟을 공략하는 단편쓰기를 선호한다지 아마. 풍선인간의 사건 의뢰는 재벌가의 세 번째 부인이자 글래머 여자스타 출신 딩제원으로부터 제안된 것이다. 자신의 남편이 아무래도 자기보다 전처 소생의 십대소녀 궈치란을 더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녀를 제거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풍선인간은 그전에 이미 사건을 하나 의뢰받았다는 밑밥을 좍 깔아둔다. 아무래도 후반의 반전을 도모하는 낌새가 느껴진다.

 

남편이 암으로 곧 죽을 처지인데, 남편의 사랑이 딸이 아닌 자신에게 온전하게 돌아와야 한다며 그야말로 사랑에 목숨을 건다. 물론 남편이 죽은 다음에 스텝도터와 나누어 가져야 할 막대한 유산은 보너스다. 그런데 풍선인간은 기묘하게도, 대개의 경우 킬러들이 요구하는 선금이나 보수 대신, 딩제원과 하룻밤을 자고 싶단다. 이런 응큼한 킬러 같으니라구. 결국 너도 다른 놈들과 다를 게 없었구나. 딩제원은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예전에 영화계 스타가 되기 위해 썼던 방법을 수용한다. 자자, 그렇게 흥분하시진 말고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 읽어 보시라. 대단히 재밌으니.

 

마지막에 배치된 <마지막 파티>는 타임테이블을 교묘하게 꾸민 진호기 씨의 능청맞은 작법이 그야말로 독자의 뒤통수에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임대업으로 은퇴 후, 소일하는 할아버지네 집을 찾은 귀여운 손녀손자 전전과 샤오바오는 바로 이웃집에 사는 새로운 도시전설 풍선인간과 조우하게 된다. 그의 본명이 아청이었던가. 눈 빠른 독자라면 그가 자신의 업계에서 통용되는 실명을 집주인 어르신에게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겠지. 예상대로 탐정놀이에 흠뻑 빠진 두 꼬맹이와 집주인 어르신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냉혹한 킬러 풍선인간은 세 가족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해치울 것인가.

 

대머리 아저씨의 골치 아픈 신자유주의 전쟁을 읽다 만난 저지 코진스키의 <정원사 챈스의 외출>과 진호기 씨의 <풍선인간>은 그야말로 한 사발의 청량음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항상 독서가 진지근엄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때로는 요렇게 가볍고 발랄한 스타일의 책들도 읽어 주어야 독서라는 장거리 달리기가 훨씬 더 즐겁고 뭐 그런 게 아니겠는가 말이다. 일단 무엇보다 재밌으니 한 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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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29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이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저자의 <13.67>이란 소설로 이다혜 기자가 골라온 책으로 기억하는데 엄청 칭찬을 하더라구요.
두꺼워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찜만 해두었는데... 이런 단편집이 있다니... 요것부터 읽어봐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8-08-29 13:46   좋아요 1 | URL
오호 그렇군요.

전 어제 받아서 바로 다 읽었는데 상당히
갠춘하더라구요. 요런 스탈 아주 마음에
듭니다.

발라프 아저씨 책 읽으면서 신자유주의
만행에 대해 분노하다가 읽으니 상큼한
그런 느낌이랄까요.

빨책은 요즘 거의 안 들어요. 너무 수다가
많아서리. 예전에 즐겨 들었었는데 말이죠.
책 이야기에 좀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정원사 챈스의 외출
저지 코진스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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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단의 이단아 저지 코진스키의 <정원사 챈스의 외출>이 발표된 해는 1970년이다. 미국적 질서로 세계가 좌지우지되던 시절이 저물고 있던 그런 시절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인공 챈스/촌시 가디너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린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에 나오는 검프처럼, 촌시 가디너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타의에 떠밀려 정상에 오르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와 말들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다시 한 번 침묵이 금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어르신(Old Man)의 휘하에서 수십 년 동안 정원을 가꾼 챈스(chance)에게 우환이 닥친다. 바로 어르신이 돌아가신 것이다. 고아이고 지능마저 부족한 챈스에게 어르신의 정원이야말로 세상의 풍파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방파제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문제는 어르신이 챈스에게 어떤 ‘기회’도 부여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챈스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고, 오로지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상의 정보들과 만날 뿐이다. 어르신의 돌아가신 뒤, 등장한 변호사는 그에게 고용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거명령을 내린다.

