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사 10 : 삼국시대 이중톈 중국사 10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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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티드 드럼>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한 권만 달랑 빌리는 게 좀 아쉬워서 서가를 거닐다가 이중톈 선생의 <삼국시대>를 발견했다. 내가 또 삼국지라면 또 사족을 못 쓰지. 자그마치 36권 중에 1/3 지점 정도를 달린 모양이다. 분량도 적고 해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저자는 우리가 삼국시대에 대한 상당 부분이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연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주지시킨다. 삼국연의에서 다루는 가장 핵심 코드는 바로 충의다. 중국 민중은 예로부터 성군과 청관을 꿈꾸어왔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정말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그래서 협객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대중의 판타지에 편승했다. 현실이 괴롭다면, 그런 환상이라도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중국사를 대변하는 삼국연의가 동아시아 세계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서 아직까지도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톈 작가는 계급주의적 시선에서 시대의 흐름을 조망한다. 진한시대의 귀족지주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사족지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평민계급 중에서 전문 관료 집단으로 상징되는 사족지주 계급은 동한 말,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시작된 천하대란 시절을 맞이한다. 사세삼공 명문가문 출신의 본초 원소는 환관과 외척 세력을 주살했지만, 서량의 동탁이라는 늑대를 도성으로 불러들이는 치명적 실수를 범했다. 어린 황제 유변을 폐위시키고, 진류왕 협을 헌제로 옹립한 동탁은 자신에게 비판적이긴 했지만, 사족계급을 경계하면서 전횡을 휘둘렀다. 이런 동탁과 달리 처음부터 사족계급을 경멸한 난세의 간웅 조조는 처음부터 부상하는 새로운 사족계급과 같은 배를 탈 수가 없는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조조는 위공 그리고 위왕을 거치면서 한나라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추구했지만, 끝까지 찬탈자의 오명은 쓰지 않았다. 다만 후계자 조비가 선양이라는 방식으로 헌제를 폐위시키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동탁에 반대하는 관동 기의의 선봉으로 역사의 무대에 나선 조조는 둔전제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군사와 농사를 병행하는 제도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전란의 시대, 병사들을 먹이는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조조보다 앞서 북방을 제압한 조조와 원소의 경쟁은 관도대전으로 결판이 났다.

 

조조는 한황실을 대신하는 새로운 제국의 건설 대신 법가적 서족정권이라는 웅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시대정신에 비해 너무 이른 시도가 문제였을 따름이었다. 서족정권의 시대는 수당 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원소는 조조 같은 이상 대신 시류에 따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었다. 이런 집단이 압도적인 무력에도 불구하고, 조조에게 패하는 건 시간문제였을 따름이다.

 

