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유작 1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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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論爭) [명사]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

 

이것이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있는 논쟁에 대한 정확한 정의다. 이번에 읽은 영국출신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문학비평가인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가 식도암으로 사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 모음집의 제목 역시 자신이 촉발시킨 여러 가지 논쟁을 연상시킨다. 자신이 책에서도 밝히다시피 무신론자인 히친스는 영국 포츠머스에서 태어나 미국을 또 다른 조국으로 삼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테레사 수녀,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헨리 키신저, 다이애나 황태자비, 에인 랜드 그리고 최근 사임한 베네딕트 16세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인물들을 혹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정치적 성향도 매우 복잡해 보이는데, 전통적으로 좌파 스탠스를 유지하면서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해대는 그야말로 전투적 사회 비판자라는 타이틀로 부르고 싶다.

 

모두 4부로 이루어진 히친스의 유고 에세이집에서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바로 세 번째 <외국 이야기>였다. 서문에서 작가가 애도한 소위 <자스민 혁명>을 촉발시킨 튀니지의 어느 이름 모를 청년의 죽음이 있기 전, 중동의 소국 레바논에서 조용하게 이뤄진 <백향목 혁명>으로 사실상 레바논을 점령하고 있던 시리아를 몰아낸 시민혁명 뒤에 도사린 신나치 운동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보 지식인답게, 미국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꼬일 대로 꼬여 버린 팔레스타인에서 사사건건 이스라엘 편을 드는 미국의 어리석은 행동을 더러운 늪에 끌려 들어가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재앙이라고까지 말한다. 주류 미국 사회에서 미국 외교의 최우선인 이스라엘 정책을 이렇게까지 비평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2002년 지금은 전임 대통령이 된 부시가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지명한 이란 방문기도 인상적이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이래, 중동의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한 이란을 직접 방문한 히친스는 현재 종교지도자들이 국가를 이끄는 신정국가 스타일보다 세속적 민주주의 시스템이야말로 급속도로 희망을 잃고 붕괴되어 가는 이란의 해답이라고 진단한다. 그가 직접 이란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 역시 거의 신으로 추앙하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것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래되는 상황을 육성으로 증언한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100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인적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물라들이 지속적인 출산장려를 유도해서 이란은 젊은 국가가 되었지만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가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그들이 원하는 자유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팔레비 샤가 추진하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기어이 완수한 이란 지도자들의 거짓말 역시 그의 주요 비판 대상이다.

 

그의 외국 이야기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아무래도 우리와 휴전선을 접하고 있는 나라 북한에 관한 것이다. 어떤 계기로 해서 이 동토의 왕국을 방문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북한에 대한 소개는 비교적 제3자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밤중에 인공위성을 통해 한반도를 본다면 남쪽은 그야말로 불야성이지만, 심각한 전력 부족으로 인해 그 북쪽은 암흑천지란다. 그리고 작가가 묘사하듯이 조지 오웰의 <1984>보다 더 한 통제국가, 더 나아가 모든 인민이 병영국가의 노예가 된 노예국가라는 지적은 통렬하기까지 하다. 노예국가의 기본은 최소한 백성은 굶기지 않는다는 것인데 북한 체제는 심지어 그런 국가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가 만난 가이드 혹은 안내원으로부터 들은 것에 기초해서 북한은 최악의 인종차별주의 국가라는 말도 빠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철저한 폐쇄주의를 고집하다 보니 외부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순혈주의에 집착한 한 개인의 의견일 수도 있는데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비약해서 확대해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논쟁에 대한 균열은 <두목 우고>에서 극대화된다.

 

