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달다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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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달다 씨의 그림톤과 이야기들은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그런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부랴부랴 인스타 주소를 찾아 보았지만(리뷰 쓸 적에 담을 사진이라도 하나 건질까 싶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스타에는 아직 서식지를 만들지 않은 모양이다. 있다고 해도 내가 찾지 못했으니 그만이지 뭐.

 

우리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살아온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달다 씨의 그림에는 잔뜩 배어 있다. 그건 마치 아직 먹어 보지 못한 눈꽃삼겹살 같은 맛이려나. 그림과 생전 연이 살다 미대에 가기 위해 재수까지 했다지 아마. 그 다음에는 광고에 또 미쳐 살았고. 취준생으로 수년 보낸 뒤에는 아트 디렉터로 취업하는 등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신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들의 궤적을 나는 쫓게 된다.

 

꽃다운 나이 열여덟에 아버지를 여읜 이야기는 참말로 슬펐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나의 첫사랑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란 쉽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짜로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는 말에도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따는 운전면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도로연수에서 세 번인가 떨어진 뒤 딴 면허는 한동안 장롱면허가 되었다가, 수년 뒤에 부활해서 지금은 차가 없으면 외출도 안하려고 하는 그런 인간이 된 사람도 있다네. 물론 버스를 타야 할 때는 또 그렇게 가게 되는 거겠지만.

 

세상은 내 잘난 맛에 사는 기다. 기죽을 필요도 없지. 아무리 인스타나 페북에 갖가지 미용술과 맛집 출입으로 도배된 사진들이 넘쳐흐른다 하더라도 절대 기죽지 말지어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요즘 소확행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라지. 그래 살면서 우린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는 것이야. 그러니 무엇이라도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걸 챙기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다. 물론 나에게는 우리집 꼬맹이도 나는 그게 바로 책이지. 오늘 아침에만도 로맹 가리의 <레이디 L>을 읽으면 얼마나 즐거웠던가. 출근 길에 챙겨온 책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아주 약간의 선행도 베풀었지. 물론 그 이면에는 나의 혹독한 책 다이어트 프로젝트 의도가 숨어 있긴 했지만 말이야.

 

다시 한 번 소소한 행복에 대해 말하고 싶어. 어린 시절, 어른들과 버스 안에서 시달리는 대신 나와 친구들을 안전하게 승합차에 실어 등교시켜 주시던 빵빵이 아저씨에 대한 감사한 마음. 미처 그 때 하지 못한 감사의 말을 전하다니, 기특하기도 하여라. 필리핀 여행길에 파란 불가사리로 바다 밑 하얀 모래를 수놓던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나만의 고유한 이야깃거리들이 있는 법이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아마 나에게도 그런 게 있겠지. 별안간 예전에 전주 한옥 마을에 놀러 갔을 적에 동행했던 동생이 사준 머그컵이 생각나네 그래. 어디선가 읽으니 누구는 동물에 더 이상 애정을 줄 수가 없게 되어 사물을 애착하게 되었다고 하던데. 뭐 이러다가 나도 그런 과가 되는 게 아닌가 조금 걱정이 앞선다.

 

지난 주에는 지랄맞았는데, 이번 주는 참으로 달구나. 그렇게 우리네 인생이 흘러가는 법이지. 대체적으로 나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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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숨결 - 개정판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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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미친 듯이 로맹 가리를 읽고 있는 중이다. 역시 오랜 숙제였던 <새벽의 약속> 읽기 성공이 끗발을 미치고 있는 그런 느낌. 어제는 유고작과 미완성 원고 소설집인 <마지막 숨결>을 읽었다. 아침 출근길에 읽기 시작했는데, 부지런히 읽어서 자기 전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로맹 가리 문학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의 뿌리>도 서가에서 찾아냈다. 여기저기 사둔 책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당분간은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고집인 <마지막 숨결>을 읽으면서 왜 어떤 작가에 대한 전작 읽기가 필요한 지에 대해 절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로맹 가리 문학의 근원을 알 수 있었던 <새벽의 약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여러 단편들로 구성된 그리고 권총자살이라는 방식으로 한바탕 즐겁게 세상을 즐기고 떠난 거장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 곳곳에 배어 있더란 말이다.

 

LA 총영사 출신의 외교관이었던 로맹 가리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스낵바에서 기묘한 체험을 한다. 이름부터 퍽버거(fuckburger)라니. 미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욕설을 프랑스어로는 도저히 번역될 수 없더라는 사유에서부터 시작해서, 레종 도뇌르 훈장 약장으로 무장한 외국인인 자신과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국 아버지를 둔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유고 출신 무자비한 킬러를 동원해서 자신을 ‘클린’해 달라는 부탁을 오래 전 애인이기도 했던 헝가리 출신 사이비 교주에게 청탁하는 등 그야말로 쉬르리얼리스틱한 구성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죽기 전에 어떤 책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어디선가 읽은 것도 같은데 전화번호부야말로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했지.

