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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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을 즐겨 읽는 편이다. 팩션 장르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와 픽션이라는 두 가지 소재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서권 작가의 팩션 <시골무사 이성계>는 고려왕조의 국운이 쇠해가던 1380년 실제로 있었던 황산대첩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 남북조 시대 걸출한 무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1만 명에 달하는 정규 무장을 갖춘 왜군의 침략 앞에 고려 조정은 가별치라 불리는 이성계 사병집단을 주축으로 한 토벌군을 파견한다. 왜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 황산대첩의 서막이 그렇게 오른다.

 

소설은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상승장군으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노장 이성계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체찰사로 고려 정규군을 이끄는 친원주의자이자 정적으로 등장하는 변안열, 그를 따르는 고려 최고의 문인이자 굴지의 외교관으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포은 정몽주 그리고 훗날 고려를 대신해서 들어선 조선의 실제적인 설계자였던 삼봉 정도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문제적 인물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이성계를 위시한 이 정도가 주인공이라면, 이성계를 언니라 부르며 항상 전선의 최전방을 맡았던 퉁두란(이지란)과 처명, 황산대첩 초기 왜구의 진공을 막는데 역시 빼어난 공을 세웠던 배극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다만, 이성계와 정도전의 실제 만남을 조금 앞당긴 작가의 조정이 마음에 걸렸다. 가능하면 역사적 사실은 유지했으면 좋았겠으련만.

 

고려군의 진용이 이렇다면, 상대방은 어떨까? 스러져 가는 남조를 살리기 위해 고려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역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 동안의 가미쇼(神將) 아지발도와 그의 탁월한 군사 슈겐부츠가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다. 여말 약탈과 방화, 살상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저지른 왜구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동시에 국가의 근간이 되는 백성을 지켜내지 못한 무능한 고려 조정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가의 영이 바로 서고, 외적에 대한 방비가 철통같았다면 어찌 외적들이 고려를 침략할 생각을 했겠는가 말이다.

 

무신 집권기를 거쳐, 친원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왕권의 추락은 불가피했고 권문세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은 토지겸병과 백서에 대한 수탈을 통해 사적 이익의 추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궁성이 있는 개경 방어에만 신경을 쓰고, 국가의 남부를 침입한 왜적 소탕에 국가 정예군을 동원하지 않는 중앙정부를 이성계의 입을 빌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결국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왕조국가를 세운 이성계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새로운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과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회의적이다. 어쩌면 포은의 체제 내의 개혁에 더 호감이 가는 건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성계와 아지발도 간의 물리적 사투를 중심으로 슈겐부츠와 삼봉 두 군사(軍師)들의 대결로 대변되는 정보전도 육탄전 못지않게 관심을 끈다. 세작을 통해 쉴 새 없이 적의 동태를 살피고, 역공작으로 적을 교란시키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삼국지>급 포스를 자랑한다. 중앙귀족을 대변하는 체찰사 변안열과 가별치 부대장으로 변방의 시골무사에서 거병해서 국가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이성계의 갈등 구조 역시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소설 초반에서 엄청난 양의 풍등을 만드는 삼봉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모원려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못내 궁금했었는데 최후의 결전을 위한 것이었다는 설정도 자못 흥미로웠다. 예의 장관은 어쩔 수 없이 영화 <삼국지>에서 비슷한 장면을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는 단역으로 잠깐 등장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바로 편조 신돈이었다. 그는 공민왕 시절 전격적으로 왕에게 발탁되어, 말 그대로 개혁의 최전선에서 백성을 위해 토지제도와 노비제도를 혁파하려다가 자신들의 기득권 박탈에 위기를 느낀 권문세족의 총반격으로 결국 주살되고 만 비운의 혁명가였다. 역사에 가정은 소용없다지만, 백성에게는 성인 그리고 귀족들에게는 요승으로 불리던 신돈의 혁명적 개혁이 성공했다면 이성계와 신흥사대부의 왕조교체 역성혁명은 그 당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시골무사 이성계>에서는 그리는 황산대첩은 북쪽 변방 출신의 일개 무장 이성계가 압도적인 왜적을 쳐부수고, 바야흐로 거물로 성장하게 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그 다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성계 그룹으로 대표되는 무인집단과 신흥사대부로 상징되는 문인집단이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은퇴한 상왕 삼총사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방식의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개혁과 혁신을 외쳐 대지만, 현실의 변화는 여전히 요원하다는 상념에 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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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코미디
윌리엄 사로얀 지음, 정회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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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윌리엄 사로얀,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그의 글보다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건, 미국 출신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퓰리처상을 거부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그럴 수도 있나? 남들은 받지 못해서 안달하는 그런 상을 거부하다니,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희극>이 연상되는 윌리엄 사로얀의 <휴먼 코미디>가 나에게 준 첫인상이었다.

