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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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책을 읽었던가? 아주 오래 전, 독서모임에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때 난 책을 다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볼라뇨와 세풀베다 같은 칠레 작가들의 책은 흥미롭게 읽었는데, 당최 붐문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마르케스의 책들은 나랑 좀 맞지 않는다는 느낌에 의도적으로 멀리 했던 것 같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마르케스가 살아 계셨는데 지금은 영면하셨다.

 

최근 새롭게 마르케스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뒤늦게 하나씩 컬렉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1994년에 발표된 <사랑과 다른 악마들>이었다. 지난주에 사서 읽기 시작했고,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서두에 마르케스 자신이 신문 기자로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산타클라라 수녀원 묘지의 유해를 발굴하던 중, 머리카락이 2미터도 넘게 자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는 자신의 할머님이 카리브 해 일대에서 많은 기적을 행해 숭배를 받았다는 카살두에로 후작 딸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추론한다. 물론 시작부터 그럴싸한 소설의 전개를 위한 설정이다.

 

스페인 제국이 효율적인 원격 식민통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를 네 개의 부왕령으로 분할했다. 그 가운데, 세 번째로 세워진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에 포함된 항구도시 카르타헤나는 신대륙에서 채굴된 은이 구대륙의 문물과 교환되는 중요한 장소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구대륙에서 들여온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디오들이 몰살당하면서 신대륙 개발을 위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결과 노예무역은 수지가 맞는 신수종 사업이었다. 소설의 초반에도 고혹적인 아비시니아 여인을 몸무게 만큼의 금으로 사들이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던가.

 

어쨌든 소설의 발단은 카살두에로의 외동딸 시에르바 마리아가 미친개에게 살짝 물리는 장면이었다. 아버지 한량 카살두에로 후작과 당밀과 카카오에 취한 어머니 베르나르다의 무관심 가운데, 시에르바 마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노예들 품속에서 자라면서 크리오요 귀족의 품성 대신 자연스럽게 그들의 주술적 관습과 언어에 젖어 들었다. 타고난 거짓말하는 능력까지 익히면서, 광견병에 걸린 악마 소녀가 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로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1811년까지 카르타헤나에 존재했다는 종교 재판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뒤늦게 자신의 딸 시에르바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카살두에로 후작은 백방으로 수를 써 보지만, 딸의 증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대계 포르투갈 출신 의사 아브레눈시우는 후작 영애의 증세를 대수롭게 보지 않고, 행복이라는 처방전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긴다. 아브레눈시우의 경험을 믿는 대신, 돌팔이 의사들의 처방을 따랐다가 시에르바 마리아의 증세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의학이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거의 주술의 수준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자, 여기에서 시에르바 마리아 사건에 개입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인물이 당시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 비르투데스다. 카르타헤나 종교 당국의 최고 권위자로 카살두에로 후작의 위임을 받아 미치광이 소녀를 산타클라라 수녀원에 유폐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살라망카에서부터 자신이 데려온 애제자이자 신뢰하는 신부 카예타노 델라우라에게 엑소시즘을 거행할 것을 명령한다.

 

한편 봉쇄수녀원에 갇힌 시에르바 마리아는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안좋은 모든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숱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수녀원은 역설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시설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증세를 광증으로 더 악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니 멀쩡한 사람도 그런 곳에 갇혀 있다가는 미치지 않을까 싶을까 정도다. 퇴마사 경험도 일천한 델라우라 신부는 스승의 명령에 따라 엑소시즘에 나섰다가 12세 소녀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나이 차이는 물론이고 나중에 왜 그렇게 사랑하는 소녀를 데리고 신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탈출하지 않았을까.

 

