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주말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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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의 제목 <, 주말>이라고 해서 다가오는 주말에 대한 직장인들의 기대 뭐 그런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시바사키 토모카의 소설집은 나의 예상하고는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일상에 대한 스케치라고나 할까.

 

감기에 걸려 연초를 보내다가 느닷없이 일박을 하겠다고 거의 쳐들어오다시피 집으로 들이닥친 회사 선배. 그런데 난 왜 그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 주식으로 먹던 고기우동 그리고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갔다는 선배의 신랑이 자기 와이프를 재워 줘서 고맙다는 뜻에서 무슨 선물이 받고 싶냐고 했을 때, 주인공이 대답했던 코나 커피와 마카다미아 땅콩만 생각난다. 하긴 후자의 경우에는 어느 재벌가의 회항 사건으로 이름을 날려서 더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듣자하니 일본 사람들은 민폐를 극도로 혐오한다고 들었는데, 상황이 급하게 되면 그렇게 타인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게 인지상정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한 때 잘 나가던 아이돌이었다가 한물가서 얼토당토 않은 줄거리의 <여자 조폭 2> 같은 엽기물에 출연하게 된 여성 스타에 대한 이야기도 아티스트라기 보다 산업화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모품이 된 스타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살짝 엿볼 수 있다.

 

히메지나 산노미야 같이 나도 언젠가 한 번 가봐서 익숙한 지명이 등장하는 <제비의 날>도 간이 안밴 비빔국수 같지만 역시나 흥미롭다. 여성 동지 세 명이서 의기투합해서 오사카에서 히메지 여행에 나선다. 일본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로드무비 스타일이라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호기롭게 출발한 그네들의 여정은 자동차에 이상이 생기면서 바로 위기에 봉착한다. 수리비로 10만 엔이 들지나 않을까 하는 소시민스러운 걱정은 뒤로 하고, 휴게소에서 파는 먹거리들을 보면서 역시 난 스테이크가 먹고 싶더라. 치즈포테이는 생각만큼 맛있지 않았다는 둥 하는 전개가 왜 이렇게 익숙한 걸까. 나도 다음 주에 짧은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먹거리들이 모두 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어쨌든 고장난 자동차를 끌고 가는 정비공 아저씨가 동향이라 누구 누구를 아냐며 수배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하늘을 나는 제비들이 먹이를 잡는 과정도, 그 제비들이 느닷없이 죽기라도 하면 집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모두 여행길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출근길에 만난 제비들의 안위에 대해 누가 그렇게 걱정을 할까. 피로에 쩐 내 한 몸 걱정하기도 바쁜 마당에 말이다.

 

지인들과 마츠리 구경을 나갔다가 예전 과외를 하던 부부와 만나 과거를 회상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재밌다. 집에 돈이 좀 있는지 골동품 사냥을 하는 중년 부부. 지난 밤 라이브 공연에 참가했다가 귀가 벙벙거리는 이명 현상에 시달리면서 기타 연주는 끝내 줬다고 했던가. 어쩌면 우리네 삶은 그렇게 무언가를 얻으면 반대급부로 또다른 무언가를 내주어야 하는 삶인 지도 모르겠다. 과외 클라이언트 가족과 식사를 하러 차를 얻어 타고 나갔다가 운전 부주의로 사고를 당한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잘 정리도 하지 않는 연상의 동거인 가나코 짱과 살면서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제법 재력이 있는 이들의 모임에 끌려간 주인공의 푸념 섞인 상념의 바다에 빠져 재미도 쏠쏠하다. 홈파티에 가서 진기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진수성찬을 실컷 먹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애인도 없는 집에서 주말을 홀로 보내기 싫어 부러 라멘집을 찾아가 조우하게 되는 장면에 대한 스케치는 또 어떤가. 하나 마나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커플에 대한 품평, 환영받지 못한 스탭 직원의 등장 그리고 가게 안으로 침투해온 큼지막한 바퀴벌레가 자기까지 오려면 하나마나 커플을 지나야 한다는 안도감 등등. 정리정돈에는 젬병이지만 자기라면 도저히 마련할 수 없을 거주공간을 제공한다는 이유에 대한 상념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디테일들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본질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주말의 절반을 넘긴 나의 일상은 어땠지. 요즘 핫하다는 송도 아웃렛에 가서 지금까지 본 다이소 중에 가장 매장구경을 열심히 했고, 싸구려 물건들을 11,000원 어치 샀다. 그런 다음 가리비와 바지락이 들어있다는 해물칼국수를 먹었는데 가리비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리비가 하나도 없다고 항의는 하지 않았다. 아마 시세가 비싸서 넣지 않았겠지 싶었다. 중고서점에 가서 그동안 눈여겨 보았던 책 두 권을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나서 저녁을 먹었고, 2006년에 발표된 픽사의 <카스>를 감상했다. 전형적인 내러티브의 구사였지만 재밌었다. 그리고 나서 시바사키 토모카의 <, 주말>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썼다. 나의 주말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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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8-06-10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이 잘 밴 비빔국수와 칼국수가 먹고싶어지는 리뷰에요. ^^

