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모사의 눈부심 - 문학세상 외국소설선 1
쥴퓨 리반엘리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세상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 달궁 독서 모임에서 아민 말루프의 <동방의 항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미 절판되어 살 수도, 그렇다고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가 없는 책이었다. 오늘 중고서점에서 사서 단숨에 읽어 버렸다. 17세기 폐위된 광인 술탄 이브라힘에 대한 이야기를 쥴퓨 리반엘리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터키 작가가 소설로 발표했다.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지만 책을 읽으면서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서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천년제국 동로마제국의 보석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메흐메트 2세 이전부터 터키 궁정에서는 왕위 계승자가 술탄의 자리에 오르면 형제들을 모두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 어쩌면 권력투쟁을 위한 골육상쟁의 씨앗을 아예 차단하려는 계획이 아니었을까. 소설의 주인공 아비시니아 출신 흑인 환관장 슐레이만은 어려서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거세된 뒤, 노예시장을 거쳐 술탄의 궁정에 들어오게 되었다.

 

세계의 1/4을 지배한다는 신의 대리인 아니 거의 신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는 술탄의 최측근으로 슐레이만은 3명이나 되는 술탄을 모셔 왔다. 아무리 최절정의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술탄의 명으로 목이 날아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가 모시는 현 술탄의 형이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시절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술탄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염이 허연 제국의 대신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으니 말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핵심 사건은 바로 술탄의 폐위였다. 아니 도대체 누가 쿠데타를 일으켜 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지닌 술탄과 애첩 귤베덴(장미 몸매를 의미한다)을 함께 궁정의 벽에 가두었단 말인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 결여된 신체의 소유자 슐레이만은 타인의 신체 한 부분을 병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제국을 흔든 대지진과 함께 그 병이 깨진 징조는 불길하게 다가온다. 술탄에 대한 그의 충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지만, 우선 쿠데타의 주범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리반엘리 작가는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 대신 과거와 현재를 무시로 오가는 구성을 선보인다. 슐레이만이 모시는 술탄 역시 형이 즉위하던 시절, 살해당할 뻔한 위기를 넘겼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슐레이만이 모시는 술탄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형이 죽고 나서 그가 술탄이 되었을 때,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복수였다. 다음에는 누구를 죽일까라는.

 

“부족한” 67세의 인간 슐레이만은 권력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르비아인 총리대신 바요 소콜로비치가 술탄이 폐위된 뒤, 처참하게 죽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도대체 누가 술탄을 폐위시켰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술탄의 모후인 베네치아 출신 황태후였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다시 한 번 저자는 터키 궁정에서 벌어지는 정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황태후는 자신의 아들을 폐위시키고 대신 7살 난 손자를 대율법사의 승인 아래 왕위계승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술탄은 할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술탄의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출혈과다로 소년을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했다가 발각된다. 도대체 인간의 권력욕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신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8년간 제국을 다스려온 술탄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고, 이번에는 새로 등극한 소년 술탄마저 저승길에 보내려는 시도라니.

 

매력적인 사피예를 자신의 노예이자 스파이로 만들어 궁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염탐하는 데 동원한 슐례이만의 능력도 대단하다. 결국 자신을 지하 감옥에서 구출하는데 일등공신도 역시나 사피예였다.

 

슐레이만은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브라나교의 수도승 포스트니신 선생에게 세속적 물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오스만 궁정에서 사는 환관장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주문이었을까. 슐례이만은 그 누구보다도 더 황실에서 부는 바람이 어디로 향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대사도 반했다는 술탄의 하렘에 기거하는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며, 술탄을 매혹시킨 아르메니아 출신 애첩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살모사의 눈부심>에는 넘쳐흐른다. 한 마디로 말해 독자를 혹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프랑스 니스 출신 귤베덴/베로니카를 그야말로 살아있는 천사와 성녀 혹은 천상의 꽃으로 묘사하는 슐레이만의 심정은 또 어떤가. 어쩌면 그가 결정적으로 술탄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 이유가 바로 귤베덴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가질 수가 없기에 더 애타게 갈구하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견딜 수 없는 두통을 이기기 위해 쥐옷을 만들며 소일하던 귤베덴을 사랑한 환관장의 이어지는 고백은 참으로 슬픈 비가였다.

