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조르를 찾아서 1
호르헤 볼피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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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의 연속이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라는 양대산맥이 구축한 현대 과학을 관통하는 멕시코 출신 작가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과학 교양과 심리 스릴러에 기반한 오락적 요소까지 아우르는 일대 역작이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대륙으로 남아있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단연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였다.

 

소설은 1944년 7월 20일,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모반에 연루된 수많은 인사들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기록필름에 담아 계속해서 그것을 지켜보는 히틀러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당대 최고 석학 중의 한 명이었던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 교수 역시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당할 위기였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42년 만에 과거를 회상한다.

 

유럽 대륙의 주인공 구스타프 링스 교수가 있었다면 대서양 건너 미국에는 프랜시스 P. 베이컨 박사가 있었다. 원자와 전자를 추적하며 우주의 비밀의 밝히려는 양자물리학자들의 노력과 경쟁이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때, 독일식 표현에 따르자면 분더킨트 다운 베이컨은 프린스턴에서 출발점을 찍는다. 총통의 압제 견디지 못한 유럽의 석학들은 앞다투어 신대륙으로 건너가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우주 생성과 소립자, 우리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의 비밀을 밝히겠다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는 역설적으로 인류 자체를 파멸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대량살상무기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히틀러의 전쟁기계는 동방의 대적 스탈린을 상대하면서 공격의 날이 무디어졌고, 1944년 미영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독일 제국의 패배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총통에 충성하는 일단의 무리들은 끝까지 패전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바탕에는 전세를 한 번에 역전할 수 있는 핵폭탄 프로젝트가 있었다. 거의 독일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원된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익명의 학술고문이 있었다. 그의 코드명은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등장하는 악당 기사 “클링조르”였다.

 

멕시코 출신 호르헤 볼피가 전후 원자폭탄 개발에 이렇게 정통할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베이컨 중위와 구스타프 링스 모두 과학자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출발한, 젊고 촉망받는 물리학도였던 베이컨 중위는 고등연구소에서 존 폰 노이만의 제자로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 한 자락하는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당시만 하더라도 새로운 영역이었던 양자역학 연구를 계속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흑인 애인 비비안과 상류층 출신 약혼녀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게임에 돌입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운명의 여신은 물리학자를 인간사냥꾼으로 변모시켰다.

 

독일 출신 구스타프 링스는 1차 세계대전의 기묘한 패배 이후, 혼란으로 가득했던 독일에서 수학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집합론의 창시자 게오르크 루드비히 필리프 칸토어가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무한에 대한 영역이었다. 호르헤 볼피 작가는 독자에게 유려한 필치로 무한의 세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과학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다만 수의 신비에 이끌린 학자들이 우주창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유년 시절 뜨거운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였던 하인리히와 함께 구스타프는 전후 세계 문화수도였던 베를린에서 쾌락적 삶을 누렸다. 물론 이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집권하면서 베를린의 활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결혼까지 해서 평안한 시절이 계속될 것 같았던 시절은 총통의 집권으로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어느 날 하이니가 철학자의 꿈을 추구하는 대신, 총통의 군대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구스타프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독일 과학자 집단을 소개해둔 괴팅겐에서 클링조르에 대한 실낱같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베이컨은 추적에 나선다. 한편, 구스타프 링스가 베이컨 중위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베이컨의 스승 존 폰 노이만은 모든 것은 게임의 법칙에 준거해서 진행된다는 가설 아래, 애제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제3제국 출신 과학자들이 모두 클링조르 후보자라는 가설을 세우고, 유력한 용의자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이 베이컨과 링스 교수는 합의한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 만큼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료가 필요한 걸까. 문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외교관 생활을 경험한 호르헤 볼피가 <클링조르를 찾아서>를 저술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현대 양자물리학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자신들의 논리와 가설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나같은 과학 문외한이 들어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초반부터 소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실제 전쟁 말기,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써 가며 베이컨 중위는 알소스 특명 팀의 일원으로 고향 우르펠트에 칩거해 있던 하이젠베르크를 체포해서 호송하지 않았던가. 많은 과학자들이 조국 독일을 떠나 학문적 자유를 구가했지만, 열렬한 애국자였던 하이젠베르크는 고향을 등지지 않고 남아 히틀러에게 협력했다. 철저하게 이론물리학자였던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약점 중의 하나였던 실험에 충실해서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했다면 과연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까.

