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에 대하여 - 친절을 성공 다음으로 미루는 이들을 위한 행복론
조지 손더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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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 그리고 제프 다이어와 함께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조지 손더스의 2013년 시러큐스대학교 졸업식 축사를 담은 책 <친절에 대하여>를 읽었다. 사실 그의 책으로는 작년엔가 나온 <12월 10일>을 먼저 읽었는데 아직까지도 리뷰를 쓰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정독하고 나서 리뷰를 써야지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도, 또 책을 읽은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기억을 되살려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창래 선생의 책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에는 두 번째로 나온 조지 손더스의 책으로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예비산업역군들에게 친절을 당부하는 글이다. 책에서 조지 손더스는 문득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어느 정도 살아 보니, 점점 후회하는 일들이 많아지더라. 어려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일, 나이 들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었다가 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후회 비슷한 감정이 슬쩍 밀려왔다. 그런데 조지 손더스는 뜬금없이 친절하지 못한 일을 손꼽는다. 그리고 삶의 목표로 친절을 삼으라고 조언한다. 뭐지?

 

우리는 성공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성공은 금전적 치부로 직결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에 대한 평가다. 내가 가진 학위로부터 시작해서(돈을 벌 수 있는 밑천이 된다), 재화를 취득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 가지고 있는 자동차 그리고 부동산 등등. 하지만 이런 물질적 성공들은 하나 같이 채워질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더 좋은 입지를 가진 삶의 터전, 남들보다 더 나은 자동차 등은 자식들의 교육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자신의 단편소설에서 현대 자본주의 미국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아온 작가는 그런 물질적 요소 말고 친절과 사랑이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부상시킨다. 아니 사람들 중에 친절과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가.

 

작가는 우리가 다수에게 친절하지 못한 이유로 이기심을 꼽고 있다. 그는 이기심을 장애이자 질병으로 규정한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기본적으로 홀로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다. 각박한 경쟁이 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천박한 언론은 고장난 테이프 마냥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떠들어대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난주엔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미국 아미시 교도들의 경쟁 대신 상생하는 삶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경쟁 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경쟁만 요구하는 시스템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도 살면서 작가의 말대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살려고 노력 중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땐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지 손더스의 말대로 내 삶의 목표를 친절로 삼는다면, 내 안에 사랑이 더 많아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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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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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날에 <캐롤>을 읽었다. 때마침 영화가 개봉해서 그런지 소설까지 세간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본국인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녀의 작품들이 속속 영화화되는 걸 보면 작가가 집필한 소설의 가치를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그냥 대충 사랑에 빠진 두 명의 레즈비언에 대한 소설이겠거려니 하고 집어든 소설 <캐롤>은 좀 더 복잡한 서사 구조로 독자를 유혹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19살 먹은 테레즈 벨리벳이다. 연극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며 크리스마스 대목에 백화점 알바를 하던 그녀는 매장에 들른 캐롤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테레즈에게는 유사 남자친구인 부유한 집안의 리처드 셈코가 있지만 도통 그에게는 관심이 없다. 화가 지망생인 리처드가 결국 자신에게 관심을 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리라는 걸 테레즈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시쳇말로 질척거릴 정도로 집착하는 리처드에게서 테레즈는 그의 집착과 단호함이 언젠가 폭력적인 증오로 휘발되리라는 걸 예단한다.

 

테레즈의 경제적 상황은 리처드나 부유한 집안 출신의 캐롤과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인 반면, 테레즈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대 디자이너 조합에 가입을 목표로 꾸준히 돈을 저축하며 초라한 월세방을 전전한다. 어떤 점에서 보면 테레즈는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뚜렷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투르기 짝이 없다. 소설의 초반에 나오는 로비체크 부인과의 에피소드도 그렇고, 캐롤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잘 나가는 하지와 결혼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캐롤은 이혼에 직면해 있다.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린디의 양육권을 두고 남편을 상대로 소위 사랑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그녀의 삶에 ‘애송이’ 테레즈가 침투하기 시작한다. 한편, 테레즈는 캐롤의 오랜 친구인 애비에게 질투심을 폭발시킨다. 이 모든 것을 일천한 연애경험부족 탓으로 돌려야 할까.