 

모두 39개의 챕터로 구성된 <휴먼 코미디>는 담백하고 술술 읽힌다. 제목에 코미디가 들어가 있다고 절대 이 책을 유머 책으로 오해하시지 마라. 물론, 입가를 스치우는 그런 유머도 없지 않지만 이 책은 대공황에서 충격에서 벗어나 전쟁이 한창 중이던 1940년대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마을 이타카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인간 드라마다.

 

<휴먼 코미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세상에 맞서는 매콜리 가문의 아이들이다. 장남 마커스는 당시 여느 젊은이들처럼 군에 입대해서 전쟁터에 투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 매슈 매콜리의 부재 가운데, 올해 14살 먹은 호머는 소년 가장으로 최근에 취직한 전신국에서 전보 배달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일을 시작한 소년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참 가혹하다. 어쩌면 윌리엄 사로얀은 처음부터 전혀 해피엔딩스럽지 않은 결말 부분에 대한 세팅을 먼저 구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네 살배기 꼬마 율리시스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이 꼬마는 그 덕분에 짐승 잡는 덫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하고, 살구 서리를 하러 헨더슨 씨네를 습격한 패거리에 가담했다가 신문팔이 소년 오거스트와 줄행랑을 놓기도 한다. 집안이 가난해서 신문팔이 혹은 전보 배달원이라는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는 일을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소년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미국에서는 이제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 된 청교도적 직업윤리(work ethic)이 살아 숨 쉬던 순수의 시대를 읽는 것 같은 느낌에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윌리엄 사로얀은 이 담백한 소설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던 소년의 시선에서 서술한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를 억지로 밸리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소위 인종의 도가니라는 미국에서 학생에게 더러운 이탈리아 녀석라는 폭언을 내뱉는 육상 코치의 모습은 어째 낯설지가 않다. 언젠가 어린이를 돕는 꿈을 이루겠다는 순수소년 호머가 가진 이상과 충돌하는 현실세계의 비정한 이면이 증폭된다.

 

<휴먼 코미디>에 녹아 있는 다양한 신화의 흔적을 쫓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쏠쏠한 재미중의 하나다. 오디세우스(율리시스)의 험난한 귀향길의 종착점은 바로 고향 이타카다.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판 가나안으로 탈바꿈한 캘리포니아판 이타카드림은 마커스의 전우 토비 조지에 의해 완성된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품위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매던 권총강도 청년은 전신국에서 만난 톰 스팽글러 때문에 구원에 이른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가 아니던가. 앞으로 전개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고민하던 마커스가 전쟁의 본질에 대해 들려준 놀라운 성찰은 그 어떤 반전 메시지보다도 강렬하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윌리엄 사로얀의 페르소나로 등장하는 식품점 주인장 아라 씨의 성공에 대한 강박과 미국에서의 풍요로운 삶이 부딪히는 긴장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평범해 보이는 성장소설이라는 외피를 두른 윌리엄 사로얀의 소설이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보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이제 막 세상에 도착한 호머 매콜리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갈등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윌리엄 사로얀의 <휴먼 코미디>는 그래서 나에게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저는 어른이 되면 절대로 울 일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인간은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때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되니까요.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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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4-2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인용하신 구절 참.. 좋네요. 꼭 <자기 앞의 생>의 소년이 말하는 것 같아요. 리뷰 오랜만에 올리시네요. 그래도 꾸준히 올리시는 걸 보면서 또 새삼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전 아직 하나도 안 쓰고 있거든요 ㅠ ㅠ

레삭매냐 2012-04-23 12:48   좋아요 1 | URL
책은 계속해서 읽고 있는데 미처 리뷰가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름 슬럼프라고나 할까요?

지난 주에 책을 네 권이나 읽었는데 쓴 리뷰는 하나도 없네요 ㅠ

비로그인 2012-04-2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헤르메스님, 리뷰 쓰실 때 그냥 단번에 쓰세요? 저는 요새 리뷰를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자꾸 써야될 말을 짜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솔직히 쓰기'를 제일 위에 놓고 쓰려고 하고 있는데 음, 잘 모르겠네요. 글을 쓰게 만드는 어떤 느낌을 자주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감성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박민규 말처럼 다감(多感)하고 싶네요!