 

안남(베트남)의 혹독한 정글에서 400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도 공사에 나선 파비아니 중위를 괴롭히는 건설기사의 아름다운 아내가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여인>도 흥미롭다. 모두가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기사 장 라콩브의 아내 시몬은 파리에서 직접 공수해온 음반들과 무도회 개최로 부대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심지어 그녀를 두고 부대원들 간에 싸움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철도 건설에 지대한 지장을 끼치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녀가 주변의 적대적인 무아 족 대추장을 방문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발생한다. 원주민들의 이유 있는 공격(!!!)으로 다수의 부대원들이 사로 잡혀 고문으로 죽어갈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중위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호의나 선의가 절대 비슷한 대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소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식 식민주의와 민족자결주의라는 대전제에서 훗날 고민하게 될 로맹 가리의 고뇌의 일면을 슬쩍 엿볼 수 있었다.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리스 사람>은 상당히 정치적인 면들을 다룬다. ‘황금 돌고래’라는 별명의 미국 수영선수 출신 빌리는 유럽 각지를 떠돌며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벌어먹고 사는 한량이다. 해안에서 깊은 바다로 수킬로미터를 헤엄쳐 갈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을 현지 사람들은 의심한다. 문제는 그가 머무는 섬 인근에 아테네를 지배하는 대령들이 자신들을 반대하는 정치범들을 수용한 비밀수용소가 있다는 점이다. 빌리는 바닷속에 수장된 현상수배범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현지인들은 그에게 비밀의 장소까지 갈 수 없다는 내기를 제안하지만 사실은 서구 신문기자의 제안으로 비밀수용소의 사진을 찍어 오라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미발표 원고라 그런지 결말이 제대로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양한 로맹 가리의 책과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들도 하나둘씩 알게 됐다. 우선 스페인 내전 당시 말로 휘하의 비행대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것, 그리고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전쟁에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의 토브룩, 엘 알라메인이나 튀니지 뿐만 아니라 차드의 포르라미(지금의 은자메나)나 리비아의 쿠프라 등지에서도 나치 독일과 자유프랑스군 소속 항공대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영토 해방의 주역이었던 로맹 가리의 이런 혁혁한 무공이 해방 당시에는 자랑거리가 되었을 진 모르겠지만, 전후 세대가 등장하고 베트남전쟁과 알레리전쟁에서 프랑스 식민주의가 패배하게 되면서 소위 말하는 꼰대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청년 시절에는 영광과 승리의 상징이었던 훈장들이 시간이 지나자 꼰대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는 저자의 회한 섞인 감정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가 있었다.

 

여담으로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다 보니 로맹 가리의 두 번째 부인이자 미국인 배우였던 진 세버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이스트우드 아저씨에게 프랑스인답게 결투를 신청했단다. 폭력을 싫어하시는 “더티 해리” 아니 미래의 시장님은 미국인답게 결투를 거절했고. 뭐 그랬더란다. 재미있는 일화가 아닌가.

 

이제는 신화가 되어 버린 자유로운 영혼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에 반해 버렸다. 나의 로맹 가리 읽기는 계속된다.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한 희대의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하는 <레이디 L>은 최고다. 로맹 가리에 입문하시는 분들을 위한 맞춤 소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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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17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입문가능할까요?ㅋ

레삭매냐 2018-07-17 11:49   좋아요 1 | URL
당근입니다.

일단 <마지막 숨결>도 좋을 듯하며
무엇보다도 지금 막 읽고 있는
<레이디 L>이 좋을 듯 합니다.

아주 정치적이면서도 스릴러 스타일
의 전개가 맛깔납니다.

2018-07-17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7 11:54   좋아요 2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

제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책은 좀 읽어 봤지만
알제리 전쟁에 대해서는 진짜 문외한인지라.

작년엔가 문지에서 나온 책을 사긴 했는데
(읽지 않아서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네요 ㅠㅠ)
암튼 고런 책들을 좀 만나 봐야지 싶습니다.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자유-평등-박애를 사랑한다
는 프랑스 군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
반성이 있었나 싶네요.

전쟁의 트라우마는 참...