 

캐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테레즈는 정말 순수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빠져 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녀를 쫓는 애달픈 눈길의 리처드는 분노에 찬 증오를 내뿜는다. 역설적으로 리처드가 그런 행동을 할수록 테레즈의 감정은 캐롤에게 다가서게 된다. 테레즈에게 캐롤과 함께 한 순간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이지만, 리처드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지루하고 고역스러운 시간들일 뿐이다. 테레즈가 리처드를 사랑하긴 했었던가. 어느날 캐롤이 테레즈에게 함께 여행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중서부를 가로 지르는 두 여인의 여로가 시작된다.

 

LGBT의 시대에 시대를 앞서간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 이야기는 매혹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니 영화 <캐롤>의 감독도 커밍아웃한 토드 헤인즈다. 게다가 버디무비와 로드무비의 형식까지 갖추었으니 완벽하지 않은가. 한 명은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애송이 처녀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혼소송 중인 상류층 유부녀의 일탈이야말로 영화화하기에 더 없는 소재가 아닌가. 철부지 소녀를 마냥 사랑하는 부서질 것 같이 위태로운 남자. 게다가 그렇게 여행길에 오른 테레즈와 캐롤을 미행하는 탐정까지 등장하니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동시에 소설 <캐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녀 테레즈가 캐롤과의 사랑을 통해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그린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에 나오는 문장 중에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어”를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규정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모든 사랑은 규정할 수 없는 고유의 아우라가 있지 않은가. 그저 관용의 눈길로 바라보면 그만인 것을 너무 빡빡하게 대하는 게 아닐까. 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그네들만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긴 여행길에서 테레즈와 캐롤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무리 없이 그려낸다. 시카고로, 디모인과 워털루 그리고 수폴스로 이어지는 그들의 여로에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의 순간들을 작가는 인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 <캐롤>이 언제 발표된 책인지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이 소설의 또 다른 제목이 <The Price of Salt>로 1952년에 발표된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나왔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전선으로 떠난 남성들을 대신해서 공장에서 선박을 조립하고 용접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지만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고 하이스미스는 캐롤의 이혼과정에서 테레즈가 캐롤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연서가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는 점을 강조한다.

 

긴 여행을 거쳐 두발로 서게 되는 테레즈의 사랑에 대한 결정은 아름답다.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문구보다 자주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테레즈 벨리벳의 해피엔딩이 더 마음에 들었다. 긴 명절 연휴에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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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노바이올렛 불라와요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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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콜로니얼 스타일의 작품을 즐겨 읽는 편이다. 작년에 흠뻑 도취됐던 하니프 쿠레이시를 필두로 해서 제이디 스미스의 책도 읽으려고 사두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엔 진짜 날것 같은 느낌의 책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를 만났다. 이 책의 작가인 노바이올렛 불라와요의 데뷔작으로 아프리카 출신 여성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 최종 리스트에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보수적인 문학상이 인정할 정도라면 일단 작품성은 보장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소설은 로디지아 아니 지금은 짐바브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의 두 번째로 큰 도시 불라와요를 첫 번째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빈민촌이라고 할 수 있는 패러다이스(이름 한 번 역설적이다)의 양철집에 사는 달링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다. 이제 열 살 남짓한 달링은 치포, 갓노즈, 스티나, 배스터드, 스브호 같이 엉터리 영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과 부촌인 부다페스트(그녀도 한때 살았던 곳이다)를 습격해서 변비에 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아바 열매를 따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노바이올렛 작가는 한 소녀의 눈을 통해 백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3세계의 그늘을 유머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아버지는 남아공으로 돈을 벌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났지만, 돈은커녕 아무런 소식조차 없다. 살기 위해 엄마는 국경을 넘나드는 밀무역도 마다하지 않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낯선 사내를 집안에 들이는 일을 꺼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짐바브웨 일반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면 로버트 무가베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통치하는 짐바브웨 국가는 엉망진창이다. 모두가 ‘변화’를 원하면서 투표와 선거라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지만 그들의 원하는 변화는 그들의 지도자가 언제 죽을까하는 고민처럼 요지부동이다. 백인 NGO 요원들이 나눠주는 구호물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자신들의 선행의 대가로 기념사진을 찍겠다가 덤벼드는 그들을 위해 미소 짓는 아이들의 기분이 어떨지 작가는 가감 없이 작품에 기술한다.

