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오른 1917 - 만화로 보는 러시아 혁명
존 뉴싱어 지음, 팀 샌더스 그림, 김원일 옮김 / 책갈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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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지난 주에 읽는 책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다니. 요즘 너무 이 책 저 책 점프해 가면서 읽는 부작용이 생긴 모양이다. 러시아 혁명 발발 100주년으로 작년에 이런저런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했다. 물론 다양한 책을 사모으긴 했지만, 읽지 않고 사두기만 하는 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난 금요일날 도서관에 들른 길에 존 뉴싱어의 그래픽 노블 <붉게 타오른 1917>을 빌려서 읽었다.

 

1917년 2월, 독일과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이 드디어 봉기하기에 이르렀다. 무능력한 차르는 군대를 동원해서 노동자 인민들을 탄압하고 무력진압도 마다하지 않지만, 노동자들의 편인 군대는 인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다. 페트로그라드의 각 공장에서는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고 소비에트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이미 1905년 러일전쟁의 와중에 평화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차르에 분노한 대중은 이번에는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려 버렸다. 만화에도 등장하는 시민들이 차르의 거대한 동상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어쩌면 소비에트 시대 독재자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상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는데 급급했던 지주와 자본가들은 시대가 바뀐 줄 모르고 절대 권력자가 등장해서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면 총검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소비에트는 수백년 동안 러시아 사회를 지배해온 계급 질서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한편 영국에서 파견되어온 노동당 의원이자 노조지도자인 윌 손은 러시아 대중들에게 독일과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전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의 적은 독일이고 임시정부와 협력해서 전쟁을 계속할 것을 종용한다. 이에 남자 주인공 표트르는 동지들에게 무산계급 대중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을 잘 하기 위해 혁명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혁명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어쩌면 제국주의 영국 왕실 역시인민에 의해 강제로 폐위된 사촌 니콜라이 황제의 전례를 따라 분노한 대중의 혁명으로 왕실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무산자 계급혁명을 원하는 볼셰비키들을 두려워한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갖은 꼼수로 대중을 호도하지만, 각성한 인민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선의 러시아 병사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인 무산 계급 독일 병사들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으로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자본가 계급과 애국주의로 포장된 선전, 선동으로 서로에게 증오심을 품고 끝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온 트로츠키는 러시아에서 시작된 혁명이 세계로 전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대 내의 불온한 움직임을 알아차린 임시정부 전쟁장관 케렌스키는 독일군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하지만, 독일군의 반격으로 러시아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후퇴한다.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와 병사들은 권력 장악을 도모하지만 역시 혁명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잠시 숨을 죽인다. 이 때 병사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가상의 인물 표트르였다면, 팔토 공장의 나탈리야는 각성한 노동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다수 대중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임시정부를 대신해서 소비에트 대표로 볼셰비키를 선출했다.

 

미국 출신 사회주의자이자 저널리스트 존 리드는 당시 페트로그라드에서 급변하는 정세를 기록했다. 그의 기록은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제목으로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와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더불어 세계 3대 르포 문학으로 간주된다. 빵, 토지, 평화라는 간단명료한 슬로건으로 무장한 러시아 민중은 결국 케렌스키 정부를 전복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상이 존 뉴싱어가 간략하게 다룬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개요다. 물론 그 이후의 사태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정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어떤 학자는 스탈린의 독재정치까지도 러시아 혁명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 주장은 아무래도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닐까 싶다. 러시아가 대독일 전선에서 이탈하면서 동부전선의 위협으로 해방된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집중한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러시아 혁명에 대한 개요로는 어떨지 몰라도, 좀 더 집중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러시아 혁명에 대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금 읽기 시작한 책들부터 다 마무리 지은 다음에 그래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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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나래바! - 놀아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박나래 지음 / 싱긋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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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뭐 이런 가사가 담긴 노래를 어려서 술과 함께 살던 시절에 자주 불렀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젊음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더랬다. 아주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지금에야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뭘 해도 재미가 없더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에게 놀 수 있는 시절은 정해져 있단 말이다. 그러니까 놀 적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란 말이다 제군들!