 

스포일은 여기까지만 하자. 과연 폐위된 술탄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 보시라. 짧은 호흡으로 딱딱 끊어지는 간결한 문장이 일품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구성의 중심에는 미스터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양념으로는 술탄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도 적재적소에 잘 준비되어 있다. 터키 궁정의 하렘이라는 에로틱한 요소도 한 몫 단단히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마술사 리반엘리의 손에서 조화의 과정을 거쳐 <살모사의 눈부심>이라는 걸작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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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2-26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어제 동네 중고서점에서 이 책 득템했어요!!!!!
절판에 도서관에도 없어 속상했었는데 2900원에 데꼬왔어요. ㅎㅎ
저도 곧 읽을거에요. ^^

레삭매냐 2019-02-26 20:22   좋아요 1 | URL
이제 책도 수중에 넣으셨으니...
힘껏 달려 주세요 :>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군요.

왜 좋은 책들은 그리도 빨리 절판
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빨강앙마 2019-02-2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이 그리 유명한가요? 개인적으론 첨 들어보는 작가고 제목인지라.. 설해목님도 막 중고로 들이셨다고 하니 더 궁금해지네요^^

레삭매냐 2019-02-27 10:24   좋아요 0 | URL
아민 말루프-쥴퓨 리반엘리 그리고
오르한 파묵까지 요즘 터키 작가들
의 책을 달리는 중이랍니다.

리반엘리 책이 국내에 소개된 다른
책이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오공훈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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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소설이다. 아니 왜 이달에는 이렇게 좋은 책들을 연달아 만나게 되는 거지? 인생책이라 부를 만한 시배스천 폭스의 <바보의 알파벳>을 필두로 해서, 내 책의 명전(명예의 전당)에 알라 알아스와니의 <시카고>, 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 그리고 구드룬 파우제방의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법하다.

 

아마 이 책은 내가 지난 토요일날 달궁 모임을 마치고 종로책방에 들리지 않았다면 평생 만날 일이 없는 그런 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항상 책에 대한 레이더의 촉을 예리하게 돌리고 있지만 모든 책이 다 나의 레이더망에 걸리는 것은 아니잖은가 말이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때도 그랬던 것처럼 나만 아는 작가를 만나는 즐거움은 오래전 아무도 건즈 앤 로지즈의 존재를 모를 때, AFKN에서 케이시 케이슴 아저씨가 들려준 <Sweet Child O'Mine>을 듣고 뻑이 갔을 때의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잡설이 언제나처럼 길었다. 소설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의 주인공은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왼손을 잃고 고향 볼펜탄(‘늑대가 사는 전나무 숲’이라는 뜻이다)의 브뤼넬로 돌아와 우편배달 업무에 종사 중인 요한 포르트너다. 시간은 1944년 8월. 두 달 전 동부전선에서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시작되면서 제국 베흐마흐트는 침략전에서 방어전으로 수세에 몰리게 된다. 이미 전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파우제방 작가는 하인리히 뵐이나 볼프강 보르헤르트처럼 전장의 비참한 현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동보헤미아의 산골 마을에서 전쟁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곳을 공간적 무대로 삼아 강력한 반전 메시지 제조에 착수한다.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모든 젊은이들은 징병되어 전선으로 향했다. 나치는 심지어 국민돌격대라는 이름으로 소년병과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노인들마저 끌어 모아 그야말로 유령 같은 부대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 우리의 요한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검은 편지’를 배달해야 하는 숙명을 져야만 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차라리 전장에 나가서 죽음을 맞는 게,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과연 어느 것이 나을까. 고지식한 독일인답게 요한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리고 눈발이 엉덩이까지 쌓여도 자신의 업무인 편지 배달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특히나 그 편지가 검은색이라면 더더욱. 개인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격하게 공감하는 소년 요한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의 하나였다고 말하고 싶다.

 

나치의 마수는 볼펜탄 산골 마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매에 걸려 이미 전쟁에서 죽은 자신의 손자 나치 광신자 오토를 기다리는 노부인 키제베터는 너무 불쌍하다. 독일의 전중 생산력은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증대되었는데, 히틀러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터의 뛰어난 능력도 있었겠지만 소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전쟁 포로로 유럽 각지에서 독일로 끌려온 노동자들의 노예노동도 한몫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볼펜탄에는 그들 뿐 아니라 루르 지방 같은 공업지대에서 산골마을로 피난 온 이들도 오직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도 넘쳐났다.

