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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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소설 <한평생>은 구원과 고독 그리고 존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소설가인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은 지난 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심에 오른 수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즐거움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도전에 인색한 편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었다. 2015년에 <스토너>의 존 윌리엄스를 만난 해로 기억될 수 있다면, 2016년은 로베르트 제탈러를 발굴해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 <한평생>은 산사나이 안드레아스 에거의 평범한 일생에 관한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떠올리게 한다. 에거는 고아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농부 크란츠슈토커의 포스터 차일드(foster child)로 입양되어 어린 시절부터 매질과 학대에 익숙한 삶을 살게 된다. 어느 날 양부의 심한 매질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고 접골사의 처방으로 낫긴 했지만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소설의 초반부터 내러티브는 어린 소년 에거가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삶을 살게 될지 그 징후를 보여준다. 소년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크란츠슈토커의 장모 디아늘이 죽었을 때, 그늘진 장소에 숨어 흐느끼는 장면에서 소년의 고독을 읽을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소설의 시작은 에거가 염소지기를 오두막에서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던가. 말없이 구원에 나선 에거의 노력은 폭설을 헤치고 마을로 향하던 와중에 눈발 속으로 “뿔 달린 하네스”가 도망치면서 수포가 되고 눈 속에서 고생하느라 지친 마음을 ‘황금 영양’ 여관에서 튀긴 도넛과 수제 크라우터러 소주로 달래는 가운데 젊은 여성을 만났고 그 순간을 에거는 평생 돌이켜 회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장면은 그렇지 않던가. 그렇게 인간의 구원 그리고 사랑은 일맥상통하게 된다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학교에서 다니면서 간신히 글을 깨우친 에거는 장성해서 크란츠슈토커의 매질에서 벗어나 비로소 독립된 삶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다. 해준 건 없고 부려 먹기만 한 양부의 매질에 대한 거부는 한 인간이 지켜야 하는 존엄성에 대한 장엄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비터만 운트 죄네’ 회사가 산중에 케이블카 설치를 시작한 것은 에거에게 하나의 기회였다. 산으로 상징되는 자연을 사랑했던 그에게 말없이 묵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세계가 자본주의로 시대로 진입하게 되면서, 오락과 휴식을 즐길 여가시간과 소득이 늘어난 대중에게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케이블카 사업이야말로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던 모양이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개발에 따른 필연적인 환경파괴 이슈는 없었던 모양이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다리까지 저는 에거의 고용을 총지배인은 꺼리지만 막일꾼 에거의 가능성을 알아본 그는 즉석에서 고용을 결정한다. 그리고 벌목작업과 쇠기둥을 세우는 일이 투입된 에거는 산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현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 동시에 황금 영양의 종업원 마리와의 사랑도 무르익어 간다.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두둑한 보수와 크라우터러 소주로 매수했다) 산에 불로 만든 기발한 프로포즈를 동원해서 마침내 마리와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에거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고, 어느 날 신혼부부의 오두막을 덮친 산사태로 아내 마리를 잃는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다시피 오스트리아 출신 상병 아돌프 히틀러가 기획한 게르만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위한 정복전쟁이 시작되고, 에거 역시 전시 복무에 지원하기 위해 징병검사위원회에 지원하지만 나이가 많고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깨끗하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독일이 스탈린그라드 전선에서 코너에 몰리게 되자 4년이 지나지 않은 1942년 11월 에거는 징집 명령을 받고 러시아 코카서스 전선에 투입되어 후방의 보급도 받지 못한 채 산속에 머무르다가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혹독한 러시아 포로수용소 시절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 달라진 상황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거의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회복되면서 대중들이 다시 레저의 시간을 즐기게 되자, 산사나이 에거는 아름다운 티롤 지방의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이드가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산에서 길을 잃은 노부부를 도왔던 일에 착안해서 에거는 새로운 사업에 나선다. 학교 교사였던 안나 홀러와의 짧은 로맨스도 등장하지만, 산 사람의 사랑이 죽은 사람의 깊은 사랑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조용한 이별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고독했던 어린 시절, 아내를 잃은 슬픔 그리고 전쟁포로가 되어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암혹한 시절을 견뎌낸 에거를 산은 묵묵하게 안아 주었다. 마을이 휴양지로 변신하기 시작하고, 가이드 생활에 염증이 난 에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산에서 나고 자란 남자에게 산이야말로 결국 돌아갈 곳이라는 암시였을까. 에거의 삶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소설 처음에 등장했던 사라졌던 ‘뿔 달린 하네스’의 시신이 발견된다. 삶의 온갖 간난신고를 겪어낸 에거는 그리고 천수를 누리고 생을 조용하게 마감한다.