히친스는 지금은 작고한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에 대한 글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스페인 지배에서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 장군의 유해를 무덤에서 꺼낸 차베스를 정치적 시간(屍姦)증에 빠진 인물이라고 폄하한다. 차베스와의 대화 중에 그가 제기하는 미국의 달 착륙 음모론을 심각하게 지적하면서 한 국가의 수반을 거의 또라이로 몰아가는데 전념한다. 어떤 지도자고 흠결이 없는 사람이 있었던가. 자신이 조국으로 선택한 나라의 전임 대통령 역시 똘기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았던가. 크리스토퍼 허친스는 왜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의 미국 내 자회사인 시트고(CITGO)를 통해 뉴욕을 위시한 미국 전역의 빈민들에게 난방유 할인 프로그램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세계 최강의 국가라는 미국이 제3세계 국가 중의 하나인 그야말로 가진 거라고는 석유 하나 밖에 없는 나라와 정치적 시간증에 빠진 엉터리 지도자로부터 그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직면하기 두려웠던 게 아닐까? 물론 프로파간다 전술적인 차원에서 차베스의 석유 1억 배럴이 그 이상의 선전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작가가 도발한 논쟁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외국 이야기에서 다음은 문학 비평가로서 히친스의 일면을 들여다 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새로운 전기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는다. 전투적 무신론자답게 미국을 신정국가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프랭클린의 인본주의적 모습을 보라고 일갈한다. 그가 꼽은 신생국가의 진정한 리더로 묘사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해서도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는 다른 실체를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링컨이 노예해방령을 선포하고 내전에 돌입하기 전에 그 자신이 폭군 아버지의 노예였던 시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비록 한때 인종주의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 위대한 대통령이 끊임없이 흑백의 평등을 공부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 <링컨>에서 헌법을 고치기 위해 반대파인 민주당 의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수하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협상의 중요성을 숙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뉴프론티어 정신을 외치며 젊은 미국, 강한 미국의 상징이 된 JFK에 이르러서는 한 걸음 더 나간 과격한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바드 출신 전쟁영웅으로 사십대 대통령으로 이제는 신화가 된 JFK가 실제로는 대학시절 무절제한 성관계로 비롯된 만성 요도염으로 대통령 임기 내내 각성제 암페타민을 필두로 다양한 종류의 약물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폭로한다. 그가 젊은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활기차고 멋진 이미지 뒤에는 이런 아름답지 않은 사실이 있었노라고 폭로한다. 솔직히 바람둥이로 악명 높은 JFK에 얽힌 다양한 스캔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불편한 진실은 JFK 신화를 허물기 시작한다. 과연 이렇게 각성제와 진통제로 엉망이 된 JFK가 대통령 직무 수행에 있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 히친스가 지적하는 핵심이다. 물론 그가 리뷰한 <미완성의 삶>의 저자 로버트 달렉을 조롱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역시 책쟁이로서 가장 관심이 가는 히친스의 글은 나보코프의 <롤리타> 서평이었다. 그의 주장대로 책을 읽는 나이에 따라 그 책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고 할지라도, 험버트 험버트를 강간범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 출신 노대가의 작품을 마음껏 조롱하면서, 그는 나보코프가 소설의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심어 놓은 중의적인 표현들을 굳이 해석하려는 수고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이 어린 뮤즈에 대한 중년 신사의 성적 갈망을 프리송’(frisson)이라고 비하하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일갈 때문에 아직 읽지 않은 <롤리타>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길까봐 두려울 정도로 신랄한 비판이었다.

 

<논쟁>을 읽으면서 작고한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대단한 글쟁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떤 주제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서양에서 글 좀 쓴다 하는 먹물들이 그렇듯, 빈번한 라틴어 사용은 눈에 거슬렸다. 가톨릭에서도 잘 쓰지 않으려고 하는 사어(死語)에 대한 식자층의 미련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 논쟁적인 주제를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쪽만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히친스 같은 고수도 그럴진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절묘한 균형감각과 판단력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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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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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몇 년 만의 만남이던가. 5년 만에 한승원 선생의 신작 <겨울잠, 봄꿈>과 만날 수가 있었다. 내가 읽은 선생의 첫 번째 책이 정약용 선생에 대해 쓴 <다산>이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녹두장군 전봉준과 만나게 됐다. 한 선생이 말미에 적은 것처럼, 한 커트 단위의 짧은 구성 때문인지 우리가 의도적으로 잊고 있던 백여 년 전 역사의 기록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단박에 읽어냈다.

 

갑오년(1894)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기치로 봉기한 동학군은 그야말로 벌떼처럼 호응하는 민중의 힘으로 호남 일대를 석권한다. 호남 제일성이라는 전주성을 위시한 호남 곳곳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이 실시되어, 동도를 따르던 이들이 꿈꾸던 공화세상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더 이상 민중을 제어할 힘이 없던 지배계층이 바다 밖의 호랑이와 늑대를 불러들여 그들의 희망을 꺾어 버린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의 힘을 빌려 한양으로 진군하던 십만 동학군을 우금치 고개에서 전멸시켜 버린 관군은 이전의 전주화약을 무효로 돌리고, 동학군을 뿌리째 섬멸하는 이른바 청야작전에 나선다.