 

개그맨 박나래 씨의 바 이야기는 오늘의 박나래 씨를 만들어준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처음 들어봤다. 그리고 어느 프로그램인가 국민MC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재석 씨가 술 마시고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었지 아마. 양세형 양세찬 브라더스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김치싸다귀 사진도 보며 즐거워 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박 작가는 아예 집에 바를 차려 놓을 정도로 애주가라고 한다. 그러니까 박 작가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들을 불러다 모아 놓고, 술과 안주를 무한정으로 공급하고 덤으로 재미지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사실 술자리가 매번 뻔하지 않은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들이 쌓여 두고두고 이야기거리를 생산해 내게 되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주조상궁이 쉴 사이 없이 빚어내는 소맥에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동원한 안줏거리들이 끊이지 않고 조달되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다만 중간에 실린 게임 소개는 그랬다. 개인적으로 술자리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무래도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일 것이다.

 

말이 필요 없다, 놀 땐 컨셉이고 나발이고 아무 생각 없이 놀라규

 

지금은 그야말로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되었지만 박 작가 역시 수년간 무명 시절을 경험했다고 한다. 돈이 없으니 그 좋아하는 술도 마음 대로 마시지 못하고 선배들의 술자리에 따라 다니면서 인맥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했던가. 객지 목포에서 올라와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된 사연도 범상치 않다. 일단 아무 것도 없어도, 무언가 있는 것처럼 쎄게 나가면 통하는 법일까. 다른 건 몰라도 박 작가의 도전 정신 하나만큼은 높이 사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읽은 건 바로 압생트 제조법이었다. 초록요정, 초록악마라 불리는 압생트는 지지난 세기말 불란서에서 예술 좀 한다하는 이들이 즐겨 마시던 그 독주가 아니었던가. 무려 알콜 도수가 55도나 되고,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식도가 타 버릴 정도라니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었다. 주조상궁이 개발한 혹은 배운 기법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나저나 언제나 이 지긋지긋한 감기가 나서 음주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에 일이 없을 적에는 음주가무를 마음껏 즐겼었는데, 돈은 풍족해졌지만 이젠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되어 방송촬영 때문에 놀 시간이 없다는 말에 여행을 즐기던 시절 생각이 났다. 시간이 넉넉하게 있을 적에는 여행을 떠날 돈이 없었으며, 돈이 생기자 시간이 없더라는. 하긴 지금은 돈도 시간도 그리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 시절이라 방구석이 제일이라는 생각만 들지만. 그래서 더더욱 나래바를 차린 박 사장님이 부러울 따름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시라. 늙어지면 못 노나니 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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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0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까 욜로 문화 유행에 편승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래 바가 방송을 통해 알려진 것까지는 좋았다고 생각해요. ^^

레삭매냐 2018-01-09 17:54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
방송에서 가십으로 다뤄지는 정도가
딱 좋았을 것 같습니다.

책까지 나온 건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에세이집을 낼 것이지.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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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W.G.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구입한 지 7년 만에 읽기 시작했다. 기록을 뒤져 보니 2011년 10월 8일날 두 번째 파주북소리 행사 때 창비사옥까지 산 책이었다. 그 때 매대에서 책을 파시는 창비 직원 분이 그즈음 출간된 <토성의 고리>를 추천해 주던 기억이 난다. 사실 <토성의 고리>를 읽고 나서 사게 된 책이었는데 말이다.

 

올해 나의 목표 중의 하나는 제발트 읽기다. 출발점으로 7년 전에 사두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했던 <이민자들>부터 시작했다. 같은 날 중고서점에서 <토성의 고리>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제발트가 바로 <토성의 고리>였는데 그 때는 정말 처음이라 책을 내가 제대로 읽었는 지조차 확신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제발트의 이러저러한 책들을 만나게 되면서, 어렴풋이나마 그의 스타일을 알게 되었고 역시 처음보다 제발트 읽기가 편안해진 그런 느낌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노리치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차리고 이방인[expatriate]으로 살다가 간 작가의 아우라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독서였다.

