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나름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하는데, 이문구 선생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어쩌면 국내문학보다는 해외문학 읽기에 치중하는 독서 탓이리라. 이 분이 쓰셨다는 대표작 <관촌수필>도 이름은 들어 보았는데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 부랴부랴 이문구 선생의 행적을 살펴 보니 문인으로서 참으로 바지런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지난 2003년에 작고하셨다고 하는데, 돌아가신지 8년이나 지난 후에 선생의 글을 처음 읽어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책 소개란을 자세히 읽어보니 사회풍자소설에 능하셨고, 토속어 사용에도 일가를 이루셨다고 한다. 안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선생의 특기에 사전 찾는 손이 바빴다. 우리 문학을 주름잡은 21명의 문인에 대한 글 중에서 첫 번째 주자는 김동리 선생이었다. 해방후 좌우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좌파 진영에 맞서 자신의 지론인 순수문학 옹호에 나섰다고 한다. 이문구 선생은 언제나 문객과 식객이 들끓던 김동리 선생에 대한 감상도 조근조근하게 들려준다. 이렇게 사람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신인들의 작품을 심사할 적에는 또 원리원칙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단다. 다만, 친일문학에 대한 김동리 선생의 단상은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춘원이 마음 놓고 한 친일 행각은 인정하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신경림 선생과의 일화도 재밌는 부분이 많다. 21세기 컴퓨터로 글을 쓰는 세대에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 문인들의 비화가 생소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노모에게 아들의 행적에 대해 이문구 선생이 묻자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내는 어머니의 입담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적극 밀고 있는 고은 시인의 이야기는 더 풍성하다. 그리고 보니 아직 제대로 고은 시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구나, 아쉽다 아쉬워.

이문구 선생의 문인 행장기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인도 갠지즈 강에서 뱃사공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날마다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고 그 다음날에는 금주선언을 사업으로 삼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기별 없이 상경해서 낮술을 해도 반가운 이가 있다. 작금의 문단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참 술들을 많이도 마셨는가 보다, 만 잔을 함께 했을 정도라니. 마치 시를 짓는데 술이 빠지면 시흥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문우 사이에 쌓이는 그런 흥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목차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이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황석영과 지금은 고인이 된 서정주였다. 이문구 선생은 전자를 “실수 없는 1970년대 작가”이자 노동운동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의리의 사나이”라고 평가했는데, 그런 평가가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좀 들어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대(?)가 되는 인물은 바로 맨 마지막에 실린 미당편이었다. 이문구 선생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미당의 친일시를 실천문학사에서 발간된 <친일문학선집>에 넣었다는 이유로 송구스러워 했다는 글로 21명의 문인에 대한 행장기를 마무리 짓는다.

예전에 랜덤하우스에서 이문구 전집 26권 중의 하나로 나왔다가 조용히 절판된 책을 개정증보해서 다시 나온 책이 바로 <이문구의 문인기행>이란다. 선생이 문인으로 혹은 기자로 만난 21명의 한국 문단을 주름 잡았던 인사들에 대한 생생한 육성 기록이 인상적이다. 한 가지 흠이라면, 개인의 친분 관계에 따라 냉정한 비판이 결여된 점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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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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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유명한 사메지마 형사가 등장하는 <신주쿠 상어>(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 이전에 오사와 아리마사에게는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이 있었다. 주인공은 방년 17세의 사이키 류, 고3인 이 녀석은 공부해서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요행수로 도쿄대에 입학할 궁리만 한다.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의 사장이자 아버지 료스케는 이런 아들을 말릴 생각은 안하고 맞담배질도 마다하지 않고, 알바로 애용한다.