주교와 신부의 지휘 아래 신대륙에서 진행되는 퇴마의식은 원주민 인디오나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요루바족들의 주술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인간의 의심과 불안이 만들어낸 환영을 쫓아내기 위해 벌이는 푸닥거리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서구식 관습을 전파하기 위해 사제와 수녀들이 겉으로 보여주는 희생과 봉사정신은 더욱 더 위선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원주민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 그리고 수탈의 역사를 반성하고 회개해야 했던 게 아닐까.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이 종교와 군대 그리고 상인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 카르텔로 라틴아메리카 정복에 나섰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종교로 인디오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자 했으며, 군대로 대변되는 무력행사로 그들로부터 강제 노동을 강요했다. 마지막으로 자본축적을 위한 중상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상인들이 나서서 신대륙의 자원을 착취하고 수탈했다. 그 중에서 마르케스의 소설 <사랑과 다른 악마들>은 첫 번째 요소인 종교를 냉정한 시선으로 비판한다. 아무리 고도로 훈련받고 신앙으로 무장한 델라우라 신부도 결국 인간적 정념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점을 마르케스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신부와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 같이 이미 스페인 정복 초기부터 원주민들의 인권과 자연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창한 이들도 있었다. 반대편에서 인디오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면서 스페인의 군사적 정복의 정당성을 주장한 세풀베다 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지난 겨울에 산 <바야돌리드 논쟁>을 읽어야지 싶다.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독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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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6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틴아메리카가 묘하게 매력적인데가 있나봅니다 ㅎ

레삭매냐 2018-11-16 14:0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라틴 문학을 애정합니다.

루이스 세풀베다와 로베르토 볼라뇨를
특히 좋아한답니다.

뭐랄까 주술적 리얼리즘도 좋고 작가들
이 추구하는 가치전복적인 도전이 매력
적이라고나 할까요.

이번에는 마르케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뒷북소녀 2018-11-16 18:15   좋아요 1 | URL
저도 대댓글 쓰고 싶었는데 안돼서요. 마르케스 만화라면 어떤 책인가요?

카알벨루치 2018-11-16 18:27   좋아요 0 | URL
마르케스 인생을 만화로 만든건데 백년의 고독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알수있는 귀한 자료집이라고 볼 수 있어요 ...

2018-11-1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4:04   좋아요 0 | URL
아, 예전에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 그 시절에는 책 읽을 생각은 안하고
만날 놀 궁리만 했는지 ㅋㅋ

뒷북소녀 2018-11-16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라틴문학... 전문가처럼 보이는걸요.
그리고 희한하게 라틴문학은... 연쇄독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8-11-16 14:05   좋아요 1 | URL
전문가라니오...

고저 얼치기 독서꾼인 것을요 ~

라틴문학 연쇄독서에는 절대공감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6 14:13   좋아요 2 | URL
마르케스 만화 읽었는데 가슴이 뭉클....

대장물방울 2018-11-16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읽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백년동안, 콜레라시대 읽었는데 크크 읽기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뭔가 매력이 있더라구요. 거꾸로 되긴 했는데 이것도 찜해둬야겠네요 ㅋㅋ

레삭매냐 2018-11-16 16:10   좋아요 0 | URL
마르케스는 일단 단편부터 읽고 나서
그 다음에 장편에 다시 도전해 보려고...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제목 때
문에 그동안 구매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당장 가서 사야겠네 그래 :>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중고 주문
했는데 신간하고 같이 오느라 다음 주
에 발송예정이라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
기 시작했네 그래.

어그러져 버린 나의 독서 새끼줄이여 ~

목나무 2018-11-1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었군요. 마르케스의 소설 중에~~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10년 전에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짧은 소설이 참 무거운 걸 이야기하고 있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
간만에 저도 다시 마르케스의 소설 읽어봐야겠어요. 이번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마르케스 소설 축하 기념으로다..ㅋㅋ

레삭매냐 2018-11-16 18:00   좋아요 0 | URL
전 오늘 도서관에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빌려서 읽기 시작했답니다...

역시나 특이한 스타일이네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저도
주문장 날렸는데, 마르케스가 가장 잘
쓴 단편이라고 하는군요. 기대가 큽니다.
 
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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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도를 민주주의 국가로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에 든 생각이었다. 누가 뭐래도 인도 국가 발전의 장애 요소는 바로 카스트 제도다. 그 카스트 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80%에 달하는 달리트 계급의 이익은 그런데 도대체 누가 보장해 주는가? 한국에서도 소득의 양극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말이 많지만, 인도의 경우는 스케일이 다르다.

