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로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증언문학의 대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오늘 이야기할 레비의 유이한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를 7년 전에 샀지만, 지금까지 소재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다시 레비를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용비어천가니 하는 기가 막힌 번역과 오탈자 때문에 제발 돌베개에서 이 책을 다시 번역해서 세상에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레비 30주기를 맞아 돌베개에서 바람대로 책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같은 절멸수용소 생존자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엘리 위젤이 시오니스트로서 걷고 있는 길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화해한 화학자이자 문학가였던 레비가 우울증 때문에 67세의 나이로 토리노에서 세상을 떠난지 3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홀로코스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청산 작업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해가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사회적 과제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작년에 오탈자 때문에 적잖은 짜증을 내면서 꾸역꾸역 읽어냈던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의 활약을 그린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재출간된 것을 열렬하게 환영한다. 예전에 쓴 리뷰를 읽어 보니, 너무 줄거리 파악에만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서 한 번 새로운 버전을 구해서 재독해 보는 것도 레비 30주기의 의미 있는 일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레비가 죽기 5년 전인 1982년에 발표된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 작품은 1978년 스트레가상에 빛나는 <몽키스패너>라고 한다. 이 책도 조만간 구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혹자들은 나치 치하에서 왜 유대인들이 무력저항을 하지 않았느냐는 그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레비는 그런 유대인들의 소극적 저항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지인이 실제로 들은 유대인 빨치산의 무장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던 전쟁 중에는 몰랐지만, 스탈린의 적군이 결국 나치를 패망시킨 뒤에는 유대인들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필연적으로 경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무리 나치가 연합군에게 패퇴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하지만, 파리해방전이나 전쟁 말기에 바르샤바 봉기에서 그들이 보여준 실력을 보면 실제로 있었던 유대인 빨치산 활동이 과연 얼마나 전쟁의 대세에 영향을 미쳤을 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좋은 세상이다. 이제는 인터넷 억세스만 있다면 유투브 동영상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문득 유투브로 프리모 레비의 동영상을 찾아 봤고, 1982년엔가 프리모 레비가 직접 출연한 <아우슈비츠로의 귀환(Back to Auschwitz)>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가 있었다. 조국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 땅인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로 가면서 그 시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레이터와 나누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은 화학자로 냄새로 주변환경을 분석할 수 있다고 했던가. 이탈리아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보리 냄새와 불타는 석탄 냄새를 잊을 수 없노라고 말했다. 나치 치하의 폴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던지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욕설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고 한다. 고급 호텔에 편안하게 기차여행을 하던 현재와 달리 40년 전에는 가축들이나 싣는 그런 화차에 실려 라거(수용소)로 향했다. 포졸리 역에서 기차에 탄 그들은 아우슈비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며, 처음에는 보헤미아에 있는 아우스터리츠로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떤 잔혹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점령군들이 가축 내몰듯 화차에 실어 보낸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밤에 도착했다고 진술하는데, 끔찍한 5일 간의 여행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죽었고, 그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하긴 곧 죽을 존재들에게 그런 설명이 왜 필요했겠는가.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들은 식량이나 물을 준비하지 못했고, 아기(밤비노)는 먹을 것이 없어 젖이 떨어진 어머니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보채면서 울었단다. 그리고 함께 이송된 650명 중에 4/5가 바로 다음날 가스처형실에서 죽었다고 그는 증언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중이던 1944년 2월, 패색이 짙어가던 가운데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해 총동원 시스템에 돌입했던 독일 3제국은 만성적 노동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에 유대인 라거의 공짜 노동력은 그들에게 소중한 자원이었다. 유대인 이송열차가 도착하면, 나치 의사들이 수감자들의 건강상태와 교육 정도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필요한 인력 자원들을 분류해냈다. 파두아에서 온 레비의 친구는 이미 모든 희망을 포기한 듯, 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두 번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화학자였던 레비는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이게파르벤 트러스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라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충분한 칼로리였는데, 수용소에서 공급하는 1,600~1,700칼로리로는 폴란드의 강추위와 고된 노동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레비는 말한다. 수용소 음식이 역겨웠다는 다른 이들의 증언과는 달리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어쩌면 나라면 절대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죽음의 수용소를 다시 찾은 레비는 강철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자살로 마감한 그의 삶을 되돌아 볼 때, 그지없이 허망해 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책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레비의 다큐멘터리로 이야기가 옮겨갔는지 모르겠다. 자 다음으로 이번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짝으로 출간된 <릴리트> 이야기를 넘어가 보자. 오늘 수중에 넣은 <릴리트>에는 모두 36편의 산문에 가까운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레비의 소설집 <릴리트>는 <가까운 과거>, <가까운 미래> 그리고 <현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1981년에 발표된 <Lilìt e altri racconti>를 바탕으로 해서 2부와 3부가 추가된 구성이다. 아마존 서지목록을 검색해 보니 영어판으로는 <Moments of Reprieve>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모두 15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 있었다.