레삭매냐 2012-04-30 08:54   좋아요 0 | URL
저는 일단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마무리가 엉성하더라도 한 번에
다 쓰고자 하는 편입니다.
마치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쓰다가 마무리짓지 못하고 나중에 다
시 쓰려고 하면 어째 주저하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보통 책 읽으면서 리뷰에 담고 싶은 말들은 메모를 한답
니다. 자주 잊어 버리니까요.
 
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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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책을 말로만 듣다가 처음 읽었다. 현대 이스라엘 출신 작가의 글은 처음이지 싶다. 아모스 오즈의 이 책을 술에 비유하면 보드카 정도에 해당하지 않을까. 무색무취의 무미건조하지만, 일단 한 번 들이키고 나면 목울대를 울리게 되는 그런 찡한 맛이라고나 할까.

 

사실 책은 오래 전에 읽었는데 리뷰가 늦어졌다. 보통 책을 읽자마자 리뷰를 쓰곤 하는 편인데 웬일인지 이 책에는 해당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럴 경우에 보통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은 이야기들은 거의 각인의 수준이 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은 몽땅 다 휘발되어 버린다는.

 

사실 멀리 떨어진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에 대해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다. 건국 이래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가들과의 끊이지 않는 분쟁으로 폭력이 일상화된 경찰국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텔일란이라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고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지 않는 공간 배치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랍청년, 이제는 다 커서 유년의 흔적이 없어진 조카를 기다리는 노처녀 의사 선생님,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고 노래모임을 갖는 가운데 비극의 현장을 직접 화자 등 다양한 삶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아모스 오즈가 꿈꾸는 이상향에 대한 작가적 상상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 군의 불도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터전을 깔아뭉개는 지극히 초현실적인 작금의 사태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이스라엘 국가 폭력에 대한 분노가 아모스 오즈의 작품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땅 파기>는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이 얼마나 그들의 땅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로마시대 디아스포라 이래, 처음으로 자신들의 조국을 가지게 된 유대민족의 땅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파 정치인 출신 아버지는 유대인 대 반유대주의자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편이 아니면 죄다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아직까지도 팔레스타인에 평화정착을 가로 막는 제일의 장애물이 아닐까. 전쟁과 폭력으로 어렵게 얻은 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그네들의 정신적 압박이 한밤중의 환청으로 혹은 환상으로 그렇게 다가오는 건 아닌지. 잠재된 두려움의 발현이 얼마나 인간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지 살짝 엿볼 수가 있었다.

 

<길을 잃다>에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에서는 현재진행형인 홀로코스트와 아슬아슬한 로맨스의 찰나를 짚어낸다. 신자유주의 열풍에서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미명은 옛것을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보수적 가치조차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린다. 부동산업자는 저명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저자가 유산으로 남긴 집을 매입해서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고 싶어한다. 이제 반세기 전의 과거는 뒤로 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비유일까. 이런 유물론적 접근은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당면한 문제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폐허에서 만난 매력적인 고인의 딸에게 화자가 느끼는 욕망과 남매간의 우애가 뒤섞인 감정에 대한 표현은 현대 이스라엘 정치적 갈등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에 비하면 <낯선 사람들>은 청소년기에 연상의 여인에게 느꼈던 소년의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열일곱 살 난 소년이 어떻게 해서 삼십대 여자에게 빠진 걸까. 소년이 느끼는 동정심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달과 웅덩이에 비친 달그림자 만큼이나 거리가 있다고 아모스 오즈는 명징하게 풀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꼬마 코비 에즈라는 포기할 줄 모르고, 성숙한 여인에게 당혹스러운 질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아모스 오즈가 그리는 <시골 생활 풍경>에는 보통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클라이맥스와 긴장을 수반한 흥분이 없다. 단지 한 폭의 단조로운 수채화를 그리는 듯한 노대가의 익숙한 붓놀림이 있을 뿐이다. 고희를 훌쩍 넘긴 작가가 시전하는 삶의 스펙트럼은 그 깊이를 알 수 정도로 넉넉하다. 어떤 순간에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가도 나중에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 그게 그래서였던가 하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냉소나 빈정거림 대신 호의를 품은 작가에게 그만 무장해제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게 바로 내 독서 스타일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작가의 글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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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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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가 잘못된 것 같다. 온다 리쿠의 <달의 뒷면>을 먼저 읽고 나서 <불연속 세계>를 읽었어야 했는데.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줄 알았다면 응당 그래야 했겠지. 하지만 언제나처럼 나의 독서는 내 의지와는 조금씩 빗겨 나가기 마련이니까. “환상을 주조하는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카피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온다 리쿠는 독자를 기이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떠오른 책이 두 권 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였다.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일본 사람들뿐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상식 밖에 존재하는 기이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는 건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게 아닐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우리가 접할 수 없는 환상 스토리만큼이나 기이한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 5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불연속 세계>에는 주인공 쓰카자키 다몬이 있다. 대형 음반사의 기획 프로듀서로 만사에 어째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시크한 남자다. 때로는 여성적인 면도 슬쩍슬쩍 드러날 때가 적지 않다. 어째 그래도 실력은 있는 듯, 끈질기게 음악판에서 버티는 몇몇 밴드를 발굴한 커리어의 보유자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나무지킴이 사내>에 등장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나무지킴이 사내의 존재는 다가올 일본의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로 형상화된다. 그것은 마치 전쟁 당시 폭격의 징후가 보일 때 그 모습을 드러냈었다는 전설과 짝을 이룬다. 전쟁 당시 물리적 폭력의 전조였다면, 이번 건은 더욱 경우가 심하다. 아직까지도 버블경제의 충격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일본 경제에 대한 온다 리쿠만의 문학적 오마쥬라고나 할까. 내러티브의 힘 대신 무언가 이미지의 그것이 느껴진다.