 

인도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재벌이 만들어낸 소비의 카르텔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재벌이 만들어낸 소비재 없이 살 수 있을까? 재벌이 만든 휴대폰과 통신망으로 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그들이 만든 영화를 그들의 상영관에서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영화값을 능가하는 팝콘과 음료수는 물론이고. 모든 소비재의 영역에서 우리는 재벌의 세밀하게 엮어 놓은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룬다티 로이가 지적하는 인도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재벌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물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촘촘하고 교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인도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핑계로, 공공재를 재벌 그룹에게 넘겨주고 정권 연장을 획책한다. 뭐 그런 방식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어디서고 유효하다. 문제는 사람이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물, 전기 에너지 그리고 거주까지도 모두 통째로 사회 기득권층의 손아귀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25만 명에 달하는 인도 농부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떠들어낸 마이크로 금융의 덫에 사로 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자본이란 큰 돈이건 작은 돈이건, 빌리는 순간부터 채무노예를 양산해 낸다는 걸 그들은 미처 몰랐을까. 댐을 만들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경우는 또 어떤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홍보전을 위해,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비영리재단 혹은 비정부기구라는 해괴한 단체들(주로 거대기업의 후원 아래 조직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철저하게 비밀에 쌓여 있다)이 앞장서서 특정한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냉혹하게 지적한다. 그들이 정말 일반 대중의 복리증진을 위해 그런 선전을 하고 있는 걸까?

 

아룬다티 로이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바로 소비와 전쟁이다. 자본주의 3.0이라는 해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구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멀쩡한 휴대폰을 2년 약정 주기에 맞춰 노예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쿨한 것이고, 자동차 역시 장기 할부기간이 끝나기 전에 번쩍이는 광택을 내는 새 자동차로 바꾸라고 텔레비전 CF를 통해 세뇌한다. 고화질 소니 텔레비전이 가장 좋았던 시절은 구석기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다. HD 텔레비전은 물렀거라, 새로운 UHD 텔레비전이 나왔으니 어서 돈을 털어 새로운 모델을 집에 설치할지라. 그런데 그렇게 감당도 되지 않는 고화질 텔레비전을 구입해서 고작 해봐야 먹방이나 걸그룹의 군무를 보는 것으로 내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될지 나는 궁금하다.

 

그나마 자본주의 한 축인 소비는 이해해 줄만하다. 그런데 다른 하나인 전쟁은? 냉전시대 구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국은 전략 파트너로 파키스탄을 점지했다. 물론 치열한 냉전이 끝나자마자 소용이 다한 파키스탄은 미국에게 버림받았고, 지금은 아프간 게릴라들의 전초기지가 되어 온갖 풍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번 대중국 봉쇄작전의 첨병으로는 인도가 간택을 받았다. 미국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상대였던가? 바로 옆의 숙적 파키스탄과 핵전쟁의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인도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미국산 무기를 다량으로 구매하는 고객으로 변신했다.

 

인도의 아픈 손가락인 카슈미르의 경우를 보자.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 인구의 분포도를 볼 때, 카슈미르는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인도가 아니라 파키스탄으로 귀속을 되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 정치적 현실이 그러하던가. 인도 군인들의 대다수가 배치되어 돌멩이 투석전을 벌이는 카슈미르 주민들과 대치 상태는 어쩌면 인도 정부가 원하는 그림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게 상시적 적대국인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 인도에게는 항상 불안정한 상태의 카슈미르와 이웃한 무슬림 적국 파키스탄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적대적 공생관계가 연상되지 않는가.

 

대규모 학살 사태를 불러일으킨 구자라트 사건의 배후에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후원하는 파키스탄 정부가 있다며 인도 정부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과거 자신들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동벵골 테러리스트를 지원했던 일이나, 스리랑카 내전 당시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LTTE)들을 지원했던 일에 대해서는 망각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카슈미르 사태에 대해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아룬다티 로이에 대한 협박과 위협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위조절이 가능한 일상적 불안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히트 상품이라는 저자의 일침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룬다티 로이 역시 대형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받아 먹고사는 생활인이라고 작가는 담담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하지만 작가들의 그런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하는 대신, 당당하게 잘못된 일은 잘못 되었다고 그리고 민중의 연대야말로 그런 카르텔에 저항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질문의 시간이다. 이게 나라냐? 그렇다면 우리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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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8-11-16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가슴 절절하게 읽었어요.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지만 소설은 딱 1개 더라구요... 서평 읽고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4:01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의 신작 소설이 작년엔가
나왔다고 하던데 국내에서 출간 소식은
아직 요원해 보이네요.

번역이 늦는 걸까요?

coolcat329 2018-11-16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소설이 나왔군요 ~ 기다려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5:35   좋아요 1 | URL
번역서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물방울 2018-11-16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이 정도일 수가 있나 했어요. 정말 크으.

