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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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괴테는 일찍이 음악은 영원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괴테가 하는 말이니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지 않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 천년에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콘트라베이스>는 꽤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고전은 다시 읽는 법이지.

 

<콘트라베이스>는 국립오케스트라단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맡은 화자의 독백이다. 그는 공무원이다. 전쟁이 나도 연주단원들은 제 시간에 모여 연주를 해야 하는 그런 공무원이란다. 어지간해서는 밥그릇이 잘려 나갈 일도 없다고 한다. 다만 그가 사랑하는 성악가 세라 씨에게 52마르크짜리 생선요리를 사줄 정도의 여유는 없는 것 같다. 아니 무리를 해서라도 그녀의 환심을 얻기 위해 그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요점은 공무원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벌이는 형편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 짝사랑하는 세라 씨와 파트너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기이자 밥벌이 수단인 콘트라베이스는 필요 없는 흉측한 물건일 뿐이다. 세라 씨를 위해 피아노 연주자로 변신해야 하는 걸까. 대학에서 작곡을 배우고, 수년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한 자신의 운명을 사랑 때문에 바꾸어야 하는 걸까.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결기대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수상까지 참석하는 중요한 연주회가 있는 날, 세라의 이름을 외치겠다는 그의 발상이 짠하지만 하다.

 

<비둘기>에서처럼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와 젊고 매력적인 성악가 여성에 대한 짝사랑 그리고 콘트라베이스에 얽힌 음악사로 삼위일체의 이야기를 이룬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쥐스킨트 작가는 얼마 전에 읽은 <비둘기>에서처럼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스토리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는 구도의 길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신이 음악가가 아니라고 자조하는 화자는 독일 문학계의 거성 괴테가 자신 전에는 문학이 없어서 자신이 돋보일 수 있었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8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는 불세출의 천재 신동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당시에 베토벤이나 쇼팽, 슈베르트 같은 작곡가가 있었던가. 괴테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냐며 모차르트에 대한 신랄한 공세를 이어간다. 게다가 그의 성공의 비결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혹독한 조련에 있지 않았냐고 따지지만, 나는 화자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모두가 훈련과 피나는 연습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출 수는 있겠지만 남들과 다른 고유한 창작의 영역에서는 실력으로 타고난 재능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자신처럼 정규 과정의 음악훈련을 받은 전문 연주자들에 대한 사회의 대우 또한 한창 인기를 날리는 중년 성악가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또한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젊은 화자가 훗날 기득권층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사회에 갓 진출한 신출내기들과 엇비슷한 대접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는 과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속된 말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세대 간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숨 가쁘게 달려온 기해년도 오늘까지 해서 이틀 남았다. 내년 경자년에는 또 어떤 매혹적인 책들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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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12-30 14:15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유튜브에 올라 오는 커버
곡들을 듣는 재미에 사는 것 같습니
다.

예전 같으면 플랫폼의 부재로 훌륭
한 연주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어찌 보면 유튜브가 하나의 기회의
장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로 2019-12-30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을 ‘.... 음악은 영리하다고‘고 읽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이렇게 매일 리뷰를 올리시는 님 존경스럽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좋은 리뷰 많이 올려주세요! ^^

레삭매냐 2019-12-30 14:1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맨날은 아니구... 그냥 읽고 쓰고
의 무한반복인 것이죠.

일개 개인의 독서 기록을 봐 주
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2-07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데 신간은 언제 나오는 걸까요....ㅎ

레삭매냐 2020-02-07 22:35   좋아요 0 | URL
정말 신간 낸 지가 오래된 것 같네요.

다시 읽으니 기억이 새로웠던 것 같습니다.
 


구입 : 20191227일 금요일 알라딘 산본

 

알라딘에서 자꾸 적립금 쿠폰을 줘서 도저히 뭐라도 안 사고 배길 수가 없게 만드네 그래.

 

다 핑계고 여튼 어제 산 스페인의 작가이자 철학가 그리고 정치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책이다.