 

한편 달링의 친구 치포는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는 배를 처치하기 선무당 친구의 낙태 시술을 시도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도 한다. 게다가 저주받은 질병인 에이즈로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백인들에 대한 증오는 무고한 이들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블랙 파워”라는 기치 아래 폭도들이 날뛴다. 목사인지 심령술사 그것도 아니라면 예언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레벨레이션스 비칭턴 음보로는 죽어가는 달링의 아버지를 치유하겠다고 터무니없는 액수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어린 소녀 달링은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 상태인 헬조선에 버금가는 헬짐바브웨를 떠나 포스털리나 이모가 자리 잡은 미국 디스트로이드미시겐으로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고대하던 달링의 미국행으로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의 2부가 시작된다.

 

가난과 궁핍으로 점철된 짐바브웨에서의 생활도 그랬지만, 아프리카계 흑인이민자가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수십 년을 미국에서 살아도 합법적인 영주권을 얻지 못한 바스코 다 가마 삼촌이나 언어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포스털리나 이모의 고단하기 짝이 없는 삶을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 달링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고향에 남은 엄마와 친구들은 젖과 꿀이 흐를 거라고 생각한 미국에 간 달링과 포스털리나 이모에게 달러와 온갖 자본주의 시스템의 산물들을 줄기차게 요구한다. 멜리카(아메리카)에 안착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진력하는 달링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달링에게 제2의 고향이 된 디스트로이드미시겐 캘러머주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내 것이 아닌 멜리카에서의 풍요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주류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 서클을 맴돌며 어린 시절 훔쳐 먹던 구아바 맛에 군침을 삼키며 고국에 대한 굶주림을 달래는 달링의 모습에서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는 의미에서 문화적 융합 대신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21세기 이민자들의 모습을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불라와요의 자전적 소설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는 확실히 재밌다. 한 때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 불리던 멜리카(하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담보해 줄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에서 새출발을 원하는 이들의 미래는 어쩌면 요양원에서 갇힌 샤카 줄루의 최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무 암울한 게 아니냐고? 물론 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완전한 아메리카나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소설을 통해 작가는 냉정하게 분석해낸다. 달링과 함께 했던 지난 3일은 너무 즐거웠고, 엄혹한 현실세계를 바라보는 어린 소녀의 혼란스러운 시선을 따스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잡아낸 불라와요의 작품에 찬사를 보낸다. 현재 회고록(memoir) 프로젝트 중이라고 하는데, 계속될 노바이올렛의 문학적 행진을 지켜볼 예정이다. 아, 그리고 역자의 번역도 훌륭하고 멋졌었노라고 전해라. “설교에 발동”을 걸고, “강냉이를 털”고 또 “목구멍에 불을 지”른다는 표현은 정말 걸작이었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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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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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독서모임 도서였던 김숨 작가의 <바느질하는 여자>를 다 읽으면서, 간간이 그녀의 전작 소설집 <국수>도 읽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자보다 후자가 더 훨씬 더 재밌었다. <국수>가 어쩌면 작가의 스타일을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메멘토 모리’라는 중세 이래 무한반복된 주제의 변주와 더불어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찌질한 모습일까 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타이틀인 <국수>를 가장 먼저 읽었다. <바느질하는 여자>에서처럼 남성성이 배제된 여성들만의 이야기다. 아이를 낳지 못해 자신의 집에 시집온 늙어가는 계모를 위해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화자의 이야기에는 처량하게 다가온다. 아니가 서넛 딸린 집에 와서 처음으로 만든 음식이 아마 국수였지. 요즘 누가 국수를 직접 반죽해서 먹나 하는 이야기는 ‘요즘 누가 누비옷을 지어 입나’라는 <바느질하는 여자>의 이야기와 묘하게 공명한다. 어쩌면 세태를 거스르는 그런 이야기에 작가가 집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반죽의 시간이라는 추상화된 시간을 통해 과거에 대한 회한과 현재의 순간들을 훌륭하게 담아낸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표제작 <국수>에 나온 반죽의 시간이라는 표현은 내가 김숨 작가를 규정하는 구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수라는 소박하면서도 간소한 음식을 통해 되돌아 올 수 없는 과거의 시간들을 갈무리하는 작가의 솜씨가 비범하다.