 

정말 백지 같은 과거를 지닌 챈스는 어르신의 가방에 어르신 옷가지 몇 개를 챙겨 갈 곳도 없는 상태로 길을 나선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항상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미소를 짓는 법, 미국제일금융의 이사장 부인 엘리자베스 이브(이하 EE로 표기) 랜드가 탄 차에 교통사고를 내면서 우리의 늠름한 주인공 챈스-EE에 의해 촌시 가디너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는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낼 수 없는 과거의 소유자 촌시 가드너는 EE의 남편으로 죽어가고 있는 벤저민 랜드에게 그 능력(무슨 능력?) 인정을 받아 미합중국의 대통령과 대면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상황에 대한 자문을 해주게 된다. 아니 글도 모르는 문외한 촌시 가디너가 무슨 경제문제에 대한 심오한 해결책을 제시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 더 이상 겸양이 아닌 시절에, 자신이 가꾸어온 정원의 식물에 대한 비유로 그야말로 한 방 세게 터뜨리면서 촌시 가디너는 일약 미국제일금융 이사장과 대통령의 경제고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EE마저 촌시를 사랑하게 되면서, 촌시는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성공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촌시 가디너라는 미지에 인물에 대해 매스컴에서는 한껏 뻥튀기를 하고, EE의 도움으로 각종 파티에 출입하면서 촌시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한다. 당시 미국과 대결구도에 있던 소련 대사 스크라피노프에게 러시아 어까지 할 수 있는 지적인 인물로 인정받고, 프랑스와 독일 대사에게도 호감을 얻고 텔레비전 방송에까지 출연하면서 단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 버린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왠지 모르게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그리고 영화 <광해>가 떠올랐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촌시에게 육탄공세를 퍼붓는 장면과 미국 대통령과 소련 대사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도 촌시 가디너의 과거를 파헤칠 수 없게 되자, 스크라피노프 대사 “누구한테 약을 팔아”라며 외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폴란드 출신 저자 저지 코진스키식 블랙유머라고 해야 할까. 글도 모르는 촌시에게 출판업자가 달라 붙어서 책을 한 번 써보자는 제안도 또 어떤가. 미국식 성공방정식의 판박이 같은 재현이라고 해야 할까.

 

어리석은 독자는 소설의 후반에서 급부상한 촌시 가디너의 추락을 예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내러티브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저지 코진스키는 그런 방식을 배척한 모양이다. 촌시의 의도하지 않은 신비주의로 무장한 침묵은 그를 부통령 노미네이션까지 밀어 붙인다. 후속작이 있다면 어떤 스타일로 전개가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포레스트 검프의 성공이 미국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에 대한 유쾌한 풍자였다면, <정원사 챈스의 외출>은 그야말로 원제가 그려내듯이 <Being There>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촌시 가디너가 모든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도 역시나 저자가 의도한 고도의 풍자가 아니었을까. 촌시 가드너의 행동 준거의 근거는 모두 텔레비전에 방송된 것에서 유래한다. 그런 점에서 촌시가 아주 지능이 떨어지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단지 반응이 느린 탓인가? 모든 일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촌시 스타일로 진행하는 게 삶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발표된 지가 48년이나 돼서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흥미로운 독서였다. 피터 셀러스 주연으로 1979년 원제 <Being There>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해서 유튜브로 영화 트레일러를 찾아 봤는데, 역시나 무표정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 촌시 가디너의 모습이 제대로 그려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화는 구할 수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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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블루레이] 포레스트 검프 (2disc: 4K UHD + BD)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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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가 내리는 주말, 우연히 포레스트 검프를 보게 됐다. 물론 정주행한 건 아니고 그냥 대충대충 돌려봤다. 오래 전에 이 영화를 참 보고 싶어했었지 아마. 어떤 이들에게는 천조국으로 떠받치는 미국의 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 철부지 시절, 어쩌면 미국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던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때라 그랬을까나 어쨌을까나 싶다.

