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 돌아온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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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문정왕후 및 현종어보 문화재를 반환받는데 성공했다는 안민석 의원의 자랑질을 애청하는 뉴스공장을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천조국의 비위를 건드리기 싫었던 외교부가 인수를 막았다는 안 의원의 주장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놈의 정부기관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지난 세기가 제국주의 열강의 문화재 약탈의 역사였다면, 이번 세기는 그렇게 약탈당한 각국의 문화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시대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약탈하거나 혹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유수의 박물관들이 반환에 소극적이거나 혹은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대영박물관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루브르만 하더라도, 그렇게 불법적으로 취득한 혹은 유래를 알 수 없는 문화재들을 모두 반환하게 된다면 속빈 강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편에서 가장 먼저 읽은 꼭지는 터키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을 상대로 한 고대 우사크 유적 반환 소송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난 미국에 다수의 문화재들이 몰려든 것은 꼭 국력이나 경제력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절에 맞게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갖은 방법과 꼼수를 동원해서 우사크 문화재의 반환을 거부하던 MET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미국 법원은 터키 문화재의 반환을 명령하기에 이른다. 대륙법과 한 번 장물은 영원한 장물이다라는 영미법 체계의 차이점도 지난해 보이는 그리고 막대한 소송비용이 든 재판의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저자의 탁월한 분석이 돋보였다. 하지만 균형감을 잃지 않은 저자는 과연 터키가 피해자일까라는 약점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고대 우사크 유적이 지금 터키 민족이 국가를 이룬 터키 공화국의 문화재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고대 우사크 유적은 11세기경 발흥한 셀주크 투르크 계의 후손인 투르크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유적이 아니었던가. 그 영토에 있는 것만으로 그 나라의 문화재가 맞느냐는 의제는 또다른 논쟁을 불러올 만하다. 게다가 터키는 그리스 점령 시절, 파르테논 마블의 불법적인 반출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미필적 고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반환받은 우사크 문화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도둑 맞는 일도 발생하면서 역시 서구사화의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는 점에서 문화재 반환투쟁에 옥의 티였다. 한편, 독일을 상대로 터키 정부가 벌이고 있는 페르가몬 제우스 신전 반환에서도 어쩌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몰랐던 문화재를 비록 본국은 아니지만 멀리 독일에서 더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화재 반환 이슈의 또다른 쟁점 사항이라고 저자는 냉정하게 말한다.

 

저자는 단순한 문화재 반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만 저술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도 많은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 천재화가 에곤 실레의 걸작 <발리의 초상> 같은 경우는 또 어떤가. 중세를 거쳐 마지막 숨을 쉬고 있던 제국의 수도 빈에서 거장 클림트와 교류하며 아르누보 화풍으로 출발해서 독자적 화풍을 제시했던 청년 화가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의 뮤즈로 활약하다가 젊은 나이에 전장에서 성홍열로 사망한 모델이자 애인 발리를 그린 초상의 기구한 유전을 추적하기도 한다. 전쟁 통에 나치 당원에게 소유권을 빼앗긴 원 소유자 유대인 레아 본디에게 <발리의 초상>이 인도되지 않고 미군당국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소유권을 넘겼다가 진가를 파악한 레오폴드라는 인물이 도중에 끼어들어 소유원을 얻었던가. 예의 작품이 미국 전시길에 나섰다가 첨예한 법정투쟁을 벌이게 되는 과정은 너무 복잡해서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어쨌든 나치약탈품은 원소유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역사적 정당성에 의거해서, 레아 본디의 미국 상속권자들은 소송 끝에 막대한 금전적 보상을 얻게 됐다. 저자는 굳이 금전적 보상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정의 바로 세우기 과정으로 보는 정당할 것이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재로 고려말 왜구의 약탈로 대마도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산 부석사 관음불상의 경우는 또 어떤가. 사실 역사를 전공했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럽다. 대마도 간논지에 안치되어 있던 고려 불상을 도굴꾼들이 절도해서 국내로 반입해서 밀매하려다 경찰에게 적발되어 압수된 과정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다. 문제는 장물이기 때문에 원 소유자에게 돌려 주라는 재판부의 결정으로 불상 2점 중 하나는 일본 대사관을 통해 반환되었다.