 

오래 전 미국의 메인 주를 여행한 적이 있다. US route 1을 타고 올라 가면서 집 앞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고 야드세일하는 곳도 많이 구경했고, 2차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쓰던 철모나 오래된 환타 병 같은 과연 누가 살갈까 싶은 물건들을 파는 골동품점을 들르기도 했었다. 어쩌면 제발트 작가는 그런 곳에서 수집한 사진들을 소재 삼아 자신의 소설을 쓴 게 아닐까 싶다. <이민자들>에는 모두 네 편의 이민생활에 대한 단편들이 들어 있다.

 

예전에 어렴풋이나마 이민자들의 신산한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왜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던 걸까. 시간과 여유 그리고 기회가 있었다면, 그들과 인터뷰를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이민생활을 이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자신의 동생이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그럼 혹시 니아메이에 계시냐고 했더니, 그 분이 정말 놀라워하며 그걸 어떻게 아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오래 전, 나라와 그 나라 수도 외우기 놀이의 일부분이었는데 그게 조금은 껄끄러웠던 대화의 물고를 트는 계기가 되지 않았던가. 정말 오래 전 이야기다.

 

제발트의 소설 읽기는 뭐랄까 그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지만,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가운데 숨은 원석을 찾는 그런 기분이다. 비록 믿는 신은 달랐지만, 독일 땅에서 수백년 동안 독일 사람으로 살아온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동체에서 믿을 수 없는 국외자 취급을 당하게 되면서 참정권과 재산권 같은 기본권들을 박탈당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실 그건 문제도 아니었다.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탈출해야 하는 게 아닐까.

 

히틀러가 통치하는 독일땅에서 유대인이 그런 이유로 엑소더스에 나섰다면, 너무 가난해서 먹고 살게 없었던 독일 사람들 역시 당시 신세계였던 미국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재밌는 것 중의 하나는 아메리쿰(미국)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고 나선 이민의 종착지가 영국이었다는 점. 그나마 신세계에서 먹고 살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이들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아무런 기술도 없이 생계를 해결하려고 했던 이들도 다수였다는 점이다. 어떻게 봐도 제발트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자는 다양한 입장에서 새로운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이민자들의 삶을 파헤쳐 나간다. 아니 어떤 특별한 목적이 없이 그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들의 삶을 추적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자가 신빙할 수 없는 구전이나 빈약한 단서에 의지해서 이민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추적해 가는 과정은 신비롭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지만 결국 엽총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의사 선생, 나치를 혐오하면서도 완전한 아리아인이 아니었지만 전쟁에 참가해서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한 베라이터 선생님. 소설에 유일한 독일인 주인공인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할아버지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생활전선에 나서 결국 바다 건너 이민자가 되었다. 뉴욕의 잘나가는 솔로몬 집안의 도련님 코즈모 씨를 모시고 유명한 휴양지 도빌의 카지노에서 끝없는 행운을 바탕으로 번 돈을 가지고 유럽을 주유하는 여정 끝에 도착한 성도 예루살렘에 대한 스케치 등이 이어진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리얼리티이고 허구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바로 눈앞의 보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은 사실주의가 모두 허구라고 한다면, 제발트의 능력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게 된 아델바르트 씨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외국어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했던가. 일본 교토에 있는 금각사 사진을 떡하니 제시하고는 지인과 함께 물 위에 있는 집에서 살기도 했더라는 배짱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제발트가 구사하는 현실과 허구의 묘미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 점을 알게 되니, 아무런 주석도 달리지 않은 사진들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다시 보게 됐다. 아델바르트 씨에게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해방이기도 했다고 화자는 진술한다. 그는 말년에 가서 상실된 기억을 자신이 지어낸 환상으로 보충하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의 감독을 요청해서 충격요법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는 점도 나에게는 기이하게 다가왔다. 화자는 그런 것들이 자신의 기억능력과 사고능력을 말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의 공중폭격으로 자신들이 입은 피해까지 싸잡아 모두 망각의 늪으로 보내 버리고 싶었던 대다수 독일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비판으로 내게는 읽혔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발트의 또다른 걸작 <공중전과 문학>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여전히 천국보다 낯선