 

로베르트 제탈러는 마치 솜씨 좋은 피아노 조율사처럼 그렇게 산사나이 안드레아스 에거의 삶을 그림 같이 아름다운 티롤 지방의 자연 속에 형상화시킨다. 고아로써 느낀 외로움, 개발과 전쟁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과정 가운데 에거는 성장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에거의 삶에 어느 순간 착근한 죽음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삶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고 해야 할까. 에거가 참여한 노동에 대한 질적 변신도 눈여겨 볼만 하다. 생의 시작은 농장에서 막일을 도맡아 하는 무보수 농부였다. 그 다음에는 케이블카 회사에 고용된 직원으로 산정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추가 노동을 원했고, 그 다음에는 군인으로 대소전쟁에 참여해서 바위를 폭약으로 뚫고 진지를 사수하는 일에 투입됐다. 마지막으로 고향에 돌아와서는 산악 가이드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에거는 모든 인간처럼 다양한 노동 방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

 

 

제탈러의 첫 만남은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의 전작 <담배 가게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됐다. 영어책으로는 나온 모양이던데, 애용하는 북디파지토리를 통해 주문할까 하고 고민 중이다. 독일어를 읽을 수 없으니 영어책을 읽어야겠지 아마도. 최근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도 열심히 읽고 있는데,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라 그런지 다양한 부분에서 공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2016년 최고의 발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제현에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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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9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 권위 있는 문학상 수상 작가보다 최종심사에 오른 후보작을 쓴 작가가 더 크게 알려지는 경우가 있어요. 아폴리네르가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작가가 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은 작가는 지금도 프랑스 내에 인지도가 있지만, 아폴리네르의 명성에 비하면 부족해요.

레삭매냐 2017-06-29 23:01   좋아요 0 | URL
동감하는 바입니다.
수상작보다도 어쩔 땐 경쟁작이 우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이창래 선생의 <생존자>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이 읽고 싶었으나, 대다수 현대일들처럼 내게는 얌전하게 앉아 책을 읽을 시간이 턱없이, 진심으로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으로 영화를 선택해서 보게 됐다. 물론 책도 구해서 나의 책상 위에 잘 모셔 놓았다. 400쪽 가까운 책은 언제 읽으려나.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영화 <아일랜드>가 미래의 세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소설/영화 <네버 렛 미 고>는 현재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차이점 정도. 그리고 <아일랜드>의 주인공들은 철저하게 복제된 클론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모르고 있다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네버 렛 미 고>에서는 그들, 기증자들이 순순히 체념하고 자신의 운명에 따른다는 점 정도. 사실 <아일랜드>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클론들의 반란을 예상했다면 그것은 온전하게 관객의 오류다.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에서는 소설에서처럼 간병사 캐시 H(캐리 멀리건 분)의 입장에서 관조적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세 번째 기증에 나선 오랜 시절부터 친구이자 연인인 토미 D의 마지막 기증을 지켜보며 영화는 곧바로 플래시백으로 접어든다. 소설과는 다른 각색자가 각본을 맡은 만큼, 이 정도의 각색은 봐줄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된 11살난 캐시와 토미(앤드루 가필드 분) 그리고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유년시절을 보낸 1978년의 헤일셤으로 돌아간다.


