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고양이를 선물할게요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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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도가 떨어졌도다>에 이어 소위 강호삼부작 중의 한편으로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감성이 물씬 풍기는 다양한 이야기 6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호기찬 일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전에 프랑스 출신 작가 아니 에르노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던가. 다빙(大冰) 작가가 시전하는 글들은 내가 보기에 쓰디쓴 탕국보다는 따뜻한 치킨 수프 같은 스타일의 이야기들이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재밌고 따뜻한 이야기라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은가.




전편 강호에서는 아마 책에 사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몇 컷의 사진이 실려 있어,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 ‘야생작가’의 면모를 엿볼 수가 있었다. 중국 SNS인 웨이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기회가 된다면 웨이보 사이트를 방문해서 작가의 면모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문제는 내가 중국어를 못한다는 게 큰 맹점.




원래 다른 책들을 잡고 있었으나, 다빙의 재밌는 글들은 내 기대를 훨씬 뛰어 넘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책을 받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첫 꼭지인 타이틀 <당신에게 고양이를 선물할게요>를 읽고 나서, 역시 다빙이로구나 싶었다. 자신을 떠난 어머니가 주고 간 야옹이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기타를 뜯던 왕지양은 다빙의 작은 집 고정멤버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던가. 부모가 부재하던 시절의 그들의 존재를 대신했던 야옹이에 대한 글로 워밍업은 충분했던 것 같다.


<어느 가수의 연애편지>에서는 결혼식날 사회를 보던 다빙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 좋은 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저우싼과 결혼에 골인하게 된 쉔쉔은 억센 신부 들러리들을 동원해서 남편에게 100번이나 사랑한다고 외치라고 말하고, 혼전임신을 당당하게 밝힌다. 이 글을 읽다 보니, 최근 뻔히 들어날 거짓말을 해서 누리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연예인 커플이 생각나서 쓴 웃음이 났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쉔쉔의 사랑하는 남편 저우싼에 대한 절절한 고백은 운명이라는 확신을 들었을 때,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던 여걸의 현현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체도주 아니 야반도주를 하고 갖은 고생 끝에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에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의 환호성을 극에 달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소설에 등장할 법한 사랑이라면 이 정도 급은 되야지 안 그래? 저우싼이 아내 쉔쉔에게 프로포즈하려고 만든 곡으로 대박이 났으니,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깡패 같은 애인>에 등장하는 사뭇 색다른 러브스토리도 재미에 있어서는 어느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오골계탕을 들고 다빙에게 한 입도 줄 수 없노라고 뻐팅기는 깡패에 버금가는 박력의 주인공 마오가 어떻게 해서 일본 유학까지 하고 패션업계에서 잘 나가는 의류회사 사장이자 절세미녀인 나무 씨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야말로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연상될 지경이었다. 옳거니! 닳고 닳은 다빙은 혹시 자신이 직접 들은 이야기에 살을 좀 붙여서 훗날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요런 재밌는 글을 쓴 게 아닐까나. 화류계 인생으로 금목걸이를 걸고 요란한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을 좋아하는 마오에게, 세상 경험 없어 보이고 세상 홀로 순수하게 사는 여자 나무 씨가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무 씨는 마오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다는 이유로 도시락 공세를 필두로 해서 직접 제작한 옷으로 그의 환심을 사려고 덤벼든다. 목석이 아닌 이상, 그런 나무 씨의 공세를 견딜 수 없게 되었지. 거두절미하고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만나 행복하게 살 수도 있더라는 그런 이야기. 중국판 <엽기적인 그녀>의 영화화를 기대해 본다.


그 외에도 잘 나가는 직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쫓다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태어나서 교사인 아버지 어머니에게 걱정거리 한 번 안겨 주지 않던 효자 아들이 죽으면서 남긴 유언을 다빙이 들어주는 이야기 그리고 다빙이 차린 주점에 터주대감처럼 들어앉은 대흑천, 다시 말해 검은 하늘 말똥가리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무겁지 않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독자를 기다린다.




중국 윈난성 리장에 주점 <다빙의 작은 집>을 차린 다빙 작가의 웨이보를 찾아봤다. 과연 그가 <당신에게 고양이를 선물할게요> “검은 하늘” 편에 나온 대로 기이한 동물들(무려 남미의 알파카!) 사진이 실려 있군. 무엇보다 강호의 의리와 싸나이들끼리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협객이자 야생작가인 다빙은 오늘도 특이한 헤어스타일과 특유의 깡다구로 무장한 채, 대륙을 휘저으며 독자들에게 들려준 진기하면서도 감동으로 가득한 이야기 거리 사냥 중이다. 다빙의 소재사냥을 응원한다. 동시에 소설 초반에 등장한 멋진 표현인 지행합일도 계속해서 유지하시길.