 

자 이제 단편소설집의 마지막 주자 막스 페르버 씨를 만나볼 차례다. 소설의 화자는 제발트의 명백한 문학적 페르소나로 보인다. 1966년 고향 베르타흐를 떠나 영국으로 이민길에 오른 작가처럼 화자 역시 맨체스터에서 외국 학생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한 때 번영하는 대영제국의 최전선에 서 있던 물류기지에서 쇠락한 도시가 되어 버리는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화자는 1940년대말부터 하루에 열 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막스 페르버 씨를 만난다. 1939년 5월, 전쟁이 시작되기 전 독일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막스 페르버 씨는 양친을 모두 홀로코스트로 잃었다. 페르버 씨는 일상에서 버드나무 목탄으로 그린 그림들을 그리고 지우기를 거듭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냉정한 시간과의 싸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세계의 시시포스 같다고나 할까.

 

시시포스의 고역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페르버 씨의 이미지는 그의 시간을 양분하는 마사이 족장이 무허가 영업 중인 ‘와디 할파’만큼이나 낯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막스 페르버 씨의 이야기 그리고 책에 실린 조작된 분서 사진 그리고 페르버 씨의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추적해 가는 과정들이 느릿하게 전개된다. 그 기록들은 너무나 정교해서 이것 역시 작가의 상상만으로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화자는 왜 그렇게 이런 이야기들에 집착해서 집필에 나서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마치 어떤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결국 기억과의 전쟁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제발트 작가가 전쟁 중에 독일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범죄를 카이로스가 만든 망각의 덫 속으로 혹은 전쟁 막바지에 베를린의 총통 벙커에서 자살한 죽은 지도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조직적 은폐 행위에 문학적 저항을 시도한다. 우리도 지난 9년 동안의 적폐청산 작업 중에 있지 않은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만하면 됐으니, 과거는 덮고 미래로 가자고 주장하는 이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제발트의 편에서 손을 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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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묘보설림 2
루네이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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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이,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작년에 류전윈과 옌롄커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중국 문학의 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우리에게 광주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문화대혁명이 있었다. 처음 만난 작가를 한 작품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그전 세대의 문학 작가들과 다른 결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대기아 시대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고 삼촌에게 의탁해서 겨우 살아남는데 성공한 청년 천쉬성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은 바로 페놀을 생산하는 전진화학공장이었다. 그곳에서 사부를 만난 쉬성은 사부에게 기술을 전수받고(사회주의 중국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봉건제의 유산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외동딸 리위성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다시 직공들에게는 생명줄 같았던 보조금을 사부의 도움으로 받는데 쉬성은 성공한다. 그러니까 사회주의 천국이라던 중국에서도 인민들은 그놈의 보조금 없이는 살 수 없었단 말이다. 그리고 마오쩌둥 사후 사인방이 몰락하면서 덩샤오핑이 주도하던 개혁개방이 시작된다.

 

대기아 시대와 문화대혁명 기간에 성실한 쉬성은 사부와 사형 건성을 잃는다. 쉬성에게 먹을 것과 일자리 그리고 거처를 제공해 주던 페놀 공장은 한편으로는 언제라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대가로 목숨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페놀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전진화학공장은 마치 사회주의 중국의 축소판 같았다. 타인을 짓밟고 승진하기 위해, 아니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밀고와 모함, 감시가 수시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리테뉴 주임이 왕싱메이와의 관계 때문에 그리고 쉬성의 사형 멍건성이 차례로 노동자에게는 치명적인 노동개조형에 처해졌다. 폭력을 피해 도망치던 왕싱메이는 어이 없이 죽고 말았고.