이 어린아이들이 장래의 기증을 위해 키워지는 장면은 비극이다. 적당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갖가지 교육과 예술활동, 그들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미래의 단 한 가지 목표를 가리키고 있다. 1952년에 시작된 획기적인 발명으로 인류의 수명이 100살까지 늘어났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국가기증프로그램(National Donor Program:NDP)의 실체가 바로 이 헤일셤에서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작 영화에서 다루는 무서운 진실은 모두가 NDP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카메라는 관객을 1985년의 코티지로 데려간다. 캐시와 토미 그리고 루스는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서로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증자로서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랑에 빠진 헤일셤 출신의 남녀들에게는 기증 유예가 주어진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건 굉장히 절박한 이슈임에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묘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증자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된다는 것은 캐시가 본격적인 기증자들의 간병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1994년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기증자들이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고 숙명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장면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수년 간의 간병사 생활 끝에 캐시는 어린 시절의 친구 루스와 만나게 된다. 루스는 이미 두 번의 기증을 마치고, 가까스로 연명을 하고 있다. 오래 전에 토미와 헤어진 루스는 캐시에게 토미를 만나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사실 그들의 애증의 관계를 뒤로 한 극적인 해후는 여전히 관객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들의 최종운명이 어떻게 될 지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마담이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믿는 토미는 캐시에게 자신이 수년간 작업한 그림을 보여주고, 캐시와의 진정한 사랑을 입증한다면 기증 유예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헤일셤에서의 예술활동은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한 프로그램 입안자들의 계획이라고 토미는 철썩 같이 믿는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상상했던 비극적인 장면은 루스의 마지막 기증 장면 외에는 거의 없지만, <네버 렛 미 고>는 최근에 본 가장 슬픈 영화다. 아무리 클론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존재론적이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영화에서는(혹시 소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 헤일셤의 아이들이 선정되었는지, 그리고 기증의 구체적인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중에 캐시의 독백처럼 기증받는 이들의 삶이 어떤 의미에서 기증자들의 삶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유년 시절부터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자란 캐시와 토미 그리고 루스가 처음 세상에 나가 다이너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 순간 왜 그들의 운명에 대해 알려준 루시 선생님의 상황극이 바로 연상됐다. 어쩌면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전조는 비오는 날 루시 선생님이 들려준 기증자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사실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연장시켜 보겠다고 타인(클론)을 태연하게 희생시키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보지 못한 개인의 단상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에게 그런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과 다르게 도덕률을 우선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최근 <위대한 개츠비>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 주었던 영국 출신 배우 캐리 멀리건이 맡은 캐시 H 역에 호감이 갔다. 말로 이래서 좋다라고 꼭 집어서 표현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연기에 몰입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그녀보다 더 뛰어난 스타성을 자랑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루스보다 낫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자리 잡은 앤드루 가필드의 토미 D 역할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들은 서로 간에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갈등이 어우러진 미묘한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 허겁지겁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을 펴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60여쪽을 읽어내려갔다. 물론 원작소설과 영화는 달랐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클론’답게 공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가 감성적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디테일에서 도저히 영화가 추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어서 빨리 원작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어야겠다.


정말 슬픈 영화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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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6-2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정말 좋아요!!! 꼭 읽으세요!

레삭매냐 2017-06-26 11:02   좋아요 1 | URL
소설도 책 읽고 나서 바로 읽었더라구요 :>
리뷰는 예전에 쓴 거 울궈먹기였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책 중에서(제가 지금까지 읽은)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더군요. 슬프고 비극적인.

유부만두 2017-06-26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름다운 비극! 영어문장이 꽤 아름다워요....

잠자냥 2017-07-20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 소설을 영화화하면 원작보다 못한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작품은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다 좋았어요. 캐리 멀리건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조합, 그리고 그 영화의 황량한 분위기 등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더군요.

레삭매냐 2017-07-20 10:58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캐리 멀리건이 덩그러니 남아 거리를 쳐다 보던
마지막 장면이던가요 정말 아름답고 슬펐던 것
같습니다.

말씀 하신 대로, 대부분 소설의 영화화가 기대
만 못한데,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슬픈 영화였어요.
 