[뱀다리] 좌충우돌 대륙을 누비는 그의 글을 읽다 보니 한 이십년 전 일본 출신으로 그와 비슷한 궤적을 걸었던 다카노 히데유키의 글이 생각났다. 아마 더 이상 그의 글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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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운명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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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가진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책 <지혜와 운명>을 읽었다. 우리에게는 <파랑새>의 작가로 더 알려졌다고 하는데, 사실 나이를 먹다 보니 <파랑새>의 내용이 뭔지 기억이 다 가물가물해졌다. <지혜와 운명>은 달랑 200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의 책이라 금세 다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가 악전고투를 경험했다. 아포리즘, 그러니까 작가가 구사하는 잠언류의 단백한 문장은 읽어도 뜻이 바로 와 닿지 않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너무 어려워, 그럴 적마다 다빙 작가의 책으로 심신을 달래곤 했다. 개인적으로 눈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는 책이야말로 최고의 책이라는 생각을 가져왔었는데, 이번에 마테를링크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쉽게 읽히지 않는 책도 나의 개인적 수양을 위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판 잠언 <지혜와 운명>은 정말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글이라고나 할까. 제목으로도 달았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바로 ‘광활한 삶의 진실 가운데 끊임없이 사랑하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삶에 진실에 도달하는 특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성찰, 행복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런 조언들을 담뿍 책에 담아냈다.

 

어느 특정한 사안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과 사유를 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책을 쓰는 이들이 추구하는 꿈이 아닐까. 먼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타적 자기희생에 기반한 나의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의 선행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살면서 그것이 얼마나 헛된 소망이라는 것을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보답을 구하지 않는 선행이란 과연 불가능한 걸까라는 자문에 도달하기도 했다.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최소한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지 않았던가. 한발 더 나간다면,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의인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 사람은 내면의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는 마테를링크의 말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다양한 채널로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담보할 거라고 교육받아 오지 않았던가.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위한 소비야말로 우리 내면에 도사린 적이 아닐까. 개인적 고백을 하자면, 매주 로또를 산다. 언젠간 나에게도 물질적 대박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심리로 매주 5천원씩을 소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는 나의 그런 행동이 허황된 행복 추구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또 어디서는 자연의 유일한 관심사는 균형이라고 했는데, 시류에 맞춰 우리나라 정치판에 도입해 보면 좌우 날개로 나는 새가 아니라 언제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오른쪽으로 뒤뚱거리던 펭귄이 오랜 만에 밸런스를 잡은 셈이라고나 할까. 정권 교체가 된지 며칠이 되었다고 벌써부터 개혁에 대한 저항의 조짐을 보이는 수구언론의 모습에서 행복할 수 없는 뿌리인 오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선 모름지기 심오한 차원의 사색과 사유가 필요한 법인데 과연 나와는 다른 그들을 포함한 우리에게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어둠이 있기 때문에, 찬란한 빛의 순간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닐까. 물론 그러기 위해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들의 노고가 필요했지만 말이다.


 



마테를링크는 <지혜와 운명>에서 생각하고 사유하는 인간이 지닌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부족함을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방통행적 사랑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사랑을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발현할 수 있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무슨 대답을 하게 될까. 그에 따르면 지혜로운 사람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을 추구한다고 한다. 다만, 욕망을 순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던가. 무협지에 등장하는 고수들이 무리해서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지혜로운 이들은 각성의 기회를 갖기에 욕망 자체에 매몰되지 않을 거라는 그의 말이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욕망을 순화하고, 각성해서 합리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삶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삶의 순간마다 느끼는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빠트리지 않는다. 오늘 내가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어제 회사에서 허리를 삐끗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아주 거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행복하다. 오늘 두 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이렇게 책 읽고 난 뒤에 감상을 적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사유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더 행복하다. 나의 이 부족한 글에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이고, 거창한 영웅이 되기보다 경청과 묵상 그리고 침묵이라는 행동을 통해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으니 만족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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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랑새》를 읽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그 작품이 유명한 사실만 알고 있어요. ^^

레삭매냐 2017-05-15 20:34   좋아요 0 | URL
전 <파랑새>가 그저 동화일 거라고 생각
했는데, 원전은 희곡이었다네요.

아마 그 내용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구해서 읽어야 할까요? ㅋㅋ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 - 늠름하고 멋진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 동화
볼프 예를브루흐 그림, 오렌 라비 글, 한윤진.우현옥 옮김 / 아이위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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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작가인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서 협업을 이루었던 그림작가 볼프 에를브루흐가 이번에는 이스라엘 출신 오렌 라비 작가의 글을 형상화했다. 아이들이라면 아마 모두가 좋아할 법한 곰돌이 친구를 주인공으로 삼아 숲 속 여행을 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법 큰 아이들에게 맞는 책이라고나 할까. 우리집 꼬맹이는 좀 더 있다가 읽어야지 싶다.