2018-07-17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17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어떻게 그렇게 책을 뚝딱하고 하룻만에 다 읽으십니까?
대단하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결투를 거절했다면 진 세버그를 포기했다는 말일까요?
입문자를 위해 <레이디 L>이라...
기억하겠슴다.^^

레삭매냐 2018-07-17 11:50   좋아요 1 | URL
저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네요 :>

뭐 결국 진 세버그랑 갈라 서지 않았던가요.

<마지막 숨결>은 너무 재밌어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 뒹굴뒹굴하면서 읽다 보니 어느새
다 읽게 되더군요.

늦바람이 무서운 모양입니다.

AgalmA 2018-07-18 0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로맹가리! 레삭매냐님 전작읽기는 늘 폼 납니다👍

레삭매냐 2018-07-18 08: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인 걸요 ~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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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새벽의 약속>을 다 읽는데 성공했다. 지난 수년 동안 별짓을 다하면서도 빈번히 실패해 왔던 나의 로맹 가리 읽기는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이번 여름 로맹 가리 읽기의 시작과 끝은 어쩌면 바로 이 <새벽의 약속>으로 기록될 것이다.

 

러시아와 폴란드를 거쳐 위대한 배우였던 아버지와 편모슬하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자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은 정말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는 말에 속아 도돌이표를 하듯 무턱대고 읽고 또 읽고 또 실패했다. 그나마 올해 3월에 다시 읽기 시작해서 1부까지 읽은 것이 완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난주에 2부부터 읽기 시작해서 결국 완독에 성공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 그래.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위대한 프랑스인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 주었다. 어쩌면 두려움과 실패를 모르는 로맹 가리의 어머니야말로 훗날 영웅이자 대사, 그리고 소설가로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는 작가의 원천을 이루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조력 없이 자존심 하나 만으로 타지에서 아들을 번듯하게 키우기란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어머니의 허풍은 폴란드의 시골 윌노 같은 마을에서는 그나마 먹혔을지 몰라도, 프랑스 니스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실패를 모르는 도전자였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이루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그야말로 넘쳐흘렀다.

 

GOD에게 짜장면이 있었다면, 로맹 가리의 어머니에게는 정오의 스테이크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고민과 갈등 그리고 회한마저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골루아즈 담배의 희부연 연기가 있었다. 아들은 오로지 어머니가 바라는 성공을 위해 내달렸다. 니스의 어느 테니스 코트에서 오로지 어머니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없다는 수치스러운 광대 짓을 마다하지 않았던가. 나이든 자식들이라면 이제는 깨달을 수 있는 일들을 소설로 만나게 되는 장면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나도 언제 그랬던가.

 

귀화한 프랑스인으로 참담한 패배를 기록한 1940년의 패전을 딛고 공군 장교가 되겠다는 청년의 결심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하사 계급장을 단 청년 로맹 가리는 전장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조국 프랑스를 위해 싸웠다. 절대 다수의 공군 조종사들이 공중에서 다양한 이유로 전사했지만, 로맹 가리는 어머니의 영광과 승리를 위해 끝까지 살아남아야했다. 니스의 어느 호텔에서 마침내 매니저로 자리 잡는데 성공한 어머니에게는 당뇨병이라는 치명적 질병과의 마지막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골의 자유프랑스군 대열에 합류한 로맹 가리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많은 작전에 참가한 공로로 프랑스인들에게는 최고 영예라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비롯해서 드골 장군에게 직접 받은 영토 해방 훈장 그리고 무공훈장으로 자신의 군복을 장식하게 된다. 전쟁 중이라 비록 어머니와의 연락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이 근사하게 빗겨 나가는 와중에도 문학도로서의 꿈을 저버리지 않은 로맹 가리는 마침내 데뷔작 <유럽의 교육>을 발표하는데 성공한다. 아울러 어머니의 소망대로 대사가 되기 위한 영토 해방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공로로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다는 희소식도 듣게 된다. 한 마디로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당한 수모와 고난을 보상해 줄 영광과 승리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과연 아들은 어머니의 운명적 해피엔드였던 것일까.

 

로맹 가리 전작을 읽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에서 로맹 가리의 문학의 근원을 밝혀주는 <새벽의 약속>이야말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숙제였다. 아마도 두 번째 숙제는 <새벽의 뿌리>가 될 것이다. 요즘 동시다발적으로 로맹 가리의 책들을 읽고 시작했는데, 한 명의 남자, 전쟁영웅, 문학가라는 다양한 면모를 가진 작가의 이모저모를 알게 되는데 역시 문학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한 산문집 <인간의 문제>에 나오는 비평가들과의 신랄한 대화 역시 일조하고 있다. 또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 곳곳에 숨겨 놓은 이야기들의 단서 내지는 실마리를 찾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로맹 가리 작품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그래도 희망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 같은 주제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새벽의 약속>은 자세히 알려준다. 로맹 가리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퍼부은 사랑은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었던 것이다. 조국해방 전쟁에 분연히 나선 청년이 장티푸스로 사경을 헤매면서도, 숱한 동료들이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 북아프리카, 지중해 그리고 크레타의 전역에서 수도 없이 전사하는 가운데서도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가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고, 모든 기적의 원동력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진짜 멋진 약속이 아닌가.