어쨌든 실력은 인정받았는지 이런 사이키 듀오에게 일감이 주어진다. 동남아 라일 왕국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올 예정인 미오 왕녀를 호위하라는 주문이다. 어떻게 감을 잡았는가? 그렇다 17살 동갑내기 류와 미오의 달달한 로맨스가 이 탐정물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 중의 하나다. 미오 왕녀 아버지 국왕은 암에 걸려 임종이 다가오면서 왕위계승권 문제로 온 나라가 법석이다. 천연자원 부국인 라일 왕국의 유력한 왕위계승자를 노린 암살단이 그녀의 일본 입국과 동시에 활동을 개시한다.

아, 한 가지 깜빡했다. 미오 왕녀의 어머니는 일본 출신 하나코 여사로 미오 역시 어머니의 모국어에 능통하다. 그러면 그렇지, 그 정도 설정 없이 탐정물을 쓸까! 공항에서부터 불의의 독침 공격을 받은 미오 왕녀를 료스케는 의외의 장소로 피신시킨다. 바로 친구가 운영하는 러브호텔이다. 사이키 부자의 철통 보안에도 불구하고, 미오 왕녀를 노린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저격수 드릴과 폭발물 전문가 퓨즈까지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라일 왕국 정글에 위치한 카마르 교단이라는 비밀종교집단까지 미오 왕녀에게 덤벼든다. 자, 이 철부지 탐정 알바는 어느새 사랑에 빠져 버린 미오 왕녀를 구해낼 것인가.

장르물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에는 일본 경제에서 버블이 터지기 직전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1980년대 세계 경제를 주무르던 일본 기업의 엄청난 흑자 행진에 힘입어 쇼와시대 소위 ‘대동아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점령하려던 동남아 제국에 경제협력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진출하던 일본의 모습이 읽혔다. 일부다처제 국가의 국왕이 일본이 왕비를 맞아, 왕녀를 낳고 그녀가 어머니의 나라 일본으로 유학을 온다는 설정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영국이 자국의 식민지 국가였던 나라들을 영연방이라는 이름의 큰 테두리에 엮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변종이라고나 할까.

면허도 없는 고등학생 사이키 류가 다양한 차종을 모는 것도 비현실적이지만, 고도로 훈련된 킬러들과 라일 왕국의 비밀경찰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영화 <다이 하드>에 나오는 브루스 윌리스 찜 쪄 먹을 만한 허풍이다. 게다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입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첫눈에 반하다시피한 순진한 왕녀를 구하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라일 왕국의 정글로 뛰어드는 건 정말 현대판 돈키호테의 다름 아니다. 하긴 일본에서 라일 왕국으로 가기 전에 며칠 집중적으로 들은 미군 방송으로 영어 실력을 늘리는 걸 보면 사이키 류의 도쿄대 진학이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사이키 류보다 더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바로 그의 아버지 미스터 사이키 료스케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어떤 수를 내어,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에선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원래 아들 류가 자신의 보조 역할이었는데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사이드킥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역시 연륜이 주는 경험은 철부지 아들 류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작가 오사와 아리마사는 탐정물의 공식에 충실하면서 영화 <로마의 휴일>을 연상시키는 달달한 청소년들의 로맨스는 물론이고, 정글에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맛보기로 첨가하고 비밀종교집단까지 아우르는 스케일에 그만 반해 버렸다. 철부지 알바 탐정의 활약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속도감 넘치는 전개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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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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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이야기에 앞서 제목을 한 번 분석해 보자. 우리가 아는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제목에서 시사하듯 아마도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김광기 씨는 당당하게 그런 미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출발점은 바로 그런 인식의 변환에서 시작한다.