 

첫 번째 이야기에 비하면 두 번째 이야기의 기이함은 더욱 명징하다.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학창시절 친구들과 오붓하게 모여 앉아 누가 더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나 하는 경연이 연상된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그리고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기이할 건 없으니까. 저주 받은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글루미 선데이>가 자동적으로 튀어 나오고, ‘세이렌의 목소리를 추적하는 차분한 모습의 다몬이 등장한다. 결말은 어떻게 보면 조금 싱겁다고나 할까.

 

<환영 시네마>에서는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의 변형이 그리고 <사구 피크닉>에서는 추리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밀실 트릭의 흔적이 보인다. 후자의 경우에는 직접 사구를 보았다면 좀 더 시각적 상상이 자유로웠겠지만 온다 리쿠가 글로 보여주는 사구는 상상력 부족으로 좀 감이 오지 않았다.

 

역시 <불연속 세계>에서 최고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배치된 <새벽의 가스파르>. 이야기는 다몬을 비롯한 네 명의 중년사내들이 야간열차를 타고 사누키 우동(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우동인지 한 번 맛보고 싶다는 불쑥 들었다)을 먹으러 다카마쓰로 가는 도중에 열차 객실에서 술판을 벌이면서 시작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역시 무서운 얘기가 제격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들어도 그만 그렇지 않아도 그만인 시시껄렁한 괴담이 아니라, 프랑스 여자 잔과 국제결혼한 다몬의 내밀한 가정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독자들은 비로소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야기 하는 동안 다몬을 괴롭힌 휴대전화의 비밀이 다소 싱겁게 밝혀진다.

 

확실히 <불연속 세계>는 기승전결의 구성과 전개가 뚜렷한 여느 소설과 달리 확실한 결말과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이한 이야기의 행진이다. 어쩌면 연속적이지 않은 삶의 소용돌이를 사는 우리에게 불연속되는 그 틈새야말로 기이한 괴담이 파고드는 지점이 아닐까. 오래 전 카이사르는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현실도 똑바로 보고 받아 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소설에서 그러지 못한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몬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은 온다 리쿠의 전작 <달의 뒷면>을 읽고 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처음 작가의 소설에 등장한 캐릭터와의 만남은 낯설지 않아 좋다. 곧 시작될 기이한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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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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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 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물 같은 수작(秀作)을 만날 때가 있다. 지난 주말에 우연히 집어든 카타리나 마세티의 <옆 무덤의 남자>가 그랬다. “옆 무덤의 남자라 직관적으로 여성작가가 쓴 글이겠거려니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북구의 나라 스웨덴에서 날아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달달한 로맨스 소설은 봄날에 슬그머니 기지개켜는 연애감정처럼 그렇게 슬그머니 찾아왔다.