 

한동안 나의 오랜 숙제였던 <새벽의 약속>을 읽으면서 과연 읽지 못할 책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물론 벽돌 두께만한 사이즈의 책들이 여전히 서가에서 나를 압박하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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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16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ㅎ

레삭매냐 2018-07-16 17: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겨우 5권 읽었네요 -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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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집에 포화상태가 책들을 감당할 수도 없게 된 게 가장 큰 이유겠지. 그래도 어쩌랴 계속해서 쏟아지는 신간들을 외면할 수 없으니. 그리하야 도서관에 한 달에 두 권씩 신청할 수 있는 희망도서 신청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이기호 작가의 신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소설집을 빌렸고 주말 동안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표제작에서 교회오빠 강민호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나 하는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아싸라한 정보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냥 심심한 평양냉면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관광지에서 모스크를 찾았다가 독실한 무슬림 신자로 변신해서 히잡을 쓰고 출근하고, 회식자리의 단골 메뉴인 삼겹살을 삼가는 선생님이 된 이야기. 진라면이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유일한 라면이라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됐다. 나중에라도 진라면을 할랄 푸드라고 소개해 주어야 하나.

 

나는 오히려 다른 이야기에 더 끌렸다. 항상 작가와 소설 속의 페르소나는 분리해서 읽어야 한다는 노래를 들었건만 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분명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자신의 책을 중고나라에 올려서 덤으로 팔아먹겠다는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분명하다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박형서는 진짜 그 소설 작가 박형서 씨가 맞는가? 왜 누구의 책은 적게라도 돈을 받고 팔고, 누구의 책은 여러권 사면 덤으로 끼어 주는 책이 되었단 말인가? 초기 단계의 윤리적 이슈들이 스물스물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작전에 투입될 뻔한 크레인 기사가 나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의 신산한 삶에 대한 스케치보다 열몇 시간을 운전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취재하겠다는 소설가에게 돼지숯불구이와 떡갈비 그리고 비냉까지 얻어먹고는 자기 허락 없이 녹취를 했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란. 어느 것 하나 내가 가진 도덕률에 반하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는 결심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야 할 것 같다. 과적 차량으로 지목되어 한강 다리를 건너지 못한 원인제공자 크레인 기사 아저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아도 될 용산참사가 벌어졌다는 상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오래전 예의 뉴스를 출근길에서 듣고는 잠시 멍했던 기억이 난다. 망루에 올라 생존을 외칠 뻔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일 수도 있었다는 그런 동조감 때문이었을까.

 

이중 지급된 빚 700만원 받아내기 위해 소소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결국 마을 사람들은 선의로 십시일반해서 그 남자가 받아내고자 그렇게 노력하던 돈을 갹출해서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가 그 돈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절대 아닐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그를 위해서 어려운 가운데 돈을 만들어냈지만, 남자가 받은 모욕과 수치스러운 감정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그런 윤리적 문제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사실 어떤 결론이 나도 모두에게 만족스럽진 않았을 것 같다. 지방대학 강사님이 대표로 나서서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은 다수 착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게 아니었을까.

 

누가 착하다는 타인에 대한 평가가 김숙희 씨만큼 적용되는 케이스는 또 어떨까. 동정과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은 결혼으로 해결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한다는 상황 설정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어린 아내의 고백에 무심코 막힌 하수구 구멍을 뚫어 구정물이 솟아 오르는 장면이 감정해소로 단계로 전환되는가 하면 당연히 그것도 아니었다. 피곤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 아내가 원했던 남자의 리액션은 아마도 그게 아니었겠지.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하면서 악다구니를 하며 쌓인 감정, 수치스럽다는 그런 감정을 거하게 쏟아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또 아무 것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여자의 고백은 공범에 가까웠던 남자를 14년 전의 해당 사건에서 당당하게 소환해낸다. 그의 이름은 정재민이었지 아마. 제주도 가족여행에서 고기와 새우를 굽다가 느닷없이 서울의 경찰서로 임의동행해온 남자는 이제는 다 잊고 싶은 과거사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다. 자기가 현재 가진 것을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 여자가 고백한 것으로부터 최대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역시 이기호 작가가 단계마다 그런 감정들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할 것만 같다.

