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운명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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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가진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책 <지혜와 운명>을 읽었다. 우리에게는 <파랑새>의 작가로 더 알려졌다고 하는데, 사실 나이를 먹다 보니 <파랑새>의 내용이 뭔지 기억이 다 가물가물해졌다. <지혜와 운명>은 달랑 200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의 책이라 금세 다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가 악전고투를 경험했다. 아포리즘, 그러니까 작가가 구사하는 잠언류의 단백한 문장은 읽어도 뜻이 바로 와 닿지 않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너무 어려워, 그럴 적마다 다빙 작가의 책으로 심신을 달래곤 했다. 개인적으로 눈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는 책이야말로 최고의 책이라는 생각을 가져왔었는데, 이번에 마테를링크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쉽게 읽히지 않는 책도 나의 개인적 수양을 위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판 잠언 <지혜와 운명>은 정말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글이라고나 할까. 제목으로도 달았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바로 ‘광활한 삶의 진실 가운데 끊임없이 사랑하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삶에 진실에 도달하는 특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성찰, 행복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런 조언들을 담뿍 책에 담아냈다.

 

어느 특정한 사안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과 사유를 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책을 쓰는 이들이 추구하는 꿈이 아닐까. 먼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타적 자기희생에 기반한 나의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의 선행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살면서 그것이 얼마나 헛된 소망이라는 것을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보답을 구하지 않는 선행이란 과연 불가능한 걸까라는 자문에 도달하기도 했다.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최소한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지 않았던가. 한발 더 나간다면,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의인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 사람은 내면의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는 마테를링크의 말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다양한 채널로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담보할 거라고 교육받아 오지 않았던가.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위한 소비야말로 우리 내면에 도사린 적이 아닐까. 개인적 고백을 하자면, 매주 로또를 산다. 언젠간 나에게도 물질적 대박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심리로 매주 5천원씩을 소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는 나의 그런 행동이 허황된 행복 추구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또 어디서는 자연의 유일한 관심사는 균형이라고 했는데, 시류에 맞춰 우리나라 정치판에 도입해 보면 좌우 날개로 나는 새가 아니라 언제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오른쪽으로 뒤뚱거리던 펭귄이 오랜 만에 밸런스를 잡은 셈이라고나 할까. 정권 교체가 된지 며칠이 되었다고 벌써부터 개혁에 대한 저항의 조짐을 보이는 수구언론의 모습에서 행복할 수 없는 뿌리인 오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선 모름지기 심오한 차원의 사색과 사유가 필요한 법인데 과연 나와는 다른 그들을 포함한 우리에게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어둠이 있기 때문에, 찬란한 빛의 순간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닐까. 물론 그러기 위해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들의 노고가 필요했지만 말이다.


 



마테를링크는 <지혜와 운명>에서 생각하고 사유하는 인간이 지닌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부족함을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방통행적 사랑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사랑을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발현할 수 있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무슨 대답을 하게 될까. 그에 따르면 지혜로운 사람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을 추구한다고 한다. 다만, 욕망을 순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던가. 무협지에 등장하는 고수들이 무리해서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지혜로운 이들은 각성의 기회를 갖기에 욕망 자체에 매몰되지 않을 거라는 그의 말이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욕망을 순화하고, 각성해서 합리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삶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삶의 순간마다 느끼는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빠트리지 않는다. 오늘 내가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어제 회사에서 허리를 삐끗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아주 거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행복하다. 오늘 두 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이렇게 책 읽고 난 뒤에 감상을 적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사유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더 행복하다. 나의 이 부족한 글에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이고, 거창한 영웅이 되기보다 경청과 묵상 그리고 침묵이라는 행동을 통해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으니 만족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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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랑새》를 읽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그 작품이 유명한 사실만 알고 있어요. ^^

레삭매냐 2017-05-15 20:34   좋아요 0 | URL
전 <파랑새>가 그저 동화일 거라고 생각
했는데, 원전은 희곡이었다네요.