 

레퍼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어느 날, 묘지의 무덤에서 만난 서로 태생과 배경이 상이한 두 남녀가 티격태격 치고받는 가운데 사랑을 꽃피워 간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위의 간략한 요약에서 나왔듯이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이다. 여주인공 데시레 발린은 최근에 남편이자 조류학자인 외지란을 자전거 교통사고로 잃어 매일 같이 묘지를 찾는다. 그 옆 묘지에 영면한 어머니를 찾아 꽃을 심는 탱고왕벤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 모두 사랑하는 이를 상실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런데 왜 하필이면 묘지에서 싹트는 로맨스라니, 배경이 낯설고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지만 사랑은 그야말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대를 가리지 않으니까라는 말로 넘어가자.

 

쇠똥 냄새가 그윽하게 나는 시골에서 스물네 마리의 젖소와 씨름하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벤니와 세련된 도시에서 자크 라캉의 철학을 논하며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남편과 논쟁하기를 즐겨하는 데시레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런데 문득, 그 반대의 경우를 상정해 보며 혼자 미소 짓는다. 도시 남자가 시골 여자를 만나면 그림이 어떨까 하고 말이다. 하긴 그렇게 된다면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의 재벌 2세 스토리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찾아든다.

 

어쨌든 데시레와 벤니는 상대방을 품으려는 노력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주고, 상대방의 양보를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아니 사랑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이기적이었던가? 단 하루라도 자신이 돌봐 주면 안되는 젖소들과 자신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골 농장을 팔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희멀건 새우의 품에 투항하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벤니의 결심은 새우의 바캉스 미소를 보는 순간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자신을 닮은 아이를 쑥쑥 낳아 주고, 소젖을 짜거나 건초 더미를 날라주는 일을 거들고 푸짐하고 맛좋은 미트볼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 벤니의 기대를 데시레는 도저히 채워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야말로 난자가 공중제비를 돌며 원하는 벤니를 놓치고 싶지 않는 데시레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카타리나 마세티의 ‘he said, she said’ 스타일의 교차서술로 형상화된다.

 

 

이 재미진 소설을 읽으면서 호모 사피엔스 종의 남녀라는 개체는 어쩌면 지구인과 화성인처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시크한 도시여자의 전형 데시레에게 쇼핑은 백화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카탈로그로 하는 것이고 나중에 대금만 지불하면 된다고 철썩 같이 믿는 벤니의 촌스럽기 짝이 없는 선물이 먹히는 게 정말 경이로웠다. 다만, 연애의 과정에서 자극은 일회성일 뿐 반복은 아니라는 점을 벤니가 몰랐을 뿐이다. 데시레가 골라주는 셔츠를 입고 다니다가는 수많은 프러포즈를 받게 될 거라는 벤니의 푸념에 섞인 유머는 최고였다. 다만, 그 프러포즈의 주체가 여자가 아니라는 남자일 거라고.

 

<옆 무덤의 남자>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공간인 스웨덴을 배경으로,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이러저러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마당에, 시골 농장을 지키며 가업을 잇겠다는 전업농부 벤니의 사고가 어쩌면 고루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을 농장 일만 하며 살아온 벤니가 데시레의 서식처인 도시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데시레는 벤니의 중학교 시절 성적표를 보고 나서, 그의 뇌관을 폭발시킨다. 자신의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으며, 상대방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면서도 삶의 어느 순간에 통제불능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걸 데시레와 벤니는 몸으로 격렬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한참 책을 읽다 그런데 카타리나 마세티가 어쩌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평범한 연애소설을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는 성찰에 다다랐다. 호모 사피엔스는 홀로 살 수 없다는 이야기? 아니면 남녀 간에 서로 극복할 수 없는 그 놈의 지긋지긋한 성격 차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저 사랑하고 싶다는 그들의 감정이 아닐까 추론해본다. 상실로 정형화된 과거를 뒤로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사랑의 묘약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그렇게 우리는 슬기로운 (도구의) 인간’[Homo sapiens]이기 보다 사랑의 인간’[Homo amor]가 되고 싶은 거겠지.

 

, <옆 무덤의 남자>는 결말의 알쏭달쏭한 데시레의 황당한 제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데시레와 벤니의 2차전이 곧 출간될 속편 격에 해당하는 <가족무덤>(가제)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그러니 기대하시라. , 그리고 보니 나도 라캉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나는 시골쥐에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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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2012-04-1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잼 있었습니다~

레삭매냐 2012-04-23 12: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