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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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쪽 이렇게 늙고 병들었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있는 곳은 여전히 그 봄밤의 태영음반사야

1971년의 봄 서군의 이미지를 사랑한 나의 스무살 고모. 45년의 기나긴 세월

 

98쪽 (여전히 불의가 횡행하는 시절에) 나만의 의식적 함몰구역이 존재한다

한나와 안수 리의 이야기

1967년 동백림 사건, 니체 철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을 출입한 한국 사람들을 밀고한 스파이 - 안수 리

 

지난 1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기 시작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이번 주말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돼서 읽어야 해서 어제(7월 10일)부터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 때 한 절반 가량 읽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일까? 반가운 기시감에 진도가 쑥쑥 나간다.

 

최근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나 손보미 작가의 <디어 랄프 로렌>에서처럼 한국 소설의 소재와 배경은 더 이상 한국적인 공간이나 주인공들이 아니구나 싶다는 트렌드가 읽혀졌다.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미국의 뉴욕으로 그리고 베를린으로 마구 뻗어 나가는 기세다. 표제작 <빛의 호위>에서도 벨기에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뉴욕을 넘나드는 그런 공간 점프를 선보이지 않던가. 친구 권은에게 전달한 카메라가 그녀의 인생을 뒤바꾸게 하리란 것을 화자는 과연 알았을까. 현재의 비극도 어쩌면 그 카메라 덕분에 발생한 게 아닌가. 쌩뚱맞게도 작가가 사진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빛의 호위’가 카메라 셔터 작용에 따라 필름에 감광되는 건 맞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사진의 이미지를 보게 되는 건 현상한 필름을 통해 빛이 쬐어진 인화지라는 걸 말이다. 인화액에 담겨진 인화지 속에 흐릿한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사진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무언가 묘한 이물감 내지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나같은 보통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예술가들의 잦은 등장이야 소설 제조를 위한 방법론이라 치고, 우연히 본 사진을 보고 작업을 하게 된 재미 교포 화가의 초대를 받아 물설고 낯선 미국의 플러싱을 찾는다는 설정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심장병을 앓는 동생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다 만난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강도를 만나 객사한 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언니, 잘 가>도 그렇다. 그들의 절절한 사연에는 공감하겠지만 언니의 부고를 듣고 미국을 찾았다가 현지에서 만난 인도계 미국인 남자와 살게 되었더라고. 이거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소위 핍진성이 결여된 게 아닌가. 우리네 삶의 팍팍한 이면에 메스를 대듯, 파고드는 내러티브에 호감을 느꼈던 독자는 뒷걸음치게 된다.

 

58쪽 망각을 거부하는 것... 안젤라의 마지막 선물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사회 생활에 지쳐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말에 덜컥 적금을 깨서 내주었다가 낭패를 당한 여자가 남자를 찾아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자신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미국으로 떠난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돈을 못받게 되어 채권자 자격으로 그 남자의 집을 찾은 걸까. 후자라면 고소 고발이라는 절차가 있지 않나? 철저한 이방인 신세로 맥주를 벗 삼다 만난, 청소 용역직원 안젤라와 뚝뚝 끊기는 대화 속에 서로 교감할 수 있었노라는 이야기도 참.

 

122쪽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

 

