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없는 남자 1
로베르트 무질 지음, 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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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천년의 마지막 즈음에 독일에서 99명의 저명한 소설가, 평론가 그리고 학자에게 20세기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 100권을 선정했다. 그 중에서 1위에 오른 작품은 독일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만이나 프란츠 카프카가 아닌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오스트리아 출신 로베르트 무질이 쓴 <특성 없는 남자>라는 작품이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제치고 당당하게 독일 문학 1위에 올랐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에 북인더갭을 통해 출간된 <특성 없는 남자>를 통해 20세기 독일 모더니즘의 고전이 된 예의 작품과 만날 수가 있었다. 아 그런데 모더니즘 소설이라고? 엄청난 분량만큼이나 이 책을 읽을 독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지어다.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클라겐푸르트 출신의 로베르트 무질은 필생의 역작인 <특성 없는 남자>를 1921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해서 1942년까지 계속해서 썼고, 결국 미완성 원고로 남긴 채 작고했다. 무질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울리히는 명백하게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이전 세기에 유럽 대륙을 질풍노도처럼 누볐던 영웅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기병학교에 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였으나, 자신이 그저 한낱 모험을 쫓는 젊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문명을 선도하는 기술자의 길에 도전한다. 기술자로서 자유나 광활한 사유보다 예의 전문성에 매달리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이번에는 수학자가 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주변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분석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 울리히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가진 특성을 포기함으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현세의 기쁨을 포기한다고 선언한다. 작가는 32살의 청년 울리히를 그의 창조자 로베르트 무질에 그대로 등치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문학적 감성보다는 규율 혹은 논리적 사고를 가진 저자가 어떻게 해서 소설가가 되었을까 라는 점이 궁금하다.

 

‘결정적 사유’의 개척자답게 울리히/로베르트 무질은 독자가 기대하는 평범한 서사 구조가 아닌 울리히 개인의 내부에 침잠한 광활한 사유를 무한대로 퍼올리는데 주력한다. 유럽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 일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3년 8월, 그가 살던 카카니엔(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수도 빈(Wien)은 다양한 사상, 철학 그리고 예술의 중심지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손꼽히는 프로이트를 필두로 해서, 비트겐슈타인, 클림트, 실레, 쇤베르크로 대변되는 사실상 유럽의 문화수도였다. 수도 빈이 품고 있던 이런 문화적 다양성은 주인공 울리히가 만나고, 소설의 전개에 따라 차례대로 소개되는 주변 인물들과의 접점을 통해 로베르트 무질이 구사하는 사유 속에 그대로 녹아든다.

 

소설 속의 울리히는 스스로에게 현실감각을 박탈하고, 특성 없음을 자신의 캐릭터로 삼기 시작하면서 현세의 어떤 확실한 기쁨을 제거해 나간다. 과연 어떤 특성도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특성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성이 되는 건 아닐까? 울리히가 세 명의 부랑아와 마주쳤을 때 모든 사물이 경계(적대)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유의 전개도 흥미롭다. 적대적 개념쌍이 아이러니하게도 존재의 이유가 된다니, 발상의 전환이 놀랍기만 하다. 세 부랑아는 그런 차원에서 그에게 적대적 위협이 아닌 ‘구원’이었다.

 

소설의 구심점 중의 하나로 작용하는 저물어 가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자는 다소 모호해 보이는 ‘평행운동’이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카카니엔의 황제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신사조에 대항하는 구질서 회복 운동 정도로 규정해야 할까. 개혁에 반동해서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의 이 운동은 주창자인 라인스도르프 백작 또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없다. 어쩌면 수십년 뒤에 이웃나라 독일의 병합되어 자발적인 병영국가(garrison state)의 원형질을 제공하는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앞선 예단일까.

 

개인의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해, 가정, 지인, 병리적 사회현상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로베르트 무질은 끊임없이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다. 확실히 서사보다는 사유에 방점을 찍은 그의 기술은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이 또한 이 탁월한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인 것일까? 인내를 가지고 끈질기게 읽어 가지만,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저자의 복잡한 사유의 전개를 쫓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 번의 독서만으로는 무질의 사유를 이해하기란 난망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너무 세세한 것에까지 ‘결정적 사유’를 발동시킨다면 독서의 진도가 나가지 않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특성 없는 남자>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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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번지는 곳 독일 In the Blue 13
백승선 지음 / 쉼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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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없이 그리고 여행 없이 살 수 없다는 백승선 작가의 13번째 이야기, <사색이 번지는 곳 독일의 책장>을 넘기며 슬며시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독일에 대한 나의 냉온탕 경험이 배어 있어서일까. 책 내용에 앞서 목차가 궁금했다. 내가 가본 단 두 개의 독일 도시 이야기가 있나 하는 마음에. 역시 빠질 수 없는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수록되어 있었지만, 온탕 경험의 배경인 뮌헨이 빠져 있어서 자못 아쉬웠다.