레삭매냐 2018-06-10 13:43   좋아요 0 | URL
그리하야 오늘 점심에 비빔국수와 김밥
을 시원하게 먹고 왔습니다 :>
 

 

[영화감상]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일시 : 2018년 6월 6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 사전 경고 :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한 솔로>가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6월 5일을 기점으로 해서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가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먹히지 않는 저주에 사로잡힌 스타워즈 시리즈라고나 할까. 난 과연 언제나 극장에 가서 스타워즈를 보게 될런지.

 

하루만 더 버텨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영화 체인들은 단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현충일에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으로 전국의 상영관을 도배해 버렸다. 관객의 초이스를 줄여 벌여 최대한의 이윤을 올리려는 대자본의 막강한 파워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뭐 안 보면 그만이겠지만 또 다가온 찬스를 놓칠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쥬라기 월드> 감상에 나섰다.

 

제프 골드블럼 아저씨만 제외하고 주인공들을 싹 갈아 치우고 리부트에 나선 <쥬라기 월드>. 이번에는 화산분출로 위기에 처한 이슬라 누블라의 격리된 공룡들을 구하라는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전작에도 크리스 프랫이 주연한 오웬 그래디와 합을 맞춘 바 있는 공룡 보호 협회(Dinosaur Protection Group) 소속의 공룡전문가 클레어 디어링(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열연을 맡았다.

 

이안 말콤 역의 제프 골드블럼은 화산폭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슬라 누블라의 공룡들을 구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회 청문회에서 강변한다. 이미 인간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공룡들의 운명을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반해 클레어는 소수의 공룡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록우드 재단을 대표하는 일라이 밀스(라프 스팰 분)의 권유에 오웬을 리쿠르트해서 랩터 블루 일병 구하기에 나선다. 공룡보호 협회 소속 컴퓨터 너드 프랭클린과 지아 로드리게스와 함께 이슬라 누블라에 도착한 일행은 기존의 폐허가 된 시설에 도착해서 공룡 추적에 나선다. 아 참 영화의 시작은 바다 속에서 백골이 된 안도어쩌구하는 공룡의 뼈다귀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이다. 뼈다귀 채취를 맡은 탐사선은 바다괴물 공룡에게 삼켜지고, 사다리를 타고 공룡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던 요원 역시 바다괴물 공룡의 먹이가 된다. 흠, 극장에 아이들이 상당히 많던데 괜찮을 지 모르겠다.