개인적으로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에서 수작은 <산책자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철학 강사/교수로 활동하다가 대학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되어 새로 개발된 도시 변두리의 편의점에서 카운터 직원으로 일하는 홍미영 씨의 이야기다. 당연히 벌어 놓은 돈은 없고, 병들어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운명, 비정규직으로 신산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전직 강사님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뽑아낼 수 있는 신파의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슬프다 슬퍼. 잠시 육신의 안분지족을 위해 홀아비 편의점 주인과의 로맨스를 꿈꿔 보기도 하지만, 꿈깨시오 올시다. 소설을 더 맛깔나게 만드는 건, 중국 유학생 제자 메이린이 라오슈(노스승)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독일 유학 중에 보내오는 이메일 메시지다. 한국 유학 시절 이미 꽃같은 동료 이선의 죽음을 체험한 메이린은 라오슈마저 그런 운명에 처하는 게 아닌가 하며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뒤에 가서 밝혀지는 진실은 메이린이 걱정하는 건 라오슈의 안위가 아니라, 소통과 거절의 연속 가운데 라오슈마저 세상을 등지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뽑아내다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자의 행복>의 광휘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다른 작품들은 죄다 이 작품의 그늘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린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머지 소설들에서는 전 세계로 퍼져 디아스포라된 한국인들의 이미지와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소멸해 가는 이야기들을 엿볼 수가 있었다. 6살 때 철도길에서 발견되어 저 멀리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 처자 정문주 혹은 나나가 직면하게 되는 복희식당 할머니의 소멸. 유한한 존재의 당연한 소멸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일 수밖에 없다. 소멸에 대한 현실 인식은 허무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노동현장의 크레인에서 떨어져 장이 파열되어 죽은 동료 송의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던 펄떡 거리는 욕망을 드러내는 남자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역시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균은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 대신, 죽은 동료의 어머니가 해주는 뜨거운 밥상을 받고 싶다는 애정에 대한 갈망을 날것 그대로 상에 올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리뷰에 담으려고 몇몇 구절을 표시해 두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감상들이 모두 휘발되어 버려, 글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작품의 편차가 있다고 해야 하나. 어떤 작품들은 좋고 또 어떤 작품들은 그렇지가 않다. 무시로 등장하는 해외 이야기/디아스포라의 전개가 나는 왜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진 걸까. 지구촌이니 글로벌리즘이니 하는 서사구조가 내게는 생래적으로 맞지가 않는가 보다.

 

어쨌든 책은 이제 다 읽었으니 나머지는 내일 달궁 독서모임에 가서 들어 보도록 하자.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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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3 13:39   좋아요 1 | URL
에르곤이라는 특질을 가진 문학에 대한 기대
가 점점 커지는 모양입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상상을 가미한 문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네요.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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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번에는 동일본 원전사고 이래, 에너지 자원을 아끼는 차원에서 냉난방과 냉장고를 포기하는 쾌거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 타깃은 먹거리다. 저자는 누구 못지 않게, 각박한 현대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보다 좋은 학교, 그리고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 다니며 성공가도를 달려 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저자에게 행복을 담보했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저자는 적은 비용을 들여 사는 미니멀 라이프를 사방에 적용한다. 냉난방를 줄이는데 성공한 저자는 싸고 빠르고 맛있게라는 신념 아래, 채소절임(쯔게모노)이 풍요료운 삶을 담보할 수도 있다는 간략하지만, 피부에 와 닿은 진실을 독자에게 설파하기 시작한다.

 

요즘 방송을 보면, 한물 가긴 했지만 갖은 양념과 비법으로 무장한 셰프들이 현란한 기술을 동원해서 시청자들의 침샘과 식욕을 자극한다. 저녁 시간대를 장악한 먹방 방송은 또 어떤가. 프랑스 요릿집을 냉면가게로 착각한 어느 PD가 홍보를 전제로 부가세 포함한 770만원에 방송을 타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는 시대가 아닌가. 무언가 남보다 맛있고, 미각을 자극하는 플레이팅된 요리를 먹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냐, 아냐 그게 아니야라고 에미코 씨는 외친다. 그런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냉장고도 없던 에도시대 스타일의 소박한 밥상으로 돌아가라고 목놓아 외치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아, 책을 읽는 순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과 실천은 원래 별 개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싸고 빠르고 맛있게 먹고 살자

 