 

한편, 요한의 어머니이자 산파였던 요제파는 외아들이 훈련을 받던 중 사고로 동사한다. 어머니가 이번 전쟁에 나갈 아이들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도움을 주었다면, 요한의 애인이 되는 린츠 출신의 이르멜라 파이트는 이제 전쟁이라는 비극을 마주하지 않아도 될 아이들의 탄생을 돕는 역할로 등장한다. 파우제방 작가는 이렇게 전간기에 태어나 전쟁에 동원될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라인강의 기적’을 창조해내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해야 했던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요한이라는 대표선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종횡무진하게 진행한다.

 

전쟁의 참화가 그대로 드러나는 동부전선의 전장과 달리 볼펜탄의 아름다운 일곱 산골 마을의 모습은 평화 그 자체다. 발칙한 천재 꼬마 헬무트라는 녀석은 독일의 패망과 총통의 자살 그리고 요한의 짧은 운명까지도 연달아 예언한다. 실제로 유대인 의사 가족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고, 지도자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증발’해 버리는 경우가 있지 않았던가. 오토나 마리엘라 같이 총통에 대한 맹신으로 똘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우편배달부 요한에게 따뜻한 음식과 커피를 대접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파우제방 작가는 그 두 진영이 다른 이들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예전에 세뇌당한 채 자란 총통과 조국을 위해 독일 제국의 철부지 소년들이 무시무시한 러시아 전차를 요격하겠다고 판쩌 파우스트로 무장한 사진을 보면서 어찌나 가슴이 애잔했는지 모르겠다.

 

전쟁을 경험해 보지도 않은 이들이 전쟁 운운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혀를 차게 된다. 우회적인 방식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는 파우제방 작가의 놀라운 실력에 다시 한 번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도 종전선언에 이은 영원한 평화의 향기를 깃들길 바란다.


[뱀다리] 소설에서 나치 국가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 독일 패망 직전에도 전세를 단박에 뒤집을 수 있다는 “기적의 무기” 타령을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18세기 <7년 전쟁>에서 수세에 몰렸던 프리드히리 2세의 기적적인 승리를 꿈꾸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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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2-25 16:12   좋아요 0 | URL
아주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인문학자 선배님이신 에라스무스
도 그런 광신을 아주 배격했죠.

목나무 2019-02-2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퇴근하자마자 바로 이 책 집어들게 생겼어요. ㅎㅎ
저는 레삭매냐님 덕분에 정말 새로운 작가와 작품들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올 한해도 숨어 있는 보석같은 작품과 작가들 많이 알려주셔요. ^^

레삭매냐 2019-02-25 16:14   좋아요 1 | URL
고고씽~ 입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다 읽지 않고서는 배길 재간이 없더라는 -

아 자리를 빌어
이제 곧 쓸 <살모사의 눈부심>도 강력
추천하는 바입니다.

목나무 2019-02-25 16:39   좋아요 1 | URL
<살모사의 눈부심> 절판이에요. T.T
하지만 꼭 구하고 말거에요!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

coolcat329 2019-02-26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책표지가 참 이쁘네요. 게다가 놀라운 소설이라니...또 리스트에 올립니다. 레삭님 덕분에 저 역시 새로운 작가,작품 알게 되어 기쁘네요.

레삭매냐 2019-02-27 09:0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의 존재를 몰랐다가 중고서점을
통해 알게 돼서 너무 즐거웠답니다.

모쪼록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
 

 

 

사들인날 : 2019년 2월 23일 @종로책방

 

지난 토요일 달궁 모임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지난달에 눈여겨 둔 아름다운 가게 <종로책방>에 들렀다. 그냥 뭐라도 하나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우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2권이 있길래 바로 사들였다. 두 권에 6,000원.

 

다음은 ‘층간 소음’을 주제로 다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음향과 분노> 5,000원.

