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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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인 독자다. 게다가 오독의 달인이기도 하다. 아울러 불가지의 영역에 대해 도전도 마다하는 그런 게으른 독자이기도 하다. 아마 그런 이유로 해서 나의 이번 귄터 그라스 읽기는 처참한 실패였노라고 고백한다. 독일 출신의 저명한 작가 귄터 그라스의 단치히 3부작 가운데 <양철북> 다음이라는 <고양이와 쥐>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14세 소년 요하임 말케, 때는 1940. 국가사회주의자들이 독일 정권을 잡고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독일 민족을 인도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초반에 나치 전쟁기계들은 동부의 폴란드와 서부의 강국 프랑스를 신속하게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기술한 <어느 독일인 이야기>에서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소년들이 매일처럼 배달되는 전쟁속보에 열광했듯이, 이제 엄연하게 독일 사람이 된 단치히에 사는 독일 소년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희한한 목울대(후골?)를 자랑하는 소년 말케는 수영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잠수에 도전하면서 화자(소년 필렌츠)를 포함한 우리들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단치히 군항 부근에 침몰한 폴란드 소해정과 여러 배들을 영국제 셰필드 드라이버와 성모마리아 펜던트를 지니고 누비는 말케의 모습은 어쩌면 독일 민족이 기다리던 영웅의 그런 게 아니었을까. 소설의 후반 이야기를 먼저 등장시키면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다니던 김나지움에서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전학한 말케는 동부전선을 누비는 전차부대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뭐가 쥐고 고양이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제목과 연관성 대신 다른 소소한 것들에 집착하게 되었다. 우선 우리의 주인공 말케는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처럼 위험한 과시욕과 유별나게 극성스러운 신앙으로 무장한 캐릭터였다. 신부님은 말케의 마리아 신앙을 이교적 우상숭배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말케는 진정한 신앙인이라기 보다 마리아상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그런 무신론자였다는 점이다.

 

1941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삐끗하기는 했지만, 다음해에도 독일은 전쟁에서 여전히 이기고 있었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단치히에 사는 소년들은 공군지원병으로 동원되기도 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모두 전선으로 투입되게 된다. 나중에 이 모든 것을 기록한 화자로 밝혀지는 복사 소년 필렌츠의 형님 클라우스 하사도 쿠반강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쥐 같은 소년들의 전쟁놀이와는 다른 세계에 살던 말케는 모교를 방문한 해군 대위의 철십자장을 슬쩍한 게 발각되어 결국 퇴교에 가까운 조처를 당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도 모호하게 처리되어 정확한가 계속해서 의구심을 품게 됐다. 아니 삶은 그런 모호함 투성이라는 말을 대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언제나 관객의 관심을 원했던 순수한 욕망의 덩어리 말케는 원래 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커스단의 광대가 되고 싶어했다. 바다를 누비며 갖가지 모험을 하던 말케는 그렇게 흠모하던 철십자장 사건으로 삶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서 결국 전사로 거듭나게 된다. 다른 친구들이 기갑척탄병 신세로 전장에 나선 반면, 베어마흐트의 꽃이라 불리는 전차부대원으로 전장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금의환향한 말케는 자신을 억압하고 방해했던 클로제 교장 선생에게 시원한(?) 복수를 감행하지 않았던가.

 

이후의 행적은 역시나 모호하다. 결국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탈영병 신세가 된 말케.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결국 비극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를 살아낸 거의 모든 이들이 비극의 무대에서 허우적거린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너무 대충 읽은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다.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그런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너무 많은 암시와 모호함 때문에 정작 저자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고갱이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뭐 그랬다고 한다. 내가 뭐 전문적인 독서가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뱀다리] 책에 대한 내용만 쓰다 보니, 독일 문학의 양심이라는 귄터 그라스 나치 친위대 경력에 대해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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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3-15 1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사 놨는데 별점이 찬란하게 두 개씩이라.... 이 말씀입죠! ㅋㅋㅋ 인생이니까요 뭐.

레삭매냐 2021-03-15 13:03   좋아요 2 | URL
불가지의 덫에 걸린 오독자의
별점이니, 크게 개의치 않으셔도
무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coolcat329 2021-03-15 1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는 작가가 이분하고 토마스 만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얻어들은 이야기에 어떤 경외감을 갖고 있네요. <양철북>이 십년 넘게 책장에 꽂혀 있는데 이따 집에 가서 종이가 썪지 않았나 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완독을 하셨다니 멋지십니다. 제목은 참 쉬운데요...😅

Falstaff 2021-03-15 12:47   좋아요 3 | URL
흠. 그라스는 그렇다 치고, 토마스 만한테는 쫄 거 없습니닷!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부터 시작해서, 마의 산 같은 긴 작품들 요리조리 피해가시면 충분히 정 붙일 수 있어요!
부덴브로크 다음에 로테 바이마르에 가다도 쉽고 뭐 하여튼 그러니까, 쫄지 마세요!