 

다시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는 듯한 아내의 연줄에서 딸려 나온 한정희 이야기로 소설집은 대망의 마무리르 짓는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지은 채무는 언젠가 되갚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재경 오빠의 딸 정희를 맡아 기르게 된 소설가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 어느날 그에게 학폭위에 참가하라는 통지가 날아오면서, 관계는 위기로 치닫는다. 다른 가해자들의 학부모가 고용한 학폭 전문 변호사의 눈부신 활약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지만, 소설가는 정희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물론 원인제공자는 어디까지나 정희였다), 여느 때처럼 후회는 차곡차곡 적립된다.

 

그런데 진짜 내가 혹했던 이야기는 소설가가 눈길에서 낸 교통사고를 처리하게 되는 후기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다. 피해자의 부상이 전치 10주가 넘어가면서 합의금이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거론되는 와중에 나의 아이덴티티나 그동안 내가 고수해왔던 소중한 윤리 혹은 도덕률 따위들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단박에 나는 배우가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정말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모름지기 소설가, 지식인 그리고 학자라면 이러이러한 삶의 준칙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의식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확실히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재밌는 소설이다. 소재 선정이나 수치스러운 삶을 계속 감내해내야 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타전 역시 좋았다. 다만 무언가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디 다음에는 더 쎈 걸로 한 방 부탁해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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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7 08: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병원을 세 군데 돌면 점점 눈덩이
처럼 전치 몇 주가 늘 수 있는가 봅니다.

선의가 선의로 돌아오지 않은 세태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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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지난 주말 도서관에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차까지 몰아 가면서 부리나케 빌려다 읽었다. 헝가리 출신 망명자로,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스위스 뇌샤텔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게 아마 1956년이었나 보다. 그때만 해도 난민들에 대한 서구인들의 대접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21살의 젊은 엄마였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남긴 글을 보면 스위스 사람들은 헝가리 난민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쥐었다. 지금은 오로지 증오만이 보일 뿐이다. 심지어 난민 인정비율이 극도로 미미한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는 난민을 받아 들였다간 나라가 결단날 거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지고 있는 중이란다. 기가 막히는구나.

 

헝가리를 떠난 날부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적국의 언어들을 배우고 익히며 살아야했다. 빈에서는 아이에게 먹일 우유를 얻기 위해, 뇌샤텔에 정착해서는 또 다른 언어인 프랑스어를 배워야했다. 조국이 독일과 소련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역시나 그 나라 말들을 배워야했다. 모국어 대신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미래의 시인 혹은 희곡작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그건 어쩌면 사형선고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1953년 스탈린이 죽었다. 그리고 동방의 나라에서는 3년간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이 끝났다. 아마 동구의 소국 헝가리에서도 독재자의 죽음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죽음을 강압적으로 애도할 것을 주문했다. 다만, 애도의 시간이 쓰레기 치우는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과 겹쳐졌던가. 역설적으로 보면 스탈린의 죽음이 쓰레기 치우는 시간으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니. 진정한 해방의 시간이었으리라.

 

수년을 스위스에서 살면서 능숙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했지만, 저자는 읽지 못하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니 네 살때부터 모국어를 읽은 천재에 가까운 사람에게 그건 모욕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 환경과의 화해와 융합은 어쩌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풀리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전까지 겪어야 하는 수모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난민 혹은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흔한 풍경일 테니 말이다.

 

조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소련군 경비대에게 언제 총을 맞아 죽을 지도 모를 그런 위협을 무릅쓰며 젖먹이 아이를 업고 국경을 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미 우리는 신문 지상과 미디어를 통해 지중해 연안에서 벌어지는 숱한 비극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단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점만 고려하더라도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을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세기도 전 있었던 난민사태와 현재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주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아, 그리고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20분에 아마 다 읽었지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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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6 11:35   좋아요 1 | URL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네요...

자본의 유무에 따라 이민과 난민으로 분류
가 되는군요.

부유한 이들의 이민은 환영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이주는 단호하게 배척하고 거부하는.

cyrus 2018-07-16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평화 모드’로 가고 있지만, 만일 북한과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쟁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목숨 걸고 다른 나라로 건너 온 난민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8-07-16 13:27   좋아요 0 | URL
아마 지금 당장 내가 아니니까 그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아닐까요.

배타적인 님비현상의 확장판 그리고 불안감
을 조성하기에 타겟으로 난민한 존재가 없
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8-07-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7 08:29   좋아요 0 | URL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은 처음이라
그런지 초보에게는 다 새로운 내용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비밀 노트 3부작은 사두기만 하고 못
읽고 있네요.

반복변주인 셈인가요. 아쉽네요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