 

일패도지하여 예전에 수하에 있던 김경천의 예언대로 순창 피로리로 숨어든 녹두장군. 마치 겟세마네에서 자신을 배신한 가룟 유다와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 이채롭다. 녹두장군은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배신자 김경천에게 넘겨주려고 호랑이굴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다. 이건 마치 구리산에서 패배하여 마지막 해하싸움에서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던 항우의 최후를 떠올리게 한다. 녹두장군에게 체포와 이어지는 한양으로의 압송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팩션의 구성을 따르는 <겨울잠, 봄꿈>에는 이토 겐지라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 배치된다. 조선 출신으로 탐관오리의 학정에 못 이겨 일본에 밀항한 조선인 천종관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가 되어 몸과 영혼을 모두 팔아 먹은 실존적 존재로 등장한다. 새로 거듭난 이토 겐지는 녹두장군의 압송을 주도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회유하여 그가 신봉하는 일본제국의 충성하는 침략의 대리인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에 필연적으로 따른 녹두장군의 인간적 고뇌, 다시 말해 이제 겨우 마흔의 나이로 죽기에 너무 아까운 나이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근대판 유다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으리라.

 

한양으로 향하는 압송 길에서 장군을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은 이토 겐지의 달콤한 유혹만이 아니었다. 발등이 으깨지고, 정강이가 부서진 장군을 가마에 태운 가마꾼들이 용도가 다해질 때마다 그들을 무참하게 처치하고, 장군과 일행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민가를 약탈하는 모습은 장군을 더욱 더 괴롭게 만든다. 자결을 우려해서 입에 재갈을 물리고 국밥이나 먹거리를 미음처럼 씹어 그에게 공급하는 건 치욕에 다름 아니었다.

 

순창 피로리에서 시작되어, 집강소 설치를 거부하고 끝까지 싸웠던 나주성의 민종렬과의 조우, 한때 파죽지세로 점령해서 결국 정부와 화약을 이끌어낸 전주성을 돌아 자신이 사술을 부려 적의 총탄을 피할 수 있다는 궁궁을을 부적을 썼지만 결국 일본군의 압도적인 기관총 화력에 패주한 우금치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은 쉼 없이 내달린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는 교과서에서 피상적으로 접했던 동학, 집강소 그리고 폐정개혁 같은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낱 서당 선생에 지나지 않았던 녹두장군이 왜 조병갑 같은 탐관오리에 맞서 싸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한 번 호랑이 등에 올라탄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을 때까지 내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모두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이유가 바로 밥에 대한 싸움이었노라는 그의 일갈이 쟁쟁하다. 모름지기 나라님이라면, 현대의 위정자라면 백성이 마음 편하게 밥을 먹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먹을 밥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 꼴은 도저히 못보겠다는 생각이 녹두장군을 봉기로 이끌었던 게 아닐까. 아니 모두가 평등한 공화세상에서 적어도 슬픈 밥은 없게 만들자는 것이 장군의 유지였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재는 그가 꿈꾸던 다음 세상의 이상이 현실화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가 있을까.

 

압도적인 군세를 바탕으로 정부를 압박해서 얻어낸 화약의 결정체인 집강소 설치는 세계 최악의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 백성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소설에서도 언급된 만적, 임꺽정 그리고 홍경래 등으로 이어지는 민중봉기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보수사회에서 주민자치 단체인 집강소를 통한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은 외세의 개입과 동학운동의 실패 그리고 녹두장군의 죽음으로 봄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녹두장군이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여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일시적으로 굴종하고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그 모든 가능성을 부인하고 녹두장군은 자신의 죽음으로 썩어 빠진 조정의 현실을 만방에 알리고, 청사에 마지막 조선 사람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실존하는 녹두장군의 마지막 사진이 책의 앞뒤에 실려 있다. 작가는 녹두장군의 실질적인 마지막 순간에 대한 절묘한 기술을 통해 전봉준이 왜 그 숱한 수모를 견디며 죽기 위해 살아남았는지 설명한다. 118년이 지나도 여전히 불의가 사라지지 않는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장군의 의연한 죽음이 갖는 의미를 <겨울잠, 봄꿈>은 조용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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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1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샘깊은 오늘고전 15
유성룡 원작, 김기택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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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에서도 사서(史書)를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교훈으로 삼아 현세에는 다시금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21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당시 현장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수행하고 지금으로 치면 국방장관을 역임하면서 전쟁을 치른 서애 유성룡 선생이 직접 남긴 기록인 <징비록>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교훈은 그 역사적 가치를 훨씬 뛰어 넘는다고 말하고 싶다.