아마 그 내용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구해서 읽어야 할까요? ㅋㅋ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 - 늠름하고 멋진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 동화
볼프 예를브루흐 그림, 오렌 라비 글, 한윤진.우현옥 옮김 / 아이위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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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작가인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서 협업을 이루었던 그림작가 볼프 에를브루흐가 이번에는 이스라엘 출신 오렌 라비 작가의 글을 형상화했다. 아이들이라면 아마 모두가 좋아할 법한 곰돌이 친구를 주인공으로 삼아 숲 속 여행을 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법 큰 아이들에게 맞는 책이라고나 할까. 우리집 꼬맹이는 좀 더 있다가 읽어야지 싶다.

 

이 멋진 동화는 숲 속에 사는 솔잎처럼 생긴 벌레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몸이 가려워 등을 벅벅 긁다 보니 곰이 되었다고? 놀랍군. 이 녀석 주머니에 종이도 넣어 가지고 다닌다네. 자신을 스스로 사냥하고 행복한 곰이라고 부르는 녀석은 자신을 찾아 나선 숲속여행이 동화의 줄거리다.

 

그렇게 홀로 숲속을 거닐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숲의 꽃이나 나무도 쑥쑥 크고 자란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벌벌 기어 다니던 꼬맹이 녀석이 언제 걷기 시작하고 또 뛰어 다니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야. 뭐 다 그렇게 가는 거겠지. 뭐? 숲 속에는 여러 종류의 고요함이 있다고. 이 곰돌이 녀석은 역시나 보통 곰돌이가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형이상학에 통달한 철학자 곰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숲에서 만난 게으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게으른 불도롱뇽을 만나, 불도롱뇽이 아는 곰돌이 중에 최고로 상냥하다는 인증도 받고 기운차게 가던 길을 가기도 해. 다음에는 숲 속에 핀 예쁜 꽃들을 세던 펭귄을 만나 “예쁘다”는 숫자가 아니라는 지청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게 뭐가 중요해. 꽃을 세는 행위보다, 그 꽃이 가진 아름다움에 취한 곰돌이는 사뿐사뿐 춤을 추는, 우리의 곰돌이는 탐미주의자로 풍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걸. 이거 볼수록 매력 넘치는 곰돌이가 아닌가 말이다.


 



숲속에서 나침반나무를 만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에 거북 택시가 등장하기도 해.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땐, 잠시 헤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거북의 조언에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대로, 주어진 대로만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어쩌면 유목인의 천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런 노마드 정신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참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싶어졌다.

 

그렇게 숲을 떠돌던 곰돌이는 마침내 자신의 집에 도착해. 그런데 이 녀석은 이 집이 자신의 집인 지도 몰랐던 모양이야. 오랜 풍찬노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우리의 곰돌이도 홈 스윗 홈을 외치지.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며 끝.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꿈을 좇으며,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만하지 않을까. 오렌 라비와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린 숲속에 사는 곰돌이 동화는 독자에게 선문답 같이 그렇게 다가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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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선거날이다. 그런데 비가 온다. 날씨 때문에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주제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적인 탐정들>이다. 개인적으로 볼라뇨의 열혈팬으로 그의 전작을 읽고 있다. 다만 책들은 나오는 대로 족족 사들였지만 독서는 못했다. 메타픽션 <2666>은 그래도 2권은 읽었지만 나머지 3권은 못 읽었다. <2666>만큼은 아니지만 못지 않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결국 읽기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가끔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보고서는 소장하고 있지만 다시 사면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미 산 책입니다라는 스탭 분의 말이 두려워 미처 사지 못했다. 하고 보니 다 구구절절한 변명이다. 예전에 마술사들이 등장하는 <나우 유 씨 미>에서 우디 해럴슨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할 생각만 하고, 미처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올해에는 시간을 두고 아르킴볼디가 등장하는 <2666>과 <야만적인 탐정들>을 읽어야겠다. 책은 고만 사고, 집에 있는 책부터 읽자고 다짐하건만 항상 헛된 구호가 된다는 게 맹점.