 

독일 이야기의 일번타자는 한자 동맹의 중심지 브레멘이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편하게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책에 소개된 도시 브레멘의 이모저모를 여행 블로그를 통해 정말 내가 가본 것처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 브레멘의 상징인 그림 형제의 동물음악대 조각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본 블로그의 주인장들도 어김없이 다른 관광객들과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며 그 멋진 사진을 찍었으리라. 그리고 보니 백승선 작가는 절대 자신이 들어간 사진은 책을 통해 보여 주지 않는구나. 아마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서일까.

 

브레멘 시의 수호자로서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롤랜드 상에 대한 이야기도 자못 흥미진진하다. 전 유럽을 정복한 군사적 천재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타국의 미술품 약탈자로도 악명 높은 나폴레옹이 예의 롤랜드 상이 마음에 들어 자국으로 옮겨 가려 했지만 브레멘 시민들의 기지로 현 위치를 고수하게 되었다고. 하마터면 루브르 박물관에서나 볼 뻔한 운명의 롤랜드 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된 수도 베를린이다. 나의 독일 냉탕기의 주인공이었던 베를린. 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지인이 꼭 한 번 가봐야 한다는 말에 두말없이 달려간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터키 베르가몬에서 통째로 뜯어 왔다는 신전의 규모에 그만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워낙 박물관 구경을 좋아하는지라 페르가몬을 위시해서 무제움스인젤(박물관 섬)의 곳곳에 포진한 박물관을 섭렵한 추억이 돋는다. 지나가는 독일 아가씨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가 그 아가씨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떨어뜨린 추억도. 물론 내가 아니라 카메라의 주인이 떨어뜨렸었지 아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버지의 날 휴일을 맞아 상점이 곳곳이 쉬는 바람에 사고 싶었던 버켄스탁 샌들을 결국 사지 못했었지. 그래도 알렉산더플라츠 주변을 빙빙 돌며 신기해 보이는 TV타워를 올려다보며 미처 올라갈 생각은 못했었다. 그리고 독일 의사당 옆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요란스레 몰려든 관광객들과 어울려 구 동독군복 혹은 소련군복을 입은 호객꾼들과 어울려 사진 찍는 이들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기억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떠올랐다. 유태인 기념비는 보스턴이나 혹은 아우슈비츠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숨길 수 없는 지난 과거를 계속해서 반성하고 그 피해를 보상하려는 독일 사람들의 양심을 반영하는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의 얼굴 형상을 한 1만 여개의 철조각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베를린 행 ICE 기차 안에서 아주 잠깐 만난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역사상 최악의공중폭격으로 그야말로 도시가 결딴난 상처를 가진 도시로, 현재 작센 주의 수도라고 한다. 왜 그 때 드레스덴에 들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나중에 미국 출신의 작가로 드레스덴 대폭격을 직접 체험한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에서도 만났던 드레스덴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훗날 다시 짓기 위해 폐허가 된 프라우엔 교회의 돌들에 번호를 매겼다는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중세 변화의 시초가 되었던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수도사 마르틴 루터 동상이 이 교회 앞에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드레스덴은 신교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처럼 정말 볼 것 없지만 그 유명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게 되는 로렐라이 언덕보다, 뤼데스하임의 아이스바인이나 내가 좋아하는 리슬링 그 중에서도 아우슬리스 같이 달달한 와인을 즐기며 라인강에 위치한 성들을 구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구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된 하이델베르크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코스다. 칸트, 헤겔, 야스퍼스, 막스 베버를 위시한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해서 괴테 같은 대문호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인사들이 남긴 흔적과 일화로 넘쳐나는 중세 대학 도시! 오죽했으면 이웃나라 일본에 본토 철학자의 길을 딴 짝퉁 이름의 길이 다 있을까.

