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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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아직도 준전시상태라는 사실에 대해 미처 모르고 살았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한국전 휴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이렇게 긴 명칭의 휴전협정 어디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 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대치 상태에서 어디로부턴가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이북을 의심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미묘한 정전 상태에서 소설가 배명훈은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미사일 폭격이 자신이 즐겨 찾던 맛집을 골라 때려 부순다는 것이 <맛집 폭격>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 <맛집 폭격>을 보고는, 배명훈 소설가가 맛집 투어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맛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산문 에세이류가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듣도 보도 못한 인도음식인 마살라 도사나 터키식 패스트리인 바클라바 그리고 하몬 이베리코 같이 물설고 낯선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라는 희한한 명칭 소속의 민소는 미사일 피격 장소를 찾아 조사 하던 중, 피격 장소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혼자서 소설을 이끌어 가기에는 힘들었던 듯 윤희나라는 낙하산이지만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주인공과 어느 순간에라도 썸을 탈 수 있는 그런 사이드킥이 투입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의 페이지 사이로 미사일 하나가 책갈피처럼 파고들었다. (44쪽)

 

서울 도심 한복판에 미사일이 매일 같이 떨어지는 가운데도 사람들이 일상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이 아닌 마당에야,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삶은 평소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지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긴 북한이 보유한 어마어마한 수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안에 수도권이 들어가는 마당에 64년 전처럼 피란 가겠다고 바리바리 짐을 싸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슬쩍 빗겨나가 작가가 고른 소재가 바로 맛집 피격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소설의 제목에 대해 한 가지 딴지를 걸고 넘어지자면 폭격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적의 군대나 시설물, 또는 국토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설에서 미사일은 인도양의 모처에 위치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 않았나. 차라리 <맛집 때려 부수기>가 낫지 않았나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어찌어찌해서 주인공 민소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았던 “하나였던 영혼을 둘로 쪼개 나눠 가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일상화된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음모론도 등장한다. 유사 이래 사회가 혼란할수록 기승을 부리는 음모론 조성을 위한 모든 조건은 비정상이 일상화된 국가에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에스컬레이팅’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불안과 긴장을 각성제로 총력전에 돌입하려는 시민의 폭력적 측면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어쩌면 전쟁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의 완결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기존의 적과 우방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린 상황에서, 국지적 분쟁을 조장해서 계속해서 무기를 팔아 수익을 내기 위한 초국적 군사용역 전문 기업이 등장해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민소가 사랑하는 여인 송민아리가 예의 복잡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이트 칼라 용병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소가 맛집들을 정밀 타격하는 미사일 공격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에게 위해가 점증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 <맛집 폭격>은 마치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처럼 초반과 중반까지는 미사일 공격에 대한 미스터리와 맛집이라는 대칭 구조가 잘 어우러지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식의 설정(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소설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독자는 작가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당장에라도 달려가 맛보고 싶은 맛집 순례기에 가까운 절묘한 묘사와 기술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입안 한가득 침이 고여 오게 만드는 바삭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자극하는 찹쌀탕수육과 자본주의 정신이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먹고사니즘과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을 고찰해 본다면 그 또한 아주 황당무계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한발에 자그마치 100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토마호크 미사일급의 공격을 그토록 오래 감당할 수 있다는 설정은 여전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 또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소설이 아닌 현실적 핍진성의 연장에서 본다면 불가능한 의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오늘 점심은 그저 바삭바삭하고 입안 한가득 쫀득함이 물밀듯 밀려오는 그런 찹쌀탕수육으로 한 끼를 때웠으면 하는 바람일 따름이다. 아, 그리고 읽다가 만 배명훈 작가의 전작 <은닉>도 마저 읽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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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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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문득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모든 귀결점이 바로 죽음으로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스라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가 또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형철 선생의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일본 순문학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그렇게 죽음 혹은 상실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나의 편견일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일본 문학에 대한 나의 평가는 야박했다. 서구,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책을 꾸역꾸역 읽어대면서도 이웃 나라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왠지 서구의 그것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지금은 소원해진 지인도 언젠가 나에게 일본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예로 들면서 그런 충고를 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신형철 선생이 손에 꼽은 하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순문학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미야모토 테루 작가를 만나게 됐다. 소개된 세 명의 작가 중에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이유도 다른 작가의 작품에 앞서 이 책을 읽게 해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죽일 놈의 절판본에 대한 사랑이란.