지난 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대영제국을 대신해서 세계의 헤게모니와 경찰국가로 군림해온 제국의 황혼, 아니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제국의 몰락을 우리는 지금 눈으로 목격 중이다. 한 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해온 미국이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지난 1980년대 이미 일본과의 무역경쟁에서 밀린 미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 IT 산업과 금융시장의 대호황으로 제국의 위신을 다시 갖추는가 싶었다. 하지만 당당히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 불릴 법한 조지 W. 부시가 재임 8년 동안 재정흑자 기조를 한 방에 날려 먹고, 임기 말인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재정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쩌면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는 전임자였던 부시 행정부가 저질러 놓은 뒤처리를 하느라 임기 내내 고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저자 김광기 씨는 거시적인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무엇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 이 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보여준다. 우선 재정적자라는 측면에서 거의 파산에 도달한 주정부과 연방정부의 현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라는 지방정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지방채를 남발하면서 이미 빚으로 만신창이가 된 주정부는 세출 삭감을 위해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그 중에서 가장 손쉬운 먹잇감은 바로 교육비와 복지비용이었다. 그 결과, 우리네 학부모님들이 그렇게 유학 보내고 싶어 하는 미국 공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재정 확보를 위해 교원을 마구잡이로 퇴출시키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디지털 북 도입을 주창하지만 학생들에게 제공할 종이책을 구입할 수가 없어 부린 꼼수에 지나지 않는단다.

어디 이것뿐인가?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먹고 입히는데 드는 비용은 학생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다. 미미한 범죄의 재소자나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재소자들을 비용절감을 목표로 사회에 내던진다. 만성적인 경기 불황으로 실업 때문에 절대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노숙자들을 타 주에 떠넘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최고의 휴가지로 꼽는 하와이에서는 노숙자들을 다른 주에 보내려고 엄청난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아는 미국의 실체란 말인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에 비하면 지방정부의 재정문제는 정말 약과에 불과하다. 일례로 지난 여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촉발된 미국의 채무불이행(defalut) 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행정부가 “채무한도증액”을 늘리지 않는다면 국가 부도 선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거의 모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의 마지막 협상으로 간신히 국가 부도 위기는 넘겼지만, 그동안 쌓인 천문학적 수준의 국가 부채의 이자 갚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재정개혁과 증세를 통한 세입의 증가 도모 그리고 금리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국민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이 선뜻 자기 목을 걸고 그런 엄청난 개혁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김광기 씨는 또 다른 문제로 미국 시민들의 전통적인 “가불경제”를 미국 파산의 주범으로 지적한다. 그동안 부동산을 보금자리로 인식해오던 미국인들이 더 많은 이윤의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만들어진 각종 파생상품과 낮아진 은행대출의 문턱 때문에 너도나도 빚을 내서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가 2008년 경제위기 때 직격탄을 맞아 경기불황, 실직, 부동산압류 그리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 사이클을 분석한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심심찮게 들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란 표현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다.

1부에서 미국의 여러 문제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면, 2부에서 김광기 씨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에 의하면, 작금에 미국이 겪는 위기는 바로 도덕적 해이와 최고의 가치를 상실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몰락하는 제국에서 한 때 최고의 덕목이었던 도덕성이 날개 없이 추락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명제로 전락했다. 한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와 투명성(transparency)은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다. 부실금융으로 미국 시민의 세금을 강탈한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의 어이없는 보너스 잔치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부정직, 부도덕, 한탕주의 그리고 승자독식으로 무장한 금융기관의 탐욕과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패한 정경유착의 실상은 앞으로 도래할 무시무시한 생지옥의 예고편이라고 할까?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읽으면서, 김광기 씨의 비판이 우리 사회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발생할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도 좀 더 들어 보고 싶고, 미국 교육시스템에서 양산해내는 ‘예스맨’이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지, 우리나라 금융업의 현실은 또 미국하고 다를 게 무엇인지 또 보수 언론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대해서 김광기 씨의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에 대해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미국 정도만큼만 시원하게 해줬으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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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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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토성의 고리>는 독일 출신 영국 작가 W.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가 자신이 영국으로 이주해서 20년 이상 산 이스트 앵글리아 지방을 도보로 여행하면서 쓴 소설이다.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잘 배합하기로 유명한 W.G.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야사로 다루어질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정말 리얼리티에 충실한 것 같으면서도, 어느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는 작가의 유려한 픽션을 발하기도 하니 말이다. 어느 것을 취해도 꽃놀이패라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W.G. 제발트의 글을 읽으면서 역시 문인은 역사는 물론이고 사회, 경제는 물론이고 다방면에 능통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문인이 책을 읽은 그의 작품은 풍성해진다고 믿고 싶다. 영국 써퍽 지방을 위시한 여러 지방을 유람하면서 작가가 보고 느낀 점에 대한 연관적 분석은 정말 탁월하다.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 성립의 결정적 계기였던 “쏠 베이 해전”을 필두로 해서 가문에서 가문으로 이어지는 영국 내에 산재한 고성의 유래와 해당 가문에 대한 이야기에 귀가 절로 솔깃해진다.