 

하지만 서산 부석가 관음불상의 경우에는 복장 기록을 통해 고려말 서주(지금의 서산)에서 다수의 사람들의 시주로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약탈 문화재로 부석사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비록 수백 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긴 하지만 불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이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일본 간논지 측에 되돌려 줄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이고, 일본에서는 전후과정을 일체 무시하고 일단 절도된 장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들에게 반환하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부석사 관음불상의 복장 기록을 연구한 일본 학자도 약탈품일 것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또 한편에서는 해당 불상이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대마도에 안착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록으로 약탈인지 아니면 기증이나 정상적 구매냐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2편에서도 나올 예정이지만 이럴 경우, 그렇다면 로마 시대에 이집트에서 약탈한 오벨리스크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이 될 것이다. 근 이천년 가까이 동안 원래 제작된 고향을 떠나, 이향에서 뿌리를 내린 문화재도 반환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문화재 반환에 얽힌 문제들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약탈된 문화재들은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서구 유수의 박물관들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해서, 수장 문제를 거론하며 모든 인류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체계적이고 우수한 기술로 수장과 전시를 앞으로 맡겠다는 주장은 모두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 비바람, 그리고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풍화에 삭을 지라도 그 곳에 살던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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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0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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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너드 위벌리라는 아일랜드 출신 미국 작가의 책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라는 기발한 책을 읽게 됐다. 이웃 어느 알라디너가 쓴 리뷰를 보고서 나도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됐다.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선정 2005년 올해의 책이라는 광고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다시 작가 이야기로 돌아가 농학자 출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레너드 위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신문사에서 카피 보이로 출발해서 기자가 되었다. 영국, 트리니다드 등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 위벌리(1915년생)는 194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전쟁 중에 AP 런던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37세에 처음으로 소설을 발표한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5년에 발표된 풍자 우화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그랜드 펜윅 공국은 프랑스 알프스 부근의 소위 “미식축구 경기장”만한 사이즈의 아주 작은 나라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전쟁 당시 로저 펜윅이 세운 가상의 공국은 품질 좋은 와인 생산으로 그동안 잘먹고 잘 살아왔다. 하지만 인구 증가와 세계 와인 시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경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지 문제는 경제였다. 시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랜드펜윅 공국의 대공녀 글로리아나와 와인 희석당 그리고 반희석당의 당수들이 모여 내린 결정은 당대 최강국 미국을 침공하자는 미증유의 계획이었다. 아니 고작 14세기 장궁과 철퇴로 무장한 총인구라고 해봐야 6,000명 남짓한 소국이 2차세계대전 이후 핵폭탄까지 가진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그야말로 SF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들의 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허황된 계획은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에서 진 나라들의 경제부흥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쓰지 않았는가. 전후 유럽에서는 마셜 플랜을 가동해서 서방으로 옥죄어 오는 공산주의 소련에 대항해서 패전국 독일 부흥에 박차를 가했다. 동북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련의 남진을 막기 위해 패전국 일본의 경제부흥에 최대한의 원조를 하지 않았던가. 그랜드 펜윅 지도부는 바로 그런 점을 파악하고, 미국과 전쟁을 치러 패전하고 두둑한 돈보따리를 껴안을 궁리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에서 벌어진 경제부흥에 대한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의 고단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전쟁을 선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돌아이 부대로 보이는 그랜드 펜윅의 전쟁지도부들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라파엘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생산 중인 자신들의 와인을 패러디한 그랜드 엔윅 와인이 자국의 이익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비교적 합리적인 원인을 들어 세계 초강대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감행한다.