 

마지막은 교유서가에서 작년에 처음으로 펴냈다는 구드룬 파우제방의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다. 사서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완전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교훈적이기까지 하니 금상첨화다. 왜 난 이 책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지. 종로책방에 들르지 않았으면 영영 모를 뻔하지 않았나.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공간적 배경은 독일 제국으로 패망으로 치닫던 1944년 8월부터 5월까지 세 계절 그리고 동부 보헤미아의 브뤼넬/볼펜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레닌그라드 전선에 투입됐다가 왼손을 잃고 전역한 17세 소년 요한 포르트너다. 우편 배달을 천직으로 삼은 소년에게 주어진 임무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편 배달업무가 지속된다는 것 그리고 요한이 돌리는 검은 편지가 전장에서 죽은 전사자들에 대한 소식이라는 사실이 서글프기 짝이 없다. 구드룬 파우제방 작가는 하인리히 뵐이나 볼프강 보르헤르트처럼 전장의 비극을 기술하는 대신 후방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파한다.

 

평화라면 어떤 종류의 평화도 파멸과 죽음을 의미하는 전쟁보다 낫다는 걸 구드룬 파우제방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한다. 너무 멋진 소설이다.

 

[뱀다리] 이 책은 아마 출판사에서 누군가에게 기증한 책인가 보다. 책에 “교유서가드림”이라고 찍혀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책을 넘긴 흔적도 없으니 말이다. 책에 대한 어느 사연을 추적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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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2-25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레삭매냐님 득템들 보고 찾아보니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가 있지 뭡니까. ㅎㅎㅎ
읽지 않고 고이 모셔만 둔 이 책을 레삭매냐님 덕분에 곧 읽게 될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9-02-25 10:39   좋아요 1 | URL
아니 이렇게 좋은 책을 소장만 하시고
쓰담쓰담하셨단 말이십니까?

이번 독서 모임에 가서 왜 샀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빵!~ 터뜨렸답니다.

뭐 그런 거죠.

뒷북소녀 2019-02-25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도 있는겁니까?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19-02-25 13:48   좋아요 1 | URL
강력추천하는 책입니다 -

이달에는 참 좋은 책들과 함께 하게
되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어제 달궁 모임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단골 마욤님이 나오시지 않아 쫌 아쉬웠다.

다른 동지들도 나오지 못하신 분들이 있어 아쉬웠고... 선수들이 모여야 모임이 더 재밌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을.

우리 독서 중독자들은 실컷 책 이야기와 주변에서 확성기로 핏발을 세워 대는 모 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네.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 너무나 초현실적인 현실이 인지부조화되어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제 우리의 타겟은 존 그레이 교수의 <꼭두각시의 영혼>이었다. 이 양반 영지주의론에 비판적인 것 같다가 어느새 현대는 영지주의의 승리였다는 말로 결론을 내는 바람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절대 이단으로 간주되는 그노시즘에 대해 좀 더 책을 읽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날 읽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야기도 신나게 했다. 참고 도서가 참으로 많다는 점이... 나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을 추천했다가 어마무시한 분량 때문에 스스로 포기했다. 오이겐 루에의 <빛이 사라지는 시간>도 추천했다가 뻰찌... 나부터 읽다만 책을 마무리지어야지 싶다.


 

모임이 끝난 뒤, 피잣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전을 이어나갔다. 술과 피자로 배를 채우면서 신랄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들쑥날쑥하고 책도 안 읽어 오던 색채남의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우리 달궁의 고정이 되었다.

 

8시가 못되어 조촐하게 모임을 끝내고 나서 나홀로 아름다운가게 종로책방을 찾았다. 집에 가는 길에 책이라도 한 권 사서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원래는 알라딘 종로점을 가보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바로 포기.

 

2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데 과연 그 정도가 되는진 모르겠다. 다음은 내가 업어온 책들이다. 책의 회전이 빠른 느낌이 들었다. 알라딘 북플 친구인 폴스태프님이 추천해 주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있기에 냉큼 집어 들었다. 각권 3,000원 씩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데려왔다. 컨디션도 굿.

 

내가 가장 먼저 집어 든 책은 바로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였다. 며칠 전 인스타에서 중고책으로 층간소음에 관한 책이냐 뭐 그런 문구를 보고 눈여겨 보고 있던 책인데 내 수중에 들어왔다. 물론 문동 버전으로 가지고 있지만 읽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드디어 읽어야 할 시간이 왔는가.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2018년 교유서가에서 처음으로 나온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였다. 이런 장르의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인데. 그냥 책 제목과 출판사만 보고 사들였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내 취향에 아주 딱 들어맞는 이야기더라. 전쟁과 야만 그리고 반전에 대한 컨텐츠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 거페이 작가의 절판된 <복사꽃 피는 날들>은 작년엔가 김용민 씨의 방송을 듣고 교보문고에서 새책으로 샀는데(물론 읽지 못했다) 억울하다 억울해. 이렇게 중고로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다른 책을 사는 거였는데 캬오~~~ 칼럼 매캔의 <댄서>도 있더라. 중고서점에서 이런 레어 아이템들을 기대하고 가는 게 아니었나.