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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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의 뒤죽박죽 이언 매큐언 읽기는 계속된다. 일전에 시작한 <이런 사랑>도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 <토요일>을 집어 들었다. 뭐 다른 책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주말 독서모임 때문에 마음에 다급해지지 않았나 싶다. 이언 매큐언 최고의 작품이라는 <속죄>는 국내에 나온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맨 끝에 읽을 계획이다.

 

소설 <토요일>의 주인공 헨리 퍼론은 올해 48세의 신경외과 전문의다. 2003215일 토요일 새벽, 사랑하는 아내 로설린드를 곁에 두고 잠에서 깬 헨리는 상념에 빠진다. 이언 매큐언은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유능한 외과의의 지나간 훌륭한 삶을 반추한다. 20대 중반에 가정을 꾸리고 지금은 파리에서 살며 시인을 데뷔를 눈앞에 둔 영민한 딸 데이지와 문학 토론을 즐기는 신세대 아빠. 6개월 만에 집에 도착할 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윈의 자서전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에 코끝이 다 찡해질 정도다. 다른 중년 남자들은 자신의 딸아이 또래의 애인을 둔 일탈에 젖어 있지만, 청교도적 생활에 집착하는 헨리에겐 언감생심이다. 건강유지를 위해 하프마라톤과 동료들과 스쿼시로 체력단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 중인 매력적인 아내 로설린드에 대해서는 부언할 게 없을 것 같다. 새벽 하늘을 바라보던 헨리의 시야에 불붙은 비행기가 들어온다. 안온한 일상에 무언가 파장이 다가온다는 전조였을까. 어쨌거나 블루스 뮤지션으로 촉망 받는 아들 테오 정도가 청정지역처럼 보이는 퍼론 가정의 이단아라고나 할까. 정규 교육을 거부한 아들의 음악세계를 이해할 정도로 개방적인 헨리의 정신세계를 작가는 세심하고 정밀하게 묘사한다.

 

아내 로설린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도 역시 병원에서였다. 19세 법대생이었던 로설린드는 갑작스런 시력기능 상실로 병원에 찾는다. 뇌에 종양이 있다는 선고를 받은 로설린드는 신참내기 수련의 시절 헨리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의사가 가진 권한으로 그녀의 개인정보에 접근한 헨리는 로설린드와 웨일리 선생이 집도한 로설린드의 수술을 보면서 평생의 사랑을 찾게 된다. 하나는 진짜 사랑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생의 직업에 대한 사랑을 말이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7시간씩 사람을 생명을 살리는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능력자이자 워커홀릭 헨리에 대한 서술은 마치 스포츠 현장중계를 보는 것처럼 정밀하고 생생하다.

 

14년 전에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한스 블릭스의 이름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검색해 보니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으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사찰에 나섰던 인물이라고 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보다 하루 전인 214일 한스 블릭스는 이라크 무기 사찰 후,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공식 보고를 했지만 미국 부시 행정부는 막무가내로 이라크 전쟁을 예고했다. 다음 날인, 2003215, 전세계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반전시위가 벌어진다. 기네스북에 인류 역사상 최대 시위로 기록된 반전시위였다. 런던에서만 50만 명 정도의 시위대가 전쟁반대를 외쳤지만, 한달 남짓 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서방세계의 안온한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문득 어떤 점에서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현대판 묵시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 퍼론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라도 테러세력의 공격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리고 테러세력이 의도하는 사람들은 분노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조작된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지금까지도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리즘의 발호를 가져오게 될 줄 이때만 해도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은 2006년 뉴욕타임즈에 의해 폭로된 미국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에서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한겨레 정의길 기자가 쓴 글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는데 해당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책이다.