레삭매냐 2018-11-16 16:11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가 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라는 책도 있다고 하던데...

<자본주의>, <생존의 비용> 이렇게 해서
3부작이 아닌가 싶네 그래.
 

 


빠뜨리스 에머리 루뭄바 (1925년 7월 2일 ~ 1961년 1월 17일)

 

루뭄바는 콩고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 벨기에의 학정으로부터 독립한 콩고 민주공화국의 초대 수상이었다. 그의 수상 재임 기간은 1960년 6월부터 9월까지였다. 루뭄바는 벨기에의 식민지 콩고로부터 독립공화국 콩고로 이행하는 기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암살 당할 때까지, 이상적인 아프리카 민족주의자였고, 범아프리카 운동을 지지하는 정치인이었다.

 

콩고가 독립하자마자 남동부 카탕가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콩고 위기가 촉발되었다. 루뭄바는 벨기에의 지원을 받는 카탕가 분리주의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과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래서 루뭄바는 소련에 원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통령 조셉 캏사부부 및 참모총장 조셉-데지레 모부투 뿐 아니라 소련에 대항해서 냉정을 수행하던 미국과 벨기에와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루붐바는 모부투 지휘 아래 있던 국가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고, 카탕가 당국의 명령을 받은 총살대에 의해 처형되었다. 암살 후, 루뭄바는 범아프리카 운동의 순교자로 간주되었다.

 

... ... ...

 

이상은 위키피디아에 나온 빠뜨리스 루뭄바 항목의 서문을 날림으로 번역한 것임.

 

삼천리에서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그리고 부제는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아주 오래 전 중학교 시절엔가, 미국 우파의 이해를 대변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출간된 20세기 세계사를 통해 처음으로 루뭄바의 존재를 알게 됐다. 물론 두 페이지에 걸쳐 콩고 위기로 대변되는 식민제국주의로부터 아프리카 독립을 간략하게 다룬 글이어서 루뭄바의 실체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루뭄바의 실체를 알려줄 리도 없었겠지만.

 

콩고가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다지 많을 것이다. 예전에 어느 여행 작가는 “벨기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없는 나라”라는 내용을 담은 책을 냈다가 내가 지적해서 재개정판을 낸 적도 있었지.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이 콩고에서 저지른 악행은 이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흑인 노예들을 벌주기 위해 자른 그들의 무수한 손목들, 처형당한 원주민들의 두개골로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생지옥이 따로 없는 식민지배였다.

 

세계사에서 식민지모국의 배상은 언제나 같은 방식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 역시 콩고에 대한 배상과 사과는 없었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이 콩고에서 수탈한 재산은 현재 가치로 11억 달러(1조 1천억원, 1998년 기준)이라고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악랄한 벨기에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콩고가 구리를 비롯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잘 나갔으면 좋겠으련만, 모부투라는 희대의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 30년 동안 또다른 방식의 착취와 억압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로 그 빠진 고리에 해당하는 인물이 빠뜨리스 루뭄바인 것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신생국의 지도자들이 식민 모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엘리트 계급 출신이었다면, 루뭄바는 자생적 지도자라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특성을 가졌다. 우편국 직원이라는 식민지 공무원으로 출발한 루뭄바는 벨기에가 획책한 30년 계획에 대항해서 조속한 조국의 독립을 추구했다. 그 결과, 콩고는 1960년 6월 30일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 후였다. 콩고에서 다수 종족을 구성하는 바콩고 출신 카사부부에게 대통령직을 그리고 의회에서 선출된 수상의 자리를 차지한 루뭄바의 불완전한 연립정부는 태생에서부터 불안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연방제를 주장하는 남동부 카탕가 주의 모이세 촘베라는 강력한 정적은 결국 분리독립을 주창하면서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구리와 우라늄, 라듐 그리고 다이아먼드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카탕가 주를 벨기에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지원하면서 콩고 위기는 그야말로 극한으로 치닫게 된다.

