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평선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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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년 전, 소설리스트를 통해 <호텔 로열>의 작가 사쿠라기 시노를 알게 됐다. 이제 소설리스트는 가고, 사쿠라기 시노는 남았다. 그동안 작가의 다른 책들도 볼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나의 블로그 독후감 기록장에서 그 시절 내가 쓴 리뷰를 찾아봤다. 관능소설 작가라... 작가의 부친이 직접 <호텔 로열>이라는 상호의 숙박업소를 운영하셨다고.

 

점점 쇠락해 가는 지방 홋카이도의 구시로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문학적 시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소설집 <빙평선>에는 모두 6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 <설충>에서는 도회로 부나방처럼 성공을 쫓아 나갔다가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귀농해서 낙농업에 전념하고 있는 남자 다쓰로와 그의 불륜상대 시키코 그리고 필리핀에서 인신매매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집온 마리가 차례로 등장한다. 가업인 젖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남자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쓰로에게 반강제로 외국인 신붓감을 안겨주는 그의 부모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다쓰로가 도시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과연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옛친구 시키코와 사일로에서 밀회를 가지며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파렴치해 보이는 다쓰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문득 일본의 농촌도 우리네 사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부모 세대의 모습과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도시에 나가 보란듯이 성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들의 충돌이라고나 할까.

 

다음 작품 <안개 고치>에는 오랫동안 스승의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해온 마키 씨가 스승에게 독립을 인정받고 어엿한 바느질쟁이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쩔 수 없니 김숨 작가의 <바느질하는 여자>가 바로 연상됐다. 김숨 작가가 긴 호흡으로 진짜 장편을 구사해냈다면, 사쿠라기 시노는 조금 빠른 템포로 달려간다. 지난주에 이른 여름휴가로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에 갔었는데 전시실을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 소설에 등장하는 시침질과 겹봉 같은 바느질 용어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역시나 책의 위력이란! 하나의 어엿한 직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스케치해낸 작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엿볼 수 있는 장인-도제 시스템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시골로 시집온 도쿄 며느리는 가부장 시스템의 영속을 위해 아들을 낳아 주기를 바라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시달려야 하고, 옆집 숟가락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웃들이 넘실대는 시골에서의 삶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젊고 변죽 좋은 초등학교 교사와 불장난으로 실화에 이를 뻔하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는 균형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 교코는 딸아이를 데리고 지긋지긋해 보이는 시집을 떠나게 되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살아야 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내가 얽매여 있는 일상이 얼마나 공고하고 루틴을 깨는 게 쉽지 않은지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이른바 관능소설 작가로서 사쿠라기 시노의 실력은 <바다로 돌아가다>에서 폭발한다. 이제 막 지난 10년간의 엄격한 도제 생활을 마치고 이발사로 독립한 게이스케는 25살이다. 혹독한 홋카이도의 계절들이 차례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는 스승이 물려 준 손님과 새로운 손님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실부모하고 오로지 이발 기술 하나로 세상에 맞서온 청년 앞에 어느 날 기네코라는 이름처럼 비단결 같고, 매혹적인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옷차림하며 범상치 않은 외모로 그저 오가는 평범한 손님인지 아니면 미래의 연인인지 모를 그런 위치가 주는 긴장감 속으로 독자는 내몰린다. 아니 이렇게 격정적일 수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더더욱 고혹적이었을까? 게이스케 청년과 팜므 파탈 기네코의 격정적 아니 관능적 로맨스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솟아오른다고나 할까. 그런 애증의 쌍곡선은 맨 마지막에 배치된 표제작 <빙평선>에서 그야말로 바다 위로 솟구치는 범고래의 점프처럼 튀어 오른다.