 

급한 마음에 처음의 세 꼭지를 읽었는데, 영문판에서는 <라포포트의 유언>으로 된 제목이 국내판에서는 <카파네우스>로 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거의 영문판 제목과 비슷한 것 같다. 제목을 대조해 보니 영문판 중에 11편이 <가까운 과거>에 담겨 있고, 나머지 4편은 제외된 것 같다.

 

다른 레비의 작품들이 긴 호흡으로 간다면,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릴리트>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레비의 증언문학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아주 적합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고한 작가의 작품이라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렇던가. 내쳐 달려서 단박에 모두 읽어 버릴 지도 모르겠다. 요즘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레비의 책으로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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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4-27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나이얼,이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홀로코스트를 완전 부정하는 사람과 그걸 증명하려는 측의 법정 싸움이 지난하게 이어지고 결국 승리는 하지만 부인하는 측은 또다른 주장을 끊임없이 펴는 것으로 맺더군요.

레삭매냐 2017-04-27 22:56   좋아요 0 | URL
세월호의 경우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
하려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 트레일러를 보았는데,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가져
오라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은 위안부
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의 그것과
공명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디나이얼> 꼭 보겠습니다.

cyrus 2017-04-2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돌베개! 절판된 책을 다시 펴낼 줄 알았어요. ^^

레삭매냐 2017-04-27 23:48   좋아요 0 | URL
거의 귀신 같은 예지력이셨습니다 !
드디어 다시 나왔네요.

