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겁하다. 사회적 변혁을 꿈꾸면서도 정작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저 책이나 읽고 독후 감상문이나 끼적일 뿐. 그런데 저 멀리 독일에는 나와는 달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맞서 현장에 잠입해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모욕을 직접 취재한 르포 전문기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귄터 발라프였다.

 

1942년 10월 1일에 독일 라인 지방의 부르샤이트에서 태어난 귄터 발라프는 어려서부터 정당활동을 시작했고, 1974년 5월에는 그리스 여행을 하던 중에 군부독재에 항거해서 인권 문제에 대한 시위에 참여했다가 14개월 동안 그리스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그가 세계적인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바로 그만의 독특한 잠입 취재 방식이었다. 이전에도 다양한 직종을 전전하면서 이주 노동자, 특히 터키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선진국이라는 독일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그의 주요 타겟은 바로 신자유주의였다. 한국의 보수정당들은 2002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집권 아래 이루어진 노사정 대타협의 산물인 하르츠 개혁에 대해 그야말로 입이 마르도록 칭찬일색이지만, 실제로 독일에서 하르츠 타협의 결과 고용률이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 마디로 고용의 안정성과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줄어 들었다는 점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귄터 발라프는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아마존 같은 세계적 차원의 공룡대기업들의 기록적인 성장 배경에는 심지어 독일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눈물에 배어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하청 이슈는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고, 임금 덤핑,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감시 그리고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는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일상화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1960년대에 탄광노동자로 잠입취재를 시작한 희대의 저널리스트 발라프는 1983년 터키 출신 이주 노동자 알리로 위장/변신해서 2년 6개월 동안 암행기자로 활동했다. 그야말로 사회 밑바닥에서 독일이 그렇게 자랑하는 노동법으로부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아우구스트-티센제철(ATH) 같은 세계적 대기업의 재재하청 회사의 인부로 일했다. EBS에 나온 그의 인터뷰를 보니, 단기간에 위장취업해서 취재를 하는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에 자신을 직접 투영한 것이다. 6주 정도가 지나면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에 적응하게 되는데, 순수 독일 사람으로 독일말을 제대로 못하는 터키 사람 행세하기는 쉬웠지만, 정작 터키 출신 동료들에게 터키 말을 하지 못하는 터키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그리스 피레우스에서 자라 그렇다고 둘러대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나도 모르게 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저 싸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이용하는 대형할인매장, 패스트푸드점 그리고 알고 보니 노동자들을 악랄하게 착취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티센-크루프에서 설계하고 만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을 오가는 나의 모습에, 주변의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장구조차 갖추지 못한 채 상시적인 모요과 멸시 그리고 위험수당마저도 철저하게 빼앗기고 동냥처럼 임금을 받은 이주 노동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오버랩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는 우연히 귄터 발라프라는 저널리스트를 알게 되었고, 국내에 나온 그의 책에 대해 알아 봤다. 세 권이 발표되었는데 아쉽게도 두 권은 이미 절판되었고 올해 또 한 권 그의 책이 나왔더라. 절판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를 구해서 읽고 있는데,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알리는 가톨릭교회에서 사제들과 주교들에게 ‘비관료적인 방식’으로 세례를 요청하는데,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해야 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그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자그마치 10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폴란드에서 이주한 신부가 알리의 요청을 들어주겠다는 나서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신학과 종교가 사멸해 가고 있는 독일의 양심이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대머리 발라프 아저씨는 진실/사실에 접근하는 자기 고유의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내부의 진실을 알기 위해 자신을 가리는 행위, 다시 말해 마스킹(masking)이 어쩌면 하나의 표현 방식이라는 것이다. 한편, 신문이나 잡지 같은 기존 매체의 광고 수입과 판매부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광고주의 영향력이 증가되면서 예전 같은 비평기사 쓰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도 예리하게 지적한다. 이미 한국에서도 막대한 광고집행 비용을 무기로 언론을 연성화시키는 전략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지 않았던가. 기업에 부역하는 언론종사자들에게 귄터 발라프 같은 암행기자야말로 정말 불편한 존재가 아닐까. 한국에서 귄터 발라프 같은 용기 있는 기자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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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24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진짜 저널리스트를 소개해주시네요!
책이 품절이라 동네 도서관사이트 검색했더니 다행히도 한곳에 있더라구요.
그리고 심지어 누가 대출중으로 읽고 있다니!!! 일단 예약해놓았습니다. ^^
권터 빌라프.. 저도 기억해두려구요!

레삭매냐 2018-08-24 14:29   좋아요 1 | URL
저도 우연히 알게 된 작가인데 다행히
중고책으로 구할 수가 있었네요.

EBS 다큐와 기타 영상 자료로 접하고
나서 책을 읽으니 더 와 닿더라구요.

