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유 - <미 비포 유> 두 번째 이야기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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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분량이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분량에 조금 놀랐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고 보니 전혀 분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전작 <미 비포 유>를 읽지 않았다는 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의 18개월 전 삶이 너무 궁금해서 전작의 플롯 부분은 우리의 친절한 위키피디아 플롯 서머리를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루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주인공 루가 간호를 맡았던 윌은 자신의 바람대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았다. 문제는 루와 윌이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홀로 남은 루는 아직 윌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찌 보면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신데렐라를 든든하게 후원할 왕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남긴 유산으로 루가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 런던에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정도. 뭐 그 정도만 해도 소설의 전개상 충분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윌을 존엄사로 잃은 상실감과 공항의 아이리시 테마 펍에서 짧은 루렉스 스커트를 입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감당하던 루는 어느날 사고로 옥상에서 추락하게 된다. 그녀의 사연을 아는 모든 이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추슬러 직장에 컴백하지만 싸이코 같은 직상상사 리처드의 갈굼이 도를 더해가던 차, 느닷없이 나타난 한 명의 등장으로 루의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다시 격랑이 일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 죽은 윌 트레이너의 딸이란다. 소설의 전개상 릴리가 모범생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골초에 술이며 이름 모를 마약 그리고 나이트클럽에 밥 먹듯 드나다는 그런 문제아 중의 탑클래스 문제아다.

 

여전히 윌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루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새 출발 서클에도 나가 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영 탐탁지 않다. 그 모임을 계기로 해서 만나게 된 샘 필딩과 썸을 타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뉴욕에 있는 네이선의 조력으로 병간호 일자리에 지원하기도 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모님의 갈등도 루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 중의 하나다. 이렇게 스스로의 앞감당도 못하는 이십대 아가씨가 열여섯 살짜리 릴리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조조 모예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꼬인 인간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새출발한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어렵노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도 굵직하게 방점을 찍는다. 사랑을 사랑으로 극복하라는 말처럼 그렇게 만나게 된 루와 샘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디 사랑이라는 녀석이 순탄하기만 하던가. 오해와 불신으로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발목 잡는 과거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청춘들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단순하게 그런 로맨스의 감정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까지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최선의 것인가 끊임없이 되묻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란 말인가. 루에게는 윌과 함께 한 6개월이라는 시간이야말로 자아성찰의 계기이자, 진정한 자아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면 런던에서 샘과 릴리를 통해 얻은 건 또다른 레벨의 자아로 나아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실 위키피디아의 플롯 서머리만으로는 전작에 흐르는 전반적인 아우라를 잡아낼 수 없었다고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윌과의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별개의 이야기로 읽어도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는 충분히 핍진성 넘치는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구사하고 있다. 결말까지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가려고 이런 구성으로 내달리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라고나 할까. 지나친 스포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전작이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되었다면 이번 <애프터 유>는 상대적으로 희망찬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나 행복해라며 릴리에게 루가 보낸 문자야말로 루의 앞날을 예고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여주인공 루에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에 한 번 오기 힘든 기회들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설정과 윌의 딸로 등장한 릴리에 관한 부분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점 그리고 샘과의 재결합을 위해-어쩌면 나중에 영화화를 위해 준비되었을 지도 모르는- 충격적인 총격장면이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프터 유>가 넌픽션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간만에 긴장감 넘치는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원작자인 조조 모예스가 각색을 맡고 다음 주에 개봉 예정인 <미 비포 유>의 영화 트레일러를 봤는데, 에밀리아 클라크가 맡은 루 역은 정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트레일러 중에서 루가 윌의 휠체어에 타서 360도 회전하며 대화하는 장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윌이 루에게 그런 멋진 삶을 살도록 선물해 줬다면 <애프터 유>에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윌의 딸인 릴리를 위해 헌신하는 루의 진심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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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파지토리에서 설문조사하고 10% 쿠폰이 적용되나 안되나 테스트 해보다가 얼떨결에 그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사게 됐다. 맨부커상 받았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해서 누가 사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해서 하나 사야지 싶긴 했는데 이렇게 사게 될 줄이야. 맨부커상 수상소식을 들은 날 바로 주문을 했는데 이제야 도착했네 그래. 어쨌든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이 잘 팔린다고 하니 좋은 소식이긴 하다. 그것도 이즘에 새로 책을 낸 작가들의 타이밍 문제기도 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종의 기원>을 발표한 정유정 작가가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블로그 이웃님의 서평을 보면, 전작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평도 있으니 한 번 읽어 보고 싶기는 하다.