레삭매냐 2021-03-15 13:04   좋아요 2 | URL
분량이 적어서 섣불리 들이댔다가
아주 큰 코 다쳤습니다.

어느 분은 논문도 쓰셨다는데 엉터리
로 읽고 투정만 한 게 아닌가 어쩐가
싶습니다.

집에 양파인지 쪽파인지도 있는데...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네요.

작년에 호기롭게 <마의 산>에 올라보겠
다고 나섰다가 여적 하산 못하고 있습니다.

coolcat329 2021-03-15 13:15   좋아요 2 | URL
아! 제가 며칠 전 부덴브로그를 샀습니다! 그리고 로테바이마르도 폴스타프님 리뷰읽고 예전에 사두었지요. 감사합니다 ~~

coolcat329 2021-03-15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간 양파 쪽파가 뭔지 이해 못하고 ㅋㅋ 찾아보니 양파네요 ㅋㅋ 이 분은 제목이 참 재밌네요. 넙치 양파 고양이 쥐 게걸음 등이요~~

레삭매냐 2021-03-15 15:49   좋아요 2 | URL
제가 이번에 뜨겁게 디어서 그런지
제목은 아주 땡기나... 섣불리 물었
다가는 바로 - 암튼 그렇다고 합니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해외 주문했던 책의 배송이 너무 오래 걸려서 주저하다가 결국 주문한 책이다.

 

로베르토 볼라뇨가 죽은 지 18년이나 되는데도 꾸준하게 책이 나온다. 팬으로서는 좋은 일이지.

 

에스파냐 말은 하지도 알지도 못하니 영어로 한 번 쿠션을 때린 책을 주문했다. 다른 읽을 책들이 많은데, 영어책은 또 어느 세월에 읽나 그래. 결론은 나의 굳건한 팬심으로 산 책이라는 말이다.

 

<카우보이와 무덤>. 세 편의 중편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볼라뇨의 얼터 이고인 아르투로가 칠레의 쿠데타 이후 돌아온 이야기라고 했던가.

 

두 번째는 <공포의 프랑스 코미디> 마지막은 <파더랜드>라고 한다. 최근 너튜브를 통해 알게 된 오래전 텔레비전물이자 로버트 해리스가 쓴 동명의 소설하고 제목이 같네.

 

그나저나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과연 언제나 다 읽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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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10 13: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어책 읽으시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몇번 호기롭게 구매했지만 포기 ㅜㅜ

레삭매냐 2021-03-14 23:53   좋아요 1 | URL
저도 독서용이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소장용이기 때문에 핫하 -

쓰담쓰담 중이랍니다.

stella.K 2021-03-10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팬심! 그렇죠. 팬심이라면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에스파냐어로 된 걸 가지셨을면 더 좋았을텐데.ㅋ
전 번역본 나오면 기웃거려 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3-14 12:10   좋아요 1 | URL
뭐 그래도 영어책은 그나마 읽기 시도
하도 해보지 에스파냐 어는 아예 시도
자체가 안되니...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번역본이 나오면 그 책도 살 겁
니다, 넵.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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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를 떠나지 못한다는 거지? 카다레의 신간을 보고 든 생각이 들었다. 읽다 보니 떠나지 못하는 여자가 아니라, 떠날 수 없는 여자가 맞지 않나 싶었다.

 

대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걸작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터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번에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전에 만난 <잘못된 만찬>은 내가 좋아하는 주제라 그런지 아주 마음에 들었었는데.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로 극작가 루디안 스테파가 등장한다. , 참 부제가 <린다 B를 위한 진혼곡>이었지. 극자가 양반은 당 위원회에 소집된 상황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알바니아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지 않았고, 여전히 공산주의 감시체제가 작동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든 대화는 도청이 되고, 전 국민의 1/4의 서로를 감시하느라 눈에 불을 켜던 그런 시절이었나 보다.