중원에서 조조와 원소가 그렇게 자웅을 겨루었다면, 남방에는 강동의 손권이 있었다. 그리고 나이 오십줄이 되도록 근거지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던 유비가 형주자사 유표의 그늘에서 버티고 있었다. 훗날 중원의 위나라, 강동의 오나라 그리고 서촉의 촉나라로 구성되는 삼국시대 정권은 모두 비사족정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위나라와 촉나라와 달리 오나라는 외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강동의 사족집단을 포용하면서 역설적으로 삼국 중에 가장 오래 정권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촉나라는 끝까지 세 개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지배계급을 공평하게 대우하지 않으면서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위나라의 침공보다 내부의 기존 익주집단의 분탕질이 망국의 가장 주된 요인이라는 점을 저자는 냉철하게 꼬집는다. 위나라의 침공 앞에서 후주 유선에게 오나라에 나라를 바칠 게 아니라, 대국 위나라에 나라를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초주의 경우를 보라. 나라 따위야 상관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계급 유지에 연연한 모습에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촉한 선주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도 삼국연의에서 다루는 것과 상당 부분이 다르다는 점도 이중톈 저자의 주장이다. 적벽대전으로 조조의 남하를 막아내고, 공명이 유비에게 설파한 융중대를 실현한 유비 집단은 형주의 수비를 관우에게 맡기고 파촉정벌에 나선다. 이후 유비의 왼팔과 오른팔은 방통과 법정이었다. 유비가 관우의 무모했던 양번전쟁으로 형주를 상실하고, 복수전인 이릉대전에 나설 때가지 공명의 모습은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후계 문제와 나라까지 통째로 공명에게 맡긴 유비의 선택이야말로 무수한 실책이 난무했던 선주 유비의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노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자룡의 유비에 대한 충절과 신기에 가까운 전장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관우-장비-마초-황충과 같은 일등급 예우를 해우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이다. 연의에 나오는 오호장군 중에 조운의 자리는 없었다. 촉한은 처음부터 위기의 정권이었기 때문에 내환을 다스리기 위해 공명은 이릉대전 패전 이후,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나라만을 상대로 북벌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중원에 비해 절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력을 가지고, 다섯 차례나 되는 북벌을 시도한 것이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합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망국의 군주 후주 아두 유선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멍청한 군주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명의 사후, 장완과 비위를 중용해서 국가경영을 한 점을 보라. 비록 나라는 망했어도, 항복해서 낙양으로 간 뒤 위나라의 뒤를 이은 진나라 시절까지 살해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점만으로도 한 때 천자였던 후주의 처세술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중톈 작가는 삼국시대의 전반부는 노선 투쟁이었다면, 후반부는 삼국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었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사실 시대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는 시대일 수도 있었지만, 나관중의 연의라는 문학적 첨가제가 듬뿍 뿌려지면서 실제 이상으로 대중에게 읽히게 되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에 다음 순서인 11권 위진풍도가 없던데,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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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4-15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케이블에서 이중텐작가의 삼국지 강의를 듣는데 새로운 시각으로 삼국지를 조명해서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책이 나왔는지는 몰랐네요.한번 읽어봐야 되겠네요^^

레삭매냐 2019-04-15 17:34   좋아요 0 | URL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가 진짜 강의로도
있는 모양입니다.

한 번 보고 싶군요. 지금 막 유튜브로 찾아
보니 있네요 :> 책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
겠죠.

카스피 2019-04-16 08:0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TV강의 형식이다보니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눈과 귀로 보고 듣다보니 머리에 쏙쏙 강의가 들어오는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9-04-15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으로 알려진 삼국지연의의 관점이 아닌 삼국지의 경제적, 정치적 해석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레삭매냐 2019-04-15 17:36   좋아요 1 | URL
오함 선생의 <주원장전>처럼 마르크스
주의에 입각해서 원명 교체기를 민족
해방전쟁의 시각으로 보는 그런 느낌
일까요?

말씀해 주신 대로, 색다른 시선에서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리브로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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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 전환기에 한 기회주의자가 살았다. 중국 역사에 풍도가 있었다면,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는 그에 비견할 만한 인물인 조제프 푸셰가 있었다. 선원집안 혹은 슈테판 츠바이크에 따르면 잡상인 집안 출신의 푸셰는 십여 년간 오라토리오회 소속의 사제교사였다. 비열한 기회주의자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격변의 시절을 뛰어넘은 변절과 배신의 귀재였다. 모름지기 역사는 영웅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츠바이크가 쓴 푸셰의 평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같은 난세야말로 푸셰 같이 파렴치한 철면피 같은 인물들에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의 순간들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그에게 츠바이크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부르봉 왕가를 정점으로 하는 프랑스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계급간의 원활한 통로가 원천 봉쇄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회적 사다리에 오르지 못한 유능한 다수 평민들의 분노가 치솟았고, 둑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역시 평민 출신이었던 조제프 푸셰는 유일하게 평민들에게 열려 있던 성공의 기회였던 교회 조직, 오라토리오회 소속의 교사로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라틴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평생 그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근면과 엄격한 자제력을 습득하게 된다. 그는 진정한 절제의 화신이었다. 바로 이런 덕목이야말로 세기적 전환기에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본능적 직감으로 다음 직업으로 정치인을 선택한 푸셰는 고향 낭트를 대표하는 국민의회 의원으로 프랑스 역사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화주의 신념이 아니었다. 오로지 승자 혹은 다수의 편에 서서 자기생존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정치활동 초반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낭트 사람들의 성향을 대변하는 온건 지롱드파의 일원이었지만, 루이 16세의 처형 표결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국왕 시해자’라는 오명과 함께 기회주의적 일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푸셰의 이런 성향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아라스 출신 변호사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의 엄격한 도덕주의 그리고 청렴거사로서의 면모와 전혀 맞지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와 한 때 의형제 사이기도 했고, 누이동생 샤를로트와 약혼을 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 둘은 태생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푸셰의 악명을 프랑스 혁명 전국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이전 교회 약탈자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혁명 초기 가장 위급했던 리옹 반란을 진압한 뒤 보복임무를 띠고 파견의원의 신분으로 리옹에서 그가 했던 일이었다. 산탄 난사라는 기발한 방식으로 자그마치 2,000명에 달하는 반혁명분자들을 처형하면서 “리옹의 대량학살자”라는 원치 않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반혁명 기도를 성공적으로 분쇄한 점은 당시 공포정치를 선도하던 공안위원회에게 인정을 받았다.