 

신형철 선생이 직접 낭독해준 <밤 벚꽃>에 아무래도 먼저 손이 갔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읽는 낭독이 주류 독서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홀로 읽는 묵독이 대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낭독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독서라는 것이 개인적인 체험이다 보니 낭독보다는 묵독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단편 <밤 벚꽃>의 주인공은 고베에 사는 49세의 이혼녀 아야코다. 소설은 그녀의 단아한 목소리로 전개된다. 20년 전에 이미 이혼했고, 외아들이었던 슈이치를 1년 전에 사고로 잃었다.

 

그렇게 폐경기에 접어 든 혼란스러운 그녀에게 두 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한 명은 전 남편인 야마오카 유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아들을 잃고 하숙을 친다는 말에 하룻밤 신세지겠다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신원불명의 한 청년이다. 이 둘 때문에 아야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여전히 서먹하지만, 죽은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유조를 대하며 아야코는 그동안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로 가차 없이 이별을 선언했지만, 그 때 한 번만 눈감아 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그녀를 엄습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전기기술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찾아온 다른 한 청년은 일박을 정중하게 요청하는데, 알고 보니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로 아야코가 거주하는 저택에서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 속셈이다. 그들을 유혹한 밤 벚꽃을 바라보며, 아야코는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회상한다. 존재의 부재를 대면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고나 할까.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데, 그 결과는 온전하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뒤에 바로 따라 읽은 <박쥐>는 맨숭맨숭한 느낌이었다. 나(곤스케)는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시절 친구로부터 친구 란도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마침 여자친구 요코와의 만남에 늦은지라 경황없이 그녀에게 달려간다. 요코는 교토의 시센도를 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시센도보다 요코에 대한 순수한 욕망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소설집 <환상의 빛>에서는 기묘한 순간에 죽음 혹은 상실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격발시킨다. 요코네 집에서는 가업을 이을 데릴사위를 찾고 있기에, 그녀와의 이별은 필연이다. 오래전 오사카의 어느 항구에서 봤던 박쥐처럼, 곤스케의 상념은 부서진다. 상남자였던 란도와 함께 오사카 항구에 산다는 묘령의 소녀를 찾아 나선 기이한 여정이 이어진다. 그 여행은 요코와의 교토여행과 대조를 이루며, 곤스케가 반추하게 된 삶의 진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요코와의 이별에 방점을 찍는다. 이거야말로 신형철 선생이 추천한 담백하기 짝이 없는 일본 순문학의 맛이었던가.

 

<침대차>는 밤을 타고 달리는 야행열차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나는 내일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야행열차를 타고 목적지 도쿄로 향한다. 우리네 삶에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가. 야행열차를 타는 나의 준비물은 주간지 두 권과 포켓용 위스키가 전부다. 신칸센을 타면 더 빨리 도쿄에 다다를 수 있겠지만, 저혈압이 있는 주인공은 침대차를 선택한다. 야행열차의 완만한 울림과 사람들의 북적거림 그리고 독특한 정적이 주는 감상이 야행열차의 제 맛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기계쟁이에서 능력 있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한 나는 파트너 고타니와의 합작품인 이번 계약에 얽힌 사연들을 회상하며 밤을 달린다. 그러던 중, 도중에 승차한 어느 노인의 통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가쓰노리와의 추억을 되살려낸다. 자신에 집에 놀러 왔다 강에 빠져 죽을 뻔한 가쓰노리가 결국 대학교 때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미야모토 테루 작가는 동승한 노인 역시 그런 참척의 슬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독자로 하여금 하게 만든다.