로우스토프트를 배경으로 한 청어 잡이에 대해서도 W.G. 제발트의 예리한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지난 세기 청어는 “근본적인 절멸 불가능성”의 상징이었다고 적는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독성물질로 인한 환경오염 앞에 어떤 것도 무한하지 않다. 이런 도거 뱅크의 청어 잡이와 2차 세계대전에서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킨 르 스트레인지 소령의 침묵은 기묘한 공명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인류의 양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홀로코스트의 비극 앞에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인류 문명은 ‘연소’라는 과정을 통한 소멸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일까?

중국 청나라로 갔어야 할 기차를 보면서 부패와 독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던 제국의 흔적을 좇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던 <아편전쟁>으로 만성적 무역적자에서 단박에 벗어나 새로운 상품시장을 개척한 제국주의의 실체를 고발한다. 한편, 황위계승의 기존질서를 부정하며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던 서태후의 탐욕으로 한 때 세계 최강의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물론, 청제국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태평천국의 난과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라는 대외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저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잣는 누에야말로 이상적인 백성으로 본 위정자의 오만에도 일침을 가한다.

조국 폴란드를 떠나 영국에서 작가 활동을 만개했던 조셉 콘래드의 콩고 기행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에도 등장하는 로저 케이스먼트의 비교도 빼놓을 수 없다. 망명객으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 활동을 했던 콘래드는 벨기에 레오폴드 왕의 사유지였던 식민지 콩고의 실상과 식민제국주의자들의 범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W.G. 제발트는 서구인들이 당시 지도상에 백지로 나와 있던 미개척지를 어떻게 파괴해 나갔는지 담담한 어조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W.G. 제발트는 영국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에 대한 광폭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고대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생업마저 포기하고 매달린 알렉 제럴드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무수한 시간에 걸친 연구와 노동이 필요한 이 프로젝트를 묵묵하게 수행하는 은퇴한 농부에게 작가는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1975년 네덜란드 느릅나무 병과 1987년 전대미문의 폭풍으로 쑥대밭이 된 소소한 역사적 사실도 빠지지 않는다.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졸부들이 토지와 대저택을 경쟁적으로 구입하고 어떤 경제적 효용도 없는 파괴적 사냥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협력해서 수많은 죄없는 사람을 학살한 크로아티아 의용군 우스타샤의 만행과 이들의 문서작업을 도운 이가 바로 전 UN 사무총장이자 오스트리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이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작가는 문명의 역사는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파괴의 역사였노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장에서 고래도 국가적 차원에서 비단 제작과정을 비밀에 부쳤던 중국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서방으로 누에를 반입하는데 성공한 후에도 양잠업이 서구 사회에 뿌리 내리기까지 유구한 시간이 걸렸다는 점도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그리스,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에 전파된 양잠업이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에서는 어떻게 해서 실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세기를 뛰어넘어 나치 완벽주의자의 시도에까지 도달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놀랐다. 역사와 자연과학적 사실 그리고 정치의 조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W.G. 제발트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토성의 고리>에서 W.G. 제발트의 지성과 학식에 비해 턱도 없는 실력으로는 어디까지나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솔직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잘 모른다고 해서‘ 이건 모두 소설이야’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다만 아쉬운 건 우리에게 4편의 작품만을 남겨 놓고 영면의 세계로 간 작가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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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의 노래(들) - 닉 혼비 에세이
닉 혼비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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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노래다. 일전에 책에 대한 영국 출신의 작가 닉 혼비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닉 혼비가 평생 좋아한 31곡의 노래에 대한 자신의 감상, 느낌 그리고 특별한 인연을 소개한 책을 읽었다. 어려서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이 책에 정감이 간다. 표지에 실린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카세트테이프며 타이프라이터가 인상적이다. 아마 닉 혼비는 비 내리는 런던의 어느 카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주 잠깐.