 

호르헤 볼피는 철저하게 하이젠베르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는데,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대량생산무기 개발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에 대해서는 나도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결국 정치과 관계없는 과학연구에만 열중했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일단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동서 양쪽 전선에서 절대적인 수세에 몰린 히틀러가 사용하지 않았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아인슈타인을 숭배하는 과학도 베이컨 박사가 그의 산책길을 따라 다니는 장면, 막스 플랑크와 슈뢰딩거(현대 물리학계의 돈 후안이다) 그리고 닐스 보어를 찾아다니며 클링조르에 대해 탐문하는 장면들은 마치 현대 물리학에 대한 한 편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내러티브의 한 축에 베이컨의 수치스러운 스캔들이 있다면, 링스 교수 역시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그런 처지였다. 아내 마리안네와 절친이지만 히틀러를 추종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교선언을 한 하인리히(하이니)와 그의 아내 나탈리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관계는 치명적이었다. 우주의 비밀을 품은 양자물리학의 세계 만큼이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음모로 점철된 인간관계 역시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한 불확실성의 원리에 버금가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베이컨 곁에 느닷없이 등장해서, 지나치게 클링조르 추적에 개입하는 이레네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게 전혀 없는데 왜 그녀는 그렇게 클링조르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걸까.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구스타프 링스 교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추적하는 클링조르가 등장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베이컨에게 들려준다. 어쩌면 호르헤 볼피는 <파르지팔>의 스토리라인에 깊은 감명을 받아 현대 물리학이라는 요소에 우라늄 프로젝트를 결합한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를 재조립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링조르는 그 누구도 될 수 있었고, 또 반대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그를 추적하는 가운데 들었던 경고처럼, 전자처럼 빨리 움직이면서 자신을 쫓는 인간사냥꾼들을 비웃었고 또 한 편으로는 처절한 복수를 도모하기도 했다.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현대 과학에서 추구해온 양자역학의 비밀만큼이나 복잡한 애증으로 점철된 인간사를 아우르는 하나의 서사시였다. 내가 읽은 호르헤 볼피의 첫 작품이었지만, 이 한 편의 소설만으로도 볼피 작가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에게 쏟아진 대가들의 성찬이 단순히 겉치레가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닫게 됐다. 역사적 사실을 근본 삼아 빈 공간을 있을 법한 허구의 이야기와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차용한 코드들로 채우는 작가의 문학적 시도들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시작에서 결말까지 그야말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작품이라고나 할까. 대망의 2018년 200권 읽기 프로젝트의 200번째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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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2-12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에 대해서는 일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런 리뷰보면 저도 모르게 책을 장바구니에 담게 됩니다. ㅎㅎㅎㅎ
다양한 분야의 요소들이 잘 조합된 소설 같은데... 읽기에는 겁나지만 우선은 기억해 두려요. ^^

레삭매냐 2018-12-12 11:54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과학과는 담을 쌓고서 사는지라...

그래도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그리고 파동
역할까지 아우르는 현대 과학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놀랍게 포착하고, 그 위에 원자탄 프
로젝트를 책임진 클링조르라는 익명의 인물
을 쫓는다는 설정이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은 완벽한 토핑
이었구요.

단연 올해의 책이라 부를 만합니다.

Falstaff 2018-12-12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어봐야겠는데요.
제가 <파르지팔>의 등장인물 클링조르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그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라니, 구미가 확 당깁니다.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8-12-12 11:56   좋아요 1 | URL
저도 어제 헌책방에 가서 문지에서 나
온 <파르지팔>을 사 보려다가 나중에
빌려서 읽어야지 하고 참았습니다.

독일 고전 전승에 등장하는 성배를 찾
아 헤매는 기사의 이야기에서 현대의
성배(그랄?)는 원자를 지배하는 자라는
유추가 탁월했습니다.

아울러 악의 대변인 클링조르를 추적한
다는 설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매혹시키는 쿤드리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독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2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은 도대체 이런 엄청난 기운이 솟아오르시는지...이분은 이 블로그의 쥔장을 말함!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님 추천한 <칠레의 밤>도 빌려서 읽는중인데 ....자꾸 추천해주시면 우리 정말.........
......
.......
.......
더 감사할께요 ㅎ

레삭매냐 2018-12-12 13:21   좋아요 1 | URL
저도 <칠레의 밤> 재독하면서 볼라뇨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더랬답니다.