 

이 멋진 동화는 숲 속에 사는 솔잎처럼 생긴 벌레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몸이 가려워 등을 벅벅 긁다 보니 곰이 되었다고? 놀랍군. 이 녀석 주머니에 종이도 넣어 가지고 다닌다네. 자신을 스스로 사냥하고 행복한 곰이라고 부르는 녀석은 자신을 찾아 나선 숲속여행이 동화의 줄거리다.

 

그렇게 홀로 숲속을 거닐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숲의 꽃이나 나무도 쑥쑥 크고 자란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벌벌 기어 다니던 꼬맹이 녀석이 언제 걷기 시작하고 또 뛰어 다니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야. 뭐 다 그렇게 가는 거겠지. 뭐? 숲 속에는 여러 종류의 고요함이 있다고. 이 곰돌이 녀석은 역시나 보통 곰돌이가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형이상학에 통달한 철학자 곰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숲에서 만난 게으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게으른 불도롱뇽을 만나, 불도롱뇽이 아는 곰돌이 중에 최고로 상냥하다는 인증도 받고 기운차게 가던 길을 가기도 해. 다음에는 숲 속에 핀 예쁜 꽃들을 세던 펭귄을 만나 “예쁘다”는 숫자가 아니라는 지청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게 뭐가 중요해. 꽃을 세는 행위보다, 그 꽃이 가진 아름다움에 취한 곰돌이는 사뿐사뿐 춤을 추는, 우리의 곰돌이는 탐미주의자로 풍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걸. 이거 볼수록 매력 넘치는 곰돌이가 아닌가 말이다.


 



숲속에서 나침반나무를 만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에 거북 택시가 등장하기도 해.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땐, 잠시 헤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거북의 조언에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대로, 주어진 대로만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어쩌면 유목인의 천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런 노마드 정신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참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싶어졌다.

 

그렇게 숲을 떠돌던 곰돌이는 마침내 자신의 집에 도착해. 그런데 이 녀석은 이 집이 자신의 집인 지도 몰랐던 모양이야. 오랜 풍찬노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우리의 곰돌이도 홈 스윗 홈을 외치지.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며 끝.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꿈을 좇으며,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만하지 않을까. 오렌 라비와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린 숲속에 사는 곰돌이 동화는 독자에게 선문답 같이 그렇게 다가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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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선거날이다. 그런데 비가 온다. 날씨 때문에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주제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적인 탐정들>이다. 개인적으로 볼라뇨의 열혈팬으로 그의 전작을 읽고 있다. 다만 책들은 나오는 대로 족족 사들였지만 독서는 못했다. 메타픽션 <2666>은 그래도 2권은 읽었지만 나머지 3권은 못 읽었다. <2666>만큼은 아니지만 못지 않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결국 읽기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가끔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보고서는 소장하고 있지만 다시 사면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미 산 책입니다라는 스탭 분의 말이 두려워 미처 사지 못했다. 하고 보니 다 구구절절한 변명이다. 예전에 마술사들이 등장하는 <나우 유 씨 미>에서 우디 해럴슨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할 생각만 하고, 미처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올해에는 시간을 두고 아르킴볼디가 등장하는 <2666>과 <야만적인 탐정들>을 읽어야겠다. 책은 고만 사고, 집에 있는 책부터 읽자고 다짐하건만 항상 헛된 구호가 된다는 게 맹점.

 

 