 

 

자꾸만 이야기가 곁다리로 새는 데, 며칠 전 동네 카페에 갔는데 전혀 색다른 버전의 <야만적인 탐정들>을 만났다.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열린책들 버전은 칼라의 1권과 2권의 책인데, 내가 사는 동네 책읽는 군포 카페의 작은도서관에서 흰 표지의 단권으로 되어 있는 책을 발견했다. 그 날은 하필이면 핸드폰이 미처 가져 가지 않아서 그냥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마침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 세 컷을 찍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플롯을 통해 소설을 디비 보자. 소설은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팅이 되는데, 몇몇의 내레이터들이 등장하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멕시코에서 실종된 멕시코인들”로 1975년 후반, 미래의 시인을 꿈꾸는 17세 소년 후안 가르시아 마데로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놈의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내장사실주의에 대한 무의미해 보이는 토론이 아마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법대생 마데로는 대학을 중퇴하고 멕시코시티 주변을 여행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내장사실주의에 회의하면서도 점저 깊숙하게 빠져 드는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소설의 제목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대략 전체 소설의 2/3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단권으로 된 소설의 총 페이지 수는 982쪽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600쪽 이상이 할애된 모양이다. 이 부분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을 다루면서 자그마치 40명 이상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내장사실주의 설립자들과 울리세스 리마, 아르투로 벨라뇨를 비롯한 북미, 유럽,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뜨내기들처럼 유럽에서 수년 동안, 술집과 야영장을 누비며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된다. 벨라뇨가 스페인 바닷가에서 결투를 마다하지 않는 문학비평가에 도전하는 동안, 리마는 이스라엘에서 짧은 형을 살기도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소노라 사막”에서는 다시 마데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시간의 연대기에 따른다면,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1976년 1월, 마데로와 리마 그리고 창녀 루페가 등장한다. 멕시코에서 루페의 포주 알베르트와 부패한 멕시코 경찰에게 쫓기면서, 내장사실주의의 창시자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나선다.

 

 

다른 리뷰와 대충 알아 먹은 위키피디아 플롯만으로는 도저히 이 소설이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 볼라뇨가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결론은 내가 읽어야 한다는 거겠지. 그런데 자그마치 천쪽에 육박하는 소설을 내가 과연 싫증을 내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서평 도서들이 자그마치 5권이나 배송 중이지 않은가. 그래 그렇게 가는 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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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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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덴마크 출신 작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란 책을 알 것이다. 나 역시 그 책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장만 하고 읽진 않아서 왜들 그렇게 절판 당시 타령을 해대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재출간 돼서 언제라도 구해서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복간된 후에 오히려 인기가 줄었다고 해야 할까.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지만 읽은 사람은 또 드문 그런 책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수잔 이펙트>(2014)는 페터 회 작가의 최신작이자 8번째 작품이다.

 

어디선가 이 책을 미학적 스릴러라고 평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 읽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소설의 주인공 수잔 스벤센은 올해 44세 그리고 코펜하겐 대학에서 물리학 강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시작은 스벤센 가족이 빠진 곤경으로부터 시작한다. 21세기 가족 시스템의 은밀한 내부가 그렇듯, 스벤센 가족 역시 파국일보 직전이다. 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토르킬 하인이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수잔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물론 로버트 레드포드가 드미 무어에게 영화에서 한 것 같은 그런 제안은 아니고,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알게 되겠지만, 수잔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녀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인은 그녀의 그런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는지도 몰랐던 수잔과 가족들은 비밀을 파헤칠수록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실과 한 때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만든 미래위원회 위원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으면서 막장 드라마 같이 시작되었던 소설은 드디어 미학적 스릴러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수잔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요즘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제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재의식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재밌는 막장드라마를 기대했던 독자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어느날 자신과 솔로 댄서로서 한 세대 앞서 페미니스트로서 삶을 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고아원/소년원에서 세상을 배운 수잔 스벤센의 가공할 만한 과거에 대한 고백에 파티에 모인 이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숨겨야만 하는 게 아니었던가. 아니면 그렇게 헤진 상처를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더 화끈한 힐링을 원했던 걸까. 소설 <수잔 이펙트>에서 다루는 파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미래위원회가 준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수잔은 인류의 미래가 결국 파국이고,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생존을 위해 준비한 패러다이스로 자신도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지막지한 핵군비 경쟁 혹은 환경파괴로 인류의 생존은 더 이상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인류의 미래를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전하겠다는 행정편의적인 이기주의가 독자가 결말에서 만나게 되는 핵심이다. 소설에서 전개된 내용을 우리 사회에 전개하게 된다면, 종말론적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정치인들? 막대한 금권을 자랑하는 재벌가 사람들? 인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환경전문가 혹은 농업생산과 에너지생산을 담당할 기술자들? 문득 우리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잔 이펙트>를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됐다.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소수를 제외한 그야말로 꼬리칸에 탑승한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너무 뻔할 걸 물어서 식상한가.