 

, 그리고 보니 깜빡한 도시가 하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업적을 기리며 해마다 도서전이 열린다는 명실상부한 유럽연합(EU)의 수도 프랑크푸르트도 빠질 수 없다. 10월이면 악터버페스트와 책을 좋아하는 책쟁이로서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행을 꿈꿔 본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온탕 추억의 도시 뮌헨이 빠진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내가 가본 곳에서는 가본 곳대로의 추억을 되살릴 수가 있어 좋았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못한 곳대로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는 사색의 시간들이었다. 책읽기가 책 자체가 아니라, 그 책을 통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번 사색의 번짐은 나에게 만족 그 자체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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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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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라는 영화를 봤다. 미국의 유명한 스릴러 작가 마이클 코넬리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영화 속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링컨 차를 타는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다. 이 멋쟁이 변호사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부유한 의뢰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법정 스릴러 영화였다. 문제는 의뢰인이 억울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리고 의뢰인은 철저하게 이 유능한 변호사를 이용해 먹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실감나게 만들어주는 멋진 영화였다. 마침내 변호사는 법의 테두리 언저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이 악당을 응징한다. 내가 보기에 변호사의 행위는 통쾌했는데 과연 그가 생각한 정의가 법이었을까? 미국 법학계의 전설로 불리는 스티븐 러벳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에서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가라고.

 

초반에 나오는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악명을 떨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에피소드에서 이 책의 원제인 정직의 중요성을 러벳 교수는 강조한다. 자신이 아칸소 변호사였던 젊은 대통령은 탄핵위기에 몰려 사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할 유능한 변호인을 선임한다. 문제는 클린턴이 작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는 심지어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줄 변호인에게까지 거짓말을 했다. 결국 케네스 검사의 리포트를 통해 치욕적인 사실들이 폭로됐고, 대통령 직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사실 스캔들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빌 클린턴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러벳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사법 시스템의 이모저모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사실 우리나라 같이 보통의 사람이 사법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법이란 그저 다른 세계의 일처럼 들린다. 그래서 정작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되는 경우,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 목장의 결투>의 주인공인 와이어트 어프 형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이 사건에서 우리는 난폭한 무법자들을 보안관 어프 형제가 멋진 권총 실력으로 제압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건 직후 이 용감한 형제는 바로 살인죄로 체포됐고 법정에 서게 됐다. 저자는 고도로 훈련받은 이들만이 제대로 된 법정 증언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본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에서도 결정적 순간에 대한 기억력이 62% 밖에 되지 않는다고 잘난 셜록이 말했다. 법정에서 사건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이 가진 관점, 시야, 예상, 편견 그리고 희망 같은 다양한 요소로 진실을 말하는 증인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반대심문이야말로 과거의 재구성에 있어 중요한 법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바로 뒤따라 나오는 글은 6년 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인지오류에 대한 저자의 냉철한 분석이다. 이 사건은 총격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조승희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저자는 그런 인종/민족적 관심이 아니라 사건의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더 큰 재앙을 초래한 경찰의 인지오류를 지적한다. 사건 초기에 경찰은 체계적인 방식대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탐색만족오류에 빠져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진짜 범인을 방치해둔 것이 범인에게 2차 총격을 시행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주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은 <사법체계가 야구라면 판사는 심판>이다. 무척이나 야구를 좋아하는데, 나도 직접 본 경기를 예로 들어서인지 정말 쏙쏙 이해가 갔다. 20051012,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인 US 셀룰라 필드에서 LA 에인절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이 벌어졌다. 9회 말 현재 스코어는 1:1 동점 상황 그리고 에인절스에게 첫 경기를 내준 화이트삭스는 홈에서 이 경기마저 내준다면 월드시리즈 진출은 물 건너 가는 상황이었다. 이미 투아웃 상황에서 AJ 피어진스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피어진스키는 마지막 공을 헛스윙을 하고, 에인절스 수비진은 이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덕아웃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에딩스 주심은 아웃 판정을 하지 않았고, 약삭 빠른 피어진스키는 1루까지 내달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선수가 아닌 심판이 플레이어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면 주심은 다른 부심이나 혹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아웃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대로 인플레이 상황인지 물었어야 했다. 이 플레이 하나로 화이트삭스는 기사회생하며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게 됐다. 오심도 야구 경기의 일부라지만, 사법체계에서는 심판/판사의 오심으로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러벳 교수는 경고한다.