 

그렇게 세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표제작인 <환상의 빛>을 읽기 시작했다. 한신 전차에 치어 자살한 남편을 그리는 유미코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남편과 그렇게 사별한 후, 유미코는 7년이 지나 오쿠노토의 소소기 바다에 새로 둥지를 틀게 되었는데 그곳은 짙은 초록빛 물색과 일 년 내내 해명이 울어대는 가난한 바닷가였다. 우리 같은 속물들은 당장 이제 막 태어난 아들 유이치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가 걱정인데, 정작 당사자 유미코는 남편이 왜 죽었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죽은 남편이 그 이유를 들려줄 리 만무하다. 그에 대한 질문과 대답 모두 유미코의 몫인 셈이다.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유미코 역시 하루의 삶을 이어가고, 효고에서 멀리 떨어진 소소기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미야모토 테루는 그녀의 신산한 삶의 원형을 제공하는 과거사에 동반자살한 이웃의 돈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아버지의 이야기와 역시 치매로 가출한 할머니의 실종이 가족 책임이라며 경찰들이 찾아와 가난한 자기 집의 다다미까지 뜯어내고 땅바닥을 파낸 에피소드를 배치한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과연 유미코가 소소기에서 새남편 세키구치 다미오 씨의 아내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싶어 하는 삶의 진실은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새남편 다미오 씨와 새출발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여전히 죽은 남편과의 대화는 계속된다.

 

<환상의 빛>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솔직히 말해서 신형철 선생이 추천한 것처럼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나도 좋은 것은 아니니까. 좋다면 기발한 아이디어 혹은 구성이나 플롯이 좋다던가, 서사의 전개 기법이 좋다든가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에서는 나의 감성을 울리는 무엇인가를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나의 일본순문학에 대한 눈높이가 미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일본 출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표제작 <환상의 빛>을 영화화해서 데뷔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그의 작품도 한 번 영화로 만나 보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정말 유미코가 말한 그 소소기 바다가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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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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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픽노블을 좋아하는 편이다. 약간 판화 스타일의 거친 듯한 그런 그림체를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리쿤우 작가의 <내 가족의 역사>는 일단 합격점에 가깝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중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고사성어 선집과 태사공 선생의 <사기열전> 따위를 즐겨 읽어서 그런지 인민해방군 출신 작가가 사진과 그림으로 보여주는 중국현대사에 대한 기록이 인상적이었다. 리쿤우 작가의 전작 중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중국인 이야기>란 책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전작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야기의 발단은 중국 쿤밍의 어느 골동품시장에서 시작된다. 이 그래픽노블의 내레이터인 리 선생이 골동품 시장에서 라오치라는 골동품 중개상으로부터 <지나 정벌 쌍륙도>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소개받게 되는데, 이것이 청일전쟁에 대한 희귀한 자료였다는 것이다. 메이지 2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20년 전인 1894년 우리나라에서는 갑오동학운동이 벌어졌던 해이자 당시 동아시아의 강국 청제국과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세운 일본 메이지 정부가 조선의 미래, 나아가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한판대결을 벌인 도박판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장차 제국주의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자료임에 틀림 없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라오치는 자신의 스승이 더 놀라운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서 리 선생에게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사부를 한 번 찾아오라는 말을 건넨다.

 