전 우선 <릴리트>부터 사서 보고 있는데
기대만큼 재밌네요.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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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최고의 책으로 추천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미국 출신 로런 그로프의 세 번째 작품 <운명과 분노>는 확실히 재밌는 책이었다. 인류의 삶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결혼과 사랑이라는 테마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다. 먼저 소설의 남자 주인공 랜슬럿 ‘로토’ 새터화이트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운명> 그리고 더 놀라운 삶의 비밀을 감춘 마틸드 ‘오렐리’ 요더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분노>를 읽어 보니 여러 매체에서 이구동성으로 빼어난 작품이라는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운명>부터 살펴 보자. 플로리다 출신 로토 새터화이트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다. 물론 그를 그렇게 만든 배경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어공주 출신 엄마 앤트워넷이 있다. 앞으로 수십년간 우정을 이어나갈 절친 콜리의 쌍둥이 그웨니와 관계하면서 남자가 된 로토는 불의의 사고로 따뜻한 집에서 쫓겨나 북부의 사립학교에서 성장하면서 특유의 매력을 발휘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된다. 학교에서 엽색가를 지칭하는 ‘호그마이스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력남이었던 로토는 22살 때 운명의 여자 마틸드 요더를 만나면서 180도 다른 남자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아, 그리고 보니 소설의 시작은 이제 막 결혼한 로토, 마틸드 커플이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던가. 그리고 보니 결혼한 부부의 생활에 방점을 찍으면서 호그마이스터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섹스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로토와 마틸드는 그야말로 섹스가 없다면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처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랑에 전념하는 그런 커플이었다. 문제는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매정한 엄마 앤트워넷의 절연선언이었다. 며느리의 과거를 알게 된 앤트워넷은 경제적 지원을 끊고, 무명의 희곡 배우를 전전하던 로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하고, 좌절의 시기를 경험한다. 우연한 기회에 희곡 작가로서 재능을 발견한 로토 마틸드 부부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그런 저런 삶을 이어가던 가던 어느 날, 로토는 마틸드의 과거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아름답고 순수했던 청년 로토에서 24년간의 결혼생활을 겪은 중년남자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 ‘사자’ 같이 희곡 작가로서 성공을 질주하던 남자 로토의 추락은 부부가 같이 떠난 어느 대담에서부터 잉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해 가며 남편을 보필한 아내 마틸드에 대한 로토의 사려깊지 못한 발언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며 그들이 묵던 호텔로 돌아온 장면에 대한 묘사는 비록 사랑하는 사이지만 언제고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지도 모를 그런 갈등의 파고가 수면 아래 잠자고 있다는 그런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로토의 죽음 다음 시간을 다루고 있는 ‘드래곤 와이프’ 마틸드의 <분노> 편에서는 로토가 정작 아내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게 전무했다는 점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고향 프랑스에서 끔찍한 사고로 부모에게 버림 받은 오렐리가 파리에서 매춘부 할머니와 보낸 시간 그리고 다시 할머니의 죽음 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범죄자로 추정되는 삼촌에게 보내져 미국 사람으로 거듭나고, 대학진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에어리얼 잉글리시라는 미술품 거래상과 장장 4년에 걸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했다는 아무도 모르는 그런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소설에 대한 나의 흥미가 비로소 안착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로런 그로프 작가는 이렇게 흥미진진한 후식을 준비하기 위해 어쩌면 별다를 것 없는 희곡 작가의 삶을 전면에 배치했던 게 아닐까. 어머니의 후광으로 세상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남자 로토의 이야기에 비해, 마틸드의 파란만장하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전개는 상대적으로 스펙터클하지 않은가 말이다. 책날개에 적힌 대로 작가가 준비한 ‘폭발적인 서사’가 독자의 시선을 사로 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강렬했다. 물론 마틸드가 감춰온 삶의 진실들이 한 꺼풀씩 베일을 벗고 독자 앞에 등장할 때마나 예의 폭발적 서사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정교한 스토리텔링은 또 어떤가.

 

마틸드와 앤트워넷이 로토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암투는 우리네 흔한 막장드라마에 등장하는 고부갈등과는 다른 차원의 서사를 선사하기도 한다. 마틸드의 과거를 아는 앤트워넷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마틸드를 압박하고, 어려서부터 가족의 진정한 사랑이라곤 받지 못한 쌈닭 마틸드 역시 시어머니와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에 대한 앤트워넷의 사랑을 잘 아는 마틸드는 갖은 핑계를 대면서, 모자의 상봉을 저지한다. 시어머니 역시 아들에게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실체를 까발리기 위해 갖은 뒷조사를 마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최후의 승리자는 불굴의 투사 드래곤 와이프였다. 작가가 준비한 두 가지 비장의 무기가 과연 마틸드가 승자였는지 되묻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같은 남자로서 셰익스피어와 세상의 모든 여자들 중에서 마틸드를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남자 로토가 불쌍했다. 아름답고 순수했던 로토는 15년 동안 자신의 작품에 대해 혹평을 주저하지 않았던 평론가 피비 델마의 냉혹한 비평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자식이 없음을 한탄했지만, 사랑하는 아내 마틸드가 낙태를 하고 불임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썼다고 생각하는 희곡 작품들 역시 사실은 아내 마틸드와의 공동 작업의 결실이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그런 철부지 남편이 아니었던가. 역설적으로 마틸드 역시 로토가 언제라도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피장파장이라고 해야 할까.