단기 취재가 아닌 자그마치 2년 6개월
동안 진짜 터키 이주 노동자들과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몸소 체험한 글을 발표
했다는 시도가 정말 대단합니다.

십수년 전에 뮌헨에 갔을 적에 밤거리
를 누비다가 터키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
과 마주했던 기억이 나네요. 형제의 나라
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 씁쓸합니다.

더 오래 전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터키
친구 마무트 생각도 나네요. 잘 살고 있을지.

세상틈에 2018-08-25 0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터 발라프 같은 용기를 가질 수는 없어도 <어느 독일인의 삶>의 브룬힐데 폼젤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기를 다짐해 봅니다.

레삭매냐 2018-08-25 09:19   좋아요 1 | URL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폼젤처럼은 되지 말아야죠 절대!
 
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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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 가까운 극한의 지역에 기근과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가 몰아닥친다. 알래스카 인디언 부족 중의 하나인 그위친족은 유목민들로 수렵으로 생존하는 부족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사냥을 할 수 있는 이들에게 가지고 있는 자원을 몰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부족 전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약자들은? 아이들은 미래의 자원이니 그렇다 치고, 나이 든 80세의 칙디야크(박새)와 사(, 75)는 부족원들에게 외면당하고 생존을 위한 아무런 방비 없이 가을 야영지에 버려진다.

 

그러니까 알래스카 인디언판 고려장의 희생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족원들은 부족 전체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자위하지만, 모두에게 그것은 하나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그 어느 누구라도 생산에 참여할 수 없는 잉여 같은 존재가 된다면 그들 역시 칙디야크와 사의 운명과 다를 게 없을 거라는.

 

북극의 가혹한 환경 만큼이나 칙디야크와 사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그들이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부족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을 위해 부족민들은 아무런 자원도 남겨주지 않았다. 칙디야크의 딸인 오즈히 넬리가 남겨준 사슴가죽으로 만든 끈발과 손자 슈러 주가 몰래 남긴 손도끼 정도가 전부다. 과연 칙디야크와 사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캠프에서 불평과 불만을 일삼던 두 늙은 여인들은 죽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땔감을 구해서 몸을 덥히고, 토끼덫을 놓으면서 생존을 도모한다. 사냥에 나선 첫날 다람쥐를 잡은 것이 어쩌면 그들의 빛나는 영광을 위한 전조가 아니었을까. 가을 야영지에서 겨울을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두 늙은 여인들은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면서 먼 길을 나선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죽음을 능가하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체험한다. 어쩌면 잠에 빠져 매순간 조여 오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영원한 잠을 자청하려고 마음 먹었던 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의 포기는 곧 동료의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고난의 여정을 계속했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 물고기 사냥을 하던 야영지에 도착한 두 여인은 야생동물만큼이나 위협적인 다른 부족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을 버린 자기 부족과 대면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그동안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던 잉여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칙디야크와 사는 기력을 회복하고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어마어마한 식량 확보에 나선다. 많은 양의 말린 물고기와 연어는 물론이고, 맛좋은 황소사슴을 잡기 위해 사가 벌인 모험을 보라!

 

자 그렇다면 두 여인을 버린 부족은 과연 번영과 평화를 구가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지난겨울을 날 수 있었지만, 돌아오는 겨울은 암담하기만 했다. 두 여인을 방기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족장은 나이든 안내꾼과 사냥꾼들로 구성된 특공대를 파견해서 두 여인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두 여인의 야영지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부족과 가족에게 버림 받은 두 여인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사냥꾼들은 감복해 마지않는다. 자신들처럼 원기왕성한 이들도 배를 주리며 사는 판에, 청년 못지않은 정력을 자랑하는 칙디야크와 사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두 여인을 넉넉하게 확보한 식량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부족원들에 대한 원망이 가시지 않는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죄 없는 아이들까지 굶주리고 있다는 전언에 두 여인의 마음에 조금씩 해빙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자기 가족들의 안위도 걱정되지 않은가.

 

나머지는 해피엔딩이다. 다른 누구보다 칙디야크가 가장 원망했던 딸 오즈히 넬리에 앞서 사랑하는 손자 슈러 주와 눈물의 상봉을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엔딩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행복한 결말을 지향하고 있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지혜가 중요했지만, 디지털 시대에 방대하게 축적된 정보의 힘으로 이제는 구세대에 대한 공경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자신만의 경험이 최고라고 들이대는 세대와의 불화도 어르신들과의 대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 벨마 월리스는 우리에게 생각해 보라고 주문한다. 늑대 무리에서 더 이상, 무리를 이끌 체력을 지니지 못한 늙은 우두머리가 제거되는 것처럼 우리 인간 그룹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하겠는가. 물론 부족민들에게 불평쟁이로 낙인찍힌 칙디야크와 사에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대신, 희생양(scape-goat)을 지목되어 방기되어 버린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이었던가. 특히나 유목민 부족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었던가.