 

이라크 반전시위가 지구별을 휩쓰는 동안 헨리 퍼론은 자신의 미국인 동료, 마취의 제이 스트라우스와 스쿼시 게임을 하고자 길을 나섰다가 결정적 사건에 처하게 된다. 경찰의 묵인 하에 봉쇄된 유니버시티 스트리트를 가다가 아주 우연한 접촉사고를 당한다. 이십대 중반의 건달패 박스터 일당과 시비가 붙고, 가슴에 찰과상을 입을 정도였는데 헌팅턴병 혹은 무도병으로 알려진 심각한 수준의 뇌질환을 겪고 있는 박스터의 약점을 공격해서 위기탈출에 성공하는 헨리 퍼론. 그는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제이 스트라우스와 세기의 스쿼시 대결을 벌인다. 그 후에는 모든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식사를 위해 생선 스튜를 만들 준비를 하고, 아들 테오의 블루스 연주도 들으러 가고 치매를 앓으며 세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어머니 릴리 퍼론 여사를 방문하기도 한다. 박스터의 공격적 방문을 받기 전까지 헨리 퍼론의 일상은 평온 그 자체였다. 곧 뜻하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으로 모든 것이 바뀌게 되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돌팔이 두뇌접골사로 보이는 헨리 퍼론을 주인공 삼아 이언 매큐언은 누구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독자에게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소설에서 잘난 딸 데이지에게 꼰대로 매도당하는 유물론자이자 유능한 실리주의자 신경외과 전문의 헨리 퍼론은 사담 후세인의 강제축출이 서방세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을 피력하지만, ! 14년이 지난 지금 그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사담 후세인 이후 진공 상태의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을 통해 발흥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서방세계를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 <토요일>에서처럼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이언 매큐언의 다른 작품들처럼 100페이지 정도 드러냈으면 좀 더 컴팩트한 스타일의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일급 추리소설에 버금갈 만한 긴장감 조성도 역시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세계의 정교한 뇌수술 과정을 그리기 위해 자그마치 2년 동안 직접 뇌수술 현장에 참석했고, 전문가의 조언도 아낌 없이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뇌수술 장면들이 그렇게 리얼했었나.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헨리 퍼론과 박스터 일당이 붙은 유니버시티 스트리트 부근의 제레미 벤담 선술집도 진짜로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을 맡은 전문의답게, 저급한 수준의 복수 대신 활인(活人)에 방점을 찍은 결말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이언 매큐언은 서구세계에 점증하는 테러의 위협에 자신이 생각하는 관용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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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6-24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끝까지 조마조마 했어요....
구글 지도로 팩트체크고 하셨군요! 소설 속 세계가 더 생생해지네요. ...지지배뱃

레삭매냐 2017-06-24 23:07   좋아요 0 | URL
후반부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지면서
긴장감이 촉발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재밌어서 역시나
이언 매큐언이나 싶었습니다.

제레미 벤담이라는 선술집이 실존하는
장소라 더더욱 놀랐네요.

독서괭 2017-06-28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큐언은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속죄까지 다 읽고 나시면 입문으로 어떤 작품이 좋을지 추천해 주시면 좋겠네요^^

레삭매냐 2017-06-28 16:49   좋아요 1 | URL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이런 사랑> 그리고
<시멘트 가든>, <속죄> 이렇게 남았네요.

절판된 소설집은 구할 수가 없으니 일단
유보해 두고요.

지금까지 읽은 기준으로 보면 <칠드런 액트>
로 시작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
 
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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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점심을 먹고 나서는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게 됐다. 오늘 점심에는 판모밀을 먹겠다고 가게를 찾아 나서 봤지만, 의외로 판모밀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대충 냉모밀로 끼니를 때우고 카페를 찾았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한 카페가 절실했다. 평소 즐겨 마시는 아이스 카페라떼는 주문했는데, 돈을 조금만 더 내면 디저트를 준다고 해서 바로 주문했다. 우리만의 즐거운 “차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도.


중년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나이를 검색해 봤다. 우리 나이로 49세, 그러니까 이제 1년만 더 있으면 반백년을 돌파하게 되는 나이다. 솔직담백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그림에는 소녀 감성이 물씬 풍겨난다. 국경을 넘어 디저트로 대동단결하는 여성 동지들의 단합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서까지 일어났다는 사실도 빠지지 않고 그려준다. 딸기 케이크 뷔페라니,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다. 그럼 뷔페에 가서 케이크로 배를 채운다는 말인가. 문득 예전에 옆지기와 함께 용인 죽전에 즐비한 애프터눈 티 카페에 들러 실컷 디저트를 즐긴 기억이 났다.