자꾸만 이야기가 곁다리로 새는 데, 며칠 전 동네 카페에 갔는데 전혀 색다른 버전의 <야만적인 탐정들>을 만났다.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열린책들 버전은 칼라의 1권과 2권의 책인데, 내가 사는 동네 책읽는 군포 카페의 작은도서관에서 흰 표지의 단권으로 되어 있는 책을 발견했다. 그 날은 하필이면 핸드폰이 미처 가져 가지 않아서 그냥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마침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 세 컷을 찍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플롯을 통해 소설을 디비 보자. 소설은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팅이 되는데, 몇몇의 내레이터들이 등장하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멕시코에서 실종된 멕시코인들”로 1975년 후반, 미래의 시인을 꿈꾸는 17세 소년 후안 가르시아 마데로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놈의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내장사실주의에 대한 무의미해 보이는 토론이 아마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법대생 마데로는 대학을 중퇴하고 멕시코시티 주변을 여행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내장사실주의에 회의하면서도 점저 깊숙하게 빠져 드는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소설의 제목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대략 전체 소설의 2/3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단권으로 된 소설의 총 페이지 수는 982쪽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600쪽 이상이 할애된 모양이다. 이 부분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을 다루면서 자그마치 40명 이상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내장사실주의 설립자들과 울리세스 리마, 아르투로 벨라뇨를 비롯한 북미, 유럽,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뜨내기들처럼 유럽에서 수년 동안, 술집과 야영장을 누비며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된다. 벨라뇨가 스페인 바닷가에서 결투를 마다하지 않는 문학비평가에 도전하는 동안, 리마는 이스라엘에서 짧은 형을 살기도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소노라 사막”에서는 다시 마데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시간의 연대기에 따른다면,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1976년 1월, 마데로와 리마 그리고 창녀 루페가 등장한다. 멕시코에서 루페의 포주 알베르트와 부패한 멕시코 경찰에게 쫓기면서, 내장사실주의의 창시자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나선다.

 

 

다른 리뷰와 대충 알아 먹은 위키피디아 플롯만으로는 도저히 이 소설이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 볼라뇨가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결론은 내가 읽어야 한다는 거겠지. 그런데 자그마치 천쪽에 육박하는 소설을 내가 과연 싫증을 내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서평 도서들이 자그마치 5권이나 배송 중이지 않은가. 그래 그렇게 가는 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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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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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덴마크 출신 작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란 책을 알 것이다. 나 역시 그 책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장만 하고 읽진 않아서 왜들 그렇게 절판 당시 타령을 해대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재출간 돼서 언제라도 구해서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복간된 후에 오히려 인기가 줄었다고 해야 할까.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지만 읽은 사람은 또 드문 그런 책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수잔 이펙트>(2014)는 페터 회 작가의 최신작이자 8번째 작품이다.

 

어디선가 이 책을 미학적 스릴러라고 평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 읽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소설의 주인공 수잔 스벤센은 올해 44세 그리고 코펜하겐 대학에서 물리학 강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시작은 스벤센 가족이 빠진 곤경으로부터 시작한다. 21세기 가족 시스템의 은밀한 내부가 그렇듯, 스벤센 가족 역시 파국일보 직전이다. 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토르킬 하인이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수잔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물론 로버트 레드포드가 드미 무어에게 영화에서 한 것 같은 그런 제안은 아니고,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알게 되겠지만, 수잔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녀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인은 그녀의 그런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는지도 몰랐던 수잔과 가족들은 비밀을 파헤칠수록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실과 한 때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만든 미래위원회 위원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으면서 막장 드라마 같이 시작되었던 소설은 드디어 미학적 스릴러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수잔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요즘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제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재의식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재밌는 막장드라마를 기대했던 독자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어느날 자신과 솔로 댄서로서 한 세대 앞서 페미니스트로서 삶을 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고아원/소년원에서 세상을 배운 수잔 스벤센의 가공할 만한 과거에 대한 고백에 파티에 모인 이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숨겨야만 하는 게 아니었던가. 아니면 그렇게 헤진 상처를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더 화끈한 힐링을 원했던 걸까. 소설 <수잔 이펙트>에서 다루는 파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미래위원회가 준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수잔은 인류의 미래가 결국 파국이고,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생존을 위해 준비한 패러다이스로 자신도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지막지한 핵군비 경쟁 혹은 환경파괴로 인류의 생존은 더 이상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인류의 미래를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전하겠다는 행정편의적인 이기주의가 독자가 결말에서 만나게 되는 핵심이다. 소설에서 전개된 내용을 우리 사회에 전개하게 된다면, 종말론적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정치인들? 막대한 금권을 자랑하는 재벌가 사람들? 인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환경전문가 혹은 농업생산과 에너지생산을 담당할 기술자들? 문득 우리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잔 이펙트>를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됐다.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소수를 제외한 그야말로 꼬리칸에 탑승한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너무 뻔할 걸 물어서 식상한가.

 

전반적으로 봤을 때, 소설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덴마크라는 나라였다. 현재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나 중국 혹은 독일 같은 나라라면 또 모르겠지만 꼴랑 인구 560만 명 정도의 나라에서 이런 스케일의 미래비전을 준비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하도 페터 회 작가가 닐스 보어 연구소 타령을 해대서 위키피디아로 닐스 보어에 대해 조사해 보기도 했다. 또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우리보다 GDP가 거의 두 배나 되는 복지선진국도 역시나 이런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여담이긴 하지만 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 <김과장>에서 주인공 김과장이 삥땅을 쳐서 모은 돈으로 이민을 가려던 나라가 덴마크였다는 점이 새삼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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