 

판사들의 연봉 인상 주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한 쪽 편에 치우친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사실 공직에 복무하는 판사의 월급이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사법집행을 맡은 판사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보상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단순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호사들의 직업 불만족도를 지적하면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실을 지적한다. 반면, 연방판사들은 독립적인 법질서 수호를 위해 탄핵과 정치적 간섭 혹은 보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준비되어있다. 그리고 예전 로마 시대 공직자들이 그랬듯이 물질적 보상이 아닌 시민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여전히 판사직을 희망하는 젊고 유능한 변호사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미국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사법체계란 정말 따분하고 지루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재밌고 신선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같은 법에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생활에 유용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반가웠다. 여전히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지배하는 원더랜드에 살고 있지만, 공명한 디케의 눈이 우리를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리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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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 이현수 장편소설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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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현충일이었다. 63년 전, 한국전쟁에서 그리고 그보다 앞선 독립운동 과정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을 다시 한 번 새겨 보는 시간에, 나는 이현수 작가의 <나흘>을 읽고 있었다. 미국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노근리 학살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나흘>의 힘은 정말 위력적이었다. 사실 그동안 짧은 뉴스를 통해 피상적으로만 접해 오던 노근리 학살사건의 실상을 소설로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W.G. 제발트의 주장대로, 문학의 순기능이 제대로 발현되었고나 할까.

 

저자가 말미에서 밝힌 대로, 노근리 학살만으로는 서사의 진행이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반세기 전에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일어섰던 동학혁명에서 시작해서 국권상실, 식민지 지배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는 그야말로 치열했던 한국 현대사를 소설 <나흘>은 관통하고 있다. 양세계보를 중시하는 내시 가문 출신의 김진경은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황간 출신의 다큐작가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그녀에게 황간/노근리라는 공간은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장소로 등장한다. 하지만, 연어가 자신의 뿌리를 거부할 수 없듯이 그녀 역시 소설적 장치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와 모두가 숨기고 싶어하는 19507월의 노근리의 진실을 파헤치는 임무가 주어진다.

 

제발트의 조국이자 패망한 독일 사람들이 그랬듯이, 당시 노근리 학살을 직접 체험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찢어 버린다. 진경의 끈질긴 추적 끝에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하는 사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이현수 작가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두 세대를 건너 뛰어 내시 가문의 양자로 들어와 이제는 역사의 증인이 된 김태혁에게 진실을 밝히는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한다. 모든 소설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진경과 그녀의 할아버지 태혁의 교차되는 서사 구조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노근리 학살사건에 대한 사실감과 집중도를 극대화시킨다. 물론, 중간 중간에 끼어드는 부정확한 기억 혹은 원한에 의한 의도적 왜곡도 있지만 도대체 노근리의 쌍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진실 탐구의 여정인 쉼 없이 계속된다. 진경이 없었더라면, 황간 사람들의 태생적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온 다큐팀만으로는 진경이 소설에서 파헤쳤던 것처럼 사실의 본질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부채의식처럼 남은 상호간의 죄의식 때문에, 집단적 기억상실로 처리된 과거사는 더더욱 주민들의 발목을 잡는 장치로 작동한다.

 

개인적으로 전쟁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이현수 작가가 다룬 한국전 초기의 상황에 대한 기술은 자못 흥미를 끈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군세를 얕본 미군의 판단 착오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대전에서 막겠다는 윌리엄 딘 소장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자신마저 북한군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북한 정규군 일부가 피란민으로 위장해서 후방을 교란한다는 첩보 때문에 전쟁 당시 한국에 대해 무지한 미군은 양민과 북한 게릴라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침내 노근리 쌍굴의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당시 기록을 보면 여자와 아이들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는 명확한 명령이 기재되어 있다. 도대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미군은 여자와 아이들도 모두 북한군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최소한의 상식도 먹히지 않는 전쟁의 비참함이 느껴졌다.

 