 



이야기의 시작은 1981년.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버스정거장 벤치에 앉아 그놈의 지긋지긋한 초콜릿 타령을 하면서 낯선이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나 공짜 이바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게다가 그 이야기가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검프의 고향 알라바마 그린보로 1956년으로 플래시백은 관객을 인도한다. 다리가 불편하고, 지능도 조금 모자란 친구 검프는 학교에 등교하자 당연히 또래 꼬마들에게 놀림감이 된다. 오로지 그의 편에 서준 친구는 바로 평생의 연인이 된 제니였다. 운명적 사랑의 시작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검프의 제니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 그리고 미국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괴롭히는 꼬마 악당들로부터 달려서 도망치라는 그 유명한 대사, “Run, Forrest, Run!"이 등장한다. 검프의 현대사 개입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검프의 희한한 다리 동작을 보고 그걸 춤으로 승화시킨 프레슬리가 ‘펠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미국 록음악계를 장악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달리는 재주 하나만으로 1963년 알라바마 대학 풋볼팀의 러닝백이 되어 대학 학사증도 검프는 획득한다. 이 자식, 진짜 운이 하늘을 찌르는군. 전설적인 대통령 JFK과 만나는 행운도 얻게 되고. 우연은 검프를 1967년 베트남전으로 인도한다. 이역만리 전장에서 만난 흑인 전우 버바는 만날 새우산업 타령만 해댄다. 동시에 자신의 상관으로 조상 대대로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장에서 전사자를 낸 테일러 집안의 댄 중위님도 만났지 아마. 베트콩의 매복에 걸려 중대원들이 몰살할 위기에서 자신의 달리기 재주를 발휘해서 동료들을 구해낸 검프는 엉덩이에 총알을 맞는 상이용사가 되고, 그 공로로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는다. 상이용사 시절 배운 핑퐁으로 전국을 돌며 자신의 신기에 가까운 탁구 기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대표팀의 일원으로 막 수교한 중국에 파견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아 그전에 LJB 면전에서 부상당한 부위인 엉덩이를 까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에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제니와 수차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1960년대 전형적인 히피 생활을 즐기던 제니에게 검프는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런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 틈에 워터게이트 사건을 목격한 검프의 제보로 결국 거짓말쟁이 닉슨은 사임하기에 이른다. 전역한 뒤에는 버바와 약속한 대로, 탁구 광고로 번 돈을 밑천 삼아 새우산업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새우잡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두 다리를 잃은 댄 중위가 합세하고 허리케인 카멘이 다른 새우잡이 배들을 부수면서, 버바 검프 새우 회사는 그야말로 최고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버바와 약속을 지키고, 버바 가족에게도 버바 몫의 배당을 해주면서 그야말로 백만장자가 된 검프는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그린보로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임종을 마친 검프는 제니도 곁에 없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아, 그전에 버스정거장에서 검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사는 그런 허풍은 처음이라는 말을 하며 그의 곁을 떠난다. 나중에 온 레이디에게는 포천 지에 실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말이 절대 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댄 중위님이 무슨 과일회사에 투자를 해서 평생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도 따라 붙는다. 그가 과일회사라고 생각하는 회사는 그 유명한 “애플” 컴퓨터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만 그래.

 



그 뒤 제니와 다시 만난 검프. 하룻밤을 지내고 제니는 다시 검프의 곁을 떠난다. 모든 것에 회의를 느낀 검프는 미대륙을 달리는 기행을 시작한다. 도중에 그에게 영감을 위해 따라 붙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달리는 가운데 그에게 영감을 얻은 이들이 광고문구 “Shit Happens"와 스마일리 캐릭터로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정말 미국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기회는 사방에 널려 있으니 딴 생각하지 말고 그저 거두기나 하라는.