 

아 그전에 5번째 <물의 관>이 있었지. 이제 병치료도 서비스업이 된 지 오래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매끄러운 실력으로 과잉진료로 서슴지 않고 권하는 니시데 원장과 그의 도제(?)이자 애인인 료코의 관계로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15살 연상이라는 나이차도, 특별수당이라는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둘의 욕망은 사위를 가리자 않고 분출한다. 하지만 료코는 자신이 관계를 중단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관계가 지속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시골 치과의사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보고 과감하게 니시데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비로소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전문의로 거듭나게 된 료코는 여전히 니시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니시데, 병색이 완연하다는 점 말고는 별 다른 이야기 없이 떠난 그가 얼마 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치과의사에게 치명적인 반신불수 증상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니시데의 장끼인 과잉진료가 이슈가 되면서 잘 나가던 그의 클리닉은 파산으로 내몰린다. 이에 구원투수로 나선 료코가 옛 연인을 건사하기에 이른다. 뭐랄까 글로 표현하기에는 오묘한 그런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더 나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 그들이 잘 먹고 잘 살았는지 아니면 새로운 파국에 직면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니까.

 

긴 여정을 거쳐 마지막 표제작인 <빙평선>에 도달했다. 기본적으로 <빙평선>은 어부 출신 아버지로부터 막말에 가까운 학대를 받으며 성장해서 자력으로 도쿄대와 재무성을 거친 엘리트 도고 세이치로와 마을 사람들에게 변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천대를 받은 도모에의 러브 스토리다. 세이치로 아버지의 학대는 아들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아버지와 격하게 한판 붙은 날, 세이치로는 5천엔을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도모에를 찾아 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시나 격정적 러브 씬. 사쿠라기 작가 양반은 역시나 관능소설 작가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세이치로는 다시 도모에를 찾는다. 둘에게 행복한 시간들이 펼쳐졌을까 과연? 아마 아닐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주변의 시선과 연이어 벌어진 방화사건은 관계의 파국의 전조처럼 슬며시 다가온다. 엔딩으로 치닫는 가운데, 빙평선 너머 바닷가 위를 위태롭게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홋카이도 구시로를 배경으로 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글을 보다 보니 문득 태화강이 흐르는 울산을 배경으로 지역색 강한 작품을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정정화 작가 생각이 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오키상 수상 작가라는 아우라가 있긴 하겠지만, 과연 어느 작가가 첫 작품에서부터 이런 애잔한 에로티시즘을 구사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거침없고 대범한 에로티시즘을 마치 무슨 공깃돌 놀리듯 관계의 핵심에 배치하고 애증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참으로 농밀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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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4 1 - 결혼이란 달면서도 씁쓸하구나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북치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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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싸이월드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인스타그램이 대세인 모양이다. 인스타를 통해 수많은 예비 웹투니스트들이 피고지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낢 씨 같은 기존 작가들에게도 인스타는 기회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아니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분히 홍보를 하고, 콘텐츠를 전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말다를 거듭하던 <낢이 사는 이야기>와 다시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무려 이과장과의 레알 신혼 이야기란다. 작가의 어머님처럼 올빼미과인 낢 씨와 바른생활 싸나이라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건축설계사 이과장 씨의 딴따따딴~ 딴따따딴으로 생활밀착형 웹툰은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요 작가의 웹툰에는 기똥찬 그런 이야기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마 거창한 것을 싫어하는 그런 스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우리네 일상 어디에서고 걷어올릴 수 있는 그런 소재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든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보고 싶다면, 인스타의 또다른 페이지들을 찾으면 되니깐. 그런 인스타들은 주변에 차고 넘치지 않던가.