 

저명한 극작가 루디안이 당 위원회에 소환된 건, 그의 애인인 미제나(에니그마의 은유라나)가 그의 서명을 받아 건네준 린다 B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녀는 유배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했던가. 카페 플로라에서 만난 판사는 린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 스테파에게 말하길 거부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피델 카스트로의 장장 여섯 시간에 달하는 연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이런 부분들은 아무래도 엔베르 호자(대지도자?) 아래 자행된 알바니아 공산 독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우매한 독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해야할 것 같다. 결국 해외문학 읽기의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이라는 스칸데르베그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데 역시나 문외한으로서는 이름조차 낯선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우리와 거리가 멀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 나머지를 다 읽어야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맥락 없는 전개와 오르페우스-에우디리케까지 넘나드는 서술에 마음이 불편해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펴든 책이니 다 읽어야지. 대지도자도 한 때 참가했던 지하저항군 시절을 다룬 루디안의 극본은 공연을 위해 검열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주시되는 통제사회의 단면이라고나 할까. 연애는 물론이고, 예술 창작까지도. 그런 시절에도 예술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창작열을 불태웠다.

 

화자 루디안 스테파의 관점에서 이동해서, 이야기는 거주 제한을 당하고 유배 중인 린다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린다에게 가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상향 같은 곳이라는 걸까. 미제나가 유방촬영을 한다는 말을 들은 린다는 자신도 검사에 나서며 병 치료를 핑계로 티라나행을 꿈꾼다. 그 가운데 애증의 삼각관계가 피어났던가.

 

지루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말미인 12장과 13장에 가서야 비로소 베일을 벗는다. 그리고 왜 루디안이 집요하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타령을 해댔는지에 대해서도 드러난다. 린다에 대한 풀리지 않는 거주지 유배형과 극작가 루디안의 작품에 대한 검열이 주요한 소설의 갈등을 빚는 요인으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린다의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가혹해 보인다. 문화애호를 자처하는 대지도자는 정신분열적 증상을 보이는 루디안을 저승의 신부에게 보내 주라는 말에, 루디안을 옹호하고 나선다.

 

어쨌든 읽는 동안, 그전에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다른 작품에 비해 너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였던 대지도자의 몰락에 환호해야 하나? 악랄한 알바니아 독재 시스템의 실상을 알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루디안을 그가 보호하지 않았던가. 린다가 독재의 희생양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녀의 억울함에 감정이 전이되지 않는다.

 

여러 모로 보나 이번 독서는 씁쓸하기만 하다. 돌아오지 않을 나의 시간을 투자해서 읽었건만 뒷맛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뭐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넘어가 보련다. 나중에 다시 읽게 되면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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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7 1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책이 기대를 저버릴때도 있지요. 제일 아쉬울 때는 그래도 뭔가가 있겠지 하고 중간에 안 집어던지고 끝까지 읽었을때예요. 아 내 시간 하면서 말이죠.

레삭매냐 2021-03-09 19:08   좋아요 0 | URL
그래두 마지막에 가서 나름 분전하는데
좀 그랬네요...

잠자냥 2021-03-08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 좋았어요. 책 읽는 중간중간 알바니아 역사도 찾아보게 되고, 평소라면 관심 없었을 나라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 것도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더군요.

레삭매냐 2021-03-09 19:11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그나저나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 어로
글을 쓰는 지 아니면 프랑스 어로 글을 쓰
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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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에 앞서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이 있었다. 오래전 어느 출판사의 시리즈 가운데, 저자의 이름을 만나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타타르인의 사막>은 이탈리아의 독재자 일 두체가 친구를 따라 전쟁에 나선지 두 번째 해인 1940년에 발표된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인 부차티는 시간과 공간을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파시즘 치하 아래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의 주인공은 이십대 청년 장교 조반니 드로고다. 그는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한 다음, 중위 계급장을 달고 바스티아니 요새에 부임한다. 처음부터 그는 이것이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라는 걸 직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친구 프란체스코 베스코비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도시를 떠난다. 말 타고 도시에서 하루거리라는 요새는 이미 십년 전에 폐쇄된 곳이고, 다른 요새는 그야말로 가득히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새로 가는 길에 그는 아마도 자신의 상관으로 추정되는 오르티츠 대위를 만난다. 그는 2년의 복무기간을 생각했는데, 오르티츠 대위는 요새에서 자그마치 18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드로고 중위는 깨달아양 했던 게 아닐까? 아니 어떻게 18년이나 국경지대에서 수비대로 복무한 사람의 계급이 꼴랑 대위란 말인가. 왠지 바스티아니 요새가 국경의 위치한 쓸모없는 이급 요새라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북쪽 사막 너머의 타타르인을 방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라고 했던가.