참고로 장정일 선생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리뷰를 읽어 보시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
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책이 있다면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입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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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참을 수 없는 가우초>를 사서 허겁지겁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만 쏙 골라 읽었다. 어느 소년이 눈밭을 맨발로 고행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를 존경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수도사는 방금 수도사와 아이를 살해한 흉악범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따라 붙은 것을 눈치채고는 그마저도 클린할 생각이었지 아마. 볼라뇨는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에 담긴 서로 교차되는 성속의 내러티브를 즐기는 모양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볼라뇨를 읽는 이유는 많다. 그 중의 하나는 아마도 니힐리즘의 정수가 아닐까. 내가 절대 가볼 수 없는 팜파스의 광활한 대지를 누비는 전직 판사 아저씨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팜파스에 더 이상 말을 볼 수가 없다. 소 대신 팜파스의 주인이 된 토끼를 덫으로 잡는 이야기는 생경하게 다가온다. 경제난과 인플레이션으로 그동안 애써 모은 자산이 종잇조각이 되자 판사는 쇠락한 시골 농장을 찾아 가우초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귀촌 정도 되려나. 아니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싶지만, 삶의 단면은 언제나 이해할 수도 그리고 설명도 불가할 순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도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부러 찾아온 문인 아들과 지인들에게 육즙이 풍성한 소고기 대신 토끼 고기를 대접하는 늙수그레한 가우초들의 이미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가우초의 삶을 사는 주인공의 꿈은 인디오 여자와의 합방으로 확정지어진다.

 

<경찰 쥐> 페페는 자꾸만 메가 픽션 <2666>을 연상시켰다. 쥐들은 동족을 죽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수도에 거주하는 유능한 형사 쥐 페페는 연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 해결에 나선다. 페페의 목적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첫 번째 희생자는 재갈에 물린 채 아사되었다고 했던가. 그 다음에도 쥐들의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에게 날카로운 자상을 입고 연달아 죽은 일련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페페 경찰 쥐는 범죄의 패턴을 연구하면서 아무래도 같은 쥐의 소행이라는 심증을 굳혀 간다. 그리고 결국 범인으로 지목된 녀석과 대결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 역시 동족 살해라는 끔찍한 범죄의 당사자가 된다. 이런 역설이 있을 수가 있나 그래. 어쨌든 페페 형사는 족제비라는 강력한 포식자의 위협에 직면한 동족의 S.O.S. 요청을 무시하지 않고 구조하기 위해 달려간다.

 

자신의 작품을 한 없이 베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프랑스 감독 모리니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알바로 루셀로트의 기묘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원작자에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은 표절행위를 문학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냐고 볼라뇨는 독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게다가 요즘처럼 원전의 영화화로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루셀로트는 표절감독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팬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같은 상황이 소설가 볼라뇨 씨에게도 벌어진다면 그는 통 크게 자신의 팬의 행동을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길 수 있을까. 나라면 아마 그러지 못하고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분연하게 나서지 않을까 싶다만.

 

나머지 두 편은 간부전으로 죽어가던 볼라뇨의 묘비명 같은 글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작가 본인의 과도한 섹스에 대한 직접 체험도 궁극의 깨달음에 대해 한몫 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추론도 해보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섹스에 집착하는 장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도 본 션 펜 주연의 <데드맨 워킹>에 그런 장면이 나오는지 미처 몰랐다.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시를 인용해서 그리하여 마지막 단계로 작가는 여행을 추천했지 아마도. 하지만 여행 역시 쁘띠 부르주아에게나 해당한 일이 아닐까? 여행을 하기 위한 금전적 여유와 시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려서 여행할 적에는 돈이 없었고, 지금은 돈도 시간도 없다는 말이 왜 이렇게 실감이 나는지 모르겠다. 심연에 도달해서 ‘해독제’를 찾기 위해 우리는 ‘섹스와 책과 여행을 탐험’해야 한다는 볼라뇨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계를 겨냥한 신랄한 비판인 <크툴루 신화>는 작가 스스로 지독한 문학 소비자였던 시절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라틴 아메리카와 스페인 문화권의 한다하는 작가들을 총망라한다. 노벨상 수상자로 공통분모를 형성한 만델라와 가비토 그리고 바르가스 요사에 대한 저격은 붐 세대를 끝장내려는 인프라레알리스모의 일원다운 패기를 보여준다. 볼라뇨는 현존하는 최고의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 알란 파울스를 꼽고 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개된 그의 작품이 하나도 없구나.