 

아무래도 집안의 청소를 맡고 있다 보니 바른생활 싸나이 이과장의 습성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물론 그처럼 열심히 그리고 잘하지도 못하는 청소지만 청결 유지와 음식물 쓰레기 처분에 힘쓰는 그의 모습에서 아 짝지들은 다 저렇게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다 보니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되는 장면에서도 찡했다네 동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빡시게 돌아간다면 누구라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오로지 호구지책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나...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레알리즘이 엄습해 오는 순간이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장면들이 재밌었다. 물론 동물을 어려서는 좋아했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마당에,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하나만으로도 벅차기에 그저 낢 씨를 존경할 따름이다. 뮬론 녀석들을 통해 퍼올리는 소재사냥도 쏠쏠할테니 서로 윈윈 시츄에이션일까나. 고양이 삼총사 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카 불패를 비롯해서 모두가 소재일세. , 그리고 결혼한 뒤에 따라붙은 가족계획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사양한다고 밝히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잘할 터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두시라는. 그러니까 일종의 경계선 긋기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에라도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는 생활만화가의 고뇌일까, 뭐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웹투니스트로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관심을 가져 주시는 건 여까지라는 선언.

 

웹툰을 신나게 읽을 적에는 무언가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막상 타이핑을 하다 보니 기운이 다 빠져 버렸다. 나는 오늘도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버려야 하며, 먹고 남은 설거지들을 처리해야 한다. 엊그제 먹은 오징어 볶음의 잔재들 때문에 일차 설거지에서 진을 뺐더니 영혼을 털린 듯한 느낌이다. 격렬하게, 진심으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녁이다. 뭐 그래도 이렇게 리뷰도 쓰고, 6개의 단편소설 가운데 딱 절반 정도 남은 사쿠라기 시노의 <빙평선>도 마저 읽어야 한다. 낮보다 선선해 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날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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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영의 참모들 - 일본 군국주의의 광기
위톈런 지음, 박윤식 옮김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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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술술 잘 읽힌다. 수년 전에 샀지만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결국 다 읽게된 위톈런의 <대본영의 참모들>에 대한 첫 느낌이다. 아무래도 역사를 전공한 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군더더기가 없고 나같은 아마추어들이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한때 작전의 신(허명이었다)이라는 쓰지 마사노부로부터 시작해서 만주사변의 원흉 이시와라 간지, 도쿄 전범재판의 슈퍼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일본 육군 최악의 전투였던 임팔작전의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에 이르기까지 메이지 시절부터 쇼와 군벌 시절을 아우르는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들이 화려하게 책 속에서 명멸한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전을 계기로 부국강병이라는 논리 아래 폭주를 거듭하기에 이른다. 그 중심에는 바로 삿초동맹으로 일본의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사쓰마번과 조슈 번의 사무라이들이 있었다. 일왕을 정점으로 일왕에게만 충성을 다하겠다는 일단의 군인들이 군국주의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육군사관 학교 출신 엘리트 군인 중에서도 정예 소수만을 선발해서 육군대학(육대)에 진학시켜 훗날 일본 군계를 좌지우지할 일단의 군인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회 수석 졸업생은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 도조 히데노리였다.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지휘했던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엄청난 전과를 올리는데 성공할 수가 있었다. 엄청난 액수의 전쟁배상금과 타이완 할양, 조선에서의 우위권 확보는 전쟁의 목적과 규모 그리고 범위를 엄정하게 정한 이토의 혁혁한 공이었다. 하지만 제국 러시아와의 전쟁은 달랐다. 청일전쟁의 전비를 엄청나게 능가하는 비용과 수많은 전상자수를 보라. 문제는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치르고도 청일전쟁에 비해 얻은 게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의 망조가 시작된 게 아닐까. 일본인들이 군신으로 떠받드는 노기 마레스케가 뤼양 포위전에서 보여준 무모한 반자이돌격을 그대로 신봉해서, 태평양전쟁 당시 과달카날 전투에서 그대로 재현한 참모들의 무능함을 비웃기도 한다. 군신이 아니라 바보장수가 더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문제점은 문민정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의 지휘권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가 아닌 일왕에게 귀속시키면서 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군의 운좋은 승리는 일본 국내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폭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육대 출신 참모들의 실력이라도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사회에서 격리된 채, 어려서부터 군대 문화만 체득한 이들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책상머리에서 벌이는 작전만 최고라고 생각한 이들이, 현대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병참 문제를 도외시하는 바람에 작전 지역에서 실제 작전보다 보급을 위한 약탈에 전념하느라 작전을 망친 게 한두 번이던가.