 

록우드 재단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모두 11종의 공룡들을 새로운 보호지(생추리)로 옮긴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슬라 누블라에서 생포한 공룡들을 전세계 수요자들에게 밀매하려는 가공할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녀석은 바로 ‘블루’라는 이름의 벨로시랩터였다. 오웬은 그저 블루를 생포하기 위해 미끼였을 뿐이었다. 용병대장 휘틀리는 거추장스러운 오웬을 마취총으로 쏘아 버리고, 블루를 포획해서 현장을 떠난다. 뜨거운 용암이 마구 흘러 오는 가운데, 마취에서 덜 풀린 오웬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도주에 성공한다. 한편, 폐허가 된 센터에서 공룡들을 추적하던 클레어와 프랭클린은 포악한 육식공룡의 추적을 피해 오웬과 합류해서 화산폭발이 시작되어 살아남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공룡 대열에 합류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오웬 일행은 이슬라 누블라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배에 가까스로 합류하는데 성공한다. 부둣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 브론토사우르스가 울부짖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용암 속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은 어쩌면 리부트된 시리즈의 엔딩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록우드 저택으로 향하는 가운데, 용병들의 총에 맞아 빈사 상태에 빠진 블루를 살리기 위해 티렉스가 갇힌 우리에 들어가 수혈할 피를 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인간들이 인도적이었던가.

 

오웬 일행이 그렇게 생존을 위해 싸우는 동안 록우드 저택에서는 또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선량해 보이던 일라이 밀스가 사실은 유전과학자 헨리 우와 결탁해서 새로운 유전자 조작으로 인도 랩터라는 괴물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쟁을 위해 기화(weaponize) 공룡 제작에 나선 것이다. 레이저타게팅과 후각을 이용해서 적을 추적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타고난 포악함으로 무장한 공룡이 전장에 투입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안 말콤의 지적 대로 그야말로 인류에게는 재앙이 되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영화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이 전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록우드 할아버지의 손녀 메이지 역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이 등치되는 것도 놀랍다.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고대의 율법 대로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었던 일라이 밀스 역시 공룡에게 희생당할 숙명이다. 괴물 인도 랩터와 벌이는 마지막 사투야말로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핵심이었다. 공룡 유물 전신관의 정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트리케라톱스의 무지막지한 유골의 쓰임새가 조금 궁금했었는데 엔딩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인도 랩터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에, 전작에서처럼 우리의 영웅 블루가 등장해서 자기보다 배나 큰 사이즈의 인도 랩터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대단했다. 메지이와 오웬이 메이지의 침대에서 인도 랩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빨간 모자 같은 베드타임 스토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일라이 밀스와 휘틀리는 노골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속물로 나오지만, 일라이가 감옥에 갇힌 오웬과 클레어에게 너희들도 자신과 다를 게 없다며 추궁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 씬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새로 단장한 쥬라기 월드, 이슬라 누블라의 공룡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 클레어였고 그곳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공룡 조련사로 활동한 게 바로 오웬이 아니었던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신의 영역에 도전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 않냐고 반문하는 일라이 밀스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막판에 록우드 재단의 지하연구소에서 배기장치가 고장나고,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날에는 전형적으로 날씨가 구질구질하다, 사이어나이드 가스가 갇힌 공룡들의 목숨을 위협하게 되자 클레어는 공룡들을 풀어놓았을 때 벌어질 위험을 책임질 수 있냐는 오웬의 말에 폐쇄철문을 여는 버튼 누르기를 주저한다. 그 때 마침 메이지의 결단으로 문이 열리고, 살아있는 생물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결단으로 공룡들이 마침내 세상에 풀려난다. 그렇게 익룡들이 노을 지는 석양을 날아다니고,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을 삼킬 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이 펼쳐지게 되는 것일까.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오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연을 선택한 랩터 블루는 캘리포니아 계곡에 늘어선 어마어마한 인류의 주택단지와 조우하게 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인류 생태계의 파괴라는 심오한 주제와 더불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공룡들이 스크린을 질주하는 장면을 마음껏 즐기라는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의 개막을 알린 오락영화의 신호탄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리부트된 공룡 시리즈의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일 즐길 만한 오락영화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뱀다리] 록우드저택의 공룡경매에서 시제품으로 소개된 인도 랩터에 대해 경매가가 마구 치솟자, 시제품이라며 안파는 물건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일라이와 군나르 에버솔 아저씨의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다. 경매가가 2,000만 달러를 상회하자 다시 만들면 된다고 했던가. 새로운 존재의 창조까지도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한 힘을 자랑하는 자본 권력의 천박하면서도 막강한 빠워에 다시 한 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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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다 내 꺼
캐리 지음 / 북하우스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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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었더니만 요즘 한창 빠져 있는 인스타에 연재되는 만화였다. 그리고 보니 요즘 인스타그램이 성공가도로 향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고나 할까. 즐겨보던 웹툰의 작가도 레코와 계약하고 오버로 올라가더라. 그동안 하던 연재는 모두 레코로 이동한다고 했던가. 물론 레코 유료 결제까지 하면서 볼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하기에 자연스레 발걸음을 끊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그 흔한 좋아요나 덧글 한 번 달지 않았구나.