 

요즘 읽어야 하는 책들이 부쩍 늘어났다. 욕심에 이책저책 서평 신청을 하다 보니 책들이 우수수 떨어지는구나 그래. 오늘도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가 도착했다. 월요일에도 두 권이나 왔는데 <금연학교>는 이미 다 읽었고,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도 열심히 읽고 있다.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데 한 번 또 진도가 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쉭쉭 나가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창 잘 나갈 적에는 정말 마구잡이로 서평도서를 마구 신청했었는데 이젠 짬밥이 늘어서 그런지 선별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욕심이 날 때도 있지만 스케줄을 보고 신청하게 됐다.

 

그 외에도 다음달 달궁 독서모임 책인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도 발표가 나고 나서 냉큼 알라딘 헌책방에 가서 업어왔다. 오늘도 가서 절판된 로저 크롤리의 지중해 시리즈 사와야 하는데. 어제 보고서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살바도르 아옌데의 평전도 오늘 새벽까지 해서 40% 정도 읽었다. 모바일 독서기록장을 이용하니 아주 관리가 편하다. 이 평전의 저자 말대로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들은 대로 알고 있었지만, 삼대를 내려오는 칠레 명문가 금수저 집안의 자제로 의사이면서 뛰어난 사회주의자(아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정치가로 조국 칠레를 이상국가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다가 결국 사악한 기득권층과 결탁한 군부독재자들의 반란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을 접어야 하는 아옌데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최근에 7주기를 맞이한 비슷한 운명을 겪은 비운의 정치가의 환영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선거로도 얼마든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기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역사상 최초로 보여준 위대한 정치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애프터 유>도 분량이 상당한지라 밀릴 까봐 받아 들자 마자 몇 쪽을 읽었다. 나의 독서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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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학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5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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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청소년문학을 읽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심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흡연자가 미성년자라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금연학교>의 주인공 감성돈(감성돔이 아니다)은 올해 열여섯 살 먹은 방년의 청춘이다. 준영이라는 좋은 친구를 둔 덕분에 녀석은 흡연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무언가 자신에게 금지된 일을 할 때, 멋져 보이는 허상에 대한 신기루라고 해야 할까. 우리의 주인공 성돈이는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처럼 담배 맛도 모르면서 담배 피는 스타일과 폼에 현혹되어 주식투자하다가 그 좋은 직장도 그만 두고, 집까지 날려 먹어 월세방에 살며 택시운전과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게 된 아빠의 담배를 몰래 훔쳐 피운다. 이 시대 무능력한 가정의 표상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는 폭력적인 독재자의 모습으로 군림한다. 그 또한 오래 가지 못하겠지만.

 

뭐 이 정도까지는 순탄한 진행이다. 문제는 성돈이가 어느 비오는 날, 암만동 놀이터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의 품에서 담배를 슬쩍하는 장면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이거 놀라운데, 도대체 타이틀인 금연학교 이슈와 느닷없는 살인사건을 어떻게 반죽하겠다는 거지?

 

박현숙 작가는 흔히 청소년소설에 등장하는 빤한 교훈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실 그거야말로 꼰대들의 전매특허가 아닌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척하다가 뒤통수치는. 대신 작가는 요즘 십대 아이들이 느끼는 욕망의 저변을 가감 없이 훑는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욕이 빠지면 문장구성이 되지 않는 듯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그네들의 언어생활로부터 시작해서, 이미 구름과자(담배)맛을 알아 버린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우리 어른들도 문제가 풀리지 않거나, 속 답답할 때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맛있는 담배를 찾지 않는가. 물론 습관적으로 필 때도 많지만. 바로 그 지점에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나 아이나 고민의 차이와 정도가 있을 뿐, 다를 게 없노라고.

 