 

쿠바혁명으로 공산주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지 않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미국 CIA는 루뭄바가 과연 공산주의자인가 아닌가 감별에 나서게 된다. 자주적 민족주의를 주장해오던 루뭄바는 외세의 도움이 아닌 자생적 조국 근대화의 꿈을 꾸었지만, 치열하게 맞붙던 냉전 시대에 중립은 존재할 틈이 조금도 없었다. 미국과 유엔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소련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소련 역시 분리주의자들에게 맞서 싸울 물질적 원조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한 모부투는 루뭄바와 그의 동료들을 카탕가의 정적 촘베에게 보내는 이이제이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민족주의자를 자신이 직접 처형하는 어리석은 행동 대신 교묘하게 차도살인 플랜을 가동시킨 것이었다. 여기에는 미국 CIA, 영국의 MI6 그리고 벨기에까지 개입한 것으로 훗날 드러나게 되는데, 아마 이번에 나온 책을 보면 좀 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전에 시간이 된다면 절판된 <레오폴드왕의 유령>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한 번 읽고 싶었는데 인천집에 갔다가 펴보지도 않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래서 책은 당장 읽지 않아도 사두어야 한다는 책구매의 합리화라고나 할까.

 

한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콩고 출신 정치인에 대한 책이 그의 사후 57년 만에 출간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설레발일 지도 모르겠지만, 귄터 발라프의 책에 이어 올해의 발견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한 번 삼천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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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물방울 2018-11-15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강추하시는 거지요? 훅 당깁니다.

레삭매냐 2018-11-15 14:16   좋아요 0 | URL
나도 출간 소식만 들은 지라...
그래도 상당한 기대작이라는 생각이 드네 그려.

목나무 2018-11-15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몰라요. 몰랐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되었고 그래서 우선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11-15 14:18   좋아요 1 | URL
이런 책들은 사주어야 책내는 분들이
기운 내서 더 좋은 책들을 소개해 주실 거라고
굳게 믿슙니다 넵 !

전 사전구매할 계획입니다.

2018-11-15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1-15 15:35   좋아요 2 | URL
어딘가에서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능가하는
대학살극이 20세기 초에 이미 벨기에 당국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하는군요.

300만에서 1,000만명에 달하는 콩고 사람들이
희생당했다고 하네요...

2002년에 벨기에 정부가 콩고에 사과하고
브뤼셀에 루뭄바의 동상이 세워졌다고 하는데
너무 늦은 사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cyrus 2018-11-15 1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오폴드 2세의 악행 중 하나는 콩고 원주민을 자신의 친위 부대로 만든 일입니다. 벨기에 식민 통치자들은 이 친위 부대를 이용해 콩고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통제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친위 부대가 강간을 저질렀는데 눈 감았어요.

레삭매냐 2018-11-15 17:53   좋아요 1 | URL
마치 예전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
정복한 가톨릭 국가의 청소년들을 잡아
다가 자신의 근위대인 예니체리 부대를
만든 것하고 비슷하네요.

어쩌면 술탄이 예전에 했던 방식을
벤치마킹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카알벨루치 2018-11-15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위대한 발견! 역쉬 레샥매냐님, 그리고 그 옆에 Sㅣ루스 박사님, 짝짝짝~

레삭매냐 2018-11-16 10:36   좋아요 2 | URL
이런 책들을 만날 때마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카스피 2018-11-16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책이 있었군요.오늘날 아프리카가 항상 내전으로 분열되는 것은 민족간 구성을 염두해 두지않고 서구 열강들이 자신들 맘대로 지도상에서 선을 긋고 식민지를 만든것 때문이라고 하지요.하지만 서구 유럽은 벨기에서 알수 있듯이 모두 아프리카의 참상에 대해 입을 싹 닫고 있지요.

레삭매냐 2018-11-16 14:01   좋아요 1 | URL
식민 제국주의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의 분열
이 더 조장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가난에서의 탈피와 자주적 근대화는 요원해
보이는 게 현실이네요.