 

어쨌든 장군이 15일마다 검열한다는 조리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오르티츠 대위. , 그곳에는 그렇다면 장군도 있는 모양이지? 거대한 고독의 마법이라는 표현이 바스티아니 요새만큼 들어맞는 곳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드로고 중위는 황량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도시에서 외떨어진 바스티아니 요새는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마력의 상징이다. 마티 소령의 설득에 네 달 정도만 머물고 떠나려던 드로고 중위는 결국 요새에 주저앉는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장교와 병사들이 그와 비슷한 처지다. 그리고 요새에서 북쪽의 왕국에서 언젠가 온다는 타타르족들의 무자비한 침입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위협은 드로고와 동료들의 존재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철저하게 전설의 타타르인들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낮과 밤이 서로 집어삼키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순간, 주인공 드로고 중위의 모습에서 젊은 날에 무한정일 거라고 생각하고 허송세월한 나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십대의 드로고 중위는 근 삼십년간을 오지의 요새에서 보냈다. 그의 선임자들처럼,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하는 순간 이미 늦었던 것이다. 드로고 중위가 나라고 생각하고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에서의 영광스러운 죽음이었을까?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 시간은 도도하게 흐르며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시간은 드로고 중위의 젊음과 야망과 모든 것을 서서히 침잠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고 소멸된다. 다만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 뿐.

 

요새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말을 생포하려고 부대에서 이탈했다가 동료의 총에 라차리와 타타르인들과의 국경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산악 지대 정찰에 나섰던 앙구스티나 중위가 차례로 죽는다. 그런데 진짜 위기는 언제부터인가 타타르인들이 요새 공략을 위한 도로 건설에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총사령부는 드로고 중위의 망원경 관찰을 꼭 집어서 금지시킨다. 공연히 분쟁이나 병사들의 동요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쓸 데 없는 행동을 삼가라는 걸까?

 


그러는 와중에 드로고 중위는 대위를 거쳐 소령까지 진급하지만, 도시에 사는 그의 친구들은 그가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 가정도 이루고, 심지어 이르게 손자를 본 친구들도 있다. 어쩌면 자신과 결혼할 뻔 했던 마리아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제 자신의 청춘을 바스티아니 요새에서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드로고 소령은 늙고 병들어 거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바로 그 순간, 요새의 모든 이들이 기다린 타타르인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요새 사령관이 된 시메오니 중령은 평생을 기다린 적과의 투쟁에 나서겠다는 드로고 소령의 마지막 소망을 거부하고 연대 마차에 태워 후송을 명령한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노병은 사라져 간다.

 

젊은 시절, 첫 배낭여행에서 호주 사막의 거대한 고독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찾은 호주 사막은 기대했던 광활한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흙으로 이루어진 사막이었다. 가는 데마다 만나는 비슷한 처지의 배낭 여행객들 때문에 원하던 거대한 고독도 찾을 수가 없었다. 디노 부차티의 걸작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해결해 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을 지고 사는 것이다. 드로고 중위의 삶에 내 경우를 대입해서 그의 처지에서 작은 위로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오지의 요새에서 거대한 고독을 향유하며 결코 오지 않는 적으로 치환된 메타포로서의 죽음을 기다리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서사를 창조한 부차티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런 걸작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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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6 1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콕 박히네요. 최고의 찬사잖아요. ㅎㅎ 저는 작년에 읽었던 밀크맨에 레삭매냐님 같은 찬사를 붙였었는데 올해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으면 그 감동을 다시 받을 수 있을어같은 느낌이 드네요. 리뷰 잘 읽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바구니에 쏙 담아갑니다.

레삭매냐 2021-03-06 13:44   좋아요 3 | URL
우연히 알게 되어 고대하고 있던
작가의 책이었는데...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예약 주문을
날렸네요.

읽을수록 고 맛이 배어나는 칡같
다고나 할까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oonnight 2021-03-06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겠어요. 레삭매냐님 서평에 이미 다 읽은 느낌이지만^^;

레삭매냐 2021-03-07 08:56   좋아요 0 | URL
올해의 책으로 꼽아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일독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라로 2021-03-06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레삭매냐 2021-03-07 08:57   좋아요 0 | URL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디노
부차티의 다른 소설들도 발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루 - 피란델로 단편 선집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정경희 옮김 / 본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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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중고서점에서 산 책이다. 허구한 날 적립금 쿠폰을 뿌려 대니 도저히 책을 안사고 배길 재간이 없구나 그래. 게다가 예전부터 언젠가 한 번 읽어 보겠다고 작심하고 있던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책이니 더더욱 안살 수가 없었노라고 나는 변명해 본다.