 

한국을 일으켜 세운 산업전사 세대의 성공담도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미래세대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 진부하지만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회의 다양한 욕구들과 이해들이 상충하는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정치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충분히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갈등들을 방치하는 작금의 상황이 칙디야크와 사를 버리자고 주장하던 부족민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늑대 같은 짐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될 것인가. 박새(칙디야크)와 별()의 이야기는 그래서 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게 아닐까.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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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23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 생존을 위해 사회적 약자인 유아와 노인이 희생된 것이 과거 역사의 아픔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노인 인구가 점차 늘어가는 고령화 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이런 역사의 아픔에 대한 역풍이 부는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세대간 자산 소득 불균형에서 오는 경제력 차이가 후세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8-08-23 23:10   좋아요 1 | URL
올해 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라는
책을 읽었는데 살발~합니다.

국민연금 특수팀에서 연금수령을 많이
하시는 분들을 제거한다는 설정이었지요.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미래 디스토피아
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
이 없지 않나 싶더군요.

당장에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해 드러나
는 불신이 우려되긴 합니다.

역시 정치가 해결해주어야할 영역인가요.
 
소년 시절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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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 그런데 재출간된 쿳시의 <소년 시절>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책을 빌렸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일이나 걸려서 다 읽었다. 사실 그동안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산 책 보다 빌린 책을 먼저 읽어야 해서 우선 순위가 좀 바뀌게 됐다. 작년에는 이언 매큐언의 책들을 섭렵했는데 올해는 존 맥스웰 쿳시와 로맹 가리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중이다. 세 작가 모두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고 국내에 소개된 책들이 제법 많아서 컬렉션하고 읽는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어서 좋다.

 

국내에 소개된 쿳시의 책들을 거의 도맡아서 번역하고 있는 왕은철 교수의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 작가의 책은 여러 작가가 돌아 가면서 번역하는 대신 이렇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역자가 맡아서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나 직접 저자와의 연으로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물어 보기도 한다고 하지 않은가.

 

<소년 시절>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저자의 십대 시절을 집중적으로 다룬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정말 생소한 남아프리카 아프리카너들이 사는 방식이 그래도 등장하고, 대도시 케이프타운에서 변호사로 잘 나가던 아버지 잭 쿳시가 시골동네 우스터로 낙향하면서 생긴 일들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욕망은 자전거 배우는 일이었다고 했던가. 저자는 유대인도 기독교도 아닌 로마 가톨릭을 종교로 삼았다가, 다른 우악스러운 아프리카너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한다. 자신들과 다른 인종과 섞여 다른 말을 해야(영어) 하는 상황에서부터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던 게 아니었을까.

 

가족들과 함께 카루 혹은 펠트에 위치한 농장에 가서 지내는 게 가장 좋았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어려서부터 삭막한 시멘트 포장 위에서 자란 나에겐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름방학만 되면 한 달씩 시골 할아버지네 가서 지내다가 왔다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네는 거의 같은 도시라서 내가 살던 곳과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살풍경한 곳이었다. 바닷가에 간 친구들은 불가사리며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을 채집해 왔고, 시골로 간 친구들 역시 잠자리와 풍뎅이 같은 녀석들을 핀으로 박제해서 곤충 채집 숙제로 제출하곤 했다. 그 때 난 뭘 채집했더라. 고작 흔해 빠진 매미나 잠자리였겠지. 지금도 꼬맹이에게 잡아 준다는 핑계로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 다니다 보면 가끔씩 그 시절로 타임슬립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 나만 즐겁다 됐냐?

변호사이자 부사관으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저자의 아버지 잭은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으로서는 정말 빵점이었던 모양이다. 푸엘폰테인 시골 농장의 일상적 인종차별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교사였던 어머니의 이중적 모습은 역설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남편 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의사가 변호사 같은 먹물이 되어야 한다는 편견에 젖어 있었다. 유색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은 ‘비정한 유대인’에 대한 아프리카너들의 편견도 주목할 만하다. 편견에도 피부색에 따른 계급적 차별이 존재하는 걸까.