라오치의 스승이 가지고 있는 자료는 바로 193777일 베이징 남부의 루거우차오에서 벌어진 총격전이 중일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일본 종군기자들이 사진 기록으로 남긴 대단히 귀중한 자료였다. 리 선생은 준비한 카메라로 수천 장에 달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중국에서는 항일전쟁으로 부르는 중일전쟁이 끝난 지 70~8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어떻게 이런 자료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록한 자료를 가지고 동료들과 분류 작업을 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비록 왕조제에서 공화제로 이행하기는 했지만, 19세기 아편전쟁 이래 서양 세력의 침탈에 시달리던 1930년대 중국은 이웃 일본처럼 부국강병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제국주의 열강의 먹잇감이 되어 굴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와 마오쩌둥의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으로 눈앞에 닥친 일제의 침략에 공동전선조차 형성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전차와 같은 신식무기와 공병부대, 병참부대, 우편부대 등 다양한 병제를 갖춘 일본군의 전략 전술 앞에 중국군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이고 국민당 정부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난징까지 함락당하는 장면들이 리쿤우 작가가 찍은 라오치의 사부가 어렵게 모은 자료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구한 중국 역사 중에서도 유독 치욕적인 일제 침략 시기를 리쿤우 작가는 <내 가족의 역사>에서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외면하고 싶은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알려 다시는 그런 치욕을 겪지 말자는 작가의 의도일까. 만화 작가로서의 창작열보다 어떤 면에서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요하게 중일전쟁 당시 이모저모를 작가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일본 침략군에 대항해서 항거에 나서라는 벽에 쓴 격문은 물론이고,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지만 당당한 중국군 포로들의 모습도 빠지지 않는다. 일본군 역시 전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을 깔보기는 했지만, 악조건을 무릅쓰고 싸운 중국군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도 사진에 남아 있다. 난징공략전에서 무자비한 살상을 벌인 일본군이 보여줬던 그것과는 다른 장면이라 그런지 인상 깊었다. 친일 괴뢰정권의 수반이었던 왕징웨이와 부역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매국노들이라고 외치는 작가의 일갈은 <내 가족의 역사>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라오치의 사부가 대륙을 돌며 어렵사리 구했다는 자료의 정체를 일본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 거액을 줄테니 물건을 넘기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리쿤우 작가가 문제의 자료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중국 고사에 나오는 장량이 황석공으로부터 얻은 <태공병서>의 사례가 떠올랐다. 나중에 라오치와 그의 사부를 작가가 찾아 나서지만 종적을 찾을 수가 없지 않았던가. 자료를 조사하던 중, 일본 항공대의 쿤밍 폭격으로 작가의 장인어른이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비극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끝으로 이 그래픽노블은 대단원에 이른다.

 

이웃나라 일본은 여전히 중일전쟁 당시 그들이 중국 각지에서 벌인 전쟁범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 나아가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 그들이 벌인 역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그들이 주장하는 평화공존은 요원하게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만델라가 남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을 되새기게 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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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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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 아저씨의 죽음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아파트의 어느 특정 주민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분신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점이다. 이 사건을 두고 경비노동자의 최저 임금 예외 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인간이 타인을 자기와 같이 똑같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우리에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로도 유명한 페터 비에리 교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특성이자 권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문학적 사례를 통해 <삶의 격>에서 기술한다.

 

어쩌면 페터 비에리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의 격, 다시 말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아래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대중은 모두 자신이 가진 노동을 팔아 생활의 밑천이 되는 돈을 벌기 마련이다. 역설적이지만, 그 돈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존엄성의 유지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터 비에리 교수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인사청탁의 예를 들고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장 하워드에게 주인공 로먼은 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해야 한다. 들어 주지 않을 부탁이라고 생각한다면 청탁자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탁 혹은 부탁은 들어 주는 이에게 일종의 암묵적인 강요가 아닐까. 부탁을 구걸로 만드는 예속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되겠는가.

 

비에리 교수는 상호 간의 존엄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만남이라는 요소에도 주목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경비노동자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언행의 본질과 작가가 역시 초반에 언급한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의 사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거나, 그런 게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바로 관계의 취약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경비노동자나 난쟁이를 철저하게 타인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만약 내 아버지나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비에리 교슈는 프란츠 카프카의 저명한 소설 <소송>의 예를 들면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소송에 걸렸다고 주인공 요제프 K.를 협박해서 굴욕감을 느끼고 무력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내놓는다. 주인공이 알 권리를 배제당한 상태에서 그의 가진 권리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송두리째 무시당하게 되는데 그 결론은 파멸이었다.

 

사실인 체 하는 허언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차원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정도의 허풍 정도라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공약(空約)은 어떨까. 자신을 뽑아만 준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비에리 교수는 고질적인 이런 공허한 헛소리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악의적 허풍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대신 당장의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정치권의 작태를 우리는 그야말로 매일 같이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비에리 교수는 모두 8개의 카테고리에서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들려준다. 사실 누구나 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한 지식인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에 나오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소멸을 다룬 장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우리는 외적 행위와 내적 생각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한 개개인의 사변적 태도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된다. 그의 서술은 결국 안락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 걸까.