중년 여성이 느끼는 소녀 감성 중에는 25세 여성의 대화를 엿듣는 에피소드도 있다. 30세가 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말하는 자신만만한 시절이 모두에게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 당시에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어느새 그 시절이 되고 그 이상의 시절도 맞이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지 않은가. 스타벅스 카페에서 30세가 되면 세상 끝장이라고 말하던 이들이 과연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40세가 되었을 때 뭐라고 말할 지 궁금해졌다.


도쿄 시부야의 잘 나가는 카페에 갔더니 젊은 점원이 자신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후진 자리를 준 기억을 기억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 다른 곳에도 자리가 많은데 굳이 자신이 앉은 자리를 탐내는 시선이 느껴지면 심술을 부리고 싶은 그런 마음도 여과 없이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는 용기가 은근 부럽기도 하다. 배가 부른 데도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슈크림을 주문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귀엽다. 그것은 마치 남자들이 라면 국물을 들이키는 것하고 뭐가 다르냐며 되묻는 장면에서는 슬쩍 미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예전에 한동안 밥배와 디저트배는 다르다며 즐겨 찾는 디저트 카페에 우르르 몰려가 나폴레옹 페이스트리를 실컷 먹으면서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기억이 난다. 우리 수다에 특정한 목적이 있었던가? 그저 그전날 본 드라마에 대해 논하고, 최근에 본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며 시간을 보내던 시절의 추억이 마스다 미리 작가의 그림과 묘하게 중첩됐다. 작가가 경험한 또다른 스타벅스 스토리에서는 여성 트리오가 등장해서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듣게 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속닥속닥 다른 이들이 알아 듣지 못하게 그렇게 소곤댔다고 했던가. 수다의 진수가 아닐 수 없다.



고급 호텔에서 우리 돈으로 3만원 짜리 슈퍼 엑스트라 쇼트케이크를 그리고 신칸센에서 파르페를 즐기는 주인공의 그림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정도 투자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작은 일탈은 허용되지 않을까. 문득 오늘 저녁 나도 맛있는 디저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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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드신 거에요, 디저트^ㅁ^)? 남 뭐 먹었나 물어보는 거 참 없어보이지만 궁금한 게 먼저!

레삭매냐 2017-06-24 23:08   좋아요 1 | URL
저녁 때는 못 먹고,
어제 낮에 먹은 것으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간만에 정말 맛있는 디저트 먹고
싶네요.

cyrus 2017-06-24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만 봐도 행복하게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

레삭매냐 2017-06-24 23:09   좋아요 0 | URL
ㅎㅎ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그 유명한 톨스토이의 문구를
이용해야 하나요?

해라 2017-06-30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레삭매냐 님 :)
못 뵌지 백만년이지만 글로만 만나도 이렇게 반갑고 좋은.

레삭매냐 2017-06-30 10:2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오래전 문동 파뤼가 아마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네요 참말로.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위화 작가의 <형제>를 읽고 나서 문득 서가게 꽂혀 있던 <인생>에 눈길이 갔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에라 모르겠다.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소설의 주인공 푸구이의 인생유전이 어째 새롭지가 않다. 좀 더 읽어볼까? 아하 예전에 읽은 책이로구나. 그런데 읽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았구나. <허삼관 매혈기>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절반을 읽었다.

 

100묘 정도의 자산가 쉬씨 집안 푸구이는 도박으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날려 먹었다. 그의 아버지도 당대에 원래 가진 재산의 절반 정도를 해먹었다고 하는데, 그 아들 녀석도 청출어람 청어람인 모양이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세 좋던 집안이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구나. 그나마 집안이 몰락하기 전 잘 나가는 미곡상 천씨 집안 출신 자전을 아내로 받아들여 결혼해서 사랑스러운 딸 펑샤도 출산한다. 아들 유칭을 가진 상황에서 도박 빚으로 지주 계급에서 일순간에 도박사 룽얼의 소작농이 된 푸구이는 평생 하지 않던 밭일을 하느라 손발이 쉴 틈이 없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쓰러져 성중으로 의원을 모시러 가던 중에 국민당군에 징집되어 공산군과 국공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푸구이가 역사의 순간에 투입되는 순간이다.