 

자 이제 푸셰가 세계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오를 워밍업이 끝난 셈이다. 당대 최고 권력자 로베스피에르와의 대결에 앞서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그가 발표한 급진적인 공산주의 훈령(1793년)은 혁명의 반동세력과 유산계급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훗날 프랑스에서 막대한 재산을 이룬 자본가이자 수많은 밀정을 부리는 경무대신으로 변신하게 될 푸셰가 과연 아무리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못할 짓이 없었다는 혁명 시기에 이런 공산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공화국 혁명수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로베스피스에르, 당통 그리고 마라 같은 혁명가들과는 달리 푸셰는 언제나 자신의 안위만을 염려했기에 이번에는 급진적 자코뱅당원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모사꾼다운 특유의 권모술수를 동원해서 로베스피에르에게 밀려나게 되지만, 자코뱅 클럽 총재로 선출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푸셰의 다음 타깃은 바로 혁명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던 로베스피에르였다. 오만불손한 독재자이자 청렴거사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언행은 많은 이들을 그의 적으로 만들었다. 혁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로베스피에르나 당통 혹은 마라 같은 혁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공화국의 대의를 위해 자신처럼 살라는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제자 생쥐스트와 쿠통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다만 공포의 단두대 칼날이 번뜩이는 동안, 반대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바로 이런 공간 속에 음모의 괴수 푸셰의 감언이설이 침투해 들어왔고, 푸셰는 한껏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훗날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불리게 되는 탈리앵, 바라스 그리고 부르동의 탄핵의 무대감독으로 맹활약을 펼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츠바이크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사실 역사에는 총무대감독 푸셰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역사에 드러나지 않는 푸셰가 연출한 반역의 연대기를 논리적 추론으로 재구성한다. 어이없게 진행된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탄핵과 그의 죽음으로 영웅적 혁명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폭군의 죽음에 파리 시민들은 예전에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의 경우처럼 환호했고, 반동 세력이 전면에 등장해서 수많은 피를 흘리고 진행된 혁명의 과실은 간상배와 모리배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단 말인가?

 

한편, 푸셰는 자신의 정치적 변신을 거듭할 때마다 항상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쇼메트와 콜로 데르부아, 바뵈프 그리고 훗날에는 탈레랑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신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 수년 간 정치에서 배제되어 원하지 않던 유배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절은 푸셰에게 혹독한 가난과 빈곤으로 점철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5인집정관 대표선수였던 바라스에게 픽업되어 이번에는 그의 밀정/사설탐정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푸셰에는 정치적 재기를 위한 신의 한수였다.

 

음모의 괴수이자 변절의 달인, 철면피 같은 기회주의자였던 푸셰는 정보가 권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 아울러 권력이 돈을 창출하고, 다시 돈이 권력을 만들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수제자답게 비로소 권력의 속성을 깨달았다. 그의 배신이 어디 한두 번으로 끝났던가? 바라스의 밀정으로 최고 권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코르시카 출신 포병중위 보나파르트에게 이번에는 줄을 대기 시작했다. 혁명기의 혼란을 일축할 수 있는 무력을 보유한 강력한 군대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푸셰의 정치적 오성이 감지해냈다.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기도를 모를 리가 없었던 경무대신 푸셰가 오히려 미래의 황제의 음모를 묵인하고 조장했다. 푸셰의 우군 중에는 미래의 황후 조세핀이라는 거물도 있었다.