 

로런 그로프의 걸작 <운명과 분노>는 우리가 완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결혼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물론 빼어난 재능을 가진 새로운 작가와 만나는 재미는 덤으로 따라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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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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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루이스 세풀베다의 <감상적 킬러의 고백>을 다시 사서 읽었다. 아무리 중고책이라고 하지만 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하다니. 물론 가격으로 책의 가치를 매길 순 없겠지만 말이다. 세풀베다 작가의 팬이 되게 된 계기를 제공했던 책이어서 그런지 무척이 애정이 갔다. 물론 지금은 절판돼서 구하고 싶어도 중고서점 말고도 구할 수가 없다. 8년 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산 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이번에 다시 사서 읽게 됐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동명의 제목과 <악어>(야카레)라는 두 편의 중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오래 전에 읽었을 적에는 분면 전자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읽을 적에는 <악어>에 더 호감이 갔다. 어쨌든 순서상 전자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금년 42세의 업계의 솜씨 좋은 킬러는 맡은 임무를 성실하게 처리하는 실력으로 세금도 떼지 않는 고소득자 대열에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그리고 유럽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오늘도 상위 1%에 육박하는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난 왜 다른 것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킬러의 말에 그렇게 공감이 갔던 걸까.

 

어쨌든 직업상 한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남자는 24살 먹은 자신의 “계집애”에게 헌신적이다. 성적이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녀를 위해 부르주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급 아파트를 구입해서 크고 작은 파티를 열었다나. 모든 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중년 킬러의 앞길에 장애가 하나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 받은 미션에 등장하는 표적이었다. 무슨 NGO단체에서 일하는 표적을 제거하는 일거리였다. 동물적 감각을 지닌 킬러는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결국 이 일에 얽혀 그만 조기은퇴를 당할 신세가 되었다. 자신의 계집애는 결국 바람이 나고 말았고, 일거리는 꼬이고 심지어 표적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니. 마드리드에서 이스탄불로 남아가 일처리에 나서지만 미합중국 마약 단속반(DEA)까지 등장하는 원하지 않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파리의 아지트에 도착했지만 자신의 계집애가 여전히 멕시코에서 놈팡이와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에 킬러는 분노한다. 자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창녀들과 놀아나면서 젊은 아가씨의 바람에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참으로 우습기까지 했다.

 

결국 멕시코시티에 표적이었던 NGO 인사를 찾아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고 은퇴하는데 성공하는 킬러. 더 놀라운 엔딩을 위해 세풀베다 작가가 준비한 파이널컷은 확실히 대가의 솜씨다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이 1940년대 미국 누아르 영화적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악어>(야카레)는 작가의 친환경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 잡은 비토리오 피혁 회사와 아마존 강 유역에 사는 아나레 족이 어떻게 연관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가 더 이상 저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화된 마당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절실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태고이래 아나레 족 삶의 기반이었던 야카레(악어)가 서구 자본주의자들에게 큰 돈벌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계적 희귀종으로 보호되어야 할 인류 공동의 유산인 아나레 족의 야카레에 눈독을 들인 비토리오 피혁 회사는 거의 공짜로 원자재인 악어가죽을 밀수한 다음, 높은 이윤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궁리만 할 따름이다. 야카레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나레 족의 생존 따위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밀렵꾼을 동원해서 가차 없이 몰살시킬 정도니 말이다.

 

칠레 경찰 출신 다니 콘트레라스는 스위스의 헬베티카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밀라노에 파견되어 비토리오 브루니의 죽음이 그전에 있었던 다른 두 명의 죽음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회사가 아마존 정글에서 저지르는 추악한 범죄에 가까운 사업을 막기 위해 아나레 인디오 전사들을 동원해서 독침으로 근육을 마비시키는 방법으로 암살에 나섰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거악을 일소하기 위해 공적인 영역에서의 처벌 대신 사적 처벌이라는 신속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돈 비토리오의 딸 오르넬라로 대변되는 가진 부르주아 계급의 한계성을 엿볼 수도 있었다. 끝까지 사적 응징의 도구로 아나레 인디오 사냥꾼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안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서구인들, 다른 표현으로는 헤아슈마레(물을 증오하는 사람들)가 가진 이중성을 세풀베다는 가감 없이 고발한다.

 

소설에서 힘없는 아나레 부족에 대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병폐의 칼날이 언제라도 우리를 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세풀베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학적 경고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 보호나 종 보전 같은 이슈들이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바탕이 되는 지구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외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차별적 난개발로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종 다양성에도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의 경고가 있었지만 삶의 편리로 포장된 우리 인류의 이기주의에 묻히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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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출판사는 인지도가 낮지만 문학적 우수성이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잘 소개해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단점은 그런 작가의 작품들이 소수의 마니아층 독자들만 읽고,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품절, 절판되는 경우가 많아요.