 

<바느질하는 여자>에서 우물집에 살며 서쪽방에 자리잡은 누비대를 떠나지 않는 어머니의 귀기 서린 이미지를 이 소설집의 곳곳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병과 사투를 하다가 세상을 뜬 며느리를 찾아가는 시어머니의 넋두리를 담은 <막차>에서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형해화된 현대 가족 시스템에서 자식된 도리는 하지 않으면서 금전등록기처럼 위급한 상황마다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지만 관계가 어디 그렇게 일방적일 수 있는가. 목울대를 울리게 하는 그런 질문에 작가는 귀기서린 결말로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시신을 모시고 귀향하는 길을 다룬 <옥천 가는 길>에서는 한술 더 뜬다. 응급차에 탄 자매와 응급차 운전사의 대화를 들으면서 비로소 독자는 응급차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그토록 생전에 가고 싶어하시던 옥천으로 모시는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다. 생전에 효도하라는 말을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터부처럼 막상 그 후회는 언제나 타이밍을 맞추는 법이 없다.

 

2016년을 휩쓰는 텔레비전 막장드라마에서는 넘볼 수 없는 성공신화를 육화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대중의 채워질 수 없는 저급한 갈망을 자극하지만 김숨 작가의 소설에서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인생극장을 조망한다. 주식으로 돈 벌어 보겠다고 시아버지의 얼마남지 않은 재산을 담보로 투자에 나섰다가 쫄딱 망하고, 원치 않는 부양을 하게 된 며느리의 푸념, 폐휴지를 주어 가며 추위와 고독 속에서 여생을 견디는 독거노인의 진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이유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장의 폭주 등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내러티브가 연달아 독자의 가슴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어쩌면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언젠가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의 엄습 때문일까. 도대체 우리 삶의 행로에서 두려워해야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순간, 운명을 거슬러 삶에 회심의 반격을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한 결말에 도달해서 기다리는 것은 비극의 전조일 따름이다.

 

표제작 <국수>와 더불어 가장 주의를 기울여 읽은 소설은 <구덩이>다. 구제역이라는 희대의 재앙 때문에 돼지 살처분에 동원된 굴착기 기사인 화자의 인생유전이 내러티브의 전개와 동시에 진술된다. 구제역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 없이 죽어야하는 가엾은 동물들의 운명을 바스켓으로 다루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가 아내와 아들을 버린 원죄와 정확하게 귀결된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십수년간 보류한 자신을 생물학적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들의 심정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창 돈을 벌 수 있을 때, 건사하지 않은 가정으로 무슨 염치로 돌아갈 수 있냐고 김숨 작가는 독자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런 그의 내적 갈등은 돼지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거듭된 설사를 유도하고 피고용인의 의뢰에 따랐을 뿐이지만, 하수인으로 몰려 결국 폭력적 결말로 치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화자가 돼지들을 묻기 위해 파는 ‘구덩이’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목적이 운명이 되는 순간, 비극은 현실이 돼 버린다.

 

김숨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작가가 우리사회의 참 다양한 이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의 변주와 삶에 대한 일상적 분노 그리고 숙명과도 같은 메멘토 모리라는 일관된 주제들을 수려하게 담보해낸 역작이 바로 <국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작가에는 일말의 유머를 기대해 본다면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김숨 작가가 곧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다른 <L의 운동화>라는 제목의 경장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소설에는 또 어떤 서사와 스타일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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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0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해석도 좋군요.^^
따로 따로 봐도 하나 하나 뜯어 놓고 봐도
음, 비슷한 관점인 것 같아요.
마지막 해석에 조금 갈리지만 ..
뭐..어디까지나..읽는 이의 마음이니..
참 좋습니다.
죽음의 변주 ㅡ삶에대한 일상적 분노 등 ㅡ으로 읽으시는 면 ㅡ신선 ㅡ해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어느새 2월 입니다.
멋진 시작 되시길 바랍니다 ^^

레삭매냐 2016-02-01 15:20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

책읽기는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의 자유라는 생각에 두서 없이
이런 저런 감정들을 나열해 봤습니다만.