 

한편, 존 쿳시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러시아인을 선호했지만, 이미 그는 그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게 되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에서 공부 잘하던 소년은 수학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서 시험을 잘 치렀지만, 역사와 지리 같은 암기 과목에서 소질이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소년 시절>의 후반에서는 우스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돌아갔지만,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하며 가세를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니라 정반대의 일을 하면서 빚을 지고 결국 파산으로 내달려 가는 아버지에 대한 비난조의 글들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그렇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할수록, 어머니는 억척 같이 저자와 동생을 돌보기 위해 전력투구에 나선다. 어느날 아버지가 자살하지나 않았는지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정신줄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꼬마 존이 품은 생각을 들려주는 부분에서는 정말 짠했다. 모든 가정마다 그 나름의 고민이 있다고 하던 톨스토이의 말대로 쿳시 집안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잦은 이주와 그런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통과하면서, 존 쿳시는 철부지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카너들이라의 삶이라는 다소 생경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결국 우리네 일반적인 삶을 관통하는 원류로 회귀하는 과정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소년의 진술을 듣다 보니 어느새 소설의 결말 부분에 도착해 있더라. 그리고 아마 다음 이야기는 역자가 예고한 대로 <청년 시절>과 <섬머 타임>으로 이어질 모양인가 보다. 앞으로 절판된 쿳시의 책들이 연달아 나올 모양인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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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22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다. 레샥매냐님 존 쿳시도 전작 중이셨죠? 최근에는 로맹가리 리뷰를 자주 봐서 깜빡했어요. ㅋㅋ
왕은철 번역가는 독서 에세이집도 2권 냈던데 전 그 산문집도 궁금하더라구요.

레삭매냐 2018-08-22 23: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존 쿳시도 전작하는 작가랍니다 ^^

이언 매큐언은 이제 다 끝났으니 로맹 가리
와 존 쿳시 그리고 토니 모리슨에 집중해야
지 싶습니다.

버뜨 다양하게 읽을 책들이 마구 생겨나서
쉽지가 않네요.

왕 교수님은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가 보네요.
어느 신문에 북칼럼도 쓰시는 것 같던데.

stella.K 2018-08-22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평점이 생각 보다 그리 높지는 않는 것 같네요.

레삭매냐 2018-08-22 23:18   좋아요 1 | URL
제가 올리는 평점은 지극히 주관적인지라...

<추락> 같은 한 방이 없다고나 할까요?
너무 평이한 느낌이었습니다.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 - 한스 폰 루크 회고록
한스 폰 루크 지음, 진중근.김진완.최두영 옮김 / 길찾기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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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군 출신 최연소 대령이자, 조상 대대로 육군으로 조국에 봉사해온 프로이센 귀족 가문 출신의 한스 폰 루크의 회고록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를 읽었다. 블리츠크리크로 유명한 폴란드 전역으로 시작해서, 대 프랑스 전에서는 롬멜 휘하의 유령 사단(제7기갑사단)의 일원으로, 대소전을 비롯해서 북아프리카에서는 사막의 여우 롬멜 휘하에서 아프리카 군단으로, 노르망디에서는 영국군을 상대로 싸웠으며 마지막 베를린 포위전에서는 소련군을 상대로 무용을 자랑한 그야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 전사의 기록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후에는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그루지야의 굴락에 버금갈 만한 포로수용소에서 5년간 잡혀 있다가 고향인 플렌스부르크로 귀환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생부를 잃은 루크는 목사 출신이었던 양아버지 슬하에서 엄격한 프로이센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원래 루크는 법과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지만, 가문의 직업인 군인이 되라는 양부의 조언에 전후 전승국의 엄격한 감시를 받던 제국 육군의 일원으로 직업군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훗날 무적의 독일 기갑부대의 모체가 되는 차량대대(그 유명한 판지로 만든 장갑차와 탱크 부대)의 사관후보생으로 프로이센식 엄격한 규율과 훈련을 받으면서 미래의 기갑부대장으로서의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드레스덴 보병학교 시절 만난 교관 에르빈 롬멜 대위와의 운명적 만남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루크가 소위로 임관할 무렵 등장한 히틀러의 등장은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600만이나 되는 엄청난 실업률, 가혹한 전쟁배상금과 영토 할양 등으로 국민적 수모를 겪던 독일 국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라인란트 진주 등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국가사회주의 나치즘의 부상은 독이 든 성배였다. 변명 같이 들리지만,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독일 군대의 특성은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지 못하고 국가수반의 자리에 오른 히틀러의 재무장과 이어지는 군부장악 와중에 대다수 제국군은 과거의 영광의 재현이라는 선전선동 아래 나치스의 도구가 되었다.

 