 

항상 그렇지만 시작부터 삼천포로 빠졌다. 캐리 작가의 <재밌는 건 다 내 꺼!>를 보고서 실컷 딴 소리를 하다니. 일단 carry_grow라는 인스타부터 찾아 보았다. 역시나! 팔로우 수가 12.8만이나 되네. 대단하군. 그리고 연재된 컷 수도 500개를 훌쩍 넘기고. 방문한 김에 최신 연재도 한 번 훑어 보았다. 인스타로 보는 것과 확실히 진짜 책으로 보는 것하고는 천양지차였다. 역시 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보다. 요즘 웹툰 에세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매 컷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시태그다. 게으른 나는 해시태그도 잘 달지 않는 편인데. 업자 양반의 열정은 가열찼다.

 

자꾸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다. 웹툰 종이버전의 주인공은 작가 캐리 씨와 그의 신랑 캐리맨이다. 나두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키덜트 토이와 전자기기에 빠져 있다는 그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난 물론 어른이용 장난감은 좋아만하지 사지는 않는다. 어른이용이라고 해서 너무 비싸서. 아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독일 슐라이히 사에서 만들었다는 스머프 인형을 두어개 샀던가. 뭐 그건 캐리맨의 스톰트루퍼 장난감 만큼 비싼 건 아니니까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나도 치맥을 아주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 엄숙한 의식처럼 치맥을 즐기는 건 성스러운 행위일지니.

 

아무래도 결혼에 있어서 캐리 씨와 캐리맨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볼 적에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현명하고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로 얼마나 툭탁거렸던가. 나이와 관대함은 비례한다고 하는데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빠이팅에 나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고 한발짝 뒤에서 눈 앞의 현상을 다시 한 번 분석해 보시라. 그렇게 악 써가면서 싸울 일들은 절대 없을 테니.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우리.

 

오늘 책을 받고서는 진짜 금세 다 읽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하기도 하고, 나도 그땐 그랬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운동하겠다며 배드민턴 들고 나섰다가 저질체력 때문에 쉬 포기해 버린 기억에 어찌나 웃기던지. 캐리 씨와 캐리맨이여 아직 결혼생활의 진짜는 도착하지 않았으니 기대할 지어다. 언젠가 주니어가 도착하게 되면, 올망졸망했던 그대들의 일상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즐길 수 있을 때, 맘껏 즐기시게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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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 - 돈 드릴로 장편소설
돈 드릴로 지음, 정회성 옮김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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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마치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잡히길 기다리는 마음이었을까. 돈 드릴로 작가의 포스트모던 소설 <리브라>에 대한 이야기다. 기다리던 중에 월요일날 중고서점을 통해 드디어 수중에 넣을 수가 있었다. 700쪽이 훨씬 넘는 육중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은 JFK 암살사건을 다룬 <리브라>는 오랜 기다림 만큼이나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우선 돈 드릴로는 다양한 각도에서 JFK 암살사건에 접근한다. 희대의 미스터리인 만큼 엄청난 종류의 음모론이 도사리고 있다고 들었다.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63년 11월 22일 금요일 오후 12시 30분, JFK를 저격한 당사자 리 하비 오즈월드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1939년 생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오즈월드의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출생지 뉴올리안즈로부터 시작해서 브롱스, 댈러스, 포트 워스, 일본의 아쯔기 기지와 민스크까지 총망라하는 인생유전을 보라. 고등학교를 중퇴해서 17세에 해병대원으로 입대한 오즈월드는 15세에 독학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놀랍군! 자본주의 천국에서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소설가가 다루기에 이보다 더 극적인 인물은 아마 가상으로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언제나 현실이 가상을 능가하지 않았던가.