 

푸셰의 보이지 않는 조력으로 프랑스 최고 권력을 얻는데 성공한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푸셰를 신뢰하지 않았다. 과연 천재는 인물을 알아본 모양이다. 그리고 아니 천하의 푸셰가 코르시카 촌뜨기에게 무슨 이유로 충성한단 말인가? 아무리 나폴레옹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푸셰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독재자는 푸셰에게 막대한 자금을 주는 것으로 그를 현직에서 조용히 은퇴시킨다. 막대한 자금과 봉토를 하사받은 푸셰는 자신의 영지에 조용하게 은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당시 정계에 복귀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결국 제위에 오르고 싶어 하던 나폴레옹에게 꼭 필요했던 인재인 푸셰는 경무대신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한다.

 

자 항상 대세에 편승해왔던 기회주의자가 이번에는 전 유럽을 호령하는 황제에게 진정한 충성을 맹세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기묘한 주군과 신하 사이에는 전혀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상호간의 필요에 의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 천재 황제는 장기판의 또 다른 말인 귀족출신 외무대신 탈레랑을 이용해서, 개와 원숭이 사이 같은 두 대신으로 하여금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면서 정국을 이끌어 나갔다. 다만 견원지간의 두 대신이 자신을 적으로 삼는다는 가정은 없이 말이다. 자신이 스스로 별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니 전설이 되고자 했던 나폴레옹은 이미 혁명의 계승자였던 시절을 끝장내 버렸다. 자신만의 끝없는 전쟁에 수많은 프랑스 청년들을 동원하면서 그에게 환호하던 대중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족에게 왕관을 주기 시작한 가장 의미 없었던 1808년 스페인전쟁의 책임을 탈레랑에게 돌리는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몰락의 전조가 보였다. 그리고 예리한 촉의 보유자 푸셰가 이것을 몰랐을 리가 없겠지. 다시 한 번 배신의 계절이 예고된다.

 

나폴레옹이 제위에 올라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국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천재황제에게 보고도 없이 단독강화를 했다가 다시 직위에서 해임되는 불운을 맞기도 한다. 독재자 나폴레옹 역시 러시아 원정에서 전 유럽을 호령했던 60만 대군 가운데 정예병사를 날카로운 얼음의 칼날 앞에 잃어버리고 마침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푸셰가 가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의 정보망을 동원해서 나폴레옹의 몰락을 예견하고 루이 18세에게 권력을 넘기려는 공작을 시도한다. 도대체 이 남자의 변신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로지 권력만을 향하는 해바라기 같은 스타일이 바로 푸셰의 종착점이 아니었을까.

 

제정과 부르봉 왕가의 복귀라는 도박판에서 타고난 도박꾼 푸셰는 루이 18세에 줄을 서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만천하에 알린다. 엘바 섬에서 600명의 수하를 데리고 본토에 상륙하면서 다시 한 번 재기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천재황제의 운명이 3개월 안에 결판날 거라는 것을 귀납적 방식으로 예언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는 동맹군 편에 서서 카르노를 배신하고 대권을 루이 18세에게 넘기고, 경무대신 자리를 보전하는 신기에 가까운 변절 실력을 다시 한 번 만방에 과시하는 푸셰. 과연 역사의 시간은 평생 변신을 거듭한 모략가의 편이었단 말인가.

 

모든 악당들의 말로가 그렇듯, 푸셰의 그것도 비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왕 시해자’라는 오명을 안은 푸셰의 과거를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격렬한 반대가 부르봉 왕가와 루이 18세의 결정에 주효했던 모양이다. 그 인물은 바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이었던 앙굴렘 공작부인이었다. 결국 정적이었던 탈레랑에 의해 고상한 방식으로 권좌에서 끌어져 내린 푸셰는 가족들과 함께 드레스덴과 프라하, 린츠 그리고 트리에스테로 이어지는 실각한 대머리의 초라한 모습의 망명자로 전락하게 된다.