소위 임관 후, 한스 폰 루크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러시아 어를 배우는 기회도 갖게 되는데, 훗날 러시아에서 혹독한 포로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에는 소련과 비밀리에 맺은 협정에 따라 기갑부대 훈련을 소련에서 받을 기회가 있었다는 에피소드(결국 무산되었다)도 흥미롭다. 아울러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도 출전할 뻔 했다는 화려한 전적이 차례로 등장한다. 저자의 저술을 읽다 보면, 한스 폰 루크야말로 독일이 자랑하는 군인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충성, 엄격한 신체조건, 교양과 학식까지 모든 요건을 갖춘 엘리트 장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전장에서는 적군이었던 폴란드군과 소련군 역시 조국을 위해 자신과 같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점을 인정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시발이 된 폴란드 침공전에서 기갑수색대대 중대장으로 실전에 참가한 루크는 준비된 전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용맹을 보여준다. 야전에서 지휘관으로 병사들을 무작정 사지에 내모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진을 돌파하기 위해 궁리하고, 솔선수범해서 자신이 최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훈련과 신념으로 무장한 전사의 모습이 아니던가. 루크는 뛰어난 전략가답게 폴란드와 공수동맹을 맺은 영국과 프랑스가 서부전선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히틀러의 예언대로 연합군들은 꼼짝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앉은뱅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폴란드전에서의 승리로 사기가 충천한 독일군은 예봉을 서부전선으로 돌렸다. 총통의 경호대장에서 야전 기갑사단장으로 돌아온 산악보병 출신 베테랑 롬멜이 지휘하는 제7기갑사단의 일원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빛나는 독일군의 승리를 장식한 대 프랑스전에 루크는 투입된다.

 

루크는 롬멜 이상의 창의적 아이디어로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인츠 구데리안의 장갑부대 전술 운용의 시험장이 될 서부전선 무대가 마냥 반가웠다. 최신 무기와 효율적인 훈련, 개전에서의 혁혁한 승리로 고무된 독일 국방군은 5월 9일 개전과 동시에 프랑스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루크는 전장에서 신사도에 입각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마음껏 발휘한다. 전쟁에 미쳐 날뛰는 무장친위대와는 달리 상대방을 존중하는 진정한 군인정신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만슈타인이 제안한 아르덴숲 돌파가 성공을 거두면서 롬멜이 지휘하는 제7기갑사단은 일명 유령사단으로 불리면서, 프랑스 전장을 신출귀몰하게 누빈다. 루크는 사단의 최전방에서 맹활약을 펼친 덕분에 독일군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기도 한다. 독일 본토에서 출발해서 보르도에 있던 프랑스 임시정부를 추격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루크는 다음 번에 투입될 대소전에 앞서 휴식과 정비를 취한다. 격렬한 전투와 ㅍ평온한 휴식이 반복되는 가운데, 전쟁기계 독일 국방군이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하게 될 모스크바 공방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도 모스크바를 함락시키는 것이 대소전의 1차적 목표였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신속하게 모스크바를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우랄산맥까지는 자그마치 3,000KM 되는 거리였고,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코 앞에 두고 진격이 멈추어졌다. 계속되는 전투에서의 피로감과 전장에 계속해서 무한대로 투입되는 신예 부대와 전차의 행렬을 보면서 루크는 어쩌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백이십년 전 나폴레옹군의 퇴각 기록을 살펴보지 않았을까. 다행히 아프리카 군단의 일원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던 옛 스승 롬멜이 루크에 대해 차출요청을 하면서 루크는 소령으로 승진해서 극한의 소련 전장에서 이번에는 열사의 아프리카로 무대를 옮긴다.

 

호기롭게 투입된 아프리카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루크는 본국으로 이송되어 수개월 동안 요양을 하게 된다. 부상이 회복된 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운 뒤였다. 북아프리카 전장에서 결정적이었던 엘알라메인 전투에서 보급물자와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은 상대적으로 보급에서 열세였던 독일군을 압도했다. 비행기와 대포, 전차, 탄약, 병사들의 식량 그리고 무엇보다 기갑부대를 운용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휘발유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독일군에게는 충분한 게 없었다. 롬멜은 너무 늦기 전에 후퇴해서 후방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려고 했지만 총통음 무조건 현지사수를 요구하고, 전략적 후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충분한 물자를 제공한 것도 아니었다. 탄약과 휘발유가 없어서 싸울 수가 없다면 이미 말다한 게 아닌가. 사실 북아프리카 전장은 히틀러에게 가장 중요한 전장이 아니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궤멸적 패배로 승리의 여신은 그동안 독일군에게 보내던 미소를 연합군쪽으로 돌린 지 오래였다.

 