 

한편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원자폭탄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쿼디움을 이용한 중수소 폭탄, 일면 Q폭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쟁자 소련보다 앞서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인물은 바로 핵물리학자 코킨츠 박사다. 미국 동부 해안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쿼디움 폭탄이 마침내 만들어지고, 이에 맞춰 미국에서는 적의 원폭공격에 대비한 훈련에 돌입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적의 공격에 대비한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역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ICBM 미사일 때문에 안보가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총사령관 털리 배스컴의 지휘 아래 14세기 장궁과 철퇴로 무장한 일단의 그랜드 펜윅 특공대는 범선을 타고 뉴욕에 상륙해서 코킨츠 박사의 쿼디움 폭탄을 탈취하고 이 기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성공한다. 스무명 남짓한 병사들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레너드 위벌리는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뉴스에 버금갈 만한 스토리로 강력한 반전 및 반핵 메시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사람들은 전근대적 무기를 들고 미국 침공에 나선 그랜드 펜윅의 전사들을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대방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무기개발에 사용하고 있는 군산복합체의 지도자들이야말로 정말 무식한 게 아닐까. 대화와 협상으로 얼마든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군축을 이끌어 낼 수 있음에도, 다른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강대강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만이 최고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레너드 위벌리 작가는 정말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을 지도 모르는 핵전쟁에 대한 우화를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를 통해 능청스럽게 그려냈다. 원제는 <The Mouse that Roared>라고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으르렁거리는 생쥐> 정도로 할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진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그랜드 펜윅 공국에 전쟁포로로 잡혀온 코킨츠 박사와 공국의 유일한 지식인 피어스 배스컴과의 대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미국 출신 핵물리학자에게) 지구별을 파탄시킬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여전히 핵무기를 가진 이들을 겁박하기 위해선 더 강한 무기로 압박해야 한다는 냉전시대 부산물적인 사고를 가지고 전쟁타령을 하는 이들이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일 동안 1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분발하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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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7-19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량 적은 책도 별로 없이 리뷰도 꼼꼼히 챙겨 쓰셨잖아요. 값진 100권 돌파 축하요/

레삭매냐 2017-07-19 17: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올해 200일째라고 하네요.
아니 201일인가. 암튼...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7-07-19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독서 행보를 봐서는 올해에 책 200권 읽을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7-07-20 10: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한창 읽을 적에도 300권 가까이도 읽었지만
이제 노쇠한지라 그 정도 기력은 안되네요.

작년에도 200권 언저리 비슷하게 도달했지만 무리
하지 않았어요. 올해도 그냥 읽게 되는 대로...
 
그래일기 -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닌 나
김그래 글.그림 / 레진코믹스(레진엔터테인먼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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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딴짓 요정 그거 나도 알아, 뭐 그런 부제로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래”는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 뿐인데, 이제 <그래일기>를 읽고 나서는 김그래라는 작가도 알게 됐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했다는 것도. 작가의 그래일기는 작년 8월 31일 도쿄여행을 마지막으로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혹시 다른 곳에서 연재 중인가? 그 중에서 이번에 레진코믹스에서 나온 작가의 두 번째 책 <그래일기>에는 실려 있지 않은 굿네이버스 <말라위에 가다>편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이렇게 멋진 이야기가 왜 책에는 실려 있지 않은지 궁금했다.

 