 

사제교사에서 급진적 공화주의자, 무신론자, 리옹 훈령이라는 공산주의 선언을 했던 공산주의자, 밀정의 우두머리, 경무대신 그리고 오트란토 공작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변신을 거듭했던 조제프 푸셰는 모두의 무관심 가운데 망명지 트리에스테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냉정한 목소리로 저술한 푸셰의 평전을 통해 나는 그 어떤 역사도 영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연 승자의 편에 서지 않고, 초기 자코뱅 당원으로서 가졌던 혁명의 신념대로 살았다면 정당한 역사의 평가를 받았을 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러지 않았으리라.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처럼 한 시대를 주름 잡은 걸출한 영웅들과 맞장뜬 기회주의자 조제프 푸셰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확실히 흥미진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이제 에릭 홉스봄의 삼부작 시리즈에 다시 도전할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읽다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부터 읽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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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4-11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은 없지만, 츠바이크가 쓴 마리앙투아네트를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그 책을 다시 읽어야겠어요.
레삭매냐님,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셨나요.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19-04-12 09:52   좋아요 1 | URL
전 <마리 앙투아네트>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헌책방에서 다시 샀지 뭡니까... 아유 참 -

그래서 읽다가 다른 책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바람
에 잠시 멈춰 있답니다. 주변 정리가 되는 대로
다시 도전해 보려구요 :> 감사합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도리스 되리, 김라합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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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4년 전에 본 영화가 다시 한 번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 시절에는 영화로, 그리고 지금은 책으로. 공통점은 연출자와 작가가 같다는 점, 그리고 파니 핑크.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영화도 찾아서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어떤 주술 같은 단어였던 <Keiner Liebt Mich>를 입 속에서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소설집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에는 18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소설에는 파니와 클라우스, 파울 그리고 샤를로테가 다양한 모습으로 겹치기 출연의 방식으로 변주를 거듭한다. 얼결에 자신도 모르게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소녀의 모습으로, 때로는 여동생의 결혼식을 앞둔 신경질적인 모습을 지닌 언니의 모습으로. 도리스 되리 작가는 자존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주인공들의 심리를 그야말로 후벼 판다. 영화 속의 파니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오르페오와 만나는 순간은 정말 짜릿했다. 영화와 소설 어떤 게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우주에서 온 외계인 같은 영혼의 소유자 오르페오의 현란한 말솜씨와 외로운 파니를 위로하는 스킬에 나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가 설사 파니를 속인 사기꾼이라고 해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기를 당하게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오르페오가 파는 싸구려 장신구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기위로의 일면을 보았다고나 할까. 또 한편으로는 부서질 것 같은 니힐리즘의 여운이 그윽한 유디트 헤르만의 글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또 때로는 <바그다드 카페><Calling You>도 생각났고. 감성이 때로는 이성을 압도하는 기현상에 매료되기도 했다.

 

<핸드백>에 등장하는 린다 그라임스는 두 개의 소설에 연달아 등장한다. 절도죄로 보호감찰 중인 린다 그라임스는 천사가 살지 않는천사의 도시를 떠나서는 안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라스베이거스를 누빈다. 여행 중인 남자는 벙어리 린다에게 10달러인 줄 알고, 50달러를 건네고 횡재한 여인은 생면부지의 남자 밥의 차에 올라타고 솔트레이크 시티로 향한다. 그 남자는 사막에서 린다의 핸드백을 발견했다지 아마. 어느 여자가 자신의 핸드백을 그렇게 버릴 수 있을까. 무솔리니의 애인은 마지막 처형의 순간까지 핸드백을 포기하지 않았다지 아마. 금사빠처럼 사랑에 쉽게 빠지는 여인 린다는 밥이 자신을 살짝 드러내자 곧바로 사랑 모드로 돌입한다. 독자에게 한껏 기묘한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들고, 린다가 밥에게 던진 거짓말 때문에 사막의 모래성처럼 관계가 무너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마치 한 편의 연작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리스 되리의 영화 연출에 대한 상상이 개입되는 느낌이다.