 

어쨌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바야흐로 세계열강들의 인정을 받게 된 일본제국의 군인들의 폭주가 시작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육대 출신 엘리트 참모들이 있었다. 일본 육군의 이단아이자 천재였던 이시와라 간지의 경우를 보자. 만몽생명선이니 최종전쟁론 같은 황당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건설하고, 확전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시와라의 주장은 바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군령 계통을 무시한 후배들에 의해 1937년 노구교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라는 전면전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임팔작전 당시 사령관이었던 무타구치 렌야가 일선 지휘관으로 활약했다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고 싶다. 황도파와 통제파의 투쟁, 태평양전쟁 당시 고질적이었던 육군과 해군의 대립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40년 전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은 일본군은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인 대륙의 장쉐량의 동북군벌과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상대하면서 기세가 올랐다. 제국주의 선배인 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후발주자 미국의 앞마당인 동남아시아와 서남태평양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조선과 타이완, 만주 그리고 중원까지 집어삼키는데 성공한 일본 군부의 가상적국은 원래 북방의 소련이었다. 작전의 신이라는 엉터리 참모 쓰지 마사노부가 드디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의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기계화부대에게 참패당한 관동군의 주역들은 아무래도 수월한 상대인 남방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끝까지 파국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현 시점에서 일본의 중국 지배까지 인정하고, 전쟁에 꼭 필요한 물자인 석유금수 조치의 해제와 일본의 미국내 자산 동결을 취하하겠다는 훨씬 완화된 조건을 내걸지만, 폭주하는 일본군 참모들은 뚜렷한 전쟁목표도 없이 오로지 주전만을 외친다. 도대체 일본 군부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정한 전쟁의 목표가 존재했던가. 오로지 침략의 확대만이 그들이 원한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공업국가 미국을 상대로 해서 승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진주만 기습이라는 도박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오판한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결정적 전기를 내주기 전까지 필리핀, 홍콩, 말레이반도, 싱가포르 그리고 바타비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승전고를 울려왔다. 딱 거기까지가 일본군의 호시절이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비로소 미군의 실력을 알았음에도, 굳이 이단아 출신 천재 참모 이시와라 간지의 남양군도에서 후퇴해서 방어에 주력하라는 고언을 일본 군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미나가 교지의 사주로 시작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는 대전의 서곡이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어디 그런 엉터리 참모가 도미나가 교지 하나 뿐이었던가. 상세한 정세판단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정보참모들의 비관적인 의견들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무모한 돌격작전으로 무수한 병사들의 생명만 희생시킨 자들이 바로 육대 출신 무능한 참모들이었다는 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물론 말미에 등장하는 호리 에이조 같이 적의 정세를 뛰어나게 분석해내는 참모도 존재했겠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소수의견이었을 뿐이다. 상관에게 보내는 정보마저 차단하고, 개전 당시 외교상대국 국가원수의 전보까지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하극상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이들이 바로 국가가 애써 양성한 엘리트 참모들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도조 히데키 같은 정치군인들은 종전 후, 군사재판에서 전범으로 분류되어 교수형을 당했지만 참모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하긴 그전의 그들이 중국 대륙과 남양군도에서 숱하게 저지른 하극상과 쿠데타 기도, 작전실패에 대해 그들의 상관들도 역시 책임을 묻지 않았던가. 당연히 A급 전범으로 처벌받았어야 할 쓰지 마사노부가 전후 잠행해서 장제스 휘하에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 시점에 등장해서 일본 정치인이 되었다는 점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한 때는 국가의 동량으로 떠받들어 지던 일단의 엘리트 군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대신, 자신들의 영달과 입신양명만을 위해 전쟁 확대를 주장하고 결국 국가를 패망으로 이끌었다는 점이야말로 <대본영의 참모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핵심이다. 만날 소설만 읽다가 간만에 읽은 역사평설이었다. 흥미로웠다.