레삭매냐 2017-04-21 10:06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정도면 메이저급이 아닌가요? ㅋㅋ

출판사가 전반적으로 번역서 위주로 가는
느낌입니다.

말씀 하신 대로 다른 출판사에 비해 품절/절판
비율이 높긴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잘 팔
리지 않으면 바로 절판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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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의 끝자락이었던 2월에는 중국 작가들의 책에 꽂혀 한동아 정신없이 그들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주로 옌롄커와 류전윈 작가의 책들이었는데 문혁 시절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어두운 중국사를 엿볼 수가 있었다. 이번에 읽은 자칭 ‘야생 작가’이자 중국의 신세대격인 바링허우 세대 다빙 작가의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는 기존 중국 작가들이 구사하는 엄숙한 시대상을 다룬 소설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기성 작가들이 고난으로 가득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문제의식으로 삼았다면, 산둥 미술학원 출신으로 리장 주점의 주인장이자 배낭여행가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바링허우 세대 다빙 작가는 실화소설이라는 장르로 독자의 마음을 폭격한다.

 

모두 다섯 편의 실화소설이 담긴 소설집 가운데 역시 타이틀로 선정된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부터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무협지 수준의 일대 활극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기대감부터 들었다. 하지만 내용은 다빙 작가가 서슴지 않고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희소라는 남자는 게이다. 자신이 무명이었던 시절부터 돌봐준 상남자 스타일의 희소의 커미아웃에 다빙은 그만 망연자실하고 만다. 희소가 게이라니. 그의 도움을 받아 문인의 길을 걷게 된 다빙이 인세를 받아 절친의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된 순간, 역설적이게도 강호의 도가 떨어졌노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하기 위해서 두 번씩이나 결혼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형제를 위해 싸아니 다빙은 결혼식 사회를 봐주겠노라고 약속했다지. 소설을 쓰기 위해 강호를 주유하면서 정작 자신을 형제라고 생각하는 친구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회의와 반성 등이 이어진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형제를 돕는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그는 따뜻한 닭고기 수프보다 쓰디쓴 탕국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했던가.

 

중국 인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골 출신으로 시인이 되겠다는 라오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유랑가수로 그 넓디넓은 대륙이라는 이름의 강호를 누비며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남자의 이야기에 그만 뻑이 가버렸다.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내어주는 이타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 남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 이식된 천민자본주의로 하루가 다르게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언젠가 시집을 발표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유랑하는 싸나이 라오셰의 이야기 또한 비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화소설이라고 해도 감동이고, 군바리라는 동명의 이름을 다빙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감동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오, 이 작가 제법 글 좀 쓸 줄 아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이야기는 <은방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모처에서 은세공 장인의 도제가 되어 은세공품을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였던가. 잘 나가는 산둥 미술학원 출신의 미술지망생이 어찌 멋진 은세공품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인가 하는 자만심에 도전한 은방울 만들기는 처참한 결말을 불러온다. 싸부님은 제대로 가르쳐 주려고 하시지 않고, 한 번 보고 만들라고 하셨던가.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같은 싸부님 휘하에 있던 사저의 이야기였다. 남성판 피그말리온이라고나 할까. 어려서부터 짝사랑하던 남자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결국 바보 온달이를 장군 온달이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직장에서 찌질이 남친을 보필해서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 사저의 첫사랑은 비극으로 귀결된다. 그는 항성이었고, 그녀는 그의 주변을 도는 이름 없는 소행성이라고 했던가. <은방울>은 누가 봐도 뻔한 신파조의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지만, 그만큼 재밌었고 결말에서는 찡한 감동이 전해져왔다. 다빙이 만든 은방울을 걸고 있던 소년과 만나는 씬은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장면이었다.