작가가 애정하는 구글맵으로 돌려 보니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와 잠비아 사이에 있는 나라였다. 수도는 릴롱궤. 나는 중앙아프리카 어느 쯤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생각에 아무래도 후진국이다 보니 각종 의료 시설 등이 부족하고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굿네이버스 재능기부팀의 일원으로 말라위에 간 김그래 씨가 보고 들은 건 상상 이상이었다. 아이를 낳을 보건소가 넉넉하지 않다 보니, 산모들이 차로 두 시간 혹은 한나절 걸어서 보건소에 갔다가 산모가 죽기도 하고, 어렵게 낳은 아이를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구 감소 추세에 적극적으로 출산 지원을 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산부인과가 줄어들다 보니 군단위에서는 인근 대도시로 출산을 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어떤 점에서 보면 말라위나 우리나라나 다를 게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바닥도 마감되어 있지 않은 비위생적인 흙바닥 같이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말라위 사람들의 현실을 보고 경악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참 불행하고 동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시선이 그릇된 게 아닐까하는 그런 시선 말이다. 그런데 <그래일기>에 수록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신드롬의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어떤 이들은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해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 않던가. 왠지 이 작가는 많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시작이 좀 심각했다. 사실 <그래일기>는 좀 가벼운 터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말라위에 가다>편은 빼놓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반오십을 산 젊은 친구가 고민하는 여러 가지 일상이 콕콕 내리 찍힌다. 졸전 준비에 쫓기면서도, 재능 기부를 위해 말라위를 찾기도 하고 5살 차이나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재밌고, 비슷한 성향을 지닌 오랜 친구들과 옥신각신하는 설정도 재밌다. 하지만 웹툰 작가로서 무엇보다 힘든 건 아마 소재사냥이 아닐까. 아무 생각 없이 뒹굴다가도 소재감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해서 망각으로부터 구해내야 하는 절대임무를 지니고 살아야하는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 왜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찾아온다는 딴짓 요정이란 표현도 참 재밌다. 평소에 들어도 되는 음악이나 아무 때나 읽어도 무방한 책(대부분은 만화책)이 왜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그렇게 재밌는지. 전면적인 청소보다는 위치이동으로 공간을 만들고 뭉개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절절하게 표현해냈는지 백퍼공감할 수가 있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 간간히 찾아드는 감동의 순간 포착에도 작가는 능숙하다. 언젠가 자신도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너 같은 딸을 한 번 낳아 보라는 말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하는 장면은 어찌나 웃기던지.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마련한 사무실이 주는 현실의 무게(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러니까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든다는 말이다)에 버거워하는 청춘이 어찌나 현실적이던지.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다 보면 무엇이라도 되겠지하는 마음도 절절했다. 아무리 거창한 꿈을 꾼다고 해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걸, 계획 세우기 전문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말미에 갈피 친구가 4박 5일 떠났던 일본 여행 고생길도 재밌다. 그렇지 여행이란 그런 거지. 가기 전의 설레임으로 잠을 제대로 못자서 눈이 퉁퉁 붓기도 하고, 아무래도 초행길이다 보니 헤매는 바람에 얼마나 많이 걸어야 했던가. 역에서 5분 거리 숙소를 찾지 못해 한시간이나 고생했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도쿄타워에서 친구가 써준 카드를 받고 흐뭇해 하는 것 같은 에피소드야말로 고생길 여행을 추억 여행으로 남게 해주는 그런 요소들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고생 여행을 사양하고 싶지만 말이다. 또 닥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책을 받아서 단박에 읽었다. 아주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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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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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유의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는 춘수 씨의 팬이 아니다. 그런데 춘수 씨의 책이 출간되면 어김없이, 꾸역꾸역 그렇게 읽게 된다. 어쩌면 21세기 한국에서 춘수 씨의 책은 단순하게 베스트셀러 문학 이상의 규정할 수 없는 이데아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근작이었던 다자키 쓰쿠루는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는 아주 늦게 도착한 <노르웨이의 숲>이 좀 더 와 닿았다고나 할까. 질풍노도의 전공투 세대였던 춘수 씨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세상일에 무심하게 되었나는 여전히 나의 관심사다. 어쩌면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오늘의 춘수 씨가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히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사단장 죽이기>가 도착했고, 열독에 빠졌다 나는.

 