역시 혼밥의 기본은 밥이다. 사흘 마다 밥을 한 번씩 한다는 이나가키 씨는 그야말로 밥 예찬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도시대로 돌아가, 그 좋다는 일제 코끼리 밥솥도 아닌 나무 밥통에 밥을 담아 둔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그렇게 주창해 마지 않는 미니멀 라이프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나가키 씨에게 요리의 재료는 그야말로 사방에 널렸다. 도심에서 나는 민들레마저 생포하다가 나물로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에서는 쫌 꺼려졌지만 말이다. 아니 배기가스에 오염된 민들레를! 아직도 난 미니멀 라이프하고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거의 만능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쌀겨된장으로 만든 쌀겨절임 이야기는 또 어떤가. 물론 허연 곰팡이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마치 무슨 아이 키우듯 애지중지하며 냉장고에서 내와 싱크대 밑으로 이사간 쌀겨된장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너무 좋더라는 이야기에서는 정말 웃음이 빵빵 터졌다. 이 양반 정말 자신의 삶에 애착을 느끼시는구나. 그리고 중간에 삽입된 저자의 먹거리 사진은 멋졌다. 역시 심플한 게, 좋은 걸까?

 

퇴사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어준 이기들을 떨쳐낸 이나가키 씨는 어려운 걸 독자에게 주문하는 게 아니다. 사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주[삶의 문제]에 이은 식[먹거리]이야말로 사람들의 또다른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호화로운 그리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은 가끔 외식으로 처리하고 평소에는 저자가 구사하는 그런 간편 조리식을 먹는 게 어떨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먹다 보면 오장육부가 건강한 ‘대장여인’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고 한다.

 

기존에 우리가 요리를 위해 마련한 온갖 조미료들과 요리책 그리고 다양하지만 잘 쓸 일이 없는 요리기구들도 죄다 치우라고 한다. 물론, 모든 게 일인 가구에 맞춘 게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아이도 하나 없는 싱글 여성의 라이프가 아니던가. 가족 구성원 중에 아이 하나만 추가되더라고, 그런 미니멀 라이프의 환상은 바로 깨질 텐데 말이다.

 

어쨌건 저자의 메씨지를 확실하게 알아 들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단순명료하게 살자 뭐 그런 게 아닌가. 나의 경우를 보면, 당장 책부터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많은 책들을 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나의 미니멀 라이프 실천은 책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후반기에는 혹독한 책장 다이어트에 돌입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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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7-12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책장 다이어트 꼭 성공하셔요!
그래서 그 비결을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ㅎㅎ
전세 기간 끝나고 이사할 철이 돌아올 때마다 책 때문에 울상인 날들 이제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우째 책은 점점 늘어만 가고.....T.T
암튼 레삭매냐님의 혹독한 책장 다이어트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레삭매냐 2018-07-12 17:09   좋아요 1 | URL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과연 북 다이어트
가 성공할 진 모르겠습니다 -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는데 아유 참 ...

장마라 책들이 축축 늘어지는 걸 보니
제 맴도 답답해지는 그런 느낌적 느낌이랄까.

목나무 2018-07-12 17:13   좋아요 1 | URL
장마에 지친 책들 걱정하시는 걸 보니 역시 레삭매냐님의 책 다이어트는 당분간은 힘들 것 같네요. ^^;;
같이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책!
 
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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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로맹 가리의 저작들은 제대로 다 읽은 게 하나도 없는 걸까. 수차례 완독에 실패한 <새벽의 약속>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리고 <솔로몬왕의 고뇌>도 그렇고. 지난주에 산 <별을 먹는 사람들>을 기점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로맹 가리 책들 읽기에 나서야 되는 게 아닐까.