 

그전에도 이 책의 존재를 알았는데, 언젠가 아마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았나 어쨌나. 빌리기만 하고 아무래도 읽지 못한 듯.

 

본문은 얼마 안되는데 주석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주석이 뒤에 붙어 있어서 주석을 하나하나 찾아 가면서 책을 읽게 되면 호흡이 끊어질 것 같아 최대한 주석 참조를 안하고 읽을 계획이다.

 

100년도 더 전인 1914년에 발표된 책이라고 하는데 지금 읽어도 놀라울 만한 그런 통찰들이 담겨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너무 많이 알지만 과연 우리가 과연 그것들을 다 이해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철학의 본질이나 삶의 정수를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지복의 순간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아마 제대로 읽는다면 포스트잇과 밑줄로 가득할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기해년이 다 가기 전에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참말로.

그리고 그의 다른 책인 <대중의 반역>도 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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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2-28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지난 한 해 좋은 글로 많은 도움 받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

레삭매냐 2019-12-28 12:38   좋아요 1 | URL
넵, 겨울호랑이님도 기해년 좋은 글 널리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빠이팅입니다.

stella.K 2019-12-28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시겠습니다. 연말이라 허전할 법도한데 원하는 책 손에 넣으면
좋을 것 같긴해요.
저도 그럴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책을 쌓아놓은터라.ㅋ

올해도 레삭매냐님 글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운 한 해였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구요, 좋은 기운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19-12-29 22:39   좋아요 0 | URL
요즘 매일 같이 책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 수년 만에 아는 동생들을 만나
면서 그야말로 책을 바리바리 싸다
앵겨 주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무지 좋아하더군요 :>

그리고나선 또 알라딘에 들러서
에밀 졸라의 <작품>과 이븐 바투타
오디세이인가를 샀네요.
고질병입니다 고질병.

해삐 뉴 이얼~

moonnight 2019-12-29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앜! 레삭매냐님 글을 읽어버렸네요ㅜㅜ 새해가 되기 전 책사기는 일단 멈춤 하기로 맘 먹고 있었는뎅(라고 레삭매냐님 핑계를 대며 신나게 클릭클릭^^;)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레삭매냐 2019-12-29 22:40   좋아요 0 | URL
으아아아~

오늘도 또 두 권 질렀습니다.

<안나와디>를 샀어야 했는데
시간의 절대부족으로... 그만.
아쉽네요.

해삐 뉴 이얼~입니다요.

북프리쿠키 2019-12-29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덕분에 절 위로하게 됩니다 ㅎ 잘 하고 계십니다^^
새해에도 매냐님만의 취향인 책들 많이 소개해주세요 ^^

레삭매냐 2019-12-30 14:14   좋아요 1 | URL
아이구 감사합니다 -

일개 책쟁이의 글을 응원해 주시니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격려에 힘입어 내년에도 열심으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숨님이 2020 달궁 첫 독서모임 책으로 골라 주셨다네. 20분이면 읽을 수 있다는 나의 구박을 철회하고 결국 당당하게 테드 창의 책과 함께 당첨!!! 사실 20분은 더 걸렸다. 아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들은 그러리라는 나의 착각 때문이었겠지.

 

사실 오래 전 친구가 선물해준 <향수>를 읽고 나서 뻑이 가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얍삽하게도 책이 얇아 읽기 쉬웠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을 것이다. <비둘기>도 아마 그 때 읽었지 싶다. 그런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 씨는 올해(1984) 53살의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바라는 게 아무 것도 없다. 1931년에 태어난 조나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누이와 함께 시골 마을 아저씨네 농가에서 숨어 살았다.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아니던가. 결혼한 아내는 바람이 나서 도망가 버렸다지. 그전에는 프랑스의 불의한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비극으로 얼룩진 프랑스 현대사의 증인이 아닐 수 없다. 파렴치하게도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나치의 유대인 이송에 협력한 1942716일 벨로드롬 디베르 사건은 아마 오랜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미처 몰랐을 사건일 곳이다.