 

샤론이라는 인디언 소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알록달록한 인디언 전통의상을 입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로 15달러를 받는다. 주차장에서 영업을 하던 소녀는 결혼반지를 애써 감추지 않는 남자와 도주를 감행한다. 한밤중에 드라이브 웨이를 달리는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몽환적 이미지처럼. 반지를 숨기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는 샤론의 아리송한 표현이 독자를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단편은 <투바 양탄자 전용 세제>. 아내를 집을 비운 사이, 불륜 상대 예시카를 집으로 끌어 들인 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나의 사태를 체험하게 된다. 그건 바로 예시카가 욕실에서 자살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면도칼로 자살을 시도한 그녀를 구하는 일보다 자살의 흔적을 지우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뒤틀린 일상의 단조로움이 엿볼 수 있었다. 애초에 어떤 일탈을 위해 예시카를 만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현일까? 아내 에바가 돌아오기 전에 나는 피로 물든 투바 양탄자를 전용 세제로 말끔하게 닦아내야 한단다. 위선이라는 층위에 덧대어진 왠지 모를 비가의 느낌이 생소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사랑이라고 명명된 감정의 색깔은 무슨 색일까.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의 관계에도 어디에나 균열은 있는 법이다. 오랜 시간을 같이 해왔다고 생각해도, 어느 순간 자신이 사랑했다고 믿은 사람에게 건널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 바로 그런 기가 막힌 순간들을 절묘한 타이밍에 도리스 되리 감독은 포착한다. 동정심 혹은 자기 연민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타자가 나를 향해 쏜 배제적 감정이야말로 우리 현대인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모르겠다.

 

<Nothing Compares 2 U>를 부른 젊은 여가수는 시네이드 오코너다. 1992SNL의 뮤지컬 게스트로 등장해서 교황의 사진을 찢은 바로 그 가수. 감정의 극한으로 달려가는 주인공 파니들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이만한 노래도 없겠지. 그렇게 언제나 다시 파니다.



[뱀다리]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가 부른 예의 문제적 샹송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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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4-04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파니 핑크는 여러 번 봤어요. 첫 장면에서 흐르던 파니의 독백과 마지막 엔딩에서 다같이 떼창하던 Edith Piaf의 Non, Je Ne Regrette Rien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소설도 궁금하지만 저도 간만에 다시 영화가 보고싶네요. ^^

레삭매냐 2019-04-04 22:29   좋아요 0 | URL
덧글 보고 나서 후닥닥 <파니 핑크>를 확인해
보았답니다. 떼창 ~!

˝나 자신 조차도 날 사랑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크하 -

명작은 세월이 지나도 고유의 아우라를 잃지
않더라는. 그 때 쟁여둔 영화 전단이 엄청
아쉽습니다.
 


대망의 2019년 시리즈 오픈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1년 응원한 팀인 레드삭스가 올해도 작년에 이어 월드시리즈를 제패했으면 좋겠다.

문제는 전력이 작년만 못하다는 게 흠이지만.

 

가장 문제는 불펜이다. 마무리 킴브럴을 비롯해서 조 켈리도 다저스로 떠나지 않았던가. 예전에 집단 마무리 시스템으로 개막전을 맞았다가 채드 팍스가 탬파베이에게 마지막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박살이 난 걸 기억하는지.

 

당장 그 다음날 신문에 ‘채드의 목을 매달아라’는 살벌한 기사가 뜨지 않았던가. 뭐 그 당시에는 그놈의 밤비노의 저주를 풀지 못해 그랬다 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개막전 말아먹기는 어쩌면 레드삭스의 전통인 지도 모르겠다. 아마 작년에도 그런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강력한 마무리 투수 없이 거친 한 시즌 운행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싶다. 맷 반스에게 마무리를 맡기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걱정이다. 더군다나 숙적 양키즈의 막강한 불펜에 비하면 더 걱정이 된다.

 

작년에 모든 걸 다 이룬 무키 베츠가 과연 작년의 성적을 올해에도 이룰 수 있을까. 베츠가 프리에이전트 시장에 나오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대세인 연장계약에 반하는 게 아닌가. 팀에 충성하지 않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트레이드하는 게 낫지 않나.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의 코어 전력으로는 아마 올해와 내년 정도가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지 싶다.

 

피디가 지금 주장이던가? 캡틴 베리텍 이후 레드삭스에 주장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는 인저리 프론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된 레드삭스의 심장 피디가 올해에도 개막전을 인저리 리스트에서 보내야 한다고 하니 한숨만 나온다. 작년에도 부상으로 결국 월시에서 뛰지 못하지 않았던가. 부상 때문에 하세월을 보내는 우리의 피디가 너무 안돼 보인다.