 

전반적으로 봤을 때, 소설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덴마크라는 나라였다. 현재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나 중국 혹은 독일 같은 나라라면 또 모르겠지만 꼴랑 인구 560만 명 정도의 나라에서 이런 스케일의 미래비전을 준비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하도 페터 회 작가가 닐스 보어 연구소 타령을 해대서 위키피디아로 닐스 보어에 대해 조사해 보기도 했다. 또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우리보다 GDP가 거의 두 배나 되는 복지선진국도 역시나 이런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여담이긴 하지만 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 <김과장>에서 주인공 김과장이 삥땅을 쳐서 모은 돈으로 이민을 가려던 나라가 덴마크였다는 점이 새삼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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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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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호건이라는 처음 들어 보는 영국 베드포드 출신의 작가의 책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를 읽었다. 인터넷으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해 봤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들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대략적인 나이도, 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대로 대학에서 영문학과 희곡을 전공했고 시청 공무원 생활도 좀 하다가 5년 전에 암 진단을 받아 애니 레녹스 스타일의 헤어를 하고 있다는 점 정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지만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인지 암튼 그 정도였다.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고질적인 까치라고 스스로 명명한 그녀의 특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우선 은둔작가 앤서니 퍼듀와 그의 충실한 비서로 활동하게 되는 로라가 등장한다. 앤서니는 아주 오래 전 정말 사랑하는 테레즈라는 아가씨를 비극적으로 잃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잡동사니 분실물로 가득찬 동물원 같은 유실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자신의 생의 끝이 가까워 왔음을 짐작한 성자 앤서니는 남편 빈스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로라에게 평생 돈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한 유산과 자신이 그동안 모은 유실물들을 주인들에게 찾아 주라는, 그리고 부서진 심장을 고쳐 주라는 부탁을 남겼던가.

 

가정부 같은 존재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남긴 스캔들이야말로 동네 호사가 아주머니들의 입담에 오르기 좋을 법한 그런 소재가 아니었던가.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해대는 그들에게 쑥맥 같은 로라가 던진 한 방은 이 소설에서 가장 통쾌하고 유쾌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로라의 모험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웃집 소녀 선샤인과 정원사 프레디까지 합류해서 다채로운 이야기을 이끌어 낸다.

 

또 하나의 이야기에는 유니스와 바머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출판업자 바머는 게이다. 로라에 버금갈 정도로 성실하고 사람 좋은 유니스는 게이 고용주와 진실한 우정을 쌓아 나간다. 그리고 보니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에는 일정한 분량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로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등장해서 자신을 유혹한 빈스를 백마탄 왕자님이라고 생각했고, 세상 경험 없는 유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바머의 여동생 포샤 역시 능력자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전을 필사하다가 결국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의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다. 물론 소설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운증후군 소녀 선샤인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현자의 말을 누가 듣던가? 유령 같은 존재 테레즈의 심술에 시달리던 로라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역할 역시 선샤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성사 앤서니는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루스 호건 작가의 플롯은 거의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설의 말미에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다. 사실 소공녀 같은 스타일의 초반 전개가 몰입에 방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로라와 프레디의 로맨틱 핑퐁게임 역시 마찬가지고. 유령 같은 존재로 변신한 테레즈의 방해도 이걸 마술적 리얼리즘의 현현으로 받아 들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성자 앤서니가 수집한 유실물들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진부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최첨단 기술을 도입할 거라면 차라리 요즘 사람들에게 대유행인 인스타그램을 등장시키는 건 어땠을까. 서로 엇갈려 보이는 이야기를 한 접점으로 모이게 유도해서 대미를 장식하는 루스 호건 작가의 기술은 정말 탁월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어쩌면 가슴 훈훈한 베드타임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좀 얻어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온전하게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로만 판단할 수밖에. 다소 신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초반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감안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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