 

금요일날 읽은 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의 후광 덕분인지 파묵 선생의 <내 이름은 빨강>도 아주 쑥쑥 읽히는 기분이다. 사마온공의 <자치통감>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내 전공파트라고 할 수 있는 중국사에 관한 이야기라 그런지 술술 페이지가 넘어간다. 마치 예전에 학습한 내용을 다시 복습하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나. 파묵 샘의 첫 책이 마음에 들면 어쩌면 또 책을 일단 사들이고 전작 도전한다고 떠들어 댈 지도 모르겠다. 책이나 더 읽다가 자야겠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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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24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크너 한번 도전해보시고 리뷰 기대합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24 22:55   좋아요 0 | URL
당장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정리가
되면 ‘층간 소음‘를 다룬 책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여담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포크너를 정말 좋아하
는 것 같습니다.

목나무 2019-02-24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책들만 데려오셨네요! 중고서점에서 만나는 래어 아이템은 그야 말로 최고죠! ㅎㅎ

레삭매냐 2019-02-24 22:57   좋아요 1 | URL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사들였다면
정말 ㅋㅋㅋ

시간이 가면서 책 보는 눈이 생긴...
다는 건 다 뻥입니다 -

일종의 소확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어제도 책 사러 들어왔다가 친구분에게
집 안에 쌓아 놓은 책부터 읽어야 해
이러고 아무 것도 안 사시고 가시는 분
을 목격했습니다. 존경하는 바입니다.

어느 책의 노예는 카드질을 했습니다.

cyrus 2019-02-25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달궁 뒤풀이 분위기는 여전하네요. 글만 읽어도 뜨거운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

레삭매냐 2019-02-25 16:13   좋아요 0 | URL
이제 노쇠하야 예전 같이 달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즐겁고
재밌는 시간들이었답니다 하 하 하

옛 멤버들이 그립습니다.

coolcat329 2019-02-26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로책방도 중고 서점인가보네요? 조만간 구경가야겠어요. 정말 즐겁고 알찬 하루 부럽습니다.

레삭매냐 2019-02-27 09:04   좋아요 1 | URL
네에이~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8년 동지들과 함께 해서 더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중에서 중고서점으로 특
화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 외에도 DVD와 CD 도 상당하더군요.

가격이 알00과 달리 착해서 더더욱 마음
에 들었습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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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도서관으로부터 희망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을 먹은 뒤,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 다음, 부웅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빌리러 말이다. 그리고 숨도 쉬지 않고 그렇게 책을 읽었다. 결론은 기대만 못하다였다.

 

사실 다음에 연재된 만화의 시작은 창대하였고 흥미진진하였다. 하지만 너무 B급 갬성을 강조하여서인지 후반으로 갈수록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게 아닌가. 그냥 계속해서 책에 대한 썰에 중점을 두었으면 좋았겠지만 MI6CIA가 등장하고 예티가 폭격수로 등장하면서부터 쫌 그랬다.

 

그렇다 나도 독서 모임에 나가는 독서 중독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오늘도 종로로 출격할 예정이다. 오늘 우리가 토론할 책은 존 그레이의 <꼭두각시의 영혼>이다.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부터 시작해서 브루노 슐츠를 거쳐 사이보그 시대의 인간 노동 등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가 읽은 것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독서 중독자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으면서 내가 소장한 책을 만날 때의 즐거움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달에 읽은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도 사실 이 책 때문에 읽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미 절판된 책이고, 다행히 서가에 얌전히 꽂혀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가 있었다. 모든 종류의 광신을 부정하는 츠바이크가 그린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 정신 아래 우리 모두가 형제라는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던가. 읽다만 오이겐 루게의 <빛이 사라지는 시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영화 <무간도>에서 따온 것이 분명한 암흑조직을 15년 동안 섭렵한 경찰은 독서모임의 신입으로, 노마드와 함께 등장한다. 다른 독서중독자들처럼 자기개발서를 즐겨 읽는다는 노마드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강퇴당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기개발서라니! 독서 중독자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독서 모임 8년차에 접어들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비슷한 책을 주제 토론으로 삼은 적이 없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긴 인문서적도 잘 안하는구나. 우리 달궁에서는 주로 문학을 즐겨 씹는다.