[그장소] 2016-02-01 15:31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해석에 대해 ㅡ자유로울 수록
더 많은 상상력이 나올 수록
좋다고 보거든요.
읽을 수록 다채롭게 해석이 가능한 작품은
그야말로 보물이란 생각을 하고요!^^

어쩐지 ㅡ슈트라우스 ㅡ죽음의 변용 을
들어 줘얄 듯 해요!^^
 
미싱 유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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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할런 코벤의 신간 <미싱 유>를 읽었다. 영국 출신의 가수 존 웨이트가 1984년에 불러 대히트를 기록한(그의 유일한 넘버원 싱글이다) 동명의 곡을 모티프로 해서 할런 코벤은 책을 잡는 순간 도저히 손에서 뗄 수 없는 그런 마력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최근에 읽은 스릴러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몰입도를 자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이야기는 뉴욕 경찰 캣 도노반이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스테이시의 꾀임에 빠져 온라인 데이팅사이트에 가입하면서 비롯되었다. 독신자들이 우글거리는 데이팅사이트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18년 전에 그녀의 약혼자였던 제프 레인스의 사진이었다. 존 웨이트의 노래를 즐겨 듣던 그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캣은 고심 끝에 <미싱 유> 뮤직비디오 링크를 그에게 보내지만 그의 냉담한 반응에 절망한다.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문제다. 18년 전, 조폭 코존의 살인청부로 아버지 헨리가 죽은 트라우마에서 캣은 여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실연과 아버지의 비명횡사, 이것만으로 충분히 소설을 이끌어갈 만한데 할런 코벤은 또하나의 미스터리를 장착한다. 펜실베니아 아미시 농장의 상자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설정이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미남인 제프 레인스가 독신여성을 꾀어 밀월여행을 다수의 여성들에게 수차례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캣은 이중 충격에 휩싸인다. 아내와 사별하고 십대 딸을 키우며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존 웨이트의 노래 가사처럼 떠난 연인을 가슴으로는 그리워하면서도, 말로는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부정의 감정이라고나 할까. 코네티컷의 부유한 마을 그리니치에 사는 브랜던 펠프스라는 소년이 찾아와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캣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브랜던의 엄마 데이나와 함께 떠났다는 남자가 바로 자신의 옛 연인 제프였다는 사실에 그녀는 경악한다. 이별의 정당한 통보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제프가 신원마저 감추고 지난 18년간을 살아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데이팅사이트에서 부유한 여인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가정에 주인공 캣은 당황스럽다.

 

스릴러 장르의 고수답게 할런 코벤 작가는 갖가지 장치들로 독자들의 호기심과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미싱 유>에서 극한까지 밀어 붙인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초반에 내러티브 좌판에 늘어놓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부터 시작해서 사라진 연인의 미스터리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는 아미시 농장의 타이터스란 미지의 인물에 대한 범죄행각 등은 절제된 미장센처럼 일관되게 매력적이다. 어쩌면 코벤은 소설의 영화화까지 고려한 게 아닐까. 이 정도 스토리라면 충분히 영화화되어서도 흥행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작가는 독자들이 바로 인지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보들을 제공해 주고는,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사실 이야기가 그렇게 진부하게 진행된다면 스릴러 소설 고유의 변별력이 가지는 재미가 반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수는 긴장감을 후반부까지 유지하는데 특별하게 공을 들이면서 역시 결말에서 기다리고 있는 과거의 사건을 일거에 뒤집는 ‘한방’을 대기시켜 두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에 대한 존재론적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왜 사람들은 일반적 만남이 아닌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에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접대면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서 자유롭고, 감정의 소모가 적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설에 나오는 타이터스 같은 악당에게 걸릴 수 있다는 위험을 작가는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다. 타인의 신원을 도용해서 감정을 다루는데 있어 서툰 이들을 유혹하는 범죄자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브랜던의 해킹도 엄마를 구하는 방편이라는 긍정적 시선으로 본다면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얼마든지 나쁜 방향으로도 전환이 가능하지 않은가. 어쩌면 작가는 세상만사는 그렇게 양지와 음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빨간 원숭이해의 첫 번째 달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할런 코벤의 스릴러 <미싱 유>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늦은 밤에 주로 읽느라 몸이 피곤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정말 다 읽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다. 리뷰를 쓰기 전에 존 웨이트의 <미싱 유>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는데, 32년이다 된 곡이지만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전했다. 할런 코벤의 신작이 올해 또 나온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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