출판사 광고를 보면 춘수 씨 문학의 집대성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데 책을 읽을수록 그 점에 동의하게 된다. 춘수 씨 문학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주인공은 남자이고, 뭍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규정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노르웨이의 숲>의 젊은 와타나베처럼. 춘수 씨는 자기 소설의 메인 캐릭터 설정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음을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나는 미대에서 추상화를 전공했지만 생계를 위해 “사회의 기둥”들을 위해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스스로 고급 창부라고 생각하는 임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고생하는 대신 현실에 수긍하라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 자본주의 3.0 시대의 주술처럼 다가온다. 굳이 이 지점에서 ‘주술’이라는 코드를 선택한 이유는 60센티미터 정도 사이즈의 이데아 기사단장이 등장하는 소설의 전개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충격 타임이다. 반듯한 은행원 집안의 아내 유즈와의 6년간의 결혼생활이 아내의 외도로 일순간에 파경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한다. 결혼이라는 인연도 언제나 필요하면 사서 쓸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는 듯, 주인공은 쿨하게 도쿄 아파트 거처를 떠나 고물 푸조를 타고 불안정한 자아를 달래기 위해 정처 없는 방랑길에 나선다. 어때 이 정도면 춘수 씨는 예전 작품들의 변주라는 지적도 달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춘수 씨 문학에서 하나의 코드가 되어 버린 음악에 대한 열정도 빠지지 않는다. 책에 몰입하다 보니 어디서 읽었는가 모르겠지만 1950년대 재즈 씬을 연상시키는 MJQ(Modern Jazz Quartet)의 비브라포니스트 밀트 잭슨이 연주하는 영롱한 음색의 <피라미드>도 유투브를 통해 감상해 보기도 했다.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 슈베르트 현악4중주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고작 <죽음과 소녀> 정도가 아니던가. 나중에 소설에서 주인공 버금갈 정도의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멘시키 와타루 씨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집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발랄라이카 칵테일 제조법까지 디테일하게 알려 주는 장면에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춘수 씨의 이런 고급 취향이란. 쿠앵트로가 들어가지 않으면 발랄라이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트리플 섹을 대체재로 사용하는 것 같더만.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춘수 씨의 이런 고급진 취향을 일본어로 제이타쿠(ぜいたく[贅沢])란 표현이 제격이라는 글을 읽었다.

 

춘수 씨 소설의 주인공들은 누구나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열다섯살 때, 심장판막 이상으로 결국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로 폐쇄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던가. 다른 여성과 교제 중에 만난 유즈 역시 자신의 누이와 비슷한 눈매에 빠져 결혼에까지 도달했다는 고백도 주목할 만하다. 이 정도의 기이한 인연들은 소설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내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원래 자신이 살던 도쿄의 아파트를 유즈에게 내준 “나”는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아들인 마사히코(미대 동창생)의 제안으로 도쿄 인근 가나가와 현 서쪽의 오다와라 교외 그의 부친이 살던 집에 잠시 살게 된다.

 

이야기 전개를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이 준비됐다. 우선 트라우마와 최근의 파경을 겪은 주인공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을 위한 무대가 가설됐다. 그렇게 평안하게 질박한 삶이 전개되었다면 좋겠지만 이 모든 것은 워밍업에 불과하다. 명백하게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한 장면에서 모티프를 딴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발견하는 장면(아테네 여신 혹은 지혜를 상징하는 수리부엉이의 도움으로 아마다 컬렉션에도 등재되지 않은 비밀의 작품을 상징적으로 발견한다), 새벽만 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방울 소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되는 장면 그리고 거액을 들여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멘시키 와타루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춘수 씨 특유의 거침없는 스토리텔링이 이어진다.

 

이제까지 피상적인 요소들이 등장했다면, 이제는 그 내면의 세계로 진입할 시간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미술교실에서 만난 두 명의 유부녀들과 쾌락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교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스펙터클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찾은 거장의 알려지지 않는 작품에 대한 미스터리, 밤마다 들려오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호기심, 주기적으로 갖는 섹스, 게다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남긴 독일 오스트리아 오페라 컬렉션을 탄노이 스피커로 즐기며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 남자. 그야말로 춘수 씨 스타일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주인공이 열어젖힌 비밀의 문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인 기사단장이 튀어나온다. ‘색을 면하다’라는 뜻의 기이한 이름을 가진 멘시키[免色]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주인공보다 ‘제이타쿠’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남자가 멘시키일 지도 모르겠다. 다가온 이혼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제공한 주인공이 바로 멘시키였다. 어느 누가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거액의 의뢰금을 제공하면서 어떤 제약도 붙이지 않고 초상화 화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주문을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런데 소설 속 사건의 진행을 보면, 모든 것은 멘시키 씨가 설정하고 준비한 대로 진행된다. 멘시키 씨 또한 비밀을 한가득 안은 사람이고, 주인공과의 초상화 작업을 통해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석실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초자연적 존재인 기사단장 같은 배역이 기존의 춘수 씨 작품에 있었던가 싶다. 괴이담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목식화된 승려 미라에 대한 일본 고래의 괴담은 한 때 즐겨 읽던 교고쿠 나쓰히코가 저술한 <항설백물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순간 반세기 가까이 서구에 편향된 글쓰기에 전념했던 춘수 씨가 드디어 본국이 가진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이데아에 눈을 뜨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스타일이 단박에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춘수 씨가 또 준비한 것이 바로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이다. 원래 아마다 씨는 서양화 전공으로 1930년대 오스트리아 유학에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던가. 독일에서 발호한 나치즘이 안슐루스(오스트리아 합병)로 오스트리아를 집어 삼키고 이웃 체코까지 노리고 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재력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시절 유럽 유학길에 나설 정도라면 상당한 재산이 필요했을 것이다. 빈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연인이 연루된 나치 고관 암살 사건으로 연루된 이들은 모두 처형 투옥되고, 아마다 씨는 그나마 추축국의 일환이었던 일본인이었다는 이유로 무사히 귀국해서 전쟁 기간 동안 쥐 죽은 듯이 지내다가 환골탈태해서 전통 일본화를 그리는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변주에 변주의 거듭이 아닐 수 없다.