 

* 과다한 오탈자와 오기 등등으로 별점 하나를 뺐다.
일본책을 번역해서 그런진 몰라도 문제가 심각하다.
출판사에서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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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2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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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0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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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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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PIN 시리즈 2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를 읽었다적은 분량이어서 그런지 정말 빨리 그리고 스릴러를 읽는 듯한 느낌에 완전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동시에 기시감도 들었는데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그리고 구병모 작가의 <파과>가 연상됐다그렇지 <당신의 노후>에도 킬러가 등장하지다만 의뢰자가 복수나 원한을 품은 개인이 아닌 준국가기관이라는 점이 다를 뿐그것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대원칙 아래 출범한 국민연금공단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주인공 70세의 장길도 씨는 최근 국민연금공단에서 퇴직한 쌩쌩한 초보 은퇴자다문제의 시작은 그의 9살 연상의 폐렴을 앓는 아내 한수련 씨가 요양원 생활을 위해 장길도 씨가 대대로 물려 받아온 집을 팔고자 했을 때지난 수십 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해 왔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아불싸다른 건 몰라도 초고령 시대에 국민연금은 가입하면 안되는 그런 것이었다국민연금공단에서는 장길도 씨를 비롯한 외곽조직 TF을 가동해서국민들의 소중한 연금을 축내는 버러지” 같은 노인들을 교묘하고 무척이나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거해 왔다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국민연금의 비밀 외곽조직은 조직의 설립과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다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세금처럼 연금을 걷어간 뒤막상 노인이 되어 연금에 의탁하게 되었을 때 과다수령을 이유로 해서 수혜자들을 제거한다는 게 말이 되나그리고 장길도의 아내 한수련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양파인형술사 그리고 곱등이 등도 역시나 연금공단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처지이고훗날 제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그들은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70세 노인이지만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자랑하는 장길도는 아내 한수련이 먹고 싶어하던 사과 두 알'을 구하기 위해 한겨울 40KM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서 구해온 추억에 근거해서 지난 40년 세월이 조금도 길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그렇지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였지누구에게 사랑이 대가를 갈구하던가절대 그렇지 않다.

 

이런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와 연금공단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불필요해진 잉여자원노인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과정을 교차해서 노련하게전개하는 박형서 작가의 실력에서 은근 내공이 느껴졌다사실 그의 작품은 <당신의 노후>가 처음이라 다른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구사했는지 당최 알 도리가 없지만 한 편으로도 뭐랄까 작가의 스타일이 잡힌다고나 할까.

 

작가가 <당신의 노후>에서도 지적했듯이 사과 두 알의 상징은 무엇이라도 가능했던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젊은 시절에 죽음을 상상했을까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숙명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다만우리의 주인공 장길도가 파란만장한 싸움 끝에 연금이사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부탁했던 것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야말로 모두가 누리고 싶은 마지막 소원이 아니었을까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이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는 않은가라며 자신의 운명을 내거는 싸나이 장길도의 모습에서는 무력한 우리의 비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는 이의 외롭고 고독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른 휴가를 다녀오느라 지난 며칠 동안 책을 한 번도 펴지 못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던 차에 읽기 시작한 <당신의 노후>로 내가 마음대로 정한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된 듯 싶다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읽다 말고 접은 책들이 있는데이번 여름에는 그런 책들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이렇게 자유롭게 책을 읽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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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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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4: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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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로그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우희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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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소설가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서 선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반대인가. 헷갈린다.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다. 이번에 만난 세계문학상 우수작 <러블로그>의 작가 우희덕 실장님은 숭실대 입학관리팀에서 일한다고 한다. 신기하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소설을 썼단 말이지. 그것도 근엄한 소설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문단에서 코미디 작품으로.