 

소설 <별을 먹는 사람들>의 배경은 라틴아메리카의 흔한 독재국가다. 물론 정확한 나라 이름은 소개되지 않았다. 쿠혼 인디언 출신의 악랄한 독재자 호세 알마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내 맘대로 그 나라 이름을 ‘쿠호니아’라고 명명하겠다. 내 마음이다. 이 희대의 독재자 알마요는 미국 출신 젊은 TV전도사이자 사탄의 무리와 싸우는 현대판 십자군에 가까운 호와트 박사(진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언제나 어깨에 자신의 분신인 인형을 달고 다니는(어, 고양이를 한동안 어깨에 달고 다니던 연예인이 떠오르는데) 덴마크 출신 복화술사, 미국으로 망명한 연예흥행사 찰리 쿤, 물구나무 서서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루마니아 집시 스타일의 바이얼리니스트 그리고 미국 변호사를 초대해서 자신이 운영하는 쿠호니 아에서 제일 가는 나이트클럽 <엘 세뇨르>에서 성대한 쇼를 기획한다.

 

진짜 문제는 이 서커스단의 흥행이 아니라 알마요의 지독한 독재에 반대한 반란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악한 지도자는 특수 보안부대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약혼자까지 포함한 일행을 모두 총살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의 책임을 반란군 지도자 라파엘 고메스에게 지워 지금까지 공산주의자와 열렬하게 싸워온 자신을 후원해온 ‘빅 브라더’ 미국의 도움을 받기를 희망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덕목 중의 하나는 수치를 몰라야 한다고 했건만, 우리의 호세 알마요 씨는 좀 해도 너무한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프랑스 외교관 출신으로 볼리비아에서도 근무했던 로맹 가리도 소설에서 자신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과 자신의 자랑스러운 조국 프랑스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은 굳이 외면하는 것 같다. 알제리전쟁과 코친차이나에서 프랑스의 잔혹한 지배 역사를 잊었던 걸까. 미국이 구사한 라틴아메리카 앞마당 정책과 프랑스의 식민지배 정책이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일단 소설의 서두에서 사건으로 충격을 가한 뒤, 로맹 가리는 희대의 독재자 호세 알마요의 유년 시절을 추적하는 플래시백 기법을 동원한다. 어쩌면 성직자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쿠혼 인디언의 후예는 자신의 스승에게 ‘보호’를 갈구하지만, 편견을 품은 사제가 자신의 사악한 제자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는 천편일률적인 훈계에 지나지 않았다. 쿠혼 인디언의 후예로 수백년 전 스페인인들이 대포와 종교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조상들의 땅을 정복하고, 스페인 사제들의 주장에 따라 수많은 인디언들을 영혼이 없는 짐승이라며 무차별 학살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사제가 되었을 지도 모를 꼬마 인디언은 투우사로 대처에 나갔다가, 자신의 능력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재능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그런 위인이었던 알마요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사제에게 악마가 가장 선호하는 최악의 악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 사제는 알마요의 첫 번째 희생번제가 되었다. 쿠혼 인디언 과거에 등장하는 인신공희의 변주라고나 할까.

 

냉혹한 악당으로 거듭나게 된 알마요는 마약 거래를 통해, 권력의 사다리에 오르기 시작한다. 경찰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기동타격대를 만들고, 나약함 대신 잔혹함으로 무장한 인디언 전사는 반미주의를 천명하면서 민중들의 환심을 사기에 이른다. 물론 그가 진정한 독재가가 된 다음에는 가면을 벗고, 후진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친미주의자로 180도 변신하는 기회주의적 일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앞부분에 빠뜨린 그의 약혼자를 지칭하는 평화 봉사단 출신 미국 여자가 등장하는데,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쿠호니아에 최신 전화망과 도로 그리고 공공도서관과 대학을 비롯한 문화시설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관철시키기에 이른다. 악마와 거래한 알마요에게 성당에 가서 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라며, 미신에 사로잡힌 알마요를 협박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는 바로 미국 여자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통신시설과 도로망의 완비는 평화롭게 지내던 지방 인디언들에 대한 통제와 속박, 세금징수 같은 그들이 절대 원하지 않는 문제들을 양산해 냈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학에서 교육 받은 엘리트들은 알마요 독재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어, 독재자 추출을 위한 해방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역설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독재자가 구사한 선의의 정책이 별(마스탈라)을 즐기는 이들을 자극하고 각성시켜서 자신의 축출을 초래한 것이다. 이런 내러티브의 완성이라, 좀 놀랍군.