예의 노근리에서 지옥 같았던 나흘을 보낸 이들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의 행로를 걷게 된다. 피해자였던 이들은 총상과 화상으로 신체가 훼손되어 자발적으로 격리된 삶을 살거나, 살기 위해 해서는 안될 짓을 한 업보로 폐인이 되거나,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의 한 페이지를 삭제해 버린 다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다. 가해자 대표로 나오는 버디 웬젤(Buddy Wenzel) 역시 마찬가지다. 장기판의 졸처럼 부려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마지막가지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소설에도 등장하는 BBC 다큐멘터리 <Kill Them All>에도 직접 출연해서 지난 과거에 대해 괴로워하는 그의 양심적인 행동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물론 또 한편에서는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한 전쟁범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속도감 넘치는 소설의 중반부의 전개에 비해 이 모든 이야기의 대단원을 맺어야 하는 결말이 좀 아쉬웠다. 동학혁명, 일본의 식민지배 그리고 다시 해방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아우르는 결말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모더니즘 소설을 연상시키는 성급한 엔딩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수가 없다. 하지만 산 자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역사의 기록으로서 문학이 가진 본령이 참 마음에 들었다. 기회가 되면 2007년에 발표된 이상우 감독의 노근리를 다룬 영화 <작은 연못>도 한 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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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
김기연 지음 / 그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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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처음으로 접한 음악을 듣는 도구는 바로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독수리표 카세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을 빼고 유이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였다. 이제 구식이 되어 버렸지만, 에잇트랙(eight track)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카세트 플레이어, 휴대용 워크맨 CD 플레이어 그리고 지금의 mp3 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참 음악 미디어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그 시절에는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음악들이 참 많았는데 이젠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못 듣는 음악이 없는데 음악에 대한 열의는 예전만 못하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추억의 음악/음반들을 카피라이터, 캘리그래퍼 혹은 아트 디렉터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김기연 씨의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솔직히 이 책에서 소개된 레코드 앨범 커버를 통해 해당 음반의 뒷이야기 혹은 아티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는 전적으로 김기연 씨가 만난 음악/음반에 대한 사설(私設)이 주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령 예를 들어 정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드록 그룹인 레드 제플린의 전설적 네 번째 앨범 파트에서 지미 페이지의 신들린 듯한 기타 연주보다 표지에 나온 노인네가 등에 진 땔나무에서 바로 아궁이 솥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 간다. 그 유명한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에 대한 언급은 조금도 없이.

 

한창 전성기를 도모하던 시절의 빌리 조엘의 앨범에서도 역시나 내가 궁금해 하던 앨범에 대한 에피소드나 그 음반에 실린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 대신, 당당하게 짱돌로 유리집을 쳐부수려는 어느 용감한 사나이에 대한 헌사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 봤으나 80년대 달달한 팝송에 물든 청소년기를 보낸 나에게 유라이어 힙 혹은 제스로 툴 같은 밴드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언젠가 대학로에 있는 LP바에 들러 그야말로 밤을 세워 가며, 어려서 한창 듣던 헤비메틀/하드록 음악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가게의 주인장 역시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운 플라스틱 LP로 음악듣기를 고집하는 아날로그 예찬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시절 누구나 다 LP를 들을 적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 LP는 그야말로 극소수의 매니아들만 찾는 레어 아이템이 되면서 그 희귀성 때문에 자체가 예스러움의 정수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말로만 듣던 롤링 스톤즈의 그 유명한 <스티키 핑거즈>의 앨범 표지를 보며 정말 앨범에 지퍼가 달렸을까? 직접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더블 앨범도 그렇게 가지고 싶어했지만 결국 수중에 넣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떨렁 전화기 사진 하나만 걸어 놓은 J 가일즈 밴드의 앨범 표지도 참 인상적이다. 이제 CD 시절에는 불가능해져 버린 앨범을 쭉 펼치면 원래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것이 나오는 앨범 트릭도 이젠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외국의 저명한 레이블 소개는 개인적으로 좋았는데,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에는 거의 음악을 듣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레이블만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음반을 골라낼 수가 있었다. 영국 출신 가수들이 주로 애용하던 버진, 크리설리스 같은 이제는 추억의 저장고에서나 들을 수 있는 레이블 이름이 참 반가웠다. 역시 영국 출신 밴드인 데프 레퍼드도 버티고 레이블이었던 것 같은데 왜 히트곡 <Pour Some Sugar On Me>가 국내 라이선스 음반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책에 실린 흑백 사진을 보며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클래식 음반에 관한 부분이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 중에 분명 클래식 음반도 있을 텐데, 한 장의 사진에 실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발터 기제킹, 소설 <새벽의 약속>에도 카메오로 등장하는 로맹 가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예후디 메뉴인 그리고 베를린필 카라얀의 전임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진이 실린 앨범 표지를 보니 클래식에 대해서도 좀 다뤄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여전히 몇 장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 CD가 널리 보급되면서 애지중지하던 음반들을 모두 친한 친구에게 줘 버렸지만, 그 뒤에 어찌어찌해서 손에 넣게 된 레코드는 레코드 플레이어의 부재로 들어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게 되면 레코드 플레이어를 구해서 들어 보고 싶다. 그 희망이 언제나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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