 

하긴 어디 문학에 정석이 있었던가. 그리고 보니 일전에 읽은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도 어쩌면 비슷한 궤적으로 내게 날아왔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러블로그>도 마음에 들었다. 좋게 말하면 언어유희, 좀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말장난일지도 모르는 그런 언어들의 구사가 난무하는 경박한 스타일이 나는 마음에 들었단 말이다. 무비자에서 무자비로 무시로 넘어가는 그런 상상력의 발현이란. 그러니까 우희덕 실장님은 정면으로 문학에 도전장을 들이민 것이다. 이렇게 재밌는 코미디로도 작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가일까.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코미디 잡지를 표방하는 <더 위트>의 전속작가인 주인공이 인천 앞바다에서 소금을 격정적으로 캐던 편집장에게 캐스팅되어 꽤 오랫동안 소설 집필에 전념했지만, 라이벌 잡지 <코미디킹>의 약진 덕분에 재계약 성사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무리 순수한 문학을 추구하는 문학판이라고 하지만 자본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살벌한 자본주의 정글의 논리가 아니겠는가.

 

당장 죽어도 할 말 없는 주인공 작가 양반은 그렇다고 해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원고를 에디터에게 들이미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말의 완성을 앞두고 자주 들르는 커피공화국에서 소중한 원고를 분실하는 비극적 사태를 맞게 된다. 그렇지 이야기가 이 정도의 위기는 있어야 하는 법이지. 지구대에서 오늘도 승진을 꿈꾸며 공무원도하가를 부르는 임 순경의 도움으로 분실된 원고 추적에 나서는 주인공 작가의 눈물 겨운 스토리가 이어진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구사하는 언어유희에 흠뻑 빠져 그만 내러티브의 전개를 쫓아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대개의 경우, 후자에 중심을 두어 책을 읽곤 하는데 이번엔 낭패를 당했다. 아니 그런데 그것도 어쩌면 작가의 치밀한 계획이 아니었을까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두바이 데저트의 모습들, 마스가 아닌 경기도 화성에 자주 간다는 나사 컴퓨터 수리회사의 주인장과 나눈 그런 대화들만이 뇌리에 각인되어 버렸다. 공무원도하가, 공무원도하가... 무비자가 무자비냐 등등. 인연은 돌고 돌아, 결국 만나게 되어 있는 사람들은 만날 것이며 헤어질 운명이라면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결국 헤어지고 시간이 약이라는 주술만 되뇌이게 될 것이 아닌가. , 결말로 치닫는 가운데 승진에 목을 멘 임 순경 나으리께서 내린 쇼킹한 다음의 처방은 어떠한가. 그러니까, 그가 벌인 CSIFBI 뺨치는 놀라운 정밀수사에 의하면 그 어느 누구도 커피공화국에서 그의 원고에 손을 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결론은 마감의 압박에 시달린 무명 작가의 정신분열적 정신상태가 만들어낸 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고는 처음부터 존재한 게 아니었다. 그동안 실낱같은 단서들을 기초재료로 삼아 로그 아니 블로그를 뒤지며 잔향을 풍기는 인연을 뒤쫓았건만. 또 의외로 그런 초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작가가 냉큼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아니 그만큼 커피공화국 아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시전하는 공권력의 파워가 드셌단 말인가 하...

 

다 필요 없고 난 이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아무래도 작라로서 첫발을 내딛다 보니 조금 핍진성이랄까 부족한 점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첫 출발이 상큼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게다가 장르가 무려 코미디이지 않은가 말이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선택 하나만으로도 다른 결점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다고 나는 단언한다. 덤으로 곳곳에서 숨겨둔 부비트랩에서 빵빵 터지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난 웃기고 싶다, 우희덕 실장님의 의견과 주장에 나는 백퍼 공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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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