 

<은방울>에서 정점을 찍어서일까? 나머지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했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동굴잠수를 하다가 죽은 생명의 은인이었던 다이버에 대한 추모, 그래서 삶에서 모험을 즐기는 건 좋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제일 중요하다는 강조하는 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평범한 건축가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멀리 뉴질랜드로 워홀러가 되어 떠나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게 된 S씨 이야기. 문득 퀸스타운이라는 곳에서 거리예술가로 거듭난 S씨가 어떤 나라 말로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보스턴에서 일본말로 노래를 부르던 일본 아가씨와 밴드에게 영어로 노래를 부르라고 핀잔을 주던 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 어쨌든 정해진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을 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삶은 도대체 무엇일까?

 

다빙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별별 이야기가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그런 이야기 사냥에 나설 다빙과 수많은 청춘들의 삶의 이야기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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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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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번에 읽은 자크 파월의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는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진작에 이런 책이 출간되지 않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프레시안에 연재되던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역작일 줄은 미처 몰랐다. 전쟁국가 미국의 세기를 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실체를 수정주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파헤친 자크 파월 작가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아서 타임라이프에서 나온 방대한 분량의 <World War II> 시리즈를 헌책방에서 사 모으면서 전쟁의 세부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시적인 측면에서 독일 나치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해서 자유와 정의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미국의 참전이 사실은 미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배계급과 파워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독일 파시스트들과 전쟁에 돌입하기 전까지 미국 재계와 파워엘리트들은 동방의 대적 스탈린의 소비에트야말로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하는 숙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자유무역의 세계화라는 테제를 통해 ‘더러운 30년대’로부터 탈출을 도모했던 미국 파워엘리트들에게 서유럽에서 벌어진 전격전 그리고 소비에트를 상대로 한 나치 독일의 독소전은 전쟁물자 수요를 충족시켜줄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시즘에 경도되어 있던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엉뚱하게도 태평양에서 경쟁국이던 일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중국 철군과 전쟁수행에 꼭 필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금수 조치로 결국 진주만 기습을 실행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원하던 태평양에서의 패권수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유럽전쟁은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비에트가 서로 물고 뜯으면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전쟁물자들을 캐시앤캐리 그리고 렌드리스라 명명된 방식으로 소진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재계와 파워엘리트들이 원하는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자크 파월은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전쟁물자도 독일에 진출한 다양한 미국 기업들의 자회사들의 자발적 협력으로 양산하기에 이르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했던 석유 제품들로 구성된 연료를 공급했던 록펠러 그룹 스탠더드 오일의 활약이야말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스페인을 장악한 또다른 파시스트 프랑코와 프랑스 비시 정부를 통해 유입된 석유 연료와 석탄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합성연료 기술이야말로 나치 독일이 전격전으로 폴란드와 서유럽을 단기간에 석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스탈린의 소비에트는 1941년 6월 22일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앞세운 나치가 동방의 숙적을 상대로 전격전을 개시하면서 수도 모스크바 함락을 가시화되기도 했지만 결국 12월 5일 주코프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파죽지세의 독일군을 저지한 사건이야말로 세계대전의 극적인 반환점이었다고 자크 파월은 주장한다. 보통 1942년 여름의 청색작전이라 불린 독일군의 하계공세를 스탈린그라드에서 막아낸 것이 전세의 승부를 갈랐다고 하지만, 실제는 1941년 12월의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히틀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분쇄한 것이 전쟁의 흐름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이 조기에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히틀러 군대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아울러 스탈린은 300만에 달하는 독일 정예군을 상대하면서 미영 동맹군에게 조속한 시일 내에 서유럽에서 제2전선을 열어 달라는 SOS를 끊임없이 보냈지만, 영국의 노회한 제국주의자 윈스턴 처칠은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면서 전쟁의 대부분을 소비에트가 담당하게 내버려두었다. 마지못해 실행한 디에프 공략전의 실패는 서유럽 제2전선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선전에 매우 주요했다. 당시 전사자의 대부분이 나다군이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서방에서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개된 제2전선이 2차 세계대전 승리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선전해 왔지만 그 시기에 이미 독일의 패전은 기정사실이었고 소비에트는 서유럽에서 지분 경쟁을 위해 상륙한 미영연합군의 의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 다된 밥상에 숟가락을 얻겠다고 덤벼드는 서방 동맹군들의 모습을 경멸했을 지도 모르겠다. 미영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교두보를 장악하고 서진을 개시했지만, 노련한 독일군의 매복전술에 걸려 진격이 지지부진 하던 가운데,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동맹국 소비에트에 어쩔 수 없이 SOS를 날린다. 무시무시한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한 붉은 군대는 서방으로 단숨에 600KM 이상 진격을 감행하면서, 히틀러의 본진인 베를린 함락을 목전에 두게 된다. 아마 이 즈음해서 마켓가든 작전이라는 무모한 작전으로 단박에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고 라인강을 건너겠다는 서방 연합군의 시도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고, 1944년 겨울에 폰 룬트슈테트가 전개한 벌지전투로 독일 본토 진공은 더욱 요원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종전이 다가오면서 전후 세계질서 재편에 대한 경쟁이 대두되었다. 사실 스탈린의 소련이 유럽에서 전쟁의 대부분을 감당했기 때문에 뒤늦은 제2전선으로 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할 말이 없었다. 다양한 차원의 유화책으로 스탈린을 달래고, 심지어 나치 독일과 개별협상을 통해 반소비에트 십자군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엿보이면서 서유럽 각국의 전후체제에 대한 설계가 시도되고 있었다. 스탈린은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승전국으로서, 제정러시아 시대 폴란드에게 잃은 영토의 실지회복, 주변국가에 반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면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양보할 의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해방시킨 미국과 영국이 해방 과정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을 보인 빨치산과 좌파 계열 게릴라들의 새로운 정부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수구반동적인 바돌리오 원수 내각을 출범시키는 것을 보면서 스탈린은 자신들이 해방시킨 지역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 시스템을 이식한다는 전범을 따르게 된다. 그 결과 동유럽에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줄지어 탄생하고, 이른바 철의 장막 탄생의 원인이 되었다.