루크는 어쨌든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동쪽에서는 영국군으로부터 그리고 서쪽에서는 이제 막 전쟁에 뛰어든 미군을 상대로 후위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루크가 추구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사막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그런 에피소드들이 존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멋진 이야기들이 현지에서 실전을 체험한 군인에게 전해 듣는 경험을 정말 짜릿했다. 전쟁 후에 루크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영국 첩보부대는 독일군의 모든 통신 암호를 선취해서 그들이 전장에서 어떤 전략과 계획으로 나올 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독일군들이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불굴의 의지로 전투에 나섰지만, 연합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건강이 악화된 롬멜의 뒤를 이어 아르님 대장으로부터 ‘특별 임무’를 부여 받은 현지 대대장 루크는 독수리요새에서 은거 중인 히틀러로부터 너무 늦기 전에 최정예 아프리카 군단 병력을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본토로 후퇴시켜 훗날을 도모하자는 계획을 승인받기 위해 본국으로 향한다. 그 순간에서도 수십만의 병사들이 아프리카 열사의 땅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는데, 점심식사를 하는 총통을 알현할 수 없다는 참모의 말에 루크는 울분을 터뜨린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어느 시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롬멜의 충언을 따르지 않은 히틀러는 2주 뒤에 튀니지에 포위된 독일군의 유럽 본토 후퇴를 승인하게 되는데 이미 늦은 결정으로 자그마치 13만 명이나 되는 베테랑 아프리카 군단의 독일 장병들이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게 잡힌 독일 병사들은 미국 본토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독일군 포로병사가 등장하는 3년 전에 읽은 <독일병사와 함께한 여름>이란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났다. 롬멜은 동쪽의 영국군보다 신참내기 미군이 상대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카세린 협곡 전투에서 미군에게 그야말로 본때를 보여주었다. 루크는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비록 미군이 전투에서 패하긴 했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역에서 전투가 거듭될수록 창의적인 방식으로 적응해 갔다는 냉철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가는 길에 야지에 집적된 미군의 엄청난 물자를 목격한 독일군 포로들이 이런 물자가 그들에게 있었다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는 외침이 그저 공허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프리카 전역은 독일군의 패퇴로 끝이 났고, 다시 전간기의 휴식이 루크에게 주어졌다. 1943년 6월, 어느 파티에서 1/8 유대인 다그마와 만나 로맨스에 빠지기도 한다. 아마 다그마와의 연애가 이 청년 장교가 전장에서 그 숱한 위기를 뚫고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던 건 아닐까. 루크는 다시 롬멜 휘하에 배속되어 제2전선의 개막을 맞이하게 된다. 롬멜의 전략대로 연합군의 상륙을 해안에서 저지해야 했지만, 전역을 맡은 사령관 롬멜과 사단장 포이히팅어 모두 노르망디에 부재했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주공이 파드칼레 지역일 거라는 자신의 예상을 고집하면서, 신속하게 기갑부대를 동원해서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을 요격할 절호의 기회를 상실해 버렸다. 이후 제공권을 장악한 영미 연합군은 압도적인 포병전력과 함포 사격의 후원 아래 독일군의 보급로를 강타하면서 동쪽으로 진군을 개시한다.


 



제21기갑사단의 예비대로 작전지역에 투입된 루크 연대 전투단은 탄약, 휘발유 그리고 식량 무엇 하나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캉 전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효과적인 지연전술을 발휘했다. 루크 중령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서 자신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창의적인 전술을 동원해서 영국군의 진격을 막아내려고 고군분투했다. 후에도 등장하는 페가수스 다리 전투와 빌라 보카주 전투 같이 노르망디 전역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전투를 치르면서 본토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루크는 드디어 제3제국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프랑스에 주둔 중인 독일군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팔레즈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한 루크는 연합군의 본토 진공을 앞두고 알자스의 리터스호펜과 아떵에서도 격전을 치른다. 잠시도 쉴 새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이번에는 독일 내륙을 가로 질러, 제국의 심장부인 베를린으로 진격해 오던 소련군을 상대로 치른 할베 전투를 마지막으로 루크는 포로가 되어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전쟁을 끝마치게 된다. 한편 최후의 전투에 나선 루크와 그의 전우들이 독일 본토로 쳐들어오는 스탈린 적군이 사방에서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 분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자신들의 뒤를 이어 진주한 게슈타포와 특수학살부대 아인자츠그루펜이 소련 전역에서 저지른 만행에 아무 것도 몰랐단 말인가.

 

그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5년간의 혹독한 포로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고향으로 귀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연인 다그마와는 너무 상이한 생활 조건 때문에 결국 이별하게 된다. 이후 루크는 호텔리어와 민간기업의 수출업자로 변신해서 생활을 영위해갔다. 그후에는 노르망디 전역에서 자신과 맞서 싸운 영국군 장교 존 하워드와 친분을 쌓고 영국 참모대학과 스웨덴 국방부의 초청으로 노르망디 행사에도 참가하고 당시 독일군의 방어전략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1991)는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즈의 도움으로 펴내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숱한 2차세계대전사에 대한 책과 회고록 중에서 가히 최고가 아닐까 싶다. 독일군 최연소 대령인 한스 폰 루크가 참가한 전역이 폴란드, 프랑스, 소련, 북아프리카, 노르망디와 독일 전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2차세계대전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장군이나 참모가 아닌 기동부대의 일원으로 최전선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히틀러 체제에서 자신이 얼마나 제국의 레벤스라움 확보라는 가짜 대의에 속아 전쟁에 나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과 전장에서 맞닥뜨린 적군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독일 국방군의 엘리트 전사답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하는 몇몇 장면들도 압권이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히틀러의 수하로서 전쟁에 나섰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리라. 그의 러시아 포로생활이 없었다면 어쩌면 루크의 회고록은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최근 출간된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였던 브룬힐데 폼젤의 일대기를 다룬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항변하는 누군가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 주목할 하다고 생각된다. 후자도 꼭 한 번 읽어 봐야겠다.