 

아, 한 가지 누락된 부분이 있었던가. 추상화인지 초상화인지 모를 멘시키 씨의 초상화를 완성한 나는 예술혼이 폭발했는지, 내친 김에 방랑길에 만나 뜨거운 하룻밤을 지낸 여인과의 추억에서 파생된 스바루 타는 남자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나는 내가 지난 여름에 한 것을 알고 있다”라는 틴에이저 호러 필름을 연상시키는 그런 설정 같다고나 할까. 블랙잭 게임을 능숙하게 시연하는 딜러처럼 춘수 씨는 자신의 소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기산단장 1편이라는 카드 테이블에 주욱 늘어놨다. 이제 2편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을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 하나만큼은 가히 최고다. 이래서 춘수 씨, 춘수 씨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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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7-18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책 읽고 나서 볼게요! 스포 안당하려고 애쓰는중입니다. ^^

레삭매냐 2017-07-18 13:29   좋아요 0 | URL
제 경험에 미루어 볼 적에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리뷰를 봐도 추리소설이
아닌 이상 그닥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

그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cyrus 2017-07-18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알라딘에서 하루키의 신작 소설을 제대로 읽고, 진지하게 리뷰로 기록한 분이 레삭매냐님이 처음입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알라디너라면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어봐야 합니다. ^^

레삭매냐 2017-07-18 14:52   좋아요 0 | URL
좀 더 진지하게 춘수 씨를 까고 싶은데
실력이 부족하야 두서 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춘수 씨는 그냥 그런 일본
작가 중의 하나라는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지금까지도 춘수 씨의 글을 열심히 소비하는
하루키스트들의 나이도 상승하고 있다는 지적
도 주목할 만하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90년대 한국 청년들에게 먹혔
을 지는 몰라도 요즘에는 먹히지 않는다는 방증
일까요.

포스트잇 2017-07-18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권 1/3쯤 읽고 있는데 ... 1권이 ‘이야기가 폭발한다‘라는 광고문구에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면, 2권은 아, 좀 걸리네요.
춘수 씨(ㅋㅋ)의 ‘단편적 사고에 저항‘하기 위한 지금의 소설이란 장르의 역할에도, 이야기의 힘을 생생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오랜 세월 나름대로 노력을 거듭해왔‘음을 인정한다 해도 롤리타증후나 꿈을 빙자한 강간을 이제는 아예 나의 예술세계로 받아들이라는 식의 능청은 좀 질리네요...


물론, 기사단장죽이기, 감탄해가면서 읽는 중이고 재밌고 끝까지 읽긴 할겁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7-07-18 16:4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춘수 씨가 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을 해봤습니다.

2권도 내쳐 읽기 시작했는데 말씀 대로라면
좀 걱정이 앞서네요.