 

당시 선조 임금의 통치 아래 있던 조선은 1392년 개국 이래, 200년간 이렇다 할 큰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서 문약해질대로 문약해진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센고쿠 시대라는 전대미문의 내전기를 겪고, 66개의 사실상의 국가로 나뉘어져 숱한 전쟁을 치르며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토요도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일본 전국을 통일한다. 내친 김에 토요도미 히데요시는 이웃인 조선과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일종의 과대망상에 빠져 전쟁 준비에 매진하게 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언제라도 자신에게 등을 돌릴지 모르는 지방 영주들의 힘을 외부로 돌리려는 내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통일전쟁에서 공을 세운 가신들에게 나누어줄 영지 부족도 전쟁의 한 가지 이유로 사료된다.

 

지난 천년 동아시아 삼국이 모두 참가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전쟁인 임진왜란의 싹은 이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일본은 숱한 전쟁으로 단련된 역전의 용사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서양을 통해 유입된 조총(鳥銃)을 보병부대에 보급하고, 이를 이용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격심한 내전을 통해 쌓았다. 그런 반면, 장기간의 평화로 조선은 외부의 침략에 대응할 실제 전력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조선의 사대부는 문무양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개국 이래 문신 우대 정책으로 무관의 자질은 문관의 그것에 비해 훨씬 떨어졌다. 전쟁 수행 경험이 없는 문신이 지휘하는 군대는 전쟁 초기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당장 전쟁에 동원할 장정 또한 실제 동원할 수 있는 장정과 장부상의 그것이 달랐고 이런저런 사유로 병적에서 빠지는 인원 또한 엄청났다. 부패한 조정과 최고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선조의 우유부단은 전쟁 초반에 전쟁의 참화를 막을 수 있는 숱한 기회들을 헛되이 날려 버렸다.

 

전쟁에 앞서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들을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임박한 일본의 침략을 대비할 수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일본이 곧 침략할 것이라는 소수 의견은 무시되었고, 그나마 조선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한 축성 등은 대전략의 부재로 별무소용이었다. 그리고 1592413일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의 1군이 마침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을 때, 조선에서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병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압도적인 군세를 자랑하는 적 앞에서 각 지역의 군지휘관들은 아예 싸워 보지도 않고 도주했으며, 당시 조선 제일의 명장이라는 이일과 신립은 상주전투와 탄금대전투에서 적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하면서 수도인 한성을 전쟁 개시 단 20일만에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무능력한 군주인 선조는 국가의 근간인 백성은 외면한 채, 개성과 평양 그리고 의주를 넘어 극진한 사대의 예로 모시던 명나라로 망명까지 시도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 아닌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침공한 북한군을 격퇴하고 있다고 공포에 떨던 수도 서울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자신들은 기차를 타고 수도를 버리고 도주한 이승만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그리고 두 번째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비극만 두 번 반복되었다.

 

서애 선생의 <징비록>을 읽으면서 가장 분노했던 장면 중의 하나는 피난길에 나선 선조 일행을 대하는 백성들의 태도였다. 국가가 평화로울 적에는 그렇게 위세를 부리던 지배 계급이 국가 위기 상황이 되자,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국가지도자마저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거의 멸망해 가던 국가를 지켜낸 것은 그런 비겁한 모습의 위정자들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아무런 시혜를 받지 못하던 백성들이 의연하게 일어선 의병과 서애 선생이 파격적으로 등용한 권율과 이순신 그리고 어찌되었던 간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에 개입한 명의 원군으로 비로소 전쟁의 국면을 바꾸게 된다. 물론 원군으로 전쟁에 참전한 명군의 수탈 역시 일본군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명군은 참빗, 일본군은 얼레빗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활발하게 전개하며 보급선이 늘어진 일본군을 유격하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병참의 근간이 되는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함락시키기 위해 수륙병진한 일본 수군을 바다에서 무찌른 이순신의 활약이야말로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일본의 침략을 조공국인 조선에서 차단하겠다는 차원에서 참전한 명군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고 할까. 그들의 원조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왜군 격퇴에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명군의 참전으로 평양과 개성 그리고 수도 한성을 차례로 수복하면서 전쟁은 일본이 주도하던 초기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전란으로 전 국토와 백성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가운데, 명군이 먹을 식량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승 유성룡을 비롯한 조선 조정의 노력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일상화된 당파 싸움과 무능력으로 전대미문의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검토해 본다면 그들이 명군에게 당한 수모는 어쩌면 자업자득일 지도 모르겠다.