 

한편 알마요는 악마건 미국이라는 대부건 간에 ‘보호’를 요청한다. 내세를 부인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는 알마요는 현실의 지배자는 인간이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 중심에는 어린 시절, 투우사로 성공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한 자신의 성공욕에 대한 보상심리가 심어져 있지 않았을까. 무대 전문가 찰리 쿤 씨를 동원해서, 사상 최대의 마술사이자 집단 최면의 대가 잭을 찾아오라며 닦달한다. 의자를 허공으로 띄워 올리고, 마술사 자신이 직접 사라지는 건 대가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알마요의 선배 독재자 히틀러가 독일 민족을 집단적 환각에 몰아넣어 희대의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로맹 가리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에 대한 갈구야말로 악마적 욕망의 희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해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아메리칸 희극’ <별을 먹는 사람들>은 확실히 기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카스트로의 쿠바혁명과 체 게바라의 무장 게릴라 활동의 여파로 라틴 아메리카 전체가 공산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당시 서구사회의 불안감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의 막판에 정변으로 마침내 권력을 잃게 된 알마요가 프랑스 정부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장면에서 읽히는 자기비판의 정도는 생각보다 예리하지 않더라.

 

어쨌든 지난 주에 산 로맹 가리의 <별을 먹는 사람들>은 무난하게 완독하는데 성공했다. 하반기 나의 로맹 가리 읽기는 계속된다. 다음 주자는 ‘아메리칸 희극’ 두 번째 <게리 쿠퍼여 안녕>이다.

 

[뱀다리] 소설에서 자신에 대한 반란이 불길이 치솟자, 자신이 고용한 무대 전문가 찰리 쿤이 미국은 전통적으로 가난한 사람 그러니까 약자인 언더독( underdog)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알마요는 자신도 그 말을 안다며 이렇게 대꾸한다. “알아, 찰리. 나도 안다고. 개만도 못한 인간. 정확히 그렇지.”내가 이 소설을 읽다가 가장 크게 웃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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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7-11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저도 로맹 가리를 제대로 완독한 책이 없네요. ㅎㅎㅎ;;;
집에 5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 완독에 실패하고 나니 손이 잘 안가지더라구요.
레삭매냐님이 읽고서 가독성 좋은 책들 추천해주시면 그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

레삭매냐 2018-07-11 10:17   좋아요 0 | URL
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원체 작품이 많은 작가다 보니 헌책방에 갈 때
마다 하나씩 데려 오게 된 것 같아요.

저랑 패턴이 비슷하시군요. 완독 못하다 보니
더 손이 가질 않더라구요. 올 여름에는 로맹
가리 완독에 도전을...

전 세번인가 도전한 <새벽의 약속>부터 읽어야 쿨럭...

잠자냥 2018-07-11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 작품 중에 가장 가독성이 좋은 책은 ‘에밀 아자르‘ 이름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새벽의 약속>은 가독성이 매우 떨어지는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레삭매냐 2018-07-11 13:05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새벽의 약속>은 정녕 패착
이었던 가요. 그놈의 이동진의 팟캐 듣고서
도전했었는데 흠냐뤼...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를 같은 작가로 삼
아야 하는지 고민이네요.

에밀 아자르 책은 술술 잘 읽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보니 <솔로몬 왕의 고뇌>도 에밀...