 

내가 볼라뇨를 꾸준하게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는 하나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로드리고 프레산과 지금 한창 빠져 있는 호르헤 볼피(<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당연 올해의 발견이다!!!)를 알게 되지 않았던가. 그 외에도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숱한 작가들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대중에게 소비되지 않는 책을 쓰기 위해 문학가는 모름지기 산더미 같은 책과 씨름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게 아닐까. 그렇다, 책은 소장하는 게 아니라 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책의 창조자인 문학가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존경 받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볼라뇨의 주장인데, 그럴려면 정신적 창녀가 되는 것도 마다해서는 안된다는 걸까? 죽음을 앞둔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진격의 작가지만 볼라뇨도 그 선까지는 넘지 않은 것 같다. 베스트셀러를 경멸하면서도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라도 읽으라는 권면은 정말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볼라뇨가 부린 주술대로 한국의 어느 독자는 좀비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책쟁이라면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반드시 읽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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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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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바느질 수다>를 읽고 나서 존재를 알게 된 <자두치킨>을 읽었다. 아마 영화로도 나와 있다고 하던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는 1958년 11월. 이란의 전통 악기 타르 연주자 나세르 알리 칸이 죽었다. 그는 왜 죽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사트라피가 그린 <그래픽 노블>의 주제다. 문제의 발단은 무엇이었나부터 짚어 보자. 나세르 알리의 아내 나히드의 어떤 행동 때문이었다. 아티스트 나세르 알리가 애지중지하는 스승이 물려준 귀중한 타르를 박살낸 것이다. 그로부터 나세르 알리는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 저승사자 아즈라엘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래픽 노블의 처음은 나세르 알리가 평생 사랑 이란느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이란느를 나세르 알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 그녀는 모르는 척 했다. 동생에 비해 어려서부터 말썽쟁이였던 나세르 알리. 그런데 범생이 동생 아브디의 삶은 어떠했던가. 공산주의 운동을 한답시고 가족들의 속을 태우지 않았나 말이다. 1953년 미국 CIA의 빛나는 공작으로 석유국유화를 단행한 민족주의자 모사데크의 실각에 대해서도 사트라피는 다룬다. 한 때 아랍세계에서 자랑 자유로웠던 이란, 페르시아가 지금은 원리주의자들의 지배를 받는 신정국가가 되지 않았던가. 세상 일은 그렇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자발적 죽음을 앞둔 나세르 알리는 가족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15년 전, 어머니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던 나세르 알리를 자신의 목숨에서 몇 년 띠어 어머니에게 주어도 무방하다고 할 정도로 간절하게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아들 나세르 알리를 불러 이제 그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들의 기도가 어머니가 이승에서 떠나는 걸 막고 있다고 말하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원 없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말에 나세르 알리는 당장 서른 갑의 담배를 대령한다.

 

자신과 가장 닮지 않은 수다쟁이 아들의 기도 때문에 나세르 알리는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을 수도 없다. 아티스트의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장사를 하겠다는 아들은 이란 혁명이 터지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나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모자파르의 아이들이 모두 비만인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가장 말썽쟁이 아들이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도 놀랍다.

 

영화 자두치킨으로 검색해 보니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영화가 검색창에 떴다. 마르잔 사트라피가 직접 연출한 영화라고 하는데, 이란의 전통악기 타르를 바이올린으로 대체되었고 배우들은 불어로 대사를 치는 것 같다. 짧은 영화 트레일러를 보니 예술은 삶을 이해하게 만들어 주고, 예술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아마 영화에서는 나히드의 예술적인 바가지 액션 그리고 환상적인 이란느와의 사랑이 그야말로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저승사자 아즈라엘도 한몫 하는 것 같던데 궁금하다.