 

어렵사리 결혼에 골인한 위성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 그리하여 시골 사촌형의 막내딸 푸성을 쉬성과 리위성 부부는 입양한다. 장애가 있었지만 부부의 보살핌으로 극복해낸 푸성은 들판의 잡초처럼 그렇게 쑥쑥 자란다. 페놀 공장에서 한 때 한직으로 밀려 나기도 하지만, 결국 성실함과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인정받은 쉬성은 다른 사람들의 보조금 신청을 어쩔 수 없이 도맡아서 해결해 주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십수년의 노동개조형을 마치고 공장으로 복귀한 건성은 장애와 전과 때문에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던 공장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였다. 창고지기와 노점으로 새출발을 해보려고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렸다. 행복할 수 없었던 과거사의 피해자라고 해야 할까.

 

간경화로 시름시름 앓던 위성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 버리자, 기묘하게도 그 때부터 쉬성의 운이 트이기 시작한다. 교활한 쑤샤오둥이 민영화된 전진화학공장을 거저 먹다시피 인수해서, 수십년간 일해온 노동자들을 직위해제시키고 자기 입맛대로 요리하기 시작한다.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 폐해가 그대로 사회주의 중국에 도입되면서, 그나마 노동자들을 보호해 주던 장치들이 해제되고 무자비한 자본주의 경쟁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연명하던 푸성의 친부 투건도 그 바람을 타고 단박에 부자가 되지 않았던가. 한편, 페놀 공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천쉬성과 동료기사 덩쓰셴에게도 금전의 신이 마침내 부드러운 손길을 보내기 시작한다.

 

소설의 말미에 달린 옮긴이의 말을 읽어 보니, 루네이 작가의 이력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직군을 전전하면서 쌓은 세상 이야기에 대한 채집은 과연 소설 <자비>의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 때, 페놀 공장에서 일했다는 부친의 체험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소설을 쓰기 위해 만난 진짜 직공들의 이야기는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고 했던가.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이래, 경쟁이 없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던 중국 인민들에게 덩샤오핑이 도입한 자본주의는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위기였다. 천쉬성이나 덩쓰셴 같이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던 기사 혹은 직공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였겠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보통의 농민공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대상이 국가에서 자본계급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전혀 없지 않았던가.

 

평생 건달처럼 살았지만 세상과 타협할 줄 몰랐던 건성은 그나마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창고지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노점도 해보고 계도 들어 보지만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본주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건성은 장애와 전과라는 이중 장애물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그에 비해 일상에서 크게 엇나가지 않으면서 평생 한길만 파온 쉬성이 말년에 행복을 찾는 장면은 일면 진부해 보이기도 하면서 역시 삶의 진리는 간단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50년 전에 헤어진 동생과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야기 숲을 거니는 고양이, 그러니까 글항아리 출판사의 묘보설림 시리즈가 야심차게 시작했던 다른 출판사들의 중국문학 시리즈들처럼 단명하지 않고 계획 대로 꾸준하게 순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시리즈에 소개된 옌롄커의 <일식>과 왕웨이롄의 <책 물고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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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1-05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중국소설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네요^^.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8-01-05 13:4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동안 관심만 가지고 있다가 미처 못
읽고 있었는데, 묘보설림이라는 시리즈가
100권까지 나올 전망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목나무 2018-01-05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항아리에서 이제는 소설도 출간되는구요.
표지가 인상적이네요. 리뷰읽고 일딴 찜을 합니다. ^^

레삭매냐 2018-01-05 13:50   좋아요 1 | URL
저도 깜딱 놀랐습니다. 글항아리에서 소설이 나
오다닛! 중국 소설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왔으면
합니다.