 

그나저나 우리의 신입 노마드는 무언가 대단한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 어마무시한 책들을 완독하고 재도전에 나선다. 항문 아니 아날학파의 거두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를 읽고 또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었다고 한다. 전자는 그나마 들어본 적이라도 후자는 정말 생소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역시나 독서 중독자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도전정신이 넘치는 선수들의 무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나의 도전정신은 끝 간 데 모르고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전혀 시집을 읽지 않는데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은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다 읽어야지.

 

소설 작가로 등장한 로렌스의 어처구니없는 활약도 주목할 만한다. 결국 독서 중독자들의 마지막 도전은 글쓰기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긴 진짜 독서 중독자 중에 소설가로 등단한 사람도 있으니 전혀 틀린 설정은 아닐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의 꿈이 궁극적으로 영화 연출이니 만큼 말이다. 독서 중독자들에게 무료로 자비 출판한 책을 뿌리려던 로렌스의 시도는 단박에 박살이 나고, 그나마 달랑 한 권 산 예티는 다른 중독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중고서점 대신 다른 방법으로 없앴다지 아마.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정밀타격을 하는지 작가들이 정녕 독서 모임에 단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지 의심이 들었다 하 하 하.

 

예전에 읽었던 의천도룡기에서 무당파의 진인 장삼봉 선생에게 태극권을 전수받은 절세무공의 보유자 장무기가 권법의 배움을 모조리 다 잊어버리는 것처럼 불과 어제 읽은 책의 내용이 벌써부터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한다. 원래 별 다섯 개를 주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황당무계한 전개 때문에 하나는 깎아야지 싶다.

 

한 달을 기다린 독서 모임의 시간이다. 벌써부터 염통이 쫄깃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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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2-23 09:21   좋아요 2 | URL
저희 중독자 클럽에서는
어마무시한 책 때문에 가정불화가 일
정도라는 ㅋㅋㅋ

어느 분은 더 이상 책을 사오면 불싸
지른다는 말도 들으셨다고 합니다.

원없이 책 사는 게 꿈이신 분도 계시구요.
저도 뭐 다를 바가 없지만요 :>

2019-02-2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19-02-23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런 우연이! 저도 어제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왔다는 문자받고 이 책을 받아와서 밤에 다 읽었어요 ㅎ 근데...원래 만화가 이런건가요? 전 적응이 안되서 ㅎ로렌스때문에 중간에 크게 웃었네요 . 욕망의 동토 ㅋ

레삭매냐 2019-02-23 11:41   좋아요 1 | URL
오호라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
신기하네요.

작년 가을에 그래픽 노블 희망도서로
신청했다가 떨어져서 이번에 좀 떠는
심정으로 신청했는데 승인이 나서 기
분이 아주 좋았답니다 -

욕망의 동토 / 로렌스는 짱이었습니다...

아마 웹툰을 단행본으로 만든 거라
그런 게 아닐까요. 비급 갬성 만화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즐거우시리라 믿슙니다만.

Falstaff 2019-02-23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의 사랑>은 책꽂이에 남은 자리가 있으면 꽂아 놓으실 만할 겁니다.
은근히 레삭매냐 님하고 궁합이 맞는 시집일 듯하거든요.

레삭매냐 2019-02-23 11:43   좋아요 1 | URL
제가 원체 시를 읽지 않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이 시집이 무척 땡기네요.

중고로 데려올까 싶었는데 무려 대학로에
있더라는.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소장각
이면 구입하는 것으로 -

추천 감사합니다.

cyrus 2019-02-24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부터 염통이 쫄깃해지는 기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ㅎㅎㅎㅎ 저는 달궁 모임 전날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

레삭매냐 2019-02-24 18:08   좋아요 0 | URL
그땐 그랬지... 싶네요.

어제도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들
이었답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

어제는 피잣집에 갔었는데 피자 맛있더군요.
예전엔 홍대를 떠돌았는데 이제는 무대가
종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