 

아, 참고로 자두치킨은 나세르 알리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요리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실의에 빠진 나세르 알리를 유혹하려고 아내 나히드가 만들어서 유혹했지만, 나세르 알리는 음식을 그만 뱉어 버렸다.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저승사자의 방문을 의미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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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베르펜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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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을 읽고 나서 좀 아쉬운 마음에 머리맡에 있던 로베르토 볼라뇨의 <안트베르펜>을 집어 들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지나 한밤중으로 치닫고 있었다. 책이 더 읽고 싶었다. 볼라뇨의 팬을 자처하는데 나는 왜 이 책을 사두고 읽지 않았을까. 하긴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둘이던가. 읽다만 책들도 참 많지. 그래 볼라뇨 전작 읽기 중이니 당연히 이 책도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내가 얼마 전에 시집도 읽었는데 뭘하는 하는 마음으로.

 

 

칠레에서 태어나 메히코에서 교육 받은 세계인이자 반항아 볼라뇨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문청 생활을 한 모양이다. 생활고를 다스리기 위해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도 책과 글쓰기를 부단히 갈고 닦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짤막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이라기 보다 산문시에 혹은 어느 문청의 습작에 가까운 <안트베르펜>에는 훗날 볼라뇨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밑바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지하고 불초한 독자는 하나의 통일된 플롯이나 캐릭터를 기대했지만, 27세의 문청은 독자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않는다. 끝없이 분절되고 글을 쓸 당시의 본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해석불가한 이야기들을 주절주절대고 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리따운 어린 소녀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콜란 야르에게 너도 쫓기냐는 조금은 황당한 질문이 등장하지 않던가. 소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경찰에 대한 묘사는 왜 그렇게 리얼한지. 자신이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카탈루냐 캠핑장에 대한 이야기들, 밤바다가 당연히 검은 색인지 몰라서 그런 글들을 남긴 걸까. 아, 등대도 검다고 썼지 아마.

 

피씨통신 시절 유행하던 스키조프레닉(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가 볼라뇨의 끝없이 분절되는 글 속에서 연상이 되었다. 볼라뇨의 글 덕분에 자마이카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몬티 알렉산더의 연주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가 있었다. 피아노의 리드로 시작해서, 베이스 주자의 리듬 그리고 드럼 삼위일체의 <Isn't she lovely> 라이브 연주는 그야말로 황홀했다. 털이 부숭부숭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대며 자신의 흥에 도취된 몬티 알렉산더의 연주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책 리뷰를 하다가 또 삼천포로 빠졌구만 그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십대의 볼라뇨는 체류 허가증을 가진 이방인이었다. 확실히 젊은 시절 볼라뇨의 글에는 문청 특유의 오만과 분노 그리고 폭력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정확하게 인생의 좌표를 정하지 못한 불확실성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문학도가 보고 듣는 모든 정보들은 글쓰기의 소재다. 제목부터 안트베르펜으로 가는 길에 발생한 사고에서 유래한 게 아니던가. 소설의 제목은 카탈루냐 혹은 바르셀로나 그것도 아니라면 람블라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 그런 임의성이야말로 이후 사반세기에 달하는 볼라뇨 문학여정의 시발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누워서 책을 보던 사람도 벌떡 일어날 만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 수많은 불면의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작가는 글렀다는 체념도 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좌절과 체념의 시간들이 굳건하게 뭉쳐서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작가를 만들었겠지. 그러나 <안트베르펜>은 여전히 나에게는 모호하고 분절된 이야기들의 연속일 따름이다. 큰 줄기를 이루는 내러티브의 부재 덕분에 강제된 의미찾기는 어느 순간 실종되어 버린 그런 느낌이다. 도대체 ‘파란 꼽추’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소유하지 못한 것은 파괴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리석은 독자는 이미 읽은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따름이다. 나의 유한한 삶이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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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2-06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2월 계획대로 착착 읽고 계시네요.^^

레삭매냐 2018-12-06 13:36   좋아요 0 | URL
넵... 이제 앞으로 6권 남았습니다 !!!

얇다란 책으루다가 ~
 
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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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기를 자주 썼었다. 물론 나도 서민 교수님의 말쌈대로 어릴 적에는 그렇게 일기 쓰기가 싫었다. 특히나 단골 방학 숙제인 그림일기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돌아봐도 그 당시에는 일기 쓸 꺼리가, 껀덕지가 전혀 없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아니 으응? 그건 요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특히 그 시절 나를 괴롭혔던 것은 바로 날씨 쓰기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오만가지 정보를 다 제공하지만 그 시절에는 절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신문의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신문까지 찾아 가면서 그림일기를 그릴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으므로.