 

[뱀다리] 제목과 달리 1944년 7월 20일 히틀러에 대한 쿠데타 기도가 실패한 뒤, 주범으로 몰려 결국 자살한 롬멜에 대한 이야기가 이후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도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한스 폰 루크는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롬멜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던 걸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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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22 13:26   좋아요 1 | URL
책의 저자 한스 폰 루크가 노르망디
캉 전투 당시 왜 영국군 전차부대가 기계화보병
을 달지 않고 축차적으로 마냥 전차만 전장
에 투입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석을 하더군요.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었던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전차의 물량도 물량이
었지만 소련군의 삽날/참호구축이 가장 유효
했다는 분석도 있더군요.

2018-08-22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나나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 이마고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온라인 기사로 우리가 현재 즐겨 먹는 바나나 캐번디시가 곧 멸종될 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읽었다. 사실 어려서 바나나는 정말 귀한 과일이었다. 씨도 없고, 한 입 가득 베어 먹었을 때 풍기는 과육의 느낌이란! 한 개(finger)에 한 5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당시로서는 굉장히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일년 봄가을에 가는 소풍날 두 개를 사서 하나는 그 전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풍 당일날 한 개씩 소중하게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하도 흔해 빠져서 트럭에서 파는 과일장수 아저씨는 한 다발(hand)에 단돈 5천원에 파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 댄 쾨펠은 전 세계를 매료시킨 이 열대 과일 바나나에 대한 보다 생생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르포르타주 <바나나>에서 다룬다. 인도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바나나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성경에도 등장하는 선악과가 아니라 바나나였을 거라는 합리적 추정도 내놓는다. 물론 성경학자들이 듣는다면 이단으로 몰리겠지만. 기원전 5천년부터 파푸아 뉴기니에서 재배되었다는 흔적이 있는 바나나는 동남아에서 출발해서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거의 7천년 정도가 걸렸다. 전 세계에서 쌀, 밀, 옥수수에 이어 네 번째 생산량을 자랑하는 이 열대과일은 누구에게는 기호식품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량자원으로도 소중하게 작동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기근발생은 다반사로 알려져 있는데, 우간다를 비롯한 자신의 텃밭에서 바나나를 길러 식량으로 삼는 나라에서는 대량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편, UFC과 스탠더드 프루츠 같은 다국적 바나네로스(바나나 기업)들은 현대문명 기술발전의 세례를 톡톡히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바나나 생산을 담당한 일명 바나나 공화국(과테말라과 온두라스) 독재자들과의 단단한 정경유착도 한몫했다. 바나나를 수확해서 소비처(북미대륙)까지 운송하는 단계에서 냉장시설이 개발되기 전까지 바나나의 갈변을 막는 건 바나나 산업 초창기의 최대 고민이었다. 원래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바나나 산지는 자메이카였다고 한다. 미국의 탐욕적인 사업가들은 바나나 무역이 돈벌이가 될 거라는 점에 주목하고, 현란한 마케팅과 열대과일의 매력을 한껏 강조하면서 미국인들의 식탁에 바나나 올리기 작전을 시작했다.

 

종자로 번식하는 식물이 아닌 바나나는 단일품종으로 대단위 재배에 적합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로 대변되는 중앙아메리카 일대에 엄청난 규모의 바나나 플랜테이션이 세워졌고, 바나나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바나나 생산에 나섰다. 코카콜라처럼 박리다매 전략이야말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바나나 기업의 소유주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방 정부를 압박해서 거의 헐값에 가까운 비용으로 농지를 인수하고 세금까지 절감받으면서 UFC와 스탠더드 프루츠 그리고 델몬트로 대변되는 바나나 기업들은 승승장구했다.

 

바나나 기업의 호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바나나 대단위 재배를 가능하게 한 단일품종 그로 미셸을 습격한 파나마병(푸사리움 곰팡이에서 유래한 잎마름병)이 그야말로 바나나 농장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흙과 토양이 아닌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싱가토카병까지 발명하면서 기존의 그로 미셸 종은 지구상에서 멸종되었다. 대신 파나마병에 상대적으로 내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캐번디시 바나나가 우리가 요즘 즐겨 먹는 바나나의 대세가 되었다. 저자는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라카탄 바나나도 역시 파나마병에 시달리는 캐번디시의 대체종으로 추천하고 있지만, 반세기 전 그로 미셸에서 캐번디시로 갈아탈 때 소비자들의 저항만큼이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는 경고장을 발부한다.