 

파리는 조나단 노엘에게 안락의 공간이었다. 은행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24호실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민 그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인 일상을 영위한다. 그놈의 비둘기란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어느 금요일 아침 마주친 비둘기와 그 비둘기가 복도에 싸지른 똥 때문에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의 안락한 거주지 대신 호텔 방은 전전하게 되다니 말이다. 당시 프랑화의 가치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55프랑하는 저렴한 숙소를 전전하다 보면 파산하게 될 거라는 조나단의 고민이 얼마나 실존적인가.

 

우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주지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 월세가 폭등하는 현상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집세가 비싸기로 유명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노숙자들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조나단이 공원에서 마주친 거지 아저씨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가 있었다.

 

조나단 노엘은 타인에게 혐오를 주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그의 성격이 나와 비슷해서인지 몰라도 격렬하게 공감이 됐다. 그래서 그는 공원의 벤치에 두고 온 우유팩을 가지러 갔다가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만 자신의 바지가 찢어진 것이다! 오 맙소사. 도대체 왜 신은 그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모든 걸 비둘기 탓으로 돌려야 하는 걸까. 비둘기의 날갯짓 하나가 조나단에게 이런 큰 시련으로 돌아오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바지 수선을 부탁하러 갔다가 3주 후에나 찾으러 오라는 말에 조나단은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아니 그놈의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쥐스킨트 작가는 <비둘기>에서 우리 현대인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없이 경비원으로 은퇴한 다음, 조용하게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서 살고 싶어 했던 조나단 노엘의 시련은 비둘기 한 마리가 던져준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어이없는 사건에서 비롯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조나단의 의식을 잠식해 버리고, 결국에 죽음에 이르는 궤도에 그를 올려놓는다. 아마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게 뭐였지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거리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비둘기 군단을 보고 길을 돌아가던 행인 사람이 불쑥 났다. 조나단도 아마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조나단의 체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던가. 빈 틈 하나 없이 견고하게 구축된 조나단의 일상에서 근무복 바지가 찢어진 게 그렇게 문제란 말인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스카치 테이프로 일단 급한 불은 끄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그가 용서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자신의 태도였을까.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한 그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너무 빡빡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에 대한 내 생각은 이 정도다. 나머지는 동지들의 생각을 들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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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2-27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세히 보니 엠블렘 5개가 모두 연속선에 있네요^^ 2020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19-12-28 12:40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알라딘 개미지옥에 빠
지게 되었답니다 ㅋㅋㅋ

새해에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또 달려 보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2-07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입니다. <비둘기> 다시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0-02-07 22:35   좋아요 0 | URL
<깊이에의 강요>도 다시 읽어 보고 싶네요.
 


 

리딩데이트 : 20191223~ 25

 

그래 명절엔 재밌고 잘 읽히는 책이 최고지.

그래서 읽던 <성서>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서가에 있던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을 집어 들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랄까.

 

조지는 현재, 케니는 미래 그리고 샬럿은 과거라고.

영화 <싱글맨>에 나오는 콜린 퍼스의 연기는 최고였다.

 

파트너 짐의 죽음 이제 홀로 살아야 하는 남자 대학 영문과 교수 조지의 이야기.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를 질주해서 자신이 영문학 강의를 맡은 대학으로 가는 조지.

때는 196212. 세계의 종말을 초래할 뻔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지나간 다음이다.

 

강의 시간에 조지는 헉슬리의 소설을 분석하는데... 그 소설 제목이 뭔지 궁금하다.

다음은 같은 영국 출신 네이버 샬럿의 초대.

순간순간 드러나는 감정에 이렇게 충실할 수가 있을까.

나는 조지가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속물이 아니었던가.

 

자신이 자주 들르는 바에서 만난 케니 포터와의 에피소드.

여튼 그놈의 술이 문제다. 너무 취하게 되면 발생하게 되는 후회들.

이제 노년으로 넘어갈 조지는 너무 에피쿠로스 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걸 비난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후회할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중고서점에서 라떼 한 잔 값도 안하는 2,900원에 데려온 책인데 본전 이상의 가치를 하고 있다. 이번으로 세 번째 읽는 <싱글맨>.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으로 다가서게 된다. 그래서 더 좋은 지도.