 

그러다 어떤 일로 회심해서인지는 몰라도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아마도. 하지만 엄마가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보신다는 걸 알고서는 다 모아다가 불 질러 버렸다. 아쉬운 기록들이긴 하지만 어쩌랴 이미 다 불타 없어진 것을.

 

서민 교수님의 글을 좋아한다. 암울했던 시절 경향신문 칼럼으로 사이다 같은 시니시즘의 정수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의 흑역사라는 <마태우스>란 책도 한 번 구해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이다. 얼마나 허접하길래 절대 감추고 싶어하시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 처음부터 글을 지금처럼 잘 쓰신 건 아니란다. 그렇지, 모름지기 글쓰기의 기본은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전율할 만큼의 글을 선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한다. 선생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일기 쓰기란다. 반성과 성찰 이런 진부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지. 인간의 기억이란 유한한 법이다. 뭐 요즘 유행하는 태블릿 피씨에 전자 펜으로 쓰는 것도 좋지만, 선생은 그런 디지털 글쓰기보다 노트와 펜으로 무장한 아날로그 방식의 글쓰기를 추천한다.

 

참 그리고 역시나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핑계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라. 한국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소비하는 시간이 평균 2시간은 된다고 하니 말이다. 하긴 나도 이런 말 자격이 있기는 한가 싶다. 며칠 전에 인스타 구경하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으면 하는 후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물론 마구잡이로 글을 쓴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호평을 받고 심지어 팔리는 글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글을 좀 쓰려면 일기쓰기라는 자기객관화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고유의 글을 방식을 선생은 친절하게도 예문을 들어가며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다. 그러니까 일종의 빨간펜 선생님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나는 워낙 악필이어서 디지털 글쓰기가 너무나 편하다. 게다가 어지간한 맞춤법도 알아서 척척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말이다. 물론 컴퓨터를 절대 맹신하면 안된다는 조언도 해주고 싶다. 일상에서 소재 픽업과 단상들이 떠오를 때마다 얼개를 구상하고, 노트에 잽싸게 메모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나도 책 읽기를 할 때, 메모를 해두면 리뷰의 질이 그나마 나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휘발되어 버리기가 부지기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독후감의 질이 획기적으로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블로그에 쓴 글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건 사이월드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사이월드의 조회수와 댓글에 목매달았지만 모든 건 한 때 뿐이다. 최근에 다시 사이월드가 부활하긴 했지만 예전의 영화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최근 선수들은 모두 얼굴책과 인스타로 갈아탔으니 말이다. 사실 이제 블로그도 한물 간 미디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전적으로 나의 독서일기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채 10념 남짓 도토리 장사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사이월드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수천년 전 로제타 스톤은 아직도 영원한 아우라를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같이 날림으로 글을 쓰는 아마추어들이 과연 글쓰기를 통한 표현력의 확장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할 문제겠지만, 일기쓰기가 표현력을 발달시키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근데 우리는 도대체 왜 일기를 써야 하는 거지? 한 마디로 말해 글쓰기가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다는 것이다. 카톡을 보내는 것도 일종의 글쓰기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도 자기소설을 써야 하고, 취업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누군가 대신 써줄 수도 있고, 비용을 내고 자기소설을 살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자기만의 고유한 아우라를 가진 글이 필요한 순간을 인생에서 반드시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예언이다. 그런데 왜 공부는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사는 건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었던가... 책을 읽다 보니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시 사유의 힘이던가.

 

선생은 술일기도 쓰셨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이 양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술을 마신 와중에도 일기를 쓸 정도의 자제력이라면 존경해 마지 않을 수가 없을 듯 싶다. 냉면을 안주 삼아 쏘주를 마신 이야기와 후원금 삥땅을 빙자해서 방문한 학생들과 3차까지 내달리는 모습은 정말 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우리 독서모임 달궁의 삽하나님도 기레기 시절에 서민 교수님에게 밥을 얻어 드신 적이 있단다. 멋진 양반 재인증!