2018-07-1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1 13:07   좋아요 1 | URL
말씀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식민제국들이 저희 나라에서는 완전히 뿌리
내린 민주주의 방식을 식민지에 착근시켜
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좀먹는 독재 시스템을 부추기기
만 하고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에도 여전히
종주국 행세를 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 봐라 늬들은 안된다는 식으로
호도하니 라틴 아메리카의 발전은 요원하
기만 한 것 같습니다.

stella.K 2018-07-11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자기 앞의 생>을 재밌게 읽어서 그의 작품은 다 좋은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군요.
프랑스 문학이 어렵긴 하죠.
아니 문학이란 물건 자체가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꾸 알고 싶고 다가가고 싶고 그런 것 같습니다.
암튼 로맹 가리 완독을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18-07-11 13: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이 로맹 가리라는 아자씬 정말 잘 나신 분이죠.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으로 조국 프랑스를 위해
공군 대위 출신으로 대독항전의 최전선에서
싸운 공로로 프랑스 최고의 영예라는 레종 도뇌
르 훈장도 받고...

프랑스 외교관으로, 문인으로서도 대성공을 거두
었으니 말이죠.

작가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로만 카체브라는
다양한 필명으로 펴낸 소설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만큼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전작 고고씽입니다.

유부만두 2018-07-12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새벽의 약속을 아주 좋아합니......

레삭매냐 2018-07-12 09:49   좋아요 0 | URL
전 세 번인가 도전했다가 완독에 실패했습니다.

오마니가 구워 주시던 스테이키의 추억 -
오마니가 피워 대던 골루아르 담배의 희부연 연기 -

유년시절 여자친구를 위해 집어 삼키던 거미 등속 -

요런 부분들은 정말 영영 잊지 못할 문구인 것 같습니다.

여름-가을에는 반다시 <새벽의 약속>을 읽어 보려구요.
도전.

카스피 2018-07-12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드매냠의 맛깔난 리뷰를 보니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그런데 이 책처럼 중남미 국가에서 원주민 출신이 독재자가 있었던가요?? 변변치 않은 제 상식으론 중남미 출신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스페인계 백인이나 메스티조(스페인+원주민) 출신인것으로 알고 있거든요.중남미 역사에서 원주민들은 백인출신의 독재자 맨몸으로 저항했지만 많은 희생을 당한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레삭매냐 2018-07-12 18:52   좋아요 0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없는 것 같습니다.

트루히요-뒤발리에 등 중남미 독재자들 중에
원주민 출신은 없는 것 같죠 아마?

로맹 가리는 볼리비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에스파냐의 종교적 그리고 사회
문화적 콘키스타도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와 함께 합니다.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미셸 투르니에의 도발적 표지가 돋보이는 <뒷모습>을 빌렸다. 고작 98쪽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사진 에세이였었는데,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오늘 올라프 스태플든의 <스타메이커>를 사러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빛바랜 사진 에세이집의 아우라는 사진을 맡은 에두아르 부바의 오래된 사진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 번역을 맡은 김화영 교수님은 후기에서 사진이 담은 정직, 단순 소박함, 몰입, 너그러움, 애잔함 등의 감상들에 대해 언급해 주셨다. 나는 항상 그렇듯 사진은 되돌릴 수 없는 찰라의 시간을 잡아낸 포착의 미학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진 좀 찍는다 하는 포토그래퍼라면 카메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순간을 잡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출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나가 버린 순간을, 그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사진의 진짜 매력은 바로 그 집요한 정지라는 점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에두아르 부바가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냈다면, 글로 감성을 녹여내는 건 미셸 투르니에의 몫이다. 아쉽게는 난 지금까지 투르니에의 글들은 하나도 읽은 게 없어서 달랑 이 사진 에세이집 하나만으로 그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글에서 풍기는 고수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고수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사진에서도 모름지기 어떤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바닷가에 조심스레 겉옷을 들추고 들어간 커플들의 사진에서, 부자들이라면 준비한 수영복을 혹은 아예 벌거 벗고 들어갔으리라는 추론을 도출해낸다.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 앞에 놓인 난파된 요트를 분석하는 씨퀀스는 또 어떤가? 누군가는 해석의 과잉으로도 치부해 버릴 수 있겠지만 놀랍지 않은가. 앞으로 두 사람의 미래에 펼쳐질 눈부신 항해를 의미한다는 또 반대로 이제 곧 난파될 관계의 전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미저리로 서로 상이한 관계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사진 해석 혹은 도상학적 분석이 주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빛나는 나신의 뒤태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떤가. 궁둥이는 애정에 목마르다고 했던가. 나도 오래 전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카메라에 담은 어느 님프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 때 찍은 사진을 아마 싸이월드 홈피에 올려 두었을 텐데, 사진 기록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어렴풋이 기억만 남게 되었구나. 그 님프의 사진을 찾아 이 리뷰에 넣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을 방문한 앙드레 지드는 나치 스타일로 뒷머리를 쳐 올린 스타일을 보고 외설스럽다고 했던가. 이어지는 표지를 장식하는 여성의 목덜미를 가로 지르는 선에 대한 상찬은 또 어떤가. 궁둥이를 강조하는 스타일로 제작된 발레스커트에 대한 분석에서는 묘한 관음증을 자극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는 어떤 연관성도 없지만 바다(mer)와 어머니(mere)을 연결하는 언어적 유희는 또 어떤가.· 어떤 경지에 도달한 대가만이 할 수 없는 언어적 유희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한 혹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도상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비밀 입문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마구 솟구친다.