 

한편, 1945년 2월 드레스덴 대폭격은 무서운 속도로 베를린을 향해 돌진해 오던 붉은 군대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도저히 붉은 군대의 서진을 따라 잡을 수 없었던 미영 연합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았던 드레스덴을 표적으로 삼아 스탈린의 붉은 군대에게 신경질적인 경고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공군을 동원한 전략폭격이 과연 붉은 군대에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무고하게 죽은 20만 명에 달한다는 드레스덴의 시민들만 억울할 따름이다. 전략적 목표보다 정치적 의도에서 실시한 이 인간도살은 커트 보네거트의 그 유명한 소설 <제5도살장>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등장한 트루먼의 원자외교 역시 이런 정치적 목적에서 봐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스탈린이 유럽에서 제2전선을 요청했자면, 태평양전쟁을 거의 홀로 치른 미국 역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는 대로 극동아시아에서 스탈린이 일본을 상대로 제2전선을 열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1945년 여름 일본에서의 본토 결전을 앞두고 100만 명의 사상자가 예상된다는 전쟁성의 보고에 경악한 미국 전쟁지도부가 조속한 종전을 위해 원자폭탄의 사용을 결정했다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지만, 이 또한 스탈린에 대한 경고장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종전을 원했다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같은 이류도시보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표적으로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탈린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 싫었던 미국의 전쟁지도부들은 서둘러서 원폭에 나섰지만, 만주에서 붉은 군대가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던 존재인 관동군을 격파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스탈린의 군대가 미국이 고군분투한 태평양전쟁 말기에 생색만 내고, 제정러시아 시대 잃었던 영토인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강탈해 갔다는 미국의 주장은 서유럽의 전후처리 과정을 볼 때, 그 어떤 일관성이나 합리성도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기존 역사학의 전통적인 해석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 이 기념비적인 저작의 후반부는 독일 파시스트들과 결탁해서 거의 반역에 가까운 행위를 저지른 미국 기업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파워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지국가 대신 전쟁국가의 길을 선택한 역사적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마호그가 펀치카드 같은 신기술을 이용해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관리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포드의 자회사인 포드-베르케와 제네럴모터스의 자회사인 오펠이 미군과 싸울 나치 독일군을 실어 나를 수많은 수송용 트럭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기존 주류 역사가들을 지금까지 외면해 왔다는 자크 파월의 주장이 과연 “좋은 전쟁”이라고 포장된 2차 세계대전의 추악한 진실에 조금 다가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 미국 기업들에게 자국의 병사들에게 치명적인 해가 될 수도 있는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모럴 이슈(moral issue)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바로 이윤이었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데 사용한 치클론 B 독가스를 생산한 이게파르벤 관계자들에 대한 엄정한 대한 처벌이 이뤄졌는가? 치열하게 전쟁이 치러지는 와중에서도 독일내 미국 자회사들에 대한 피해는 경미했으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생산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현상유지를 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러운 30년대 과잉생산으로 몰락할 뻔 했던,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영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수요를 찾아 가까스로 체제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전쟁 시기에 동맹국이었던 소비에트의 전범을 찾아 미국 시민들이 공정한 부의 사회분배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파워엘리트의 근심 걱정은 폭발할 수준에 도달했다. 1917년 10월혁명 이래, 전세계에서 인민민주주의 볼셰비키 박멸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미국 주류계급에게 노동계급의 각성이야말로 가장 반갑지 않은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래서 독일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은 기존의 강력한 동맹국인 소련을 주적으로 삼아 열전(hot war) 대신 냉전(cold war)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좋은 전쟁’이 파워엘리트 계급과 노동자 시민계급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면, 냉전은 철저하게 파워엘리트 계급에게만 좋은 그런 전쟁이었다. 