 

무작위로 사정도 안 봐주고 사람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내전에 나선 장제스의 부패한 국민당군이 전쟁에 승리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해방군에게 포위되어 공중지원 만으로 연명해 가던 오합지졸 국민당군 병사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생쌀과 다빙을 만나처럼 여긴다. 결국 공산군의 맹렬한 공격 앞에 포로가 된 푸구이는 만터우와 귀향에 필요한 노잣돈까지 받아 자전과 식구들이 기다리는 고향에 돌아온다. 푸구이가 징집되어 전장을 떠도는 사이에 노모는 돌아가셨고, 몰락한 가세는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가난의 질곡 속에 푸구이 가정은 고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인간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푸구이의 땅과 집을 빼앗아 떵떵거리던 도박사 룽얼은 공산당이 실시한 토지개혁의 열풍 속에 악질지주로 분류되어 총살되기에 이른다. 어쩌면 푸구이가 계속해서 지주로 살았더라면 룽얼의 꼴이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푸구이 가정의 비극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미 딸 펑샤는 열병을 앓아 벙어리가 되었고, 아들 유칭의 교육을 위해 13살 먹은 펑샤를 다른 집에 보내 더부살이를 시키기도 했다. 대약진운동 시절을 맞아 집집마다 솥단지를 부수고, 인민공사에서 노동하고 먹는 집단체제가 도입됐다. 원시적인 토법고로로 강철생산을 독려하는 우스운 장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이룩된 서방 선진세계를 단기간에 따라 잡겠다는 독재자의 무리한 발상은 처절한 실패로 귀결되고, 대규모 기근까지 발생하면서 역대급 기아가 뒤따른다. 어머니 자전은 영양부족으로 구루병에 걸린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거치는 동안 푸구이 가정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난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왜 리뷰를 쓰지 못했는지 두 번째 읽은 후에야 알게 됐다. 푸구이이라는 개인이 짊어진 비극적 삶의 무게가 오롯하게 감정적으로 전달되어 글로 체화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모든 계급이 타파되고, 공평한 사회가 되었지만 중국 인민들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경험이 일천한 공산당 지도자들이 벌인 계획경제의 폭주로 대규모 기아자가 발생했고, 지주들이 사라진 자리는 당간부들이 차지했다. 그 와중에 푸구이 같은 라오바이싱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어린 아들 쉬유칭은 현장 아내에게 수혈하다가 심장이 멎었다. 역설적이게도 유칭의 피를 수혈받은 현장의 아내는 바로 해방전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춘성이었다.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주인공 허삼관은 매혈로 삶의 고달픈 순간들을 돌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생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피[血]에 대한 위화 작가의 집념이라고나 할까. 한편, 춘성 역시 문화대혁명 기간에 홍위병들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다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펑샤는 쿠건을 낳다가 죽었으며, 사위 완얼시 역시 사고로 죽었다. 마지막 남은 쿠건 역시 푸구이가 삶아 준 콩을 먹다가 어이 없이 죽고 말았다.

 

무수히 이어지는 죽음의 연대기를 목격한, 홀로 남은 푸구이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푸구이가 사랑하는 아내 자전은 죽으면서 푸구이가 자신을 묻어 줄 거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았던가. 쉬씨 집안사람들이 느끼는 짧은 행복에 비해 숙명적 죽음으로 빚어진 고통은 영속적이다.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삶의 고통을 지고 나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위화 작가는 돌아온 탕아 푸구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국 인민들의 삶을 소설로 포착해냈다. <인생>에서는 아직 개혁개방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 현대 중국의 부조리한 면모를 그 누구보다 잘 잡아낸 위화 작가의 문학적 항해를 열렬하게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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