 

그런데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 파나마병이 발병하자 바나나 대기업들은 야생종 바나나와의 변종을 개발해서 파나마병이나 싱가토카병에 대한 내성을 갖춘 품종을 개발하지 않고 대신 손쉬운 방법으로 농약을 살포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물론 전자가 지리한 연구와 시간을 요구한다는 건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후자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바나나 기업들이 지불해야할 기회비용이 치솟기 시작했다. 우선 파나마병으로부터 안전한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농지를 개발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해야 했고, 바나나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농약 때문에 직접적으로 불임이나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저임금 노동을 유지하기 위해 UFC 같은 기업은 불법적으로 과테말라나 콜롬비아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노조의 결성과 파업분쇄를 사주했다. 실제로 미국 CIA의 지원으로 합법적으로 집권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 때 과테말라에 있던 젊은 의사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을가. 5년 뒤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고, 미국 바나나 기업들이 쿠바에서 소유하고 있던 농장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이에 대한 복수로 UFC는 다시 한 번 CIA와 결탁해서 쿠바 혁명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백색대함대’로 피그스만 침공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1929년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바나나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도 등장할 정도로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댄 쾨펠은 우리가 마트나 시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서 소비하는 바나나라는 열대과일에 대한 리포트를 하기 위해 그야말로 전세계를 누비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1년에 설립된 벨기에의 루뱅 연구소가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해 싸우는 장소라는 점도 특이하다. 대개 표본을 구하기 쉬운 라틴 아메리카 최대 바나나 생산지인 에콰도르나 또다른 바나나 공화국인 과테말라나 온두라스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하튼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해는 기업이나 국가를 초월한 협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과연 저자인 댄 쾨펠이 제시하는 유전공학 바나나가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GMO 표시를 하자는 주장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마 기업들 입장에서는 GMO 표기를 하는 순간, 차례로 해당 식품(책에서는 프랑켄푸드라고 꼬집어서 말하고 있다)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제공하게 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소한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경로로 해서 유통되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육종을 개량하고, 잎마름병에 대한 내성을 가진 품종을 개발하자는 저자의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유전자공학적으로 설계된 바나나가 정답이라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가 없다. 최근 마다가스카르에서 파나마병에 내성을 가진 야생종 바나나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속히 DNA 분석에 나서고 다섯 그루 밖에 남지 않았다는 녀석을 구출해서 캐번디시 바나나를 계속해서 먹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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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20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옛날엔 금나나였죠.
근데 그땐 어려서였는지 아니면 지금은 흔해져서인지
저는 생각 보다 잘 안 먹게되더라구요.
너무 달아서인 것 같습니다. 육즙없이 퍽퍽하기도 하고.
그걸 못 먹어 한이었던 때도 있었다니
그 시절엔 먹는 게 흔하지 않아서인 것도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8-08-20 11:2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예전에 울나라에서 바나나
드럽게 비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은 저렴이의 대명사가 되었죠...

너무 흔해지니 예전처럼 잘 안찾게
되더라구요. 사람이 참...

목나무 2018-08-20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도 바나나 재배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때는 그저 드디어 우리나라도 아열대기후가 되어가는 건가... 그 생각뿐이었는데..
우리나라산 바나나는 어떤 상태의 바나나일지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18-08-20 16:3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저널리스트들도 댄 쾨펠 아저씨
처럼 한 가지에 몰두해서 깊이 있는 기사를
좀 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책을 쓸 정도로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쓰는데 말이죠.

한국의 바나나, 기후 변화와 관련되어 흥미
로운 주제 아닌가요?

목나무 2018-08-20 16:40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책을 질렀습니다. ㅎㅎㅎ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원래도 관심 있던 주제인데 한 기자가 3년에 걸친 탐사 취재를 하고 직접 살아보고 오지까지 찾아가보고 했다고 하니 저자의 노력을 봐서라도 정말 이런 책은 읽어줘야하는 거 아닌가 해서 냉큼 질렀습니다. ㅋㅋ

한국의 바나나의 앞으로의 전망... 이런 것에 관심갖는 저널리스트가 있을지....음~~~

카스피 2018-08-21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글을 읽으니 바나나 공화국이란 말이 생각나네요.20세기 초에 중앙 아메리카에서 유나이티드 프루츠사 등의 미국 농업 기업이 커다란 농장을 여러 나라에 건설하여 그 자금력으로 여러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데서 나온 말인데 냉전 시절 미국의 안마당처럼 휘둘리던 엘살바도르,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그레나다를 비롯하여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쓰였다고 하더군요

레삭매냐 2018-08-21 22:5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에서는 바나나 공화국의 대표적인
예로 과테말라와 온두라스가 등장합니다.

UFC(유나이티드 프루츠), 스탠더드 프루츠 그리
고 델몬트를 바나네로스(바나나 기업) 혹은
엘 풀포(문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