 

모쪼록 내일 선발 등판하는 우리의 에이스 크리스 세일이 시애틀을 박살내 주길. 아, 페드로의 대 시애틀 전 무패 기록은 깨졌나? 아니면 무패로 은퇴했나 고것이 난 궁금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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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3-28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일은 정말 넘사벽인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19-03-28 15:48   좋아요 1 | URL
모쪼록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잘 보내고
싸이영 위너의 위업을 달성하길 바랄
뿐입니다. 아프지 마요 세일 ~~~

붕붕툐툐 2019-03-28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야구 좋아하시구나~
매력 터져요!!

레삭매냐 2019-03-28 17:56   좋아요 0 | URL
저 다른 스포츠는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야구만 본답니다 헷 -

moonnight 2019-03-29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아이디 뜻이 뭔가 최근에 움찔하며 혹시 이거? 하며 깨달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게 맞겠죠?^^;;; ㅎㅎ 제가 모르는 심오한 문학 속 -_-한 줄인가 했다는^^;;;;;; 저도 크리스 세일 좋아합니당 오늘 멋진 피칭 보여줬으면^^ 다저스 타자들이 류현진 투수 도와줘서 너무 기쁜 아침입니다 호호^^ 조 켈리 선수가 다저스에서 던지는 걸 보고 깜놀(&환희@_@;;;) 했는데 킴브럴도? 아직 팀을 못 찾았다는 기사 봤는뎅@_@;;;;;

레삭매냐 2019-03-29 08:02   좋아요 0 | URL
하하 아마도 문라잇님이 생각하시는
바가 맞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

오늘 류현진 정말 잘 던졌네요. 게다가
다저스 타자들도 애리조나 그레인키를
넉다운시켜 주었구요.

조 켈리는 작년 아키라이벌과의 라이벌
전에서 벌인 난투극의 주인공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moonnight 2019-03-29 08:10   좋아요 1 | URL
넹 저는 그렝키에 애정도 있어서ㅠㅠ; 맘이 아팠지만 어쨌든 기쁘군요 호호^^ 조 켈리 멋지죠 남자다잉 ㅎㅎ
 
제비뽑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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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셜리 잭슨의 단편소설집 표제작인 <제비뽑기> 말이다. 이번 주말 달궁 독서 모임책인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를 부랴부랴 읽었다. 원래 지난달에 빌렸었는데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가 지난 주말에 다시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오래 전에 산 장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도 있는데 토요일 전에 다 읽을 수 있을까.

 

다시 표제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느 마을에서 77년 이상 이루어져 온 제비뽑기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00명 남짓 사는 마을에서 제비를 뽑은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인다는 거다. 초반에 아이들이 돌무더기를 쌓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돌이 바로 처형의 수단이라는 거다. 아마 아이들도 예외는 없는 모양이다. 다른 마을에서는 이런 야만적인 처형 방식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왜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걸까? 제비를 뽑은 테시 허친슨 부인이 돌을 맞게 된다. 더 잔인한 것은 그녀의 아이들에게 자갈을 쥐어 준다는 것이다. 셜리 잭슨은 왜 이런 풍습이 생겼는지, 이런 잔혹한 행동으로 공동체에 발생하는 유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소설적 사실, 어쩌면 사실이었을 지도 모를 사건에 대한 기술을 이어간다.

 

아니 어쩌면 인류 사회에 잠재된 폭력성을 분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살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12시간 동안 무제한 허용된다는 영화 <퍼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현재 국가에 위탁해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우한 폭력과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셜리 잭슨의 단편들은 어떤 건 그냥 뭔 말이지 하고 쉽게 넘어갈 법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하긴 그거야말로 단편의 특성이 아니었던가.