 

<밥보다 일기>를 읽는 동안, 그렇다면 나도 독서일기라도 매일 같이 써볼까 우짤까 하는 망상에 젖어 보았다. 특유의 귀차니즘과 게으르니즘 때문에 그게 잘될 턱이 있나 그래. 그냥 내 페이스대로 살아야지.

 

200권 채우기 나의 얍삽 프로젝트 첫 번째인 <밥보다 일기>는 수월하게 마무리지었다. 두 번째인 로베르토 볼라뇨의 <낭만적인 개들>도 읽었다. 다음 주자는 9개의 단편 중에서 한 편만을 남겨 두고 있는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 별장, 그 후>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서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블라드>를 빌려야겠다. 앞으로 8권만 더 읽으면 대망의 200권 읽기 프로젝트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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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4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04 10:48   좋아요 1 | URL
써주신 글을 읽어 보니 정말 그렇네요...

선생님들이 마냥 일기를 써 오라 그랬지
어떻게 어떻게 써라에 대해서는 알려
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강압적 숙제만
아니라면 좀 더 일기쓰기에 취미를 붙였
을 지도 모르겠네요 -

구구절절히 옳으신 말씀이라 격하게 공
감합니다.

목나무 2018-12-04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로그 초창기때 쓴 리뷰를 간혹 읽어보면 정말 내가 이렇게 글을 못 썼단 말이야! 하고 놀라곤 해요. ㅎㅎㅎㅎ;;;;;
뭐든 꾸준히 쓰다보니 생각도 좀더 깊게 하게 되고 요약도 좀더 깔끔해지고....... 역시 시간의 노오력은 글쓰기를 배신하지 않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8-12-04 10:49   좋아요 0 | URL
저랑은 좀 반대신 것 같아요 ㅋㅋㅋ

책 리뷰 말고, 영화 리뷰요. 그 땐 정말
열심으로 글을 썼는지 아니 신이시여
이 글을 정말 제가 썼단 말입니까 할
정도라니깐요. 지금은 너무 허접해요.
게을러져서일까요?

책 리뷰도 딱히 개선된 것 같지 않구요.
편차가 너무 심하다고나 할까요.

차라리 힘 빼고 쓴 글이 더 낫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뒷북소녀 2018-12-04 12:59   좋아요 2 | URL
ㅋㅋㅋ매냐님도 인스타 하세용?ㅋㅋㅋ
요즘에도 매일 매일 일기 쓰시잖아요. 독서 일기요.

저도 예전 글들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기분탓일까요?)
지금 다시 읽어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은데...
지금은 영...

목나무 2018-12-04 14:10   좋아요 2 | URL
뒷북소녀 : 매냐님도 인스타 하시는 것 같더라구.. 하지만 못찾겠음...ㅋㅋㅋ
지금도 뒷북소녀 글 좋기만 하구만.... 시간에 따라 글에도 내가 묻어나는 것 같아. :)

레삭매냐님 : 정말 영화 리뷰 잘 쓰고 싶어서 책도 몇 권 읽고 그랬는데..... 이게 또 책리뷰와는 다른 것 같아요. 뭔가 지식도 좀 있어야 하는 것 같구요. 이쯤에서 레삭매냐님 올해의 영화 선정도 급 궁금해집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12-04 14:21   좋아요 0 | URL
뒷북소녀님 : 매일매일은요 무얼... 가끔 쓰는 걸요 -
서민 교수님이 일기를 쓰라 하셔서 ㅋㅋㅋ
분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인스타도 합니다. 그냥 저냥 ~

설해목님 : 올해 영화를 본 게 거의 없어서리...
책만 읽다 보니 영화 볼 시간이 없다고 핑계대고
싶네요.
예전의 영화보기 기운을 되찾고 싶습니다.

cyrus 2018-12-04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꼭 ‘매일‘ 기록해야 하는 건 아닌데 어린 시절에는 반드시 그렇게 써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일기를 검사했는데, 며칠 안 쓰면 게으른 아이로 취급했어요. ^^;;

레삭매냐 2018-12-04 16:32   좋아요 0 | URL
즐거운 일기쓰기가 되어야 하는데
검사와 강제가 결합되다 보니 반항심
에 더더욱 쓰기가 싫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아이가 아니다
보니 글쓰기 훈련을 위한 일기쓰기도
아니었고요. 이래서 배움이 중요한가
봅니다 :>