어차피 <닉 혼비의 노래들>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어서 일단 목록을 훑어봤다. 가수의 이름은 알지만 나름 팝뮤직 좀 들었다고 자부하는데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좌절했다. 그나마 맨 끝에 실린 우리에게는 영화 주제가 <라 밤바>로 널리 알려진 로스 로보스부터 읽기 시작했다.

지금 로스 로보스의 <관따나메라>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OK guys, we’re rolling”으로 시작되는 신나면서도 경쾌한 이 곡은 아쉽게도 가사가 스패니시라 한 마디도 알아먹을 수가 없다. 그나마 영어라면 가사 해석이 조금이라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보니 닉 혼비는 가사가 없는 클래식 곡은 안 듣는다고 했던가. 어쨌든 음악을 듣는 사람이 흥겨움을 느껴 춤출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음악의 본령이 아니겠느냐고 닉 혼비는 자신 있게 독자에게 묻는다.

닉 혼비는 좀 능글맞을 정도로 자기가 수십 년 동안 들어온 노래에 자신의 삶을 슬그머니 투영시킨다. 아는 노래라고는 <Born in the U.S.A.> 밖에 모르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under Road>를 그야말로 카세트테이프가 다 늘어지게 들었노라는 자기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서 산타나의 음악을 내심 첫 섹스의 사운드트랙으로 쓰겠노라고 결심했다는 이야기까지 특정음악과의 특별한 인연을 줄줄이 사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아주 오래 전에 크리스 드버그의 <The Lady In Red>라는 노래에 미쳐서 한 시간짜리 카세트테이프에 온통 그 노래만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무도회장에서 만난 붉은 옷의 여인에 대한 크리스 드버그 식 예찬이었던 것 같은데 그 노래가 아직까지도 그렇게 기억이 난다. 오죽했으면 영어라고는 관심이 없던 내가 어렵사리 가사를 구해(그 시절에는 아쉽게도 인터넷이 없었다) 그 어려운 영어 가사를 다 외웠을 정도니까 말이다. 맨 끝에 크리스 드버그가 속삭이는 “I love you”는 정말 압권이었다.

리메이크에 일견이 있는 로드 스튜어트에 관해서도 닉 혼비의 붓은 쉬지 않는다. 보통 오리지널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오리지널 곡만큼 그가 부른 다른 가수들의 노래 또한 일품이다. 개인적으로 아이슬리 브러더스의 <This Old Heart of Mine>은 특히 좋아하는 곡이어서 그런지 책에서 만났을 때 반가웠고, 결국 예전 CD를 찾아서 듣기까지 했다.

독주(solo play)에 관해서도 닉 혼비는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물론 아티스트가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애드립으로 연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경우에는 청중으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고, 연주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독주가 등장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럴 적에 닉 혼비는 과감하게 연주회장을 떠나라고 선동한다! 실제로 펍에 가서 맥주도 한 잔 마시고 또 당구도 한 게임 쳤다고 했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음악을 즐기라는 말이다. 옳거니!!!

솔직히 말해서 <닉 혼비의 노래들>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등장해주길 바라 마지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개인의 취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새로운 곡들과의 만남 역시 즐거운 체험이었다. 보통의 책읽기가 상상력과 읽기(시가적인 차원)였다면, 닉 혼비의 노래들은 그것을 뛰어넘어 ‘듣기’까지 도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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