 

그리고 오늘 검프는 제니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 버스정거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평생 사랑 제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검프는 단 걸음에 그녀에게 달려가고 자신의 아들 포레스트 주니어(Haley Joel Osment, 식스 센스의 그 영민한 소년이 바로 포레스트 검프 주니어였다니 놀랍다!)와 만난다. 그리고 아마도 에이즈로 추정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제니는 검프와 결혼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다. 검프와 주니어의 삶은 그리고 계속된다, 바람에 정처없이 흩날리는 깃털을 타고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세계대전 후, 미국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검프와 제니의 사랑이라는 줄거리에 녹여냈다. 로큰롤은 전전세대와 베이비붐 세대를 가르는 결정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몸이 불편한 친구 검프에게 ‘불링’을 해대는 꼬마 악당들의 이미지는 동남아시아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싸운 미국와 베트남전쟁에 앞선 프리뷰 같은 이미지였다고나 할까. 검프가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의 괴롭힘을 자력으로 이겨낸 것처럼 명분 없는 전쟁에 뛰어 들었던 미국 역시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에 지고 말았다.

 

1960년대 세계평화를 주창하는 히피세대의 등장, 반전시위 등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한 때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던 미국 경제는 세계 각지에 치러야 하는 전쟁을 위한 막대한 전비 조달 문제와 서독이나 일본처럼 전후에 부흥한 신흥경제국들과의 치열한 무역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는 그런 세계적 흐름을 짚어내면서 그들이 그렇게 신봉해 마지 않는 미국적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검프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말이다. 지금 들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그런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는 닉슨의 워터게이트로 모두 과거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 전 국민을 상대로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고, 탄핵과 사법적 처리대상이 되는 위기에 처하자 권력을 이용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리지 않았던가. 수십 년 뒤, 미국 시민들이 접한 클린턴의 거짓말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미국 사회는 워터게이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어떤 교수님을 말씀하셨었지. 그나마 부정한 권력의 개입에 맞서 싸운 용감한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미국적 가치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트럼프와 진정한 저널리스트라, 어쩐지 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내 눈에는 보인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CNN이나 NYT를 찌라시로 매도하는 모습은 거의 개그에 가까워 보인다.

 

한편 전장에서 새우사업에 미친 버바의 사업구상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제대한 뒤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또 어떤가. 검프라는 개인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신화창조를 위한 일종의 주작질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식언을 밥 먹듯이 하고, NATO와 터키 처럼 수십년된 동맹을 단기간의 국가 이익 때문에 뒤흔드는 외교의 이단아 입에서 나오는 말이 국제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 죽어 버린 사업 파트너 간의 약속을 지키는 검프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그런 약속 따윌랑은 댕댕이에게나 줘버려라고 외치는 매드맨이 있으니, 참으로 오락가락하구나.

 

무엇보다 모든 성공은 금전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나는 불만이다. 검프는 탁구를 치면서, 탁구채 광고로 사업 밑천을 장만했다. 2만 달러 정도 되는 돈으로 새우잡이 배를 사고, 급습한 허리케인 덕분에 제니 호를 12척이나 장만해서 버바 검프 쉬림프를 동종 업계 최고의 회사로 키우는데 성공한다. 한 때 자신의 상사였던 댄 중위님은 사업에는 문외한인 검프 대신 전문경영인이자 투자자로 변신해서 이번에는 IT 산업계의 리딩컴퍼니가 될 애플에 투자를 시작한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달린 셈이 아닌가.

 

달달하면서도 감동적인 제니와의 러브스토리를 밑바탕으로 깔고, 신자유주의 시대 미국적 질서와 역사를 공공연하게 전달하는 <포레스트 검프>를 보자니 그야말로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역시나 재밌긴 하지만 비판적 시선과 감상이 필요한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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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27 13:39   좋아요 0 | URL
정말 한 시절들을 풍미한 노래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무비클립을 찾아 보니 막 달리기
시작하기 전에 신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
가 눈에 들어오네요. 아 PPL !

with no particular reason, I kept going.

카알벨루치 2018-08-27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영화가 좋은것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ㅋㅋ

레삭매냐 2018-08-27 14:49   좋아요 1 | URL
oldie but goodie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