 

1963년 4월 17일을 기점으로 3년 전, JFK 취임 채 100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CIA 주도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겠다는 비밀공작으로 추진된 피그즈만 침공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정권과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을 붕괴시키는 탁월한 전과를 올렸던 CIA의 오만이 빚은 참극이었다. 윈 에버렛, 래리 파멘터 그리고 가이 배니스터로 구성된 반카스트로 인사들은 JFK 행정부의 쿠바 유연책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면서 대통령에게 혹독한 교훈을 안겨 주겠다는 생각으로 대통령 암살을 모의하기 시작한다. 물론 정말 대통령을 저격하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패한 암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실제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돈 드릴로가 구사하는 포스트모던 소설 <리브라>의 디테일은 가공할 만하다. 오즈월드의 일본 아쯔기 기지 시절 레이더 요원으로서의 삶, 권총오발사건으로 전역 후 모스크바 망명기도, 소련 귀화가 좌절되자 자해기도에 이르기까지 오즈월드의 내적 심리묘사는 물론이고 정말 방대한 자료 조사가 없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탁월한 내러티브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대가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느껴진다. 오즈월드를 모스크바에서 심문한 KGB요원 알렉 키릴렌코가 오즈월드의 진심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을 보라. 진짜 공산주의 천국 소련을 찾은 망명객인지 아니면 CIA의 스파이인지 진실과 거짓으로 중첩된 이미지를 선별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여담이지만, 오즈월드의 어머니 마거리트는 훗날 워런 청문회에서 아들 오즈월드가 CIA 요원이었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물론 워런 위원회는 그 증언을 가볍게 무시해 버렸지만 말이다.

 

아울러 실존 인물이었던 가이 배니스터 삼인방이 왜 그렇게 JFK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핍진성 있게 다가온다. 미국의 사실상의 식민지였던 쿠바가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해방을 맞이하게 되자, 석유개발권과 사탕수수 농장, 아바나 시가제조 그리고 카지노 사업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이권을 가지고 있던 사업가(혹은 비밀공작원)들이 카스트로 정권을 증오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불문가지다. 그들에게 호시절의 쿠바 탈환이야말로 삶의 최고의 목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돈 드릴로가 구사하는 내러티브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다.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 점 중의 하나는 돈 드릴로 작가의 세계 정세분석이다. 한국전쟁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성공한 미국은 쿠바에서는 낭패를 보았다. 반공주의 신념으로 똘똘 뭉친 반카스트로 카르텔에게 아이젠하워의 흐루시초프에 대한 유화정책와 쿠바 미사일 위기 그리고 훗날 미국에게 재앙이 되는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찰국가 미국의 위상 제고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앤드루 바세비치가 “워싱턴 룰”이라고 규정한 말대로, 오직 미국만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워싱턴 신조”는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은 믿음이었지만 미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여전히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소설의 제목 ‘리브라’(천칭자리)는 어디에서 온 걸까? 소설을 읽다 보면 JFK 암살범 리 하비 오즈월드의 별자리가 리브라라는 사실을 만날 수 있다. 천칭의 추는 어느 쪽으로도 금세 옮길 수 있다. 단 7초 만에 미국의 세기를 박살내버린 오즈월드는 포스트모던 소설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자칭 공산주의자, 전직 해병대원, 소련 망명자에서 돌아온 탕자, 러시아 출신 아내 마리나와의 결혼 그리고 친카스트로 이력을 무장하고 사회주의 천국 쿠바로 두 번째 망명을 꿈꾸던 몽상가라니.