 

어떤 이야기도 그렇지만, 페터 비에리 교수는 명확한 결론으로 독자를 유도하지 않는다.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것 또한 독자가 가진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의 타인과 관계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호모 소시에타티스(Homo Societatis)에게 불가항력적인 요소인 결함과 과실 때문에 발생하는 존엄의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존적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삶의 격을 지키기 위한 존엄성이라는 미로를 이렇게 멋지게 정리해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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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0-24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3장까지 읽었는데 이 작가의 지성과 품위랄까요...그런 점에 감탄하며 꾸역꾸역 읽었습니다.레삭님 리뷰 읽으니 좀 정리가 되는 듯 싶네요. ☺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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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서머싯 몸의 책을 읽었다. 좀 부끄럽다고나 할까.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달과 6펜스>는 정말 오래 전에 사두었지만, 아직도 읽지 않고 있다. 그러다 지난 주 독서모임에서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이 다음달 독서모임 책으로 정해지면서 부랴부랴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재미가 고전소설임에도 탁월했다. 카프카의 <소송>과 더불어 나의 고전읽기 트라우마 탈출에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인터넷 위키피디아로 영국 출신의 저자 서머싯 몸을 검색해봤다. 사실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내가 이 작가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나 싶을 정도로 무지했다. 물론, 다른 인터넷 기사와 리뷰도 참조했는데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동성연애자였음에도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는 점과 통속소설작가로 생전에 불렸었노라는. 그리고 91세까지 장수를 누리다가 남프랑스 니스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삶이지 않았을까.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은 지금까지 모두 세 번 영화화되었는데 최근작으로 원제 그대로인 <페인티드 베일>은 2006년 존 커랜 감독이 연출을 맡아 나오지 왓츠가 여주인공 키티 역을, 에드워드 노튼이 냉정한 남편 월터 페인 역을 그리고 찰스 타운센드 역을 리브 슈라이버를 캐스팅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소위 잘나가는 막장드라마 뺨치는 스토리라인의 구성을 읽으면서 왜 당대 사람들이 서머싯 몸의 작품을 통속소설이라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가가 서두의 <저자의 말>에서 밝히듯이 <인생의 베일>의 모티프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그 유명한 <신곡>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걸작소설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인생의 베일>의 주인공 키티와 닥터 월터가 이끌어가는 서사의 힘은 대단하다.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런던 사교계의 꽃이었던 키티가 조급한 마음에 사랑하지 않지만 멋진 외모의 정부 세균학자 월터 페인의 세련되지 못한 청혼을 받아 들여 결혼에 이른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의 말로는 홍콩 총독 차관보였던 중년의 멋쟁이 찰스 타운센드와의 불륜으로 치닫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키티를 너무 사랑하는 남자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하는 죽음의 땅 메이탄푸로 부정한 아내와 향한다.

 

 

 