 

세상에는 참으로 읽을 책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피어 오른다. 올 하반기에는 로맹 가리의 책을 읽겠노라고 작심했는데. 일단 로맹 가리의 책들이 정리되는 대로, 미셸 투르니에의 책에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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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1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와 관련 없는 말인데, 《스타메이커》를 샀습니까? ㅎㅎㅎ 설마 그 자리에서 《뒷모습》을 읽느라 책을 못 산거 아니죠? ^^;;

레삭매냐 2018-07-10 20:16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우선 <스타메이커>부터 찾아서 옆에 끼고
<뒷모습>을 읽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같이 있는 것으로 검색되던
<시리우스>는 누군가 사갔더군요...

cyrus 2018-07-10 20:25   좋아요 1 | URL
잘됐어요. 《시리우스》는 저도 못 구한 책이에요.
 
문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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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책을 생각보다 조금 읽은 듯해서 도서관에 들른 길에 얇은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조르조 바사니의 신간 <문 뒤에서>. 첫 10페이지를 열심히 읽고 묵혀 두었다가, 어젯밤에 머리맡에서 굴러다니던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요즘 로맹 가리의 <별을 먹는 사람들>에 빠져 있었는데, 그 책을 찾을 수가 없어서 대체품으로 삼은 셈이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읽다가 월요일 출근길이 힘들었다.

 

작가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라고 하는 걸 들었는데, 조르조 바사니의 경우에는 죄다 헛소리라는 느낌이다. 이탈리아의 도시 페라라를 배경으로 한, 유대계 가정의 이야기들. 제발트 선생이 수작이라고 극찬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 <문 뒤에서>에서도 뭐랄까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 주도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전 좋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슬며시 파고 들어온다.

 

16세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상처 혹은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1929년에서 1930년 즈음에 소설의 내레이터인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친했던 친구 오텔로 포르티가 낙제하면서, 나는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들의 이름이 기억의 저편에서 날듯 말듯 아련하게 부침을 계속한다. 나도 그랬던가?