소설 <리브라>가 중후반으로 진입하면서 초반의 긴장감이 사그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난독증과 가난에 시달리던 전직 불명예제대한 해병 오즈월드가 애당초 삼엄한 경호를 받는 JFK의 암살범이라는 게 과연 사실이었을까. 차라리 윈 에버렛, 래리 파멘터와 가이 배니스터 트리오가 보다 유력한 진범이 아닐까 싶은 심증이 드는 건 나만의 오독의 결과였을까. 무려 3년 동안,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작가가 구상한 나침반이 자꾸만 진짜 범인은 따로 있지 않을까가 지향하는 지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암살의 진짜 배후는 누구란 말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1991년에 본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가 생각났다. 당시 7초가 프레임 단위로 기록된 재프루더 필름을 기초로 한 3시간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영화였다는 점만 생각난다. 학교 후배랑 보러 갔었는데 1리터 짜리 음료수를 사들고 들어갔다가 아마 잠이 들어 버렸지. 다시 구해서 살펴 보니 소설과 상당히 비슷한 부분들이 보였다. 차를 사겠다고 나선 오즈월드, 쿠바로 망명하겠다며 멕시코 시티에 간 오스월드 그리고 사격장에서 라이플로 다른 사람의 표적을 쏘며 주위를 끈 이가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들을 영화로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넌픽션과 픽션을 넘나들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시로 없애 버리는 작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댈러스 역사상 치욕이 된 암살범 오즈월드를 운영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스트립 클럽 사장 잭 레온 루비(유대인)가 암살한 것도 연쇄 미스터리의 또다른 시작이다. JFK의 암살범이 유대인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는 자조섞인 한탄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집트 미라의 비극처럼, JFK 암살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된 이들이 하나같이 비극적으로 죽었다는 점도 이 희대의 사건을 영구미제 파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변주를 가하되 원전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대신 판단은 오롯하게 독자의 몫으로 돌리는 기술이야말로 소설 <리브라>를 읽는 재미가 아닐는지.

 

<마오 II>와 <화이트 노이즈> 읽기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는 나는 마침내 <리브라>로 돈 드릴로 읽기에 성공했다. 나의 다음 도전은 <화이트 노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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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28 16: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미국 작가는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가 남았네요. 예전에 노벨 문학상 시즌이 다가오면 이 두 사람과 필립 로스, 토머스 핀천을 함께 거론하기도 했었죠. 핀천은 은둔형 작가라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요. 그런데 이 분, 지금 살아계시는지 궁금하네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8-05-28 16:50   좋아요 1 | URL
토머스 핀천의 책은 그전에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에 사두긴 했는데 아직도 읽을 생각을
안하고 있네요 그것 참...

언급해 주신 두 분 외에 조이스 캐롤 오츠도
있지 않던가요 ㅋㅋ

서구 특히 미국/유럽 말고 동남아 인도 작가
들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면 합니다.

cyrus 2018-05-28 17:08   좋아요 1 | URL
훌륭한 여성 작가 한 분을 빼먹었네요.. ㅎㅎㅎ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와 《V》를 읽다가 포기했어요. 솔직히 재미가 없었습니다.. ^^;; 《중력의 무지개》는 아직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어요.

레삭매냐 2018-05-28 18:02   좋아요 0 | URL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달궁 독서 모임 때문에
거의 억지로 다 읽었구요...

<바인랜드>랑 <무지개>는 저도 비슷합니다.

무지개 시작은 정말 멋진데 말이죠. 벽돌책 읽기
도전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요.

AgalmA 2018-05-30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력의 무지개> 명성에 비해 좋게 읽었다는 평이 없어요ㅎㅎ;
이번에 볼라뇨 이북 특가 나와서 볼라뇨 읽기가 수월해져서 좋아요ㅜㅜ!

돈 드릴로는 정말 노벨상 받을만 하죠. 저는 필립 로스보다 돈 드릴로가 더 좋더라고요. 가공할 만한 구축! 읽으며 혀를 내두르게 되는!

레삭매냐 2018-05-30 22:43   좋아요 0 | URL
가장 눈에 잘 띄는 서가에 중력의 무지개
상하권이 떡하니 꽂혀 있지만 여전히
읽을 생각은 없네요... 역시나 소장각인가요.