소설은 키티와 찰스의 외도가 남편 월터에게 발각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19세기에 태어난 작가 서머싯 몸은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에 여주인공 키티의 시선으로 영혼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어떻게 해서 키티의 어머니 가스틴 부인이 왕실변호사인 남편을 닦달해서 상류사회에 진입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꿈이 좌절되자 이번에는 딸들을 좋은 혼처에 시집보내는 과제로 인생의 목표를 수정했는지 등등에 대한 제국주의 시절 영국 상류사회 일상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벌이는 게임에서 사랑이란 부질없는 감정의 찌꺼기일 따름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감추어진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에 대해서도 서머싯 몸은 가차 없는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사랑에 눈이 먼 키티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에게 보내는 온전한 사랑을 지루하다고 폄하하면서, 찰스 타운센드만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녀는 마치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아를 스스로 만들어서 사랑한 것 같은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그들의 부정을 알게 된 월터는 찰스의 외도가 키티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그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얼음장 같은 차갑게 제공한다. 언제나 그렇듯 열정이 냉정으로 변하는 순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 여기서 과연 찰스 타운센드는 비난의 대상이어야만 하는 걸까? 적어도 키티와 찰스는 서로가 사랑한다고 믿는 동안만큼은 서로에게 정직했다. 하지만 키티의 희망처럼 찰스는 자신의 와이프인 도로시와 전혀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식민지 총독이 될 거라는 꿈을 꾸던 그는 자신의 이력에 오점을 남길 그런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가 키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찰스 타운센드는 그렇게 자신이 누린 아름다움을 책임질 마음이 전혀 없는 비열한이었다. 바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키티는 절망하게 된다. 통속소설이라는 세간의 비아냥거림에도, 이런 관계의 치밀한 구성이야말로 <여성의 베일>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한편, 역병이 창궐하는 사지(死地) 메이탄푸로 스스로 들어간 닥터 월터에게 죽음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타운센드의 감정을 확인한 키티는 현지 중국인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봉사하는 프랑스 수녀원장 일행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게 된다. 물론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키티는 월터가 죽고 영국으로 귀향하는 길에 들린 홍콩에서 불같이 일어난 욕정 때문에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런 점이 그녀가 존경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수녀들의 비인간적일 정도로 극도로 정제된 감정표현과 대비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아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아버지 가스틴 씨와의 한판 대결은 의미심장했다.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난 마침내 여인으로 거듭난 키티의 성장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전형적 통속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은 읽는다면 아마 독자는 키티와 월터가 펼쳐 보이는 부부/연인 사이에 얽히고설킨 감정의 동선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입체적인 캐릭터 창조에 공을 들인 노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열렬하게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지만 끝내 부정한 아내에 대한 용서를 거둘 수 없었던 월터의 고뇌를 작가는 냉정하게 기술한다. 그가 용서할 수 없었던 건 키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가. 어쩌면 실제 삶에서 동성연애자였지만, 결혼해서 부부생활을 했던 서머싯 몸이 가진 이중적 모습에 대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메이탄푸에서 역병으로 죽어나가는 중국인들을 돌보는 월터의 모습은 타인에게 성자(聖者)의 그것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키티는 월터의 행위가 자신의 부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릇된 의도와 가치에서 비롯된 행동이 전도된 진실로 바뀌는 아이러니를 서머싯 몸은 탁월한 기량으로 지적한다.

 

인간관계의 핵심에 대한 작가 나름의 성찰과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빚어내는 삶의 드라마는 확실히 재밌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출생한 작가의 고질적 오리엔탈리즘 기술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서구인들에게 동양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미지의 신비스러운 오브제일 뿐이고, 그 공간에 사는 이들 역시 동경이 아닌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물론, 철없는 소녀였던 키티가 불륜과 부정 그리고 남편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시대를 앞선 사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역겹고 소름끼치는 생물체’라는 표현까지 빌리는 서구인들의 시선을 가감 없이 그대로 표현한 장면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여성성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보여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시대의 한계를 보여준 작가의 시선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소설을 재밌게 읽었으니 다음은 영화로 만나볼 차례다. 철부지 사교계 처녀에서 산전수전 경험한 여인으로 거듭나는 역할을 소설의 주인공보다 실제로 열 살 정도 더 먹은 나오미 왓츠가 과연 어떻게 연기해낼지 자못 궁금하다. 대신 냉정하기 짝이 없는 무심한 표정의 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에드워드 노튼의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소설에서 서머싯 몸은 새로운 사건이나 일화에 앞서 숫자로 표현했는데, 아마 영화에서는 각색 작업에서 그런 부분들이 배제됐을 거라고 추정된다. <인생의 베일>의 번역은 여성 번역자가 맡은 것 같은데, 책 속지의 저자 소개에서 서머싯 몸이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위해 ‘의사를 때려치운다’라고 기술한 점이 눈에 띄었다. 물론 그 부분은 역자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쓴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남성작가의 글을 여성 역자가 번역해서 그런지 여성작가의 감성이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한 번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에 이어 서머싯 몸의 <여성의 베일>을 통해 고전 문학도 신간 못지 않게 재밌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해낸 것이야말로 이번 독서 최대의 수확이다. 내친 김에 역시 서머싯 몸의 대표작이라고 꼽히는 <달과 6펜스>에 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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