식민지배국의 반성은 말할 것도 없구요.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클릭 지음, 이인숙 옮김 / 삼천리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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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이 나오다니! 역시 삼천리!
희대의 독재자 모부투 이야기도 실려 있다니 콩고 현대사
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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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타리크 알리가 저술한 이슬람 5부작 가운데 <석류나무 그늘 아래>에 이어 두 번째로 도전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아마 이렇게 두 권만 나오고 인기가 없어서인지 나머지 책들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랴, 그것 또한 한국 출판생태계의 숙명인 것을. 어제 헌책방에서 데려오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미 이러저러한 책들을 통해 수차례 접해 왔지만, 지난 천 년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뽑은 최고의 인물 살라흐 앗 딘(살라딘)에 대한 타리크 알리의 전기적 혹은 연대기적 서술은 매력적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술탄이 이야기를 하면, 선발된 유대인 출신 서기 이븐 야쿠브(야곱의 이슬람식 이름으로 보인다)가 술탄을 위해 기록한다는 설정에서 <술탄 살라딘>은 출발한다. 카이로의 술탄은 바야흐로 위대한 원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알 쿠스드(예루살렘) 탈환이라는 지상명령이었다. 적을 섬멸시켜야 후환이 없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십자군전쟁으로 프랑크족에게 빼앗긴 알 쿠스드 탈환에 나서는 영웅의 면모는 정말 대단했다. 알 쿠스드를 정복한 프랑크족이 성지에서 이슬람, 유대인 할 것 없이 모두 죽였다면, 살라흐 앗 딘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그런 장면이 잘 나오지 않던가.

 

이븐 야쿠브(살라흐 앗 딘의 가신 샤디와 더불어 저자가 생산해낸 가공의 캐릭터다)는 아이유브 왕조의 창시자인 위대한 술탄의 바알베크(헬리오폴리스) 유년 시절부터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던 디마스크(다마스커스)에서 권부의 중심에 다가서는 장면은 물론이고,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는 술탄이 할리마의 유혹에 빠지는 장면, 동성애의 유혹에 빠져 기묘한 술수를 부렸다가 엄혹한 처벌의 위기에 빠진 유력한 쉐이크의 이야기가 마치 독자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방식으로 현란하게 전개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술탄의 옆자리에 앉아 벌어지는 세계사적 흐름은 물론이거니와 이전투구처럼 전개되는 인간사에 대한 판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내가 소설에 집착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살라흐 앗 딘이 등장하는 종래의 작품들의 경우 알 쿠스드 재정복이라는 과정에 매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웅의 정치적인 면들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타리크 알리는 <술탄 살라딘>에서 이슬람의 규방, 하렘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썰로 술탄의 인간성도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술탄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위대한 전사이자 위선적인 권위와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샤디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당태종 이세민에게 위징이 있었다면, 술탄 살라흐 앗 딘에게는 샤디가 있었다.

 

이슬람 규방 문화에 대해서도 저자는 좀 더 다른, 그리고 진보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이자 자식을 생산하는 역할 뿐 아니라 근대적 개념에서 볼 때 팜므파탈의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이 속출한다. 빨간머리 매력녀 할리마를 비롯해서, 어지간한 이슬람 율법학자들을 뺨칠 만한 지적 능력을 가진 예맨 출신 술타나 자밀라의 경우를 보자. 연인 메무드를 잃고 술탄의 규방에 들었지만, 술타나 자밀라와 기묘한 사랑에 빠지는 할리마와의 관계에 투입된 유대인 개인서기 이븐 야쿠브의 곤란한 입장이 바로 이해가 됐다. 술탄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한 것은 좋았지만, 그것이 바로 야쿠브 자신에게 화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술탄은 예리하게 지적한다. 사방에 심어 놓은 비밀 첩자들 덕분에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든 술탄의 지모에 독자들을 감탄할 수밖에 없다.

 

쿠르드족 출신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은 자신의 아버지 아이유브와 어이없이 환관에게 살해당한 이슬람의 원조 장기의 아들 누르 앗 딘의 봉신이었던 시르쿠 휘하에서 미래의 무슬림 세계를 통일한 위당대한 군주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 이슬람 세계는 알 쿠스드에 자리잡은 예루살렘 왕국 프랑크족의 계속되는 반간계와 내분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었다. 훗날 이베리아 반도의 알안달루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분열을 곧 융성했던 제국의 멸망을 의미했다. 디마스크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의 패자 누르 앗 딘의 명령을 받은 아이유브 패밀리는 먼 이집트 카이로 원정에 나선다.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어이없는 식탐으로 죽은 삼촌 시르쿠를 대신해서 이집트의 칼리파로부터 와지르에 임명된 살라흐 앗 딘은 비로소 사분오열된 이슬람 세계 통일에 나선다. 이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주군 누르 앗 딘이 디마스크에 건재하고 있어서 주군의 견제와 프랑크족의 압박 그리고 빈번한 반란 때문에 카이로의 살라흐 앗 딘 정권은 풍전등화 같은 신세였다.