 

희곡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루이지 피란델로는 단편 소설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생전에 자그마치 250편에 달하는 단편들을 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탕달에 버금가는 소설 쓰는 기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루에 소설을 한 편이라도 쓰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았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소설집 <어느 하루>에 담긴 9편의 단편들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영화화된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루이지 피란델로의 단편 소설들은 그야말로 이탈리아 영화감독들의 보물창고였지 싶다.

 

9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만난 작품은 <유모>(죽은) <어머니와의 대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소설들은 시칠리아 이야기로마 이야기로 나뉜다고 하는 <유모>는 그 중간 정도가 되지 않나 싶다. 로마에 사는 부유한 변호사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돌볼 유모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내의 친정에서 시칠리아 출신 건장한 산모, 그러니까 다른 아이를 돌볼 안니키아를 로마로 보낸다. 물론 안니키아에게도 갓난쟁이가 있다. 유배당한 남편 대신 돈벌이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안니키아는 어린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물설고 낯선 로마로 증기선과 기차를 타고 떠난다. 고향을 떠나는 안니키아에게 시어머니는 저주를 퍼붓는다. 그녀의 저주가 먹힌 걸까, 결국 고향이 남은 안니키아의 아들은 죽고 만다. 자신의 젖을 먹여 키운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에르실리아 아씨의 아이에게 집착하는 안니키아 그리고 그녀를 내쫓는 고용인들. 이것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작가의 추모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른 단편인 <또 다른 아들>에 등장하는 어떤 어머니는 첫 두 아들만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불가피하게 낳은 막내아들은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과의 희망의 나라 아메리카로 떠나 소식 없는 아들들을 기다리는 시칠리아 출신의 사모곡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이국 땅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알았다면 그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다시 <어머니의 대화>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대단한 기백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시칠리아 봉건왕국의 군인들이 쳐들어오면 딸들에게 투신하라는 말까지 하겠는가 말이다. 얼마 전에 만난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소설/영화 <표범>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리발디의 시민군과 보르보네 왕군이 격렬하게 시가전을 치르지 않았던가.

 

또 다른 어느 어머니는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십대 소년 아들 체사리노 브레이를 기숙학교에 들여보내고, 몰래 다른 동생을 낳고 그만 죽는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도대체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어쨌든 갓난쟁이에 대해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 소년은 교장의 도움으로 문부성 서기 일을 하면서 그야말로 고학으로 공부도 하고 아기도 돌본다. 그야말로 20세기판 막장 드라마급의 이야기가 아닌가. 도대체 아기의 아버지는 누구란 말이지? 어머니가 남긴 쪽지에서 알베르토라는 이름을 체사리노는 알아낸다. 그 다음에, 아기의 아버지가 아기를 찾아온다.

 

구시대의 상징으로 봉건사회였던 시칠리아가 근대화 시기로 돌입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들은 죽어서도 묻힐 땅 한 뙈기가 없어 마르가리 영주를 상대로 한 투쟁에 돌입한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죽어가는 노인이 산 채로 자신이 묻힐 곳에 가서 묻힐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나, 그런 그에게 줄 땅은 없다며 공권력을 동원하는 마르가리 영주의 비정함이 오늘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깨진 항아리의 보수를 놓고, 기술자 지 디마 리카시와 항아리의 주인장 돈 롤로 지라파가 벌이는 해프닝도 흥미진진하다. 아니 어떻게 기술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항아리 안에 들어가서 항아리를 보수하는 작업을 해서 결국 스스로 갇히게 된 거지? 이런 땜장이에게 왜 돈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애써 고친 항아리를 깨부수지 않고, 땜장이를 꺼낼 방법이 없지 않은가. 루이지 피란델로 작가는 결국 이런 타협이 어려운 이슈에 대한 상충하는 의견을 들어 당대 이탈리아가 겪고 있던 사회적 갈등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도출한 게 아니었을까. 누가 점심값을 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루이지 피란델로의 소설들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특히 늑대인간 스토리!), 정선되어 출간된 단편들이니만큼 그 콘텐츠의 완성도는 보장되지 않았나 싶다. 읽어야할 책들이 줄 지어 대기 중인 3월이 지나가고 나면 피란델로 선생의 책들을 좀 더 읽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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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3-06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말씀처럼 정말 많은 단편을 썼네요. 소개해 주신 덕분에 저도 이 단편들을 읽고 싶어졌어요.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21-03-06 13:42   좋아요 0 | URL
세상은 넓고, 참으로 모르는
작가들이 넘쳐 나는 것 같습니다.

피란델로 선생의 책들을 좀 더
찾아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