읽는 데 부담도 없고. 그나저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도 읽어야 하는데.

리뷰는 이 정도로 가볍게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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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 - 고고학으로 파헤친 성서의 역사
아네테 그로스본가르트.요하네스 잘츠베델 엮음, 이승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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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크리스마스 이브다. 눈은 며칠 전에 왔고, 캐럴송에 나오는 것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눈 오면 귀찮고 그렇지 뭘. 이런 걸 보면 어릴 적 낭만 따위는 이제 모두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현실적이다.

 

몇 년 전에 읽은 슈피겔 시리즈 가운데 루터의 종교개혁에 이은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을 읽었다. 엉뚱하게도 기독교를 믿지도 않는 나라인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가 광화문에 등장해서 그것 참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엘(아마 엘로힘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의 전사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을 엮은 독일의 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신앙적인 측면보다 학술적 차원에서 성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요약하자면 기존의 신화와 전승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오늘날에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라는 주장이다.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서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점유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는 눈에 거슬렸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슈퍼스타 아브라함 역시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라는 점을 모르고 그러는 건지 그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2천년 동안이나 유랑하던 민족이 열강의 국경선 긋기로 신생국을 만들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야말로 고래로 팔레스타인의 주인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개하는 성서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특히 다윗 왕조의 두 왕들인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에는 야훼/여호와에 대한 충성만 맹세한다면 이민족에 대한 학살이나 바람둥이 같이 군주로 적절하지 못한 행실도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목동에서 출발한 다윗은 연주자, 장군, 고위 관료 그리고 기존의 왕이었던 사울의 박해를 받아 광야에서 게릴라 부대 지휘관으로 떠돌다 결국 왕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의 전형이 아니던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전을 세운 왕 중의 왕으로 성서에서는 묘사되지만, 실제로 당대 유대 왕국은 초라했을 거라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한다. 실제 유대 왕국의 전성기는 1~2세기 뒤에 찾아 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 번역인 70인역으로 알려진 셉투아진타를 비롯해서 불가타 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언어에서 언어로 번역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역은 또 어떤가. 그래서 위대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 상은 빛나는 빛이 아니라 뿔을 대신 달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되지 않았던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담은 공관복음서와 신비로운 성격의 요한복음에 대해서 <성서>는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지금은 유실된 Q복음과 마가복음을 전범으로 삼아 다른 복음서들이 쓰인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는 않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그리고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건 복음서에 담긴 여호와의 역사하심으로 봐야 하는 걸까. 신앙인들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아무래도 버겁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세 사제들은 성서에 대한 해석을 독점했다. 아니 심지어 보통 사람들이 성서를 읽고 토론하고 것도 일체 금지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은 성서에 대한 해석이 권력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인 사랑과 평등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신의 뜻을 수행하는 사제들이 앞장서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정통 해석에 어긋나는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박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가.

 

그런 중세의 어둠을 끝장낸 게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믿음보다 선한 행위를 방점을 찍고 천국에 가는 티켓(면죄부)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팔던 중세 교회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성서의 독일어 번역이었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로 비로소 독일 민족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당시 번창하던 인쇄술은 대중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컨텐츠인 성서를 대량으로 인쇄해서 전파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루터는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을까.

 

20세기 들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히브리어로 된 성서의 발견과 더불어 이루어진 고고학적 성과에 대해서도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은 빼놓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원천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고고학적 성과는 가장 오래된 성서 필사본에 대한 갈급함을 달래기 위해 탐험에 나선 선구자들을 무대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받는 정전 외에도 수많은 외경과 다양한 종류의 문서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로마 시대 세계 종교가 된 기독교의 정전 채택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다루지 않아 좀 아쉬웠다.

 

마지막에 다시 성서의 슈퍼맨이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의 시조격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종교 간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질시 대신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것이 과연 종교적 관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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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레삭매냐 2019-12-25 14:32   좋아요 1 | URL
방문해 주셔서 축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