 

사방의 적으로 포위된 살라흐 앗 딘은 온갖 환난을 극복하고 시리아와 이집트의 술탄으로 우뚝 서는데 성공했다. 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위대한 전략가로서도 탁월한 능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성지 알 쿠스드의 회복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저항할 신자들은 없었으리라. 카이로를 떠나 원래 자신의 근거지였던 디마스크에서 알 쿠스드를 향한 최후의 지하드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분열되었던 이슬람 세계는 살라흐 앗 딘의 깃발 아래 집결한다. 지하드의 순교자는 알라와의 계산 없이 바로 천국에 간다는 이론 뿐 아니라,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싸웠다는 자부감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후의 전투에서 살라흐 앗 딘과 함께 싸웠다는 전승을 아들과 손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욕망도 한 몫 한 게 아니었을까.

 

타리크 알리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주의를 의식한 듯, 뛰어난 지성을 겸비한 술타나 자밀라와 그녀의 애인 할리마를 배치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특히 자밀라는 회의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카디가 알면 노발대발할 이단주의 사상도 마다하지 않고 지적으로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규방의 자밀라와 술탄이 보여주는 뛰어난 정보력은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라고나 할까. 술탄이 참가한 거의 모든 전쟁에 종군한 자밀라의 미친 존재감은 작가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로 판단된다.

 

사실 알 쿠스드 공략전은 그전에 술탄 부대와 프랑크 기사 간에 벌어진 하틴 전투로 판가름이 났다. 우유부단하다는 평가까지 받는 술탄 살라흐 앗 딘은 신중하게 전장의 모든 변수들을 고려해서, 프랑크 정예 부대를 물을 전혀 구할 수 없는 사막으로 유인해서 결국 궤멸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동안 수많은 신자들을 모욕한 샤티용의 레지날드를 직접 처단하는 과단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슬람 세계의 바람대로 알 쿠스드 공략에 성공해서 90년간 이어진 모멸의 시간을 끝장내는데 성공한다. 물론 성도 공략에 집중하고, 티레의 레몽 백작에 대한 아량 베풀기가 훗날 3차 십자군 원정 당시 파도처럼 몰아닥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프랑스의 필립 부대에게 해안도시를 내주는 패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관대하고 포용력 넘치는 술탄은 심지어 십자군 병사들과의 약속도 꼭 지키고자 하는 중세 기사도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리처드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수차례 술탄과의 약속을 이교도와의 약속이라고 주장하면서 깨뜨리는 파렴치한 장면을 연출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이벨린의 발리앙 역시 마찬가지다. 하틴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가 된 그를 술탄은 풀어 주었다. 이벨린은 살아 있는 동안 무기를 들고 술탄에게 대항하지 않겠노라고 서약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사도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프랑크족과의 전쟁으로 장장 20년간을 보낸 술탄의 최후를 기록하며 이븐 야쿠브의 연대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슬람 역사상 불세출의 영웅이자 성도 알 쿠스드를 회복한 신자들의 사령관 살라흐 앗 딘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어느 술탄도 살라흐 앗 딘 같은 추모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타리크 알리는 살라흐 앗 딘의 영웅적 모습은 물론이고, 부족한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저술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후기에서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했는데, 나같이 이슬람교에 대해 무지한 독자들이 보기엔 전혀 그런 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전작 <석류나무 그늘 아래>와 달리 아무래도 영웅서사가 중심이고,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캐릭터가 등장해서인지 전작의 비극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전개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유대인 이븐 야쿠브는 역사를 기록하는 개인서기로서 술탄의 총애를 얻은 대신, 아내의 부정 그리고 알 쿠스드 함락한 분노한 프랑크 기사들에 의해 비극을 겪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무슬림들의 염원이었던 성도 회복을 위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었을까.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이븐 야큐브의 개인사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로 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 시리즈가 <석류나무 그늘 아래><술탄 살라딘>으로 끝난 게 너무 아쉽다. 예고된 후속작 <돌기둥 여인>은 물론이고, <팔레르모의 술탄><황금 나비의 밤>은 아무래도 영어책으로 구해서 읽어야 하나 어쩌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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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물방울 2018-11-10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저도 구해둔 석류나무 먼저 읽어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18-11-10 22:56   좋아요 0 | URL
순서 대로 읽는 것이 좋은 것 같아 역시나 :>

사회운동 평론 그리고 소설까지 못하는 게
없는 양반이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