이제 막 재밌어지기 시작하는데 말이죠 :>
 
시멘트 가든
이언 매큐언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대망의 이언 매큐언 전작 완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제 작가의 초기작 <시멘트 가든>을 읽었다. 그리고 바로 이언 매큐언 선생 최고작이라는 <속죄>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도 역시나 재밌다. 이런 몰입도로 최근에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는 아우라 때문에 내가 빨려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시멘트 가든> 이야기를 하려다가 또 삼천포로 빠져 들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시멘트 가든>은 일 년 전에 위화 작가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지 아마. 구입해서 조금 읽다 말았는데, 소설의 화자 15세 소년 잭의 아버지가 정원을 꾸미려고 엄청난 분량의 시멘트를 구입하는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시멘트가 과연 어떤 소재가 될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5월부터 본격적인 이언 매큐언 전작 읽기에 돌입했는데, 그 중에 가장 빨리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물론 짧은 분량 탓도 있겠지만, 젊은 시절의 이언 매큐언이 구사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소설 서두에서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잭과 줄리, 수 그리고 막내 톰의 아버지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전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잭의 아버지는 시멘트 포대를 엄청나게 사들여 정원을 꾸미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아버지가 정원 가꾸기에 빠져 있는 동안, 이제 막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접어든 잭은 큰누나 줄리와 함께 여동생 수를 상대로 의사놀이라고 그들이 명명한 성적 유희에 빠져든다. 무언가 바로 폭발할 것만 상태인 잭의 가정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병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엄마가 세상을 뜨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제 고아가 된 십대 아이들은 위탁가정으로 뿔뿔이 흩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머니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준비해둔 시멘트가 등장할 차례다. 아무 것도 모르는 톰을 제외한 잭과 줄리, 수는 시멘트로 어떻게 엄마의 죽음을 은폐할 것인가. 그리고 엄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은 영원히 지켜질 것인가.

 

이언 매큐언이 전매특허로 구사하는 소설에서 어떤 결정적 사건을 전후로 한 인과관계의 전개는 초기작 <시멘트 가든>에서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평면적인 구성으로만 전개되는 건 아니다. 한 개의 트랙이 엄마의 죽음과 은폐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한 가지 트랙은 성적으로 호기심이 충만한 소년의 상실감이 어떤 방식으로 파괴된 삶의 균질성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작가의 리포트라고나 할까. 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은행 예금의 관리를 큰딸인 줄리에게 부탁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몰라도 당장의 시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재정적 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아마 엄마가 준비한 돈이 없었더라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그들의 가족이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구축한 그들만의 세계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세계일 수밖에 없다. 줄리의 멋쟁이 남자친구 데릭이 그들의 세계에 침입했을 때, 그들의 세계는 붕괴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잭과 줄리의 성적 호기심 혹은 충동에서 유발된 관계는 파국의 순간을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언 매큐언이 초창기에 작품을 발표하던 시절에, 문학 기자들이 그를 엽기작가로 판단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나는 <시멘트 가든>과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통해 접했다. 그런 초기 작품들에 비하면, 그 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상당히 완화된 소재의 일상성을 담보한 작품들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소설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예외 없이 반드시 일어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소설에서 그리는 우리 인간 삶의 진실,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건 뒤의 사후처리는 오롯하게 남겨진 자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어머니의 죽음은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두려움에서 비롯한 상궤에서 어긋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이제 30세의 나이로 첫 장편소설 <시멘트 가든>을 발표한 청년 매큐언의 출발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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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7-07-10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작이라니 더욱 궁금하군요. 얼마나 파격적일까.

레삭매냐 2017-07-10 13:50   좋아요 1 | URL
후기에 발표된 작품들에 비해
어둡고, 소화하기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목나무 2017-07-10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런 어둡고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좋아서 이언 매큐언을 좋아하게 되었네요.^^
오늘부터 다시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어보려구요. <넛셸>이 생각만큼 재미없어서 다시 초기작을 읽어보려 합니다. ^^

레삭매냐 2017-07-10 16:04   좋아요 1 | URL
<첫사랑, 마지막 의식> 그리고 <시멘트 가든>
이 작가가 초기에 추구한 세상의 다크 사이드
를 대변하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작가의 기질이 완전하게 변하진 않았지만,
뭐랄까 순화된 느낌 정도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