 

결혼식 당일날 예비 신랑의 부재를 깨닫게 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유령 신랑>은 어떤가. 결혼식장에서 예비 신부를 데리고 도망가는 유명한 영화 <졸업>의 이미지가 원체 강렬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행사가 주는 압박 때문에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도망간다는 설정에 대해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긴 <런어웨이 브라이드>라는 영화도 있었지 아마. 하지만 제이미 해리스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존재가 증발되어 버렸다. 이에 예비 신부는 제이미 해리스는 찾아 나선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그녀가 그를 찾아 나설수록 그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고, 추적은 미궁에 빠진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제이미 해리스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쩌면 이런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낯섬이야말로 셜리 잭슨 작가가 소설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내가 뉴욕에 몇 번 가봤더라. 한 여섯 번 정도 가봤던가? 나에게 뉴욕은 파리와 더불어 뮤지엄의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메트와 모마, 자연사박물관, 아메리칸포크뮤지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겐하임 뮤지엄. 세계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뉴욕은 대도시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이는 마력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뉴잉글랜드를 떠나 친구가 여행을 떠나 빈 집에서 이주간 살게 된 마거릿과 브래드 부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소금기둥>에서 바로 그 뉴욕이 주는 환상과 실망이 교차하는 지점을 적확하게 타격한다.

 

환상이 실망으로 태세전화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거릿은 파티를 즐기던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마거릿의 말에 개의치 않고 파티를 즐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점이 거슬렸을까? 아니면 즐거운 뉴욕 생활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걸까? 사람들이 떠난 롱아일랜드 별장에 가서는 시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뮤지엄과 뮤지컬 그리고 다양한 재즈바라는 이미지로 치장된 뉴욕의 실체를 알게 된 순간, 마거릿은 횡단보도 하나 건너지 못할 정도로 심신미약 증세를 겪게 된다. 즐거움이 주는 쾌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추락하는 것도 부지불식간이라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성경에 등장하는 룻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이야기가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미련 때문이라면, 마거릿은 왜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걸까.

 

<꽃으로 꾸며진 정원>에서는 미국의 해묵은 갈등인 인종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정도 같은 인종끼리만 가능하다는 걸까? 위닝 집안의 실권자인 시어머니 위닝 부인에게 매여 사는 젊은 위닝 부인은 근처 집에 새로 이사온 매클레인 부인과 데이비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를 가지고 대하지만, 매클레인 부인이 유색인 존스 씨에게 정원일을 맡기자 멀리하기 시작한다. 1940년대 어쩔 수 없었던 인종주의의 틀에 갇혀 있던 백인들의 의식과 위선적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 르포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백인들에게 신이 창조한 다른 유색인들은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은연 중에 드러나는 자신들보다 못하다는 의식이 정말 무서웠다. 개인적으로 단편집 <제비뽑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치아>는 한밤중에 아픈 이 때문에 뉴욕으로 가는 클래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940년대 엑스레이로 아픈 이를 촬영하고,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발치 전문가가 이를 뽑는다는 설정에 사실 좀 놀랐다. 우리가 그들의 진단과 기술을 따라하는데 근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소설에서 재밌게 느낀 점은 클래라가 자신을 아픈 이를 배달하는 하나의 존재 혹은 사물로 의식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셜리 잭슨이 구사하는 하나의 유머로 받아 들여야 하나.

 

대충 오늘 아침 출근길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나머지는 돌아오는 토요일날 우리 달궁 동지들을 만나 신나게 떠들어 보도록 하자. 의식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고 말이다. 고 달궁 가이즈!

 


드디어 봄이 온 모양이다. 어제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에 핀 민들레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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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27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국내에 인지도가 낮은 호러 작가죠. 스티븐 킹이 ‘호러 킹’이라면 ‘호러 퀸’은 셜리 잭슨입니다. ^^

레삭매냐 2019-03-27 13:10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예전에 산 책은 왜 샀는지 모르겠네요 핫하

뒷북소녀 2019-03-27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은 도서관에서 빌릴 책, 서점에서 살 책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 지으시는지.ㅋ

레삭매냐 2019-03-27 13:15   좋아요 0 | URL
뭐 기준은...
일단 애정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삽니다.
로베르토 볼라뇨, 루이스 세풀베다, 시배스천 폭스
등등...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거나 혹은 희망도서로 신청
하는 책의 경우에는 대부분 소장각이 아니거나
혹은 두 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이죠. 지금도
가지고 있는 책들 정리해야 하는데 말이죠...

뭐 결론은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다~라는 거죠

페크pek0501 2019-03-30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창비에서 나오는 단편 소설집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는데 국가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영국편, 미국편. 이런 식입니다.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뷔페 같이 맛있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