 

우리는 국영수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게 미래의 성공을 위한 보장이었다면, 이탈리아 청소년들에게는 이탈리아어, 라틴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기하학이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는 낙제가 없어서 유급의 공포는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가혹할 만큼 성적의 압박이 존재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유급이라니. 우리가 공부하는 고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서구 교육 시스템(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에서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특히 이탈리아어!)의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습득한 라틴어로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를 읽는다고 생각해 봐라,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또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듯 샛길로 새버렸다. 어쨌든 유대인 의사 가정의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 출신의 나는 소위 전교1등 카를로 카톨리카와 같이 숙제도 하고 어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시달린다. 다만 소년의 자존심은 자신이 먼저 그 잘난 카톨리카에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통 가톨릭 교도인 카톨리카가 유대인 소년인 자신과 어울리는 걸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뿐. 서구 지식인 사회 그리고 조르조 바사니가 그렇게 사랑한 페라라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여전한 반유대주의의 잔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전교1등의 완벽한 대체재 루차노 풀가가 등장한다. 내 가정과는 달리 시골 보건의 출신인 풀가네 가족은 아들이 당장 학교에서 공부할 교재를 살 돈마저 부족한 상태다. 부유한 내가 상대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본의 소유관계로 스스로 어울리는 계급을 짓는 소년들의 모습에서 전간기 이탈리아의 실체를 슬쩍 엿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와 풀가 그리고 카톨리카는 행복한 결말을 맞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소설의 처음에서 밝혔듯이 어떤 식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청소년기의 깊숙한 생채기를 남기게 되었다.

 

어떤 기회에 친해지게 된 카톨리카는 나에게 루차노 풀가가 나에 대한 지독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알려준다.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나에게 카톨리카의 표정은 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카톨리카와 그의 일당들은 험담의 현장을 나에게 들려줄 계획을 공모한다. 그들이 셋업을 마치면, 나는 “문 뒤에서” 진실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문 뒤에서>였구나. 나는 알고 싶지 않은, 아마도 관계의 파국을 초래할 진실을 회피할 자신이 있을까? 나이가 드니 알고 싶지 않은 혹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쩌면 조르조 바사니는 페라라라는 공간과 유대인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삼아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도기적 시절의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게 아닐까. 루차노 풀가를 통해 듣게 된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어머니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험담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자신의 가족사를 지상으로 끌어 내린 게 아닐까. 조숙한 소년 풀가는 철부지 소년이었던 나에게,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남녀상열지사의 비밀과 마스터베이션의 쾌락을 알려 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한 이야기를 전간기 이탈리아의 시대상에 적절하게 비비고, 극도로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소년의 감정에 이입해서 새로운 카오스를 만들어낸 조르조 바사니의 창작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 정도로 내레이터 감정의 농밀한 기저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의 묘사가 가능한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조르조 바사니의 책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소 되새김질하듯이 천천히 그렇게 읽어볼 계획이다. 그 전에 앞서 읽다 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부터 읽어야겠지.


[뱀다리] 그리고 한 작가의 저작들에 대한 번역은 가능하면 동일한 역자가 맡아 주었으면 한다. 헤르타 뮐러 꼴이 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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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8-07-09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문학동네!
바사니 작품들을 몇 편 모아 좀 두껍게 몇 권으로 내면 안 되는지, 참 밋치겠습니다.
책값 오지게 오르지(물론 서양 현지 책값에 비하면 비싼 건 아니지만, 소득수준이 있지 말입니다), 책이라고 여백만 잔뜩 있는 럴럴한 편집으로 이렇게 만드는 거, 이건 정말 반칙입니다.
그러니 저한테 문학 ˝돈내˝라는 말을 듣는 거 아닙니까!
저도 바사니 무지 좋아하는데, 아 참 나 원...... 친구님 서재에 들러 욕도 못하고 이거 죽겄네요. ㅠㅠ

레삭매냐 2018-07-09 17:05   좋아요 0 | URL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폴스타프님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하면서 또 개별 작품으로 출간
된다는 점에서 컬렉션 하며 읽는 재미가...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사람이 할 말은 아닌가
싶네요 ㅋㅋ

뭐 그래도 다른 책은 몰라도
<금테 안경>하고 <문 뒤에서>는 한 권으로
엮었어도 좋았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