아아 볼라뇨...
2666 야만적인 탐정들, 역시나 작년 가을
에 보기 좋게 도전했다가 나가 떨어졌습니다.

볼라뇨 읽기에는 중단편만 읽다 보니 장편
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네요.

돈 드릴로의 책은 이제 꼴랑 <리브라> 하나
만 읽어서 작가의 위엄을 느끼기에는 독자
의 허접한 내공으로는 어림짝도 없어 보입니다만.
 
한 톨의 밀알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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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항상 하는 대답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책과 제3세계 작가들의 책을 좋아한다고.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야 루이스 세풀베다나 로베르토 볼라뇨,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같이 특정한 이름을 대겠지만 제 3세계 작가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중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하게 언급되고 있는 케냐 출신의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그나마 유명세를 탄 덕분에 우리나라에 그의 대표작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번에 만난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톨의 밀알>은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를 그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이 갔다.

 

<한톨의 밀알>의 시공간적 배경은 독립을 앞둔 케냐다. 영국 식민주의자들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던 기쿠유의 마우마우단 운동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들어 알고 있었다. 19세기말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전 세계를 멋대로 지배하던 시절,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 역시 해가지지 않는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백인 지배자들은 케냐의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고, 흑인들을 형편없는 임금으로 자신들의 대농장에서 착취했다. 또 히틀러와의 전쟁에서는 그들을 동원해서 전쟁까지 치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도한 민족자결의 역사 앞에 케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왜, 조상들의 땅을 백인이 차지하고 우리는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가. 조모 케냐타로 대변되는 흑인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응구기 와 시옹오의 논픽션 리얼리즘 소설에는 다양한 갈등이 녹아 있다. 우선 백인지배자와 흑인피지배자 간의 어쩔 수 없는 갈등이 그 첫 번째다. 식민 종주국 영국은 독립을 염원하는 케냐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력을 동원해서 그들을 진압한다. 비상사태 선포로 백인들에게 끌려갔다가 수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룽가이 마을에 돌아온 무고는 졸지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영웅이 된다. 물론 무고 이전에 아예 대놓고 백인 지배자를 상대로 무력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처형된 키히카도 있다. 독립을 앞둔 기쿠유 전사들은 키히카가 밀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두 번째 갈등은 백인의 지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편에 붙은 마을 자치대장이 된 카란자와 그에게 사랑하는 아내 뭄비를 빼앗긴 기코뇨의 그것이다. 기코뇨가 악몽 같았던 긴 수용소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바로 뭄비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힘이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수용소에서 풀려나 마을에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카란자는 맹세를 어기고, 살기 위해 배신의 길에 들어섰다. 기코뇨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오로지 돈버는 일에만 몰두했다. 영국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을 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백인의 땅을 사겠다는 그의 꿈은 정치모리배의 획책으로 어그러진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독립이고 해방이었단 말인가?

 

바로 그 지점에서 응구기 와 시옹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위대한 기쿠유 독립투사 키히카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누가 키히카를 배신하고 백인에게 밀고를 했단 말인가? 소설에 나오는 모든 정황 증거는 자치대장 카란자를 가리킨다. 물론, 이 미스터리가 그렇게 쉽게 풀릴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톨의 밀알>은 한 시대를 구분 짓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열등한 민족이 국가 경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식민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종래의 서구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탈식민주의의 신호탄을 날린다. 물론 미숙함 때문에 시행착오도 겪을 수 있겠지만,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민족자결주의 앞에 이런 주장은 힘을 잃는다. 기쿠유 사람들은 주장한다, 왜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백인들이 우리 조상의 땅과 그 땅에서 나는 산물을 차지하느냐고.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의 주장에 더 공감이 갔다.

 

책의 제목인 <한톨의 밀알>을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의 조국 케냐 독립을 위해 가혹한 압제자의 폭력 앞에 수없이 스러져간 독립투사 아니 보통사람들의 삶에 대입해 보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거창한 말 대신 묵묵히 ‘맹세’를 지키며 대의를 위해 싸운 이들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진짜 영웅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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