우선 1편인 <암호해독자>도 보고 싶더라구요.
표지 정말 잘 뽑았습니다 짱~

cyrus 2018-01-05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사실 레삭매냐님은 묵묵히 리뷰를 올리시는 분이라서 리뷰에 새해 인사 댓글 달기가 망설였습니다. 자꾸 미루면 안 하게 될 것 같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새해 인사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변함없이 좋은 리뷰 많이 써주세요. ^^

레삭매냐 2018-01-05 16:38   좋아요 0 | URL
하다 보니 알라딘 블록에는 리뷰만 올리게 되네요.
네이버에는 잡설도 쓰고 하지만요.

싸이러스님도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오브리 파월 지음, 김경진 옮김 / 그책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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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예스, 제니시스, 피터 개브리엘, 블랙 사배스, 10CC...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던 한자락 하는 아티스트들의 앨범 커버 작업을 도맡다 시피 한 그래픽 디자인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그책 출판사에서 나온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의 저자 오브리 “포” 파월이 속한 힙노시스 프로젝트였다.

 

아마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세대들에게는 바이널 레코드란 말도 생소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바이널 시대의 끝자락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어릴 적 바이널 레코드를 사모을 적에는 두 장에 오천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는데,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긴 했지만 바이널 레코드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아우라에는 도저히 필적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전에는 에잇 트랙이라는 나는 보지도 못한 음악 미디엄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상업예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창작이라는 활동에 너무 고상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럴까. 왠지 돈을 받고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가 예술이라기 보다 거래에 가깝지 않나 하는 그런 편견이 배어 있는 모양이다. 사실 힙노시스 프로젝트의 일원들도 모두 돈을 받고 일한 게 아니었던가. 아무리 그래픽 디자인 계의 주술사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계좌에 돈이 꽂히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는 걸까. 하지만 입금이 되고 나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앨범 커버 씬에서 열심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예술과 상업의 교묘한 줄타기 정도라고 해두자.

 


당대 최고의 밴드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나 롤링스톤즈와는 작업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장도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대신 실험적인 싸이키델릭 음악으로 승부를 걸었던 핑크 플로이드의 저 유명한 <The Dark Side of the Moon> 같이 걸작 앨범 커버를 맡기도 했다. 음반회사에서 질색을 했겠지만 밴드 이름도 그리고 앨범 제목도 달지 않은 커버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는 예술가들의 곤조를 엿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존감의 발로라고 표현해야 할까.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작의 커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양말을 입에 문 커버도 재치가 넘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앨범 커버의 비주얼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결국 유튜브를 돌려서 해당 앨범의 노래들도 찾아서 들어 봤다. 29세의 나이로 글램록 계의 신화가 된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리더 마크 볼란의 <Get In On>도 들어 봤다. “You're dirty sweet and you're my girl” 뭐 이런 가사가 등장하는데 그것 참! 당대 그래픽 디자인을 주도했던 이들답게 소프트 에지 기법으로 만든 마크 볼란의 <Electric Warrior>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힙노시스 집단이 어떻게 보면 상업집단이긴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비주얼로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음악가들이 음악으로 자신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졌다면, 그 음악을 매개로 힙노시스 집단은 이미지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다. 한동안 비주얼의 압도적인 권력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4차혁명의 시대에는 다시 오디오의 시대로 환원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도 나왔던 10CC의 <I'm Not in Love>의 오리지널이 6분이 넘는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동안 싱글 버전만 듣다가 오리지널을 들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약간 촌티가 나긴 했지만 홀리스의 히트곡 <Long Cool Woman (In A Black Dress)>도 일부러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CD도 사라져 버린 디지털 음원 시대에 앨범 커버라는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은 아무래도 반세기 전의 그것과 비교해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앨범 커버는 손 안에 쏙 들어오는 모바일 폰에 뜨는 디지털 음원이 어디서 알려 주는 조그만 이미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고, 나같은 옛날 사람에겐 추억과 향수 그리고 유튜브로 그들의 음악을 찾아보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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