소비에트를 파멸에 몰아넣기 위해 평화, 복지국가 대신 군사적 케인스주의를 선택해서 미국은 전쟁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비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기에 이르렀고 기업들이 부담해야할 세금을 일반 시민들이 부담하게 되고,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지도자들의 복지시스템에 대한 사악한 공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절대 빈곤층이 자그마치 14%에 달하는 역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자크 파월은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후에도 사담 후세인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같은 꼬마 악당들을 양산해서 전쟁국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냉전시대 같은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어릿광대 같이 천방지축으로 좌충우돌하는 지금의 대통령을 보면서, 미국 시민들은 어쩌면 자신들을 지배하는 파워엘리트의 실체를 보고, 그 어느 때보다 자각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크 파월의 기념비적인 저작을 보면서 아무래도 랑케 실증사학으로 훈련된 덕분인지 저자가 인용한 상당 부분이 전언이나 혹은 가설이라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저자가 다루고 있는 상당 부분이 역사서에 남길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좋은 전쟁 기간 동안, 미국 다국적기업 산하 독일 자회사들이 나치 독일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전쟁물자를 생산해서 엄청난 수익을 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겠는가. 설사 그런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도, 파기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미국 대기업들이 전시에 ‘이전 가격 조작’으로 대표되는 회계 트릭을 이용해서 정당한 세금납부를 회피하는 교묘한 전략을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전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사업을 벌여 천문학적 수익을 내면서도 모국에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가 이미 좋은 전쟁 시절부터 있어왔다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자크 파월이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 다룬 좋은 전쟁이 누구에게 좋은 것이었나라는 대주제를 비롯해서, 전쟁을 통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 소비에트와의 무제한 군비경쟁, 반역행위에 가까운 협력을 저질렀던 미국대기업들의 독일내 자회사들에 대한 고발 그리고 복지국가가 아닌 전쟁국가의 길을 걷게 된 미국 파워엘리트 계급의 실체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 체계에 일대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역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

 

[뱀다리] 다 좋았는데 몇몇 지명에 대한 오기, 주요 인물의 잘못된 생몰연도 그리고 눈에 띄는 오탈자가 눈에 걸렸다. 요즘처럼 인터넷 백과사전이 발달한 시기에 영문 위키피디아 한 번만 돌려봐도 바로 알 수 있는데 아쉬웠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좋은 책의 완성도에 오탈자 때문에 흠이 가면 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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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ooks 2017-04-1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 님, 오월의봄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주시고 공들여 리뷰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명 표기 등 오류가 몇 군데 있나 보네요. ㅜㅜ 혹시 그 부분들을 보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maybook05@naver.com 선물도 드릴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레삭매냐 2017-04-19 09:10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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