 

<징비록>은 겨레의 성웅으로 일컬어지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전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미 무고로 일개 병사로 강등되었던 이순신 장군의 전력을 볼 때, 어쩌면 노량해렵이 자신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갑옷을 입지 않고 출전했다는 야사가 보다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못난 임금 선조가 전쟁이 끝난 다음에 행한 행동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임홍빈 씨가 권말에서 인용한 월탄 선생의 소설 <임진왜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후대가 어떤 실수를 반복하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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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일본의 사례, 1945-2012년 메디치 WEA 총서 1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문정인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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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만나게 되는 계기는 참 다양하다. 일본 외교관 출신의 방위대 교수 출신 지식인인 마고사키 우케루의 신간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는 최근 윤여준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의 원제인 <(일본)전후사의 정체>라는 제목을 보면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어떻게 해서 자주적 노선을 상실하고, 미군 점령기를 거쳐 거의 미국의 꼭두각시 같은 나라가 되었나 하는 것이 마고사키 교수가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룬 내용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리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소련을 비롯해서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치열한 냉전 시대를 경험한 외교통인 마고사키 교수는 일본이 어떻게 해서 대미 정치적 추종노선을 우선하게 된 시점이 냉전시대가 아닌 전후에서 비롯되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치욕스러운 태평양전쟁 패전 후, 천황제 존속과 전범 처리 문제를 일본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수장이자 군신(軍神)이자 사실상 일본 점령총독으로 부임한 더글라스 맥아더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사실 자신이 도발한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이런 주장은 어떤 명분도 없는 것이었다.

 

한편 일본을 미국의 속국화하는 영어 공용어화와 달러 사용 같은 미군의 초기 점령 초안을 외무대신으로 맹활약했던 시게미쓰 마모루의 노력으로 무산시켰다고 마고사키 교수는 증언한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자주노선 세력과 아니다 그래도 미국의 주장대로 패전국 일본을 따라가야 한다는 추종노선이 대립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명확하게 지적한다. 미국은 다양한 공작활동을 통해 패전부터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자주노선을 지향하는 일본의 역대 정치 세력을 무력화시켰다고 기술한다. 그 정점에는 미국의 사주를 받는 일본 언론과 도쿄지검 특수부의 활동이 있었다. 자주노선을 주창하는 유력 정치인에 대한 비리를 언론이 흘리면, 도쿄지검 특수부의 예리한 칼날이 그들을 표적으로 해서 치명상을 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주노선파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명이다. 어쨌든 주요 희생자로는 처음에 등장한 시게미쓰 마모루를 위시해서, 하토야마 이치로 그리고 70년대 일본 정계를 파란으로 몰고간 록히드사건의 주역 다나카 가구케이 전 수상의 구속 등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로 대표되는 주일미군 주둔에 대한 역사적 시발점 역시 일급전범으로 전쟁 발발과 진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쇼와 천왕의 조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도 빼놓지 않고 있다. 원래 일본의 경제력을 그들이 침략했던 우리나라와 베트남 혹은 필리핀 수준 이하로 동결한다는 미군의 방침은 한국 전쟁의 발발로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세계대전의 주범인 독일과 일본의 군국화의 재발을 막기 위해 경제부흥을 저지한다는 미국의 전략은 일본의 이웃인 한국전의 개시로 인해 극적인 전환을 맡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소련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의 첨병으로 미국은 일본의 역할을 변경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일본 경제 부흥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 대전략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이 마고사키 교수의 냉철한 지적이다.