잘 나가던 성돈이의 아버지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원래부터 담배를 즐기는 골초였지만, 남부러운 대기업에 다니다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져 직업을 잃고 가산마저 탕진한 뒤에 택시 및 대리운전으로 생업을 유지하지만 모양 빠진다고 절대 택시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고 했던가. 자신의 주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절로 담배 생각이 날 것 같다. 물론 원인제공자는 본인이어서 더 답답하겠지만. 성돈이의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그라도 어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돈이와 준영이 같이 매일 같이 문제를 하나씩 펑펑 터뜨리는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담배가 아닐까. 성돈이와 준영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암만동 놀이터 사건에 본의 아니게(?) 연루된 주인공 성돈이와 서라 그리고 애연가 담임선생님까지 싸잡아서 금연학교로 전학 보낸다. 그 와중에 성돈이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준영이(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연초 경력이 자그마치 5년이나 된다)가 급성폐렴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현실을 보고, 아버지마저 컬럭컬럭하는 해소 기침을 달고 사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슬슬 자신의 폐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 설정 정말 쎄다. 하긴 이 정도로 상황을 몰고 가지 않으면,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게 씨가 먹힐 리도 없겠지만. 그 와중에 잠재워둔 미래에 대한 꿈을 슬쩍 비치는 건 역시 청소년소설다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친구 준영이와 눈물겨운 우정을 쌓아 가고 주인공 성돈이가 어떻게 해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그리는 분량에 비해 후반부 설정이 좀 아쉬웠다. 제목이 금연학교라면 무언가 금연학교에서 벌어지는 다량의 에피소드를 기대했는데 신나게 막 롤러코스터를 즐기려고 하는 차에 그만 ‘하차’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왜 금연을 해야 하느냐는 소설적 당위성을 위한 다양하면서도 재밌는 여러 장치에 비해 뒷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21세기 한국 청소년들이 느끼는 생각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이니 더 즐겁지 아니한가. 그래도 백해무익한 담배는 피지 말자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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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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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했을 때부터 기대한 책이었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신간 코너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냉큼 빌려왔다. 이미 누가 봤는지 책 접힌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당장 읽어야 할 책이 없어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김경욱 작가는 1982년 4월 26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에서 벌어진 이른바 우순경(우범곤)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터넷에 나와 있는 우순경 사건과 비교해 보니 주인공의 이름과 실제 지명들을 픽션화했다. 소설의 특이한 점은 가해자의 목소리 대신, 차례대로 등장하는 피해자들의 입장이라는 다양한 차원에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굴곡진 한국사의 이모저모를 대입시켰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기이하게도 소설은 1938년 미래 미군 제식소총 M1 카빈을 개발하게 되는 밀주업자 제이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김경욱 작가는 미국 체류 하던 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총기사건을 계기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던가. 기존의 윈체스터 라이플에서 가스압력으로 발사속도를 개량한 신형 총기 개발에 얽힌 스토리가 44년 뒤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총기난사사건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가정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 지명을 바꾼 궁지면 총기사건은 어려서부터 열패감에 사로잡힌 한 순경의 치정으로부터 시작됐다. 자칭 해병대 특등사수이자 빛나는 청와대 근무 이력을 가진 황 순경이 촌마을의 순경으로 발령이 나면서부터 비극은 잉태되었다. 혼례도 올리지 않은 채, 마을처녀와 살림을 차린 것부터 마을의 여론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술만 마시면 ‘미친 호랑이’가 되는 성정도 한몫 거들었다. 박봉의 월급에 촌구석에서 자신을 업신여긴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 순경, 아니 황 순경은 상급자가 마을을 비운 틈을 타서 지서 무기고에서 탈취한 카빈 소총과 수류탄 그리고 다량의 실탄으로 무장하고 끔찍한 사람사냥에 나선다.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를 비교해 보면 김경욱 작가는 사실에 충실히 기반한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황 순경은 술 마시고 홧김에 저질렀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계획으로 범행을 주도한다. 우선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우체국에 난입해서 직원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문제의 발단이었던 아내 손미자와 처식구들을 몰살시킨다. 그 뒤로도 황 순경은 불이 켜진 집들을 찾아다니며 범행을 계속한다. 김경욱 작가가 후기에서 썼듯이 빛이 어둠을 불러들인 격이라고 해야 할까. 주민의 치안을 담당해야 하는 경찰관이 어둠을 쫓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둠 그 자체였다는 사실은 당시 지배권력이었던 신군부의 모습과 자웅동체로 다가왔다.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접수하고 나서도 초동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자수를 늘린 치안 및 행정라인의 무능은 32년 뒤에도 그대로 반복됐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정권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어불성설의 정치적 구호인 정의구현을 외쳤지만, 실제 이런 희대의 사건이 발생하자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언론통제와 지역개발에 따른 물질적 보상이라는 당근으로 비극을 덮어 버렸다. 김경욱 작가는 그에 앞서 날벼락이 떨어진 궁지면에 조용하게 살던 이들이 안고 있는 우리사회 제반에 걸친 이슈들에 착점을 맞춘다.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시골전설을 믿고 삼대독자 아들을 법대생으로 만들었지만, 신학을 공부해서 신부가 되길 원하는 아들은 황 순경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만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의 아들을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초신 전투(장진호 전투)에서 잃은 수잔 여사와 펜팔을 우정을 쌓아 가던 전화교환원 손영희 역시 비명에 스러진다. 마구잡이로 벼락같은 불을 내뿜던 해병대 특등사수의 카빈 소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열패감에 젖은 이십대 청년의 분노는 그렇게 조용한 시골마을을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작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단지 일개 싸이코패스의 일탈적인 행동으로 분석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모든 문제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구조로 독자를 인도한다. 궁지면은 어쩌면 압축 고도성장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가 안은 부조리의 축소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한국전쟁 이후 남도를 휘젓던 마지막 빨치산 부대원 56명 전원 사살로 끝난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고, 제로센 전투기를 몰던 가미카제 특공대원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의 일원으로 변신해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토굴생활을 하던 전직 빨치산도 등장하고, 보도연맹원으로 무고하게 전쟁 중에 학살당한 후예로 숨죽이며 살던 이들의 한 맺힌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조국근대화라는 미명으로 월남전에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에이전트 오렌지’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잃은 ‘두팔로걸어’ 베테랑의 전설도 씁쓸하기만 하다. 비극의 현장과 역사적 담론을 오가며 종횡무진 달리던 작가는 강호의 초절정 고수 파천황을 창조한 무협지 대가 계룡생을 숭배하던 고교생의 이야기로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신군부의 3S 정책의 일환으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프로야구계에 진출하려던 초등학생 고동배의 이야기로 비극의 서사는 마무리가 된다.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김경욱 작가 특유의 눙치는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질곡으로 가득한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의식을 선사한다. 작가는 건국 이래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오히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차례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에게 소설적 핍진성을 부여해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계기를 제공해준 점을 무엇보다 높게 평가하고 싶다. 모쪼록 어둠 속에서 빛을 구도하는 그의 소설적 여로가 계속해서 빛을 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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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편애 - 전주부성 옛길의 기억
신귀백.김경미 지음 / 채륜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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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 :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함.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편애’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역사를 전공해서 전국 두메산골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전주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학교도 다 졸업하고 나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전주를 찾았다. 학창시절처럼 치열하게 사전에 공부를 하고 간 것도 아니고, 답사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찾은 전주는 참 기분을 좋게 해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봐야 토박이도 아니고 수박겉핥기 식의 유람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그 뒤에도 두 번 더 전주를 찾았는데 그 때마다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이번에 신귀백 김경미 씨가 펴낸 <전주편애>를 접하면서 지상으로 네 번째 여행을 나선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저자들은 호남의 소문난 예향이자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전주부성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우선 간략한 역사까지 곁들여서 전주가 조선왕조의 뿌리였고,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는 말처럼 요지 중의 요지였다는 설명들이 주르르 달린다. 여말 왜구의 침략으로 도성의 방비가 중시되어 수차례 중건되었으며, 동학운동 시절에는 폐정개혁을 요구하는 동학군의 집강소가 설치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전주부성의 모습은 18세기 전라감사였던 조현명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역사는 백성들의 노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동원을 최소화하는 치밀한 계획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이런 목민관이야말로 현재에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많은 역사가 있겠지만 어쨌든 한 마디로 말해 전주는 호남의 정치경제적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성의 곳곳이 헐리고 신작로와 철도가 들어오면서 객사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물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편리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옛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계속해서 묻게 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주가 지금은 영화제와 비보이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구술도 흥미롭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있는 역사를 품은 볼거리 뿐만 아니라 먹거리 또한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일 게다. 차이나타운은 개항장 인천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주에도 유명한 차이나거리가 있고, 화교학교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로 알게 됐다. 아직 맛을 보지 못한 전주 명물 ‘물짜장’에 대한 이야기도 절절히 이어지니, 다음번에 전주를 찾게 되면 예의 물짜장과 <일품향>의 만두도 꼭 먹어 보리라.

 

사실 전주하면 바로 연상되는 게 바로 한옥마을이지만, 저자들은 <전주편애>에서 한옥마을까지 아우르는 대신 사대문안 부성의 이모저모와 그 안에 살던 이들의 삶까지만을 다루고 있다. 전주 출신의 걸출한 야구선수인 김봉연과 어린왕자 김원형 그리고 박경완에 대한 스토리도 재밌게 들었다. 질옥, 다시 말해 돈감옥이라고 호칭하는 서민들의 금융기관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젠 모두 사라져 버린 전당포에 대한 추억도 아른하게 다가왔다. 전당포를 이용해 보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 곳곳에서 보이던 전당포의 추억을 되살리니 그 또한 별미가 아닌가. 세 번의 전주행에 앞서 <전주편애>를 읽었더라면 못미더운 블로그 대신에 아주 요긴하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고 갖가지 산해진미가 펼쳐진 사진과 막걸리 상상만 해도 절로 도는 군침에 절로 혀를 차게 된다.

 

전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들의 전주에 대한 사랑, 아니 편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나도 슬쩍 그 편애에 동승해 볼까 하는 얄팍한 꼼수에 문득 웃음이 났다. 이 책을 껴안고 네 번째로 전주에 가게 되면, 눈과 입이 얼마나 호사를 누리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옥의티]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것 하나 지적하고 싶다. 260쪽 ,영조가 아니라 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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