 

쇼와 시대의 요괴로 알려진 만주국의 설계자이자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갇혀 있던 기시 노부스케는 감옥 안에서 전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냉전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냉전이 일본과 자신과 같은 전범들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냈다.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지만,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이었던 일본의 엘리트들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최근 북핵 문제와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전범이 안치된 신사참배, 끝없는 극우적 발언 때문에 주변국과 긴장이 조성된 국면에서 다시 한 번 미국이 개입해서 일본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장면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들은 수평적 미일 동맹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지 않은가. 마고사키 우케루 교수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답게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는가>에서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미국이 어떻게 전후 70년간 일본을 사실상 지배해 왔는가를 증언한다. 저자의 그런 노력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역시 일본 학자답게 미국의 세계전략에 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과 자주노선 강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에서 이 책의 한계가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한국전에서 평양탈환의 역사적 시점을 오기(誤記)한 점(123)을 보면, 역사적 사실의 확인 부분에서 조금 미진한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를 읽으면서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공존을 위해, 주변국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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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반전 : 호기심의 승리 지식의 반전 2
존 로이드 & 존 미친슨 지음, 이한음 옮김 / 해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우리나라에 구전되는 대표적 속설 몇 가지를 읽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질식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전혀 과학적 근거 없는 대표적 속설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온 걸 부인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영국의 유명한 퀴즈쇼 프로그램인 에서 기원한 <지식의 반전> 역시 우리가 그간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너 그거 알아? 하는 식의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생각나는 건 나만이 아니겠지 싶었다.

 

이 책의 부제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생적으로 호기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자연현상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보자. 물은 0도에서 언다고 한다. 사실일까? 순수한 물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가능한 일이란다. <지식의 반전>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 막을 올린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에도 명쾌한 답변을 내준다. 오호, 이런 식이라면 수백 년 동안 진행되온 논쟁을 순식간에 종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해 한미FTA가 발효된 이래,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일 중의 하나가 된 오렌지가 원래는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어쩌면 우리가 고집스럽게 생각하는 오렌지의 오렌지 색깔은 에틸렌으로 처리된 사실을 알면 더 이상 오렌지가 먹고 싶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에틸렌 처리된 오렌지가 무해하다고 하지만 어쩐지 찜찜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 가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전 전기제품인 전자레인지가 음식을 데우거나 조리하는게 아니라 단순하게 마이크로파를 이용해서 물 분자를 자극해서 뜨거워진 물로 음식을 익힌다는 사실도 전혀 새로운 정보였다.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상에 이런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을 줄이야.

 

우리의 몸에서 가장 흔한 금속 원소가 칼슘이라는 건 어쩌면 상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뼈 속에 함유된 칼슘이 1년에 20퍼센트씩 주기적으로 교체가 되고, 50세가 되면서부터는 빠져 나가는 비율이 높아져 결국 노인이 돼서는 칼슘 부족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어떤 정보는 그저 재미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정보는 우리 실생활에 매우 유용한 정보로 다가온다.

 

<이상하고 특별한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장에서도 놀랍고 새로운 사실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단세포 동물의 대명사로 부르는 아메바가 사실은 우리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구한 동물로 소개된 투구게 역시 인상적이었다. 예의 장을 읽다 보니 동물 혹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라틴어 지식이 없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이 분야는 우리네보다는 서구 사람들에게 유리하지 않을까.

 

지리 분야에서도 <지식의 반전>은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최남단이 희망봉이 아니라는 사실도,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게 형편없이 패배한 프랑스군이 사실은 역사에서 승률이 가장 높은 군대라는 사실도 전혀 새로운 정보였다. 영화나 책을 통해 역사상 그리스 출신 대왕이라던 알렉산드로스 역시 그리스가 아닌 발칸 반도의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핀란드 전선에서 핀란드 보병들이 소련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사용한 몰로토프 칵테일이 사실은 칵테일 이름이 아니라 당시 스탈린 정권의 외상이자 마지막 볼셰비키 몰로토프를 모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책이 전하는 지식의 반전은 끝이 없다.

 

책의 말미에 실린 역자의 후기를 보고서 인터넷으로 예의 퀴즈쇼 프로그램인 을 유투브로 시청해봤다. 2003911일에 첫 방송된 <애덤> 에피소드를 봤는데, 사회자와 네 명의 패널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책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재밌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다양하면서도 재밌는 주제들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다 보니, 조금은 딱딱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의 일반적 무식을 깨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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